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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세계시장 석권 노리는 일본 방위산업의 실력 ③ 육상무기편

2차대전 후 美기술로 최신예 10式 전차 개발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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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國 기술 도입해 만든 89式 전차… 태평양전쟁에서 美전차의 ‘먹잇감’으로 전락
⊙ 16세기 포르투갈인에게 조총 기술 익혀… K2소총과 유사한 89식 소총 제조
⊙ 미쓰비시중공업·고마쓰, 영토분쟁 대비해 10式 전차와 경장갑기동차 경량화 시도
⊙ 日本製鋼, 세계 최고의 열처리 기술로 99式 155mm 자주포, 10式 전차 砲身 제작
⊙ 日本, 戰後 미국 블랙호크 라이선스 생산으로 헬기 기술 축적해 OH-1 헬기 생산
후지산 부근에서 실시된 훈련에 참가한 일본 육상자위대원. 레이저 스코프가 장착된 소총과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철모 등 첨단 장비로 무장했다.
  《2013년 방위백서》에 따르면, 육상자위대는 전차 740여 대, 장갑차 970대, 지대공 미사일 700기를 보유하고 있다. 5개 방면대(方面隊)와 1개 중앙즉응집단(中央卽應集團)으로 조직된 15만1000여 명의 육상자위대는 일본에 상륙한 적을 본토에서 격파하는 ‘골키퍼’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홋카이도(北海道)에는 전차연대를 보유한 7사단과 2사단을 비롯해 11사단, 5여단이 포진하고 있다. 홋카이도에 정예부대를 포진한 까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홋카이도에는 500대 가까운 전차가 배치돼 있다. 육상자위대 전차의 절반가량, 그리고 육상자위대 전력의 3분의 1이 주둔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중국과의 영토분쟁을 고려해 구형 74식(式) 전차 규모를 약 200대 줄이기로 하는 등 육상자위대 전력을 희생시켜 해·공군 자위대 장비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육상자위대는 주변국에 비해 표면상 전력은 약해 보이지만, 섬나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이다. 최근 양산을 시작한 ‘히토마루’로 불리는 최신예 10식 전차를 비롯해 대부분의 육상자위대 무기체계들을 자국산으로 무장하고 있다.
 


 
  ‘히토마루’ 10式 전차, 세계 10대 전차 중 6위에 랭크
 
2013년 8월 20일 육상자위대 소속 10식 전차가 시즈오카현 히가시후지훈련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일본의 최신 전차인 ‘10식 전차’는 2012년에 실전 배치된 최신예 4세대 전차다. 통상 일본은 무기체계를 개발해 제식(制式) 명칭을 부여할 때 전력화 연대를 표시하곤 한다. 예컨대, 10식 전차는 2010년대, 90식 전차는 1990년대에 전력화했다는 뜻이다. 10식 전차는 90식 전차와는 달리 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를 받을 수 있는 C3I 기능이 들어간다. 10식 전차는 독일의 레오파트 2A6를 모델로 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10식 전차는 기존의 74식 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330여 대가 생산된 90식 전차는 무게가 50t에 달해 운반할 때 차체와 포탑을 분리해 수송해야 했다. 반면 10식 전차는 무게를 44t으로 줄여 운송이 한결 쉬워졌다. 일본이 전차의 경량화(輕量化)를 추구하는 것은 센카쿠 열도 등 분쟁지역에 신속하게 투입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10식 전차는 이라크 대게릴라전의 전훈(戰訓)을 통해 대전차 로켓포인 ‘RPG 시리즈’에 대한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모듈러 장갑(모듈 교체 가능한 장갑)을 채용했다. 기관총탑도 사수가 전차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사격할 수 있게 원격조종으로 개발했다. 주포는 120mm 활강포로 관통력이 강화된 포탄을 발사한다. 10식 전차는 길이 9.48m, 폭 3.24m, 높이 2.3m이고 최고 속도는 시속 70km다. 대당 가격이 112억원 수준으로 비싼 게 흠이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11~ 2013 세계 주력전차 획득 동향》에 따르면, 10식 전차는 국내 배치용으로 제작, 경량화해 방호력이 약하다. 중국군의 99A2식 전차는 기동력과 정보화 면에선 다소 취약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선 10식 전차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두 전차가 대결을 벌인다면 10식 전차가 먼저 99A2식 전차를 발견할 수 있지만, 10식이 첫 사격에서 99A2식을 격파하지 못하면 99A2식의 반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의 99A2식은 사거리가 긴 대전차 미사일을 갖고 있어 10식보다 먼 거리에서 적 전차를 공격할 수 있다.
 
  10식 전차는 신형 사격통제 장치를 탑재해 자국산 90식 전차보다 뛰어난 야간작전 능력을 갖췄다. 포탑 안에는 목표 자동추적장치가 탑재돼 있다.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Mk4 전차만이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99A2식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사격통제 장치를 갖추고 있으나, 전반적인 장갑관통 능력은 10식 전차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러 대의 전차가 함께 움직이는 공동작전에는 10식이 첨단 지휘통제 장비를 통해 99A2식보다 우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미국의 군사전문 매체 《Army Technology》가 세계 10대 주력전차 순위를 보도해 한·일 양국 네티즌은 인터넷상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일본의 최신형 10식 전차가 우리의 차기전차 K2(4위)에 뒤지는 6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매체는 화력, 기동성, 방어력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했는데 1위는 독일의 레오파드 2A7+였다.
 
