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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정현의 ‘저 높은 중국, 낮은 중국’ ⑫ - 끝

중국인의 궁극의 보석, 玉의 세계

글 : 김정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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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옥 문화는 神學 및 심리학적 관점으로 파악해야
⊙ 3000만 위안을 호가하는 玉 목걸이와 나란히 진열된 다이아몬드의 초라함
⊙ 전통의 軟玉보다는 미얀마産 硬玉이 더 高價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1997년 중국 윈난(雲南)성 성도 쿤밍(昆明)시를 여행할 때 일이다. 보석거리의 한 매장 주인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인에게 보석이라면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 루비, 금은 등이었으니 당연히 그런 보석을 취급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서울 종로의 보석상 거리는 비교도 되지 않을 규모로 빼곡히 늘어선 매장마다 진열해 놓은 것은 온통 옥(玉)이었다. 주인의 안내로 시큰둥하게 매장을 둘러보는데 대략 5cm 크기의 나비모양 옥 브로치 가격표가 저절로 입을 벌어지게 했다. 100만 위안. 당시 환율이 1위안당 120원 정도였으니 1억2000만원인 셈이었다. 그런데 주인은 VIP 고객은 매장 쇼 케이스에 진열한 상품이 아니라 금고 속의 더 비싸고 귀한 상품을 사 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왠지 기(氣)가 눌렸다. 그래도 그의 옥 자랑을 졸부들의 과시쯤으로 여기고 잊었다.
 
  2013년, 중국인의 부(富)가 세계 쇼핑가를 휘젓는다는 보도가 이어지더니 마침내 수백만 달러나 되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쇼핑 이야기도 나왔다. 문득 베이징(北京) 최고급 쇼핑가에 자리 튼 ‘티파니(Tiffany)’를 비롯한 세계적 보석상이 떠올라 조사에 나서 봤다.
 
  그런데 현실은 보도와는 조금 달랐다. 특정한 서양 브랜드 몇 곳을 제외하고는 그 매장의 최고가 상품은 다이아몬드가 아닌 옥이었다. 수백만 위안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등 보석류를 파는 매장마다 옥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최고가의 상품은 오히려 옥이었다.
 
  도대체 중국인에게 옥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어 이 시대 최고의 옥 전문가를 찾았다.
 
 
  “玉은 정신적인 보석”
 
양보다 선생이 자신의 玉 목걸이를 내보이고 있다.
  양보다(楊伯達), 1927년생이니 올해로 86세다. 랴오닝(遼寧)성 뤼순(旅順)에서 태어나 중일전쟁과 신중국 건설 시기에 화베이(華北)대학 미술대를 다녀 1948년 졸업했다. 중국 ‘옥계태두(玉系泰斗)’로 불리며 베이징 고궁(古宮)박물원 부원장, 베이징대 고고학과 옥기(玉器) 석사과정 지도교수, 국가문물감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중국공산당 선전부 출판국에서 출판한 《중국미술전집》 중 6권의 옥기 관련 서책을 책임 집필했다. 그 밖에도 중국 옥기 및 공예품과 관련해 발표한 논문과 서적이 100편을 훌쩍 넘는다.
 
  약속장소에 들어서는 그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해 보였다.
 
  —건강해 보입니다.
 
  “아직 돋보기 없이도 어지간한 서책은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합니다. 경험상 운동도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식사 후 햇볕 아래에서 천보를 걷습니다. 구름 낀 날이나 비오는 날에는 걷지 않고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따뜻한 물에 20분 정도 족욕(足浴)을 하고, 30분 정도 전신마사지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에서 옥을 연구하게 되었습니까.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되고, 지금의 베이징인 당시 베이핑(北平) 건설에 우리 대학도 참여했습니다. 그때 저는 미술공작(工作)팀에 소속되어 미술관련 업무를 책임졌는데, 일이 끝나고 베이핑예술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그 후 중앙미술학원(중국 최고의 미술대학) 전람공작실 부주임을 역임할 때까지도 그림을 그렸지요.
 
