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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정치 화제

대권후보까지 거론되는 런던의 예능정치인 존슨

예능감·정치감각에 화려한 업적까지 갖춰

글 : 윤정호  미 예일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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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14일 보리스 존슨 시장이 중국 베이징대학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존슨 시장 오른쪽은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
  “정식 코미디언 데뷔는 언제인지요?”
 
  “오늘도 덕분에 웃습니다.”
 
  “보수 정치인은 질색이지만 시장님은 예외입니다.”
 
  런던 시장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의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이다. 2013년 현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인 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존슨의 행선지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언뜻 보면 그에게서는 특이함을 찾기 힘들다. 존슨은 전형적인 영국 정치인처럼 보인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잉글랜드 남부를 지역구로 갖는 보수당 정치인이다. 지역에 따라 지지 정당이 상이한 영국. 보수당의 지지 기반은 잉글랜드 남부다. 대도시보다는 교외에서 강세를 보인다. 노동당의 우세 지역은 실업률이 높고 노동운동이 활발한 북부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노동당의 초강세 지역이다.
 
  존슨은 런던 시장에 출마하기 앞서 잉글랜드 옥스퍼드셔(Oxfordshire)에 위치한, 1910년 이래 줄곧 보수당 후보를 지지해 온 헨리(Henley)에서 하원 의원으로 활약했다.
 
  둘째,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 졸업생이다.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튼 칼리지는 1440년 설립된 이래 수많은 상·하원 의원을 배출했다. 웰링턴 경에서 현 수상인 데이비드 캐머런에 이르기까지 19명의 수상을 길러냈다. 옥스퍼드대 역시 영국 정치인의 요람이다. 2차 대전 뒤에는 윈스턴 처칠, 제임스 캘러헌(James Callaghan), 존 메이저와 고든 브라운을 제외한 모든 수상이 옥스퍼드를 나왔다. 존슨은 두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셋째,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영국 정계에는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정치인들이 많다. 현 부수상인 닉 클렉은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였고 교육부 장관 마이클 고브(Michael Gove)는 《더 타임스》 논설위원이었다. 노동당 그림자 내각의 내무부장관 이벳 쿠퍼(Yvette Cooper)는 《인디펜던트》 기자였고 에드 볼스(Ed Balls)도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활약한 바 있다.
 
  존슨도 마찬가지다. 그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의 논설위원과 보수 성향의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존슨은 여느 정치인과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성공한 예능 정치인이다. 존슨은 시사 퀴즈 프로그램인 <해브 아이 갓 뉴스 포 유(Have I Got News for You)>를 비롯,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에 힘입어 하원 의원과 그림자 내각의 일원이 됐다. 2008년 5월,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을 누르고 런던 시장이 됐다. 4년 뒤에는 연임에 성공했다. 존슨의 승승장구는 우연이 아니었다. 뛰어난 예능 센스와 빼어난 정치감각, 그리고 탁월한 업적이 결정적이었다.
 
 
  뛰어난 예능 감각
 
보리스 존슨 시장이 작년 11월 자전거를 타고 런던 거리를 돌아보고 있다.
  남다른 예능 감각이 존슨의 성공의 원천이었다. 존슨은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예능을 해왔다. 그는 “역주행(逆走行) 개그”의 달인이었다. 다른 정치인들과 정반대의 모습과 언변 그리고 행동으로 큰 웃음을 줬다. 기성 정치인들의 가식과 위선에 신물이 난 영국 국민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버지 스탠리 존슨(Stanley Johnson)을 빼다 박은 존슨의 외모와 옷매무새는 대다수 동료와 달랐다.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를 덮고 있는, 다소 긴 듯한 금발 머리는 거의 항상 헝클어져 있었다. 넥타이는 비뚤 빼뚤, 제멋대로인 경우가 허다했다. 풍성한 맞춤새의 양복은 주름져 있기 일쑤였다.
 
