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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東北亞 防空식별구역의 국제정치학

한국은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 있을 것인가?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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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槿惠 정부의 親中노선 경계하던 美, KADIZ 확대 반겨
⊙ “미국에 반대하면서까지 승부수를 건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는 바이든 발언은 對韓경고
⊙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日은 美와 공동대응, 韓은 단독대응
⊙ 아베의 韓日 頂上회담 제안은 對美用

劉敏鎬
⊙ 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2013년 12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조지프 바이든 미 부통령과 만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동북아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일(韓日) 간의 과거사(過去事) 문제가 해를 넘기고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나오는 일본의 태도만이 아니라,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불협화음이 한미(韓美)·미일(美日), 나아가 한·미·일 3국 군사동맹 문제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워싱턴으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역사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한일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중립(中立)을 지킨다고 하지만, 이 문제는 동아시아 안전보장의 안전판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와 같은 문제를 핵심 이슈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다. 정치, 나아가 외교로서의 ‘어제의 문제’는 평화와 안정을 전제로 한다. 위기상황이거나 전쟁 중인 상태, 지금 당장 속이 타고 배가 고픈 상황에서 과거사를 따진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당장 필요한 것은 현실타개 방안이다.
 
  한반도의 현재 상황은 결코 평화 상태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 어디를 들여다봐도 평화가 아닌, 살벌한 반목과 투쟁으로 범벅이 돼 있다. 한반도가 평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은 한반도 밖에서 볼 때 한층 확연하게 드러난다. 2013년 가을부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自衛權) 문제가 갑자기 세상에 등장했다. 뒤이어 11월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발표와 함께 아시아 전체가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진행되던 한·중·일(韓·中·日) 간의 치킨게임이 마침내 하늘로 솟아올라 주변국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
 
  영토(領土)·영공(領空)·영해(領海)는 협상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서로 이견(異見)이 생길 경우 무력(武力)충돌 외에는 별다른 해결 방안이 없다. 1·2차 세계대전처럼 전면전이 될지, 1982년 포클랜드전쟁처럼 국지전(局地戰)이 될지로 나눠질 뿐이다. 중국·일본에 이어, 마침내 한국·미국·호주·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 거의 모든 아시아권 나라가 뒤얽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간단히 말해, ‘허락 없이 들어올 경우 물리력을 동원해 격추시키겠다’는 의미가 들어간 개념이다. 역사와 과거를 핵심 이슈로 내세울 수 없는, 목이 타는 현실이 마침내 한반도에 드리워진 것이다.
 
  한국은 중국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방공식별구역에 대해 나름대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해당 지역에 전투기를 급파하고, 이어도·마라도·홍도가 포함된 방공식별구역(KADIZ)을 설정한 것이다.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오랜만에 한국이 중국에 맞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조지프 바이든 미 부통령이 말했다는 “미국에 반대하면서까지 승부수를 건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예로 볼 때 결코) 좋지 않았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는 말은 통역의 잘못이 아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워싱턴 상원의원 출신이다. 오류를 유발하게끔, 문장 속에서 주어(主語)를 생략하면서 미국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겠지만, 중국과의 관계 심화에 집중하는 한국에 대한 외교적 경고라 볼 수 있다.
 
 
  美, 朴槿惠를 親中反日로 인식
 
  워싱턴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때부터 친중(親中)정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맹국임을 감안해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고 있지만,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미국에서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친중반일(親中反日) 정치인으로 굳어져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중국 측 방공식별구역의 일부를 포함하는 공간을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해 맞대응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일본도 한국의 정면대응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어도는 원래 일본 측 방공식별구역(JADIZ)에 들어가 있다. 이곳은 중국에 이어 한국이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하면서, 한·중·일 3국 모두의 공동 방공식별구역이 되어 버렸다.
 
  한국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겠지만, 사실 3국 공동의 방공식별구역이란 말은 실효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어도 상공에서 교전이 벌어지지 않는 한, 방공식별구역의 주인은 사실상 3국 공동이 되는 셈이다.
 
