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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동아시아 多文化의 운명공동체, 韓·日·臺灣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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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3개국은 단일민족 신화를 토대로 성장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나라다. 그러나 급증하는 외국인 이주로 국가 정체성과 ‘혈연 共同’의 사고가 흔들리고 있다. 핵가족으로 가족 성원이 줄고, 무자녀 가정이 증가하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도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거칠게 말해, ‘아는 사람끼리’의 내집단 중심 사회에서 ‘낯선 이웃들’ 간의 사회적 관계로 사회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 한국 사회의 경계인, 이주 외국인… 전체 인구의 3%인 156만명
⊙ UN 인종차별 특별보고관, “외국인 혐오 문제, 한국 정부가 다뤄야”
⊙ 일본, 국제결혼 자녀 ‘이지메’ ‘후토코(不登校)’ 발생… ‘다문화 共生정책’은 예산·인력 부족
⊙ 대만, 중국 대륙 여성의 결혼 이주… 동남아 여성은 ‘가사도우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일본인들이 작년 9월 도쿄 거리에서 한국인은 나가라 등 혐한(嫌韓)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사람은 제도와 더불어 살아간다. 문자로 기록한 성문법(成文法)과 사회에 내재한 가치·규범을 지키며 문명의 질서를 유지한다. 이어령(李御寧) 전 문화부 장관은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말과 그 개념들이 서구사상을 처음 들여올 때 일본 사람들이 지어낸 번역어라는 점”이라며 “우리가 거의 신성불가침처럼 사용하는 ‘민족(民族)’이라는 말마저 제국주의화를 꿈꾸던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관념어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현대 중국어의 ‘민즈’나 한국어의 ‘민족’이 일본어 ‘민조쿠(みんぞく)’의 차용어다. 심지어 ‘일본어의 민족에 정확히 들어맞는 유럽어가 없다’고 한다. 민족이 국가(nation)에 대한 소속·애착심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와 언어·종교·혈통을 공유하는 모임(ethnic group)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단일혈통 국가인 한국에서 ‘민족’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세기부터다.
 
  이 전 장관은 “구한말 이전에 한국인이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그 기록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말이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민족과 어떻게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단일민족인 한국에서 민족은 ‘혈연’의 의미를 담고 있다. 피가 같으면 다 같은 ‘우리’라는 얘기다. 그런데 ‘피’라는 게 참 묘하다. 피는 국가를 초월한다. 영화 <명량>이 화제지만, 임란(壬亂) 당시 조선에 귀화한 일본인 사야카(沙也可)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일본 장수인 그가 귀화해 결국 조선의 무신 ‘김충선(金忠善)’이 되었다는 실화(實話)가 영화화됐다면 어땠을까.
 
  역(逆)의 관계도 성립한다. 한국인 피가 흐르는 재일(在日)교포 2~3세대는 우리 말이 서투르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지만 차별적 의미가 담긴 ‘자이니치(在日)’ ‘자이니치 간코구진(在日韓國人)’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재일교포는 ‘일본 속의 타자(他者)’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도 많은 타자가 있다. 이주 노동자, 중국동포, 탈북자, 결혼 이민자(혼인 귀화자) 등이다. 대개가 중국과 동남아에서 건너왔다. 우리와 ‘피’가 다른 국내 거주 ‘다문화(多文化) 가족’(한국인과 결혼한 결혼 이민자가 포함된 가족)은 2014년 기준 79만명 내외다. 2020년에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체류 외국인 수는 더 많다.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2014)’에 따르면 국내 거주 장기체류 외국인·귀화자·외국인 주민 자녀는 모두 156만9740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주민등록인구(5114만1463명)의 3.1%다.
 
  이 수는 벌써 강원도(154만명), 대전(153만), 광주(147만) 인구보다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문화 자녀 출생은 2011년 이후 계속 늘어나 전체의 4.7%이고, 사망 비중은 0.6%에 이른다.
 
