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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분석

크림반도 전쟁 시나리오

나토와 러시아, 勝者는?

글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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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병력 84만5000명… 12만9950명에 불과한 우크라이나의 6.5배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하면,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가입 허용할 수 있어
⊙ 나토 육군, 러시아 육군에 절대 열세… 나토 공군, 美 도움 없이는 정밀폭격 수행능력 없어
⊙ 美는 우크라이나 독립보장, 러시아는 크림반도 차지로 타협 가능성

李春根
⊙ 6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同 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 저서: 《미국에 당당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조약에 서명한 뒤 두 손을 들어 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알렉세이 찰리 세바스토폴 시장.
  보통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도 우리는 ‘땅 따먹기’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자면, 아직도 국가 간에는 영토를 둘러싼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시대라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에 무려 1만2500회 이상의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이 35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토록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토(territory)’에 관한 문제였다. 전쟁을 치른 나라의 90%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이었다는 사실은 영토 문제야 말로 가장 중요한 전쟁 원인임을 증거해 주는 자료다.
 
  영토가 접해 있지 않은 나라들의 전쟁도 사실은 영토를 둘러싼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본과 중국은 국경이 접해 있지 않지만 센카쿠 제도를 둘러싸고 전쟁 직전의 갈등을 벌이고 있고,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국경이 수천 km나 떨어져 있지만, 포클랜드라는 섬 하나를 두고 전쟁을 치르기도 했었다.
 
  이토록 모든 전쟁의 배후에 영토 문제가 깔려 있는 이유는 영토가 다른 모든 전쟁 원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는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기 위한 원천이며, 또한 국가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 2월 키신저 박사가 “전쟁의 유령이 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일본과 중국 간 영토분쟁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실제 영토 관련 ‘전쟁상황’이 발발한 곳은 동아시아의 서태평양 해역이 아니라 남동부 유럽의 크림반도였다. 직접적인 전투상황이 발발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는 ‘무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합병시켜 버린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주장과 달리 이 같은 행위는 불법적인 일이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법의 영역이 아니다. 강대국은 물론 약소국조차도 자기의 이익에 따라 국제법을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다. 북한과 같이 별로 강하지 않은 나라조차 국제법을 밥먹듯 무시하고 있지만, 북한이 국제법을 무시해서 처벌받았고, 그 결과 다시 국제법을 준수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국내법의 경우 이를 지키지 않는 자를 강제하기 위해 승인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경찰과 검찰 등 정당한 공권력이 존재하지만, 국제정치에 ‘정당한 공권력’이란 없다. 미국과 같은 나라가 자신과는 직접 관련이 없을지라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행사하는 무력은 미국과 같은 편에 있는 나라들에는 ‘경찰행동’이지만 반대편에서 보기에는 ‘깡패행동’일 뿐이다.
 
  러시아의 ‘불법적’인 크림 합병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크라이나가 크림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military control)을 다시 확립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의 힘을 길러서든 혹은 자신을 지지하는 동맹국들을 확보해서든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 대한 주권을 러시아로부터 다시 빼앗기는 난망(難望)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군사력 혹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크림반도를 다시 러시아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을까? 이 글은 양측이 무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경우를 상정한 전쟁 시나리오다.
 
 
  후르시초프,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양도
 
지난 3월 17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외곽의 군 훈련소에서 예비군들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대비해 4만명의 예비군을 동원하는 대통령령을 승인했다.
  크림반도는 유럽과 아시아, 중동 지역의 접점에 위치한 탓에 수백 년에 걸쳐 훈족, 그리스, 비잔틴 제국, 몽골 제국 등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지배를 받아 오다 1783년 예카테리나 여제(女帝)가 처음으로 러시아 제국에 병합했던 땅이다.
 
  이후 줄곧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크림반도는 19세기 중반(1853~ 1856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크림전쟁’ 무대가 됐다. 남하 정책을 펴고 있던 러시아 제국과 이를 저지하려던 오스만 제국 및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전쟁이었다. 나이팅게일이라는 유명한 간호사가 활약했던 전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전쟁이다.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는 70만 군대를 동원했고, 이에 맞서 오스만튀르크는 30만, 영국은 25만, 프랑스는 40만을 투입했다. 러시아의 전사자는 22만, 연합군의 전사자는 무려 35만에 육박하는 대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힘을 소진한 프랑스는 얼마 후 프로이센의 급성장에 밀려 보불전쟁에서 완패한다.
 
