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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地球村에 확산되는 분리 독립 움직임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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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界化로 少數 인종의 正體性 자각, 경제적 갈등이 주요 원인
⊙ 스코틀랜드는 6월, 카탈루냐는 11월에 분리 독립 묻는 주민투표 예정,
    지난 4월 선거에서 캐나다 퀘벡주의 분리 독립은 무산
⊙ 벨기에 플랑드르, 이탈리아 베네치아·南티롤도 독립 요구
⊙ 터키 쿠르드족은 停戰선언 했지만, 시리아 쿠르드족은 내전 틈타 독립 움직임
⊙ 강대국 이해관계 적은 동티모르·몬테네그로·남수단 등은 독립 성공

李長勳
⊙ 57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카탈루냐 주민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소수(少數)민족들의 분리 독립 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민족(nation)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풍습·종교·정치·경제·문화 등을 공유(共有)하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 집단을 말한다. 민족주의(nationalism)는 민족을 단위로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하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하나의 민족이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하나의 민족이 두세 개 국가를 이룰 수도 있고,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도 있다.
 
  분리 독립 운동은 한 국가에 여러 민족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민족은 엄밀히 구분하면 인종(人種)을 말한다. 인종은 혈연적·체질적 특징을 기초로 인간을 구분하는 개념이다. 21세기의 분리 독립 운동은 정확하게 보자면 이른바 ‘인종민족주의(ethno-nationalism)’를 말한다. 같은 인종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벽을 허무는 세계화(世界化)가 21세기의 보편적 현상임에도 불구, 인종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의 보급, 무역과 자본, 사람들의 글로벌 교류 확대를 가져온 세계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억압받고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됐던 소수 인종에게 민족 자각과 정체성(正體性)을 일깨워 주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다수(多數) 인종이 저지르는 차별정책은 소수 인종의 분리 독립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경향을 보면 다민족 국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충돌과 갈등, 이에 따른 내전(內戰)이 대부분이다. 인종의 충돌은 또 종교와 문화를 수반하면서 일종의 문명충돌 현상까지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인종민족주의가 浮上하는 이유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를 보면 인종민족주의가 저변에 깔려 있다. 크림반도 주민들 중 60%는 자신들에게 러시아인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 독립과 러시아로의 귀속(歸屬)을 결정했다.
 
  우크라이나는 국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드네프르 강을 중심으로 서부와 동남부로 나뉜다. 동남부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등 러시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 왔다. 반면 서부는 순수 우크라이나 혈통의 주민들이 대다수이고, 언어도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크림반도와 러시아의 합병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물론 크림반도의 러시아계(系)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체로 볼 때 소수민족이지만 크림반도로만 볼 때 소수민족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 러시아계 주민들의 러시아 귀속은 같은 피를 가진 인종끼리 뭉치려는 인종민족주의 현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선 각 민족이나 인종들이 그동안 다른 지역들보다는 서로 통합된 형태로 잘 살아왔다. 그런데도 인종민족주의가 부상(浮上)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재정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남유럽과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북유럽 등 다른 유럽 국가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 증폭됐었다. 이것이 이제는 개별국가로 전염되고 있다. 특히 개별국가의 경우 지역에 따라 경제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각 지역별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인종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해묵은 역사적 감정까지 분출되고 있다.
 
 
  배넉번 전투 700주년 맞는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에 있는 윌리엄 월리스의 동상.
  영국의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분리 독립 움직임을 가장 대표하는 지역이다. 영국은 흔히들 하나의 단일민족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네 개 지역의 다른 민족 연방체(聯邦體)이다.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관계는 예전부터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코틀랜드는 원주민(原住民)인 켈트족이 건설한 왕국이었고, 잉글랜드는 원주민인 켈트족을 내쫓고 이주해 온 앵글로-색슨족이 건설한 왕국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수백 년간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두 왕국의 투쟁사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은 배넉번 전투이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배넉번 전투 700주년을 맞는 해다. 배넉번 전투는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가 1314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의 침공을 막아 낸 항쟁(抗爭)을 말한다. 배넉번 전투는 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 잘 묘사돼 있다. 당시 기사였던 윌리엄 월리스의 죽음에 자극받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대승(大勝)했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아직도 월리스를 잊지 못하고 있다.
 
