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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도쿄올림픽 유치를 통해 본 한일 외교실력의 현주소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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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베이징올림픽 유치 당시와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시점의 국내 언론 보도 차이
⊙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로 간다면…
⊙ “10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처럼 일본에 밀리고 미국에 배반당하는 사태 오지 말란 법 없어”

劉敏鎬
⊙ 5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반도 주변 상황이 20세기초, 그러니까 100년 전과 닮아 간다는 얘기가 많다. 우향우로 방향을 잡은 일본, 경제성장이 한계에 달하면서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중국, 일본을 통해 아시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 에너지 수출을 통해 아시아 진출을 적극화하고 있는 러시아…. 20세기초 재현론(再現論)은 불안정한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의미 정도로 해석될지 모르겠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을 보면, 한순간 잘못 판단할 경우 그 대가가 엄청날 것이란 우려가 앞선다. 우화(寓話)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교훈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부분에 국한하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의 수하(手下)에 있는, 힘없는 양들이 거짓말 하나로 인해 한순간에 몰살될 수 있다는 것이 교훈 중 하나이다. 양의 길잡이, 즉 리더의 판단이 정직하고 정확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화 속에 드리워진 진짜 교훈이다.
 
  한국의 양치기 소년, 다시 말해 현재의 지도자들을 보면, 20세기가 아니라 400년이 훨씬 넘은 임진왜란 전후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 한국 신문을 보자.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조선통신사 부사(副使)로 일본에 파견된 김성일(金誠一) 스타일의 ‘통 큰’ 발언과 행동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대해 “눈에 광채가 있고 담략이 남달라 보였다”고 보고한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 식의 정세판단은 아예 뒷전에 밀려나 있다. “눈이 쥐와 같고 생김새는 원숭이 같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한 김성일의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커다란 활자와 함께 신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장관이 일본을 ‘애’라고 표현하고, 어느 국회의원은 “한국을 얕잡아 보니까 국제무역기구(WTO)에 수산물수입금지 조치를 제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극일(克日)을 슬로건으로 한 세대이다. 사할린 탄광에서 일한 큰아버지의 비참한 청춘기를 들으며 자랐지만, 반일로 분노하기보다 극일을 머리에 새기며 살아왔다. 부국강병 외에 답이 없다. 일본을 ‘애’라 부를 수 있는 장관의 큰소리가 부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만약 일본이 한국을 ‘애’라고 표현한다면 한국인은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일까? 과연 중국에 대해서는 ‘애’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국회의원의 ‘얕잡아 보니까’라는 식의 글래디에이터 식 퍼포먼스도 한심하다. 닳고 닳은 경제동물 일본이 감정적으로 움직이면서 국제기구에 제소를 할까? 얕잡아 본다는 주관적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본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넘치는 얼치기 양치기 소년들의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면서, 그들에게 코가 꿰인 순진한 양들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한반도 머리를 넘어 이뤄지고 있는 일본의 변신과 변화에 대한 얘기는 언제부턴가 해외토픽 수준으로 전락했다. 최근 미국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지지한다’고 공식화했다. 그제서야 난리가 난 듯, 양치기 소년들의 비명이 메아리로 퍼져 나간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이 등장할 당시, 이미 예견된 이슈이다. 미국이 군사대국 일본의 대부(代父)라는 사실은 상식에 가깝다.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 성공과 감정적 정세판단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에 대한 국내 반응을 보면, 일본을 ‘애’로 보는 세계관이 한국의 대세라는 느낌이 든다. 올림픽 유치 발표 이전은 물론, 개최지로 공식 결정된 이후에도 2020년 올림픽에 관한 분석과 전망이 거의 없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바로 이웃에 위치한 한국에도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스포츠나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 국방 사회 문화 등 입체적인 측면에서 도쿄올림픽의 열풍이 한반도에 미칠 것이다. 올림픽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윈윈게임의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세계 최대 최고 규모의 소프트 파워 경연장이란 점을 감안할 때, 한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밀어닥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신문에 나타난 대부분의 기사는 부정적이고 음울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유치결정이 내려지기 직전까지 한국 신문에 실린 기사를 살펴보자. ‘세계 네티즌 도쿄올림픽 유치 반대서명운동’, ‘동아시아 외교마찰로 일본 2020년 올림픽유치 비상’,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 일본 올림픽 유치노력 위협’….
 
