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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일본이 보는 중국, 한국이 보는 중국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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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경제 등 다양한 카드 쥔 美와 달리 中은 카드 가진 것 없어
⊙ 日, “中과 전쟁할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는 자신감 있어
⊙ 中日이 갑자기 大타협할 경우 한국이 설 땅 없어

劉敏鎬
⊙ 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중국과 일본은 현재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제도 문제 등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대타협을 이룰 수도 있다.
  〈중국 외교부장, ‘서로 좋은 관계를 지켜 나가야만 한다’라고 말하면서 일·중(日中) 관계개선에 대해 언급.〉
 
  3월 9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 보도된 기사이다. 중국 외교 사령탑 왕이(王毅)의 발언에 관한 분석기사이다. 지난해 3월 외교부장에 취임한 왕이가 처음으로 언급한 중·일(中日) 관계개선에 관한 발언이란 점이 주목된다. 《아사히》는 양국 간의 대치국면 타개를 위한 신호탄 정도로 해석한다.
 
  필자가 알기로도, 중국 외교부가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센카쿠(尖閣)열도 대치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2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란저우(蘭州) 군부대에 들러 전쟁준비를 하라고 독려했다. 상대가 일본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후 1년여간 중국의 대일(對日) 외교 주도권은 강경파에게 넘어갔다. 그러다가 시진핑의 전쟁독려 메시지와 군부(軍部)의 강경대응론을 잠재우고, 마침내 외교수장(首長)이 나선 것이다.
 
  왕이는 이른바 중국 외교부 내 재팬스쿨(Japan School)의 마지막 주자이다. 최근에는 크게 약화됐지만, 1979년 개방을 전후해서 재팬스쿨의 영향력은 소련스쿨을 능가했었다. 공산 중국의 외교를 총괄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20대 때 일본에 유학했기 때문에 외교부 내에 재팬스쿨이 형성됐다.
 
  중국 외교관의 특징은 언어에 강하다는 점이다. 출신 대학이 어디냐가 아니라, 얼마나 현지어(現地語)를 잘하느냐가 유능한 외교관의 관건이다. 왕이는 일본어에 능통하다. 2004년부터 4년간 일본대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중국 외교부 내에 얼마 남지 않은 지일파(知日派) 외교관 중 한 명이다.
 
 
  中日 大타협 시나리오
 
  왕이는 “최근 일본 지도자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이 일·중 우호관계의 기초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하면서도 “관계 악화가 양국관계에 이익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확실하게 관계개선을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여준 강경일변도의 방침을 고려하면 뭔가 신호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왕이의 발언은 내외신(內外信)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자리에는 일본 기자도 많이 참석했다. 구체적인 것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일단 중국이 일본에 ‘약한 볼’을 던진 셈이다.
 
  왕이의 발표를 보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동북(東北)아시아에서의 변화와 긴장이 피부에 와 닿는다. 필자는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을 통해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머리 위를 넘어 대타협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었다. 왕이의 발언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될지는 모르지만 중·일 대타협론은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이다. 이런 판단이 나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최근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순히 러시아·유럽·미국 간의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닥칠지 모를, 중·일 충돌 이후 나타날 미국의 대응방안에 대한 최적의 모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한 3월 초, 워싱턴 싱크탱크들은 갖가지 관련 포럼을 열었다. 보수계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3월 4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조명한 ‘What is next?’라는 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오바마 정부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가 끝난 뒤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참석자들 모두가 관심을 보인 것이 중국 문제다. “중국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미국의 대일 대(對)아세안 관여의지를 판단하려 들 것이다. 일본과 아시아에 대한 워싱턴의 약속이 허풍이 아니란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국에 주는 교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질적(質的)·양적(量的)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20세기 냉전(冷戰)과 크게 다른 것은 경제 카드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경제제재를 통해 적을 봉쇄하는 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를 떠나, 앞으로 장기화할 것이다. 냉전 때 소련이 헝가리나 체코 침공 때 보여준 것과 같은 무력(武力)개입은 어렵다.
 