  두 왕국은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이 없자 먼 친척인 제임스 6세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에 오르면서 통합 과정을 밟았다. 두 왕국은 1707년 완전히 합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아직도 민족적 앙금이 남아 있다. 심지어 축구경기에서 잉글랜드 팀과 다른 국가대표 팀이 맞붙으면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다른 국가 팀을 응원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北海 油田의 소유권은 어디로?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 차림을 한 배우 숀 코너리. 열렬한 민족주의자인 그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한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현재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운동은 다수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주도하고 있다. 스코틀랜드국민당은 오는 9월 18일 영국과의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투표 대상은 스코틀랜드 지역에 거주하는 16세 이상의 주민들이고, 투표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찬성 또는 반대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는 영국의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결정”이라면서 “모두가 함께 갈 때만 후대(後代)를 위한 강한 영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전체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구는 520만명으로 영국 전체 인구 6000만명 중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는 외교·국방·재정을 제외한 사법·보건·교육 등에서 자치(自治)정부를 구성하고 있고 자치의회도 따로 두고 있다.
 
  그런데도 스코틀랜드가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경제 때문이다. 북해유전(北海油田)과 조선(造船)산업 등 영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정작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복지혜택 등에서는 소외돼 있다면서 항상 불만을 제기해 왔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3000달러로 영국 전체 1인당 GDP보다 1만 달러 정도 더 많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세금을 많이 내지만 복지 혜택에서는 잉글랜드보다 못하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스코틀랜드 주민들 중 상당수는 영국에서 분리 독립할 경우 경제 규모가 축소되기 때문에 생활이 나빠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북해유전의 소유권을 누가 갖느냐는 것이다. 북해유전은 200억 배럴 상당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영국은 북해유전의 소유권이 당연히 자신들에게 있는 만큼,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매년 300억 파운드(53조4700억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스코틀랜드국민당은 북해유전의 소유권이 스코틀랜드에 있다는 입장이지만 영국이 이를 양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분리 독립에 대해 찬성이 37.7%, 반대가 46.6%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의 역을 맡아 유명해진 영화배우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지 않는다면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현재 바하마에 망명(?)하고 있는 코너리가 과연 스코틀랜드로 귀향(歸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에서도 오는 11월 9일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카탈루냐 지역은 이베리아반도 북동부에 있다. 인구는 스페인 전체 4500만명 중 16%인 720만명이다. 카탈루냐주(州)는 스페인 17개 주 가운데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전체 GDP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요구 움직임 배경엔 경제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탈루냐는 중앙정부에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걷어 가는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재정상태가 갈수록 악화됐다. 카탈루냐는 매년 GDP의 10%에 해당하는 170억 유로를 중앙정부에 납부해 가난한 다른 주들을 도와주고 있다. 반면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에 주는 혜택은 거의 없다. 때문에 카탈루냐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갈수록 고조돼 왔다.
 
  스페인 정부와 의회는 카탈루냐주의 주민투표가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카탈루냐 주정부는 주민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카탈루냐는 과거부터 스페인과는 앙숙이었다. 카탈루냐는 1714년 이전까지 스페인과는 별개의 독립된 아라곤 왕조가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5세가 1714년 9월 11일 카탈루냐를 정복해 병합했다. 올해가 스페인에 병합된 지 300년이 된다. 카탈루냐 주민들은 그동안 매년 이날을 맞아 분리 독립 시위를 벌여 왔다.
 
  카탈루냐는 스페인과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카탈루냐어는 스페인어보다 프랑스어에 더 가깝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과 이후 이어진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카탈루냐는 엄청난 고초를 겪기도 했다.
 
  특히 카탈루냐의 주도(州都)인 바르셀로나는 그동안 분리 독립 운동을 주도해 왔다. 세계적인 프로축구팀 FC 바르셀로나의 스타디움에는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을 정도이다.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와의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카탈루냐 주민들은 마치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흥분한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이다.
 
 
  바스크族만 入團시키는 축구팀 아틀레틱 빌바오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족도 끈질기게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독립 운동을 해 온 민족의 하나는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산맥과 대서양이 만나는 지역에 살고 있는 바스크족(族)이다. 200만여 명의 바스크족은 1936년 스페인 내전 이후 독재자 프랑코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받아 왔다. 프랑코 독재정권은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는 등 바스크족에 대한 탄압 정책을 폈었다.
 