  2020년 도쿄올림픽에 관한 자세는,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 개최가 결정됐던 2001년 7월 당시 국내 여론과 크게 비교된다. ‘베이징올림픽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베이징 특수 머뭇거리면 화중지병(畵中之餠)’,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베이징올림픽과 중국의 웅비(雄飛)’, ‘중국관광유치확대 지원방안’, ‘베이징올림픽의 한반도 평화통일 효과’…. 당시 상황을 인터넷으로 살펴보면, 글의 종류도 많지만 내용 또한 우호적이고 긍정적이다.
 
  도쿄올림픽에 관한 부정적 기사는 유치결정이 난 뒤 한층 더해진다. 방사능 피해와 지하수 오염 문제로 인해 올림픽 개최가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식의 기사가 대세이다. 좌성향의 일본 단카이(団塊)세대 지식인의 글이 마치 일본 전체를 대변하는 글로 둔갑해 한국에 전달됐다.
 
  도쿄가 올림픽을 치르게 되면서, 2024년 올림픽을 준비해 온 부산이 망연자실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스페인이나 터키가 도쿄를 누르고 2020년 올림픽 유치를 할 것이란 가정하에 부산올림픽을 준비했다고 한다. 부산의 정세판단 기준은 ‘눈의 광채나 얼굴 생김새’로 세상사를 이해했던 조선 주자학 세계관과 비슷하다. 전세계가 중국과, 소중국인 한국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세계관이다. 부산이 어느 선까지 나섰는지 모르지만,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막후(幕後) 스포츠외교의 흐름에 관심을 가졌다면 전혀 다른 대응책을 모색했을 것이다.
 
  2020년 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스포츠외교의 하이라이트는 일본-프랑스의 연대이다. 올림픽은 3회, 즉 12년 내에는 같은 대륙에서 치르지 않는다는 암묵의 룰이 있다. 프랑스는 줄기차게 올림픽 유치에 주목해 온 나라이다. 2008년, 2012년 올림픽 유치를 희망했지만, 중국 베이징과 영국 런던에 패한다. 일본도 프랑스처럼, 2008년부터 올림픽유치를 희망한 이래 2016년, 2020년의 유치전에 뛰어든다. 파리는 이미 두 번이나, 도쿄는 1964년 올림픽을 개최한 유경험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럽의 프랑스와 아시아의 일본은 적인 동시에 동지가 될 수 있다. 동일 대륙 안에서의 올림픽 유치 유예기간이 12년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동시에 결승에 올라가지 않는 한, 서로 도와주는 동지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2020년 올림픽이 그러하다. 스페인 마드리드가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같은 유럽권인 파리올림픽 유치는 2032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적의 적은 친구이다. 프랑스는 스페인 타도에 가장 앞선, 일본의 친구로 변신한다. 두 나라만 알고 있는 암묵적 약속이지만, 일본은 2024년 파리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최고의 친구로 변신할 것이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前)도지사는 도쿄올림픽 개최를 공약으로 내세운 순간, 프랑스 정부와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주변 참모들의 프랑스 사랑과 파리 출장도 남달랐다.
 
 
  올림픽 막후 정치
 
  올림픽 개최를 결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수는 전부 115명이다(2013년 6월 기준). 한국의 이건희 삼성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주목할 부분은 IOC 위원의 대륙별 분포이다. 유럽이 49명이다. 아시아는 24명, 미국과 아프리카가 각각 15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유럽이 차기 개최지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만, 1896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근대올림픽의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다. 프랑스인이다. 올림픽에 관한 한 프랑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할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2024년 올림픽 개최지는 파리로 낙찰될 것이다. 일본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친일(親日) 국가들의 표가 프랑스에 몰리게 될 것이다. 9월 8일 일요일 아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2020년 올림픽 유치 결정전에서 스페인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한 것은 바로 그 같은 막후정치의 결과이다. 터키 이스탄불은 사실 유치 결정전이 치러지기 직전부터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터키인들은 올림픽 유치를 4년마다 돌아오는 정치적 이벤트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슬람국가 터키에 대한 유럽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경계는 일본 개최를 확신시켜 주는 절대 상수(常數)였다.
 