  2위부터 9위는 미국의 M1A2 에이브럼스, 영국 챌린저 2, 우리나라의 K2 흑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Mk4, 일본의 10식 전차, 프랑스의 르클레르, 러시아의 T-90MS, 우크라이나의 오플로트M 등이 차지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군사 마니아들은 “K2는 파워팩 등이 미완성이고, 가상의 카탈로그 스펙일 뿐”이라며 “10식 전차가 서구 미디어에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규마루’ 전차, 1.5km 거리에서 날아온 철갑탄 방어
 
규마루라는 애칭을 가진 90식 전차.
  ‘규마루’라는 별칭을 가진 육상자위대의 90식 전차는 우리의 K1A1전차에 해당하는 세계 정상급 전차다. 74식 전차의 후속모델로 개발한 90식 전차는 1992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일본 최대의 방산업체로서 항공과 함정 분야 외에도 기동 분야에서 주요 전차를 생산하는 핵심 업체다.
 
  태평양전쟁 종전 후 61식, 74식, 90식의 3세대 전차 생산을 주도했고, 현재 4세대 전차인 10식 전차를 생산하고 있다.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역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범용기·특차사업본부’는 1929년 전차 개발을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전체 일본 전차의 약 70%를 생산했다고 한다.
 
후지학교에서 90식 전차병 오노 후미히로(小野史博·22) 1등육사(일병)와 기념촬영을 했다. 사이타마현 출신의 오노 일병은 장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전투중량 50t의 90식 전차는 120mm 44 구경장 활강포를 장착하고, 40발의 포탄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포탄 자동 장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1500마력의 이 전차는 시속 70km의 속도로 달리면서 목표를 타격하는 주행간 사격능력이 뛰어나다. 방위성 자료에 따르면, 90식 전차의 전면 장갑은 1.5km 거리에서 날아온 철갑탄을 정면에서 막아냈다고 한다. 현재 납품가격은 7억 엔(70억원),
 
  그러나 90식 전차는 측면장갑이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90식 전차는 일본에서 사용하기에는 ‘중량급’이라는 이유로 추가 장갑으로 방호력을 늘려야 했으나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주변국 전차들에 비해 성능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7년 7월 일본 방위성에서 만난 육상자위대 히라마쓰 료이치(平松良一) 중령(2좌)은 기자가 “한국도 차세대 전차(흑표)를 개발해 현지부대에서 시험하고 있다”고 하자, “일본은 장갑방호 능력과 순간교전 능력을 강화한 신형 전차(10식 전차)를 개발했다”며 “2012년부터 일선부대에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히라마쓰 중령은 “신형 전차는 90식 전차와 함께 운용 중인 구형 74식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며 “74식 전차는 구형이지만, 현재 육상자위대의 최정예 전투부대인 제7사단 휘하의 3개 전차연대 중 1개 연대에서 운용 중”이라고 했다.
 
 
  90式 전차, ‘하이테크 덩어리’라 자랑
 
육상자위대의 74식 전차.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배치돼 있는 주력전차다.
  1954년 8월 개교한 육상자위대 후지학교(富士學校)는 도쿄로부터 100km 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에 위치해 있다. 특히 후지학교 소속인 후지교도단은 매년 8월 히가시후지(東富士)훈련장에서 열리는 ‘후지종합화력연습(富士總合火力演習)’ 훈련을 주관한다. 후지학교는 육상자위대 요원들이 사용하는 ‘무기체계의 전시장’이다.
 
  2007년 7월 후지학교에서 만난 시노 다케나리(椎野雄成) 홍보반장(소령)은 “후지학교는 육상자위대의 장교 양성과 보병·포병·기갑의 전투기술을 교육하는 육상자위대 최고의 훈련기관”이라며 “총면적이 80ha(약 24만 평)로, 홋카이도 지토세(千歲) 인근의 두 개의 훈련장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했다. 이곳에서 기자는 육상자위대의 주력 전차인 90식 전차를 시승했다.
 
  소련이 T-72 전차에 이어 T-80 전차를 개발하고, 1981년 한국군이 XK-1 전차(88전차·일본인들을 ‘바루바루’ 전차로 부름) 개발에 나서자, 불안감을 느낀 일본은 74식 전차의 대체형으로 90식 전차 개발을 서둘렀던 것이다.
 
  시노 소령은 “보통 전차를 ‘쇳덩어리’, 즉 ‘철우(鐵牛)’로 표현하지만, 90식 전차는 ‘하이테크 덩어리’나 마찬가지”라며 “적외선 장치가 부착돼 있어 야간에도 정밀 관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국토 면적이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한 한국이 전차 2330대로 일본의 두 배 이상을 갖고 있고, 북한은 3500대로 3.5배를 보유하고 있다”며 “주한미군의 M1전차 120대까지 합치면 한반도의 ‘전차 밀도’는 세계 1위”라고 했다.
 
  기자가 90식 전차에 탑승하자 후지학교 관계자는 “전차 상단부에 있는 ‘열영상장치 모니터’는 야간에 발열체 주위의 온도차를 감지해 영상화하는 것으로, 목표물을 추적해 잠금장치를 작동시키면 120mm 포가 자동으로 목표물을 추적한다”고 설명했다.
 
  90식 전차 조종사가 유압현가장치를 이용해 전차의 자세를 낮추는 시범을 보였다. 기자가 “조종석에 앉은 모습을 찍고 싶다”고 하자, “보안상, 조종석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다.
 
