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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현장

中東 평화를 향한 ‘NGO’의 超종교 화합운동

종교의 벽을 넘은 예루살렘 평화행진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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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평화운동은 종교를 뛰어넘는 것”
⊙ “세계 종교의 가치관은 75% 비슷”
⊙ 이스라엘 정치인, “NGO 지지 협력 큰 도움”
⊙ 팔레스타인 의사, “원망이 아닌 용서”
2004년 5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중동여성평화회의. 세계평화여성연합 제공.
  2009년 1월 ‘중동의 화약고’ 팔레스타인(Palestine) 가자 지구(Gaza Strip)에 폭탄이 떨어졌다. 폭탄이 떨어진 정확한 지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가자 지구의 민간인 주택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전투기 60여 대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집권당 하마스를 공격했다. 2008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두 달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약 14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지난 5월 11일(현지시각) 요르단 암만 랜드마크 호텔에서 열린 제18차 중동여성평화회의에 참석한 이젤딘 아부엘아이시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의사 이젤딘 아부엘아이시(Izzeldin Abuelaish·58세)는 당일 세 딸을 잃었다. 그의 눈앞에는 조금 전까지 숙제를 하던 딸들이 몸뚱이가 갈갈이 찢긴 채 숨져 있었다.
 
  “하나님, 이스라엘군이 집을 폭격해 내 딸을 죽였어요. 무엇을 잘못했나요?”
 
  폭격에 지붕이 사라진 자신의 집에서 숨진 자식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이젤딘의 모습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Youtube)를 통해 생생하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팔레스타인 출신 의사 최초로 이스라엘 병원에서 일하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울부짖는 이젤딘의 모습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본 많은 사람은 그가 전사(戰士)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짐작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상식인 세상에서 복수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놀랍게도 이젤딘은 용서를 선택했다. 중동 여성 교육을 위한 재단(Daughter for Life)을 설립하고, 자신이 겪은 비극적 현실을 기록한 《그러나 증오하지 않는다(I shall not hate)》를 출간했다.
 
  책은 전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출간됐으며, 한국 역시 2013년에 책이 나왔다. 이젤딘은 2010년 벨기에 정부의 추천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 공중보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팔레스타인 분쟁

 
   19세기 중반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평화롭게 공존했다. 1878년 팔레스타인 전체 주민 44만850명 중 이슬람교도는 88%, 기독교인은 9%, 유대인은 3%를 차지했다. 그러던 가운데,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 땅에 영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유대인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기간(1920~1947년) 사이에 팔레스타인에 유입된 유대인은 39만3887명이었다. 그 결과 1946년 팔레스타인 전체 184만5560명 중 이슬람교도가 58%, 기독교인 10%, 유대인 32%로 인구 비율이 급격히 달라졌다.
 
  유대인이 갑자기 팔레스타인으로 이동한 이유는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의 ‘밸푸어 선언’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 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
 
  1945년 팔레스타인 영토는 2만6323km2였다. 그 가운데 87.5%를 토착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유대인이 소유한 토지는 6.6%였다. 나머지 5.9%는 공유지였다. 압도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차지한 토지가 많았지만, 1947년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56.47%를 유대국가에, 42.88%를 아랍국가에 분할하고 0.65%인 예루살렘을 ‘특별국제관리구역’으로 결정한 ‘결의안 181호’를 채택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이슬람 국가들이 유엔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팔레스타인 측은 분할안을 거부했지만, 유대인은 즉각적으로 유엔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자, 5월 16일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아랍국들이 팔레스타인에 침입하면서 1차 중동전쟁이 시작됐다. 당초 아랍연합국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스라엘의 공세에 아랍연합군은 패전을 거듭했다. 유엔의 중재로 1949년 2월 휴전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되어 1956년 2차, 1967년 3차 중동전쟁이 벌어졌다.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까지 손에 넣었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 전부를 점령했다. 그해 11월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가 채택되었는데, ‘이스라엘은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영토로 물러나고, 그 대신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유엔 결의안을 바탕으로,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1994년 요르단-이스라엘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1987년 12월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네 명이 이스라엘 군용차에 깔려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1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반란·각성을 의미하는 아랍어)가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측의 ‘테러’, 이스라엘 측의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1993년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이에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었다.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서안,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하는 대신 PLO는 무장투쟁을 포기했다. 그러나 무장투쟁을 주장했던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에 반대해 PLO에서 탈퇴했다. 결국 1996년 1월 총선에서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2000년 9월 이스라엘 우익 야당 리쿠드당의 샤론 당수가 이슬람교도들의 제1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무단 침입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확산됐다.
 
  2001년 9월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해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총길이 730km의 분리장벽 건설을 시작했다. 서안과 가자 지구가 고립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점령촌 건설은 확대됐다.
 