  한국 신문은 올림픽 경기장 건설을 90% 가까이 마친 스페인 마드리드, 무슬림 국가로서 초유의 올림픽 개최국이 될 터키가 2020년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전망이 아니라, 희망사항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이 유치국이 될 것이란 얘기는 IOC의 최종발표가 있기까지 전무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도쿄올림픽 개최소식에 대해 ‘깜짝’ 놀랐던 것은 당연하다.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는 방사능이라는 올림픽 역사상 전대미문의 난관(難關)을 극복한, 일본외교의 승리이다. 일회성 감정과 거리가 먼, 국제무대에서의 정확한 판단과 분석에 기초한 승전보이다.
 
  올림픽 개최가 세계사를 뒤집어 놓을 만한 엄청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생선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큰 생선을 요리할 능력 여부를 알게 된다. 도쿄올림픽 개최 문제를 찬미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쿄로 최종 결정될 때까지 보여준 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의 막후외교에 관한 한국의 무관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에 대한 일본, 중국에 대한 일본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의 일본이라는 틀 속에서 대응할 때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중국發 일본 뉴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중국은 한국인의 일본관을 결정하는 상수로 정착한 듯하다.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朴 대통령, 中 시진핑과는 화기애애. 나란히 앉은 日 아베와는…’이란 식의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친구관계로 접어든 한국-중국과 달리, 동북아 변방으로 전락한 일본…’이란 식의 뉘앙스가 글속에 들어가 있다.
 
  일본을 분석하는 글 중 상당수가 중국발 신문에 의존하는 것도 최근 한국 언론에 나타난 현상 중 하나이다. 특히 홍콩발 뉴스가 일본을 대하는 새로운 정보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관영 신화사(新華社) 통신이나 인민일보(人民日報)를 인용한 기사도 많지만, 홍콩발 기사가 한층 귀에 솔귓하다. 민주주의 자유언론의 냄새가 풍기는 곳이란 점을 고려해, 보다 빈번하게 인용하는 듯하다. 이미 한국인에게 익숙한 문회보(文匯報) 명보(明報) 대공보(大公報) 같은 미디어가 홍콩발 일본뉴스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홍콩에서 발간되는 신문의 9할 이상은 친중 노선의 미디어이다. 중국이 말하고 싶은 것을 대변하는 공산당 미디어라 보면 된다. 홍콩 밖에 서버를 둔, 민권운동에 주목하는 핑바오(苸報) 외에는 전부 프로파간다이다. 일본은 물론, 미국이나 세계정세에 관한 모든 외교적 분석은 중국공산당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일본 관련 뉴스의 원천이 중국공산당의 입이라 말할 수 있다. 2020년 올림픽 유치결정회의가 이뤄지기 전 ‘중국이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키(Key)’라는 황당한 뉴스도 홍콩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사실, 중국이 한국의 일본관을 형성하는 상수로 자리 잡은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876년, 조선은 일본의 무력 앞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중국이란 단 한나라를 통해 세계를 상대해 온 조선은 일본의 근대식 무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선이 떠받든 중국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의 난징(南京) 조약을 통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추락하고 있었다. 조선은 조약체결 후 일본의 권유에 의해 3차에 걸쳐 일본수신사를 파견하게 된다. 일본은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일본식 개혁을 한국에 입식(入植)하려 했다. 물론, 친일파를 만들어 조선 내 일본의 위상을 강화하자는 것도 수신사 파견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이다.
 
  보통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당시 수신사 활동을 통해 일본 근대화의 비밀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세계흐름에 무심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에 가서도 ‘어제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일본까지 가서도 중국을 통한 세계관에 매달린다. 대학입시에 자주 등장하는 <조선책략(朝鮮策略)>이란 문건이 있다. 김홍집(金弘集)이 주축이 된 제2차 수신사의 도쿄 방문 당시 보물단지처럼 들고 온 것이다.
 
 
  김홍집과 중국공사
 
메이지유신 직후 이와쿠라사절단은 1년10개월 동안 구미를 순방하며 근대화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친중(親中) 연미(聯美) 친일(親日)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조선책략>의 핵심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세계에 눈을 뜬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세관 중 하나이다. <조선책략>의 저자는 황준헌(黃遵憲)이다. 당시 일본내 청나라 공사의 참사관이다. 청나라 자체가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으로부터 식민지화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敵)은 유럽이 아닌 러시아라고 믿던 인물이다.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이 만들어 낸 국제정세관에 기초한 판단이다. 영국의 세계관을 일본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국제감각이 황준헌을 지배한다.
 