 
  ‘공동체 과잉’ 한국 사회의 他者들
 
  혈통이 같든 다르든 어느 나라에서나 두 개의 집단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끼리인 내집단(內集團)과 내가 잘 모르거나 전혀 낯선 이들인 외집단(外集團)을 말한다. 내집단은 자연스레 ‘우리’라는 동류의식으로 뭉쳐져 있지만 외집단은 팔짱끼고 한발 물러서 지켜보는 존재다. 한국인에게 내집단은 서로 보증(保證)도 서고, 위증(僞證)도 마다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한반도라는 단일국토에서 단일민족이 단일언어와 단일풍속을 공유해 왔으며, 그 결과 외부의 이질요소나 변화에 심리적 저항감을 갖게 만들었다. ‘혈연 공동(共同)’은 인간 집단이 단일지역 내에서의 단일언어 사용자끼리 혼인을 누적함으로써 결과한 것이다. 전근대의 유럽은 귀화와 정복, 통합과 분할에 의해 혼혈(混血)의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일단 내집단에 포함되면 서로의 ‘처지’에 쉽게 동류하는 의식이 생긴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금을 내고,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그러나 외집단에 대해선 방관하고 외면한다. 국제결혼한 외국인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는 한국 사회의 외집단에 위치하고 있다. 외집단에서 내집단으로 가는 한국 사회의 장벽은 두껍고도 높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가옥 구조에 담(壁)을 빼놓을 수 없다. 높고 두껍다. 반면 미국이나 선진국은 담이 없거나 형식적인 경계표시에 불과하다. 문화인류학자들은 담의 높낮이를 외집단에서 내집단으로 들어오는 경계의 의미로 풀이한다. 즉 내가 모르는 타인과 내가 속한 친지(親知) 사이의 친밀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안과 밖의 이동이 자유롭고 경계나 문턱이 얕은 사회는 ‘열린 사회’다.
 
  이어령 전 장관은 “단일민족인 우리나라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살았기에 ‘공동체 과잉’이었다”고 말한다. 남보다 도드라져도, 못나도 곤란하다. 모든 인간을 ‘집단(集團)인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평준화 사고’의 동질성이 우리 사회의 무의식을 지배해 왔다. 지나친 동질성이 독(毒)이 됐다는 얘기다. 이 전 장관은 이런 말도 했다.
 
  “미국도 그렇고 중국만 해도 50개 인종이 있는데, 인종이 많으니 공동체를 주장합니다.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사니까 그렇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다 같은 사람들이죠. 그러니 동질성 과잉에서 나오는 피해가 오히려 컸다고 봐요.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잖아요. 가족 다음에 바로 나라가 나와요. 집 너머에 동네라든지, 마을이라든지 그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수신제가’ 다음에 바로 ‘치국’으로 넘어가요. ‘국가’라는 말에 ‘집 가(家)’를 쓰듯이 집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공동체의 한 체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6·25사변에서 버틴 건 국가관이 아니라 가족관이었죠. 내 자식, 내 남편을 위해 싸운 겁니다.”(2010년 5월 ‘양화진 목요강좌’)
 

 
  ‘名譽白人’과 인종차별
 
신윤복의 <미인도>. 쌍꺼풀이 있고 콧대가 선 오늘날의 미인상과 크게 다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스스로 ‘명예백인(名譽白人)’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西歐) 백인을 흉내 내려 한다는 것이다. 몇 해 전 기자와 만난 김창준(金昌準) 전 미연방 하원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 기업들은 백인 우월주의가 몸에 박혔다”는 것이었다. 뜻밖의 말이었다.
 
  “한국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해 파트너를 택할 때 교민은 무시하고 백인 미국인부터 찾습니다. 재미교포가 세운 법인도 있는데 무조건 백인 회사만 찾으니, 그게 한국인의 백인 선호이자 자기 동포 무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과거 한국의 가발을 사주었던 재미교포들에게 한국 기업들이 혜택은 못 줄지언정 동등한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인의 미(美) 기준도 서구화됐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과 오늘날 미스코리아 얼굴에서 공통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쌍꺼풀이 두껍고 콧대가 높으며 볼륨감이 있는 몸매는 서구 백인 여성을 연상케 한다.
 