  러시아가 가진 비장의 카드인 가스수출 중단과 같은 에너지 무기화(武器化)에도 한계가 있다. 20세기 미국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파워를 워싱턴이 행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땅을 파기만 하면 생산되는 셰일석유와 가스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할 경우 미국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이것이 2014년 새롭게 등장한 미국 에너지외교의 골자이다. 에너지 공급 역할을 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것이 러시아가 단숨에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잠시 동안 우크라이나를 차지할 수는 있겠지만,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은 그 같은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 만약 중·일분쟁을 통해 센카쿠열도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할 경우의 후(後)폭풍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센카쿠나 아세안 해상로가 갖는 전술전략적 의미는 우크라이나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나마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다.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國債)를 팔아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폭락시키겠다고 호언하지만, 만약 그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중국이 먼저 붕괴한다. 달러가 폭락한다는 말은 달러에 연동(連動)된 중국 위안화가 폭락한다는 의미이다. 국제시장에 중국이 팔아치운 미국 국채를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이 재빨리 구입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실패로 끝난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 조치
 
1972년 9월 중국을 방문한 다나가 가쿠에이(오른쪽) 일본 총리는 마오쩌둥(가운데) 및 저우언라이(왼쪽)와 만나 중·일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
  중국의 카드로 희토류(稀土類)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일본과 센카쿠 분쟁을 벌이던 2010년 9월부터 갑자기 희토류 수출 제한을 단행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센카쿠 근처에서의 중국인 선원 체포 문제에서 시작된 희토류 수출제한 조치는 당초 일본, 나아가 세계 전체에 큰 피해를 입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본은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대체 자원을 개발하는 한편, 전(全) 세계에 흩어진 희토류 광산을 찾아 투자한 뒤, 곧바로 생산에 들어갔다.
 
  그 결과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가 있은 3년 후인 2013년 10월에는 희토류 가격이 대폭락했다. 최고가(最高價)이던 2011년에 비해 10분의 1 정도로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2012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량은 2010년에 비해 60%가 줄어들었다. 규제 이전의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수출물량 자체가 격감한 것이다. 일본은 자체 개발한 해외광산을 통해 중국산 희토류 가격을 한층 더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을 겨냥한 중국의 자원무기화 전술은 완전히 실패했다.
 
  사실, 중국은 카드는커녕 약점투성이인 나라이다. 가장 큰 약점은 역시 에너지 문제이다. 중국은 전체 사용 에너지의 3분의 1 정도를 외국에서 수입한다. 미국에서 석탄도 수입한다. 만약 미국이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을 생각이 있다면, 중동(中東)·캐나다·호주·아프리카와 연계해 에너지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러면 세계 최강이라는 중국경제는 한순간에 정지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만이 아닌, 중국에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따라서 돌발적인 사태로 중국의 미래가 어두워지기 전에,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것이 중·일 대타협의 첫 번째 근거이다.
 
  중·일 대타협의 두 번째 근거는 역사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1972년 9월 29일 중·일 국교정상화가 그것이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가 베이징(北京)을 방문,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를 만난 뒤 전광석화(電光石火) 식으로 양국 간 국교를 정상화했다.
 
  다나카의 중국 방문에 앞선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닉슨은 2월 28일까지 1주일간 중국에 머물면서 양국관계 개선을 논의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실제 미국과 중국이 국교정상화에 들어간 것은 닉슨 방문 7년 뒤인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 때이다. 다나카는 닉슨보다 7개월 늦게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일본은 미국보다 7년 먼저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중국에 일본은 만주사변 이래 1945년 종전(終戰) 때까지 700만명을 죽인 원수의 나라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미국보다 일본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전례(前例)가 42년 전에 만들어졌다.
 
  중·일 두 나라는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서로가 가진 장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 1989년 천안문사태 후 서방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됐을 때 중국의 숨통을 열어 준 나라도 일본이다. 현재의 아키히토(明人) 천황 부부가 일·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해 1992년 10월 23일부터 6일간 중국을 방문했다. 이와 함께 일본은 대중(對中) 경제제재도 풀었다.
 
 
  중국의 한계
 
  세 번째 근거는 바로 경제 문제이다. 도쿄(東京)보다는 베이징이 한층 주목하는 부분이다. 현재 중국은 내우외환(內憂外患) 상태에 있다. 밖으로 보여주는 화려한 통계나 수치와 달리, 그동안 숨겨 왔거나 무시했던 문제들이 일시에 터지고 있다. 한국 언론은 해외토픽 정도로 다루지만, 미국 언론은 대부분 중국경제가 하향(下向)곡선에 접어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중국경제 신화(神話)가 끝났다는 분석이 주류이다.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를 엄습한 공기오염에서 보듯, 경제개발에 주력한 결과 나라 전체가 숨도 못 쉴 정도로 퇴락했다. 빈부(貧富)격차, 노사(勞使)분규, 소수(少數)민족 문제, 권력형 부정부패 등으로 중국 내부의 모순이 격화하고 있다.
 
