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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美·佛·터키·日·베트남에서 본 세계와 한국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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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미국인이 피 흘리는 세계화’는 사양, ‘총 쏘는 카우보이’에서 ‘글로벌 컨설턴트’로
⊙ 佛, 국민전선의 승리는 이슬람세력의 ‘無言의 협박’에 대한 반발
⊙ 터키, 시리아 난민 등 300만명의 난민 유입으로 몸살
⊙ 日, ‘2015년 올해의 유행어’로 중국인에 의한 싹쓸이 쇼핑 의미하는 ‘바쿠가이(爆買い)’ 선정
⊙ 베트남, TPP 가입으로 활력 넘쳐… 反中감정 높아

劉敏鎬
⊙ 55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저서: 《일본내면풍경》《미슐랭을 탐하다》 등.
프랑스 파리 북쪽 역인 갈 데 노르드(Gare de nord)주변의 아프리카계 사람들. 광장이나 공원, 역 주변은 옛 프랑스 식민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말리 호텔에서 인질극, 22명 사망.’ 2015년 11월 20일, 신문·방송을 통해 접한 테러 소식이다. 말리 수도 바마코에서 벌어진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에 의한 참극. 희생자는 호텔에 묵고 있던 시민들이다. 1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1월 13일 파리 동시테러 이후 일주일 만에 다시 터진 사건이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세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말리라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알카에다가 왜 바마코 호텔의 투숙객들을 살해했는지, 왜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서 벌어진 테러 소식에 움츠려야만 하는지….
 
  이런 의문에 대한 최적의 답을 찾으라면, 아마도 ‘글로벌’이란 단어가 아닐까.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세계 구석구석의 뉴스가 전해지고, 더불어 개개인도 나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0.99달러짜리 모바일용 게임 앱 하나 속에도 21세기의 키워드인 ‘글로벌’이란 단어가 투영돼 있다. 말리 테러 사건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CNN뉴스의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은 이슬람국가(IS)와 탈레반, 알카에다에서부터, 올라도 탈 내려도 탈인 중동 유가(油價), 독일・프랑스로 몰린다는 세계의 난민 소식…. 이런 뉴스의 배경에는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라는 노래가 상징하는 ‘글로벌’의 그림자가 진하게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은행알 줍기가 사라진 이유
 
  사실, ‘글로벌’이라는 말은 개념 자체가 애매모호한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의 이데올로기일지 모른다. 사전적 의미에서 ‘글로벌’은 ‘지구 전체, 세계적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사용되는 ‘글로벌’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다소 이념적・추상적・형이상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는 ‘글로벌’의 의미를 크게 보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세계화(世界化)・국제화(國際化)라는 의미를 담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과 세계주의(世界主義)라는 의미에서의 ‘글로벌리즘(Globalism)’이다.
 
  세계화·국제화는 지구를 무대로 한 현상이자 실체로서의 개념이다. 최근 알았지만, 한국에서는 가을에 은행알을 줍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한다. 은행알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가(低價)로 들어오는 중국산 은행알 때문이라고 한다. 애써 은행알을 주워서 파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다.
 
  이게 바로 세계화의 영향이다. 1992년 클린턴 대통령 집권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는 중국을 글로벌시대 최고 수혜자로 만들었다.
 
