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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현장체험

미국 ‘保守主義 사관학교’ 리더십인스티튜트 연수기

“직업운동가를 양성하라”

글 : 황성준  前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sjh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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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금 방법, TV토론·인터뷰 기법, 소규모 지역방송국 운영 방안 등 보수주의 활동가들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 교육
⊙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곳에서 어떻게 주사파가 활개를 칠 수 있느냐?”는
    질문받아
⊙ 모튼 블랙웰, “사회운동을 하려면 돈 모으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黃晟準
⊙ 49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동원대 초빙교수.
리더십인스티튜트에는 미국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에서도 교육생들이 찾아온다.
  지난 9월 22일부터 27일까지 5박6일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州) 알링턴에 위치한 보수주의(保守主義) 운동가 양성기관인 리더십인스티튜트(Leadership Institute·이하 LI)에서 주최한 ‘국제 리더십 훈련 학교’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돌아왔다. LI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주의 운동가의 한 사람인 모튼 블랙웰(Morton Blackwell)이 1979년에 창립한 기관으로, 지금까지 13만명 이상의 미국 보수주의 활동가들을 교육했으며, 약 1500개가 넘는 보수주의 대학생 조직을 운영·지원하고 있다.
 
  LI는 미국의 다른 보수주의 교육기관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대다수 교육기관은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보수주의 이념과 이론을 보급·확산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반면에 LI는 이미 보수주의 이념을 확신하고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how to win)를 교육시키는 것이 목표다. 다시 말해, 보수주의 운동가들에게 보수주의 운동 전략·전술과 조직론, 선전·선동론, 투쟁론 등을 가르치는 곳이다. LI 졸업생들이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관계로, LI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한다.
 
  LI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정말 다양하다. 일반적인 보수주의 운동 조직론은 물론, 선거 캠페인, 펀드레이징(fundraising·모금),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신문·방송·인터넷 등과 같은 매체의 운영·유지·활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保守主義 활동가들의 취업도 지원
 
   LI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대학 캠퍼스이다. 대학 캠퍼스에서의 보수주의 운동 활동가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에게 대학생 조직을 건설·운영하는 법은 물론, 학생회 등 각종 대학 선거에서의 캠페인 전략, 그리고 각종 매체(신문·방송·인터넷·페이스북·트위터) 활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9월 말 현재 미국 50개 주 1545개의 캠퍼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 조직 운영을 돕기 위해 ‘필드 코디네이터’(Field Coordinator, 이하 FC)를 지역단위로 배치하고 있다. FC는 LI의 전문 운동교육을 받은 직업 활동가로서, 유급직(有給職)이다. FC가 되기 위해서는 캠퍼스 조직의 추천을 받아 약 4개월간 인턴 활동을 거친 뒤, 소정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FC로서 3~5년 정도의 이력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단체나 정치조직에서의 출세(?)를 위해 소중한 자산이 된다.
 
  LI는 또 경력관리 및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들을 운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LI는 언론인 학교, 외교관 학교, 행정가 학교, 의원 보좌관 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순히 교육 내용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다. 취업 자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력서 작성법, 취업 면접 요령 등을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LI가 보유하고 있는 보수주의 단체들과의 인적(人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 즉 정계, 언론계 등에 이미 포진하고 있는 LI 졸업생 및 보수주의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이용, 이들 교육생들의 취업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LI는 광범위한 취업 희망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보수주의 인재를 선발하려는 각종 단체 및 기관의 필요(needs)와 연결해 주고 있다. 모튼 블랙웰 이사장은 “우수한 보수주의 청년들이 미국 사회에 영향력 있는 주요 기관으로 취직할 수 있게 돕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프리카·몽골 출신도 참여
 
  미국에 도착한 것은 지난 9월 21일. 교육을 시작하는 날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다. 국내는 마침 추석 연휴(連休)기간이라 조금 여유를 갖고자 하루 먼저 출발한 것이었다.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서 LI를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 오렌지선 클래런던(clarendon)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6년 1월 LI와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번 방문해 본 적이 있다. LI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월 영국 런던 부근에서 진행된 ‘국제 펀드레이징 학교’에서 26개국으로부터 온 약 100여 명의 보수주의자들과 함께 펀드레이징 전략에 대해 공부한 적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얼굴들과 세계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 D.C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또다시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것을 얻어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LI 건물로 들어섰다.
 
  토요일이어서인지 다소 한산했다. 방송·언론인 학교 교육이 이뤄지고 있을 뿐,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다. 직원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토요일은 원칙적으로 쉬는 날이기 때문에 업무가 있는 사람만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비행기 일정 때문에 하루 일찍 왔다고 밝히자, 다소 당황해 했다. 사실 첫날은 인근 모텔에서 보내려 했었다. 그런데 마침 기숙사 담당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기숙사에 자리가 있는데 굳이 모텔로 갈 이유가 뭐 있느냐”고 담당자가 권유했다. 건물 지하에 위치한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담요와 담요 덮개, 침대보, 베개와 베개 덮개를 지급받았다. 그날 저녁은 식당을 운영하지 않아 인근 식당에 가서 사먹어야만 했다.
 