  중국에 반일(反日) 캠페인은 중국 내부 모순을 가려 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센카쿠 문제는 반일용 흥분제에 해당된다. 그러나 흥분제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반일로 나아갈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 중국은 경제적으로 그렇게 결정적인 나라는 아니다. 2013년 중·일 양국의 경제성적표를 보자. 일본의 2013년 경상수지는 330억 달러 흑자(黑字)이다. 중국은 1886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은 2013년도에 63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경상수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을 눌렀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급증한 에너지수입 부담으로 인해 일본경제 전체가 내리막 상태인 것처럼 비친다. 수출·수입으로 구성되는 2013년 일본의 무역수지는 1100억 달러의 적자(赤字)이다.
 
 
  韓中日의 경제성적표
 
  하지만 국제수지를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자본수지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본수지란 쉽게 말해 자산이나 채권의 거래를 통한 손익을 의미한다. 외국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돈과, 외국에서 빌린 뒤 지불하는 원금이나 이자의 가감(加減)이 자본수지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자본수지 통계에 관한 부분이다. 신문·방송 자료를 아무리 뒤져 봐도 한국의 자본수지 통계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일본 측 자료에 따르면 흑자인 경상수지의 상당액이 자본수지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갔을 것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 수출로 번 돈을 외국에서 빌린 돈의 이자와 원금상환으로 메우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경제통계 관련 자료를 보면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수지에 주목한다.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부분들이다. 그러나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국자본에 지불되는 이자에 관한 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일본의 경우 2013년 약 470억 달러의 자본수지 흑자를 냈다. 간단히 말해 아무 일 안 해도 외국에 투자한 돈을 통해 47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어떨까? 무려 2429억 달러의 자본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은 자본투자를 통한 수익이란 측면에서도 압도적으로 일본을 눌렀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둘 다 합칠 경우 일본은 800억 달러, 중국은 4303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보면 중국경제가 일본을 압도하고 있고, 중국이 일본을 필요로 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 듯하다. 과연 그럴까? 미시경제로 들어가 보자.
 
 
  중국과 일본의 차이
 
  중국은 인구가 13억명으로 일본의 1억2000만명에 비해 11배 가까이 큰 나라이다. 흑자가 엄청나다 해도 1인당 인구로 나누면 대략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더불어, 넘치는 인구에 대한 일자리를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현실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최대의 보금자리는 공장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이 팔려 나가야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내수시장은 경제 규모에 비해 극도로 빈약하다. 팔 수 있는 방안은 수출뿐이다. 수출을 통해 경제를 일으키고 고용을 늘리는 나라가 중국이다. 따라서 경제 전체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달한다(2013년 기준). 국내에서 통용되는 재화·용역 등의 25% 정도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통용된다는 의미이다.
 
  일본은 어떨까?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율은 12%대에 불과하다(2013년 기준). 자원대국 미국과 비슷하다.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물건을 수입한 뒤, 국내 자체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자력발전식 경제구도를 갖춘 나라가 일본이다.
 
  흔히 ‘무역대국’이라고 하지만 원래 일본의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를 넘지 않았다. 수출비율이 낮다는 말은 일본경제에서 차지하는 대중 수출의 비율이 낮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GDP대비 대중 수출의 비율은 2.2%대에 불과하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10배가 넘는 25%에 달한다. 중국경제의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일본보다 10배 정도 민감한 상태이다. 중국경제가 침체하면 그 영향이 한국에 미치지만, 일본은 극히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을 뿐이다.
 
  중국은 수출에 따라 경제의 향방이 달라지는 나라이다. 대일 수출이 어려워질 경우, 그 타격은 일본의 대중 수출이 어려워지는 경우에 비해 두 배나 강하다. 충격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고용 문제로 직결된다.
 
  GDP 규모로는 미국을 따라잡을 정도라고 하지만,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 그치는 나라이다. 2013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5000달러 선이다. 1989년의 한국 수준이다.
 
  중국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경제를 자랑하기보다 13억 인구를 안정적으로 먹여살릴 만한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와 무역이 절실하다. 일본이 중국을 떠나면 베이징과 상하이에 진출한 다른 외국 기업에까지 영향을 준다.
 