  글로벌리즘, 즉 세계주의는 현상과 실체를 뒷받침해 주는 근본적인 이념·윤리체계를 의미한다. 세계화는 어떻게(How)나 무엇(What)에 주목한다. 반면에 세계주의는 왜(Why), 누구를 위해(For Whom)와 같은 부분을 고려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단으로서의 세계화, 목적으로서의 세계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파리, 말리 등 전(全) 세계를 진동시키는 테러 사건은 인류가 세계화라는 수단에는 성공한 반면, 목적으로서의 세계주의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가치관으로 이어갈 경우 하늘에 닿을 만한 바벨탑이 탄생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거꾸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제를 휘어잡는 중국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중심인 베이징(北京) 시민은 방독면도 뚫는다는 PM 2.5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일본으로 향한 중국인 관광행렬은 PM 2.5에서 잠시라도 해방되고 싶어하는 자연적 욕망의 또 다른 증거라 볼 수 있다. IS가 저지르는 집단 참수와 유적 파괴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라면 누구나 간단히 살 수 있는 25달러짜리 중국산 AK-47자동소총과 같은 것은 세계화의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는 2015년 11월 워싱턴을 떠나, 파리와 이스탄불, 베니스를 거쳐 도쿄와 하노이, 타이베이(臺北) 그리고 서울을 여행했다. 세계화의 진가를 100% 만끽할 수 있는, 값싸고 선택의 폭이 넓어진 비행기 여행을 이용한 여정(旅程)이다. 필자의 업무와 관련해서 에너지 문제와 현지의 경제상황을 살피는 한편, 세계화와 세계주의 사이의 모순과 갈등에 관한 부분들을 눈여겨보았다. 이를 통해 신년인 2016년, 나아가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조망해 보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국제경찰’ 포기한 미국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워싱턴은 모두가 인정하듯 세계화와 세계주의의 산실이자 중심이다.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 개방경제와 민주주의, 인터넷을 통한 정보 오픈과 교환은 글로벌 패권국(覇權國) 미국의 위상을 상징한다.
 
  부분적인 문제야 있지만, 오늘날 미국은 세계인 모두에게 비교적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글로벌 인재를 끌어 모으고 있다. 선진국 대부분이 고령화(高齡化)사회로 접어드는 데 반해 미국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라다. 이민 덕분이다. 아무리 중국이 세계 최강이 된다 해도 중국땅으로 이민을 가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미국은 현실로서, 또 이념이자 이상(理想)으로서 세계 젊은이의 유토피아다. 사실 반미(反美)에 집착하는 나라나 사람일수록 자국민이나 자식을 미국에 보내려 안달한다. 쿠바·베트남·이란 등 반미구호로 20세기를 보낸 나라들 모두가 미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 자신은 움츠리고 있다. 아직 ‘고립주의(孤立主義)’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적인 무력(武力) 개입을 통한 글로벌 패권국의 위상강화나 정립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이후 ‘카우보이’가 아니라, ‘글로벌 컨설턴트’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초미의 관심사인 시리아 내전 하나만 봐도 미국은 더 이상 과거의 ‘국제경찰’이 아니다. 유럽이 아우성을 쳐도, 지상군 파견 없이 드론과 같은 첨단무기를 가지고 공습(空襲)을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유일한 대안(代案)이다.
 
  미국은 세계화를 통해 세계 구석구석을 워싱턴・뉴욕과 연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미국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직접적 행동을 하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2015년 11월 파리 동시테러는 9・11테러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IS 척결이나 시리아 내전 종식을 부르짖는 프랑스의 요청에 어정쩡하게 대응할 뿐이다. 미국에 도움이 되는 세계화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인의 피를 필요로 하는 세계화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총 쏘는 것을 주저하는 카우보이’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해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을 잡은 ‘희한한’ 사건도 그래서 발생했다. 프랑스와 러시아가 함께 군사작전에 들어가고, 독일도 공습에 참여한다. 미국은 9・11 동시테러 당시 유럽의 협조에 목을 매달았지만,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잣대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유럽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총 쏘는 것을 주저하는 카우보이가 내세운 새로운 카드는 ‘행동으로서의 세계화’가 아닌, ‘이념으로서의 세계주의’이다. 사이버안보와 지구온난화방지대책 같은 문제를 강조하면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동(同)시대의 나라들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시기와 주제는 다르지만, 국제문제에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이미 유럽이 한 세기 전부터 주장해 온 일들이다. 뒤늦게 미국이 부산을 떨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세계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주된 타깃은 중국이다. 대국(大國)에 걸맞은 국제적 책임을 중국도 지라는 것이다. 미국은 CO2 문제를 비롯한 그린정책과 사이버안보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압박한다.
 
  2015년 11월 30일부터 2주일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다. 이 행사는 ‘이념으로서의 세계주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좋은 사례이다.
 