  지난 8월 14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한(訪韓)했다. 순교자 124위의 시복미사를 위해 4박 5일간 머물렀는데 천주교의 한국교세(敎勢)를 감안할 때 미디어와 한국인의 환영 열기는 놀라움 자체였다. 기독교나 불교의 교세가 천주교에 못 미친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는 100만명의 신도가 몰렸고 국내 공중파가 생중계했다.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에는 100만명의 신도가 몰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를 얘기하며 “여러분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모든 한국인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헌신적인 모습 또한 여러분 가운데서 확인하기를 바란다”는 범종교적 메시지를 보냈다. 신자만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를 위무(慰撫)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만약 교황이 아프리카 흑인이었다면, 혹은 아시아의 네팔·방글라데시 출신이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인 전체의 환호를 받았을까? 천주교 잡지 《야곱의 우물》 10월호 교황 방한을 회고하는 특집기사에 이런 표현이 실렸다.
 
  <…방한 기간 동안 교종(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신자와 국민을 보면서 나는 대중스타에 열광하는 팬덤(fandom) 현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팬덤은 원래 교회에 헌신적인 사람을 뜻하지만, 지금은 대중스타에 빠져든 이를 뜻한다.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팬덤을 사회변화에 따른 대중문화의 산물로 이해한다.
 
  공교롭게도 지난 10월 초 UN 인종차별 특별보고관(무투마 루티에레)이 한국을 찾았다. 흑인인 그는 UN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할 목적으로 국내 인종차별 현황을 조사했다. 일주일간의 조사를 마치고 제네바로 돌아간 뒤 “한국에서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교육과 인식개선을 통해 정부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백인 추종과 이주 외국인 차별은 한국인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일지 모른다. “한국인이 백인 노릇을 하려는 것은 산업시대의 찌꺼기, 지식경제의 헛다리를 잡고 있는 것”(이어령)은 아닐까.
 
한국인의 ‘白人 추종’ 의식
 
식민지 경험한 약소국의 열등의식?

 
  흔히 인종차별의 가해자는 백인이고 피해자는 유색인종이라는 관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차별은 모든 관계 안에 다 숨어 있다. 따지고 보면, 백인 추종은 한국 사회만의 특징도 아니다. 오랜 세월 전쟁과 억압을 경험한 약소국들의 열등의식일지 모른다.
 
  약소국 민족들의 특징이 사대주의다. 동국대 철학과 황필호(黃弼昊) 명예교수는 “한국의 경우 천(天)→천자(天子)→임금→부친으로 이어지는 경천(敬天)사상, 욕망을 극소화시키려는 도가(道家)사상, 중국을 중원(中原)으로 존경하고 우리나라를 동이(東夷)라고 보았던 유교(儒敎)사상의 결과가 사대주의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비약하자면 한국인은 ‘망아적(忘我的)’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망아적이란 ‘나’를 벗어나 어떤 커다란 세계에 몰입하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 숱한 외침을 겪은 한국인에게 외세는 무시무시하고 때로 관대한 절대자였으니, 나를 버리고 현실을 왜곡시켜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외세는 절대적 복종과 외경의 대상이었다. ‘인종(忍從)과 순응과 저승·미지의 운명(심리학 용어로 無意識)에 대한 희망과 신뢰, 권위자에 대한 외경 등을 한국의 전통사회가 미덕으로 키워왔다.’(이부영, <한국인 성격의 심리학적 고찰> 중에서)
 
  황필호 교수의 논문 <한국인의 성격에 대한 종교학적 고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잘난 체하면 무조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잘나도 못난 체함으로써 안주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서 잘난 사람일수록 자기를 비하시키고 겸손하면 남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세계는 궁극적으로 흑백의 다양한 인종이 이합집산하는 ‘무지개 인류’를 염원하지만 피부색 차이와 국가 간 경제력 차이, 인종차별은 상관관계가 높다. 지난 9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경제력에 따라 인종차별하는 나라?’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서구권 국가와의 관계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인종적 단일성보다는 경제적 기준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이 ‘경제력에 따라 국가순위를 매겨 미국과 영국은 본받아야 할 나라로 추앙한다’는 것이다. 또 ‘소수 인종을 묘사하는 미국 문화에 노출되면서 한국인의 의식 속에 인종차별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가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미국 문화를 한국인이 (미디어를 통해) 내재화했다기보다, 외집단을 배제하려는 한국 사회의 내집단 동류의식 때문이 아닐까.
 
  조선족, 동포도 외국인도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경기도 안산 단원구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의 명절음식을 받아가고 있다.
  원래 ‘다문화’라는 말은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히고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를 뜻한다. 주류나 비주류 문화 간 갈등이나 차별이 없다는 의미. ‘한류(韓流)’의 나라 한국처럼 주류문화가 완강한 사회에서 다문화란 말은 원뜻과 거리가 멀다. 그저 소수자의 ‘작고 다양한’ 문화일 뿐이다.
 