 
  중기관총에도 쉽게 뚫린 95式 경전차
 
37mm 주포를 단 95식 경전차. 미군의 중기관총에도 관통당했던 허약한 전차였다.
  전후 일본의 전차 생산 기술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지만, 전쟁 이전은 참전국 가운데 최악이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장갑이 부실해 연합군의 기관총에도 쉽사리 뚫리는 전차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전차는 사실상 95식 경전차와 97식 중전차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95식 경전차와 97식 중전차 이전에는 89식 중전차도 있었다. 89식 중전차는 1931년부터 만주 전선에 주로 투입됐고, 태평양전쟁에서도 일부 사용됐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았을 만큼 활약이 미미했다. 89식 중전차는 전면장갑이 17mm였다. 차체 정면이 수직 철판 1장에다 출입문까지 달려 있어 사실상 정면 방어력은 제로상태였다.
 
  95식 경전차는 37mm 주포를 단 소형전차로, 태평양전쟁 관련 영화에서 일본군 전차로 등장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상당히 낯익은 존재다. 89식 전차와 마찬가지로 중기관총에도 뚫리는 빈약한 전차였지만,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까지 전선에서 꾸준히 사용했다.
 
  일명 ‘치하’로 불리는 97식 중전차는 약 2000대 이상 생산돼 태평양전쟁 전 기간 동안 주력으로 사용됐다. 주포는 89식 중전차와 같은 단포신 57mm 전차포를 달았다. 이 포는 원래 기관총 진지 소탕용으로 만들어진 경유탄포로, 대장갑 전투능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실제로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M3 스튜어트 경전차에 150m 거리에서 사격을 가했으나, 페인트가 약간 벗겨지는 정도의 피해만 주었다고 한다.
 
  97식 중전차는 중량 15t, 전면장갑 두께는 25mm에 불과했다. 경사장갑으로 돼 있기는 했지만, 장갑두께 자체가 너무 얇아 20~37mm 기관포로도 충분히 관통이 가능할 정도여서, 미군 주력전차인 M4 셔먼과 비교한다면 장갑차 수준에 불과한 무기체계였다.
 
전면장갑 두께가 25mm에 불과했던 97식 중전차. 일본은 이 전차를 2000대 이상 생산해 전쟁 기간 주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97식 중전차는 태평양전쟁 서전에 해당하는 말레이 반도 전격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말레이의 호랑이’로 불린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중장은 ‘정글에서 전차는 무용지물일 것’이라던 영국군의 허를 찔렀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일본군의 ‘시마다 전차대’를 가동해 영국군을 완전히 압도하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석권했다. 1942년 2월 15일 일본군의 야마시타 중장은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영국 극동군사령관 아더 퍼시발 중장을 만난 자리에서 퍼시발 중장이 우물쭈물하자, “Yes or No?(예스냐, 노냐)”라고 윽박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은 미군 전차에 압도당했다. 일본군은 97식 중전차의 빈약한 대장갑 전투력을 극복하기 위해 97식 중전차의 포탑을 개량해 장포신 47mm 전차포를 단 97식 중전차 개량형을 전선에 투입했다. 그러나 역시 셔먼전차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다만, 97식 중전차 개량형의 경우, 셔먼전차의 측면장갑을 근거리에서 관통할 정도의 능력은 갖추었다.
 
  일본군은 97식 중전차의 빈약한 방어력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장갑판을 덧댄다든가 하는 개량은 크게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일본 육군 무기체계 개발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천황(天皇) 폐하가 하사(下賜)한 무기를 믿지 못하고 손을 대는 것은 불경(不敬)”이라며 전투 현장의 목소리를 묵살했다고 한다. 당시 국가 총력전을 치르는 상황에서 전차에 문제를 제기하면, “귀관은 목숨이 아까운 것인가”라며 몰매를 놓을 분위기였다. 결과적으로 97식 중전차는 애궂은 전차병들에게 옥쇄(玉碎)를 강요하는 악명 높은 전차가 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97식 중전차의 차체에 75mm포를 탑재한 ‘일본 최 초의 자주포’가 등장했다. 1식 포전차 ‘호니’가 탄생한 것이다. 미군 측의 평가에 의하면, ‘모든 미군 기갑차량을 격파할 수 있는 유일한 일본군 전투차량’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호니는 거의 대부분 태평양 전선의 각 섬들로 수송되는 도중에 미군 폭격기의 수송함 공격으로 수장됐고, 유일하게 필리핀 루손섬에서 미군 수송차량 대열을 공격해 다수의 차량을 격파한 사례만이 전해진다.
 
  이 밖에 97식 중전차 개량형의 외관을 답습하면서 모양이 좀 더 스마트하게 다듬어진 1식 중전차가 생산됐고, 97식 전차의 개량 차체에 75mm 주포를 탑재한 회전포탑을 가진 3식 중전차도 생산됐지만, 모두 본토 결전용으로 보존돼 실전에는 투입되지 못했다.
 
  일본 전차는 패전 이후 미국식 전차를 적극적으로 카피하기 시작했다. 미 M-46 패튼 전차의 포신을 카피한 STA2를, 이어 세 번째 테스트 모델 STA3를 만들었다. 이후 제식전차를 만들기 시작해 1958년 61식, 1970년 74식, 1990년 90식, 2000년대 10식 전차를 만들었다.
 