  그러다가 1956년 고궁박물원 진열부 부주임으로 발령받았는데 그때부터 그림은 그리지 못하고 각종 기물(器物)과 공예품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옥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에 들어서 중국공산당 선전부 출판국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시작한 《중국미술전집》(전60권) 출판에서 옥기관련 6권의 책임 편집을 맡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출판 결과 대중의 큰 호응이 있었고, 이에 다시 전 350권에 달하는 《중국미술분류전집(中國美術分類全集)》을 출판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옥기전집의 편집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부터는 나 스스로 중국의 옥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옥 문화는 세계적으로 중국이 가장 특별합니다. 옥의 정신은 무엇인가요.
 
  “저도 옥의 정신에 대해 부단히 탐구했습니다. 고고학적·역사학적·광물학적·기물학적의 여러 방법으로 연구했지만, 결론은 심리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게 옳다는 생각입니다.
 
  옥 문화는 건축에 비교하자면 생산이해를 따지는 하층관계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의 상층관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옥의 정신을 탐구하는 데는 그 기능·속성·점유자의 세 가지 요소가 이주 중요한데, 기능은 종교적 기능과 맞닿습니다.”
 
  —고대의 제사장과 관련한 기능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옥의 기능과 속성은 기본적으로 신학(神學)입니다. 선사(先史)시대에는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신에게 바쳤고, 문명시대에 들어서는 천자(天子)와 제후 등 절대권력자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옥을 통해 재난을 피하고 사악한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런 옥 문화의 신학적 유전자, 무(巫)의 유전자는 역사 전체 과정을 관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중국인들도 옥을 화평(和平), 길조, 재복의 상징은 물론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벽사의 기능으로 지니니까요.”
 
 
  “玉은 귀신도 쫓아”
 
  —금, 은, 다이아몬드 등 다른 신비한 보석도 많은데, 왜 하필 옥일까요.
 
  “그 땅에서 무엇이 생산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원인입니다. 아마 아득한 고대에는 옥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겁니다. 그러다가 중국 서쪽의 쿤룬(崑崙)산에서 양질의 옥이 발견되며 귀한 보석으로 여기게 되었을 겁니다.
 
  중국에는 쿤룬산 일대뿐만 아니라 대략 5곳에서 양질의 옥이 생산됩니다. 물론 금과 은도 생산되고 금강석이라 칭하는 다이아몬드도 생산되어 명(明)대 이후 보석으로 여겼지만, 그 질과 양은 옥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옥의 주요 산지는 어디인가요.
 
  “주(周)나라 때 옥을 평가한 기록을 보면, 지금의 신장(新疆) 지역 쿤룬산과 그 인근의 허톈(和田)에서 생산되는 허톈옥을 ‘서방의 미’, 랴오닝성 슈옌(岫岩)현 쉰유치(珣玗琪)에서 생산되는 슈옥(岫玉)을 ‘동방의 미’라 했는데, 이것들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밖에는 장쑤(江蘇)성의 마오산(茅山), 쓰촨(四川)성의 룽촨(龍川), 역시 쓰촨성의 민산(珉山) 등지에서도 생산됩니다.”
 
  —다이아몬드 생산지는 어디인가요.
 
  “랴오닝성 와팡뎬(瓦房店), 산둥(山東)성 멍인(蒙陰), 후난(湖南)성 위안강(沅江) 유역 등입니다.”
 
  중국산 다이아몬드는 생소했는데, 역시 생산량이나 질적 면에서 아프리카 지역의 그것과는 비교할 바 못 되는 것 같았다.
 
  —옥의 질에 대한 좋고 나쁨의 구별 기준은 무엇인가요.
 
  “서방의 광물학을 기준으로 하자면 경도(硬度)가 기준이 되겠지요. 그러나 중국에서는 ‘유가평옥 온윤이택 견치여율(儒家評玉 溫潤而澤 堅致如栗)’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즉 유가에서는 옥을 평가할 때 부드럽고 광택이 나며 견고하기가 밤나무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은 홍목(紅木), 자단목(紫檀木) 등 더 견고한 나무를 알지만 고대에는 밤나무를 가장 단단한 나무로 알았으니까요.”
 
