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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본 ‘자위대의 날’ 행사를 가보니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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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오후 7시경,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저(官邸) 정문 앞에서 기념식 개최를 반대하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지난 7월 11일 오후 7시경, 기자가 서울 성북구 주한 일본대사관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변을 경찰 병력이 둘러싸고 있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저(官邸) 정문 앞에서 기념식 개최를 반대하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을 태운 차량이 쫓기듯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20일 전 초청장을 받았던 기자는 일본 특파원 S기자와 함께 관저 출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경찰들이 기자에게 행사 초청장을 요구했다. 초청장을 깜빡 두고 왔던 기자가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는 사이, 기자의 등 뒤에서 “‘자위대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놈들은 대체 누구냐”하는 고함이 날아들었다. 현장의 험악한 분위기를 보니 순간, 지은 죄도 없는데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느라 힘들었지요?”
 
  사실, ‘자위대의 날’은 우리의 ‘국군의 날’에 해당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육군·해군·공군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으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경찰예비대를 만들고 보안대를 거쳐 1954년 7월 12일 현재의 자위대로 탄생한 것이다.
 
  이날 오후 4시30분쯤부터 대사관저 정문에서 50m가량 떨어진 골목에서 기념식 개최에 반대하는 국내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 항의했다. ‘집단자위권 반대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기념식을 중단하고 초청자 명단을 공개하라” “아베 총리는 당장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외치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우익 정치인의 얼굴을 인쇄한 현수막을 찢는가 하면, 과거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旭日旗)’를 불태우려다 경찰에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측은 “서울 한복판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식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일본군의 과거, 현재, 미래의 한반도 진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라고 우려했다. 당초 행사는 롯데호텔에서 열 계획이었으나, 호텔 측이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이유로 지난 7월 10일 대관을 취소하자 장소를 옮겨 진행했던 것이다.
 
  10년 전부터 ‘자위대의 날’ 행사에 참석해 왔던 기자는 이 행사를 정치성을 띠지 않는 ‘군사 외교’로 생각해 왔다. 이 행사가 이토록 시위로 얼룩진 ‘정치 행사’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쉽사리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1년 전 같은 시각으로 필름을 돌려보자. 당시 롯데호텔에서 열린 행사는 일본 정부 대표 자격으로 벳쇼 고로 (別所浩郞) 대사 부부, 육해공 무관 부부들이 외국 무관 등 참석자들을 영접하고, 곧이어 대사의 인사말과 함께 건배로 행사가 끝났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행사가 끝나고, 각국의 무관과 외교사절 등 참석자들은 선 채로 음료와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좀 싱거운 느낌이 들 정도의 행사였다. 우리 같으면 국군의 날 행사에 군가(軍歌) 하나쯤 등장할 것 같지만, 일본 측은 국가(國歌)인 ‘기미가요(君が代)’나 군가를 부르지 않았다.
 
  행사장 입구에는 행사 시작 30분이 지나서인지 벳쇼 고로 대사는 보이지 않았고, F-15J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야마노 마사시(山野正志) 공군무관(대령) 부부가 각각 예복과 기모노를 입은 채 기자를 맞았다. 고토 노부히사(後藤信久) 육군무관(대령), 구로다 마사히코(黑田全彦) 해군무관(대령) 등도 초청객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했다.
 
  일본대사관 측은 애초 국내 정·관계와 경제계 유력인사 등 500여 명에게 초청장을 보냈으나, 대부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산케이(産經)신문》 객원논설위원이 기자를 보더니, “오느라 힘들었지요?”라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경원 학습효과?’
 
자위대의 날 행사에 국방부를 대표해 참석한 김용해 주한무관협력과장(대령). 뒤로 예복을 입은 공군무관 야마노 마사시 대령이 보인다.
  경찰은 이날 행사에 140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했다. 터키와 방글라데시 등 주한 외교사절 수십 명이 참석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 중에는 미군 등 정복 차림의 무관들도 여럿 있었으나, 한국인으로 보이는 참석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주일대사를 지낸 모 장관을 제외하고는 매년 참석하던 외교부 수장(首長)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 개의 홀을 다 돌아도 소위 명사(名士)는 없었다.
 