 
  중국과 전쟁을 한다면…
 
1937년 12월 중국의 수도 난징에 입성하는 일본군. 청일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중국에 승리한 경험은 일본인들의 중국에 대한 자신감의 바탕이 되고 있다.
  중·일 대타협론을 뒷받침하는 네 번째 근거는 일본의 중국관(中國觀)이다.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중국에 매달리는 ‘경제동물’이라는 이미지와 일본도(日本刀)로 중국인의 목을 치던 잔인한 일본군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일본이 중국에 밀리고 있는 것이 21세기 동아시아의 현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센카쿠 문제를 보더라도 한국 언론을 보면 일본은 더 이상 중국의 상대가 안 될 듯하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중국이 단숨에 일본을 집어삼킬 듯하다.
 
  과연 일본인들은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극단적인 경우 중국과 전쟁을 벌일 수 있고, 중국과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에 관한 부분이 없다. 중국과 전쟁을 할 수 없을 뿐더러, 해서도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중국과 전쟁을 할 경우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한국인의 유전자(遺傳子) 속에 박혀 있다. 이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필자는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이 차이점을 절감했다. 이미 중진(重鎭) 정치인이 된, 필자와 함께 공부했던 일본인 숙생(塾生) 대부분은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양국 간 이해관계가 어긋날 경우, ‘한판 붙을 수도 있고,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비단 정치인들뿐 아니라 일본의 중국전문가 대부분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상식 중 하나이다.
 
  지난해 5월 인도에서 이뤄진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의 발언에서도 그 같은 일본인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인도는 중국과 육상을 통해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일본은 바다를 통해 (중국과) 접촉해 왔다. 지난 1500년 이상의 길고도 긴 역사를 통해, 일본과 중국이 아주 좋은 관계를 가졌던 시기는 (한 번도) 없었다.”
 
  중국과 국경분쟁 중인 인도를 고려한 발언이라 볼 수 있지만, 일본이 중국을 보는 시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발언이다. 중·일 간의 불편한 관계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과, 서로 안 맞는 상황에서 일본이 중국의 생각에 맞춰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 아소 다로의 발언 속에 내재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은 중국을 결코 무서워하지 않는다. 충(忠)으로 시작되는 이름의 고려왕들이 무릎을 꿇고 몽고를 대했던 것과 같은 기억이 일본인에게는 없다. 오히려 신(神)의 도움으로 몽고군을 물리쳤다는 가미카제(神風)의 기억만 뇌리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수많은 대륙의 패자(覇者)들에 의해 유린된 한반도와 달리, 중국 점령군이 일본 땅을 밟은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 근현대사에서 있었다. 중국도 일본의 그 같은 저력을 인정한다.
 
 
  外侵에 굴복한 적 없다는 자부심
 
  일본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에 밀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6세기말 아스카(飛鳥) 문화의 중심인물로 고대(古代) 일본의 법체계를 정비한 것으로 알려진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남긴 편지는 일본이 자부심을 갖는 대중 인식의 출발점이다.
 
  ‘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
 
  수(隋)나라에 보낸 쇼토쿠의 편지 첫 부분이다. 풀이하면 ‘해가 떠오르는 나라의 천자(天子)가, 해가 지는 나라의 천자에게’이다. 쇼토쿠는 수나라의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여 고대 일본을 완성한 인물이다. 수나라로부터 배우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해가 떠오르는 나라’, 중국을 ‘해가 지는 나라’라고 했다. 더욱이 자신의 위치를 천황의 아들인 천자라고 격상한다. 천황이나 천자는 중국만이 쓸 수 있는 말로, 중국 변경의 나라는 왕이나 왕자로 불렸을 뿐이다. 일본인들은 1400여년 전에 보내진 쇼토쿠의 편지에서 보듯, 중국을 일본의 상전(上殿)이나 정신적 대들보로 여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1500년부터 중·일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아소 다로의 생각은 일본을 중국과 대등하게 생각한 쇼토쿠의 세계관과 연결돼 있다. 중국에 대해 머리를 굽히지 않는 과정에서 중·일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인이 항상 주장하지만, 미국 외에 일본을 점령한 외국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 당시 아시아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한 나라는 일본에 불과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태국이 독립국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영국에 의해 조종된 괴뢰(傀儡)왕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육지로 연결된 한반도에서 보는 중국과, 대륙과 차단된 섬에서 느껴지는 대륙은 전혀 다르다.
 