  교육일정은 9월 22일 오후부터 시작됐다. 오후 4시부터 교육생들이 속속 입소(入所)했다. 절반 정도는 멕시코,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南美)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동(東)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왔다. 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필자와 몽골인 한 사람뿐이었다.
 
 
  퓨전 보수주의
 
단상에 나가 주제발표를 하는 필자.
  첫날 일정은 교육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과 자기소개로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것은 “보수주의가 무엇이며, 왜 나는 보수주의자로 활동하느냐”였다. 가벼운 다과(茶菓)와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는 마치 대학생 MT를 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한 가톨릭 신학생은 나이지리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함께 온 나이지리아의 젊은 변호사는 “풍부한 자원은 ‘제한된 정부’ 및 ‘자유시장경제’와 결합되지 못하면, 정치발전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악(害惡)이 될 수 있다. 자원이 아닌 자유시장경제가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세계사(世界史)가 입증하고 있는 사실”이라면서 “바로 그 대표적 사례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활동가는 차베스 정권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베네수엘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를 곤란하게 만든 것은 한국 주사파(主思派)의 존재였다. 한마디로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곳에서 어떻게 주사파가 활개를 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름 설명을 해주었지만, 필자의 짧은 영어 실력과 함께 한국 정치 및 역사에 대한 참석자들의 배경지식 부족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이해시키는 데 실패한 듯했다.
 
  미국 측 코디네이터는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을 ‘퓨전(fusion) 보수주의’라고 규정한 뒤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크게 3가지 흐름으로 구성된다. 첫째,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경제적 보수주의’(혹은 시장 보수주의), 둘째 미국 국내외에서의 공산주의 팽창을 우려하는 ‘반공적 보수주의’(혹은 안보 보수주의), 셋째 국가·교회·가족 등과 같은 전통적 공동체 가치를 지키려는 ‘전통주의적 보수주의’(혹은 철학적 보수주의) 등이다.
 
  다소 이질적(異質的)일 수도 있는 3가지 흐름을 4가지 강령으로 ‘퓨전’시킨 것이 미국 보수주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4가지 강령은 첫째,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 둘째 자유기업(free enterprise), 셋째 강력한 국방(strong national defence), 넷째 전통적 미국의 가치(traditional American value) 등이다. 이 같은 네 가지 강령에 동의하는 자가 미국 보수주의자(Conservative)이며, 이러한 보수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것이 미국 LI라는 것이었다.
 
 
  保守主義와 문화
 
  이 자리에서 논의했던 것 중의 하나가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를 다른 나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4가지 강령 가운데 앞의 3가지는 나라마다 다소 상황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소지는 없었다. 문제는 마지막 강령인 ‘미국의 전통적 가치’였다. 이 문제와 관련, 모범답안은 없었다.
 
  남미에서 온 참석자들은 이 문제를 ‘전통적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했다. 가톨릭을 포괄한 기독교적 가치는 미국이란 지리적 환경을 뛰어넘는 세계사적 가치이며(‘유대-기독교 세계관’이란 명칭하에 유대교도 포함시키곤 한다), 예루살렘과 아테네, 로마, 런던, 워싱턴을 연결하는 보편적 문명질서라는 것이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사람들도 이 구도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주요 대립축이 사회주의적 질서를 추구하는 무슬림 대(對) 자유시장 질서를 선호하는 기독교(주로 가톨릭)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전통적 가치는 ‘개인적 자유’(individual liberty)로 재(再)해석되어야 하며, 바로 이러한 ‘개인적 자유’ 대 ‘집산주의’(集産主義·collectivism)의 싸움 속에서 보수주의 운동을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아테네-로마-런던-워싱턴으로 연결되는 문명의 세계사적 보편성을 논하기에 한국의 문화적 지적(知的) 지형은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명이 이식(移植·transplant)된 남미와 우리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앞에 설명한 문명의 축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유교적 그리고 불교적 세계관이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지적 지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통적 가치를 ‘개인적 자유’로만 한정시킬 경우, 보수주의 철학이 아닌 공리주의 혹은 실증주의적 철학에 함몰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이는 단순히 정치철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광범위한 ‘사회적 보수’(social conservative)를 정치동력으로 끌어내는 데도 큰 제약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직 한국에서는 사회적 보수가 정치 및 운동의 주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과제라 느꼈다.
 