  2004년 3월 하마스 지도자 아흐마드 야신이 이스라엘 헬기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2004년 11월 아라파트 수반은 노환(老患, 사망 원인과 관련해 ‘암살’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으로 사망했다.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마무드 압바스를 수반으로 하는 기존 파타당 정부만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다. 2007년 6월 하마스가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서안은 파타당 정부, 가자 지구는 하마스 정부가 통치하는 분리 상태가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2008년 12월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집권하고 있는 가자 지구에 대규모 군사 작전 ‘Cast Lead’를 감행해, 1300여 명이 사망했다(《울지마, 팔레스타인 / 홍미정·서정환》 참조).
 
  갈수록 꼬이는 팔레스타인 사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임시수도인 라말라에 쳐진 이스라엘 분리장벽.
  지난 5월 11일(이하 현지시각) 요르단(Jordan) 암만(Amman)에서 열린 제18차 중동여성평화회의에 참석한 이젤딘은 폭탄이 떨어졌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외치는 그의 발언에 분위기는 고요하고 엄숙해졌다. 그는 “용서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반문(反問)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가능할 것은 없다고 믿는다”며 거듭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동여성평화회의는 세계평화여성연합(WFWP·Women’s Federation for World Peace)과 천주평화연합(UPF·Universal Peace Federation) 공동주최로 5월 9일부터 16일까지 요르단 암만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세계 각국 종교, 정치, 학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행사로 요르단에서 콘퍼런스(학술대회)를 마친 후에, 이스라엘로 이동해 평화 대행진을 펼치는 일정이었다.
 
  팔레스타인 사태는 세계 각국 또는 교황의 평화 중재(仲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맞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평화를 향한 비정부기구(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는 결실을 맺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동여성평화회의 개회식 전경.
  물론 유엔, 유럽연합, 미국 등이 끊임없이 중재를 하고 있음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NGO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그마한 물줄기가 큰 강물을 이루듯 평화를 위한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6월 8일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는 앞에서 손을 잡은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후 바티칸 정원에서 페레스 대통령, 압바스 수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뮤 1세와 가톨릭·유대교·이슬람교 신자 등이 참석한 합동 기도회를 열고,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어린이가 숨졌다”며 “정치 지도자들은 중동 평화 정착을 위한 진정한 용기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종교의 벽을 넘은 예루살렘 평화행진
 
지난 5월 15일 이스라엘 동예루살렘 올드시티(old city, 舊시가지) 자파 게이트 앞에 한국·네덜란드·대만·미국·이탈리아·일본 등 17개국에서 온 종교 지도자와 NGO 활동가 200여 명이 평화행진을 하기 위해 모였다.
  지난 5월 15일 오전 세계 3대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동예루살렘 올드시티(old city·舊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 가운데 하나인 자파 게이트 앞에 한국·네덜란드·대만·미국·이탈리아·일본 등 17개국에서 온 종교 지도자와 NGO 활동가 200여 명이 모였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주요 종교의 성지로 종교 간 갈등의 최전선이다. “아멘(amen), 피스(peace), 살롬(shalom)” 등 각자의 종교로 평화를 기원한 후 이들은 미로(迷路)처럼 복잡한 구시가지를 걸으며 평화행진을 시작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통일교 등 종교 또한 다양했다.
 
  평화행진은 2004년 41개국 여성 526명이 어머니의 힘으로 중동에 평화의 씨를 뿌리자며 예루살렘 성지 일대를 행진했던 ‘예루살렘 여성평화대행진’ 10주년을 기념해 세계평화여성연합과 천주평화연합이 공동주최했다. 세계평화여성연합은 1992년 4월 창설하여, 1997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 NGO 최고 지위인 ‘제1영역 NGO자문기관’ 자격을 얻었다. 현재까지 그 지위를 4회 연속 재승인 받아 160여 개국에 지부와 회원을 두고 있다. 천주평화연합은 2005년 9월 문선명 총재가 뉴욕에서 창설해 세계 154개국에 평화대사들을 임명해 국제분쟁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NGO이다.
 
  이들 NGO 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중동평화운동(MEPI·Middle East Peace Initiative)은 2012년 9월 ‘성화(타계)’한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와 한학자 총재가 1965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이후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 사상을 중심으로 시작한 평화운동이다. 문선명 총재 자서전(自敍傳)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중동평화운동은 종교를 뛰어넘는 것”
 
1965년 8월 중동(Middle East)을 순회하는 문선명 총재(가운데). 당시 문 총재는 이스라엘, 요르단 등을 방문했다.
  <종교와 인종을 앞세워 같은 무리들끼리 뭉치는 시대가 계속되면 인류는 전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미래에는 불교도 넘어서고 기독교도 넘어서고 이슬람교도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나와야 합니다. (중략) 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인들을 향해 세 가지 부탁을 합니다. 첫째는 다른 종교의 전통을 존중하고 종교 간의 분쟁이나 충돌을 힘써 막을 것, 둘째는 모든 종교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며 세계에 봉사할 것, 셋째는 세계 평화를 위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모든 종교 지도자가 참석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종교를 뛰어넘어, 화해를 이루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와 보복이 반복되고 있는 중동에서 그 길은 험난하다.
 