  고개를 숙이고 자존심을 버리는 나라의 경우 그냥 밀어붙이면 된다. 하지만 일본처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는 다르다. 대타협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나라가 일본이다. 아베가 외치는 집단적 자위권(自衛權)의 행사 대상은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는다. 일본이 미국과 함께 중국의 목을 죄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일 대타협론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중국인보다 더 중국을 잘 아는 일본인들
 
  일본이 중국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 중에는 일본인 특유의 연구정신과도 관계있다. 필자는 중국을 연구하는 미국인에게 중국어보다 일본어를 추천한다. 한국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에 관련된 엄청난 자료가 일본에 넘치고 넘친다. 원문(原文)이 중국에 있다 하더라도 정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본인의 연구 자세는 중국인과 사뭇 다르다. 중국이 자랑하는 《삼국지(三國志)》를 예로 들어 보자.
 
  인터넷서점인 아마존 일본판에 들어가 ‘삼국지’를 키워드로 넣으면 무려 1만5000건의 각종 상품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책이지만, 《삼국지》와 관련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 당시 입었던 군복 코스튬, 《삼국지》 스토리를 모티브로 한 어린이용 게임기, 《삼국지》 당시 요리를 재현한 조리법 같은 것도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들어가 《삼국지》를 찾아보자. 일본이 만든 정보를 그대로 베껴 옮긴 것이 《중국어》 삼국지 정보의 전부이다. 《삼국지》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스토리 속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연구하는 일본인도 넘친다. 중국인이 쓴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모르는 부분과 관점에 기초해 일본인들이 새로 창조해 낸 《삼국지》론이다. 사실 한국에서 나오는 《삼국지》 관련 주장의 대부분은 일본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삼국지》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많지만, 평생 《삼국지》 하나만을 붙들고 연구하는 한국인은 없다.
 
  《삼국지》를 대하는 일본인의 자세는 중국 문제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끊임없이 연구·분석·평가한다. 일본은 만주만이 아니라, 사실상 중국 대부분을 지배해 본 나라이다. 1931년 만주사변을 통해 만주를 손에 넣은 데 이어, 1937년 중·일전쟁을 통해 베이징을 점령한 뒤 이후 난징(南京)까지 밀고 내려갔다. 남부와 서부를 제외한 중국 전체가 일본군 영향권에 들어갔다.
 
  일본은 중국을 지배하는 동안 중국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했다. 중국인들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부분까지 깊이 파고 들어갔다. 중국인 이상으로 중국을 알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들이 남긴 연구서나 참고서들은 21세기인 지금까지 중국연구의 기본서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을 만만하게 보는 일본인의 자세는 그 같은 연구와 분석을 끝낸 뒤 내려진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근대 해군 건설시 淸日의 차이
 
일본인이 그린 청일전쟁 당시의 海戰圖. 자체개발한 서양식 군함으로 무장한 일본은 서양 군함을 수입하는데 그친 청나라 해군을 제압했다.
  중국인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근대식 군함(軍艦)을 둘러싼 중·일의 인식 차는 일본이 중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19세기 중엽 청(淸)은 해군력 강화에 나선다. 아편전쟁을 통해 유럽의 파워를 실감하고 난 후 근대식 군함이 승패(勝敗)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영국·독일·프랑스 등으로부터 군함을 사들였다.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이 군함에 눈을 뜬 것은 1866년이다. 오사카(大阪) 앞바다에서 군함 사열식이 열렸다.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작은 배에다 포(砲)를 단 6척이 전부이다. 1년 뒤 천황으로 즉위한 메이지(明治) 황태자가 해군력 강화를 지시했다.
 
  조선과 강화도조약에 들어가기 6년 전인 1870년, 일본은 근대식 군함 200척 배치를 계획했다. 어떤 방법으로 군함을 확보했을까? 일본인이 직접 군함을 건조하는 방식이었다. 유럽에 사람을 보내 최첨단 유럽산 군함을 수입한 뒤 전부 뜯어서 연구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수입한 유럽산 군함과, 일본이 만든 군함이 격돌했다. 결과는 일본의 압승(壓勝)이었다.
 
  수입한 군함에 탄 중국인과, 직접 만든 군함을 활용한 일본인 사이의 전투력은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유럽이 중국에 수출하는 군함에 큰 대포나 최신 무기를 제공할 이유는 없었다. 일본은 군함뿐 아니라 무기체계도 자신들에게 맞게 개조했다. 유럽산 무기를 수입한 후 유럽산 이상의 제품으로 ‘직접’ 만들어 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나아가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일본의 해군력은 바로 그렇게 건설되었다.
 
