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해외포커스

아베의 1人 獨走시대가 열렸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아베는 戰後 가장 강력한 리더, 2018년까지 집권 가능
⊙ 오부치 유코, 고이즈미 신지로 등 자신의 아바타들을 총리로 만들면서 킹메이커 역할 할 것
⊙ 리버럴 성향의 《아사히신문》, 위안부 기사 誤報 인정 후 올 公採에 도쿄대 출신 손꼽을 정도로 몰락
⊙ 신문·방송·官界 등에서 反아베 세력은 일제히 몰락

劉敏鎬
⊙ 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右向右’라는 일본인들의 뜻을 반영한 아베 일본 총리는 2018년까지 장기집권할 것으로 보인다.
  이웃 일본의 변화가 엄청나다. 워낙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제대로 주워담을 수도 없을 정도이다. 동에서 서에서 번쩍거리며, 동시다발적으로 터진다. 두 눈을 뜨고 있다고 전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한 눈앞에 나타나도 그대로 흘려버린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일본의 변화를 한국과 무관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해 주듯 일본이 움직일 때, 한반도도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하지만 일본이 크게 변할 때 한반도의 지식인 대부분은 그들을 무시했다. 눈을 감은 적도 있지만, 두 눈을 뜨고 하대(下待)하기도 했다. 이것이 한국의 대일관(對日觀)이다. 존 F. 케네디 전(前) 미국 대통령은 말했다.
 
  “국내 정치는 우리를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러나 외교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
 
  일본의 엄청난 변화는 지난 9월 3일 이뤄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조각(組閣)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성 장관 5명을 기용하면서 국민적 지지율이 60%로 올라갔다. 필자는 제2기 아베 내각을 보면서 현재 벌어지는 일본의 변화가 얼마나 큰 그림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절감할 수 있었다.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본 일본의 행보(行步)를 제2기 아베 내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10년 앞의 행보라는 점에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생각도 있을 듯하다. 지구상에서 5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의 경우 1년 앞을 내다볼 수 있을까? 아프리카나 혁명으로 날과 밤을 새우는 나라가 아닌 이상, 정치적 안정이야말로 한 나라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정치가 안정될 경우, 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의 장기적 비전이 가능해진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앞 정권에서 추진된 크고 작은 계획들이 새 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한순간에 말살된다. 한국인이 지난 수십 년간 지켜봐 온 악순환(惡循環)이다. 제2기 아베 내각은 아베가 부르짖는 ‘재생일본(再生日本)’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10년간은 아베 체제가 지속될 것이란 사실을 2기 내각에 숨겨진 ‘코드’를 통해 점칠 수 있다.
 
 
  다나카와 아베
 
  제2기 아베 내각은 아베 1인 독주(獨走)로 나아가는 구도이다. 한마디로 말해 아베를 거스를 인물이 아무도 없다. 아베에 복종하고, 한술 더 떠서 아베의 생각을 120% 실현시켜 줄 충복(忠僕)들만이 포진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황당한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지던 ‘아베 2018년 집권 프로젝트’가 현실로 나타났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제2기 아베 내각을 통해 아베는 전후(戰後) 일본 정치 사상 가장 강력한 리더로 부상(浮上)할 것이다. 1970년대 자민당의 최대 파워로 상징되는 인물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다. 그는 파벌정치의 대부(代父)격인 정치인이지만, 총리 재임기간은 2년 5개월에 불과했다. 록히드 사건으로 옷을 벗은 뒤, 장외(場外)에서 힘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21세기에 펼쳐질 아베의 파워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아베는 장외에서 뛰는 어두운 이미지의 다나카와 다르다. 총리로 있으면서 실질적인 파워를 발휘하는, 정통성을 가진 ‘장내(場內) 파워’에 해당된다.
 
  일본 정치에서 총리 자리는 다수당(多數黨)의 총재가 차지하는 자리이다. 2012년 겨울, 아베가 총리가 된 것은 그해 가을 자민당 총재 경선(競選)에서 총재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차기 총선거는, 중의원 4년 임기가 만료되는 2016년 겨울에 있을 전망이다. 집권당인 자민당의 총재 선거는 내년 9월에 열릴 전망이다. 중의원 총선거가 있기 1년 전에 자민당 체제를 정비해 결전에 임한다.
 
