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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소식

NBA 최고 가드 ‘고란 드라기치’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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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전 팬들을 향해 미소 짓는 피닉스 가드 ‘고란 드라기치’.
  미국프로농구(NBA)가 2013-2014 정규시즌 종착역 도착 직전이다.
 
  총 30개 팀이 동부와 서부지구 각 15개 팀으로 나뉘어 정규시즌을 치르는 NBA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에 시즌을 시작해 이듬해 4월 중순까지 팀당 82경기를 치른다. 이 중 각 지구 상위 8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4월 말부터 챔피언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룬다. 동부와 서부지구 챔피언끼리 맞붙어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NBA 파이널스(Finals)는 매해 6월에 열린다.
 
  올 NBA 시즌 개막 당시만 해도 피닉스 선즈(Suns)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하지만 정규시즌 종착역이 시야에 들어온 4월 중순, 피닉스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란 듯이 뒤엎고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하위권에 머물며 부진을 면치 못했던 피닉스는 지난 2012-2013 시즌이 끝난 뒤 제프 호나섹(50) 감독을 영입해 지휘봉을 맡기는 등 대대적인 팀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호나섹 감독은 NBA 선수 출신 감독이다. 1986년 피닉스에서 데뷔한 그는 이후 필라델피아를 거쳐 1999-2000 시즌을 끝으로 유타에서 은퇴했다. 2011년 유타 코치로 NBA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호나섹 감독은 온화한 성격에 영리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나섹 감독은 현역시절 NBA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물론 두 번이나 3점슛 타이틀을 차지했고 전 소속팀 유타는 그의 등번호(14번)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을 만큼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다.
 
  피닉스는 또 지난해 로스터(Roster) 14명 가운데 주전가드 고란 드라기치(28)와 P. J. 터커(28) 그리고 쌍둥이인 모리스(24) 형제를 제외한 무려 11명의 선수를 대거 교체하며 팀 리빌딩(rebuilding)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중순 NBA 시즌 개막 전 기자와 만났던 피닉스의 주전가드 드라기치는 “올해는 분명 작년과 많이 다를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 시즌 우리 팀은 신임감독을 비롯해 젊고 새로운 선수를 많이 영입했다. 시범경기를 통해 손발을 맞춰 본 결과 느낌도 좋고, 특히 지난해에 비해 한층 더 젊어진 팀 분위기가 올 시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리빌딩의 효과였을까. 피닉스는 개막 2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며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특히 개막 두 번째 경기였던 유타 재즈와의 대결에서는 마지막 4쿼터 종료 0.07초를 남기고 터진 가드 에릭 블레드소(24)의 3점슛에 힘입어 87대84로 승리했다.
 
 
  피닉스의 善戰 이끈 主戰가드 ‘고란 드라기치’
 
  이처럼 피닉스는 올 시즌 개막전부터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등 예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정규시즌이 끝나 가는 4월 중순 시즌성적 46승 31패 승률 0.597을 기록하며 4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코트 위에서 팀의 공격을 지휘하는 주전가드 드라기치가 있다.
 
  유럽국가인 슬로베니아(Slovenia) 출신의 드라기치는 2008년 신인드래프트(Draft) 제도를 통해 피닉스에 입단하며 NBA 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그는 데뷔 초 ‘피닉스의 태양’으로 불리던 주전가드 스티브 내시(40·LA 레이커스)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코트 위를 누비는 시간보다 벤치를 지키는 날이 더 많았다. 농구선수치고는 비교적 마른 편인 그의 신체조건(191cm 86kg)도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 1월 26일 유타를 상대로 3점슛 6개를 성공시키는 등 자신의 한 경기 최다득점(32점) 기록을 세우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드라기치는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2월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되는 아픔을 겪었다. 드라기치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레이드 소식을 팀 동료인 스티브 내시를 통해 들었습니다. 내시가 평소에 장난을 잘 치는 편이어서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죠. 트레이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놀랍기도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프로스포츠는 일종의 비즈니스이고 트레이드 또한 그 일부분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드라기치는 트레이드의 상처를 기회로 승화시키며 그곳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드라기치는 휴스턴에서 뛴 두 시즌 동안 한 경기 평균득점(11.7점), 어시스트(5.3개), 리바운드(2.5개), 자유투 성공률(80.5%) 등 자신의 각종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드라기치에게 NBA 관계자는 물론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드라기치는 지난 2012년 여름 스티브 내시가 LA 레이커스로 이적하며 공석이 된 피닉스의 주전가드로 금의환향하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계약조건도 좋았다. 당시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었던 드라기치는 전 소속팀 피닉스와 4년 총액 3000만 달러(한화 약 316억원)에 사인했다. NBA 정상급 대우였다.
 
