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해외이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왜 멀어졌나?

글 : 황성준  前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sjhwang@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러시아가 舊소련 지역으로 再팽창하는 신호탄 될 수도
⊙ 몽골 지배에 저항하다 점령된 곳이 우크라이나, 몽골과 타협해 간접 지배받은 곳이 러시아
⊙ 몽골 지배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언어, 종교도 달라져

黃晟準
⊙ 50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경제학부 대학원에서 소련경제사 연구.
⊙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월간조선》 기자 역임.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 저서: 《유령과의 역사투쟁》.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매우 심상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군(軍)이 지난 2월 28일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크림반도를 사실상 장악한 데 이어, 3월 6일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 합병을 결의했다. 작년 말 반(反)정부 시위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내 문제를 넘어서 국제 문제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크림반도 장악과 관련, 미국과 EU 등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있으나, 러시아 측은 의회가 무력(武力) 사용을 승인하는 등, 양보할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다소(?) 성급한 분석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크라이나 내전’ 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니 미국-러시아 간의 ‘제2의 냉전(冷戰)’,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미국-러시아 국지전(局地戰)’ 가능성을 언급하는 전문가들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 다행스럽게도 미국-러시아 전면전(全面戰)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시화되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작년 11월 21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정부가 EU협정 체결을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친러-반서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 정부가 EU협정 체결을 중단하자, 이를 친러-반서구 노선의 전면화(全面化)로 해석한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반정부 시위는 작년 12월 2일 시위대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청을 점거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지난 1월 28일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가 사퇴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불붙기 시작한 시위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올 2월 들어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고, 결국 무력충돌 속에서 10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로 발전되게 된다. 이에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탈출, 러시아 측에 보호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사태가 이쯤에서 진정되었더라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제2의 오렌지 혁명(제1의 오렌지 혁명은 2004년)쯤으로 끝났을 공산이 컸다.
 
  그러나 역사의 주사위는 또다시 굴렀다. 2월 28일 일단의 무장집단이 크림반도를 장악한 것이었다. 이 무장집단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장집단이 크림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곧 이 짐작이 맞았다는 것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크림자치공화국의 태도는 더욱 노골적이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크림자치공화국은 3월 6일 러시아 합병을 결의했다. 그리고 크림자치공화국 군대를 창설, 크림반도를 사실상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통합성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크림자치공화국의 실질적 무력행사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크림자치공화국은 러시아 합병 여부를 3월 16일 주민투표를 통해 확정 짓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반도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주민투표는 형식일 뿐, 그 결과는 이미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와 관련 러시아 측은,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이며, 흐루쇼프가 행정 편의상 같은 소련 연방 소속이었던 우크라이나로 편입시킨 것이므로 러시아로 반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38년 뮌헨 위기 당시 열강은 히틀러에게 양보했지만, 결국 히틀러의 침략 야욕만 부추긴 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1938년 나치 독일의 주데텐란트 병합을 떠올리는 국제 전문가들도 많다. 1938년 당시 체코 영토였던 주데텐란트 주민의 대다수는 독일계였다. 이에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주데텐란트의 할양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해 전쟁의 위기가 유럽을 휩쓸기 시작했다. 유화정책으로 히틀러를 달래기에 급급했던 당시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뮌헨협정을 통해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떼어주는 것으로 전쟁을 방지해 보려 했다.
 
  그러나 역사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결국 이듬해인 1939년 9월 폴란드를 전면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현재 대다수의 국제정치학자는 나약한 영국과 프랑스 지도부가 주데텐란트를 히틀러에게 양도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再팽창 우려
 