 
  장기집권 길에 들어선 아베
 
  아베는 내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할 예정이다. 내년에 총재에 재당선된 아베가 2016년 총선거를 지휘한 뒤, 곧바로 총리에 재취임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아베를 앞세운 자민당이 다시 압도적으로 승리할 경우, 중의원 총선거는 이후 4년 뒤인 2020년 겨울에 실시할 것이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자민당이 집권내각을 해체하고 총선거에 일찍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민당 규약에 따르면 당 총재는 3회 연속으로 맡을 수 없다. 1회에 최장 3년, 2회 연속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자민당 총재로서 총리에 재임하는 것은 최장 6년으로 한정된다. 아베는 2012년 12월 자민당 총재가 됐다. 연속 두 번 당선될 경우 2018년 12월이 자민당 총재 임기만료 시기이다. 따라서 2018년 12월 이전에 총리도 그만두어야 한다. 자신의 뒤를 잇는 자민당 총재가 당선될 경우, 아베는 총리 자리를 물려준 뒤 자민당 중진으로 돌아간다.
 
  아베는 2018년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후임자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다. 일본 정치 관행상, 현직 총리는 자당(自黨)의 차기 총재이자 후임 총리를 결정하는 킹메이커다. 아베는 2020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을 승리로 이끌 지도자이자 자신을 이을 인물을 차기 총리로 지명할 것이다. 지난 9월 초의 조각은 바로 2018년까지의 아베의 행보는 물론, 아베의 후계자, 나아가 2020년 중의원 총선거에 임하는 자민당 내 권력구도까지 염두에 둔 10년 장기집권 설계도에 해당된다.
 
  2020년까지는 6년이 남아 있다. 6년이 아니라, 최소한 10년을 내다본 조감도라 말한 근거는 무엇일까? 2020년 벌어질 초대형 글로벌 이벤트 때문이다. 2020년 열릴 도쿄(東京) 하계올림픽이다. 2020년 겨울의 중의원 총선거는 8월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 있다. 올림픽이란 것은 치르고 나면 들뜨기 마련이다. 집권여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급상승할 것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뛰고 있다. 일자리가 넘치고 주가(株價)는 상승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 때문에 무역적자(赤字)가 급증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각종 경제지수는 거의 대부분 상승세이다. 아베노믹스만이 아니라, 올림픽 특수(特需)로 앞으로 2020년까지 경기 전체가 살아날 것이다. 자민당 인기도 상승할 것이다. 2020년 겨울에 총선거를 한다고 할 때 자민당의 압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베는 그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다. 아베가 물러나는 2018년 이후 일본 정국은 아베의 후계자, 즉 아베 칠드런(Children)에 의해 유지 계승될 것이다.
 
 
  이시바 前 幹事長에 대한 보복?
 
지방창생상이 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제2기 아베 내각이 왜 10년 앞을 내다본 청사진인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내각 조감도를 보면, 전부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단독질주 체제이다. 필자는 지난 《월간조선》 8월호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官房)장관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봤다. 총리 아베를 절대 넘보지 않는, 그러면서도 아베의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확대시키는 아베의 아바타가 스가이다. 제2기 아베 내각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스가의 유임(留任)에 있다. 스가는 아베의 장기집권 구상을 만든 주역이다. 2018년까지 아베를 일본 지도자로 만들겠다는 얘기를 제일 먼저 꺼낸 인물도 스가이다. 따라서 아베가 스가를 관방장관 자리에 유임시킨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스가는 아베의 적(敵)을 제거한 충신(忠臣)이다. 원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아베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적이었다. 아베를 능가하는 우향우(右向右)의 기수(旗手)이다. 그는 “자위대(自衛隊)를 대신한 국방군(國防軍)이 창설될 경우, 출전(出戰) 명령에 따르지 않는 군인은 사형(死刑)이나 300년 징역에 처해야 할 것”이라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경선 당시 이시바는 1차 결선에서 199대 141로 아베를 눌렀다. 과반수(過半數) 당선자가 없었기에, 2차 결선에 가서야 아베가 이시바를 108대 89로 역전(逆戰)했다.
 