 
  99式 155mm 자주포, K9보다 성능 떨어져
 
1999년 실전 배치된 육상자위대의 99식 155mm 자주포. 99식은 사거리 30km로, K9 자주포의 사거리(40km)에 못 미친다.
  1999년 실전 배치된 99식 155mm 자주포는 육상자위대의 최신형 자주포다. 최대 사정거리 30여km를 자랑하지만, 사거리 40km인 한국 육군의 K9 자주포보다 성능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이전만 해도 육상자위대의 자주포는 74식 105mm포, 75식 155mm포, 203mm M110A2 등 세 종류였다.
 
  203mm 자주포는 각 방면부대 직할의 특과군 특과대대에 배치됐고, 사단에는 배치되지 않았다. 대신, 사단 특과연대에는 75식 자주포가 배치됐다. 육상자위대는 75식 자주포를 2사단, 5사단, 7사단, 11사단 예하 사단 특과연대에 배치했고, 기타 사단 특과연대에는 74식 대형트럭으로 견인되는 155mm 견인포를 배치했다.
 
  1983년부터 육상자위대는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3국이 공동 개발한 견인식 155mm포 FH-70의 라이선스 생산을 시작해 혼슈 이남과 각 사단 특과연대에 배치됐다. FH-70의 최대사정은 약 24km로, 로켓추진탄(RAP)을 사용하면 사거리를 약 30km까지 늘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대치하고 있는 홋카이도의 각 사단 특과연대가 혼슈 이남의 사단 특과연대보다 최대 사정이 5~10km 짧은 포를 운용하는 셈이 됐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육상자위대는 FH-70 정도의 사거리를 가진 자주포 개발을 서두르게 됐다. 일본은 1985년부터 차체는 미쓰비시중공업, 포탑은 일본제강소에 개발을 의뢰, 1999년 99식 155mm 자주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99식 자주포의 제원은 중량 40t, 최대 사거리 30km, 최고 속도 49.6km다. 99식 자주포는 제자리 선회가 가능해 포진지에 민첩하게 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99식 자주포는 러시아의 152mm MSTA-S 2S19 자주포, 독일의 PzH2000 신형 자주포에 견줄 만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의 일제 무기가 그러하듯 99식 자주포는 가격이 문제다. 대당 11억 엔(110억원)으로 육상자위대의 90식 전차보다 약 4억 엔(40억원)이나 비싸다. 러시아의 자주포 2S19의 수출가격은 160만 달러(16억원), 독일 PzH2000의 초기 생산물량의 가격은 93만 달러(10억원)다. 방위성은 99식 자주포가 고성능이면서도 가격 때문에 제대로 실전 배치를 못하고 있는 90식 전차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삼성테크윈이 개발한 K9 자주포는 1000마력의 동력, 사거리 40km급, 분당 6발의 자동장전 시스템과 자동사격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비용 대비 성능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테크윈은 1000대 이상의 K55 자주포 생산 과정에서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1999년 세계 최초로 전력화된 사거리 40km급 K9 자주포를 개발한 것이다.
 
  K9의 성능이 국내외 매스컴을 타고 알려지자, 양산 2년 만인 2001년, 터키는 K9 자주포 300여 문(10억 달러 상당)을 부품 형식으로 팔라고 제의해 계약이 성사됐다. 당시 국내 방산수출 사상 단일품목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차륜형 장갑차, PKO 파병으로 수요 크게 늘어
 
96식 장륜장갑차. 일본이 국제평화유지군(PKO)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최근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고마쓰는 일본 내 건설기계 1위 기업이자 세계 시장점유율 2위의 대기업으로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유압 굴착기를 생산한 업체다. 전쟁 전에는 군용 불도저를 생산했고, 전후에는 장륜식(裝輪式) 차량 및 경장갑(輕裝甲) 기동차 등을 이시카와(石川)현 공장에서 생산한다.
 
  경장갑 기동차는 고마쓰의 건설기계 제작의 노하우가 담긴 것으로, 부품과 공정비용 절감을 통해 당초 예산보다 낮은 2500만〜2600만 엔(2억5000만~2억6000만원) 수준으로 가격을 낮췄고, 2010년 기준으로 자위대에 약 1500대 이상을 판매했다.
 
  차륜형 장갑차는 일본의 동일본대지진에서 크게 활약했고, 최근 들어 국제평화유지군(PKO)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육상자위대의 차륜형 장갑차는 대표적으로 3종류가 있으며, 최신형 96식과 1990년대에 보유하기 시작한 82식, 87식이 있다.
 
  히로시마(廣島)현 구레(吳)시에 있는 ‘구레시해사역사과학관(야마토 뮤지엄)’ 입구에는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거대한 포신(砲身)이 전시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침몰한 전함 무쓰(陸奧)의 포신으로, 일본제강소(日本製鋼所)가 제작한 것이다.
 
  일본제강은 고급강재를 생산하는 일본의 대표 업체다. 1907년 홋카이도 무로란(室蘭)시에 설립된 일본제강은 일본의 홋카이도 탄광기선, 영국의 암스트롱 위트워스, 비커스 등 3사가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현재는 99식 155mm 자주포 포신, 10식 전차 포신을 자체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구레시 야마토뮤지엄 입구에 전시된 전함 무쓰의 포신. 일본제강이 제작한 것이다.
  일본제강은 6·25전쟁 발발로 미군의 동의하에 1952년부터 무기 생산 라인을 재가동했고, 주로 히로시마공장에서 포신 제품을 생산 중이다. 일본제강은 이후 61·74식 전차 포 부분, 87식 자주 고사 기관포를 제조하면서 성장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제강산업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육성 대상이었다. 그들은 건실한 철강산업을 국가안보의 ‘건강’과 동일시했다. 1850년 번(藩) 정부가 화포를 만들기 위해 사가(佐賀) 지역에 반사로(反射爐)를 설치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규슈에 세워진 야와타제철소(八幡製鐵所)는 해군이 관리했고, 1915년부터 1932년까지 최대 고객은 철도성이었다.
 