  한국이 중시하는 것은 이어도 위의 방공식별구역이 아닐 것이다. 이어도에 관한 영유권(領有權)을 보장받는 한, 한·중·일 3국 공동 방공식별구역도 문제될 것이 없을 듯하다. 이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 입장이다. 따라서 일본은 중국에 반발하는 한국을 내심 응원하고 있다. 혼자 상대하기보다 한국과 함께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방공식별구역과 관련된 한국의 대응방안을 보면, 같은 입장에 처한 일본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하나 있다. 미국과의 교감 여부이다. 간단히 얘기해 일본은 미·일동맹이란 틀 속에서 중국에 맞서는 데 비해 한국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동맹 60주년이라고 하지만,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양국의 긴밀한 협조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지 6일 만인 2013년 11월 29일, 미군 초계기와 일본 전투기 등 10여 대가 함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상공을 날아갔다. 미군 폭격기 B-52 두 대가 중국을 무시하고 날아간 지 사흘 만이다.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와 조지워싱턴호가 해상에서 대기하고 일본의 준(準)항공모함 이세(伊勢)호도 필리핀 해역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日, 實戰 각오한 對中시위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親中反日 정치인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2013년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국 젊은이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미국이 항공모함 3척을 같은 지역에 보낼 경우 곧바로 전쟁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2척의 항공모함이 동시에 결집돼 있다는 것은 준전시(準戰時) 상태라 보면 된다. 여차하면 공격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중국은 최신예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미·일 항공군단의 시위(示威)를 지켜봐야만 했다. 만약 대들었다가는 곧바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중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11월 29일의 항공작전은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처음으로 보여준, 실전(實戰)을 각오한 군사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태평양전쟁 당시처럼 ‘덴노 반자이(天皇萬歲)’를 외치며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자위권을 기반으로 한, ‘미·일동맹 2.0’이라는 보험을 확실히 든 상태에서의 군사작전이다. 미국 항공모함 2척이 일본 자위대의 안전을 보장한 것이다. 해상에서의 공군력은 눈에 드러나는 비행기 몇 대로 판단되지 않는다. 하늘의 비행기를 조종 통제하는, 전천후 공수(攻守)체계를 갖춘 최신예 항공모함에 있다.
 
  한국은 어떨까? 일본보다 3일 늦은 2013년 12월 2일 해상초계기(P3-C) 한 대가 이어도를 순찰한 뒤 돌아왔다. 전투기나 폭격기가 아닌 초계기를 보냈고, 미국의 지원이나 참여는 없었다. 이 사실은 국내 신문·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한국은 중국에 특별한 통보를 하지 않고 이어도 주변을 순찰했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포함된 행동이다. 긴급발진과 같은 중국으로부터의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자주독립국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라 볼 수 있지만, 큰 의문점이 남는다. 왜 일본은 미군기와 함께 중국에 대응하는데, 같은 동맹국 입장인 한국은 홀로, 그것도 초계기 한 대 달랑 띄워 중국에 대응하는지. 초계기를 띄울 때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조체제는 있었는지. 수많은 군사위성을 이용한 미군 정보의 지원하에 움직였는지, 아니면 단독으로 행동했는지.
 
  내막을 알 수 없지만, ‘미·일동맹 2.0’과의 격차를 현격히 감지할 수 있는 사건이 이어도 상공에서 발생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하늘이 중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유린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미국이 한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빗나간 기대
 
  방공식별구역에 대응하는 일본의 발 빠른 행동은 동맹국 미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언뜻 보면, 일본은 미·일동맹 2.0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에 성공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일본은 방공식별구역에 대응하는 미국의 반응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핵심은 ‘우려(concern)와 철회(withdraw)’를 둘러싼 미·일 간의 입장 차에서 비롯된다.
 
  2013년 11월 30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면 톱기사로 바이든 부통령의 방일(訪日) 관련 기사를 실었다. 12월 1일 방문할 바이든 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철회를 요구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 뉴스는 한국에도 곧바로 전달됐으며, 미·일동맹 2.0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뉴스로 분석됐다.
 