  매일 아침, 존슨의 옷차림은 한층 더 파격적으로 변했다. 새벽 운동 시간, 존슨은 낡고 헐렁한 후드 운동복 상의에 반바지 복장으로 현관 문을 나섰다. 비니 모자는 기본, 때로는 해골 무늬로 뒤덮인 두건을 쓰고 만화 주인공 같은 모습으로 도심을 달렸다. 출근 모습도 이채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존슨은 대형 관용차보다는 택시, 택시보다는 자전거를 선호했다. 날씬하다고는 할 수 없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정장 위에 헬멧을 쓰고 보급형 자전거 안장에 앉았다. 페달을 전속력으로 밟았다. 때로는 커피나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위태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존슨의 언변은 “TV나 라디오에서는 명료한 목소리로 간결한 문장과 쉬운 단어를 써라”는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상식을 깡그리 무시했다. 존슨의 말투는 어눌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장광설로 흐르곤 했다. 문장에는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단어들이 동거를 했다. 이튼에서는 킹스 장학생(King’s Scholar)이자 이튼 소사이어티(Eton Society) 멤버였고 대학에서는 브레켄베리 장학생(Brackenbury Scholar)으로 고전을 공부하고 옥스퍼드 유니언의 회장을 역임했던 존슨은 비속어, 런던 방언과 함께 라틴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난해한 영어 단어들을 뒤섞어 구사했다.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을, 변명보다는 사과를 하는 것도 존슨만의 특징이었다. 존슨의 전기 《보리스(Boris)》의 저자인 앤드루 김슨(Andrew Gimson)이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실수와 잘못을 인정했다. 봉변을 겪었던 과거사를 흔쾌히 털어놓았다. 토크쇼 패널들 사이에서 동네북이 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중세 종교재판소장 같은 질문 태도로 악명이 높은 시사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들도 그가 출연하면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존슨은 제러미 팩스맨(Jeremy Paxman)과 데이비드 딤블비(David Dimbleby)를 웃게 만든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존슨은 권위와 위신의 추락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각본 없는 ‘몸 개그’를 선보였다. 2006년 5월 독일 의원들과의 친선 축구 대회. 교체 멤버로 투입된 존슨은 공을 가진 독일 의원에게 달려갔다. 느닷없이 온몸을 날려 럭비 태클을 걸었다. 영국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2008년 12월에는 자동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탑 기어(Top Gear)>에 출연해 운전 개그를 선보였다.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랩 타임 측정에 도전했던 그는 연습 도중 서커스에 가까운 광란의 질주를 해 폭소를 이끌어냈다.
 
  시장 취임 첫해 8월에 있었던 환경 미화 봉사 중에는 ‘물 쇼’를 했다. 장화를 신고 대형 쓰레기 봉지 한 가득, 강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던 존슨의 하반신이 갑자기 사라졌다. 얕아 보이던 강에 빠졌다. 수행원들은 경악을 했지만 본인은 “시원하고 좋았다”고 능청을 떨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2012년 8월에는 공중 묘기를 펼쳤다. 영국 대표팀의 첫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 존슨은 빅토리아 파크에 설치된 짚 와이어(Zip Wire)에 올랐다. 높이 45m, 길이 320m의 와이어를 활강해 내려오는 대신 양손에 유니온 잭을 든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전 세계인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빼어난 정치 감각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전 편집장 소니아 퍼넬(Sonia Purnell)의 말과 같이 탁월한 정치 감각도 존슨의 성공에 일조했다. 존슨은 파격적인 언사와 행동으로 인기를 누렸지만 보수당 주류의 입장과 배치되는 주의 주장을 삼갔다. 이를 통해 보수당 지지층 사이에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동량”이라는 믿음을 쌓았다.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대외정책과 관련, 존슨은 유럽 공동체(EU)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e) 무임소장관 등 소수의 친유럽파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보수당 의원은 유럽 공동체를 불신한다. 존슨의 입장도 매한가지였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재직 시부터 EU안에 팽배한 관료주의와 영국을 적대시하는 정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던 그는 EU의 공동 농업정책(Common Agriculture Policy)을 반대했다. EU 예산의 40%를 전체 GDP의 1.6%밖에 창출하지 못하는 농업에 쏟아붓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민 정책도 낙제점을 줬다. 공동체 내부 이민자들만을 우대하는 과정에서 유럽으로 이민을 원하는 영연방 국가 국민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였다. 그랬기에 존슨은 EU에 대한 국민 투표를 요구해 왔다. 투표를 통해 영국 국민의 목소리를 EU 운영에 보다 많이 반영시키고자 했다.
 