  드라기치는 좋은 조건으로 친정팀에 복귀했지만 그만큼 부담도 컸다. 비싼 몸값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오랜 시간 피닉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내시의 공백을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피닉스 팬들의 기대도 컸다.
 
 
  피닉스 선즈의 新舊 스타 ‘드라기치 vs. 내시’
 
스티브 내시(오른쪽)가 드라기치의 방어를 뚫고 골밑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캐나다 출신의 내시는 NBA가 배출한 최고의 백인 가드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실력과 인기를 모두 갖췄다. 1996년 피닉스에서 NBA 무대에 데뷔한 그는 지금껏 무려 16년 동안 현역선수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적잖은 그의 나이(40세) 때문에 갈수록 코트를 누비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평생 단 한 번 수상하기도 힘들다는 NBA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올스타에는 무려 8번이나 선정됐을 만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내시는 또 뛰어난 농구실력 외에도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팬들에게 매우 친화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팬들이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드라기치는 피닉스로 돌아온 뒤 처음 맞는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오랜만에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기분도 좋다”며 “피닉스는 내게 NBA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많은 것을 도와준 팀이다. 이곳 지리도 익숙하고 팬들의 열기도 전보다 더 높아진 것 같아 올 시즌이 어느 해보다 더 기대된다”며 원 소속팀으로 복귀한 소감을 털어놨다.
 
  하지만 내시의 공백을 메우는 일은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터. 이에 대해 드라기치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라고 운을 뗀 뒤 “내시는 NBA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드이다. 아울러 그와 함께 뛸 때 픽앤롤(Pick and Roll) 기술 등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내시와 나는 스타일이 다르다. 우선은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매 경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결과는 그 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후 피닉스와 LA 레이커스가 맞붙은 경기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피닉스를 대표하는 신구(新舊) 스타 드라기치와 내시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였다. 둘의 대결은 피닉스는 물론 미국 내 NBA 팬들의 관심마저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전국구 흥행몰이를 했다.
 
  특히 백인 팬들의 관심이 컸다. 둘은 NBA 무대에서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백인 스타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수의 NBA 선수들이 팬들에게 친절하지 않아 비난을 받는 반면 내시와 드라기치는 늘 팬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총 6번의 맞대결을 펼친 신구 스타의 대결은 3승 3패. 우위를 가리지 못했다. 게다가 올 2013-2014 시즌에는 내시의 출전경기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둘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팬들의 관심과 승패를 떠나 드라기치는 내시와 무척 가깝게 지낸다. 드라기치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코트 안에서는 내시와 경쟁을 해야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친한 사이다. 최근에도 그를 만나 함께 식사도 하고 시즌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2~3일에 한 번 정도는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전할 만큼 친하다”고 말했다.
 
  NBA 관계자들은 “지금의 드라기치가 존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과거 프로 초창기 시절 내시와 함께 뛰며 보고 배운 기술이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내시가 드라기치의 롤모델(Roll Model) 이었을지 몰라도 드라기치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는 그의 노력과 재능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내시를 넘어 NBA 최고 가드로 성장 중
 
  드라기치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분분한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드라기치의 실력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드라기치는 NBA에 데뷔한 뒤 매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올 2013-2014 시즌에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최고 성적을 기록 중이다.
 