  —허톈옥의 경우 현지에 가 보면 광산에서 캐내기도 하지만 강가에서 줍는 옥도 있더군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앞의 것을 산과옥(山科玉), 뒤의 것을 쇄옥(碎玉)이라 합니다. 먼저 산과옥은 광산에서 구멍을 뚫거나 폭파 등의 방법으로 큰 옥암석을 떼어내 운반한 뒤 가공하는 것이고, 쇄옥은 수천 년 동안 높은 산상에서 작열하는 태양빛과 여러 풍화작용에 의해 저절로 바스러지나 벗겨져 산 아래 강변으로 흘러드는 옥을 말합니다. 옥덩어리와 옥조각의 차이인 셈인데, 품질을 구분하는 것은 앞의 기준과 같습니다.”
 
  —옥의 벽사(辟邪) 기능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중국 고대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에 기록이 있으니 벽사 기능을 말하는 영성(靈性)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입니다. 또한 예로부터 옥은 권위의 상징이자 아름다움을 치장하는 최고의 장식품이기도 했지만,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과 더불어 군자의 덕인 인의예지충신(仁義禮智忠信)을 나타내므로 ‘군자무고옥불거신(君子無故玉不去身·군자는 항상 반드시 옥을 지녀야 한다)’이라는 말이 전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500억원짜리 玉도 있어
 
허톈 강변에서 玉을 찾고 있는 回族 노인.
  —실제 옥과 건강이 관계가 있나요.
 
  “1990년대 베이징대학 옥 문화 학술회의에서 그에 관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50~60대 부녀자들을 상대로 옥팔찌를 차게 하고 3~4개월 뒤 손의 변화를 조사한바 손등과 손바닥의 피부가 부드럽고 탱탱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심리적인 면일 것입니다.”
 
  —선생님도 건강을 위해 옥을 몸에 지니시나요.
 
  “(웃음)물론입니다. 값이 비싼 건 아니지만 선물을 받아 항상 목에 걸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다양한 옥기를 보셨을 텐데 가장 가치 있는 유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시대별로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선사시대 옥 유물로 품평이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옥저룡(玉猪龍)인데, 이는 돼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저영(猪靈) 즉, 돼지의 영혼과 운신(雲神) 즉, 구름 신의 결합체를 상징했습니다. 옥 자체의 품질도 그렇지만 그 예술성과 역사성에 어떻게 값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그 밖에도 현재 국가가 보관하고 있는 유물은 감히 가격으로 거론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럼 지금 민간에서 유통되는 옥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을 든다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옥 한 점에 1위안도 안 나가는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수백만, 수천만 위안은 물론 3억 위안(약525억원)을 호가하는 옥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본 1억 위안짜리 옥은 28kg이나 되는 큰 재질의 허톈옥이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은 3억 위안을 호가(呼價)합니다.”
 
  —그럼 옥은 질의 차이지 가짜가 나오지는 않겠네요.
 
  “아닙니다. 유리와 옥가루를 혼합해서 만든 가짜도 나옵니다.”
 
  —중국 옥 시장에서의 연간 거래액은 얼마나 될까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특히 골동품 시장에서 거래되는 액수는 천차만별인데, 유명한 자더(嘉德)나 바오리(保利)경매회사의 경우는 연간 대략 30억~60억 위안가량의 거래액을 기록하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춘천玉은 油度 낮은 편”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옥 목걸이.
  자더와 바오리는 중국 최대의 경매회사로 골동품을 비롯하여 고미술품, 현대미술품 등 다양한 문화예술품을 수집하고 경매한다. 특이한 점은 이들 경매회사는 많은 감정전문가를 확보해 작품의 진위 판별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경매된 이후 진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결국 작품 구매의 최종 책임자는 구매자 본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춘천옥(春川玉)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춘천옥은 쿤룬옥과 유사해 광택이 좋은 옥이기는 하지만 유도(油度)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반짝거리며 빛나지가 않죠.
 