  이 때문에 바스크족 과격파는 독립 운동을 위해 1959년 7월 31일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라는 단체를 조직, 독립 투쟁을 벌여 왔다. 특히 ETA는 그동안 무차별 테러 공격으로 825명을 살해했다. ETA는 1995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후안 카를로스 국왕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페인 정부는 그동안 ETA 조직원 750여 명을 체포했다. 스페인 정부의 강력한 소탕작전이 계속되자 ETA는 2011년 10월 무장 투쟁의 영구 종식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바스크족에게 의회와 경찰을 자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자치권을 부여하는 등 상당한 유화(宥和) 정책을 실시해 왔다. 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바스크족 주민들 중 현재 30% 정도만 독립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카탈루냐에서 실시되는 주민투표에서 분리 독립 안(案)이 통과된다면 바스크족도 분리 독립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바스크 지역의 분리 독립 요구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면 이 지역의 대표적인 프로 축구팀인 아틀레틱 빌바오의 선수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온 빌바오는 선수들을 바스크 출신이 아니면 입단(入團)시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스크 지역 주민들의 반(反) 스페인 정서가 더욱 고조된 이유는 바로 경제난 때문이다. 바스크 지역의 경제는 스페인 전체로 볼 때 가장 나쁜 편이다.
 
 
  벨기에, 지역갈등으로 540일간 정부 구성 못해
 
  벨기에는 과거부터 지역별 분리 독립 움직임 때문에 골치를 앓아 왔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랑드르와 프랑스어권(圈)인 남부의 왈롱,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함께 쓰는 특별 지역인 수도 브뤼셀, 독일어권인 남동부 지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특히 공업과 상업 중심지로 부유한 플랑드르 지역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왈롱 지역이 그동안 대립해 왔다. 벨기에 전체 인구 1100만명 가운데 플랑드르계는 58%, 왈롱계는 31%이다. 인종과 언어는 물론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두 지역은 항상 다툼을 벌여 왔다. 벨기에는 2010년 6월 총선 이후 두 지역의 갈등 때문에 2011년 12월까지 540일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세계 최장(最長) 무(無)정부 상태’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플랑드르 지역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과도한 세금 때문이다. 벨기에 정부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거둔 세금 중 60억 유로(8조6000억원)를 남부 왈롱 지역에 지원해 주고 있다. 플랑드르 지역의 최대 정당인 신(新)플랑드르연대(連帶)는 오는 5월 총선(總選)에서 승리할 경우 플랑드르에 완전한 자치정부를 출범시킬 것이라는 공약(公約)을 제시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신플랑드르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신플랑드르연대는 자치정부를 구성한 후 앞으로 단계적으로 독립의 길을 밟아 가겠다는 구상이다. 브뤼셀에는 유럽 통합의 상징인 유럽연합(EU)의 본부가 있다. 그런데도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베네치아공화국은 부활할 것인가?
 
베네치아 분리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베네토공화국의 국기. 과거 海上帝國으로 군림했던 베네치아공화국의 국기를 본떴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도 분리 독립을 희망하고 있다. 수상(水上)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에선 지역 정당인 베네치아독립당(IV)과 시민단체들이 지난 3월 16일부터 21일까지 베네치아의 독립 여부를 묻는 인터넷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베네치아와 인근 지역 400만 인구 가운데 200만여 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89%가 이탈리아에서 독립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이번 인터넷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독립당은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에 세금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는 등 단계적으로 분리 독립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베네치아독립당은 ‘베네토공화국’을 세울 계획이다. 베네치아가 분리 독립을 원하는 이유는 지역 간 경제력 차이 때문이다. 공업과 패션산업, 섬유업 등이 발달한 베네치아 등 북부는 1인당 GDP가 4만3000달러를 상회해 유럽 내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힌다. 반면 농업 중심의 남부는 1인당 GDP가 2만360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의 세금 수입은 대부분 북부 지방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베네치아는 연간 200억 유로(약 30조원)가 넘는 세금을 내고 있다.
 
  또 분리 독립 움직임은 과거 베네치아공화국에 대한 향수(鄕愁)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베네치아공화국은 과거 지중해를 주름잡던 무역국가로,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독립을 유지해 왔다.
 
  이탈리아의 남티롤도 완전한 자치권을 갖는 ‘티롤자유주(Free State)’ 설립을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과거 오스트리아의 일부였던 이 지역은 주민 75%가 독일어를 쓰며 이탈리아와 다른 게르만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 50만명인 남티롤은 1919년 생제르맹조약에 의해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로부터 할양받은 땅이다.
 
