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해외스포츠 소식

메이저리그 입성 눈앞에 둔 LA 에인절스 최지만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추신수보다 2년 빠르게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돼
⊙ 스프링캠프에서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올 메이저리그에서 뛸 듯
최지만은 야구실력 못지않게 인성도 훌륭해 벌써부터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고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냈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최지만(25·LA 에인절스)의 경우가 그렇다.
 
  최지만은 지난해 11월 마이너리그 FA(자유계약선수) 역대 최고 대우를 받고 볼티모어와 계약했다. 하지만 계약 후 채 한 달도 안 돼 ‘룰 파이브 드래프트(Rule 5 draft)’를 통해 LA 에인절스로 이적했다.
 
  룰 파이브 드래프트는 마이너리그 경력 4년 이상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년 12월에 열린다. 특정 팀이 유망주를 과다하게 보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이렇게 지명된 선수는 부상 등의 이변이 없는 한 다음해 소속팀의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Roster)에 포함돼 빅리그에서 뛰게 된다. 지난해에도 룰파이브 드래프트로 지명된 14명 중 12명이 빅리그에 데뷔했다.
 
  “(최)지만이의 실력은 이미 메이저리그 수준입니다. 부상만 당하지 않으면 빅리그에서 뛸 수 있는 날이 곧 올 겁니다.”
 
  추신수(34·텍사스)가 2014년 여름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현실이 됐다. 최지만이 미국에 진출한 지 6년 만이다.
 
 
  1년에 세 단계나 승격했던 최지만
 
2010년 루키리그 시절의 최지만.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루키리그 타격, 타점왕을 차지한 것은 물론 시즌 MVP까지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2010년 포수로 시애틀에 입단한 최지만은 첫해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루키리그에서 출발해 하이 싱글 A까지 1년에 세 단계나 승격했던 그의 성적은 타율 0.360, 2홈런 30타점. 루키리그 타격왕과 타점왕은 물론 시즌 MVP(최우수 선수)까지 휩쓸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 진출했던 한국 선수 가운데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다.
 
  이런 최지만을 발굴하고 영입한 시애틀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구단으로부터 ‘보배를 발굴했다’며 그 대가로 승진이란 선물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최지만의 앞날은 장밋빛이었다. 빅리그가 곧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메이저리그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던 최지만에게 첫 번째 불행이 찾아온 건 2011년 2월이었다. 당시 스프링캠프에서 시즌을 준비하던 그에게 ‘등 근육 부상’이란 악재가 찾아온 것. 수술은 잘 끝났지만 길고 지루한 재활과정이 최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 살 청년이 감당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당시 최지만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숙소인 호텔에서 밤마다 귀신을 봤을 만큼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야구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년이란 긴 재활과정을 이겨낸 최지만은 2012년 필드에 복귀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포수에서 1루수로 포지션이 바뀐 것이다. 이는 유망주 최지만을 위한 시애틀 구단의 배려였다. 수비 부담이 큰 포수로 계속 뛰게 되면 부상재발 등 선수에게 이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년 만에 필드에 복귀한 최지만은 마치 야구가 고팠다는 듯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특히 그해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한 주 동안 타율 0.538, 4홈런 7타점을 몰아치며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프로 진출 후 처음 맡게 된 1루수 자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해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 A에서 뛴 최지만은 타율 0.298, 8홈런 43타점의 성적과 함께 시즌을 마쳤다. 출루율(0.420)과 장타율(0.463)도 뛰어났다.
 
  최지만은 당시 기자에게 “작년 이즈음 재활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의 고통을 잘 이겨낸 것 같아 기쁘고 건강하게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곁에 있던 타격 코치 크루즈는 “최지만은 타고난 재능도 좋지만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는 또 “최지만이 시즌 초 잠시 몸 쪽 공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숱한 연습을 통해 이제는 몸 쪽 공마저도 홈런을 칠 만큼 좋아졌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자못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복귀에 성공한 최지만은 2013년 더 열심히 달렸다. 노력한 만큼 성과도 많았다. 그해 마이너리그 싱글 A 하이에서 시즌을 맞은 최지만은 타율 0.337, 7홈런 40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올린 뒤 더블 A로 승격했다. 마이너리그 전체 올스타전인 ‘퓨처스게임(Futures game)’에도 출전했다.
 
 
  최단시간에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진입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 A 시절의 최지만은 마이너리그에서 1000타석을 채우지 않고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될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최지만이 더블 A에서도 타율 0.268, 9홈런 39타점으로 맹활약하자 시애틀은 그해 8월 마이너리그 최상위 단계인 트리플 A로 최지만을 승격시켰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도 포함시켰다. 부상으로 2011년 한 해를 쉰 것을 감안하면 미국 진출 단 3시즌 만에 거둔 쾌거였다. 선배인 추신수보다 2년이나 빠른 것은 물론 시애틀 구단 최초로 마이너리그에서 1000타석을 채우지 않고 40인 명단에 포함된 선수가 됐다.
 