  총리가 된 아베는 이후 정적(政敵) 이시바의 영향력과 위상을 감안해, 당내 2인자 자리인 간사장(幹事長) 자리를 주었다. 간사장은 선거나 정책과 관련된 정치자금을 통제하는 요직(要職)이다. 정치자금을 의원들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파벌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개각에서 이시바는 한직(閑職)으로 밀려났다. 간사장에서 물러난 뒤, ‘지방창생담당상(地方創生擔當相)’이란 희한한 자리에 임명된 것이다. 지방의 인구증진과 경기부양을 담당하는 자리다. 아베는 집권 2년 만에 자신의 최대 정적을 당권(黨權)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아베의 오른팔만 있을 뿐, 자신에 맞설 2인자가 없는 곳이 제2기 아베 내각이다.
 
 
  여성 총리 1순위 오부치 유코
 
차기 총리로 유망한 오부치 유코 경제산업상.
  둘째, 제2기 아베 내각은 2018년 이후 나타날 아베 후계자를 점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후계자를 통해 10년 뒤에도 아베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다.
 
  1973년생 오부치 유코(小淵優子)가 주인공이다. 중의원 5선으로 경제산업성 대신(大臣)으로 발탁됐다. 1998년 총리에 오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의 딸이다. 오부치 전 총리는 일본 내에서 극히 드문, 글로벌 정치인 중 하나였다. 1989년 관방장관으로 있을 당시, 현재 천황의 연호(年號)를 ‘헤이세이(平成)’로 정한다고 내외에 알린 사람도 오부치였다. 20대 이하 일본인들은 오부치 전 총리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헤이세이 연호를 발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총리 시절 낮은 지지율에 부심하던 오부치는 2000년 4월 2일 과로(過勞)로 쓰러졌다. 뇌경색이었다. 한 달 넘게 혼수상태에 있던 그는 그해 5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오부치 유코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향의 보궐선거에 출마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23세였다. 이후 고향에서 승승장구 당선되었다. 2008년 아소 다로(麻生太郞) 내각 때는 특명담당대신으로 임명됐다. 당시 34세로, 전후 최연소 대신이었다. 특명담당대신의 주된 업무영역은 자녀 출산, 즉 인구감소 문제해결이다. 오부치 유코는 대신으로 임명된 지 1년도 안 되어 두 번째 자녀를 출산(出産), 스스로 ‘모범을 보인(?)’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일본 여성 정치인의 7할 정도는 결혼을 안 하거나 자식이 아예 없다.
 
  오부치는 자신의 동료이던 텔레비전 드라마 프로듀서와 결혼해 2명의 자식을 두고 있다. 남편은 한국 텔레비전에도 방송된 일본 원작 드라마 <꽃보다 남자(花より男子)>를 연출한 인물이다. 야심에 불타는 정치인이 아니라, ‘아버지의 돌연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험한 정치무대에 들어선 평범한 여성’이라는 것이 오부치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오부치는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총리 후보자이다. 입각 후 가진 외신 기자회견에서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에서도 여성 총리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공언했다. 본인 스스로의 총리 등극 여부에 관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오부치가 아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베의 아바타들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부 대신정무관.
  오부치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내각에 들어간 인물이다. 일본인들은 시종 가벼운 웃음을 띤 채, 아무 말 없이 일하는 여성을 좋아한다. 너무 예쁘거나, 자신을 앞세우며 말을 많이 하는 여성은 멀리한다. 오부치는 외모도 보통이고, 그나마 외부에 얼굴을 거의 내밀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호감을 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반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 또한 전혀 없다. 최우수 1등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모나지 않고 오래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일본 정치의 생리이다.
 