  경제 현안과 관련, 존슨은 사회 안전망 구축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는 동시에 규제 만능주의를 경계했다. 다수의 보수당 의원과 경제 철학을 공유했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촉구하고 장애자에 대한 복지 혜택 축소 방침을 반대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존슨.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대 이후 런던과 영국 경제 부흥을 주도해 온 금융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경고했다. 2009년 2월 헤지 펀드 규제 강화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나친 규제는 유럽 헤지 펀드 업체의 80%가 집결해 있는 런던 금융 시장에 타격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2012년 12월에는 보수당 정부와 한목소리로 유럽 중앙은행의 감독 권한 강화 움직임에 반기를 들었다. 유로존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조치는 결과적으로 영국 금융 업체 전반에 큰 손실을 안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2월에는 금융사 임원들의 봉급과 상여금 제한 방침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임원들의 상여금 액수가 봉급 액수를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해 행위”라고 일갈했다. 우수 금융 인재들이 런던을 떠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취리히나 뉴욕 그리고 상하이 등 여타 금융허브들만 이롭게 해줄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성 결혼 등 주요 사회 이슈와 관련, 존슨의 입장은 지난 10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변화의 추이는 보수당 지도부의 입장이 변모해 온 추세와 상치되지 않았다. 2001년만 하더라도 동성 결혼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던 존슨. 같은 해 발간된 저서 《동지 여러분, 유권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Friends, Voters and Countrymen)》에서 그는 “만약 동성 간의 결혼이 허용된다면 세 명이 결혼하는 것도 받아들여져야 하고 세 명과 개 한 마리가 결혼하는 것도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결혼 합법화가 몰고 올 부정적 파급 효과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캐머런을 비롯, 개방적 사회 정책을 선호하는 정치인들이 당 전면에 등장하면서 존슨의 견해도 변하기 시작했다. 2003년 3월,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내용의 지자체 법 수정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다수의 동성애자 고위 관료를 포함한 보수-자민당 연립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뒤인 2010년 7월에는 동성애자들의 거리 행진에 참여했다. “동성 결혼이 문제시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2012년 12월, 존슨은 한발 더 나갔다. TV에 출연, 결혼 합법화 정책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존슨식 예능 정치 성공 공식을 입증한 앨 프랭큰

 
   앨 프랭큰(Al Franken) 미 상원 의원은 존슨식 예능 정치가 영국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수십 년 동안 예능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2008년 상원 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 뒤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첫째, 프랭큰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예능인이었다. 그는 극화(劇畵)를 통해 현실 정치를 풍자해서 웃음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이와 관련, 프랭큰은 미국 심야 시사 코미디의 대명사 중 하나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를 이끌었다. 프로그램이 탄생한 뒤 약 15년 동안 각본을 쓰고 출연을 했다. 이와 함께 언론과 정치권을 꼬집는 <레이트 라인(LateLine)> 등 TV 시트콤과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거나 배우로도 활약했다.
 
  둘째, 일관된 정치적 입장을 지향했다. 존슨이 일관되게 보수당 주류의 시각을 대변했다면 프랭큰은 줄곧 민주당 주류 노선을 따랐다. 위에서 언급한 예능 프로그램들과 시사 라디오 토크쇼인 <앨 프랭큰 쇼(The Al Franken Show)> 그리고 《거짓말과 거짓말쟁이들(Lies and Lying Liars who Tell Them)》과 같은 저서들에서 프랭큰은 신랄한 시사 풍자를 했다. 하지만 자극적이기에 쉽게 주목을 받지만 빈약한 근거로 인해 자충수로 귀결되는 허위 사실이나 음모론으로부터는 거리를 뒀다.
 
  셋째, 기대 이상의 업적을 남겼다. 상원 의원이 된 프랭큰은 스타 예능인에서 모범 의원으로 변신을 했다. 돌출 발언이나 행동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려 하지 않았다. 성실한 의정 활동을 했다. 2009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DS)로 고통을 받는 참전용사들에게 보조견(service dog)을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듬해에는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금융 제품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사를 선정해 온 어처구니 없는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수정 법안을 입안했다. 2014년 11월 4일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프랭큰은 연임에 성공한 최초의 코미디언 출신 상원 의원으로 미국 정치사에 기록될 것이다.
 
  탁월한 업적
 
보리스 존슨 시장이 작년 10월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영국 상품 홍보행사에서 영국산 자전거를 타 보이고 있다.
  끝으로 가시적 업적이 존슨의 주가 상승을 도왔다. 시장 취임 후 존슨은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빼어난 행정 능력의 소유자임을 입증했다. 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나랏일을 맡겨볼 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도록 했다.
 