  그러나 바이든 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만남에서 ‘철회’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등장한 말이 ‘깊은 우려(deeply concern)’이다. 이는 아예 없던 걸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으로 볼 때 걱정된다’는 의미가 포함된 외교적 수사(修辭)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우려’라는 말과 함께 ‘받아들이지 않는다(not accept)’는 말도 동시에 사용했다. 《요미우리신문》의 예측은 아주 크게 빗나간 셈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후 중국·한국을 돌아다니며 똑같은 발언을 반복했다. 중국 방공식별구역의 ‘철회’가 아닌 ‘깊은 우려’가 바이든 부통령의 아시아 3개국 방문 메시지의 핵심이다. 외부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본 내 안보 관계자들이 들끓은 것은 물론이다.
 
  일본에 보내는 미국 정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미·일동맹 2.0을 통해 일본의 안보를 지키기는 하겠지만, 방공식별구역과 관련해서는 ‘깊은 우려’를 불식시켜 줄 중·일 양국 간의 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동맹국 미국’에 기대했던 단호한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미국 민항기(民航機)가 중국 정부에 비행 방침을 통보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일본인들을 낙담시키는 것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의 빗나간 예측과 관련해, 필자의 일본인 친구는 1972년 전(全) 세계인이 경험했던 어두운 기억 하나를 되새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마치 1972년 닉슨독트린을 연상시킨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다른 뉘앙스로 변죽을 울리면서,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상황도 불확실하게 만드는 이중(二重)외교이다.”
 
  일본은 ‘미·일동맹 2.0’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지만, 미국이 애매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중국의 기선(機先)을 제압하려던 당초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주목할 부분은, ‘철회’ 대신 ‘우려’를 선택한 미국의 애매한 입장이 결코 중국을 최종 승자(勝者)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핵무기를 탑재한 전폭기(戰爆機)를 보내 무력시위를 한 것처럼,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 중국 전투기가 일본 비행기를 공격할 경우 미국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관계국과의 대화나 협조하에 방공식별구역을 운영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둔 상태이다. 중국이 미국의 우려가 사라질 만한 합의사항을 만들어 낼 경우에는 괜찮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앞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중국을 화나게 한 英의 二重플레이
 
  미국이 보여준 애매한 입장은 미국의 원형(原型)에 해당되는 영국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3년 12월 2일부터 3일간 베이징을 공식 방문했다. 수십 명의 경제사절단과 함께 ‘구원(舊怨)’을 회복하고, 양국 간의 경제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구원’이란 캐머런 총리가 런던에서 달라이 라마를 공식 접견하면서 벌어진 중국과의 앙금이다.
 
  공교롭게도 캐머런 총리의 방중(訪中)기간 중 방공식별구역 문제가 터졌다. 중국 미디어들은 다투어 영국 총리의 의견을 물었다. 캐머런 총리는 뭐라고 말했을까?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캐머런 총리와 만난 뒤 곧바로 회담내용을 공표했다.
 
  “영국은 중국의 영토주권를 존중한다.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이며, 영국은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중국 모든 신문·방송은 캐머런 총리의 발언을, 티베트 문제를 넘어 방공식별구역에까지 확대해서 전달했다. 캐머런 총리가 본인의 입으로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일단은 영국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지지했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알려졌다. 캐머런 총리나 영국 정부는 중국 미디어의 확대해석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캐머런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하던 같은 시기, 조지 잠벨라스(George Zambellas) 해군참모총장은 도쿄에 들러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영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지지하는 나라이다. 회담 후 두 사람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영국과 미국은 센카쿠 열도(尖閣諸島)를 포함한 동중국해의 방공식별구역 문제에 대해 서로 협조하면서 공동 대처하기로 약속했다.”
 