  황준헌이란 인물의 19세말 세계관에 대해 이의를 달 의도는 전혀 없다. 중국인들에게조차 전혀 알려지지 않은 청나라 하급 외교관을 ‘알현’하러 간 조선수신사의 방일 행적이 너무도 한심스러울 뿐이다. 원래 수신사들이 내세운 도쿄 방문의 중심은 일본 근대화에 관한 노하우나 국가전략에 관한 연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 참사관급 청나라 외교관 한 명과 만나, 독창적이지 않은 총론 차원의 정세분석 충고를 받고 돌아온다. 일본내에서 활동하던 서방 외교관을 만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외국정보나 지식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일본은 조선수신사 파견에 앞선 1871년, 107명에 달하는 외국문물 시찰단을 구성한다. 시찰단의 대표인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의 이름을 딴, 이른바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이다. 무려 1년10개월간에 걸쳐,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 10여 개국을 샅샅이 뒤진다. 무기제조, 공장건설, 법률, 금융, 교육과 같은 총론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처음으로 경험한 엘리베이터 시승기에서부터, 유럽의 가스등(燈)과 대량생산된 영국의 과자맛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물의 모든 것을 각론 차원에서 전부 기록한다. 결과적으로 19세기말, 20세기초 일본을 이끈 지도자 대부분이 107명 시찰단에서 탄생한다. 가장 어린 나이로 시찰단에 참가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이후 시찰 중 목격한 독일헌법을 천황제로 연결한 뒤, 일본 초대수상에 오른다. 이미 130여 년 전에 발생한 조선수신사의 역사를 조상 탓의 근거로 삼자는 것이 아니다. 불과 5년 차이로 이뤄진 한일 외국문물 시찰단의 기본 자세나 입장이 너무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왜 당시 조선의 최고 지식인들은 일본의 근대화 노하우에 무심했을까? 일본수신사 파견 이후 행해진 영선사(領選使) 사절단은 왜 서방이 아닌, 중국 톈진(天津)에 가서 무기제조법을 배웠을까? 1883년 7월부터 무려 10개월간 미국과 세계를 돌아다닌 8명의 보빙사(報聘使)는 왜 그럴듯한 보고서 하나 남기지 못했을까? 왜 조선은 끝없이 추락하는 중국에 집착했을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하나로 집약하기는 어렵다. 어렴풋하게 내릴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변방의 우물안 개구리 수준에 머문 좁은 세계관이 이유일지 모르겠다.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국내용으로나 써먹을 수 있는 주관적이고도 감정적인 대응이 결국 식민지 역사를 만들었고, 나아가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그 상흔은 수십년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탓이고, 나라를 넘긴 친일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일까? 냉전 당시 미국과 소비에트의 세력팽창 역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비극이 한국전쟁의 이유일까? 눈빛과 얼굴 생김새로 세상을 판단하던 습관이, 과연 현재 한국의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역사가 말해 주듯, 아무리 강력한 적을 만나도 승기(勝機)의 출발점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수산물 수입금지와 WTO
 
  최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외교방침 중 하나로, 국제기구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 두드러진다.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루자는 것에서부터, 한국정부가 내린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려는 움직임과 같은 것들이다. 법은 최후의 해결수단이다. 입장이 180도 다르고,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 남은 수단이 법이다. 독도 문제에 관해 일본은 줄기차게 법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의 주권이 미치는 사실상의 영토임을 감안할 때 굳이 국제법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묵묵부답의 근거이다. 일본으로 볼 때 밑져도 본전이지만, 한국은 밑지면 독도를 강탈당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영토 문제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영토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해서는 관련된 나라가 함께 소장을 제출해야만 한다. 순종이나 패배가 아닌, 전략으로서의 침묵, 지혜로운 침묵이다.
 