 
  日, 중국인의 유전자 꿰뚫어 보고 있어
 
  최근 한국 신문에는 중국제 최신 무기에 관한 기사가 많이 실린다. 달나라에 무인(無人)우주선을 보내는 나라니까, 미국과 러시아에 비견되는 첨단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일본인들은 다르게 본다. 간단히 말해 ‘페라리 로고를 단 중국제 자동차’ 정도로 생각한다. 달나라에 간 중국의 무인달탐사차량은 현재 달에서 고장이 난 채 방치된 상태이다. 중국의 무인우주선 발사장면은 전 세계로 중계됐다. 그러나 그 이후가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스텔스 기능을 장착한 최첨단 비행기라 해도 일본인이 보면 문제투성이 불량품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이 직접 만들지 않고, 외국산 부품을 조립해서 만든, 2% 부족한 중국제 짝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짝퉁은 신발·전화기·자동차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물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만 보면서 대충 따라가는 식이다. 일본은 그 같은 중국인의 유전자를 꿰뚫어 보고 있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중국에 관해 자세히 아는 나라가 일본이다.
 
  ‘중국과 한판 붙을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일본의 일부 ‘극우(極右)주의자’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회담이 열린 직후인 3월 7일,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인 기자와 식사를 했다. 그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대뜸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은 중국을 G2라 부르느냐?”
 
  러시아와 미국을 G2라 부르는 나라는 있지만, 정부 관료가 직접 나서 중국을 G2라 부르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중국에 주눅 드는 한국
 
지난 3월 5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연설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는 강하게 지적했지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제네바회의에서 있었던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왜 북한인권 문제는 별로 거론하지 않았느냐?”
 
  당시 제네바 회의에서 벌어진 상황을 몰라 뭐라 답할 수 없었다. 후에 보도를 보니 유엔인권위에 참석한 윤 장관은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비판하고, 말미에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했다.
 
  필자가 한국 장관의 행적을 보면서 주목한 부분은 한국의 대중관(對中觀)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제네바회의는 지난 2월 중순 발표된, 뉴욕 유엔인권위원회의 국제인권 현황발표의 후속 행사였다. 한국에도 보도됐지만, 당시 유엔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 문제를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인권침해자를 네덜란드 국제형사재판소(IOC)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을 재판소에 세우라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유엔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신문을 보면서 필자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올해 인권보고서에 처음으로 등장한 핵심적인 내용 하나를 한국 언론이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는 북한인권을 열악하게 만든 외부요소로 중국을 꼽았지만, 한국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는 ‘북한을 탈출한 북한주민에 대한 주변국의 인권유린이 심각하다’고 표현했었다. 올해부터는 ‘주변국’을 ‘중국’이라고 단정한 것이 인권보고서의 핵심 중 하나이다. 한국인이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마침내 유엔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나 공직자들은 이처럼 중요한 변화를 다루지 않았다.
 
  현장을 다녀온 한국 기자에 따르면, 윤 장관의 연설은 종군위안부와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한 것이 절반,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것이 3분의 1 정도였다고 한다. 유엔이 발표한 북한인권 문제는 간식 정도로 처리하고, 중국의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유린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일본에 대한 비판은 북한·중국과 공조(共助)해서 진행했다.
 
 
  한국의 선택은?
 
  중국을 대하는 일본인의 잔인하고 거만한 자세도 문제지만, 한국인이 보여주는 뭔가 움츠러들고 수동적인 모습도 민망스럽다. 2월 14일 오바마 방한(訪韓)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를 찾은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에게 던진 한국 기자의 질문은 한국인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유사시 독도가 한미동맹의 대상이 되는가?”
 
  젊은 기자의 의기양양한 질문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던지는 ‘통 큰 질문’처럼 느껴진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동중국해 방공(防空)식별구역이 한미동맹의 대상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할 수도, 던질 수도 없는 것이 한국인의 일상적 정서라는 게 문제다.
 
  중·일 대타협론은 아직까지는 저널리즘적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일 두 나라는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1992년 아키히토 천황의 방중(訪中)이라는 대타협의 경험과 교훈을 공유하고 있다. 만약 두 나라가 한국의 머리 위에서 대타협을 할 경우, 한국이 설 땅은 어디일까. 이는 통 크게 자주적·민족적으로 대처하자는 수사(修辭)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일본, 중국, 더 나아가 미국을 상대할 구체적인 방안을 차분히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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