  베이징에서 캐머런 총리의 발언과 도쿄에서의 해군참모총장의 생각은 뭔가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관영 미디어는 즉각 잠벨라스 참모총장의 성명을 비난했다. 영국이 이중외교를 벌인다는 얘기가 중국 인터넷을 통해 한순간에 퍼져 나갔다. BBC는 12월 3일 자 보도에서 “영국은 중국의 돈에만 관심이 있지 군사·외교는 일본과 놀아난다”는 중국 측 비판을 상세히 전했다. 바이든 부통령에 대한 일본의 비난에 비견할 수 있는 상황이 중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평가’라는 말의 의미
 
  우려와 철회를 오가는 미국의 애매한 외교적 수사는 2013년 12월 8일 발표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나타난다. 12월 6일 바이든 부통령이 서울을 찾았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은 박 대통령의 생각을 ‘평가(appreciate)’한다고 밝혔다. ‘동의(agree)’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의 국방부가 방공식별구역 조정안을 발표했을 때에도 미국 국무부는 ‘평가한다’는 말로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사전(事前) 협의를 행하면서 신중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추구하고 있다.”
 
  ‘동의’나 ‘수락’과 같은 말이 없다. ‘평가’라는 말은 법적 효력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이 ‘평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우꼬리가 열 개쯤 달린 외교 달인(達人)의 표현’이란 생각을 했다. 일본을 고려하고, 중국을 자극하는 묘한 접점(接點)에서 탄생한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동의나 수락이란 말을 할 경우 이미 같은 지역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일본을 자극하게 된다.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중국에는, ‘미국의 평가하에 재조정된 동맹국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이란 의미를 갖게 된다. 중국을 제외한 한·미·일 모두가 만족할 수준에서 나온 말이 평가이다.
 
  한국 내에서 방공식별구역 확대와 관련해 미국의 동의나 수락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일본에 대해 우려와 철회를 오간 미국의 입장을 보면, 그 같은 요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현명하게 대처한, 오랜만에 보는 고난도(高難度)의 발 빠른 외교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官民’과 ‘民官’의 차이
 
2013년 12월 8일 국방부는 방공식별구역(KADIZ) 확대안을 발표했다.
  일본이 미국에 실망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자국 민간비행사(社)의 비행계획서를 중국에 제출하도록 한 부분이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민간비행사의 비행계획서를 베이징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 앞서 일본은 자국 민간비행사의 비행계획서를 중국에 제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미국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내막을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 ‘관민(官民)’이냐 ‘민관(民官)’이냐에 대한 입장차가 일본과 미국에서 나타났을 뿐이다. 일본은 ‘관민의 나라’이다. ‘관’이 ‘민’의 위에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민’이 ‘관’의 위에 있다. 따라서 일본은 정부가 민간비행사에 명령을 할 수 있지만, 미국은 거꾸로 민간비행사가 정부에 통보하는 식의 문화가 일상적이다. 관이 민을 통제할 때는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공연히 관이 설레발을 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관이 전부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 비행사가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비행계획서를 중국 정부에 제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미국 민간비행사 스스로가 내린 결론일 뿐이다. 미국 정부는 거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보면서 미국의 몸 사리기가 유독 눈에 띄지만, 민간비행사의 비행계획서 제출 문제는 본질과 동떨어진 이슈이다.
 
 
  일본이 ‘미군 2중대’를 자처한 이유
 
  이중삼중 외교로 볼 수 있는 미·영 양국의 행태는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앵글로색슨계 외교의 전형적인 본보기라 볼 수 있다. 하루아침에 친구를 버리지는 않겠지만, 친구라 해도 도와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함께 발을 맞추는 식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친구가 누구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리기 어려울 경우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그때는 원칙만 밝힌 채 한걸음 물러나는 식이다. 현장에서의 난리법석은 현장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맡기는 식이다. 굳이 발을 깊숙이 담그면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싸움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바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철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이다. 대화를 강조하면서 ‘너희들 문제는 너희 스스로가 해결하라’는 의미이다. 한편으로,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현실주의에 기초해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일본이 2013년 가을부터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급속히 이슈화한 것도 바로 현실주의적 국제정세에 기초한 결정이다. 일본은 세계의 경찰 미국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퍼 파워 미국이 몰락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와 같은 동맹국의 위상을 지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로 아시아 전체가 소란스러울 때, 미국의 최대 현안은 메디컬 케어 관련 웹사이트 문제였다. 저(低)소득자에게 무상(無償)의료 혜택을 주기 위한 웹사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오바마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엄청난 예산을 퍼붓고도 제때에 가동하지 못하는 의료전산 시스템도 문제지만, 고장난 웹사이트 하나 곧바로 못 고치는 나라가 현재의 미국이다. 1% 부자를 적(敵)으로 돌리면서 실제로는 중산층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상의료 혜택이 오바마의 최대 치적으로 기록될 판국이다. 과거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퍼주기 복지가 마침내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외부에 눈을 돌릴 틈이 없어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현실하에서 나온 일본의 선택이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워 ‘미군 2중대’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미군이 가는 곳에 일본 자위대가 따라간다’는 조건하에, 자신을 지키고 상대방을 공격할 능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의 핵심이다.
 