  이번 크림반도 사태와 관련,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양도하는 것이 낫지 않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주데텐란트 병합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푸틴 러시아의 야심이 크림반도에서 멈출 것인가라는 점이다.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러시아는 새로 독립된 구(舊)소련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의 통합성 유지를 약속한 바 있다. 바로 이 약속을 기반으로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구소련 국가들의 독립성과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크림반도 사태로 ‘구소련 독립국가 영토 통합성’이 무너지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영토 분쟁은 크림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8년 8월 러시아군은 캅카스 지역의 그루지야(조지아)를 침공했다. 이 역시 그루지야로 편입된 남(南)오세티야 지역 분쟁 때문이었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한 몰도바공화국의 프리드네스트로비예 지역 분쟁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계 주민이 대다수인 이 지역 주민들은 몰도바공화국에 남는 것을 반대했으며, 이미 내전(內戰)을 치른 바 있다. 이 지역은 휴전(休戰) 상태에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 다시 불붙을지 모르는 지역이다. 북부 카자흐스탄 지역도 러시아계가 대다수인 지역으로서, 언제든지 영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사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힘을 잃었던 독일이 근력을 회복하면서 유럽 지도를 새로 그리려 시도했던 것처럼, 1991년 소련 해체로 약화됐던 러시아가 다시 기지개를 켜면서 유라시아 지도를 새로 그리려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제 전략 분석가인 조지 프리드먼은 저서 《100년 후》를 통해, 미국과 부활한 러시아의 전쟁을 예견(?)한 바 있는데, 이러한 악몽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것 같은 불길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러시아의 재(再)팽창 움직임을 저지할 실질적 수단을 미국과 EU가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우크라이나의 내부 갈등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본질은 서부 우크라이나와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열 및 갈등에 있다. 서부 우크라이나는 주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며, 친서방적 성향을 보인다. 이쪽 주민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는 서구에 편입되기를 원하며, 따라서 EU 가입을 원하고 있다. 반면 동부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 거주하며, 우크라이나계라 하더라도 친러 성향으로서 우크라이나어보다는 러시아어가 더 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동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역사적·혈연적 친근성을 보이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합병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친러 노선을 원하고 있다.
 
  1991년 소련 연방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는 친러, 즉 동부파가 집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4년 이른바 ‘오렌지 혁명’으로 친서방 서부파가 집권했다. 당시 집권한 사람이 바로 율리야 티모셴코이다. 그러나 2004년 오렌지 혁명과 티모셴코 정권에 대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티모셴코는 서부파라기보다는 중도파에 가깝다. 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통해, 재벌이 된 티모셴코는 서구와 러시아와의 줄타기 외교를 통해 생존하려 했으나, 결국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또 경제개혁의 실패로 경제는 계속 악화되고, 정경유착형 가스 재벌이라는 태생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결국 우크라이나 국민들로부터 버림받는다. 그 결과 불과 2년 만인 2006년 친러 동부계 야누코비치가 정권에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야누코비치는 이번 사태로 다시 정권을 내놓게 된 것이다.
 
 
  東슬라브족이 세 갈래로 갈라진 이유는?
 
  이 같은 서부 우크라이나와 동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어떻게 왜 발생한 것일까? 아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다른 민족이 된 것일까? 우선 우크라이나란 이름에 대해 알아보자. 우크라이나란 슬라브어로 우(U)란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前置詞)와 ‘변방(邊方)’을 뜻하는 ‘크라야(Kraya)’라는 명사(名詞)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직역하자면, ‘변방에’ 정도가 된다. 즉 우크라이나는 나라 이름부터가 ‘변방국가’란 뜻이다.
 
  러시아 역사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같이 러시아의 중심이었던 지역이 어떻게 ‘변방’이 되었는가? 현재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는 ‘하홀’이란 표현이 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변발(辮髮)’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을 욕할 때, “변발족(辮髮族)”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인이 왜 ‘변발족’이 된 것일까?
 
  동(東)슬라브족의 나라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외에도 벨라루스(백러시아)가 있다. 이들이 어떻게 나뉘게 됐는가의 역사는 나름 복잡하다. 그러나 비판받을 각오를 하고 단순화시키자면, 위 3개의 동슬라브족이 갈라지게 된 것은 13세기 몽골 지배 때문이다. 몽골이 침입하여 직접 점령했던 지역이 우크라이나라면, 벨라루스는 몽골에 저항했던 지역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친몽골 정책으로 몽골의 간접 지배를 받으면서 나름 독자성을 유지했던 지역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과거 일제(日帝)시대 때 ‘백(白)러시아 미인(美人)’이란 말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백러시아를 벨라루스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백러시아 미인’은 벨라루스 미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1920년대 러시아 내전 당시 적계(赤系·공산계) 러시아에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백계(白系·親차르계) 러시아를 말하는 것이다. 내전에서 패해 시베리아로 밀린 백계 러시아군이 패주하면서, 많은 백계 러시아인이 하얼빈 등 중국 도시로 피란한다. 이때 상당수의 러시아 귀족 출신 여인들이 생활고 등으로 인해 중국 유흥가로 진출하게 된다. 이러한 러시아 귀족 출신의 중국 유흥가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백러시아 미인’인 것이다.
 