  일본이 국제법을 통한 해결방안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독도 문제가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넘겨질 경우 과연 어떻게 될까? 국제법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날지 모르지만, 국제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결과는 결코 한국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된다. 상식적이지만, 국제법은 강대국이 가진 또 다른 변형된 파워에 불과하다. 각종 자료나 문헌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공되겠지만, 최종 결정권은 각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위상은 한국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프랑스와의 막후외교만이 아니라, 일본이 가진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을 적극 활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작은 국제연합(UN)에 해당된다. 국제법 전문가만이 아니라, 실제 UN 출신 외교관들도 중책을 맡고 있다. 국제법이 국제정치에 근거한 법이란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핵심은 15명에 이르는 최고재판관이다. 대륙별로 아시아 3인, 아프리카 3인, 중남미 2인, 동유럽 2인, 서유럽 5인이 구성원이다. 15명 중 5명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출신 인물로 채워져 있다. 국제정치의 현실을 반영하듯 ‘결코’ 공평하지 않은, 힘을 배경으로 한 조직이라 볼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 內의 일본 파워
 
오와다 히사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은 마사코 일본 황태자비의 아버지이다.
  일본의 위상은 어떨까? 15명의 최고재판관 중 한 명으로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가 일하고 있다. UN 일본대사를 역임한 인물로 2012년 12월부터 재판관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와다 재판관이 어떤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 황태자의 부인, 마사코(雅子) 황태자비의 아버지이다. 경력이나 비중 면에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일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개별국가의 이익보다 국제평화와 번영을 위한 재판이라는 것이 국제사법재판소의 원칙이자 대의명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강자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주고받는’ 식의 국제정치 관행이 100% 투영된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결론, 특히 강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 정답이다.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올려질 경우, 과연 한국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판결이 내려질 수 있을까?
 
  한국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와 관련된 WTO 제소 문제를 살펴보자. WTO는 잘 알려진 대로 서방 선진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무역 조직이다. 수산물 금지조치에 항의하는 일본의 소송이 WTO에 갈 경우, 최종 판단이 내려지는 곳은 7명에 달하는 분쟁해결기구(DSB) 내 최고 상급위원이다. 7명의 위원은 국제정치를 압축한 아바타에 해당된다. 한국은 국력상승과 함께,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대 법학과 장승화(張勝和) 교수를 상급위원에 올리게 된다. 장 교수와 함께, 인도 벨기에 미국 중국 멕시코 남아공 대표가 최고 상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WTO에 간다 해도 해 볼 만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천만에 말씀이다. 일본은 장 교수가 최고위원에 선출되기까지 무려 3명의 상급위원을 배출했다. 장 교수는 은퇴한 일본인 최고 상급위원의 후임으로 들어갔다. WTO는 최고 상급위원 아래에 각종 소위원회를 두고 있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소위원회에서의 논의를 통해, 만장일치형 권고를 관계국에 통보한다. 만약 당사국이 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다면, 최고 상급위원까지 올라간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할 경우, 소위원회의 권고가 최고위원회에서 뒤집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일본은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국제경제법학자 10여명을 호위하고 있다. 한국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상급위원이기는 하지만, 장 교수 혼자서 한국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기는 힘들다.
 
  1995년 5월 17일, 일본은 WTO를 내세워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들어간 적이 있다. 진주만공격 이후 맞이한 두 번째 미일전쟁에 해당한다고 평가된 사건이다. 미국이 일본산 자동차에 대해 100% 보복관세를 물리자, 일본은 곧바로 WTO에 제소를 하게 된다. 이른바 수퍼 301조가 일본 자동차에 부과된 것이다. 양국은 협상 끝에, 7월 19일 보복관세를 철회하는 선에서 문제를 매듭짓는다. 물론 일본은 자체적으로 수출물량 조절에 나선다. 일본 도요타(豊田)가 미국 내 판매자동차 1위 자리를 회피하는 이유는, 바로 1995년의 망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동차 보복관세에서 비롯된 일본의 WTO 제소는 전후(戰後) 처음 보여준 ‘미국에 정면으로 대응한 사건’에 해당된다. 면밀한 준비와 법적 해석을 통해, 100% 이길 승산이 크다는 전제하에 제소를 한 것이다. WTO의 출발점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무역기구인 가트(GATT), 즉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기구에 있다. 사실상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권에 있는 WTO를 상대로 미국을 넘어뜨린 나라가 일본이다. WTO를 통한 국제무역 전쟁의 노하우와 전략전술이 남다른 곳이 일본이다.
 
  WTO 내 일본인이 중립적 자세에서 벗어나 일본만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WTO 관계자가 많고 경제력이 강하며 실전경험이 많다는 것은, WTO 내부의 지지기반도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친구와 우방이 많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한국의 관계장관은 스스로의 입으로 일본산 제품의 방사능 오염 정도가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고 고백한 상태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이 WTO에 제소할 경우 한국이 이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일 양국 간의 대화를 통한 해결이 최선책이지만 이미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 든다.
 