  해군도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전함들을 철 소재로 만들면서 주요 고객이 됐다. 이때 고베제강소, 스미토모제철소, 일본제강 등 민간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야와타제철소는 일본의 철강기술 국산화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들은 국산화를 달성하기 위해 독일의 제철소에서 생산설비를 도입할 때, 20명의 숙련 기술자를 불러왔고, 훈련기간이 끝나자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을 일본인 기술자로 대체했다. 일본 전함과 전차의 포신을 만들기 위한 제강 기술은 이렇게 습득됐던 것이다.
 
  일본제강은 포신의 제작을 위해 포탄 발사 시, 포신에서 발생하는 고온·고압의 가스 저항능력뿐 아니라, 압력이 포신 내에서 안전하고 정확하게 기능하도록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다고 한다. 일본제강은 이러한 까다로운 특수 기술을 보유한 숙련공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99식 155mm 자주포 포신은 일본제강이 재료부터 연구개발, 설계, 제조, 시험평가까지 일관 생산한 제품이다.
 
  일본제강은 해상자위대의 호위함 ‘시라네’ 등 대형 호위함용 73식 54구경 5인치 단장속사포, ‘아타고’ ‘아키쓰키’에 장착된 62구경 5인치 포(미국 BAE시스템스), 이지스함 ‘곤고’용 54구경 127mm 속사포(이탈리아 오토멜라라), 호위함 ‘하쓰유키’ ‘아사기리’ 등에 장착된 62구경 76mm 속사포(오토멜라라) 등도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일본제강은 ‘시라네’ 호위함에 탑재한 함대공 유도탄 ‘시 스패로’의 탑재 미사일 시스템, 호위함 ‘휴우가’ 등에 장착된 ‘ESSM(발전형 시 스패로 미사일)’의 캐니스터 부분도 생산하는 등 일본에서 ‘포(砲) 부분은 일본제강’이라고 불릴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330만원이나 하는 89式 소총, K2 소총의 두 배 가격
 
  육상자위대는 창설 초기 미 육군의 무기, 장비체계를 함께 도입해 사용했다. 보통과(보병) 중대에 박격포소대, 대전차소대가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육상자위대는 전원이 5.56mm 89식 소총을 소지하고 있다.
 
  무기수출 3원칙에 묶여 수출을 못했던 일본은 전시상황에 대비해 ‘국산화’를 고집한다. 그러다 보니 일제 무기는 엄청난 고가(高價)일 수밖에 없었다. 89식 소총의 1정당 가격은 33만 엔(330만원)으로, 콜트사에 라이선스 비를 지불해야 하는 M16보다 가격이 저렴한 한국의 K2소총(180만원가량)보다 두 배 이상 가격이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소총 역사는 16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43년 포르투갈 선원들은 규슈에 표류해 머물며 3.5피트 길이의 화승식 전장총(前裝銃), 일명 다네가시마총(種子島銃)을 선물로 전달했다. 이 총은 사무라이나 아시가루(足軽·에도 시대의 보병)들이 사용했으며, 이 총의 사용은 일본의 전쟁 교리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 섬의 영주 다네가시마 도키타카는 포르투갈인들에게 두 정의 화승총(火繩銃)을 선물받고, 도검 제작자들에게 그 화기의 작동 방식과 총신을 복제하도록 했다. 도검 제작자는 총의 거의 모든 부품을 문제없이 만들었으나 총신에 나선형 구멍을 뚫어 나사를 고정시키는 기술이 아직 일본에 없었기 때문에 완성하지는 못했다.
 
  배를 수리하고 섬을 떠났던 포르투갈인들이 바로 이듬해에 포르투갈인 대장장이를 데리고 와서 이 문제는 해결됐다. 총이 전래된 지 10년 만에 3000정 이상의 종자도총이 생산되었다. 16세기 말에 이르자, 일본은 유럽보다 더 많은 소총을 제작해 내전을 벌였다.
 
  센고쿠 시대(戰國時代·1467~1603) 내내 일본은 전국적 내전에 휩싸여 있었고, 봉건 영주들은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1549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자신의 군대를 무장시키기 위해 500정의 종자도총을 주문한다.
 
  16세기 일본에서는 사수가 한 번 총알을 장전하고, 조준하고, 발사할 시간에 궁수가 15대의 화살을 쏠 수 있었다고 한다. 유효 사거리도 80~100m에 불과했으며, 갑옷에 맞은 총알이 도로 튕겨 나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습기 차거나 비가 오는 날씨에서는 화약이 눅눅해져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곧 종자도총을 최대한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발사 속도가 느린 화승총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속 사격술을 개발해 빗발치듯 탄환을 쏟아부었다. 또한 구경이 더 큰 총을 개발해 살상력을 높였다. 비가 올 때도 총을 쏠 수 있도록 칠기(漆器)로 보호 상자를 만들었고, 끈으로 각도를 고정시켜 밤에도 정밀하게 사격할 수 있도록 했다.
 