  최지만은 당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시즌 때부터 코칭 스태프나 주위에서 좋은 평가를 해줘 내심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는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포함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쁘고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낍니다. 2011년 부상을 당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시련을 딛고 여기까지 온 이상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각오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이너리그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선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임박했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팀 내에서의 입지도 넓어지고 대우도 달라진다. 40인 명단에 포함된 뒤 첫해 연봉이 4만 달러(약 4782만원)로 수입도 증가한다. 또한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동등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연금에도 가입할 수 있는 등 권익도 향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이너리그 더블 A까지는 선수들이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버스로 이동한다. 하지만 트리플 A부터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최지만은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된 뒤 기자에게 “마이너리그 시절 최장 2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 비행기를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도 ‘재목’으로 인정
 
메이저리그 거포 출신인 하워드 존슨 시애틀 타격 코치(가운데)가 경기 전 최지만의 타격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전 시애틀 타격 코치였던 하워드 존슨(56)은 과거 기자에게 “최지만을 오랜 시간 눈여겨봤는데 스윙이 간결하고 무리가 없으며 배트 스피드 또한 일품이다. 최지만은 빅리그 타자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다.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최지만에 대한 존슨 코치의 호평을 소속팀 선수에 대한 단순한 립서비스(Lip service)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존슨 코치는 1982년 디트로이트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시카고 컵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13년간이나 빅리그 무대를 누빈 베테랑 선수 출신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물론 올스타와 실버슬러거 상도 2차례나 수상했다. 1991년에는 내셔널리그 타점과 홈런 부문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했다. 때문에 존슨 코치는 누구보다 타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안목이 있다.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감독 중 한 명인 맨차카(Manchaca) 또한 최지만의 성공을 예감하고 확신했다. 그는 과거 ‘추신수와 최지만을 비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두 선수 모두 재능이 뛰어나고 열심히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운을 뗀 뒤 “포지션이 달라서 절대비교는 힘들지만 송구와 주루 능력은 추신수가 낫다. 하지만 공격력은 최지만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맨차카 감독은 과거 루키리그부터 더블 A까지 추신수와 함께 뛰었던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더 추신수와 최지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시애틀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들은 최지만이 미국 진출 단 3시즌 만에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되자 그를 ‘시애틀 구단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유망주’로 선정했다. 이들은 또 ‘최지만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매 시즌 홈런 20개 이상은 쏘아 올릴 수 있는 거포’라고 호평했다.
 
 
  빅리그 목전에서 터진 ‘약물파동’
 
  최지만에게 2014년은 최악이었다. 그해 시애틀 산하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출발한 최지만은 4월 중순까지 타율 0.394, 1홈런 5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런 최지만의 활약을 주목하며 ‘메이저리그 데뷔가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실시한 금지약물 복용 검사에서 나온 스테로이드 성분(Methandienone) 양성반응이 최지만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이는 50경기 출전정지 징계로 이어졌다.
 
  최지만은 당시 기자에게 “내가 무슨 약을 복용해 양성반응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이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2월 중순에 실시한 소변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라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최지만은 이어 “내가 A라는 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B라는 금지약물 성분이 나왔다고 명확하게 말해주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약을 복용해서 금지약물 성분이 나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금지약물 복용자 취급을 받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최지만을 담당했던 메이저리그 선수협회(MLBPA) 데이비드 프로우티(Prouty) 수석변호사 역시 최지만의 생각과 같았다. 그는 기자에게 “최지만처럼 극히 미세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되고 무슨 약을 복용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일률적인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프로우티 변호사는 또 “출전정지 징계가 시작되면 이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통해 언론에 발표하면서 해당 선수의 간단한 입장을 표명하는데 최지만은 우리가 제시한 문장에서 ‘후회스럽다(Regret)’와 ‘사과한다(Apologize)’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을 보고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최지만이 얼마나 억울해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로우티 변호사에 따르면 현행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규정에는 최지만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한다. 과거 빅리그 투수였던 기예르모 모타(43)는 2012년 샌프란시스코 소속이었을 때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50경기 출장금지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 고의적인 약물 투여가 아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감기약 복용을 통해 나온 결과로 밝혀졌다.
 