 
  TV에선 내용보다 이미지
 
리더십인스티튜트는 자체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어 토론 연습 등 TV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수업은 9월 23일 월요일부터 진행됐다. 오전 수업은 TV 트레이닝이었다. LI 건물 4층에는 TV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놓은 시설이 있었다. 이곳에서 TV 인터뷰, TV 토론을 어떻게 하느냐를 교육받았다. 반나절의 짧은 시간에 이러한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교육자도 “맛보기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많은 보수주의자가 올바른 이념과 콘텐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이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스킬(skill)’이 없어, 좌익 혹은 리버럴에게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보수주의 활동가들은 물론, 새로 당선된 보수주의 의원들도 이곳에 합숙하면서, TV 인터뷰 및 토론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심지어 ‘왜 미국 보수주의의 아이콘인 로널드 레이건이 배우 출신이라는 점이 강점이었는지’도 강조했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내용을 강의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적어도 TV에서는 오류(誤謬)이며, TV는 이미지라는 점을 거듭 언급했다. 타고난 배우와 연설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도 연습 없이는 불가능하며, 또 재능이 다소 없더라도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는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준비하지 않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운동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특히 리버럴 프로그램에 초청되었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보수도 출연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이든지, 혹은 더 심하게는 좌익의 가벼운 스파링 상대자로 선정되었을 가능성도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교육을 받으면서, 느낀 점은 부러움이었다. ‘이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여건이 갖춰져 있다니… 우리는 그냥 주먹구구식인데….’
 
 
  지역방송을 만들자
 
  오후 교육은 온라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개설·유지·운영하는 방법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온라인 라디오 방송국 개설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면서, 미국과 남미 여러 나라에서의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콘텐츠 및 기술적·재정적 운영 방법론을 강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전국방송보다는 지역커뮤니티 방송을 만들 것을 권유했다. 지역 사회 소식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보도해 나갈 때, 기존 거대 방송과의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방송에 대한 지역민의 갈증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또 이러한 지역방송끼리의 네트워크 구축과 콘텐츠 교류를 통해 전국방송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조그만 지역방송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라디오를 넘어 온라인 TV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문제에 대한 교육도 진행했다. 이른바 ‘게릴라식 뉴스 보도’ 방식에 대한 방법론 및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셋째 날인 9월 24일 수요일은 선거 캠페인 방식과 언론 홍보(Public Relation)에 관한 교육을 진행했다. 오전에는 보도자료 작성법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솔직히 그리 재미있는 편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많이 보고 듣던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LI건물 밖으로 나와, 교육생들과 함께 워싱턴 D.C 시내로 들어갔다. 헤리티지재단에서 진행한 마거릿 대처 전기(傳記) 출판기념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처 총리 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던 로빈 해리스(Robin Harris)가 마거릿 대처의 생애에 대해 쓴 책이었다. 제목은 《Not For Turning: The Life of Margaret Thatcher》였다. 좋은 강연을 듣고, 저자 친필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강연장에서 대학 선배 한명을 만났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인데, 교환교수 자격으로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그것도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만난 선배라 무척 반가웠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단체행동하는 중이라서 연락처만 교환한 채 헤어졌다. 이 선배와는 교육이 끝난 9월 27일 저녁에 만나 식사를 함께했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미국 보수주의 철학에 기초를 놓은 인물로 알려진 러셀 커크(Russell kirk) 관련 행사가 여러 군데에서 열리고 있었다. 커크의 대표 저서인 《보수주의 마인드(Conservative Mind)》가 출판된 지, 60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헤리티지재단도 마찬가지였다. ‘러셀 커크와 보수주의 마인드’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수주의 마인드》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필독서 중의 하나로, 앞서 설명한 미국 보수주의 3가지 흐름 가운데 세 번째인 ‘전통주의적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책이다.
 
  헤리티지재단에서 만난 선배는 “솔직히 이번에 미국에 오기 전에는 러셀 커크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고백했다. 이 선배는 “한국에서는 그람시, 알튀세 등과 같은 좌익 사상가나 이론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요 저서 대부분이 번역·출판된 반면, 옳고 그름과 동의여부를 떠나 미국 보수주의 주요 사상가들은 거의 전혀 소개조차 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도 정치학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미국의 대표적 정치 사상가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지적 게으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기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지저분한 전술’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
 