  평화행진의 목적은 무엇일까. 문난영(72) 세계평화여성연합 세계회장은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연합은 6월 3일 문연아(41) 부회장이 새로운 세계회장 겸 한국회장으로 취임했다.
 
  —중동평화운동의 목적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순례의 길은 눈물을 요구하는 인내와 열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의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희생과 돌봄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죠. 어머니의 모성애를 바탕으로 세계를 평화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운동의 성과를 말한다면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주민이 저희와 함께 어울려 노래 부르고, 더불어 먹고 생활하는 하나의 심적 공동체를 이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평화운동을 계속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힘을 믿기 때문이죠.”
 
  —매년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 특히 강조한 부분이 있습니까.
 
  “한학자 총재께서, 현재 이 지구촌은 인종, 종교, 국경 및 계급의 갈등과 불평등, 빈부 간의 많은 차별과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앞장서서 서로 합심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다양한 문제들이 서로 엉켜 있는데, 어머니들이 합심하면 해결될 것으로 믿어요.”
 
 
  실마리 찾지 못하는 중동사태
 
지난 5월 9일 요르단 암만 랜드마크 호텔에서 열린 중동여성평화회의 환영만찬에서 문난영 세계평화여성연합 회장이 환영사를 발표하고 있다.
  모두가 평화를 부르짖지만, 중동 평화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현실적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의 열쇠는 이스라엘 측이 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 경제력이 팔레스타인에 비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무드 압바스 수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하며 “앞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의회 역시 당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지난 4월 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주도로 9개월간 이어져 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이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압바스 수반은 공동정부 구성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결속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앞으로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로 날아오는 모든 로켓포는 압바스 수반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을 압박하고 있어 중동 평화의 길은 더욱 멀어진 상황이다. 평화로 가는 길이 갈수록 멀어지는 시점에 이스라엘 국회를 방문해,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생각을 들었다.
 
 
  이스라엘 정치인, “NGO 지지 협력 큰 도움”
 
5월 14일 이스라엘 국회 크네세트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구축과 화해’ 세미나.
  5월 14일 이스라엘 국회 크네세트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구축과 화해’ 세미나에서 이스라엘 측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중동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핵심 이슈”라며 양측의 화해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당시 세미나에서 주디스 카프(Judith Karp·76·여) 전 이스라엘 법무장관 보좌관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동 평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스라엘에는 분쟁이 있고, 폭력이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분쟁은 종교적, 역사적 이유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계속되고 있어요. 유대인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충격)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긴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트라우마가 세대를 걸쳐서 넘어오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변화와 화해를 원한다면, 양 국민의 심리적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럴 땐 NGO 등 민간단체가 지지와 협력을 해주면 큰 힘이 됩니다.”
 
 
  “세계 종교의 가치관은 75% 비슷”
 
2004년 1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 라말라에 위치한 자치정부 수반 사무실에서 故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과 악수하는 양창식 UPF세계의장. 양 의장은 아라파트가 서거하기 전까지 10여 차례를 만나 예루살렘에 비폭력 학교를 세울 것을 합의했다.
  주디스 카프와 비슷하게, 이스라엘 국회에서 만난 정치인들은 “우리도 평화를 원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분리장벽 등을 세워,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역시 부정적이다.
 
  현실은 어떨까. 과거 야세르 아라파트와 수차례 만나 중동 평화에 대해 논의했던 양창식(61) 천주평화연합 세계의장은 “정치적 화해의 길은 너무 멀고, 우선 종교적 화해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중동의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 국회 세미나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발언했다.
 
  —평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문선명 총재께서 정치적 화해를 위해서는 종교적 화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1970년대부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미국 뉴욕에 신학대학원을 세워서, 각 종단의 학자들을 통해 핵심교리를 비교, 연구해 왔어요. 그 결과 모든 종교의 핵심가치가 75%는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전혀 다르지가 않고 저변에 같은 신념,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문 총재는 이것이 확대되면 세계 3차 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9·11 테러나 이라크 전쟁도 결국 그 근저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이라고 본 것이죠. 이를 막기 위해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해의 길을 찾아야 했는데, 그 진원지가 예루살렘이라고 지적하고 제게 중동 평화를 위한 성지순례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죠.”
 