  소수자의 문화가 한국 사회의 벽을 단시간에 뚫기란 쉽지 않다. 한국은 겉으로 보기엔 자격과 기능, 실력을 중시하는 능력 사회지만 깊이 들어가면 여전히 동향(同鄕), 동창(同窓)과 같은 연줄이 작용하는 사회다.
 
  은근히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친한 사람과 싫은 사람, 동향과 타향을 따로 구별하고 그들에 대한 태도도 각기 다르다. 이웃을 일관되게 대하지 않고 친소(親疎)에 따라 다른 잣대로 대한다. 황필호 명예교수는 “한국인은 보편적 원칙보다는 특수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한다”고 꼬집는다.
 
  “친소를 확연히 구별하려는 분파주의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 인정과 의리의 개념입니다. 인정이 여성적이라면 의리는 남성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인정과 의리는 다 같이 자신이 속해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것입니다.”
 
  같은 피를 나눴지만 중국동포(조선족)나 탈북자에 대한 인정과 의리의 시선은 차갑다. 이들은 아직 한국 사회의 내집단 밖에 머물러 있다. 한반도라는 단일지역에서 살아온 ‘지역 공동’의 위력이 ‘혈연 공동’의 위력보다 크다는 의미일까.
 
  중국동포 김범송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외대에서 강의를 하다 2011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현재 중국 법인 포스코다롄(大連)강철에서 대외부사장으로 근무 중이다. 김 부사장은 중국 《흑룡강 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피부색이 다른 결혼 이주민과 그 자녀가 대상이고, 대다수 중국동포는 ‘동포’도 ‘외국인’도 아닌 차별대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에 장기체류 중인 중국동포가 60만명을 상회하지만 ‘한민족’으로 포용되기보다 ‘불법체류자’나 ‘돈 벌러 고국에 온’ 염가(廉價)의 외국인 노동자로 취급받고 있어요. 중국동포와 한국인의 관계는 경이원지(敬而遠之·공경하면서도 가까이하지 않음)로 분열과 불신의 파열음이 커져가고 있어요. 서로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아 흡사 ‘이혼을 앞둔 부부’를 방불케 합니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인이 자신을 깔보거나 무시하지 않는지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약자의 입장에서 ‘관계효율’을 따진다. 이런 갈등관계는 상호불신의 벽을 높게 만든다. 또 한국인들은 중국동포들이 이윤만을 좇을 뿐 한국 사회에 희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북한과의 관계설정도 모호하다고 여긴다.
 
  —중국동포가 한국 사회 내집단에 안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찌 보면, ‘치부(致富)의 기회’를 제공한 한국 정부에 고마운 마음을 지녀야 하고, 한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고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해요. 한국 법규를 준수하고 사회질서를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최근 중국동포들이 나빠진 이미지 개선을 위해 스스로 봉사단체를 만들어 고국의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을 돕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이란 점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향후 20년 뒤 한국 내 중국동포의 위상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적어도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해 중국동포들이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요. 남과 북 모두와 ‘절친한’ 중국동포가 한국 기업의 대북 진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중국동포들이 거주하는 옌볜(延邊)은 북한의 나진·선봉 특구와 닿아 지정학적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향후 중국의 GDP 규모가 미국을 넘어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되면, 중국동포의 위상 역시 계륵(鷄肋)의 존재에서 필수불가결의 지위로 달라질 겁니다.”
 