  이런 경우는 또 있다. 한 남미 출신 선수는 자국에서 가져온 연고를 발랐는데 그 연고에 금지약물이 포함돼 있었고 결국 50경기 출장금지 처분을 받았다. 때문에 약물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을 때 어떤 경로를 통해 약물이 인체에 유입됐는지 그리고 검출된 약물의 수치에 따라 징계수위도 달라져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LA에서 열렸던 MLBPA 연례미팅에서 기자와 다시 만난 프로우티 변호사는 “시간이 흘렀지만 최지만은 정말 억울한 경우다. 그에게서 검출된 금지약물의 양은 역대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미미했다. 최지만 같은 경우가 생기기 않도록 현행 금지약물 규정 중 일부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다시 찾아온 불행 ‘발목 골절’
 
2015년 스프링캠프 첫 시범경기 당시의 최지만. 그는 이날 ‘발목 골절’ 부상을 당해 또 한 번 메이저리그 목전에서 좌절의 아픔을 맛봤다.
  최지만은 5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고 필드에 복귀한 뒤 타율 0.282, 6홈런 35타점의 성적으로 2014시즌을 마쳤다. 뜻하지 않은 일로 메이저리그 데뷔가 좌절된 그는 심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최지만은 그해 겨울 휴식대신 베네수엘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열리는 ‘윈터리그(Winter league)’에 참가해 출전정지 징계로 인해 떨어진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윈터리그가 끝난 뒤에는 예년보다 빠른 1월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시즌을 준비했다. ‘2015년에는 반드시 빅리그 무대에 서겠다’는 집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최지만은 1월 초부터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2월 중순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했다. 체중감량을 위한 식단조절은 물론 매일 밤마다 에이전트와 함께 뛰고 또 뛰었다. 10kg 감량에 성공한 최지만은 그 어느 해보다 더 완벽한 몸 상태로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장차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좌타자에서 스위치(Switch) 타자로의 변신도 이때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부상의 악령이 또다시 최지만을 찾아왔다.
 
  최지만의 부상은 지난해 3월 초에 열린 샌디에이고와의 스프링캠프 첫 시범경기에서 발생했다. 최지만은 이날 9회초 투아웃 수비 상황에서 유격수가 악송구한 공을 점프해서 잡으려다 1루 베이스로 돌진하던 상대팀 주자와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오른쪽 발목뼈가 골절된 최지만은 이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목인대도 파열됐다. 대다수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최지만의 2015 시즌은 끝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최지만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기자에게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부상이 메이저리그를 향한 내 의지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재활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조만간 꼭 건강한 모습으로 필드에 복귀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최지만의 이런 긍정적인 성격은 결국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단 6개월 만에 필드에 복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 8월 시애틀 산하 트리플 A 팀에 복귀한 최지만은 이후 총 1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8, 1홈런 16타점의 준수한 성적과 함께 시즌을 마쳤다.
 
  고무적인 것은 최지만이 복귀한 뒤 실전에서 스위치 타자로의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변신을 시도한 지 반 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으로 그의 야구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가 만나본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스위치 타자로 성장한 이들은 있지만 최지만처럼 20대 나이에 그것도 단시간 만에 스위치 타자로 변신한 경우는 전무하다”며 놀라워했다.
 
 
  최지만 영입을 위해 류현진까지 내세웠던 LA 다저스
 
  시즌이 끝난 뒤 최지만에게는 한 가지 숙제가 있었다. 마이너리그 FA 자격을 취득해 새로운 팀을 찾는 일이었다. 최지만은 계약과 관련된 모든 일은 에이전트에게 맡긴 채 10월 중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열리는 윈터리그에서 뛰며 2016 시즌을 남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열심히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최지만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GSM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초 마이너리그 FA 자격을 얻은 최지만은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 총 13개 구단의 러브 콜을 받았고 이 중 10개 팀으로부터 영입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마이너리그 FA 역대 최고액인 2만5000달러(약 2891만원)의 월급을 제시했지만 최지만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다저스는 또 GSM을 통해 최지만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이를 류현진(29·LA 다저스)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최지만이 류현진의 고등학교 후배인 것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GSM 측은 “공정하고 냉정한 협상을 하는 데 불필요한 과정”이라며 최지만의 전화번호 공개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GSM 관계자는 기자에게 “눈앞의 연봉 액수도 중요하지만 향후 최지만이 빅리그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팀과의 협상을 우선했으며 이 중 연봉을 포함해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볼티모어와 계약했다”고 말했다.
 