  그런데 연옥(軟玉)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옥이 아니라 가족 보석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쿤룬산의 옥이 가장 좋은 품질을 나타내지만 지질운동에 의해 여러 곳에서 유사한 옥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질학자, 광물학자는 과학기기로 화학실험을 통해 옥의 성질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옥인가 아닌가를 판별할 뿐 옥의 가족력까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옥은 옥상(玉商)의 안목에 의해 품질이 판별됩니다. 즉 수장가나 감정가, 박물관 학자들은 그 밀도를 감각과 경험으로 알아내 옥의 종류를 판별해 내기 때문에 과학적 실험보고서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 옥을 판별할 때는 옥의 물질, 자료, 특히 생산지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서방의 다이아몬드는 생산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문화적 차이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들만의 市場
 
옥과 다이아몬드가 결합한 현대적 디자인의 팔찌와 귀고리.
  과학의 세기에 부분적이나마 내놓고 과학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문화적 차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상사 모든 것을 과학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그 발전이 일천한 것도 사실이다. 가깝게는 중의약학 분야에서부터 심령 분야에 들어가면 과학이 입증할 수 있는 한계는 아주 미미하다. 보석에 대한 개념 역시 유사할 것이다. 희귀성이나 경도 등은 과학적인 증명이 가능하지만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그야말로 주관적인 개념이니 과학의 잣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다. 아마 세계적으로 옥을 가장 귀한 보석으로 여기는 이들은 중국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세계인이 더 귀하게 여기는 다이아몬드도 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제 중국 유명 보석매장을 들러 보면 다이아몬드 상품은 비싸야 기껏(?) 수백만 위안의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옥 제품은 팔찌 한 점에 수백만 위안짜리가 부지기수이고, 목걸이 한 점에 수천만 위안인 것도 버젓이 진열되어 있다.
 
  아무리 어리석다고 코웃음쳐도 중국인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시장이 있다. 전 세계 인구 70억여 명 중 중국인과 화교의 인구수는 15억여 명에 달한다. 무려 4분의 1에 가까운 시장이다. 그러니 그들만의 시장으로 충분히 유지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옥은 대부분 연옥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옥(硬玉)과의 차이는 어떤가요.
 
  “옥은 크게 경옥(Jadeite)과 연옥(Nephrite)으로 나뉘는데, 경옥은 특별히 비취(翡翠)라 부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명대까지 경옥을 보석이 아니라 돌로 인식했는데, 청(淸) 건륭제(乾隆帝)가 들어서며 비로소 경옥을 옥의 일종으로 인정했습니다. 연옥인 허톈옥의 경도는 5.5~5.9인데 비해 경옥은 6.0이 넘습니다.”
 
 
  미얀마에서 高價의 玉 생산
 
1억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반지.
  —가격 면에서도 미얀마에서 생산되는 경옥이 훨씬 비싸더군요.
 
  “건륭 말기에 이르면서부터 경옥이 더 비싸졌는데, 현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세계 최대의 경옥 산지는 중국 윈난성 남부와 면한 미얀마 북쪽의 샨주이다. 그곳에서 생산하는 경옥의 대부분은 윈난성 쿤밍 보석시장에서 거래되며 주 고객도 중국, 홍콩, 타이완(臺灣)의 보석상들이다. 그간 경옥 시장에서의 대세는 짙은 초록빛을 띠는 비취였지만 최근에는 유백색을 띠는 비취들이 주목받으며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당초 옥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일반 서민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요.
 
최소 3000만 위안(약52억원)을 호가하는 옥 목걸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송대(宋代)부터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북송시기 도성 내외의 번화한 정경을 묘사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보면 당시 도시경제가 상당히 발전하고 번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인, 공인, 서민 등의 경제가 윤택했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왕의 통제권이 점점 약해지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일반 서민들도 옥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옥이 지배계층의 전유물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퍼지며 디자인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선사시대에 하늘과 교류하는 무인(巫人)들은 신을 위해 디자인했습니다. 옥저룡과 같이 일반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디자인이었죠. 또 왕과 같은 권력자는 전문 설계사를 두어 그들이 공인(工人)과 함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옥기를 만들었습니다. 옥장(玉帳), 옥벽(玉璧), 옥패(玉佩) 같은 것들이죠. 민간이 옥기를 지니게 되면서는 아무래도 반지, 팔찌, 목걸이 같은 장신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디자인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다른 보석과 결합하기도 하며 더욱 다양해졌고요.”
 
 
  배추玉을 만드는 이유
 
배추옥.
  —우문입니다만, 중국인들에게 옥과 다른 보석 중 어떤 것이 더 소중하고 귀할까요.
 