 
  민주주의 가치관 부정하는 유럽의 이슬람 이주민
 
‘히잡(이슬람식 머리 가리개)’을 쓴 터키 여성(가운데)이 자녀들과 함께 베를린 시내를 걷고 있다.
  이주 외국인 노동자나 중국동포,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스며들지 못하면서 그들끼리 집단거주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할 뿐 한국 사회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2, 7호선 대림역과 7호선 남구로역 주변, 경기 안산·부천·시흥·화성·포천 등 공단지대가 대표적인 거주지다. 전국에서 외국인 인구가 많은 10대 시·군·구 중에서 1위가 안산 단원구 원곡본동이다. 단원구 초지동은 7위, 원곡1동은 8위, 선부2동은 10위다. 올해 처음 공개된 읍·면·동별 조사결과를 분석하면, 안산 단원구 원곡본동(2만9726명, 주민등록인구 대비 89.4%)에 외국인 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 집단지는 기존 지역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인=한남동’ ‘프랑스인=서래마을’ ‘일본인=동부이촌동’으로 상징되는 이미지와 천양지차다. 폭력과 상해, 절도, 무단횡단, 쓰레기 투기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빈번하다. 치외법권 지역처럼 행정력이 못 미친다.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2221명이던 외국인 피의자가 올 1~7월까지 월평균 2417명으로 늘어났다. 살인 48건, 강도 54건, 강간 282건, 절도 1063건, 폭력 5087건 등이다. 국적별로는 중국, 베트남, 미국, 태국, 필리핀 피의자가 많았다. 외국인 조직폭력배가 국내에 잠입해 세력을 키운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 사회의 내집단에 스며들지 못한 채 동떨어져 집단을 이루는 이들에게 유럽의 실패한 이민정책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유럽연합(EU)으로 체제가 바뀐 뒤 유럽은 동유럽과 터키는 물론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등지에서 대거 이주민이 몰려들었다. 문제는 이슬람과 같은 이질문화에 대한 ‘소극적 관용’을 원칙으로 하던 유럽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연세대 국제대학원 모종린(牟鍾璘) 교수는 “2010년 독일 메르켈 총리, 2011년 영국 캐머런 총리, 같은 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이 이민정책이 실패했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메르켈 총리는 ‘1960년대 초부터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를 불러들였고 지금 그들이 독일 땅에 살고 있다. 다문화 사회를 구축해 공존하자는 그 접근법은 실패했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어요. 틸로 사라친(Thilo Sarrazin) 전 독일 중앙은행 이사는 ‘국가에 의존해 먹고살면서도 이 나라를 부정하고 자녀교육에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끝없이 머리에 히잡을 쓰는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터키인들은 높은 출산율로 독일을 점령하고 있다’ 말하기도 했고요.”
 
  유럽은 이민자를 불러와 노동력을 대체했으나 인종 차별주의와 극우주의가 일어나고 반(反)이민주의를 표방한 퇴행적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베를린자유대 박성조(朴聖祚) 종신교수는 “유럽 각국의 통합 노력은 정치인들의 문제의식이 얕고 아직은 이주민의 일방적 순응 정도로 이해하는 수준”이라며 “이주민 역시 유럽의 언어에 익숙지 않고 대개 자기네들끼리 거주하며 현지어 습득 필요성도 못 느낀다. 젊은이들은 민주주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이슬람의 규범을 따른다”고 말했다.
 
  인종이나 가치관의 충돌은 어떻게든 풀 수 있지만 종교 간 갈등은 양보가 불가능하다. 독일, 유럽과 같은 이민갈등이 한국 사회에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한국처럼 국제결혼과 외국인 노동자의 이주가 활발한 대만과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동아시아의 국제결혼과 가부장제·同化주의·국가주의
 
  한국이민학회장을 역임한 배제대 공공정책학과 이혜경(李惠景)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 대만의 국제결혼을 연구해 왔다. 국제결혼과 이민에 따른 다문화 갈등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대만도 겪고 있는 공통 현상이다. 1990년대 초(超)국가적인 결혼중개업체가 한국과 대만에 등장할 때 일본은 이미 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안정화되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일본은 1970년대 이후 3500명 수준이던 ‘외국인 신부’가 1980년대 초 5000명을 넘었고 90년에는 2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했다.
 
  국제결혼 후발주자인 대만과 한국도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 교수는 “한국·대만 국가 모두 1990년대 중반에는 중국 본토(대륙 여성, 조선족)의 신부 바람을, 2000년대에는 베트남 신부 바람을 겪었다”고 했다.
 
  “대만은 한국에 비해 국제결혼 비중이 더 심각했어요. 그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대만 여성의 지위가 한국보다 더 낫기 때문에 취업여성의 독신선호, 결혼연기 현상이 한국보다 심각했기 때문이죠. 전체 결혼 건수에서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전만 해도 30%를 넘었고 이후엔 20% 정도입니다.”
 