  그동안 미국은 글로벌 차원의 지구온난화 문제에 무관심했었다. 중국과 인도도 미국을 핑계로 하면서 교토(京都)의정서와 같은 국제협력에 무심했다. COP21에 미국이 들어가자 중국・인도도 뒤늦게 참가했다.
 
  COP21은 미국이 환경이나 사이버안보와 같은 문제를 국제적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신호탄이다. 20세기형의 무역에 중심을 둔 세계화가 아니라, 21세기형 세계주의에 주목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국제분쟁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개입 자제는 오바마 이후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피를 흘리는’ 세계화의 영역은 축소될 전망이다. 20세기형 ‘참가형 카우보이’에서, 21세기형 ‘생각하는 카우보이’로 넘어가는 것이다.
 
 
  多민족국가 프랑스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은 무슬림의 多産이 중요한 이유다. 공원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는 무슬림 가족.
  필자가 파리에 도착한 것은 2015년 11월 13일이었다. 파리 테러 사건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이었다. 사건이 벌어지던 당일 파리를 떠났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절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1년에 한 번 정도 들르지만, 예년에 비해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해졌음을 느꼈다. 백인 계통뿐 아니라, 옛 프랑스 식민지권 내 흑인이거나 무슬림, 나아가 캄보디아 계통의 아시아인들도 눈에 띄었다. 어느 나라나 수도권 국제공항은 그 나라의 얼굴이다. 샤를드골 공항은 다(多)민족・다종교・다인종의 현장이었다. 미국 공항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히잡을 쓴 무슬림들이 많다는 것이 특이했다.
 
  이후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다민족 국가 프랑스’의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소는 무슬림과 유색인으로 채워져 있다. 파리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지인에게 현지의 분위기를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1964년 상영된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Paris brûle-t-il)〉의 타이틀을 패러디해서 보낸 글이다. 이메일을 보낸 지 나흘 후 파리 동시테러가 발생했다.
 
  파리 제11구(區)의 공원이나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무슬림은 최소한 3~4명의 자식을 낳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인구증가율은 유럽 최고 수준이다. 출산율은 2.02로 1.3의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이유가 무엇일까? 프랑스 내 무슬림들의 출산율이 높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자국(自國) 내 무슬림들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발표하지 않는다. 대략 전체 인구 7000만 가운데 600만 정도가 무슬림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국민전선이 승리한 이유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은 피임(避姙)을 하지 않는 이슬람 전통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신생아에게 지급하는 교육・육아 보조금이다.
 
  간단히 말해, 18세 이하 자식 3명만 있으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넉넉히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 임신단계에서부터 적용하는 보조금은 출생과 함께 각종 명목의 보조금으로 확대된다. 미성년자를 위한 보조금은 프랑스 국적 여부에 관계없이 거주민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출생자의 가정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어린이 3명이 있으면 한 달에 한국 돈 200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보장한다. 자식 수가 늘어날수록 보조금 액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부모가 직장을 갖고 있을 경우, 육아를 위해 휴직한 뒤 따로 보조금을 받아낼 수도 있다. 자식농사를 통한 수입증대인 셈이다. 출산・양육과 관련한 정부예산은 국내총생산의 5%에 육박한다.
 
  하지만 프랑스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인종・종교 차별주의자나 극우(極右)주의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반(反)이슬람 주장을 펴는 사람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매장되는 분위기가 유럽 전체에 만연해 있다.
 
  2015년 1월의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풍자만화 관련 테러, 지난 11월 파리 동시테러는 이런 침묵에 일조했다. ‘반이슬람’을 주장하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다. 무언(無言)의 협박이 일반 국민은 물론, 정치・언론・학계・문화계로 확산되고 있다.
 