 
  러시아 영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의 진실
 
스웨덴의 침략을 막아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러시아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그러나 몽골에 대해서는 굴종적인 입장을 취했다.
  13세기 몽골 침공으로 당시 동슬라브족(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원형)의 중심지였던 키예프는 황폐화된다. 이때 몽골 지배에 대처하는 방안을 놓고, 동슬라브족은 크게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를 중심으로 한 모스크바 세력이다. 모스크바는 최소한 외부적으로는 친몽골 입장을 취하면서 내부 실력을 양성하는 노선을 취한다. 몽골도 모스크바가 추운 북쪽에 치우쳐 있던 관계로 다루가치를 파견, 간접 통치하는 데 만족한다. 이때 전화(戰禍)에 시달리던 키예프 지역의 주민들이 대거 모스크바 지역으로 이동한다. 특히 키예프에 위치해 있던 슬라브 정교회(正敎會)가 모스크바로 이동함에 따라,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가 떠오르게 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현재 러시아에서 스웨덴 세력(게르만족)을 몰아낸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그가 스웨덴 등 서방 세력에 맞서기 위해 몽골과 연합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다. 훗날 몽골이 몰락하자, 러시아가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覇權)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반면 지금의 우크라이나 땅인 칼리치아-볼히니아 공국(公國)의 영주였던 다닐로 로마노비치는 모스크바와 다른 길을 걷는다. 로마노비치도 초기에는 몽골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곧 서구 세력과 연합하여 반몽골 항쟁(抗爭)을 거듭한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서구와 몽골 간의 주(主)전장터가 되어버린다. 로마노비치가 죽은 뒤 칼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은 곧 멸망하고, 우크라이나 땅은 14세기 중반부터 폴란드의 영향하에 놓이게 된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존재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코사크족’이다. 코사크족은 영어식 표현이며, 러시아어에 의하면 ‘카자크’이다. 발음이 비슷해서 중앙아시아의 독립국가인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카자흐족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카자흐족이 몽골계 유목민(遊牧民)이라면, 코사크족은 슬라브계 유목민이다.
 
  코사크족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學說)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인 학설은 과거 소련 아카데미가 규정한 ‘도망 농노(農奴)설’이다. 변방지대로 도망가서 유목민화된 러시아 농노로 훗날 러시아 황제가 이들을 사면(赦免)하고 대신에 변방 방어를 책임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 학설에 따르면 코사크는 독립적 민족이나 인종이 아니라, 러시아 내 특수한 신분의 하나이다.
 
  그러나 코사크를 독립된 민족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사실 코사크족을 살펴보면, 그 생활양식이 러시아보다는 러시아 남부 스텝 지역의 투르크멘계와 보다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유목민족이 지나가고 공존했던 러시아 남부 스텝 지역에서 단일 민족 혈통을 주장한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의 피가 섞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 코사크가 다른 유목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슬라브 정교회를 믿는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 남부 스텝 지역 유목민 가운데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슬라브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이 코사크인 것이다.
 
 
  언어도 별개로 발전
 
율 브리너가 주연한 영화 <대장 부리바>는 자포로지 코사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코사크라 해서 단일한 집단인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 스텝 지역에 러시아어(사실 넓은 의미에서의 슬라브어로서, 문법 러시아어나 문법 우크라이나어와는 많은 차이를 보임)를 사용하고, 정교회(다양한 이단 성향의 정교회를 포함한)를 믿는 다양한 부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코사크는 크게 두 개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러시아의 돈강(江)을 중심으로 한 ‘돈 코사크’이다.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의 주인공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의 ‘자포로지 코사크’이다. 율 브리너가 출연한 영화 <대상 부리바>의 소재이기도 하다. 현재 이 두 집단을 혼동하면서 온갖 잘못된 이야기들이 나오고도 있다. 이 ‘자포로지 코사크’가 반폴란드 운동의 주역이며,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인을 ‘하홀(변발)’로 부르게 된 것도 바로 이 ‘자포로지 코사크’가 변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변발은 몽골 지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코사크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언어와 종교는 민족을 구별 짓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이다. 비교적 빨리 몽골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는 몽골 지배 이후에도 리투아니아·폴란드 등 서구 가톨릭 국가들의 지배 및 영향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분리된 지 400년이 흐르다 보니,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는 단순 방언(方言) 수준을 넘어 각각 별개의 독립 언어로 발전한다.
 