  현재 한국과 대만 양국 모두 여성 결혼 이민자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집단은 중국인(한국에서는 중국동포 포함)과 베트남인이다.
 
  “한국은 최근까지도 동남아 여성과의 결혼이 부각되고 있지만 대만은 다릅니다. 2005년 대만의 교육부 차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호주·뉴질랜드·미국·캐나다는 고급 이민자를 유입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지역 교육청장에게 (동남아 아내들이) 아이를 못 낳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2006년 4월 대만의 한 국회의원은 베트남 여성들이 월남전 당시 고엽제 살포로 장애아를 출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고요. 물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런 발언은 인종차별적이어서 많은 논란이 됐어요.”
 
  한국과 일본·대만의 국제결혼과 노동자 이주현상은 동북아와 동남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인적·물적 교류와 자본·노동력이 이동하고 ‘신분상승(marry up)’을 꿈꾸는 국제결혼 여성의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하다. 그 결과, 한국 사회를 지배한 단일민족 신화가 무너지고 있고 동아시아 간 경계와 무리짓기의 정체성도 변하고 있다.
 
  또 여성이 국제결혼을 통해 자국보다 소위 ‘잘사는 나라’로 이동하면, 자국에 남은 하층계급의 남성은 자국에 비해 경제수준이 ‘더 낮은’ 나라의 여성을 배우자로 택하는 국제결혼의 단계적 이동(step-migration) 현상이 반복돼 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의 말이다.
 
  “오늘날 한국·일본·대만의 일부 여성이 결혼을 연기하거나 기피하고, 다른 일부는 선진국 남성을 찾아 떠나며, 남은 하류층 남성은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신붓감을 찾아왔어요. 또 중국 여성이 빠져나가면서 중국의 농촌 남성들은 탈북여성이나 미얀마 등 더 가난한 지역에서 신붓감을 찾게 되는, 국가의 경제수준에 따른 연쇄이동 현상이 나타났어요.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향후 중국 남성들이 더욱 본격적으로 신붓감을 찾게 될 경우 규모 면에서 엄청난 파장이 예상돼, 향후 중국의 국제결혼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큰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의 국제결혼은 아시아의 가부장제, 동화(同化)주의, 국가주의라는 3가지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다”며 “일본과 대만·한국은 양성평등을 지향하나 아직 많은 영역에서 가부장제적인 경향이 남아 있고, 국제결혼의 증가로 ‘다문화주의’ 담론이 확산되고 있으나 사회통합 정책은 힘을 못 쓰고 있다”고 했다.
 
  또 동북아 3개국은 단일민족 신화를 토대로 성장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나라다. 그러나 외국인이 몰려들면서 국가 정체성과 ‘혈연 공동’의 사고가 흔들리고 있다. 핵가족으로 가족 성원이 줄고, 무자녀 가정이 증가하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도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거칠게 말해, ‘아는 사람끼리’의 내집단 사회에서 ‘낯선 이웃들’ 간의 사회적 관계로 한국 사회의 틀도 넓어지고 있다.
 
 
  臺灣 정부, 중국 본토 여성의 이주에 공포감 느껴
 
대만에서 이뤄지는 국제결혼의 70%가 대만 남성과 중국 대륙 여성 사이에서 이뤄진다.
  기자는 대만과 일본의 국제결혼을 연구한 학자에게 몇 가지 심층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김미란 HK교수는 대만 사회의 국제결혼 흐름을 한국과 비교하는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김 교수는 “대만의 국제결혼은 2개의 트랙으로 진행됐는데 1987년 대만의 계엄(공산당 敵對)해제를 전후로 나눌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계엄해제 이후 중국 대륙 여성과 대만 남성 간 결혼이 성사되면서 현재 국제결혼의 70%는 양안(兩岸·중국 대륙) 여성과 대만 남성 사이에서 이뤄집니다. 물론, 계엄해제 이전에는 주로 베트남·인도네시아 위주의 동남아 여성들이 대상이었고요. 언어, 문화적 차이, 전쟁의 상흔(베트남 전쟁 이후 고엽제 후유증에 따른 기형아 출산 문제) 등으로 급속하게 대륙 출신 배우자로 국제결혼 대상자가 바뀌었어요.”
 