  최지만은 높은 연봉은 물론 향후 메이저리그 진입 시 빅리그 신인에게 주는 최저 연봉보다 월등히 많은 65만 달러(약 7억6000만원)의 연봉도 보장받았다. 또한 빅리그 타석에 따른 인센티브도 계약에 포함시켜 최대 40만 달러(약 4억6260만원)의 추가수입도 올릴 수 있게 했다. 특히 인센티브의 경우 최근 미네소타에 입단한 박병호(30)가 시즌 450타석을 채우면 7만5000달러를 받는 것과 비교해 최지만은 400타석만 채워도 1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최지만은 또 FA 계약에 퍼스트클래스 항공권을 제공받는 조건도 포함시켰다. 이는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 경력이 많거나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한 대우다. 실제로 최근 볼티모어에 입단한 김현수(28)는 메이저리그 계약임에도 비즈니스 항공권을 제공받는다.
 
  GSM 관계자에 따르면 “볼티모어도 당초 퍼스트클래스 항공권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볼티모어 인근의 한인 인구를 파악하고 향후 최지만 영입으로 증가하게 될 ‘한인 티켓파워’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한 뒤 해당조건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지만은 계약 후 가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GSM 대표인 존리(John Lee) 에이전트가 나를 위해 많은 자료를 준비했고 이를 메이저리그 단장회의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등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얻어낸 최고의 결과였습니다”라며 FA 계약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최지만은 2015년 12월 인천에서 열린 ‘LA 에인절스 입단 기자회견’을 통해 “메이저리그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GSM
  마이너리그 FA 역대 최고 대우의 계약을 맺은 최지만에게 또 다른 낭보가 날아든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이었다.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에서 열렸던 룰 파이브 드래프트에서 LA 에인절스가 최지만을 지명해 영입한 것이다.
 
  서두에 잠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지명된 선수는 부상 등의 이변이 없는 한 다음해 소속팀의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포함돼 빅리그에서 뛰게 된다. 최지만 역시 올 스프링캠프에서 부상만 당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뛰게 된다. 미국 진출 6년 만이자 추신수 이후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선수들 중 처음으로 빅리그에 입성한 경우다.
 
  마이너리그 공식 홈페이지(Milb.com)의 조시 잭슨 기자는 ‘마이너리그 FA는 위험한 비즈니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달리 FA 자격을 취득해도 새로운 팀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아 기뻐할 여력이 없다’고 기술했다. 잭슨 기자는 이어 ‘하지만 마이너리그 FA 최고 계약을 맺은 뒤 룰 파이브 드래프트를 통해 메이저리그 데뷔 기회를 잡은 최지만의 경우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최지만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LA 에인절스에서 1루수와 지명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할 C. J. 크론(26)이란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올해로 메이저리그 경력 3년째이지만 나보다 연봉이 약 15만 달러나 적습니다. 이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좋은 계약을 했는지 잘 알고 있으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야구실력 못지않은 ‘인성’
 
  최지만은 아직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했지만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야구실력 못지않은 뛰어난 그의 인성 덕분이다. 한국 프로야구 도루 부문 최다기록(550개) 보유자인 전준호 NC 코치는 최지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제가 최지만 선수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인성을 겸비한 예의 바른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과거 한국 프로야구에서 19년이란 시간 동안 현역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조금만 유명해지면 옛 모습을 잃어버리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실력이 곧 선후배 사이를 결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최지만 선수는 제가 2011년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코치연수를 하며 처음 만났을 때나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돼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지금까지 늘 한결같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인 데 말입니다.”
 
  최지만의 에이전트인 GSM 존리 대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2011년부터 최지만을 지켜봤지만 그는 요즘 젊은이들과 달리 예의가 무척 바릅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야구 외에 다른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정신력 또한 뛰어납니다. 최지만 선수가 두 번의 부상을 털고 일어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영화 〈글러브〉 모델 서길원과의 약속
 
  최지만에게 ‘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서길원을 에인절스 구장에 초대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서길원(21)은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선수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1년 영화 〈글러브〉로 제작됐다. 당시 영화가 히트하자 서길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수화(手話)로 “장애를 딛고 프로야구 선수가 돼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 꿈이 이루어져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도 완화되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밝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국내에서 야구선수의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서길원은 2014년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인 야구팀이 있는 갤러뎃(Gallaudet)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꿈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그의 가정형편상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DC의 한인회와 원주 카리타스재단 등에서 십시일반으로 경비를 마련해 줬다.
 
  당시 서길원의 소식을 접한 최지만도 힘을 보탰다. 최지만은 “후배인 서길원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해 사정이 넉넉하진 않지만 서길원이 자신의 꿈을 좇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선뜻 사비를 털어 야구용품을 후원했다.
 
  최지만의 후원은 이후에도 계속됐고 최근에 가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새로운 계획도 밝혔다. 최지만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면 구단과 협의해 서길원을 야구장으로 초대해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야구용품 후원 등의 지원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남모르게 선행을 이어온 최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새롭게 이적한 팀은 에인절스(Angels)다. ‘천사’ 유니폼을 입은 최지만이 향후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자못 궁금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6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