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해외스포츠 소식

NBA ‘3점슛의 황제’ 레이 알렌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레이 알렌.
  동장군의 기승과 함께 실내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농구시즌이 돌아왔다.
 
  농구는 다른 구기종목과 달리 1점부터 3점까지 득점할 수 있는 등 방법이 3가지나 된다. 이 중 비교적 먼 거리에서 던져야 하는 3점슛은 골대에 작렬시키는 덩크슛(dunk shoot)과 함께 농구의 또 다른 볼거리로 꼽힌다. 특히 경기종료 직전에 터진 3점슛 한 방으로 승패가 뒤집혔을 때의 쾌감은 야구에서 볼 수 있는 역전홈런만큼이나 짜릿하다.
 
  국제대회에서 3점슛 제도를 처음 채택한 것은 1984년이었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농구대잔치’ 때부터 3점슛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농구에 3점슛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이보다 한참 전인 1945년에 있었다. 당시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포드햄 대학의 경기에서 3점슛 제도를 처음 시도했는데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 종전에 비해 점수가 더 많이 나와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판을 포함한 농구 관계자들은 경기운영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 때문에 3점슛은 단 한 차례 시범적으로 선을 보인 뒤 자취를 감췄다.
 
  이후 3점슛은 1961년 미국농구리그(ABL)가 흥행을 위해 채택했고, 미국프로농구(NBA)가 1976년 ABL을 흡수 통합하면서 1979-80 시즌부터 공식적으로 3점슛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3점슛은 시행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3점슛으로 인해 큰 점수차를 따라잡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짜릿한 역전승이 속출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흥미가 넘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키가 큰 선수에게만 공이 몰리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주를 이뤘는데 3점슛이 도입되면서 외곽슛이 늘어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수비행태도 다양해지고 선수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또한 농구는 무조건 장신이 유리하다는 기존의 틀을 깨고 단신들도 외곽슛을 무기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게 되자 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었다. 또한 3점슛 도입은 단신 슈터들의 가치 상승에도 크게 한몫했다. 결국 농구에 3점슛 제도를 도입한 것은 흥행에 도움이 된 것은 물론 단신 선수들을 위한 바람직한 변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농구의 슈터(shooter) 계보를 이어 가는 신동파, 이충희, 허재, 문경은, 방성윤 등은 비교적 장신은 아니었지만 득점력과 클러치 능력을 앞세워 국내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슛의 전설’로 불리는 신동파는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던 1969년 방콕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필리핀을 상대로 무려 50득점을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3점슛 제도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기록이 더욱 돋보인다.
 
 
  문경은 vs. 레이 알렌, 한미양국의 3점슛 기록은?
 
  이충희와 함께 80년대 후반 한국농구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던 고 김현준은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 최초로 6000득점(6063점)을 달성한 것은 물론, 3점슛 1407개를 기록해 ‘전자슈터’로 불렸다. 하지만 그의 3점슛 기록은 후배인 문경은(1699개)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현재 한국프로농구 SK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문경은 감독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 시즌 100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쳐도 17년이나 걸린다. 한국농구의 최다 3점슛 기록만큼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농구의 종주국인 미국은 어떨까? NBA의 최다 3점슛 기록 보유자는 레이 알렌(38·마이애미)으로 그는 지난해까지 총 2857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특히 알렌은 올해도 현역생활을 이어 가고 있어 NBA의 3점슛 기록을 여전히 경신 중이다.
 
  또한 알렌이 2005-06 시즌에 달성한 3점슛 269개는 NBA 역사상 단 한 명만 보유하고 있는 한 시즌 최다기록이어서 이 또한 쉽게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 3점슛 라인은 국제농구연맹(FIBA) 기준에 따라 6.75m이다. 하지만 NBA는 이보다 0.49m가 먼 7.24m이다. 국제무대에서 NBA의 기록을 한국보다 우선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알렌 이전의 NBA 최다 3점슛 기록은 레지 밀러(48·은퇴)가 달성한 2560개였다. 밀러는 현역시절 중요한 순간마다 3점슛을 성공시켜 팬들을 열광시켰다. 아울러 그는 경기 종료 단 몇 초를 남겨 놓은 긴박한 상황에서 승패를 뒤집거나 승리에 쐐기를 박는 그림 같은 3점슛을 자주 성공시켰다. 이 때문에 경기 종반에 밀러가 등장하면 팬들은 일제히 ‘밀러타임(Miller time)’을 연호할 만큼 유명했다. 하지만 밀러의 기록은 알렌에 의해 지난 2011년 2월 10일 깨지고 말았다.
 