  현재 양안 여성의 대만 이주로 동남아 여성은 배우자가 아니라 식모나 간병인 같은 ‘가사도우미’로 전락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대만 사회의 경우 한국처럼 ‘피의 순수성’ ‘혈통 오염’이라는 인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대만은 이주 경험이 풍부한, 한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포용력이 큰 사회입니다. 대만의 소수민족들도 실은 중국 대륙에서 명(明)나라 말기 이후에 시차를 두고 대륙 남방 지역에서 옮겨온 이주자들이기 때문에 대만의 이주자들은 넓게 보면 ‘한자권 문화(華人사회)’로 포섭될 여지가 있는 집단들이란 뜻입니다.”
 
작년 10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고려인 동포, 중국동포 포용을 위한 대축제’에서 참석자들이 동포들의 취업 제한 철폐, 자유 왕래 허용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륙 출신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륙처녀(大陸妹)는 값싸게 사온 여성’ ‘사랑 없이 결혼한 여성’이란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양안 여성의 대만 이주가 급증하면서 지금은 ‘이주 규제’ 대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오히려 동남아 여성보다 까다롭게 대한다. 왜 같은 핏줄인데 규제 대상이 됐을까.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김 교수는 “‘친대륙 성향’에 대한 대만 사회의 공포감이 존재한다”고 했다.
 
  “향후 중국과 흡수 통일되거나 대만 기업의 대륙 이전에 따른 경기침체 장기화와 박탈감 등이 작용합니다. 대만 정부는 현재 대륙 출신 여성 배우자의 국적(國籍) 부여를 6~7년 대기토록 규정했고 국적을 획득하기 위해 평균 10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반면 동남아 이주자의 국적 취득기간은 4년 이내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취득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동남아 출신 아내를 둔 대만 가정에 대한 정부의 통합 노력은 어떨까.
 
  “대륙 출신 어머니를 둔 이주 가정의 자녀는 학교에서 언어상의 장애를 느끼지 않아요. 반면 동남아 출신 이주 가정의 자녀는 경제적 문제로 돌볼 여유가 없어 학습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해요. 그래서 학교마다 방과 후 어머니자원봉사단을 조직하거나 교사가 학습부진아를 가르치도록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일본도 ‘다문화 共生정책’ 답보
 
  일본은 한국과 대만보다 앞서 이주 외국인을 받아들였다. 1970년 이전의 일본 내 외국인은 재일 한국인과 재일 대만인이 전부였다. 일본도 한국처럼 ‘단일 민족주의’ 신화가 내재한 나라다. 그러나 경제성장으로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이 많아진 1980년대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문화’란 표현도 이때 등장했다.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이지영 전임연구원의 말이다.
 
  “1980년대 말부터 일본 학계에서 먼저 ‘다문화 공생’이란 용어를 써왔고 90년대에는 각 지자체마다 다문화 공생과 관련한 조례와 과(예를 들어 ‘다문화공생추진과’)가 생겨나거나 기존의 조직을 재편해 왔어요.”
 
  1990년의 ‘출입국 관리 및 난민 인정법’ 개정으로 일본계 브라질인 정주자의 체류 자격이 주어지면서 외국인들이 더욱 증가하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은 경제난을 이유로 1893년 과테말라를 필두로 1897년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로 집단이주를 장려했다. 이 같은 이민 1세대 후손들이 80년대 이후 일본으로 ‘환류(還流)’하면서 외국인 이주가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국제결혼은 1980년 77만여 건 결혼 가운데 0.9%(7261건)에 불과했지만 2006년에 6.1%(4만4701건)로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이 UN 등 국제기구로부터 ‘인신매매 목적국’으로 지목되면서 인신매매 근절 차원의 위장 국제결혼에 대한 수사가 강화돼 최근 10년간 국제결혼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연구원은 “다만 한국처럼 ‘다문화 가족’이라는 말은 없고 ‘국제결혼 가족(가정)’이라는 용어를 쓴다”며 “다문화 가족은 현상적으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튀기’나 ‘혼혈아’라는 뜻의 아이노코(あいのこ)란 말도 거의 쓰지 않는다. 인종차별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신 다문화 자녀를 영어식 ‘하브(half)’라고 부른다. 일본 역시 한국과 대만처럼 현재 다문화 2세 자녀의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자체의 ‘다문화 공생정책’도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답보상태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연구원의 말이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공교육 내에서 일본인 자녀와 동등하게 처우를 받아요. 단,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이지메’ 대상이 되거나 정체성 문제로 사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는 ‘후토코(不登校)’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러나 제도적 차원의 지원은 없고, 각 지자체의 교육위원회별로 학교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어요. 또 각 학교마다 상담 위주로 대응하고 있지만 미흡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재일교포 차별에 대해 이 연구원은 “‘자이니치’ 혹은 ‘자이니치 간코구진’란 말이 쓰이는데, ‘자이니치’는 단순한 그룹의 지칭이나 일본인과의 차이보다는 차별적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어요. 최근 일본의 ‘자이니치의 특권을 용인하지 않는 모임’이라는 우익단체의 시위가 UN으로부터 ‘인종차별 집회’로 규정돼 시정을 권고받은 일도 있어요.”
 