  1567년,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이제부터 총포가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대당 창병(槍兵)의 수를 줄이고, 가장 우수한 병사들에게 총을 들게 하라”고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1570년 6월의 아네가와(姉川)강 전투에서 종자도총을 사용해 승리했다.
 
  일본은 이 신무기에 몹시 열광했다. 또한 일본은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도 종자도총을 사용, 전체 침략군의 4분의 1인 16만명가량이 소총수였다. 대량의 화승총병의 공세에 힘입어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18일 만에 한양을 점령할 수 있었다.
 
  1854년에 페리 제독이 일본에 구로후네(黑船)를 몰고 온 사건은 일본의 재무장 시대를 열었다. 1800년대가 되자 종자도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가 되어 있었고, 수많은 사무라이 파벌들은 미니에 소총, 후장식 소총, 연발 소총 등의 신식 무기를 찾았다.
 
  1877년의 세이난전쟁(西南戰爭·1877년 규슈의 무사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앞세워 메이지 정부를 전복하려 한 무사들의 반란)은 종자도총을 포함한 일본의 전통적 무기들로 무장한 사무라이 계급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1868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사무라이 시대는 종말을 맞았고, 일본은 근대식 무기와 군복으로 무장한 징병제 군대를 갖추게 됐다.
 
 
  38式 아리사카 소총, 5개의 부품으로 구성
 
아리사카 38식 소총은 약실 부분에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문양과 ‘38식’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을 대표한 소총은 38식, 99식이었다. 1905년 도쿄포병공창에서 생산한 38식 제식 소총, 일명 ‘아리사카 38식 소총’은 1950년까지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약 340만 여 정이 생산돼 병사들의 손에 쥐어졌다. 38식 소총은 ‘일본 기관총의 아버지’인 육군 무기개발부 책임자 난부 기지로(南部麒次郞) 당시 대위(중장 역임)가 개발했다.
 
  청일전쟁 이후 제식으로 채택됐던 ‘아리사카 30식 소총’은 아리사카 나리아키라(有坂成章) 대좌가 고안한 것이었다. 30식 소총은 다른 볼트액션식 소총에 비해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분해·결합 등이 어려웠다. 당시 일본의 기술수준으로는 표준구조는 단순화시킬 수 있어도 모두 수제(手製)로 만들던 때라 숙련공이 아니면 정비와 교환 사용이 어려웠고, 품질도 제각각이었다.
 
  게다가 청일전쟁, 만주사변 때 혹한기나 흙먼지에서 공이가 부러지는 사태가 빈번하자 병사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일본군은 ‘더스트 커버’를 부착하고 부품을 5개로 간소화한 38식 소총을 개발했던 것이다. 총열과 부품을 간략화한 것은 총포 역사상 획기적인 일로, 당시 세계 최고의 총으로 불렸던 모젤총보다 부품이 3개나 적었다고 한다.
 
  일본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동맹국 독일의 총기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주력 소총은 모젤사의 볼트액션식 Kar 98K였다. 이 소총은 길이가 73.9cm, 착검(着劍)을 하면 1.1m에 달하는 장총(長銃)이었다. 그나마 이 소총은 1920년대부터 제식소총으로 사용되던 길이 1.25m의 Kar 98B를 줄인 것이었다.
 
  38식 소총은 총 상부에 각인된 국화 문장(紋章)으로 인해 구 제국육군을 상징하는 병기로 널리 알려졌다. 철광석은 중국 요동의 안산(鞍山)철광산에서 생산했고, 텅스텐은 야마구치현의 중석광산에서 채굴했다. 총기용 목재는 지중해산 건조 코르크가 최우선으로 사용됐다. 이것을 야하타제철소에서 제련한 후, 각 병기공창에서 가공했다. 총신강의 제조법은 오스트리아의 보렐사에서 취득했다.
 
  38식 소총은 6.5mm 소구경 탄환을 사용해 노몬한·만주사변 등에서 살상력이 떨어져 사상자보다는 부상자만 ‘양산’하는 소총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중국군의 7.9mm 탄은 토담(흙벽)을 부숴버린 것에 비해, 38식 6.5mm 탄은 토담에 박혀버릴 정도로 파괴력이 약했다는 것이다.
 
  38식은 무게 3.7kg, 길이 1276mm, 유효사거리 500m였다.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에 대항할 목적으로 만들어 40cm의 30식 총검을 장착하면 166.3cm의 장총이었다. 당시 일본군의 평균 신장이 160cm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전투를 치르기 부담스런 크기였다.
 
  그러나 러일전쟁과 만주사변의 ‘참호전’에서 돌격·육박전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일명 야음을 틈타 적진으로 돌격하는 ‘반자이(만세)’ 총으로 불린다. 종전 후 미군은 일본 점령지역에서 99식 소총과 38식 소총을 모두 수거해 폐기했다. 6·25전쟁 때 한국군이 쓴 99식 소총은 미군이 수거해 들여온 것들이다.
 
 
  수동식 99式 소총, 미군의 반자동 M1 개런드에 참패
 
아리사카 모델들. 맨 위가 아리사카 38소총이고, 맨 아래가 99식 소총이다.
  결국 일본군은 6.5mm 탄 대신 살상력이 높은 7.7mm 탄을 사용하는 99식 소총을 개발했다. 99식 소총은 수제로 제작했던 38식 소총 가운데 우수한 것을 선별, 2.5배율 망원 조준경을 장착하고 경량 개머리판과 모노포드(단각대)를 장착한 모델이다. 99식은 대구경으로 위력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수제를 탈피해 파손된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부품을 규격화한 덕분에 부품의 호환성이 크게 향상됐다.
 