  1853년의 크림전쟁은 종교적 이유에서 시작되었지만, 실은 흑해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러시아 해군이 시노페항에서 오스만튀르크 해군을 격파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크림반도에 상륙하면서 지상전이 시작됐다. 지상전의 핵심 타깃은 세바스토폴이었다. 세바스토폴이 1년의 농성 끝에 함락되자 러시아는 평화조약에 응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손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크림반도는 여전히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1917년 러시아의 공산 혁명으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소련)이 들어선 뒤 몇 년간 이어진 내전 동안 크림반도는 반(反)혁명군의 최후 거점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1921년 크림반도에도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 산하 크림자치소비에트공화국이 설립됨으로써, 크림반도는 소련의 일부가 됐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크림반도는 또 다시 격전지가 됐다. 1941년 10월부터 1942년 7월까지 250일 동안 크림 남부 세바스토폴에서 벌어진 나치군과 소련군의 공방전은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다. 양측 합계 4만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한 접전 끝에 크림반도는 나치의 수중에 들어갔다.
 
  1944년 소련군이 다시 크림반도를 탈환한 후, 스탈린은 나치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약 20만명의 크림 내 타타르족 모두를 우랄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이주민 가운데 절반 정도가 굶주림이나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2차대전 이후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속하고 있었지만,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분규가 발생하자 1954년 당시 후르시초프 수상은 크림반도를 자신의 정치적 지지세력인 우크라이나에 양도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는 국가 간 영토 문제라기보다는 국내정치 과정의 하나로 생각될 수 있었다. 러시아의 크림으로 남든, 우크라이나의 크림이 되든, 크림은 소련의 영토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핵 포기와 무기 밀매로 弱小國 전락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가 됐고,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됐다. 구 소련의 핵폭탄과 해군 등이 주둔하고 있었던 소련의 전략 요충지 우크라이나는 독립 직후 세계 5위권의 군사력을 과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을 줄이고 경제발전에 매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군축(軍縮)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부패 정치인들이 돈이 되는 각종 무기들을 아프리카 등지로 몽땅 빼돌려 뒷돈을 챙겼고, 우크라이나 병사의 손엔 낡은 소총만 남는 꼴이 됐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320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가 증발했음에도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러시아·영국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해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했다. 우크라이나는 그 대가로 3국으로부터 ‘주권과 안보, 영토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겼다’며 분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정식 조약이 아닌 양해각서로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었다. 국가안보를 소홀히 한 결과가 바로 우크라이나가 총 한 방 쏴 보지 못한 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기는 상황의 본질적 원인이다.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으로 남아 있던 크림 독립 문제는 지난해 말 불거진 우크라이나 내 친러-친서방 세력 간 정치투쟁의 결과, 친서방 진영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거주민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인으로 친러 성향이 강한 크림자치공화국이 친서방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이탈과 러시아 귀속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친(親)러시아계인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친러시아 정책을 전개하다가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대대적인 저항 때문에 지난 2월 21일 의회에서 탄핵된 후 러시아로 도피했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도피하기 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군 투입을 요청했다.
 
  크림 의회는 3월 11일 독립선언서를 채택했고, 3월 16일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다. 이틀 후인 3월 1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공화국과의 합병을 선언했다. 3월 19일 친러시아 자경단(自警團) 200여 명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는 우크라이나 해군사령부를 급습했고, 우크라이나군(軍)은 속수무책이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임시 대통령은 3월 24일 크림반도 내 우크라이나 병사 1만5000명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하고 항복했다. 3월 26일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와 시설 193곳을 모두 장악했다. 크림반도는 60년 만에 다시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눈물 겨운 自救노력
 
러시아가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외곽 벨벡 공군기지를 장악한 가운데, 지난 3월 4일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기지 반환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군은 공중에 경고 사격을 했다.
  국제법 혹은 도덕의 관점에서 본다면, 크림을 러시아가 뺏어간 것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불법행위를 규탄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크림반도 거주 주민들이 압도적 다수로 크림의 러시아 복귀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이는 불법적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체 국민이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를 크림 주민의 민족자결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기는 하다. 현재 크림을 빼앗아 우크라이나에 다시 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 불행이다.
 