  존슨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했다. 런던의 대표적인 저개발 지역이자, 우리나라에는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이 위치한 곳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트 엔드(East End)를 하이테크 단지로 변모시켰다. 페이스북의 부회장이었던 조아나 쉴즈(Joanna Shields)를 앞세워 테크 시티(Tech City)를 조성했다. 테크 시티의 성공을 위해 존슨은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입주 기업들에 런던 시립대, 임페리얼 칼리지 그리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등 런던에 자리하고 있는 유명 대학 연구진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장했다. 해외 기업인에 대한 비자 혜택, 창업 업체에 대한 감세 정책, 그리고 정부 사업에서의 특혜 제공 등 다양한 투자 유인책을 제공했다. 덕분에 2010년 85개였던 입주 업체 수는 2년 뒤 5000여 개로 폭증했다. 구글을 비롯, 시스코, IBM, 인텔, KPMG 그리고 맥킨지 앤 컴퍼니 등 세계적 기업들이 둥지를 틀었다. 테크 시티를 런던 금융 산업의 심장인 시티와 캐너리 워프에 버금가는 성장 엔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낭비를 근절하고 투명성을 개선한 것도 눈에 띈다. 2008년 시장 선거 운동 당시 시사 주간지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의 보도로 불거진 리빙스턴 시장의 인사 난맥상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존슨. 그는 자신이 승리하면 정치적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무능력자들에게 감투를 씌워주는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했다. 예산 운용의 낭비 요소를 찾아낼 수 있도록 강도 높은 회계 감사를 받겠다고 공약했다. 시민의 견해를 물어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한편 예산 지출 내역, 특히 각종 보조금과 사업 계약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존슨의 공약은 ‘공약(空約)’이 아니었다.
 
  취임 직후 그는 감사팀을 구성했다. 전임 시장의 예산 운영 실태를 검토하도록 했다. 시정 홍보지인 《런더너(The Londoner)》를 폐간해 약 300만 파운드를 절감하는 등 홍보 예산과 인력을 크게 줄였다. 이로부터 절약되는 예산을 감세 정책과 각종 공약 사업을 집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시 웹사이트에 일정 금액 이상의 예산 지출 현황을 전면 공개하는 한편 자신을 포함한 고위직 공무원들이 관여해 온 조직과 단체, 기관 등을 상세히 명시했다. 시민들로 하여금 인사가 제대로 된 것인지 여부를 한눈에 알아보게끔 했다.
 
  치안도 개선했다. 존슨은 범죄와의 전쟁을 중점 과제로 삼았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흉기를 이용한 범죄가 잦아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칼과 총기 소지를 막기 위해 시내 곳곳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는 한편 행정 인력을 줄이는 대신 순찰과 범죄 검거에 투입되는 인력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온라인 범죄 통계 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고 주요 대중교통수단 노선에 경찰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게 CCTV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범죄 대처 시간을 단축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시 통계에 따르면 범죄율은 존슨의 첫 번째 임기 동안 10.8%나 줄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집계도 대동소이하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천 명당 113.5건이었던 범죄율은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105.3건으로 떨어졌다. 약 7.2%가 감소한 것이다. 하락 추세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시 경찰 당국에 의하면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스마트폰 도둑이 기승을 부리며 절도는 17% 늘었지만 흉기를 이용한 범죄는 20%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청소년에 의한 중범죄 피해자도 약 30%나 감소했다.
 
2008년 선거와 린턴 크로스비

 
   2008년 런던 시장 선거는 호주 최고의 정치 컨설턴트 린턴 크로스비(Lynton Crosby)에게는 패자부활전이었다. 호주의 대표적인 보수 정당인 자유당(Liberal Party)의 일원으로 같은 당 소속 존 하워드(John Howard) 총리를 보좌하며 명성을 쌓은 크로스비. 상대 정당인 노동당 지지자들을 분열시키고 자유당의 잠재적 지지자들을 투표에 참여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바 있는 그는 2005년 호주 밖으로 눈을 돌렸다. 영국 정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마이클 하워드 당수를 보필해서 보수당의 정권 재탈환을 꾀했다. 역부족이었다. 33석의 의석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노동당의 재집권을 막지 못했다.
 
  크로스비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3년 뒤 런던 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 운동 초반, 각종 여론조사에서 리빙스턴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던 존슨이 보낸 SOS에 화답했다. 존슨 선대본부에 동참한 크로스비는 선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평소 스타일과 달리 논란을 빚곤 하는 우파 공약이나 정치 구호를 내세우는 대신 선거 운동의 세부 관리에 역점을 뒀다. 존슨을 신뢰할 수 있는 후보로 보이게끔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 지역 맞춤형 공약을 개발하고 이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리빙스턴이 간과했던 표밭을 발견하고 이를 공략해서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크로스비가 영국 상륙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존슨의 천거로 보수당의 2015년 총선 전략 수립에 참여한 그는 미국의 간판 선거 전략가들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될 것이다. 노동당에는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 그리고 고든 브라운을 보좌한 바 있는 스탄 그린버그(Stan Greenberg)가 버티고 있다. 보수당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재선 선거 운동을 진두지휘한 짐 메시나(Jim Messina)가 합류했다. 영국 차기 총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호주와 미국 컨설턴트들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될 전망이다.
 