 
  중국의 火藥庫 신장위구르자치구
 
  아시아에서도 분리 독립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이 적극적으로 분리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는 55개 소수민족이 한족(漢族)과 함께 살고 있다. 55개 소수민족들은 중국 전체 인구의 8.04%를 차지하고 있다. 13억명인 한족에 비해 소수민족들의 인구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지만,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허용할 경우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면서 그동안 강경 진압을 서슴지 않아 왔다.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를 믿는 투르크계 민족을 말한다. 중국의 청(淸)나라는 1759년 위구르족이 살던 지역을 침략했다. 위구르족은 42차례나 반란을 일으킨 끝에 청나라를 축출하고, 1864년 동(東)투르키스탄이란 독립 왕국을 세웠다. 청나라는 1876년 동투르키스탄을 다시 침공한 후 1884년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장(新疆)성을 설치하고 이 지역을 합병했다.
 
  위구르족은 1944년 다시 봉기해 동투르키스탄을 세웠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은 1949년 무력(武力)으로 이 지역을 점령했다. 중국 정부는 1955년 이 지역에 신장위구르자치구(自治區)를 설치함으로써 위구르족은 중국의 일개 소수민족으로 완전히 흡수됐다. 위구르족은 이후에도 계속 중국 정부에 대항해 왔다. 1997년 위구르족과 한족의 충돌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져 수백 명이 숨지기도 했다.
 
  위구르족을 지금까지 버티게 한 정신적 지주는 10세기 때부터 전파돼 15세기에 완전 정착된 이슬람교이다. 중국 정부는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때 위구르족을 철저하게 복속시키려고 모스크들을 대거 파괴하는 등 이슬람교를 탄압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위구르 사람들은 지금도 남녀노소 구별 없이 전통적인 사각모자를 쓰고 다닌다. 또 이들의 서구적인 얼굴은 한족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回族) 등 다른 종족과는 달리 언어도 위구르어를 사용한다.
 
  중국 정부가 현재 경계대상 1호로 주목하고 있는 단체는 무장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 온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다. ETIM은 지난 1990년대 초부터 동투르키스탄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 왔다. 이 단체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2002년 유엔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대(對)테러 백서(白書)에 따르면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분리주의 단체 등이 신장위구르 분리주의자들에게 무기와 탄약, 통신 및 운송장비 등을 공급했다고 한다.
 
  ETIM 회원들은 지난 3월 1일 중국 윈난성 성도이자 관광 휴양도시인 쿤밍시 기차역에서 민간인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두르며 이른바 ‘묻지마 테러’ 공격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 29명이 숨지고 143명이 다쳤다. 이들은 기차역 광장과 대합실에서 50cm~1m짜리 칼을 들고 남녀노소 관계없이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중국 공안(公安)은 현장에서 4명을 사살하고, 4명을 체포했다.
 
  이들이 신장위구르 지역이나 수도 베이징이 아닌 남부의 윈난성 쿤밍에서 테러 사건을 저지른 이유는 중국 전역이 공격 대상이란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동안 테러 대상이 주로 경찰서와 관공서였는데, 이제는 민간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공포감을 키워 테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법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중국 전역이 위구르족 분리 독립 세력의 테러 공격 지역이 될 수 있고, 대상도 민간인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티베트 탄압
 
  신장위구르자치구 바로 옆에 있는 티베트자치구에 거주하고 있는 티베트족(짱족·藏族)은 중국 내 소수민족 가운데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민족이다. 전체 인구는 541만명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誇言)은 아니다.
 
  중국은 1951년 티베트를 무력으로 강제 합병하고, 현재의 시장(西藏)자치구를 세웠다. 본래 티베트족의 영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넓었다. 시장자치구를 비롯해 칭하이(靑海)성 전부와 쓰촨(四川)성, 윈난(雲南)성, 간쑤(甘肅)성의 일부도 원래 티베트족이 살던 영토였다. 이들 영토는 티베트족이 사는 곳이란 뜻에서 ‘다짱취(大藏區)’라고 불렸다. 중국 전체 면적의 대략 4분의 1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중국 영토에 편입시키면서 티베트족의 세력을 약화(弱化)시킬 목적으로 일부 지역을 분리했다. 이후 중국은 티베트에 강력한 동화(同化)정책을 추진해 왔다.
 