  군사안보 문제를 소홀히 했던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빼앗긴 후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현 우크라이나 정부는 육군을 4000명 늘리는 조치를 취했고, 장애인 지원 예산을 국방비로 돌려 6억1000만 달러를 추가 편성하기도 했다.
 
  국민이 ARS 자동전화로 한 통화에 국방비 50센트씩을 기부하는 성금모금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불행한 나라 국민들의 애타는 노력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우크라이나의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자력으로 러시아를 상대할 수 없다. ‘세계 3위 핵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토, 舊 소비에트연방 국가의 러시아 연쇄 편입 우려
 
러시아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외곽에서 지난 3월 1일 웃통을 벗은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러시아 병사에게 항의하고 있다.
  크림반도를 다시 러시아에 귀속시킨 사실에 대해 서방 측의 비난은 거세지만, 그렇다고 당장 서방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서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분석자들이 새로운 냉전의 시작이라고 말하는데, 그 말 자체가 전쟁의 가능성이 없음을 배경에 깔고 하는 말이다. 냉전이란 실제로는 싸우지 않은 채 마치 싸울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상황을 의미할 뿐이다. 진짜 전쟁은 언제라도 뜨거운 것(hot war)이며 차가운 전쟁(cold war)이란 가능하지 않다.
 
  크림반도에 대한 관심과 이익의 차원에서 러시아의 열정과 서방 측의 열정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 측이 훨씬 더 뜨겁다. 우크라이나만이 크림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열정에서 러시아와 비교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회원국도 아닌 우크라이나의 크림탈환 전쟁을 적극 지원하고 함께 싸워 준다는 상황을 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언제라도 사전에 세운 치밀한 계획과 시간표대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탈환하기 위해 무력공격을 개시한다면, 이후 전개될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나토가 이 전쟁에 개입하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두고 진짜 전쟁을 벌이다가 우크라이나 전체가 러시아의 공격에 의해 멸망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미국을 비롯한 나토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소멸을 방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소멸은 구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이 하나씩 무너져 러시아에 편입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전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바스토폴의 총성 한 발로 開戰한다면…
 
  각국의 군부와 군사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가능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전쟁연습을 행하고 있다. 서전(序戰)에 전쟁연습 혹은 전쟁게임(war game)을 벌여 봄으로써 실제 전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분쟁이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전쟁과 평화에 대비한 유용한 ‘지적 준비 활동’(intellectual exercises)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 특히 서방 측의 지원에 힘입어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장애인 지원 예산 6억1000만 달러를 국방비로 전환했고, 국민들은 50센트씩 하는 ARS전화로 국방비를 모금하는 애국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노력에 미국을 위시한 서방 강대국들이 자금지원은 물론, 군사력를 강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특히 크림반도로 러시아 세력이 진출할 경우 안보상황이 대폭 악화될 수밖에 없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고 나섰다. 터키·그리스·이탈리아는 물론, 러시아 세력의 팽창이 두려운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구 소비에트연방 공화국이었던 백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제국들, 러시아로부터 분리운동 중인 조지아(그루지야) 등이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증강과 더불어 현대식 군사훈련은 물론 테러리즘, 게릴라 전쟁을 포함한 각종 군사훈련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미국은 흑해로 연결되는 보스포러스, 다다넬스 해협 가까운 곳에 미국의 항공모함을 파견, 상시적인 대비태세에 돌입했다. 프랑스도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드골호를 동지중해에 파견했고, 이탈리아 역시 항공모함 가리발디호의 경계태세를 강화시켰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측의 지원에 고무됐고, 궁극적으로 크림반도를 탈환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됐다.
 
  미국과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대한 군사력 배치를 강화하고, 특히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육·해·공군 기지를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14년 1차대전을 야기한 사라예보의 총성 한 방과 같은 사건이 이번에는 세바스토폴에서 발생했다. 100년 전 6월 발생한 암살사건 하나가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줄은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계 청년 한 명이 크림 주둔 러시아 군사령관을 폭탄테러 공격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계 시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 및 용의자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즉결처분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자행한다. 크림을 둘러싼 분쟁이 결국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를 넘어서서 러시아 대 서방 측의 대결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조차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서방 측은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 나토조약 5조는 ‘어느 회원국에 대한 공격이라도 모든 회원국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즉각 대응한다’고 돼 있는 것처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같은 나토의 행위를 바로 러시아의 턱밑까지 나토를 확대한, 용납할 수 없는 도전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한다.
 