  시사점
 
  2013년 12월 현재, 존슨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 중이다. 보수당의 킹메이커 애쉬크로프트 경은 캐머런을 제외한다면 존슨이 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 인지도가 제일 높다고 격찬했다. 노동당과 진보 진영은 존슨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 언론은 그의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존슨이 차기 수상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2015년 그가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복잡한 절차들을 단기간 내에 마쳐야 한다. 존슨이 수상이 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시장 임기가 끝나기에 앞서 시장직을 자진 사퇴해야 한다. 의원 출마를 선언한 뒤 지역구를 확보하고 하원 의원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본인의 선거와 아울러 당의 선거 승리를 견인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캐머런이 자진해서 당수직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당원들과 당 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2005년 개정된 선출 절차에 따라 당수 선거에 출마해 승리해야 한다.
 
  둘째, 스캔들을 막아야 한다. 존슨은 시장 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될 런던시 조직 내의 권한 남용과 실정, 그리고 독직 사건 발발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제까지 우호적이었던 여론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개인 스캔들도 복병이다. 존슨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여성 관련 추문에 휘말린 바 있다. 가정이 두 동강이 나고 정치 생명도 중대한 기로에 처했었다. 또다시 유사한 문제가 불거질 경우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셋째, 세대교체 요구를 극복해야 한다. 2005년과 2010년 선거를 거치며 젊은 피를 대거 영입한 보수당 안에는 1964년생인 존슨보다 젊은 정치인들이 많다. 이들은 무서운 기세로 자신들의 발언권을 확보하려 한다.
 
  이와 관련,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조지 오스본 재무부 장관을 차기 대권 주자로 지목한 바 있다. 130여 명에 달하는 20대에서 40대 초반의 신세대 의원들은 이른바 ‘301 그룹’을 결성해서 세대교체를 추진 중이다. 존슨이 2015년에 집권을 하지 못할 경우 이들의 물갈이 요구는 한층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의 사례는 예능 정치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정치적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별성 있는 예능 노하우를 개발해야 한다. 발언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 지지 세력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기회가 주어질 경우 자타가 공인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코미디언만큼 웃기는 시장에 버금가는, 성공한 예능 정치인이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
 
우리 런던 푸르게 푸르게

 
  존슨의 시정은 환경 정책으로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런던. 하지만 존슨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보리스 자전거(Boris Bike)’라는 애칭이 붙은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도입하는 한편 하이브리드 엔진을 사용해서 배기가스를 대폭 줄인 신형 2층 버스를 운행하도록 했다.
 
  이와 더불어 ‘리:리프(RE:LEAF)’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도심녹화 정책을 단행해서 찬사를 받았다. 존슨은 4년 임기 동안 런던에 1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공약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공약을 반기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런던 시민들은 정책 집행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반색을 했다.
 
  존슨은 철저한 사전 계획과 사후 평가를 시행했다. 40개의 우선 사업 지역을 선정한 뒤 돌배나무, 자두나무 그리고 자작나무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수종을 골랐다. 나무와 주변 환경에 적합한 식목 및 관리 방법을 시행하고 심어진 나무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했다.
 
  아울러 “시 사업은 예산을 초월하기 마련”이라는 편견을 깼다. 예산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업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시민 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의 열성적인 참여 속에 2008년에서 2012년 사이 1만200그루를 심었다.
 
  이를 통해 도심의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 Effect)을 완화하고 대기오염을 줄였다. 주민들의 거주 환경과 사업 환경을 개선했다. 하이드 파크, 리젠트 파크, 그리고 그린 파크 등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공원들을 지닌, 2008년 현재 서울보다 4배가 넘는 시민 1인당 공원 및 녹지 면적을 갖춘 녹색 도시 런던의 면모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존슨은 두 번째 임기 동안 1만 그루의 나무를 추가로 심을 계획이다. 살고 싶은 도시, 일하고 싶은 도시, 여행 가고 싶은 도시로서의 런던의 도시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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