아리사카 99식 소총을 들고 있는 일본군 병사.
  99식 소총은 일본과 만주, 인천 등지의 병기공창에서 약 250만 정이 생산돼 38식 보병소총에 이어 일본 소총 생산 2위를 기록했다. 99식 소총은 독일의 Kar 98, 소련군의 무신나강 M1891/30, 미군의 스프링필드 M1903 소총, 영국의 리 엔필드 등과 호각일 정도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1937년부터 생산해, 1941년부터 38식 소총을 전면 대체하려던 계획은 전선의 물자와 무기부족 등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두 총은 전선에서 혼용됐다. 태평양전쟁에서 99식 저격소총은 미군들을 가끔 곤경에 빠뜨렸다. 일본군 저격수가 99저격 소총으로 미군 지휘관들을 저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99저격 소총은 38식 소총과 같이 1발씩 장전해야 하는 수동식(볼트액션식)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99식 소총은 대평원에서 소련 코사크 기병대와의 대결을 상정해 설계했기 때문에 자동연사 능력이 있는 돌격용 소총에는 무력했다. 따라서 근접전에서 8발 장전 반자동 M1 개런드 소총으로 무장한 미군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99식 소총은 관통력이 뛰어나 최근까지 스포츠 라이플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북미에선 그리즐리(회색곰) 같은 대형 맹수도 단번에 두개골을 관통시킬 수 있어 ‘베어 헌터’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 루손섬에서 전후 30년 만에 발견된 오노다 히로오(小野田寬郞) 소위는 99식 소총을 들고 있었다.
 
 
  戰後 소총, 64式 소총에서 89式으로 진화
 
육상자위대원들이 최신형 89식 소총으로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호와공업(豊和工業)은 아이치(愛知)현에 공장을 둔 일본 유일의 소총 제조 메이커다. 우리의 S&T모티브에 해당하는 업체다. 1907년 ‘일본의 발명왕’인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 도요타자동차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의 아버지)가 발명한 ‘도요타식 직조기’를 만들던 회사로 출발했다.
 
  전후 일본 자위대의 최초의 국산 소화기는 64식 소총이다. 호와공업의 도가네 기이치(銅金義一), 쓰노세 데루오(津野瀨光男)가 소련과의 전투를 상정해 1964년 개발한 소총으로, 미국의 제식소총인 M-14을 모방했다고 알려진다. 정확히는 미군으로부터 공급받은 M-1 소총과 브라우닝 자동 소총(BAR)을 혼합한 설계로 탄생했다.
 
  64식 소총은 깎아내기 가공을 많이 한 탓에 소총치고는 4.4kg으로 무겁지만, 명중 정밀도는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소총을 카피하다 보니 탄환은 역시 NATO 규격에 따른 7.62mm 보통탄을 사용했다. 아직도 상당수의 64식 소총이 자위대 신입대원 교육용으로 현역에서 뛰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미군의 M16 소총처럼 사거리는 떨어져도 많은 탄을 휴대할 수 있는 소구경 고속탄 사용 돌격소총이 각국 군대에 채용되기 시작했다. 일본도 7.62mm NATO 표준탄을 사용하는 64식 소총을 교체할 차세대 자동소총 89식을 개발했다.
 
  89식 소총은 현재 일본 자위대를 대표하는 제식 돌격소총이다. 호와공업이 개발했다. 89식 소총은 경량화와 소구경화에 따라 64식 소총에 비해 사용이 쉽고, 반동도 약해진 덕에 사수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64식 소총은 부품이 많은 것과 복잡한 조작이 작동 불량의 원인이 되었지만, 89식 소총은 기관부의 구성을 단순화해 작동 불량률도 줄어들었고,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었다.
 
  89식 소총의 방위청 납품 단가는 약 34만 엔(340만원)이다. 89식 소총은 1989년의 물가 수준으로 약 87만 엔(874만원)이었던 64식 소총과 비교하면 가격을 절반 이상 줄인 것이었다. 64식 소총은 전 세계 소총 가운데 가장 비싼 소총으로 기록됐다.
 
  5.56mm NATO 탄을 사용하며, 가스시스템은 아말라이트 AR-18 소총과 유사한 ‘쇼트 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이다. 1989년부터 자위대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일본 해상보안청 등 특수부대에서도 사용한다. 89식 소총의 5.56mm 탄약은 주일미군이 쓰는 M16용 M855, NATO 표준인 SS109 탄약과 호환성이 있다.
 
  89식 소총은 AR-18이나 독일 제식 소총인 헥클러&코흐사의 G3에서 볼 수 있는 철판 프레스나 로스트 왁스, 수지 부품을 채용한 덕에 가벼워진데다, 일본인의 체격에 맞게 설계돼 64식 소총보다도 다루기 편해졌다. 조정간은 오른쪽에 붙어 있고, 조정 순서는 ‘아→레→3→타’로 되어 있지만, 자위대원들은 백발백중의 기원을 담아 ‘아타레3(ア-안전·レ-연사·3-3점사·タ-단발사격, 잘 맞추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2월 23일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인 남수단의 평화유지와 재건을 돕기 위해 파견된 ‘한빛부대’가 현지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현지 일본 육상자위대 부대로부터 탄약을 지원받기도 했다. 한국군이 사용하는 K1, K2 소총용 5.56mm 구경 실탄과 일본이 갖고 있는 89식 소총의 탄약이 동일함에 따라 실탄 1만 발을 제공받았던 것이다.
 