  헤리티지재단에서 돌아와 진행된 교육은 선거 캠페인이었다.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짧은 것이 아쉬웠다. 사실 불과 반나절 만에 선거 캠페인의 노하우를 전수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본 핵심만 짚는 데도 시간이 부족했다. 핵심 지지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동원해 낼 수 있으며, 강력한 선거 연합을 어떻게 구성해 낼 수 있는가가 강의의 기본 핵심이었다. 또 선거전에서의 디테일한 기술적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기서 강조한 것이 지방선거이다.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흔히 사적(私的)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국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고, 반면 좌익 및 리버럴들은 직업 정치가일 공산이 높으며, 따라서 이들은 애초부터 지방정치 출마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 선출직 및 이와 관련된 임명직 자리들은 이 같은 직업 정치가(혹은 정치 건달)들에 장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재탈환해 와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보수주의 진영에서도 직업 운동가를 양성해야 하나, 보수주의의 태생적 속성으로 인해, 청년 직업 운동가 배출에는 일정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러한 공백은 ‘은퇴자 운동’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은퇴한 보수주의자들은 높은 전국적 혹은 주(州) 단위의 공직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헌신하는 마음으로 눈높이를 낮춰, 지방 공직에서 봉사할 자세를 보이고, 이러한 활동을 직업적 활동가들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저분한 전술’(dirty tactic)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고상한 은퇴자’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저분한 전술’에 대한 이해도 필수불가결하다.
 
 
  ‘보수주의 조직 사업가’
 
모튼 블랙웰 LI이사장.
  넷째 날은 하루종일 펀드레이징에 관한 수업으로 이뤄졌다. 모튼 블랙웰 이사장은 “사회운동을 하려면 돈 모으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 온 사람이다.
 
  그는 ‘보수주의 조직 사업가’ (Conservative Organizational Entrepreneur)란 개념을 선호한다. 그가 말하는 ‘조직 사업가’란 기업문화가 발달한 미국식 개념으로, 조직운동에 기업 개념을 결합시킨 것이다. 블랙웰은 “펀드레이징이 잘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운동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운동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가 펀드레이징 양(量)이라는 것이다.
 
  이날 주된 강사는 미국 펀드레이징의 전설적 인물인 브루스 에벌리(Bruce Eberle)였다. 1960년대 미국 보수주의 학생운동 단체인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을 통해 미국 보수주의 학생운동에 참여한 뒤, 보수주의 운동단체 지원 펀드레이징 사업을 벌여 지난 30여 년 동안 30억 달러가 넘는 액수를 모금하여 여러 보수주의 운동단체를 지원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운동 펀드레이저이다.
 
  이날 강의는 주로 펀드레이징의 기술적 부분에 집중됐다. 펀드레이징 편지를 쓰는 법에서부터, 펀드레이징 파티를 개최하는 법, 그리고 주요 기부자들을 관리하는 법 등등.
 
  이날은 오후 강의로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 저녁을 서둘러 먹고 워싱턴 D.C로 들어갔다. ‘안전한 자유사회를 위한 센터’(Center for a Secure Free Society, SFS)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보수주의 국제문제 싱크탱크인 SFS는 당시 가장 뜨거운 주제인 러시아-시리아 관계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의 주제는 ‘러시아-시리아 동맹 분석’이었다. 러시아는 끝까지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지원할 것인지, 또 이러한 러시아-시리아 동맹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대처방안은 무엇인지를 놓고 여러 전문가가 토론을 벌였다.
 
  약 2시간 정도의 공식 세미나 이후, 건물 옥상에서 칵테일파티가 열렸는데, 진짜 토론은 여기서 이뤄지는 것 같았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정치인, 외교관, 학자, 기자, 사회운동가 등이 칵테일잔을 들고 다니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영어·러시아어·아랍어 3개 언어가 사용됐다. 필자는 이상의 3개 언어를 조금씩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덕분에, 이날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다섯째 날인 9월 26일 오전은 미국 국회의사당 견학을 했다. 미국 역사와 미국 건국철학에 대해 좋은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니언역에서 점심을 먹은 후, 헤리티지재단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헤리티지재단의 역사와 헤리티지재단이 미국정치와 보수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헤리티지재단이 어떻게 입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 강조된 이야기 중의 하나는 헤리티지재단이 영향력을 갖는 것은 첫째, 재정이 특정기관이나 개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기부자에 의해 이뤄지기에 재정적 독립성이 확보되고 있으며, 둘째 순수학문 추구가 아니라, 입법안(立法案)과 대안(代案)을 정치적 타이밍에 맞춰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헤리티지재단이 추구하는 싱크탱크(think tank)는 학자들의 연구기관이 아니라, 정치 두뇌(political brain)의 운동기관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도 이런 사관학교가 필요하다”
 
  마지막 날인 9월 27일은 다시 대학 시절 MT 마지막 날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동안 강의 들은 것을 정리하고, LI 지하 서고로 가서 필요한 보수주의 운동 관련 서적들을 구입했다. 사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 혼났다. 책값도 대폭 할인을 해줘 매우 저렴했다. 욕심을 억누른 이유는 서울까지 들고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항공요금 오버 차지를 물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날 LI에서 짐을 싸들고 나왔다. 그리고 숙소를 인근 모텔로 옮겼다. 기왕 미국에 온 것 며칠 더 있다가 귀국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번 LI교육과정을 통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우리도 이러한 사관학교가 필요한데…. 의병(義兵)만으로 계획 없이 싸우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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