  6500여 개에 달하던 티베트 사찰은 지금 45개만이 남아 있을 정도다. 또 중국은 50만여 명에 달하던 승려들을 대부분 파계(破戒)시켜 환속(還俗)케 했다. 현재 승려 숫자는 2000여 명으로 줄었다. 티베트에서 승려가 되려면 공산당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불교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티베트족들의 마음속에는 중국 정부의 억압적인 동화정책에 뿌리 깊은 반발과 분노가 깔려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의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티베트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어만을 사용토록 했다.
 
  중국은 또 한족을 대규모 이주시켰다. 티베트족의 인구를 줄이고 한족을 늘리려는 고도의 술책이었다. 특히 지난 2006년 7월 칭짱(靑臟)철도가 완공된 이후 한족의 티베트 이주는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주한 한족들에게 각종 경제적 혜택을 부여했다. 현재 인구 27만명이 살고 있는 시장자치구의 수도(首都) 라싸의 절반은 한족이다. 라싸의 상권(商權)도 대부분 한족이 차지했다.
 
 
  티베트청년회, 달라이 라마의 非폭력 노선 비판
 
티베트청년회가 승려들의 분신 모습을 담아 제작한 포스터.
  티베트족들은 중국의 탄압에 맞서 분신(焚身)자살로 분리 독립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16일 티베트족 집단 거주 지역인 쓰촨성 아바현(縣)과 칭하이성 쩌쿠현에서 티베트족 승려 두 명이 티베트의 독립과 중국의 탄압에 항의하면서 분신자살했다. 지난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128명의 티베트족 승려와 주민들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는데, 대부분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티베트 승려들과 주민들의 분신자살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해외로 망명한 티베트족들의 분리 독립 활동도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 여대생 20여 명이 지난 3월 12일 인도 주재 중국 대사관으로 침입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를 비롯한 망명 정부 인사들의 귀국 허용 등을 요구하며 15분간 연좌(連坐)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시위는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과격 단체인 티베트청년회가 주도했다.
 
  티베트청년회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이다. 티베트청년회는 최근 들어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의 노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중국 정부에 고도의 자치를 요구하면서 중도(中道) 노선을 주창해 왔다. 반면 티베트청년회는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티베트청년회는 달라이 라마 14세의 비(非)폭력 노선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비판하고 있다. 티베트청년회 회원들은 3만5000명으로 추정되는데, 인도를 비롯해 각국에서 각종 시위를 주도하며 반중(反中) 운동을 벌이고 있다. 회원 대다수가 20~30대다. 이들은 티베트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망명 2세가 대부분이지만 투쟁 열기는 망명 1세보다 강력하다. 티베트청년회 회원 중 일부는 무장 봉기를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 쿠르드族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이다.
  전 세계에서 국가 없는 최대 단일민족은 쿠르드족이다. ‘중동(中東)의 집시’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유랑(流浪) 민족이다.
 
  4000년의 역사, 3000만명의 인구, 고유한 언어와 문화 등 단일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옛 소련이 접하는 ‘쿠르디스탄’(평균 해발고도 3500m의 산악지대와 티그리스강 상류 평야지대로 구성된 지역)이라 불리는 지역과 유럽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인 1600만명이 터키에 살고 있으며, 이란에 600만명, 이라크에 50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 레바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 60만~70만명이 거주하며 유럽에서는 독일에 40만명을 비롯하여 스웨덴,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 수십만 명씩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그동안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왔지만 강대국들의 배신과 주변국들의 반대,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나라 없는 설움을 참아야만 했다. ‘쿠르드족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山)만 있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이다.
 
  중동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 가운데 이라크 쿠르드족은 자치정부를 세우고 독립국가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이 관할하는 지역에는 상당한 원유(原油)가 매장돼 있다. 이라크 전체 석유 생산량의 3분의 1 정도이다. 현재 추정 매장량은 약 100억 배럴에 달한다. 이 지역에는 터키와 시리아로 가는 송유관(送油管)이 있으며 옛날부터 동서 교통의 요충지(要衝地)였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아랍화’라는 명분 아래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쿠르드족을 내쫓고 아랍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석유 자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쿠르드인들을 쫓아낸 것이다.
 
  미국의 침공으로 후세인이 제거된 이후 쿠르드족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라크는 현재 18개의 주로 나뉘어 있는데, 쿠르드족은 이 중 터키와 이란 및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6개 주를 하나로 묶어 1개 주로 통합하고 준(準)국가로 운영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送油管’이 가져온 평화
 
  이라크 쿠르드족은 또 터키 쿠르드족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터키 쿠르드족은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중심으로 1984년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터키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여 왔다.
 