  극우정당이라 불리는 국민전선(Front National)에 대한 국민적 인기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국민전선이 무언의 협박에 맞서 뭔가를 확실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났지만, 국민전선의 집권은 초읽기에 들어선 상태다. 프랑스만이 아니다. 벨기에・독일・덴마크 등 서유럽 전역이 극우정당의 세력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파리의 중국 賣春여성
 
  중국인 매춘(賣春)은 파리 제3구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흥미로운 모습 중 하나다. 파리의 밤거리는 아름답다. 어디를 가도 역사적 흔적과 함께 나름대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제3구 지하철 템플(Temple)역 주변을 걷다가 한 무리의 아시아 여성들이 군데군데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죽장화와 함께 짙은 화장을 하고 있기에 한눈에 매춘여성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파리에 아시아 여성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길가에 있는 신문 판매상에게 여성들의 정체에 대해 물어봤다. “시나 프로스티튜에(Chine Prostituer・중국인 매춘여성)”라 대답했다. 자세히 보니까 적어도 40대를 넘어선 여성들로 헤어스타일과 옷 모양에서 중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1시간 80유로, 2시간 150유로, 호텔에서 밤을 보내면 250유로라고 한다. 장소는 여성들이 제공한다고 한다.
 
  ‘시나 프로스티튜에’가 파리의 밤에 등장한 것은 2~3년 전부터로 그 숫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매춘은 불법(不法)이다. 그러나 남성인 성매수자(性買收者)에게 벌금을 매길 뿐, 성(性)을 파는 여성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 파리에만 4만명 이상 있다는 매춘여성을 단속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따라서 ‘시나 프로스티튜에’는 아무런 제재 없이 일할 수 있다.
 
  파리 매춘여성 대부분은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들이다. 21세기의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세계 주요도시가 중국인으로 넘치고 또 넘친다. 마침내 파리의 밤까지 중국인의 영향권에 들어선 것이다.
 
  터키 이스탄불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갈 때 반드시 거치는 곳이다. 터키항공의 항공료가 비교적 저렴한 데다가 터키항공이 제공하는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잔틴 문화유산과 이슬람문화가 공존하는 이스탄불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고도(古都)다. 그러나 터키도 ‘바벨탑의 붕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시리아 난민때문이다. 이스탄불 시내 중심에서 조금만 걸어나가 보면, 구걸하는 난민들로 거리가 가득하다.
 
  무슬림은 남성 위주의 사회다. 거리를 오가며 구걸하는 것은 여성과 어린이의 몫이다. 보기에도 안쓰러운 서너 살짜리 어린애들을 구걸에 동원한다. 그들은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신발은 아예 안 신고 있다. 동정을 유발하기 위해 속옷만 걸친 채 구걸을 하는 어린이도 있다.
 
  터키는 국경을 열어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는 유럽으로부터의 지원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사실 넓은 국경을 막을 만한 뾰족한 수도 없었다. 유엔은 2015년 5월 기준으로 터키 내 난민 수가 170만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터키인 누구도 이 통계를 믿지 않는다. 시리아만이 아닌, 다른 나라 불법입국자들을 전부 포함할 경우 적어도 300만명은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다. 터키의 인구는 7100만명 정도다. 대략 인구의 4% 정도가 한꺼번에 유입된 것이다. 한순간에 입이 4%나 늘어날 경우 견뎌낼 수가 없다. 같은 무슬림 형제라고 하지만,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유럽이 이슬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처럼, 터키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무슬림 형제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터키 내 테러사건은 난민들로 인해 증폭되는 내부갈등과 관련이 있다.
 
  시리아 난민이 늘어나면서 서구 유럽으로 이주하는 터키 지식인들의 행렬도 급증하고 있다. 터키 내 모순과 위험을 피해, 터키의 두뇌가 서방으로 물밀듯 빠져나가고 있다. 난민이 급증할수록, 무슬림 대형(大兄)의 두뇌 유출도 확산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2015년 유행어
 
“안심하십시오. 입고 있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코미디언 ‘도니카쿠 아카루이 야스무라’ 관련 달력.
  이에 반해 일본은 전혀 다른 혹성처럼 느껴진다. 자동차나 지하철이 내는 소리마저 그 어떤 나라보다 부드럽다. 일본은 전 세계 그 어떤 사람들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다.
 