  군 원로인 백선엽(白善燁) 전 육군참모총장(예비역 육군대장)은 “일본 아베 정권이 위안부와 과거사 문제 등에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 헌법 해석을 바꾸는 편법까지 동원해 자위대를 ‘전쟁할 수 있는 군대’로 바꿔놓은 마당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자위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치인들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한일친선협회장인 김수한(金守漢) 전 국회의장(새누리당 고문)도 불참했으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겠다. 정치인들이 ‘자위대의 날’ 행사에 참석을 꺼리는 것은 일명 ‘나경원(羅卿瑗) 학습 효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인 2004년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 때 장충동 신라호텔에 나타났던 나경원 전 의원이 언론의 공세에 곤욕을 치르면서, 이후 정치인들은 자위대의 날 행사 참석을 터부시해 왔다.
 
  반면, 정부가 이번 행사에 국방부 담당 과장과 외교부 담당 서기관 등 실무자를 참석시킨 것은 일부의 비판도 있었지만, 군사외교 차원에서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용섭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금까지 군사외교적인 차원에서 유관 부서의 부장급(소장)이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냉각된 한일 관계) 상황을 고려해 실무 과장급으로 낮춰 보냈다”며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주최한 일본 내 국군의 날 행사에 일본 무관도 참석하기 때문에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아무도 가지 않는 것은 외교적인 결례”라고 설명했다.
 
 
  최악으로 치닫는 韓日 관계
 
  내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지난 7월 11일 이번 상황을 ‘이례적 사태’라고 표현하며 “한국이 일본을 배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객원논설위원은 지난 7월 11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매년 통상적으로 해왔던 의례적 행사인데, 왜 이것을 그렇게 문제 삼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일본 문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베 정부가 지난 7월 1일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결정하면서 행사의 의미가 180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기존의 안보원칙을 폐기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 전범국(戰犯國) 일본이 군대 창설 기념식을 전쟁 피해국(被害國) 도심 한복판에서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전직 외교관 K씨는 “최근 일본은 미디어나 책을 통해 혐한(嫌韓) 감정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고, 일부에서는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도 나타나고 있다”며 “자위대의 날 행사 관련한 우리의 의사 표현은 일본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라고 말했다.
 
  K씨는 “이번 자위대의 날 행사 파동을 보며, 모든 책임의 근원은 일본 아베 내각에 있다”면서 “2013년 2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취임식 때 참석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망언(妄言)에서 이미 파열의 전조가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정부 특사 자격으로 참석한 그는 박 대통령에게 “남북전쟁을 보는 시각이 미국 남·북부에서 아직도 큰 차이가 있는데, 하물며 한일 간에는 오죽하겠느냐”고 하는 등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K씨는 “아베 정권이 ‘전후 레짐’의 탈각(脫殼)을 꾀하는 과정에서 독일처럼 반성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한, 향후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아베 총리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가 물밑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애쓴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파란 눈의 무관들이 와인잔을 부딪치며 왁자지껄하는 사이, 철저한 ‘이방인’이 된 기자는 20분 만에 자리를 떴다. 일본대사관 무관들과 서기관들이 “벌써 가느냐”고 했지만, 취재할 대상이 별로 없는 상황인데 의전요원처럼 남아 있기도 뭣했다.
 
  나갈 때 보니 현관에 입장할 때 보이지 않던 ‘국교무문(國交無門)’이란 붓글씨 액자가 보였다. ‘나라끼리 사귀는 것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이튿날 외교부의 한 원로급 인사에게 액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일본인들은 ‘국교무문’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먼저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부터 찾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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