  아베가 볼 때 애초부터 한계를 가진, 정적이 될 수 없는, 가장 안심할 만한 인물이 오부치이다. 아베는 오부치의 후견인이자, 차기 총리 만들기의 킹메이커로 나설 것이다. ‘여성을 중시하는 아베’라는 이미지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오부치가 아베의 생각을 계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굳이 아베의 생각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아베에 반대할 이유가 없고 오부치 나름대로의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킹메이커 아베가 만들 차차기(次次期) 후계자로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도 빼놓을 수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아들이다. 1981년생으로 현재 내각부(內閣府) 대신정무관(大臣政務官)과 부흥(復興)대신 정무관을 맡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차관급 정도 보직이지만, 자민당 내에서 청년을 대표하는 정치가로 인기가 높다. 항상 수많은 기자가 따라다닌다. 아베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파악할 때, 33세 고이즈미의 코멘트가 반드시 등장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아베에 맞대응할 정도의 거물로 취급되고 있다.
 
  고이즈미는 아버지로부터의 교육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부치처럼 말을 아끼는 정치인이다. 특별히 파벌도 만들지 않으면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원래 아베와 고이즈미 총리는 이념적 동지에 해당된다. 북한에도 함께 가서 김정일과 만났다. 3·11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소 문제로 이견이 있지만, 군사·안보·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대동소이하다. 아들 고이즈미의 생각도 아버지와 거의 비슷하다. 아베가 볼 때 30대의 고이즈미는 자신을 이을 정치적 동지이다. 미혼인 고이즈미는 수려한 외모로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특히 인기를 끄는 정치인이다. 오부치를 잇는 차기 아베 칠드런이 고이즈미이다.
 
 
  《아사히신문》의 위기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8월 5일자 《아사히신문》.
  “《아사히(朝日)신문》에 응모한 도쿄대학 출신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합니다.”
 
  최근 도쿄에서 온 지인(知人)으로부터 들은 일본의 변화 중 하나이다. 《아사히》 기자는 99%라고 해도 될 만큼 도쿄대학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아사히》 기자로 도쿄대 출신이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일본의 지식인,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하고 읽는 신문이 《아사히》이다. 월급도 다른 언론사를 압도한다. 20대 말 기자의 경우 연봉 1000만 엔 정도로, 신문업계 1위에 해당된다. 월급, 지명도, 업무내용이란 측면에서, 일본 최고 인재가 응모하고 흠모하는 곳이 바로 《아사히》이다.
 
  왜 천하의 《아사히》가 하루아침에 일본 지식인들로부터 멀어졌을까? 일본 저널리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날로 기록된, 9월 11일 《아사히신문》의 공식 기자회견을 보면 알 수 있다. 종군위안부와 후쿠시마(福島) 원전 관련 기사에 관한 오보 시인에 이어, 머리를 조아리며 공식사죄에 들어간다. 《아사히신문》 회장과 사장은 이후 두 기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퇴진한다. 발단은 히로시마(廣島) 원폭(原爆) 기념일을 하루 앞둔 8월 5일자 《아사히》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1면을 포함해, 전부 3면에 걸쳐 게재된 종군위안부 관련 기사다. 한국에도 자세히 보도된 것으로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특집이었다.
 
  핵심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을 처음으로 입에 올린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次)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고해성사(告解聖事)에 있다. 위안부 문제가 인권에 반하는 문제이며, 엄연히 존재한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아사히》가 1992년 이래 견지해 온 요시다의 증언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아사히》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이슈화한 신문이다. 일본인들은 한국과 중국에 머리를 굽히도록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아사히》 보도에 있다고 본다. 혐한(嫌韓)·반한(反韓), 혐중(嫌中)·반중(反中)의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아사히》부터 공격한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무심한 사람이라 해도, 보수적인 일본인의 경우 리버럴 성향이 강한 《아사히》를 ‘자학(自虐) 역사관’의 기원으로 해석한다.
 