  알렌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NBA 역대 최다 3점슛 기록 보유자로서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어느 분야이든지 개인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기쁨이자 일종의 보상이기 때문”이라며 “특히 최다기록은 깨지지 않는 이상 시간이 흘러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고 아울러 그만큼 오랜 시간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전기록 보유자인 레지 밀러에게는 그다지 유쾌한 소식은 아니었을 터. 알렌에게 “종전 최다 3점슛 기록보유자였던 밀러가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고 하자 알렌은 미소와 함께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밀러의 기록을 경신했을 때 그가 직접 전화로 축하문자를 보내 왔을 만큼 기뻐해 줬다”고 말했다. 알렌에 따르면 은퇴 후 NBA 해설가로 활동 중인 밀러는 알렌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와 문자 등을 이용해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좋은 친구 사이라고 한다.
 
 
  노장임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로 신기록 경신
 
경기 중 수비를 하고 있는 레이 알렌.
  알렌은 만 3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 게임당 평균 10.9득점 2.7리바운드 1.7도움을 기록했다. 2013-14 시즌이 진행중인 지금도 비록 시즌 초이긴 하지만 경기당 평균 9.9득점 2.6리바운드 2.5도움을 기록하며 여전히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특히 지난해 그의 3점슛 성공률은 0.419를 기록해 적잖은 그의 나이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는 ‘농구의 황제’로 불리며 자타가 인정하는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50·은퇴)의 NBA 통산 3점슛 성공률(0.327)보다 무려 1할이나 높은 수치이다. 알렌의 통산 3점슛 성공률(0.401) 또한 조던보다 더 좋다.
 
  알렌은 또 3점슛 외에도 현란한 움직임으로 팀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뛰어나 그를 이용한 다양한 공격전술을 가능케 한다. 이 때문에 미국 농구 전문가들은 종전 NBA 최고령 선수기록(45세)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현역선수로 알렌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알렌의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그의 소속팀 마이애미의 라커룸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알렌의 알몸을 보았는데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가 이제 막 데뷔한 루키(rookie)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농구선수로서는 적잖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역생활을 이어 가는 알렌의 철저한 자기관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로 NBA 경력 19년째인 알렌에게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묻자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철저한 자기관리이다. 특히 신체적인 관리”라며 “한 시즌 잘했다고 거기에 안주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한다. 시즌이 끝나도 항상 부족했던 부분을 찾아 그것을 보완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던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슈팅가드(shooting guard) 포지션을 맡고 있는 알렌의 신체조건(196cm/93kg)은 2m 대의 장신슈터나 포워드(forward)가 즐비한 NBA에서 그리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코네티컷 대학 시절부터 득점기계로 불릴 정도로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 또한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였다. 알렌이 대학시절에 기록한 한 시즌 최다 3점슛 기록(115개) 또한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6년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5번으로 밀워키에 입단한 알렌은 당시 팀 동료였던 샘 카셀, 글렌 로빈슨과 함께 ‘빅3’로 불리며 화려한 공격농구를 주도했다. 그 후 시애틀을 거쳐 보스턴으로 이적한 알렌은 폴 피어스, 케빈 가넷과 함께 2007-08 시즌 우승을 이끌며 생애 첫 NBA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세 선수 모두 전성기가 지났고 보스턴의 전력도 약해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되자 보스턴은 선두를 질주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당대 최고의 농구스타인 코비 브라이언(35)이 버티고 있는 LA 레이커스를 침몰시키며 짜릿한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3점슛 황제 알렌, “NBA 우승했을 때 가장 행복”
 
  알렌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NBA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가 농구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스턴에서 우승하기 위해 팀 동료들과 함께 정말 많은 땀을 흘렸고 간절히 원했던 것을 이루었기에 그 감동 또한 매우 특별하고 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현역선수 중 자유투와 3점슛 성공률이 가장 좋은 선수로 유명한 알렌은 NBA 우승뿐만 아니라 올스타 10회 선정,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등 각종 수상기록도 화려하다. 특히 2008-09 시즌에는 자유투 총 249개를 던져 이 중 237개나 성공시키며 성공률이 무려 0.952에 달했다.
 