 
  독자개발 정찰헬기, ‘닌자’ OH-1
 
일본이 2000년 독자 개발한 정찰헬기 OH-1 닌자. 미국 헬리콥터학회로부터 ‘하워드 휴즈’상을 받았다.
  헬기는 연락, 관측, 수송, 구난, 수색 등 편리함 때문에 육군에서 선호하는 무기다. 저속으로 좁은 공간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데 헬기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터빈엔진을 장착한 수송용 대형헬기와 공격헬기가 등장했다. 1980년대 들어 육상자위대는 대전차용 AH-1S코브라 헬기를 주력으로 선정했고, 각 방면대에 대전차 헬기대대를 신설했다.
 
  AH-1S 코브라 공격헬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던 육상자위대는 코브라 헬기가 노후화되면서 차세대 공격헬기 구입을 시도했다. 육상자위대의 차기 공격헬기는 2001년 9월 결정됐다. 일본은 걸프전에서 위력을 보인 아파치 개량형 AH-64D 롱보우를 도입했다. 아파치 롱보우는 로켓탄 등 강력한 화기와 최첨단 항공전자기기를 탑재한 세계 최강의 전투헬기다. 대전차장비로 헬파이어 미사일을 최대 16발 탑재할 수 있고, 30mm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다.
 
  육상자위대는 2009년도 예산에 아파치 롱보우 3대의 구입을 신청했으나, 총액 600억 엔(6028억원)의 고비용 예산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고 판단, 구입 포기를 결정했다. 당초 방위성은 아파치 롱보우 62대를 확보할 계획을 세우고 2002년부터 도입에 들어갔었다. 현재 육상자위대는 보잉사로부터 13대의 아파치 헬기를 라이선스 도입해 실전에 배치했고, AH-1S/F 코브라 73대, OH-1 정찰기 34대를 운용하고 있다.
 
  육상자위대의 ‘닌자’ 정찰헬기 OH-1은 OH-6D 경량형 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일본이 자체 개발한 것이다. 이 정찰헬기는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에서 1992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했다. 현재 육상자위대에 배치돼 롱보우 아파치, 코브라 헬기와 함께 운용되고 있다.
 
  1997년부터 생산된 닌자 헬기는 2000년부터 육상자위대에 배치되기 시작했고, 현재 가와사키, 미쓰비시, 후지 등 3개사가 함께 생산하고 있다.
 
  이 헬기는 주로 적 지상 목표물에 대한 정찰이 주 임무이며, 공격을 유도하는 임무(스카우트)를 맡고 있다. 대전차헬기인 AH-1S 코브라처럼 2인승이지만, 대전차헬기와 반대로 전방석에서 조종을 한다. 방면대의 대전차헬기대에 배치돼 있다.
 
  닌자 헬기의 단가는 25억 엔(251억원)이다. 닌자 헬기에는 미쓰비시 XTS1-10 터보샤프트 엔진이 탑재됐고, 출력은 660kW다. 최대항속거리는 550km이며 작전반경은 200km이다. 최대 이륙중량은 3500kg, 최고속도는 시속 280km로 정찰헬기로서는 빼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미국 헬리콥터학회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는 처음으로 ‘OH-1 헬기의 메인로터 부분의 복합소재를 사용한 무관절(힌지레스) 로타 허브 기술’에 대해 ‘하워드 휴즈’ 상을 수여했다. 현재 일본의 차기 다용도 헬기사업(UHX)도 OH-1 헬기를 기본으로 제작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일본은 1950년대 미국 시콜스키의 S-55(UH-19)와 S-58(SH-34) 헬기를 면허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헬기 제작에 뛰어들었다. 일본에는 시콜스키사가 ‘헬기 선생님’인 셈이다. 이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콜스키의 S-61(SH-3 시킹) 헬기를 면허 생산하며, 독자적인 개량을 시도했다. 이어 1980년대 시콜스키의 S-70(SH-60 시호크) 헬기에 일본이 개발한 장비를 붙인 SH-60J(해상자위대용)를 생산하면서 독자개발의 능력을 키웠다.
 
일본이 개조 개발한 해상자위대용 SH-60K 시호크 헬기가 필리핀 인근에서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 시콜스키의 UH-60JA(육상·항공자위대용)를 면허 생산했고, 이어 민수용 연구개발 기체로 100% 독자 모델인 MH-2000을 개발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해상자위대용 SH-60K 시호크를 개조·개발하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우리나라는 2006년 6월부터 약 6년간 1조3000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기동헬기사업(KHP)’을 진행했고, 2012년 유로콥터사의 도움으로 ‘수리온’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일본은 헬기 제작 능력에서 우리보다 50년 정도는 앞서 있는 셈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 1월 31일 발표한 ‘2012 세계 100대 방산업체 순위’에 일본은 미쓰비시중공업(29위), NEC(45위), 가와사키(51위), 미쓰비시(55위) 등 총 6개사가 올랐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삼성테크윈(65위)과 KAI(67위), LIG넥스원(84위), 한화(100위) 등 4개사였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리처드 사뮤엘스 전 교수는 저서 《Rich Nation, Strong Army》에서 “일본인은 자국의 무기는 자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고쿠산카(國産化)’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라이선스 도입을 시도해 국산화하는 데 전력을 쏟아왔다”면서 “라이선스 도입이 직도입보다 비싸게 먹히지만, 기술습득을 위해 일본 정부는 이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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