 
  美 항공력 투입해야 러시아 육군 막을 수 있어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맹국들이 자신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러시아에 의해 강탈당한 크림반도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군사력과 더불어 싸우려는 의지의 강렬함 여부다. 군사력이 약할지라도 의지가 강한 나라는 군사력이 강하지만 의지가 약한 나라를 꺾을 수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싸울 의지가 없어서 패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크림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러시아의 영광이라는 더욱 원대한 목표를 가진 푸틴과 러시아군의 의지가 크림을 회복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의지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하는 서방 세력의 고민이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의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하는 상항으로 전황이 전개될 경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세력은 우크라이나의 존립을 위해 큰 전쟁을 각오해야 할지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마치 1차대전 당시 벨기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영국이 독일에 맞서 싸운 것과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오늘의 세계 정치에서 100년 전 영국에 해당하는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아무튼 우크라이나는 자기보다 훨씬 막강한 러시아에 대항, 공격전을 개시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되찾는다는 ‘제한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싸워야 할 상대가 크림반도에 현재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 줄 것이라고 가정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들은 대체로 무엇인가를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과도하게 확신’(overconfidence in war)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라는 전쟁사의 법칙이 반복됐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은 러시아는 크림반도에서의 전쟁을 러시아의 ‘장래’가 걸려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선진국들에 비할 바 되지 않고,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일란 버먼(Ilan Berman) 미(美) 외교정책협회 부회장으로부터 곧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Implosion: The End of Russia and What it means for America, 내부로부터의 붕괴: 러시아의 종말과 미국, Regenery 출판사 刊)마저 나도는 판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무력공격에서 신속히 승리해야 한다는 것은 푸틴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제1의 전략목표가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생각과는 달리 크림반도에만 한정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1576km에 이르는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5대 도시에 속하는 도네츠크, 하리코프는 러시아와의 국경선에서 불과 100km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오데사는 러시아 해군이 장악한 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다.
 
  러시아는 3만5000명에 이르는 공수부대를 동원, 이들 도네츠크, 하리코프를 순식간에 장악해 버렸다. 러시아 해군은 오데사항을 봉쇄,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순식간에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되받아치고 우크라이나를 붕괴 직전으로 몰고간 것은 압도적인 군사력 때문이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군사력 균형 자료를 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국력상 ‘완벽한 불균형’ 상태에 있음을 보여 준다. 2013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1인당 국민소득 4015달러로 세계 100위권의 빈곤국이다. 2012년과 2013년 경제성장률은 인플레 비율보다 낮은 각각 0.15%, 0.36% 에 불과했다.
 
  인구가 4457만3205명(2013년 7월)인 나라로서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이웃에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의 한 달치 국방비에 불과한 24억2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현역 군사력은 12만9950명(육군 6만4750명, 해군 1만3950명, 공군 4만5250명, 공수부대 6000명, 예비군 8490명)이고, 1110대의 전차 중 비교적 신형인 T-84는 단 10대에 불과하고, 수십 년이나 된 T-64가 나머지 1100대이다.
 
  잠수함 1척, 프리깃함 1척, 코르베급 호위함 3척, 경비정 7척, 기뢰전용 함정 5척, 상륙함 2척의 해군, 90대의 미그-29를 주력으로 하는 221대의 전투기를 가진 공군이 우크라이나 군사력의 전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력 균형(Military Balance)은 표와 같다(The Military Balance 2014 참조).
 
  우크라이나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공격을 했지만, 역부족이 아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아직도 군사력에 관한 한 강대국의 명예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세계 3위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막강한 핵 군사력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차 숫자가 우크라이나의 두 배가 약간 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판이하다. 러시아의 전차는 신형인 T-90이 350대, T-80 650대, T-72 이상이 1550대에 이르며, 우크라이나가 현역으로 운용하고 있는 T-62급의 전차 1만8000대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서방 측은 경고는 강하게 했지만, 실제로는 속수무책이었다. 미국을 제외한다면, 나토의 육군은 양적·질적인 면에서 러시아의 육군과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지 못하다. 공군을 활용하기에는 전쟁터의 질이 대단히 나빴다.
 