  그동안 고(高)물가 때문에 관광객이 적었지만, 엔화가 떨어지면서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관광객에 의한 싹쓸이 쇼핑인, 이른바 ‘바쿠가이(爆買い)’가 나타난 것도 그 증거다. 탄생한 지 2년도 안 되는 ‘바쿠가이’란 말은 ‘2015년을 장식한 올해의 유행어 대상(大賞)’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바쿠가이와 더불어 ‘2015년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 오른 또 다른 말이다. “안심하십시오. 입고 있습니다(安心してください、穿いてますよ)”라는 말이다. 이 말은 코미디언 ‘도니카쿠 아카루이 야스무라(とにかく明るい安村)’가 사용해서 유명해졌다. 이 이름은 그의 예명(藝名)인데 ‘어쨌든 간에 항상 밝은 모습의 야스무라’라는 의미다.
 
  야스무라는 몸에 살색 팬티 하나만 입고 나와서, 마치 나체(裸體)인 양 갖가지 포즈를 취한 뒤, “안심하십시오. 입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너무도 천박하고 황당한 일회성 퍼포먼스지만, 일본인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즐겁게 받아들인다.
 
  이 두 말이 2015년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는 묘한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진 말이라고 느꼈다. 메타볼릭(Metabolic) 체형의 코미디언이 팬티 한 장을 입고 던지는 독백과 일본 전체를 사들일 듯한 중국인의 바쿠가이 열풍 사이에 숨겨진 은유법 같은 것이다.
 
도쿄 긴자에 있는 5400엔짜리 가방 상점. 중국인들은 일단 초대형 가방을 구입한 뒤 바쿠가이(싹쓸이쇼핑)를 시작한다.
  일본인 모두가 인정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가장 큰 이유는 ‘1달러=125엔대’로 떨어진 환율 덕분이다. 3년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집권하면서 엔화의 가치는 약 30% 정도 하락했다. 통화량 증가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을 ‘왕창세일’로 몰아넣었다.
 
  돈에 민감한 중국인은 그 같은 상황에 가장 빠르게 대응했다. 5400엔짜리 큰 가방을 하나 구입한 뒤, 마구잡이 쇼핑에 나서는 것이 중국 관광객들이다.
 
  당장 돈을 벌어 좋기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출혈(出血)비즈니스란 것을 알 수 있다. 1982년생 코미디언이 던지는 “안심하십시오…”는 그 같은 불편한 심리를 해소해 주는 ‘자기격려 자기확신용’ 메시지다. “안심하십시오. 입고 있습니다”라는 말 속에는 “중국인에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싸게 팔아야 할 정도로 추락한 일본이지만, 그래도 마지노선인 팬티는 입고 있으며, 정신마저 왕창세일한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중국인들의 바쿠가이와 달리 일본인은 값싼 중국제품 상점으로 몰린다.
  “안심하십시오…”라는 말 속에는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자긍심도 들어 있다. 중국인의 바쿠가이 대상은 절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아니다. 바쿠가이의 현장인 긴자(銀座)거리나 아사쿠사(浅草)로 가보자. 상품 진열대 주변에서는 반드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란 푯말을 볼 수 있다. 중국인은 ‘메이드 인 차이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격에 관계없이 무조건 ‘메이드 인 재팬’을 바쿠가이의 대상으로 삼는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인의 모습이다. ‘메이드 인 재팬’을 원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도 마다하지 않는, 아니 실제로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일본인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아사쿠사에서 일본인은 500엔짜리 ‘메이드 인 차이나’ 신발가게로, 중국 관광객은 2000엔짜리 ‘메이드 인 재팬’ 부채가게로 몰리는 것을 보았다. “안심하십시오…”는 중국이 일본을 넘어선 세계 경제대국으로 간다 하더라도, 중국인 자체가 ‘메이드 인 재팬’에 빠져 있다는 것에 ‘안심하라’는 은유적 의미처럼 풀이된다.
 