  이 기사가 나가자 언론 매체 대부분이 《아사히》 공격에 나섰다. 오보(誤報)에 대한 정정(訂正)기사만이 아니라, 사과와 함께 책임자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아사히》의 요시다 증언 보도 때문에 일본이 나쁘게 평가됐다고 말하는 일본인이 7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요리우리(讀賣)신문》 9월 4일자). 종군위안부 존재 여부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한일(韓日)관계 악화의 책임이 《아사히》의 오보에 있다고 보는 사람이 10명 중 7명이다. 일본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7할대의 의견은 극히 예외적이다. 대부분이 무관심하거나 중립적 태도로 답하는 과정에서 5할대를 넘어서는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內憂外患에 처한 《아사히》
 
《아사히신문》은 9월 11일 사과성명을 내고 회장과 사장이 동반 퇴진했다.
  《아사히》에 대한 반감(反感)은 논객, 이케가미 아키라(池上彰)의 칼럼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케가미는 매달 한 번씩 《아사히》에 자신의 칼럼을 싣는다. 《아사히》가 정정보도만이 아닌,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글을 썼지만, 《아사히》에 실리지 않았다. 이케가미의 《아사히》에 대한 절필(絶筆) 소식에 신문·방송이 들끓었다. 9월 6일, 《아사히》가 신문지면을 통해 이케가미 칼럼 문제에 대해 공식사죄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 리버럴의 최고봉인 《아사히》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현재 《아사히》 내부는 중국 문화혁명 수준의 내부분란 상태라고 한다. 이케가미 칼럼 문제와 관련해 평기자 32명이 트위터를 통해 지도부에 항명(抗命)했다. 언론자유의 선봉에 서왔던 《아사히》가 자신에 대한 비판에 귀와 눈을 막고 있다고, 소장(少壯) 기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일본의 신문·잡지·텔레비전 모두가 아사히를 국적(國賊)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일상화된 상태이다. 《아사히》 기자들에 대한 테러 위협도 공공연하다고 한다. 내부에서 흔들리고 외부에서 공격해 오는, 내우외환(內憂外患) 상태가 현재의 《아사히》이다.
 
  이케가미 칼럼소동 직후 만난 일본의 한 텔레비전 기자는 “천하의 《아사히》도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 기업부도도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문 부수가 급감(急減)하는 것도 이유지만, 광고가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리버럴의 주도세력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정년퇴직에 들어가면서 《아사히》 부수가 떨어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광고수주가 떨어지면서 경영난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에 반대하면 살아남을 수 없어
 
  현재 아베 1인 체제는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아베가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면서 반(反)아베적인 요소가 전부 퇴출(退出)되고 있다. 아베에 반대하는 사람은 전부 현장에서 밀려난다. 《NHK》에서 반아베 발언을 하는 사람은 출연이 영원히 정지된다. 관료의 경우 반아베 세력만이 아니라, 과거 민주당과 좋은 관계를 가진 인물들도 대상이 된다. 민주당의 카운터 파트너로 일했던 이유 하나만으로도 한직으로 밀려난다.
 
  일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움직이는 데 익숙한 나라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탈(脫)중국노선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진행은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진다.
 
  2012년 중국의 반일(反日)데모와 일본상가에 대한 방화(放火)사건 당시, 일본인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사태가 조용해진 뒤 하나 둘 중국 땅을 빠져나가는 것이 일본 기업들이다. 미얀마·베트남을 비롯해 최근 일본이 50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약속한 방글라데시가 중국을 대신한 나라들이다.
 
  마찬가지로 아베 노선에 맞추는 일본 내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의 변화는 ‘결코’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퇴출된 인사들이 항의하거나 데모를 하는 것도 극히 드물다. 소리친다고 해도 별 의미도, 성과도 없기 때문이다.
 
  《아사히》에 대한 광고 압박은 이러한 일본적인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사히》는 그 같은 내부 상황을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특유의 ‘공기’를 통해 《아사히》의 상황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다. 가장 민감한 젊은이들이 연봉 1000만 엔의 《아사히》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아사히》 같은 곳이 많아야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을 이해해 주는 기사 때문만이 아니다. 일본의 우향우 공기에 균형을 맞춰줄 정론지(正論紙)가 일본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모두가 우향우 공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알려줄 나침반이 필요하다.
 