 
  중국과의 연합이 갖는 한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7일 2013 APEC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양자회담을 가졌다.
  일본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중국을 활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전반적인 대일 외교정책 핵심기조와 비슷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성과는 극히 일부에 그치게 될 것이다. 흔히들 오해하는데, 국제무대에서의 중국의 외교력은 한국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크지 못하다. 아프리카에 도로와 교량을 건설하고 엄청난 돈을 독재자에게 바치지만, 서방에서 이뤄지는 외교적 차원의 주고받는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구별할 부분은 파워와 영향력이다. 특정 나라가 군사·경제·정치적 차원의 파워를 가질 수는 있지만, ‘파워=영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UN에서 보는 중국의 영향력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에 비할 때 ‘새발의 피’ 정도에 그친다. 북한과 같은 중국 주변 문제라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한반도는 파워와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중국의 실체를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최전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시리아 리비아와 같은 중동 문제에서부터 지구환경, 저개발지원, 문맹퇴치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들어가면 한국보다도 낮은 수준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중국 스스로가 글로벌이슈에 적극 나서지 않으려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주고받는 식의 다자간 국제외교 관행에 대해 결코 익숙하지 못하다.
 
  외교라는 일은 파워와 더불어, 와인잔이 오가는 심야파티와 새벽에 골프장을 오가면서 벌이는 전방위 비즈니스이다. 고작해야 6자회담을 통한 다자간 외교가 경험의 전부라 볼 수 있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서방외교 선진국의 리더십을 쫓아가느라 정신이 없다. 국제사법재판소나 WTO의 최고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덩치만 클 뿐 주먹으로 호랑이를 잡는 식의 전략이나 전술에 무지(無知)하고 무심하다. UN이나 국제사법재판소, WTO와 아세안과 같은 국제기구 안에서의 리더십은 상상 이상으로 약하다.
 
  왜구(倭寇)가 날뛰던 조선시대 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일본은 한국 국민 모두를 괴롭힌 가해자이다. 역사 문제를 통해 일본의 과거사를 단죄하자는 데 대해 반대하는 한국인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부분이 하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나치면 그 화가 스스로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거꾸로 한국 어민과 관계자의 목을 죄는 식이다.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과정에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국내·국외 모두 불안하다. 어렵기는 하지만, 경제와 외교를 역사 문제와 분리해서 대처하는 지혜가 아쉽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역사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하에 다른 모든 것들이 움츠러든 형세이다.
 
  한국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나라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평창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의 과거 노하우가 한국에 전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평창과 도쿄의 연계와 협력은 절실하다. 그러나 그 같은 논의나 생각은 한국 신문 어디를 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드리워져 있는 상태에서 밑에서 쉽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한일 간의 이슈를 역사 문제라는 틀 속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나 통하는 김성일 스타일의 외교가 아니라,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을 움직일 만한 역량이 갖춰져야만 한다.
 
  한국에도 보도됐지만, 10월 3일 오후, 30대 여성이 자동차를 몰고 워싱턴 의회건물로 돌진했다. 우연히도 당시 필자는 의회 주변에 주차를 하려던 참이었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이어 곳곳에서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사방에서 들려왔다. 필자는 알카에다 무슬림 게릴라들이 의회를 공격한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잠시 뒤 총소리가 그치고 하늘에 헬리콥터들이 날아왔다. 사실상 전쟁상황이다. 상황을 안 것은 아이폰을 통해서이다. 자동차를 몬 여성은 경찰총에 의해 즉사했다.
 
  당시 공포 속에서 사건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미국인의 생사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워싱턴은 1년 내내 테러에 시달리는, 사실상 전선(戰線) 지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백악관 건물을 자세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큰 망원경으로 하늘과 주변을 살피는 특수부대가 옥상에 상시 배치돼 있다. 바다 땅 지하 하늘, 사방팔방이 보이지 않는 군인으로 채워져 있다.
 