 
  활력이 넘치는 하노이
 
중국인과 달리 베트남인들은 자국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의식적으로 ‘메이드 인 베트남’ 상품을 구입한다.
  베트남 하노이는 거의 20년 만에 방문했다. 필자의 기억 속 하노이는 ‘흑백사진’과 흡사하다. 남부의 호찌민(옛 사이공)은 2~3년에 한 번씩 들렀지만, 하노이는 오랜만이다. 항공료는 일본에서 출발하는 것이 한국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절반 정도 저렴하다.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시내 중심부까지 약 45분 동안 차를 타고 가면서 그동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큰 다리를 비롯해 아스팔트 도로가 6차선에서 8차선으로 이어져 있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붉은 흙길을 통해 하노이 시내로 들어간 것이 어제의 기억이다.
 
  도시 전체는 오토바이로 넘쳐나고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서 확인한 것이지만, 2016년을 맞아 지구상에서 가장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곳이 베트남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중국의 침체에 있다. 중국 경제가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9300만 인구의 베트남이 ‘세계의 작은 공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건비가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해 급성장한 일본의 저가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2015년 11월 베트남 공장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내 생산을 줄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에 가입한 것도 베트남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베트남은 2010년 미국・오스트레일리아・페루・말레이시아와 함께 TPP 가입의사를 밝혔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TPP 가입에 적극적인 것은 중국 경제 영향권으로 편입되는 데 따른 경계심 때문이다.
 
  원래 TPP는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한 경제 체제다. 국가경제나 보호무역을 앞세우는 사회주의 체제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의 TPP 가입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짝퉁제조, 부정확한 경제성장률 수치 등 폐쇄 경제 체제의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 TPP에 가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베트남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베트남이 TPP에 가입하게 된 것은 베트남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배려 덕분이기도 하지만, 베트남 자신이 서구식 개방경제로 경제구조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지난 11월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기간 동안 가장 주목받은 나라다. 한국에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과 일본은 APEC 회원국 가운데 TPP 참가국만 따로 모아 내부회의를 개최했다. 한국이 참석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하노이에 들른 시기는 공교롭게도 APEC 회담이 있던 무렵이었다. 당시 베트남 현지 언론 대부분은 명목뿐인 APEC보다 TPP에 대해 더 열심히 보도했다.
 
  현지에서 만난 베트남 대학생에게 TPP 관련 뉴스를 보도한 신문을 보여주면서 소감을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양(量) 중심의 경제구도로 나아가다가 환경오염과 빈부(貧富)격차를 초래한 중국과 달리, 질적(質的)인 면에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가자는 것이 베트남의 경제정책 방향이다. TPP는 그 같은 미래를 위한 기반이자, 나침반에 해당된다.”
 
  베트남은 중국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의 대중(對中) 저자세 외교와 크게 다른 것이 베트남식 ‘자주외교’다.
 
  하노이 현지에서 느낀 것이지만, 중국인에 대한 베트남인의 거부감은 한국의 반일(反日)감정 이상이다. 중국과 중국인 모두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물론, 아예 눈 아래로 본다. 베트남 사람들이 공부하는 외국어를 보면, 영어・한국어・일본어는 인기지만, 중국어는 2류 정도로 취급한다. 40개 정도에 이르는 호텔 내 케이블 채널 중에서 중국어 방송은 2개뿐이다. 다른 동남아 나라의 경우 중국・대만・홍콩 등 중국어 방송이 최소한 5개는 된다.
 
  흥미로운 것은 케이블 채널 속의 인도방송이다. 드라마와 음악을 다루는 인도방송 2개를 하노이 케이블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상당히 인기가 높은 채널이다. 거리 곳곳에서 인도방송을 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국에는 100여 개에 이르는 케이블 채널 가운데 인도방송은 단 하나도 없다. 세계를 보는 베트남의 눈은 한국을 능가하는 듯하다.
 
 
  지금 한국은…
 
  2016년을 맞은 한국은, 언제나처럼 밑도 끝도 없는 문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기 대통령 출마예상자, 야당의 당내 갈등, 노조의 폭력시위…. 죄다 ‘국내형’ 보도들뿐이다.
 
  어느 나라나 문제는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대하는 자세다. 두 달여 동안 돌아본 여러 나라는,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세계화와 세계주의 사이의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찾아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현재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해결책을 모색하기는커녕, 갈등과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그 이전에 아예 문제 자체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계의 이슈들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 세계 속의 한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언론의 등장을 간절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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