 
  NSC와 특정비밀보호법
 
  방공식별구역 문제로 뒤숭숭하던 시기에 일본에서는 두 가지 의미심장한 상황이 발생했다. 2013년 12월 4일, 처음으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다. 안건은 물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문제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총리 직속기관으로 60명의 안보외교 관계자가 출석했다. 필자 판단으로는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을 총지휘한 대본영(大本營)에 해당하는 조직이다. 실제 조직표를 보면 대본영 내 조직과 유사한 점이 많다. 회의 모든 과정이 비밀로 이뤄지는 점도 비슷하다. 각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외교안보 논의가 하나로 집약되면서, 하부조직으로 발빠르게 구체화된다. 외교안보에 관한 사실상 최고사령탑이라 보면 된다.
 
  두 번째는 국회에서 통과된 특정비밀보호법이다. 이 법은 간단히 말해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기밀을 함부로 누설할 경우 체포할 수 있는 법이다. ‘기밀’이란 명분하에 사전·사후 정보통제가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사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특정비밀보호법과 비슷한 법을 갖고 있다. 이런 법률이 지금까지 일본에 없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태평양전쟁의 후유증에 있다. 전쟁 당시 일본 군부(軍部)는 보안검열을 이유로 신문·방송·학교·회사 등 거의 모든 기관을 사찰(査察)했다. 전쟁 당시의 사상통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특정비밀보호법이 몰고 올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위기와 미국의 애매한 대처를 보면 이런 어두웠던 과거에 대한 공포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일본판 NSC는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특정비밀보호법도 그대로 통과됐다. 《아사히(朝日)신문》을 비롯한 몇몇 리버럴 매체가 반발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미국의 한계와 실체가 드러난 이상,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중국에 당한다’는 것이 정치인, 나아가 보통 일본인의 심리이다.
 
  수차례 강조하지만, 미국은 자신이 정한 선(線)을 넘어서지 않는 한 일본의 무장화(武裝化)를 적극 지지할 것이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일본이 아예 드러내 놓고 무장화에 적극 나설 수 있게 한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위협은 가상(假想)이 아니라 이미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발 빠른 일본, 굼뜬 한국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즉시 일본은 곧바로 반대성명을 내고 미군과 함께 행동에 나섰다. ‘빨리빨리’를 슬로건으로 급성장한 한국이지만, 일본에 비하면 대응하는 속도가 엄청 느리고 애매하다. 필리핀 태풍복구지원단을 상황 발생 3일 만에 파견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은 필리핀 태풍 피해가 있은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보낸다고 한다.
 
  그렇지만 소문처럼 흘러 다니는 중국발(發) ‘당근 뉴스’에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과 관련해 한국만은 예외적으로 대접하겠다는 달콤한 목소리와, 시진핑(習近平) 한국 방문과 같은 뜬구름 잡는 식의 사탕 발린 뉴스가 신문지면에 오른다. 과연 중국이 한국만 특별하게 대접할 이유가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언제까지 특별대우가 보장될까?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갖가지 장애물은 방공식별구역 문제에서 드러난 한국의 대응방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과 ‘동반자’인 중국을 동일시하면서, 애매하게 대처하고 있다. 반일정책의 영향으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 사이의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지금 당장이지요?’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지금 당장인 것은 알지만, 역사와 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이 어려운 나라가 한국이다.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재와 같은 한일 교착상태가 계속된다면 50주년 행사가 열릴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정상(頂上)회담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 고위관리들도 한일관계 강화를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있다.
 