  “일반 사람들은 옥을 우선으로 지니면서도 금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문화를 알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고급 옥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1만년 가까운 역사의 문화유전자로 영혼에까지 새겨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지요.
 
  아마도 중국인들의 옥에 대한 애정은 서민들의 화평과 경제적 안정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는 ‘황금유가 옥무가(黃金有價 玉無價·황금은 값을 매길 수 있지만 옥은 그 값을 매길 수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답변은 실제 보석상에 나가 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옥은 장신구로도 사용하지만 장식품으로도 많이 가공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 귀한 옥으로 배추와 같은 모형을 만드는 것은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배추는 중국어로 ‘바이차이(白菜)’인데 부귀를 뜻하는 ‘바이차이(百財)’와 그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배추는 부귀와 길조의 상징이 됩니다. 즉 해음(諧音)을 적용해 표현한 것이지요.(웃음)”
 
  배추옥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청나라 서태후(西太后·일명 자희태후·慈禧太后)릉의 부장품이다. 그처럼 최고 권력을 누린 황실의 주인이 한낱 배추에 빌어 부귀와 길조를 기대했다니, 중국 문화의 생생한 단면일 것이다.
 
  —옥 디자이너로 가장 유명한 이를 꼽는다면 누구일까요.
 
  “정부 주최의 옥 디자이너 시상식에서 제가 시상자로 나선 적도 있지만 너무 많습니다. 현대의 제1기 옥 디자이너 중에서 대가로 꼽을 만한 사람만 몇 백 명은 될 겁니다. 결코 누구 한 사람을 지칭할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옥 디자인에서만큼은 중국이 세계 제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인들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다른 보석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주로 젊은 층에서 그러한데, 서양 문화가 주입된 영향이겠지요. 추세가 그렇더라도 발전의 방향이기에 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각종 여론 매체가 이끌어 온 것인데 무제한적 투입이 아니라 적정 투입이 이루어진다면 중국 옥 문화 전통과 병행해 보석시장이 더욱 활성화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은 서양의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 받아들여 옥 문화의 개선과 발전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흔히 중국의 문화를 ‘장독문화’라고도 한다. 좋든 나쁘든 어떤 것이나 배척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지만, 그것들을 중국이라는 장독 안에서 발효시켜 결국은 새로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문화 말이다.
 
  그것은 한편 개방과 포용의 정신이기도 하며 새로운 창조와 지속의 길이기도 하다. 어쩌면 긴 역사 속 수많은 외세의 침입으로 주인이 바뀌기를 밥 먹듯 했지만 결국 이민족의 역사마저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어 ‘중국’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유지한 원천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서양에서는 原石을 자르고, 중국에서는 原石을 연마
 
  —중국의 옥 디자인과 서양의 보석 디자인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중국에는 ‘인재시예(因材施藝)’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료에 따라서 그에 적당한 공예품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석 가공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연마(硏磨)해서 광택을 내는 것과 자르고 절단하는 커팅으로 빛을 발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서양의 보석은 커팅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 기술이 아주 우수합니다. 반면 중국의 옥은 전통적으로 연마해서 광택을 내 왔지요. 재료의 연성(軟性)에 따른 인재시예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중국의 옥도 커팅 기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커팅 기술이 떨이지면 옥의 광택을 충분히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타이완이나 홍콩, 싱가포르의 세공사들은 아직 서양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노력해서 개선해야지요.”
 
  —후계자는 있습니까.
 
  “얼마 전 광둥(廣東) 중산(中山)대학의 교수님도 그런 질문을 하더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후계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학계 문헌으로 단편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그나마 가능하지만 옥 관련 연구는 반드시 출토유물과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입니다.”
 
  —자녀분들은 어떤가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지만 저마다 중의학과 금융 방면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발을 들였지만, 최선을 다해 ‘태두(泰斗)’라는 최고의 성과를 얻은 그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보석은 가장 화려한 세계의 상징이지만 그 이면에는 화려함이 지속되고 더 빛날 수 있도록 과거를 돌아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순리의 삶을 걷는 이의 발길이 섣불리 역린(逆鱗)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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