 
  교회도 분열
 
  이러한 변화는 종교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16세기 말 ‘브레스트 합동(Union of Brest)’이 발생한다. ‘브레스트 합동’이란, 우크라이나 지역의 슬라브 정교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통합된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슬라브 정교회는 예배 의식은 정교회 방식을 따르지만, 모스크바 교회가 아니라 로마 교황청에 속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동방 의식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Estern Rite Ukraina Greek Catholic Church)’이다. ‘우니아트(종교합동파)’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서구 기독교 문명과 동방 정교회 문명 사이의 경계선에 우크라이나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현재 ‘우니아트’가 우크라이나의 주도적인 종파(宗派)는 아니다. ‘우니아트’는 서부 우크라이나 3개 주(州)에서만 우세할 뿐,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여전히 정교회가 우세하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우니아트’파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자체가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크게 ‘모스크바파’와 ‘키예프 독자파’로 분열되고 있다.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모스크바 정교회 산하에 있었다. 그러다가 1991년 소련 연방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세력이 강화되면서, 교회가 분열된 것이다. 이 분열 양상을 보면, 지리적 분열 양상과 거의 일치한다.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키예프 독자파’,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모스크바파’가 각각 우세를 보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주력 수출품은 ‘여자’?
 
  우크라이나는 전통적인 유럽의 곡창(穀倉)지대로 2011년 기준 세계 곡물 수출 3위 국가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제사정은 형편없다. 문제가 많은 러시아보다도 훨씬 못하다. 우크라이나의 주력 수출품은 ‘여자’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우크라이나 여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웃음과 몸을 팔고 있다. 유럽이나 두바이 등지에서 러시아 아가씨로 불리는 여인들의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여성이다. 심지어 러시아 모스크바 유흥가에도 상대적으로 ‘싼값’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나토 사이의 ‘중심축 국가(pivot state)’로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크림반도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위치한 곳으로서, 러시아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1995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함대 분할에 합의했다. 당시 2017년까지 러시아가 흑해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을 임차하는 것으로 협정을 맺었다. 그러다가 2004년 오렌지 혁명으로 친서방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수립되면서, 흑해함대 기지 임대료 문제를 둘러싸고 양자 간의 갈등이 빚어졌다. 이 문제는 2006년 다시 친러 정권이 수립되면서 해결됐으며, 이 당시 임대 기간을 2042년까지 연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서구 유럽 사이의 러시아 가스관이 지나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가스관 통로라는 점을 이용, 러시아로부터 국제시세보다 훨씬 싼값에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왔다. 러시아는 가스관을 잠가버리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와 맞섰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가스관은 항상 양국, 더 나아가 유럽 지역 국제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되어왔다.
 
  최근 EU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경제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U는 ‘완충국가(buffer state)’로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지원 이상의 그 무엇을 시도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제2의 주데텐란트를 두려워하면서도, 체임벌린이 뮌헨에서 했던 것 이상의 대안(代案)을 찾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장기 내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계 주민들은 물론, 키예프에 거주하는 많은 우크라이나계 주민도 우크라이나어보다는 러시아어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오랫동안 러시아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부 우크라이나 시골로 들어가면, 정반대의 세상이 펼쳐진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면 못 알아듣는 척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우선 영어로 말을 건 뒤, 영어를 못하는 것을 확인한 뒤(우크라이나 시골에서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혹시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은 뒤, 조심스럽게 러시아어로 말을 건네면, 이 경우에나 겨우 응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드네프르강 서쪽의 상황이다.
 
 
  드네프르강 어부의 소원
 
  오래전에 이런 우화를 들었다. 드네프르강 서쪽에서 어느 한 어부가 낚시를 하고 있는데, 금물고기가 잡혔다. 이 금물고기는 어부에게 목숨만 살려주면 뭐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빌었다. 이 어부는 엉뚱하게도 “몽골-타타르군이 핀란드를 점령하게 하라”고 부탁했다. 금물고기는 시키는 대로 했다. 곧 핀란드는 몽골-타타르군에게 점령됐다.
 
  몇 달 뒤, 그 금물고기가 다시 어부에게 잡혔다. 이번에도 금물고기는 애원했다. 살려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돈이든, 명예든, 여자든…. 그러나 어부는 “핀란드에 머물고 있는 몽골-타타르군이 물러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도 금물고기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또다시 몇 달 뒤, 금물고기가 어부에게 또 잡혔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재현됐다. 그리고 어부는 “다시 몽골-타타르군이 핀란드를 점령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금물고기는 정말 궁금해졌다. 금물고기는 어부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유를 알아야겠다. 죽여도 할 수 없다. 매번 원하는 게, 돈도 명예도 여자도 아니고, 몽골-타타르의 핀란드 지배라니? 그것도 한번 들어갔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들어가라고 하다니?” 어부는 지도를 펼치며, 금물고기에게 설명했다.
 
  “몽골-타타르 기마대가 핀란드로 갔다 왔다 하면, 누가 고생하지?”
 
  몽골-타타르군이 핀란드로 쳐들어갔다가 물러날 때마다 그 사이에서 골병이 드는 것은 러시아라는 얘기였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서부)우크라이나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는 우크라이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