  무려 28년을 끌어 온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 간 무력 충돌은 지난해 2월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정전(停戰)을 선언하면서 일단 중단됐다.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은 평화협정까지 맺었다.
 
  양측이 화해한 것은 이라크 쿠르드족이 터키 정부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생산하는 원유를 터키로 연결되는 송유관을 통해 수출하기로 터키 정부와 합의했다. 이에 따라 상당한 이득을 얻게 된 터키 정부는 반대급부로 자국(自國) 땅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대폭 완화했다.
 
  시리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도 3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내전을 이용해 자치정부를 구성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시리아 전체 인구의 10%가 쿠르드족이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내전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일종의 자치구를 만들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현재 자체적인 무장 조직까지 갖추고 있으며, 자치정부를 설립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시리아에 쿠르드 자치정부가 공식 인정되면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더불어 쿠르드족의 오랜 염원인 ‘쿠르디스탄’ 창설도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 반군도 쿠르드 자치정부 설립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또 터키와 이라크 정부도 시리아에 쿠르드 자치정부가 만들어지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쿠르드족 자치정부 설립 문제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창설 문제는 앞으로 중동지역의 정세에서 중요한 변수(變數)가 될 가능성이 높다.
 
 
  民族自決權이냐, 主權이냐
 
  북미(北美) 캐나다의 퀘벡주에서도 그동안 분리 독립 운동이 있어 왔다. 퀘벡주는 프랑스의 옛 식민지로 프랑스계 주민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다.
 
  퀘벡주는 1980년과 1995년에 연방정부로부터의 분리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두 차례 실시한 적이 있다. 특히 1995년 투표에선 1%포인트도 안 되는 간발의 차이로 부결됐었다.
 
  퀘벡주의 분리 독립 움직임은 지난 4월 7일 실시된 주 의회 선거에서 분리 독립에 반대해 온 야당인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당분간 물밑으로 잠복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당은 전체 의석 125석 중 74석을 확보하며 1년 반 만에 제1당으로 복귀했다. 반면 분리 독립 지지 정당이자 집권당인 퀘벡당은 36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런데 각 지역에선 분리 독립 문제와 관련해 민족자결권(民族自決權)과 주권(主權)이 서로 부딪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족자결권은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1월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권을 주창해 국제사회의 규범이 됐다. 제1차 대전 종전 이후 민족자결권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지배를 받아 오던 수많은 약소민족들에게 독립을 위한 사상적 근거가 됐다. 유엔헌장 제1조 2항에도 민족자결의 원칙이 규정돼 있다.
 
  반면 주권은 국민, 영토와 함께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의 하나이다. 주권국가라고 말할 때의 주권은 국제법상으로는 다른 어떠한 국가의 권력에도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영토적 주권은 주권국가가 가지는 배타적(排他的) 권리이다. 모든 주권국가는 타국(他國)의 간섭 없이 자국 영토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유엔헌장 제2조 4항에는 영토보전에 관한 주권이 적시(摘示)돼 있다.
 
  식민지 해방 과정에서 강조됐던 민족자결권과 국민국가의 틀이 공고해진 오늘날의 영토적 주권이 21세기 들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법적으로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림반도와 코소보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크림반도와 코소보 사태
 
  미국과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코소보 사태를 놓고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르비아의 자치주(自治州)였던 코보소는 2008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은 코소보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해 독립을 지지했다. 반면 러시아는 코보소의 독립 선언은 세르비아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크림반도 사태를 놓고 코소보 사태 때와는 정반대로 서로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대치하고 있다. 미국은 크림반도의 분리 독립 주민투표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러시아는 크림반도 주민들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의 국익(國益)에 따라 민족자결권과 주권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소보 사태의 경우, 러시아는 자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세르비아의 손을 들어 주었다. 반면 크림반도 사태의 경우, 미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입장인 우크라이나 과도정부 편을 들고 있다.
 
  조지아(그루지야)에서 분리 독립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친(親)서방 국가인 조지아 편을 들었고, 러시아는 자국과 같은 민족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지지했다.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현재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주권과 민족자결권은 강대국들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분리 독립해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국가들 중에서 동티모르가 어떻게 유엔 회원국이 됐는지 알아보자.
 