  —예루살렘의 평화행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예루살렘은 지금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로 분명하게 분할이 되어 있습니다. 실제에 있어 이들 종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 의해 창시된 형제 입장인데 지금은 서로 원수로 싸우고 있고 그 진원지가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동안 이라크 전쟁 이후 크고 작은 세미나, 평화행진 등을 100여 차례 이상 진행해 오고 있어요. 매번 행사 때마다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피스, 샬롬, 살람 알라이쿰(salaam alaykum) 등 평화를 원하는 3대 종교의 구호를 외치며 평화행진을 거듭해 왔습니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평화행진은 2003년 12월에 열렸는데, 2만명이 참여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3천여 명의 종교 지도자, 평화대사, 각종 NGO리더, 여성 지도자, 교육자 등이 참여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1만7천명이 참여하여 중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계적인 평화행진이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
 
  —평화운동의 성과라고 꼽을 만한 것이 있다면요.
 
  “줄기차게 세미나, 평화대회, 행진을 해왔어요. 그러나 아직도 평화를 향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현재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에 끝없이 대립하는 정치권이 아닌 NGO와 평범한 민중의 목소리가 점차 존중받고 있습니다. 더디지만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계속 행진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아랍의 봄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평화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현실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요.
 
  “2000년 9월에 이스라엘 샤론 수상후보의 황금사원 무력 진입으로 발발했던 소위 제2차 인티파다 이후 2012년까지 공식 통계만 해도 유대인 1100여 명, 팔레스타인인 6600여 명이 사망했고, 2014년 4월 말 현재 635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여러 이유로 이스라엘의 감옥에 있어요. 사망은 팔레스타인의 자살공격과 이스라엘의 미사일 보복의 결과입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측면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아요. 단적으로 이스라엘은 875대의 전투기가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습니다. 강자인 이스라엘이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전통적으로 선린(善隣)관계를 유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의 값싼 노동력이 이스라엘 경제에 도움을 주어 왔습니다. 가진 자의 힘이 상대방을 위한 아량으로 베풀어질 때 스스로 무장이 해제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근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 장벽을 세우고 있어요. 팔레스타인은 ‘분리장벽’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시큐리티 장벽’이라고 설명합니다. 8m 높이의 담 약 700km를 만들어서 학교와 이웃이 갈라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있는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도 담으로 둘러싸여 여권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국제법상 팔레스타인의 땅에 이스라엘이 해외에서 들어온 자국민들을 위한 정착촌을 만들어 자신들의 영토를 늘려가고 있는 것이죠. 이는 유엔도, 미국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강자 이스라엘의 보다 전향적인 자세 전환이 필요합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좀 더 국제적인 연대를 하려 합니다. 이미 두 나라가 공존하자는 ‘Two-State Solution’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요. 문제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입니다.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고 지속적인 선린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는 데 국제사회가 공감하고 있어요.
 
  중동에서 초(超)종교 화합운동이야말로 정치적 안정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예수와 마호메트가 서로 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교적인 교리가 인권 위에 서게 될 때 그 종교는 사회악이 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종교, 평화를 위한 종교가 창시자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UPF는 중동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세계적인 NGO운동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이젤딘, “원망이 아닌 용서”
 
  현실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용서’를 통해 탈출구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5월 초 요르단 암만에서 기자를 만난 이젤딘 캐나다 토론토대학 공중보건학 교수는 “원망이 아닌 용서를 해야 한다”며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동여성평화회의를 마치고 기자와 인터뷰 시간을 가진 이젤딘은 중동 평화의 비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은 세계 어디에 살고 있어도 비슷하거든요. 폭탄이 저의 딸들을 죽였지만 저는 분노하지 않고, 현명하게 세상을 향해 말할 겁니다. 용서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믿어요. 세계는 정의와 평화를 원하고 있어요. 무지(無知)와 교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죠. 서로 원망하기 시작하면 결국 원망의 바다에 모두 묻혀버립니다. 원망이 아니라 용서를 해야 되는 것이죠. 여성과 남성은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여성은 분쟁을 해결하는 희망입니다. 여성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사람들은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자신을 믿으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이런 믿음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평화, 안전, 그리고 자유라는 올바른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 행복하게 다함께 살 수 있어요.”
 
 
  NGO가 뿌린 용서와 화해의 씨앗
 
  5월 초 기자가 찾은 요르단 암만의 주요 호텔에는 장갑차가 무장을 한 채 경비를 서고 있었다. 테러 위협 때문이었다. 주요 시설을 드나들 때마다 공항 출국과 비슷한 보안 검사를 계속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국경을 넘어 입국하는데, 거의 반나절이 걸릴 정도로 보안이 엄격했다. 완전무장을 하고 경계를 서는 군인들의 긴장된 표정에서 이곳이 중동의 화약고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테러와 보복을 반복했던 이곳에서 용서와 화해의 씨앗은 과연 누가 뿌릴 것인가. 한국 NGO가 뿌린 씨앗이 용서와 화해로 가는 작은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하며, 기자는 5월 말 예루살렘 텔아비브 공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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