 
  移民强國이 되는 길
 
일본의 다문화 공생(共生) 포스터. 외국인과 국제결혼한 가족에 대한 정책과 예산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인구의 3.1%(156만명)가 외국인 이민자다. 외국인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나라다. 2000년에 21만명에 머물렀던 외국인 인구가 2012년 141만명, 올해 156만명으로 늘어났다. 5%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를 떠올리면 앞으로도 이민을 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민의 확대는 선진국 사례를 봐도 불가피하다. OECD 국가의 평균 외국인 비율인 8.6%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외국인 비율은 OECD 국가 중 일본, 슬로바키아, 멕시코, 폴란드 다음으로 가장 낮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이 모두 ‘이민강국’이란 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은 전문직 이주자들의 나라고, 한국은 저숙련 이민자들의 귀화국이다. 《이민강국》의 저자인 연세대 모종린 교수(국제대학원)는 “중요한 것은 이민자 규모와 구성이 아니라, 이민에 대한 개방적 인식, 이민의 실용적 활용, 이민의 지속 가능성이 이민강국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이민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사양산업과 3D 업종 분야를 지원하는 이민정책에서 벗어나 성장산업을 지원하는 이민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하버드, 스탠퍼드 등 세계 명문대학과 애플·구글 같은 기업은 세계 모든 나라의 인재를 유치합니다. 한국의 인재만을 고집하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현재 한국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10만명의 외국인 유학생 중 겨우 500명 정도만 국내 기업에 취직하고 있다고 한다. 모 교수는 “한국 내 외국인 인력 약 150만명 중 중국동포, 노동자, 결혼 이주자, 외국인 학생을 제외하면 국내 외국인 전문인력은 약 5만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그중 영어강사(3만명)를 빼면 순수 인력은 2만여 명에 불과하다. 그는 “전문직 외국 인재에게 한국은 매력 있는 나라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뭘까. 한국의 조직문화와 혈연적 민족주의, 국내 중심적 사고방식 등을 꼽을 수 있다.
 
  “외국 인재가 조직의 CEO가 될 수 있는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전에는 한국이 글로벌 인재의 허브가 되기 어려워요. 한국의 이민 논의는 다문화 사회 실현에 치중돼 정작 중요한 이민자 확대 논의는 부족합니다. 이민을 국가경쟁력 강화의 자산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과 대만, 일본의 이민정책이 동아시아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세 나라 모두 이민 폐쇄국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폐쇄적이고 대만이 가장 개방적이라 이해합니다. 결혼 이주가 동아시아 정체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단지 양방향 결혼 이주가 지금보다 대폭 늘어나야 의미 있는 정체성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우리나라의 이민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국의 이민 논쟁은 극도로 감정적이고 단순히 ‘좋다’ 혹은 ‘싫다’로 호불호(好不好)가 갈립니다. 또 이민자 통제 자신감을 상실한 것도 걸림돌이죠.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으나 정부는 뾰족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어요. 이민자 통합, 불법체류자 통제에 실패하면 적극적으로 이민을 확대하기 어렵습니다.”
 
  모 교수는 ‘유럽의 이민정책’을 실패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유럽 국가가 이민에 따른 사회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지만, 이민의 혜택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한국은 이민자 150만명을 추가로 받아들여 국민소득을 현재 2만3000달러에서 4만 달러로 늘리고, 그 대가로 어느 정도 사회적인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인구 부족을 감내하면서 2만 달러에 머물지만 이민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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