  동티모르는 21세기 들어 분리 독립을 국제사회로부터 처음 인정받은 국가이다. 동티모르는 2002년 9월 191번째 회원국으로 유엔에 가입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동쪽, 호주 북방에 위치한 가난한 섬나라이다. 인구 105만명, 면적 1만5000km², 1인당 GDP 41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동티모르는 3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아 왔다. 포르투갈이 철수한 이후 힘의 공백 상황을 이용해 인도네시아가 1975년 동티모르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1976년 27번째 주로 병합했다. 동티모르 주민들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독립 투쟁을 벌여 오다 1999년 8월 유엔 감시하에 주민투표를 실시해 분리 독립을 결정했다. 하지만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독립을 반대하면서 주민들을 무력 공격해 동티모르가 독립국가가 되는 것을 방해했다.
 
  결국 유엔이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동티모르의 치안과 질서 유지에 나섰고, 동티모르는 현재 안정을 되찾고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모습을 착착 갖추고 있다. 동티모르가 유엔 회원국이 된 것은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 중 어떤 국가도 동티모르와는 국익과 관련이 없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의 독립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동티모르 인근 해저에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대량 매장돼 있다. 매장량은 세계 20위권의 산유국(産油國)인 브루나이에 견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티모르가 원유와 천연가스를 제대로 개발한다면 국가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流血 없이 독립한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는 발칸반도에서 유일하게 유혈 사태나 내전 없이 주민투표로 분리 독립한 국가이다.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는 말을 들어 왔다. 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 옛 유고슬라비아연방도 분열하기 시작했다. 1991년 슬로베니아를 필두로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가 차례로 유고연방을 탈퇴했다. 유고연방의 맏형 격인 세르비아가 이들의 분리 독립을 막는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서는 ‘인종청소’라는 커다란 비극이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의 충실한 동맹 역할을 했었다. 몬테네그로는 2003년 세르비아와 연합해 신유고연방이라는 국가연합을 구성하기도 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종교도 세르비아정교회로 같고, 쓰는 언어도 비슷하다. 그러다 몬테네그로는 2006년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구(舊)유고연방 국가 중 유일하게 유혈(流血) 사태 없이 독립했다.
 
  몬테네그로 주민들이 독립을 선택한 것은 세르비아와 관계를 끊는 것이 경제발전과 EU 가입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몬테네그로는 인구 65만명으로 800만명의 세르비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세르비아가 각종 전쟁과 유혈 사태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으면서 몬테네그로 역시 함께 제재를 당하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몬테네그로 주민들은 세르비아와 단절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독립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막지 않았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몬테네그로는 2006년 6월 유엔의 192번째 회원국이 됐다.
 
 
  독립 후 다시 內戰 위기 처한 南수단
 
남수단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한빛부대원들이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남수단은 오랜 기간 내전을 벌인 끝에 독립국이 됐다. 남수단의 국토는 수단 전체 면적의 3분의 1 정도인 64만km²이고, 인구는 1100만명이다. 수단은 아랍 이슬람계가 주류(主流)인 북부와 기독교 및 토착신앙을 믿는 남부가 서로 대립해 왔다. 남수단의 반군은 1983년부터 수단 정부군과 내전을 벌여 오다 2005년 국제사회의 중재로 수단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고 남수단의 자치권을 획득했다. 당시 내전을 치르면서 200만여 명이 숨졌다.
 
  내전이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수단을 식민 지배했던 영국이 1956년 철수하면서 민족과 종교가 다른 북부와 남부를 분리해 독립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수단은 2011년 2월 주민투표를 실시해 98%의 찬성률로 수단에서 분리 독립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남수단은 하루 2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산유국이다. 전체 원유 매장량은 35억 배럴로 추정된다.
 
  그런데 남수단은 독립 3년 만인 현재 다시 내전의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부족들 간의 권력 다툼이 원인이다. 딩카족인 실바 키르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부군과 누에르족인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이 지난 1월 충돌해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영국·노르웨이 등이 중재(仲裁)해 양측이 일단 휴전한 상태이지만 내전이 다시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수단이 다시 반쪽으로 갈라질 수도 있다.
 
  분리 독립 움직임은 민족과 인종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잉태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한 국가 내에 있는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한다면, 그 안에 있는 소수민족도 같은 논리로 다시 독립을 요구할 수 있다. 여기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분리 독립의 움직임 뒤에는 거의 예외 없이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나 경제적 차별이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분리 독립의 움직임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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