  나토 공군이 공격해야 할 표적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모두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는 대도시들인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공군력에서 열세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러시아군은 나토의 공군 작전이 극히 어렵다고 판단해 러시아 국경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대도시들로 신속하게 진격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미 2008년 코소보 사태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유럽 강대국들의 공군은 표적 획득(target acquision), 정밀 폭격(precision bombing)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국의 항공력이 개입하지 않는 한, 지상에서 파죽지세로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잠식하고 있는 러시아 육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토의 지원, 결국 美의 의지에 달렸다
 
1998년 10월 나토 공군 소속의 미 전투기들이 코소보 지역을 공습하기 위해 북이탈리아 아비노 공군기지를 이륙하고 있다.
  나토는 현재 28개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군사동맹이다. 미국이 포함돼 있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전통적 강대국과 소련의 위성국 혹은 연방이었다가 냉전 종식 후 독립국이 된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터키 등이 나토의 회원국이다.
 
  이 중에서 군사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춘 나라가 몇 나라나 되는지가 결국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가름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나토 28개국의 군사력은 러시아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나 나토 28개국 속에는 약소국이 너무나 많다. 양적인 면에서 나토 회원국 하위권 20개국의 육군을 다 합쳐도 러시아 육군을 당할 수 없다. 나토 회원국 28개국 중 육군의 숫자가 2만명도 안 되는 나라가 15개국이나 된다. 5만명 이상의 육군을 보유한 나라는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영국, 미국 등 8개국뿐이다. 미국이 참전할 경우 비록 3만4800명 수준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지만 캐나다가 참전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전쟁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나라들이 몇 나라 더 있다. 우선 프랑스와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군사력을 파병할 가능성은 없다. 국내경제가 파탄 상황에 처한 스페인과 그리스 역시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기 어렵다. 흑해를 통해 러시아와 직접 맞닿아 있는 터키 역시 우크라이나에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한다는 데는 대단한 결단을 요구한다.
 
  결국 미국,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이 남게 된다. 영국과 캐나다는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먼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나설 수 없는 처지다. 결국 미국의 의지가 없다면,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돕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美의 또다른 계산, 러시아 키워 주기?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은 러시아를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미국이 인식하는 21세기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국이 있는 곳은 유럽이 아니라 서태평양이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이 두렵지 1차산업, 특히 광물자원을 수출해서 겨우 먹고사는 러시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의 기를 살려 줌으로써 미국의 말을 잘 안 듣는 서유럽에 경각심을 갖도록 하고 중국을 북쪽에서부터 압박해 줄 수 있는 세력으로 러시아를 다시 키워 주는 것이 미국이 생각하는 세계 대전략 지도다.
 
  다만 미국이 더 이상 세계경찰의 노릇을 못하는 나라처럼 비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미국은 이스탄불 앞의 보스포러스 해협 근처에 항공모함을 파견, 무언의 힘의 과시를 할 것이지만, 이것이 크림반도가 다시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훼손할 경우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할 것이다. 러시아는 우선 크림반도 장악으로 만족할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 크림반도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받는다면, 러시아는 허약한 우크라이나를 애써서 점령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붕괴 직전에 놓인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켜 준 나라로 인식되고,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사실상의 영토로 인정받는 선에서 게임은 끝나게 될 것이다.
 
 
  군사력만이 평화를 보장
 
  21세기는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론 전쟁이 빈발하는 정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며, 특히 서유럽은 마치 평화 지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전쟁의 발발 빈도가 줄어든 것은 국가들이 전쟁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각종 무기의 발달과 군사대비 태세의 확립 때문에 전쟁을 도발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서유럽에는 진정한 평화가 도래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서유럽에서 미국이라는 변수를 완전히 뺀다 해도 서유럽은 평화의 지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충분한 군사력을 갖추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무능하고 허약한 나라,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의 통합을 유지할 수 없는 나라는 이웃나라에 능욕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작금의 크림반도 사태는 그 사실을 또 다시 증명해 준 사례다. 미국이라는 패권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동맹국들이 크림반도를 다시 빼앗아 우크라이나에 넘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배경을 바꿔 보면, 크림반도는 센카쿠도 될 수 있고 독도도 될 수 있다. 국제분쟁 이론을 동원해 그럴듯한 추측(educated guess)으로 크림반도의 운명을 예측해 보려 했으나,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현실 앞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머리 굴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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