 
  《아사히》에 天皇 관련 기사 실린 의미
 
  그러나 그 같은 바람은 언론자유의 출발자인 워싱턴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뒤 《아사히》는 미국 대통령 인터뷰를 하지 못하는 신문으로 전락했다. 오바마는 《NHK》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요미우리》의 인터뷰에는 응하지만, 《아사히》의 인터뷰 요청은 계속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도쿄 본사에서는 사활을 걸고 오바마 인터뷰를 추진하고 있지만, 번번이 물을 먹고 있다. 아베 정권과 《아사히》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미국 국무성이 사전에 차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일본 내 거의 모든 신문·방송과의 인터뷰에 적극 응해왔다. 하지만 《아사히》만은 예외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아사히》를 고사(枯死)시키려는 작전이다. 미국은 그 같은 아베의 생각을 ‘철저히’ 받들어, 《아사히》 고사에 동참하고 있다.
 
  하향길에 접어든 《아사히》의 현황은 보다 강력한 아베 1인 독주를 의미한다. 그나마 아베를 견제하던 비판세력들이 《아사히》와 함께 동반추락하고 있다. 《아사히》의 ‘종군위안부 고해성사’에서 보듯, 자기비판과 함께 입을 아예 다물게 된다.
 
  사실 침묵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우향우 공기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사히》의 현재 모습이다. 9월 9일 《아사히》에 실린, <쇼와천황실록, 격동의 87년(昭和天皇實錄, 激動の87年)> 특집기사는 《아사히》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원래 《아사히》는 천황제에 반대하고 천황 관련 기사를 무시해 왔다. 일본 궁내성(宮內省)이 기획한 특별전에 즈음한 기획기사지만, 히로히토(裕仁) 천황에 관한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 ‘그때 그 시절’의 기사는 《아사히》의 논조에 맞지 않는 ‘이변(異變)’에 해당된다. 천황을 앞세우는 일본의 우향우 공기에 ‘감히’ 맞설 수 없는 것이 《아사히》의 현실이다.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을 통해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아베 1인 독주는 아베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의 우향우 광풍은 정신 나간 일부 극우(極右)주의자가 아닌, 1억2000만 일본 국민의 지지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한국이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은 아베 1인이 아니라, 1억2000만 일본인이다.
 
 
  ‘헤이와보케’에서 탈출한 일본
 
  3·11 동일본 대지진과 2년 전부터 시작된 센카쿠(尖閣)열도를 둘러싼 중일(中日)충돌은 현재 벌어지는 엄청난 변화의 가장 큰 이유이다. 북한 대포동과 핵(核)무기 때문에 인내심을 잃어가던 차에, 대지진으로 수만여 명이 희생되고 센카쿠 충돌이 본격화된 것이다. 센카쿠 문제의 경우 작은 섬 하나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와 상품 수출입을 담당하는 일본 ‘시 라인(Sea Line)’의 맥(脈)에 해당된다. 센카쿠를 잃는다는 것은 중국이 언제라도 일본의 보급라인을 끊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는 동남아시아 석유를 미국이 끊은 데 있다. 똑같은 상황이 21세기 동중국해(東中國海)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로, 전쟁도 불사케 만드는 사건이다. 아베가 총리에 오른 것은 그 같은 위기의식이 팽배하던 때이다. 중국의 위협이 커질수록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의 결속력이 한층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헤이와보케(平和ボケ)’는 일본 국민의 정신 상태를 설명해 주는 유명한 말이다. ‘남에게 안보를 맡기고 평화가 무혈(無血)로 영원히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환상적 세계관’을 ‘헤이와보케’라고 한다. 20세기 일본은 ‘헤이와보케’를 배경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전쟁이나 군사 문제를 미국에 맡기고 섬나라 안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만끽했다. 자위대는 머리가 둔한 멍청이들이나 가는 곳이고, 첨단무기는 스스로가 개발하기보다 돈으로 사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베 등장과 함께 ‘헤이와보케’는 한순간 어제의 흔적으로 돌변했다.
 
  일본이 ‘헤이와보케’에서 탈피한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에 있다. 센카쿠 주변 문제를 기점으로, 보다 큰 그림 속에서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상식이 됐다.
 
 
  중국이 세계경제 1위가 되는 날…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2020년대에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질적(質的)인 면을 논외로 할 때, 전(全) 세계 인구의 6분의 1 정도인 13억 인구의 중국이 세계경제의 주역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중국인은 가난해도 중국이란 나라는 미국을 능가할 것이다.
 