  공이 한국 측에 수차례 건너간 상태지만, 한국 측의 답변은 여전히 ‘과거’와 ‘역사’이다. 어제의 문제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문제는 그것대로 따로 처리하면 된다. 한일 정상이 만난다고 해서, 한일이 공동이익을 나눈다고 해서 어제의 문제가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朱子學的 세계관으로는 문제 해결 못해
 
  더불어 아베 총리가 왜 그토록 애가 타게 한일 정상회담을 요청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두 나라가 만나 뭔가 큰일을 해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도 그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 근본 목적이겠지만, 미국을 의식한 퍼포먼스라는 측면도 강하다. 워싱턴 내 일본인들이 미국의 아시아 관계자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하나 있다. “한국에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전부 거부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거부가 계속될수록, 일본의 한일정상회담 요청은 집요하게 이어질 것이다. 아베의 요청은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을 향한 메시지이다.
 
  하늘 위에서 갑자기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서 한반도와 주변 전체가 요동을 치고 있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중국의 일방적 세계관을 보면, 앞으로 한반도와 주변의 상황은 더 크게 요동칠 것이다. 명분에만 매달리는 주자학적(朱子學的) 세계관, 어제에 초점을 맞추는 유교적(儒敎的) 국제관으로 세상사를 해결할 수는 없다.
 
  70여 년 전 태평양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던 미·일 두 나라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나아가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보다 더 큰 위기가 닥쳐도, ‘내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다는 태도다. 한국은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 ‘미래’를 외면할 것인가?⊙
 
일본의 2013년 4大 유행어

 
  일본은 매년 그해를 상징하는 유행어를 발표한다. 1984년 이래 매년 시행하는 연말 이벤트다. 보통 한 개가 설정되지만, 2013년에는 무려 네 개가 대상(大賞)을 차지했다. 유행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민감하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1. 배로 갚아 주겠다(倍返す)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半澤直樹)가 내뱉은 대사이다. 이 드라마는 은행 내 비리(非理)를 다루고 있는데, 불의(不義)를 참지 못하는 주인공이 악습(惡習)에 젖은 상관과 일본사회를 향해 내뱉는 독설(毒舌)이다. 지금은 당하지만, 배로 보복하겠다는 의미이다. 2030세대의 기성사회에 대한 반감과 함께 일본인이 잃어버린 서바이벌 근성(根性)을 표현한 말로 유행했다.
 
  2. 지금 당장이지요?(今でしょ?)
  《월간조선》 2013년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듯이 도요타 자동차의 선전문구이다. ‘지금 당장 자동차를 구입하는 게 좋겠지’라는 의미이다. 일본인들은 이 말을 ‘자동차만이 아니라, 그동안 일본이 미뤄 왔던 모든 일들을 지금 당장 해야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요청이나 권유가 아니라, 요구나 명령에 가까운 이미지가 투영된 표현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지금 당장이지요?”라고 말한 현직 학원강사 하야시 오사무(林修)는 ‘행동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스타로 부상한다.
 
  3. 최우선적으로 대접한다(おもてなし)
  일본에 오면 누구나 환영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 2013년 9월 8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올림픽 총회 당시, 유치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프랑스계 일본인 아나운서가 프랑스식 발음으로 전한 말이다. 현지 생방송으로 보도된 당시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은, 프랑스식 일본어로 자리 잡았다. 2020 하계올림픽이 도쿄(東京)로 결정되면서 이 말을 한 프랑스계 아나운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浮上)했다.
 
  4. 제 제 제 제(じぇじぇじぇじぇ)
  NHK 아침 드라마를 통해 유행한 감탄사로, 일본 이와테(岩手)현 산리쿠(三陸) 지방에서 들을 수 있는 사투리이다. 놀라거나 어색할 때 무심결에 나오는 말이다. 도쿄 출신 여고생이 어머니의 고향에 가서 해녀(海女)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드라마이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녀가 된 주인공은 우연히 지방 아이돌로 발탁된다. 전국적 스타로 부상했다가, 이어 동일본 대지진 피해복구에 나선다. 주관이 뚜렷한 강인한 젊은 여성의 모습이 드라마 전편에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제 제 제 제’는 용기와 힘을 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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