  박 대통령은 매일 그 같은 생활로 살아가는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일본의 과거 만행을 알아달라고 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의회에서의 연설에서, 8월 25일 한국을 찾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최근 한국을 찾은 척 헤이글 국방장관에게도 역사 문제에 관한 발언을 이어 가고 있다. 미국은 과연 어떤 반응을 취할까? 전쟁과 테러 속에서 날이 선 채 살아가는 미국인이 한국의 아픈 과거사에 대해 신경을 쓸 여유가 있을까? 테러위협을 감소시켜 주거나 막아 줄 실질적인 도움에 한층 시선이 머물지 않을까?
 
 
  국제체제 개편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일본
 
러일전쟁 당시 일본을 강력히 지지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역사 문제는 미국으로부터 이해 여부와 무관한, 정의의 문제라고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옳고 바른 생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둘 부분이 있다. 한국외교가 모든 힘을 역사 문제에 집중하는 그 순간, 일본은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새로운 국제질서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세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헤이글 국방장관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역사 문제에 관한 얘기를 들은지 3일 만인 10월 3일, 일본 무명용사 묘지에 헌화를 한다. 2+2회의 참석을 위해 도쿄에 들른 존 케리 국무장관과 함께 가미카제(神風) 공격을 자행한 구원(舊怨)에게 꽃을 바쳤다. 미국 각료로서는 처음으로 벌인 행사이다. 앞으로 미국 대통령, 나아가 전세계 모든 지도자가 도쿄를 방문할 때 치르는 외교의식이 될 것이다. 미국의 2인자, 3인자가 첫 단추를 연 셈이다.
 
  둘째,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기애애한 덕담을 주고받기 직전에도, 일본의 발빠른 행보가 이뤄졌다. 일본 외무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케리 국무장관, 줄리 비숍 호주 외상과 함께 3국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0월 5일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 중에 이뤄진, 중국을 견제하는 공동성명이다. “남중국에서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그 어떤 위압적인 행동에 반대한다.”
 
  일본은 APEC회의 중 다자간 공동성명을 만들어 낸 유일한 나라이다. 함께 참석한 중국에 아베가 줄곧 제창해 온 이른바, ‘시큐어리티 다이아몬드 구상’을 표면화한 것이다. 시큐어리티 다이아몬드 구상이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자간 군사협력 체제이다. 일본 미국 호주 인도를 연결하는 다이아몬드형 방어망을 통해 남중국 내 해상안보를 굳건히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시큐어리티 다이아몬드 구상에서 빠져 있다.
 
  셋째, 국제 문제에 적극 관여하는, UN을 무대로 한 일본의 글로벌 외교이다. 지난 9월 말 아베는 뉴욕 UN회의에 참석하면서 중동외교에 적극 관여한다. 이란 대통령과 만나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회담을 벌이고, 시리아 난민에게는 6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약속한다. 시리아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던 9월 중순,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에게 전화를 걸어 미·일협력 체제의 강화를 요청했다. 한국이 종군위안부 문제 사죄 여부에 주목할 당시, 아베는 개발도상국원조(ODA)의 일환으로 앞으로 3년간 무려 30억 달러에 달하는 여성지원기금을 내놓겠다고 약속한다. 세계의 눈이 어디로 향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조약은 한반도를 일본 식민지로 만든 인증서이자, 한반도 외교실책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인용된다.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미·일 양국이 용인한 비밀 조약이다. 지난 9월호 《월간조선》 필자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0차 세계대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러일전쟁의 배후에는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26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을 지지한 강력한 후원세력이다. 태평양에서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당시 사무라이 일본을 통해 실현하게 된다. 후에 27대 대통령에 오르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 Taft)는 루스벨트의 전쟁장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본의 승리를 축하하며 만주에서의 이익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 필리핀과 조선을 바꾼 것이다. 필자는 가쓰라-태프트 조약이 비밀리에 이뤄진 조약이기에 한국이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보지 않는다. 러일전쟁 후 이뤄진 포츠머스 강화 조약을 주선한 인물도 루스벨트이다. 당시, 일본과 미국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외교의 힘을 이해했다면, 아니 조선을 친구로 생각해 주는 서방의 나라가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예정된 수순이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전모이다.
 
  도처에 김성일이 탄생하고, 그마나 그동안 한국과 이해관계를 함께해 온 미국마저도 일본에 경도(傾倒)되는 것이 2013년 가을의 상황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조금 더, 조금 덜(Much or Less)’이란 논리로 역사 문제를 다루길 바란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굳이 대별하자면, 미래가 없는 과거보다, 과거가 없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황윤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양들의 잠자리도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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