  특히 올 시즌 드라기치의 경기당 평균득점(20.5점)은 NBA 최고 가드로 평가받는 내시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평균 4할만 넘어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슛 성공률도 올 시즌에는 무려 5할을 넘어섰을 정도. 표에는 없지만 드라기치의 올 시즌 3점슛 성공률은 0.417로, 이 또한 리그 정상급이자 자신의 역대 최고기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드라기치는 지난 2월 28일(미국시간) 맞붙은 뉴올리언스와의 경기에서 홀로 40점을 링에 꽂아 자신의 NBA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도 경신했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것은 물론 팀 동료들에게 슛 찬스를 제공해야 하는 등 작전수행의 임무가 큰 가드가 한 경기에서 40득점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드라기치는 자신의 한 경기 최다득점을 기록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생후 3개월 된 아들이 오늘 처음 경기장에 왔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가진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서 더 기뻤다”고 말했다.
 
  드라기치가 올 시즌 자신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한 것은 물론 표에서 보듯 공격 전 부문에 걸쳐 최고의 성적을 올리자 NBA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드라기치가 드디어 내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또 “과거 ‘피닉스의 태양’이라 불리던 내시가 나이(40) 때문에 석양 신세가 되었다면 드라기치(28)는 이제 피닉스 지역에 뜨는 태양처럼 뜨거운 진가를 발하기 시작했다”며 “드라기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극찬했다.
 
 
  자기 관리 철저
 
  드라기치의 또 다른 장점은 내구성과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다. 농구는 다른 구기종목에 비해 체력소모가 크고, 잦은 점프로 인한 무릎과 발목 그리고 허리 부상 등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잠시라도 자기관리에 소홀하거나 방심하면 부상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드라기치는 NBA 풀타임 선수로 뛰기 시작한 2009-2010 시즌부터 올해까지 매 시즌 평균 73경기 이상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체력소모가 큰 가드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외국선수의 진입이 쉽지 않은 농구의 종주국 미국에서 이룬 결과여서 더 값진 기록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농구무대인 NBA에서 드라기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드라기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 일을 즐기면서 한 것이 비결인 것 같습니다. 사실 NBA 신인 때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게 더 많았으니까요. 게다가 처음 접하는 미국생활이 낯설어서 적응하는 데 힘들었습니다. 향수병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죠. 하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농구를 할 수 있고 또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NBA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자 전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됐고 각종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생활 6년째인 드라기치는 이제 향수병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에게 “지금은 미국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 사촌형제도 이곳 미국에 살고 있고 슬로베니아에 계시는 부모님도 매년 미국에 오셔서 몇 주씩 머물다 가기 때문에 더 이상 향수병 따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농구 중 택일해야 한다면?
 
  드라기치는 잘생긴 외모와 친절한 성격 때문에 여성 팬이 많다. 그는 오랜 시간 교제한 한 살 연하의 여자친구와 지난해 8월 결혼했다. 드라기치의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미국생활을 했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다니며 남편을 내조할 만큼 지극정성이었다.
 
  드라기치에게 부인에 대한 자랑을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우선 마음씨가 참 고운 친구”라고 말한 뒤 “아내도 나처럼 슬로베니아 사람인데 요리도 잘한다. 그녀 덕분에 항상 슬로베니아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외국생활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기자가 드라기치에게 ‘앞서 누구보다 더 농구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만약 부인과 농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이란 우문을 던지자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 언론이라 할지라도 혹시 아내 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노코멘트하겠다”는 현답을 내놓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들만 설 수 있는 NBA에 진출해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드라기치. 이제 조금 여유를 누릴 법도 하지만 드라기치는 연습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자리관리가 철저하다. 시즌 중에는 쉬는 날에도 체육관에 나와 연습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즌이 끝나면 자신의 조국 슬로베니아로 돌아가 개인트레이너와 함께 혹독한 체력훈련을 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그의 트레이너가 인터넷에 올린 드라기치의 훈련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저 힘든 과정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절로 생길 만큼 혹독한 과정이다. 드라기치는 또 평소 몸 관리를 위해 먹는 것 하나에도 신중하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멀리한다고. 하지만 그도 경기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아쉽게 패했을 때는 피자 등 평소에 멀리했던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드라기치가 농구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유년시절 축구를 하다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
 
  드라기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축구를 포기하고 농구를 선택했다”며 “농구마저 하지 않았다면 경제학 공부를 했기 때문에 비즈니스맨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드라기치는 이어 “하지만 내가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은 전혀 안 어울린다”며 웃었다.
 