  농구장 밖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의 희망(Hope of Ray)’ 재단을 설립해 꾸준히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1998년에는 영화 〈He got game〉의 공동주연을 맡아 배우로도 활동했다. 특히 알렌은 NBA 선수 대다수가 몸에 새긴 그 흔한 문신 하나 없으며 미 언론이 선정한 ‘굿가이(good guy)’ 상을 세 차례나 수상했을 정도로 코트 안팎에서 모범적인 생활로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
 
  모범적인 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지난해 보스턴을 떠나 마이애미로 이적한 알렌은 또 다시 NBA 우승이란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총 82경기 중 79경기에나 출전해 만만치 않은 체력 또한 과시했다. 마이애미로 이적한 뒤 기자와 만났던 알렌은 “새로 이적한 마이애미에는 훌륭한 선수도 많고 코칭스태프나 구단직원들도 친절해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NBA 전문가들은 알렌을 포함해 지난해 우승전력이 건재한 마이애미가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州)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알렌은 골프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그에게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냐고 묻자 “날씨에 따라 다르다”며 “마이애미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편이고 날씨가 좋을 때는 주로 골프를 친다”고 말했다. 알렌에 따르면 그의 핸디캡은 제로(0)라고 한다. 그에게 “나중에 프로골퍼를 해도 될 만큼 실력이 좋다”고 하자 알렌은 두 손을 가로저으며 “아마추어치곤 잘 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프로에 갈 정도는 아니다”라며 겸손해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레이 알렌
 
휴식을 위해 벤치로 돌아온 알렌이 땀을 흘리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알렌은 기자와의 인터뷰 말미에 갑자기 유창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에게 “한국말을 할 줄 아냐”고 묻자 “잘은 못하고 단어 몇 개만 아는 정도”라고 했다. 이어 알렌은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털어놨다.
 
  “한국에 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미군(공군)이어서 오산과 군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가 한국에서 옷이나 신발 등의 선물을 사서 미국으로 보내 주시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휴가 때 미국에 오시면 한국사람들의 친절함이나 아름다운 한국 경치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한국말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렌은 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도 꼭 한 번 한국에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3점슛 제도는 기존농구의 패러다임(paradigm)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3점슛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면서부터 선수는 물론 지도자들까지 비중을 두고 더 많은 3점슛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만 해도 미국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농구 종주국의 자존심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서울올림픽대회에서 러시아(구 소련)에 82 대 76으로 패해 동메달 획득에 그쳤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라이벌 미국을 침몰시키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바로 3점슛이었다. 당시만 해도 장신선수들의 3점슛 시도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쿠르티나이티스 선수는 미국과의 경기에서 3점슛 4개를 성공시켜 미국의 허를 찌르며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은 서울올림픽 패배를 계기로 프로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추진했고 결국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그 유명한 ‘드림팀(dream team)’을 꾸려 출전했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당시 NBA 올스타로 구성된 드림팀은 8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서울올림픽에서 구겨진 농구 종주국의 체면을 세웠다. 이후 미국은 알렌이 참가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3연속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에 석패하며 동메달 획득에 그치고 말았다. 미국은 이때도 아르헨티나의 3점슛 공격에 의해 무너졌다.
 
  지난날 올림픽 농구 역사가 말해 주듯 3점슛은 이제 농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득점무기로 자리 잡았다. 활용도 또한 높아졌고 이를 이용한 다양한 전술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는 ‘3점슛의 황제’ 레이 알렌이란 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알렌에게 언제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 갈 계획이냐고 묻자 그는 “그건 나도 궁금하다”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스스로 이제 아니다라고 느끼면 그땐 후회 없이 유니폼을 벗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농구무대인 NBA에서 ‘3점슛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알렌에게 농구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알렌은 “좋은 질문”이라고 운을 뗀 뒤 “나에게 농구란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농구를 빼 놓으면 내 삶을 논할 수 없을 만큼 농구는 내게 너무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이다. 인생이란 긴 여행에 농구와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NBA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NBA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에 하나는 ‘3점슛의 황제’ 알렌이 현역으로 뛰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신기록 행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날마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알렌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올 겨울 동장군의 기승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4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