  이미 시작됐지만, 중국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할 경우 일본의 위상은 한층 약화될 것이다. 중국의 일본 왕따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 같은 상황이 곧 닥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20년대 닥칠 중국 주도하의 글로벌 질서가 얼마나 살벌한 것이 될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이미 올여름 미국 IT기업과 자동차 업체를 상대로 한 반(反)덤핑법 위반 벌칙에서 보듯, 무슨 핑계를 찾아내 한순간에 수십억 달러의 벌금을 물리는 나라가 중국이다. 지금은 중국 내의 외국기업 길들이기에 그치지만, 미국을 추월하는 순간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중국식 길들이기가 시작될 것이다. 일본은 그 같은 중국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다. 세계 제1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력(武力)도 강화하면서 중국은 일본을 괴롭힐 것이다.
 
  아베가 가진 특출한 정치력이 2020년대 이후까지의 아베 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국민 대부분이 곧 닥칠 ‘황화(黃禍)’에 맞설 방안으로서 장기집권을 선택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아베는 일본 국민의 기대에 맞추는 아바타에 해당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서서 국민을 지도하는 것은 중국과 같은 정치후진국이다. 일본은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필요 없다. 국민의 뜻에 따라가는 충복이 지도자이다.
 
 
  해병대 창설하는 일본
 
  앞으로 2년 내에 일본도 해병대를 창설할 것이다. 육상자위대 소속하의 군대로 우선 2000명 선에서 출발할 것이라는 것이 워싱턴 군사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미국 국방부는 일본에 해병대의 병력을 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다.
 
  세상 그 어떤 나라도 해병대를 방어 차원의 자위대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국외(國外) 적진(敵陣)에 상륙해 점령하는 군대가 해병대이다. 2020년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 반(反)테러리즘 군대라는 명목으로 해병대 숫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한국이 대중 모바일 수출과 중국인 관광객의 돈에 심취해 있는 동안 일본은 일전(一戰)을 각오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최근 만난 일본인들은 한국을 ‘헤이와보케’의 나라라고 평한다. 북한의 핵 문제는 한쪽 귀로 흘리고, 이미 여러 측면에서 위협이 되고 있는 중국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일본의 ‘헤이와보케’는 현실적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평화주의였지만, 한국의 ‘헤이와보케’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도 잊고 있는 국가적 건망증(健忘症)이라고 분석한다.
 
  미일(美日)은 100년 전 비밀리에 한반도 딜(Deal)인 가쓰라-태프트 밀약(密約)을 체결했다. ‘밀약’이기에 한국이 몰랐고 결국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았다.
 
  사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결 이전까지 비밀리에 이뤄지지 않은 국제조약은 극히 드물다. 비밀리에 체결된 조약이기에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나라나 조직이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 낼 수 있다. 적절한 대응방안도 마련해 낼 수 있다. 눈과 마음을 열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촉각(觸角)을 곤두세웠다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충분히 예상하고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세기 전에 있었던 미일 간의 밀약을 탓하기에 앞서, ‘왜 당시 상황을 정확히 읽지 못하고 미리 막아내지 못했는가’를 자책(自責)하고 또 자책해야 할 것이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의 과실을 찾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한국의 미래는…
 
  아베는 2020년 올림픽을 넘어선 국가설계에 나선 상태이다. 아베 생각에 따르면, 곧 40대 여성 총리가 탄생할 것이다. 일본과 반대로, 한국의 정치는 날이 갈수록 늙어가고 있고, 과거지향적이다. 현재 추세라면, 40대 일본 총리와 60대나 70대 한국 대통령의 회동 장면을 가까운 시일 내에 보게 될 것이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을 경우 내일보다 어제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미국을 누르고 세계경제 1위로 부상할 중국, 만약의 사태에 맞서 해병대까지 창설하면서 국방군 체제를 서두르는 일본….
 
  그 사이에 끼인 한국은 과연 미래를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다듬고 있는지? 21세기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막아낼 만한 전략전술이 한국에 있는지? 반일 슬로건만 무성한 채, 한순간 ‘헤이와보케’ 나라로 둔갑한 2014년 한국의 모습이 먼 훗날 어떻게 평가될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4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