 
  새벽잠 설쳐 가며 NBA 무대를 동경했던 소년 ‘드라기치’
 
올 시즌 피닉스 선전의 주역으로 평가 받은 주전가드 드라기치(왼쪽)와 호나섹 감독.
  좋아했던 축구를 접고 농구선수의 길로 들어선 드라기치는 슬로베니아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국제농구연맹이 주관한 2004년 20세 이하 유럽 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대표팀 주전가드로 활약하며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하기도 했다.
 
  농구선수가 된 드라기치는, 마치 류현진(27. LA 다저스)이 과거 박찬호(은퇴)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잠을 설쳐 가며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던 것처럼 어린 시절 NBA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날 만큼 농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드라기치는 기자에게 “당시 유럽 출신의 NBA 스타였던 드라젠 페트로비치(은퇴)도 좋아했고 어렸을 때 내 포지션이 포인트가드여서 ‘농구의 황제’로 불리던 마이클 조던(은퇴)도 무척 좋아했다. 어릴 적 꿈이었던 NBA 선수가 된 지금, 나도 그들처럼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릴 적 NBA 경기를 본 날은 친구들과 함께 NBA 스타들의 플레이를 흉내 내느라 하루 해가 금방 저물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슬로베니아 청소년과 성인 대표팀을 거친 드라기치가 선택한 첫 프로무대는 그의 조국 슬로베니아 프로 2부 리그였다.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곳에서 1년간 활약한 그는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아 1년 후인 2004년 1부 리그로 진출했고 그 후 좀 더 큰 무대인 스페인 리그를 거쳐 2008년 NBA 입성에 성공했다.
 
  이런 경력 때문인지 드라기치는 자신의 모국어 슬로베니아어와 아버지의 모국어인 세르비아(Serbia)어, 게다가 스페인어와 영어까지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농구실력만큼이나 두뇌도 뛰어나다.
 
  드라기치의 동생 조란(Zoran) 드라기치도 현재 농구선수로 뛰고 있다. 하지만 ‘형만한 아우 없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조란은 아직 형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드라기치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조란은 지금 스페인에 머물며 유럽 프로농구리그에서 뛰고 있다. 동생도 NBA 진출을 목표로 매년 최선을 다하고 있고 기량도 좋아지고 있어 언젠가는 이곳 NBA에서 뛸 날이 올 것”이라며 동생을 향한 애정을 표출했다.
 
  4월 10일 기준으로 피닉스에 남은 정규시즌 경기 수는 단 4게임. 경쟁 팀들의 성적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피닉스가 남은 4경기 중 5할 이상의 승률을 달성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확정적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언더독(underdog)의 반란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지난 4월 초 미국 피닉스에서 열린 오클라호마시티와의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뒤 기자와 만난 드라기치에게 ‘올 시즌 피닉스가 선전을 펼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 피닉스는 선수들 대부분이 노장이어서 공격력은 좋았지만 수비가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전선수 대부분이 젊기 때문에 공격 후 수비전환이 빨리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선수들이 젊기 때문에 경험 부족이라는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한층 젊어진 팀 분위기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 경기 즐긴다는 생각으로 부담감을 털어낸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시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습니다.”
 
 
  한국 팬들을 위해 ‘말춤’을 약속한 드라기치
 
  드라기치는 NBA에 관심이 많은 한국 팬들을 위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NBA를 사랑하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피닉스 선즈를 말입니다. 한국 팬들에게도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기자가 드라기치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10월이었다. 당시 드라기치는 “피닉스가 만약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한국 팬들을 위해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에 나오는 말춤을 추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난 4월 초, 드라기치는 기자에게 “그날의 약속을 기억한다”며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드라기치는 또 “일본과 중국엔 가 봤지만 한국엔 아직 가 보지 못했다”며 “피닉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반드시 한국 팬들을 위해 말춤을 출 테니 그때가 되면 잊지 말고 캠코더를 가지고 다시 찾아와 주기 바랍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올 시즌 언더독으로 분류됐던 피닉스는 팀 리빌딩에 성공하며 시즌 내 선전했다. 그리고 이는 NBA 팬들에게 큰 즐거움이 된 것은 물론 스포츠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게다가 피닉스가 남은 정규시즌 4경기를 모두 패하지 않는다면 한국 팬들은 조만간 NBA 스타 드라기치의 ‘말춤’마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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