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해외스포츠 소식

‘하반신 장애인 뽑은’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구단, 왜?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코리 한. 하지만 그는 아직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품은 채 동료들의 연습이나 경기에 보조코치 자격으로 동참한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매년 6월 드래프트(MLB Draft)를 실시한다.
 
  이는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구단이 미국과 캐나다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 그리고 독립리그에 소속된 아마추어 선수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구단에 영입할 신인선수를 뽑는 제도이다. 지난 1965년에 도입된 이 제도를 통해 팀마다 대략 50명 안팎의 선수를 뽑는다. 매년 1500명 정도가 메이저리그 구단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한다.
 
  2013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는 지난 6월 미국 뉴저지주(州)에서 열렸다.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진행된 이번 드래프트에선 예년과 달리 특별히 주목할 만한 대어급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Cy Young)상 수상자인 저스틴 벌랜더(디트로이트)의 동생 벤 벌랜더를 포함, 전·현직 메이저리거의 2세나 친·인척 선수들이 대거 지명되는 화제를 낳았다.
 
  특히 과거 김병현(34·현 한국프로야구 넥센 소속)의 소속팀이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은 이번 드래프트 34라운드에서 야구를 전혀 할 수 없는 하반신 불구의 장애인 코리 한(22)을 지명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지명과 관련된 속사정이 알려지자 수많은 야구팬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촉망 받던 아마추어 선수 코리 한에게 찾아온 불행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로나 출신인 한은 어려서부터 공부와 야구 둘 다 잘했다. 한은 투타를 병행했던 고교 3학년 때 타율 0.411에 14승을 거둘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야구부 주장을 맡을 만큼 리더십도 좋았고, 18세 이하 미국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도 획득했다. 캘리포니아주 최고 아마추어 야구선수에게 주는 미스터베이스볼에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한은 지난 2010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6라운드에서 샌디에이고에 지명됐다. 하지만 그는 프로 대신 안드레 이디어(32·LA 다저스) 등을 배출한 야구명문 애리조나 주립대(ASU)에 진학했다. 평소 학업을 우선시해 대학을 마치고 프로에 가도 늦지 않다는 그의 소신이 작용한 것이다.
 
  대학 새내기가 된 한은 2011년 2월 20일, 애리조나주 템피(Tempe)시에 위치한 애리조나 주립대 야구장에서 열린 뉴멕시코주 대학과의 홈경기에 외야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의 대학리그 두 번째 경기였다.
 
  한은 1회말 공격에서 안타를 치고 1루에 진루한 잠시 후 2루 도루를 시도하던 중 상대팀 2루수 카일 스티너와 충돌했다. 야구경기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쓰러진 한은 자력으로 일어나지 못했고 들것에 실려 나온 그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당시 경기장을 찾은 많은 야구팬은 들것에 실려 나가는 한을 바라보며 그의 쾌유를 기원했지만 다음 날 신문에는 한의 목뼈가 부러져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비보가 실렸다.
 
  한은 장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하반신 불구가 됐고 짧았던 그의 야구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수술과 근 1년간의 재활을 마치고 지난해 휠체어에 의지해 학교로 돌아온 한은 학업을 계속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보조코치 자격으로 그라운드를 찾아 팀 동료들을 도왔다. 불편해진 몸은 더 이상 한을 야구장에 설 수 없게 했지만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만큼은 아직도 그곳에서 불타고 있었다.
 
  이처럼 한의 뜨거운 야구 열정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애리조나 구단은 올 2013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34라운드에서 한을 지명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애리조나가 그를 34라운드에서 지명한 것은 한의 대학시절 유니폼 등번호가 34번이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의 지명을 받은 한은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나를 지명해 준 애리조나 구단에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구단의 일원이 돼 너무 영광스럽고 지금의 이 벅찬 감동은 영원할 것”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애리조나 구단 사장(CEO) 데릭 홀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을 지명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도 벅찬 감동이었다. 우리 팀의 스카우트 책임자인 몽고메리가 나에게 한을 지명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찬성했다. 한을 지명한 것은 우리 팀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과 그의 가족을 위한 결정이었다”며 한을 지명한 이유를 설명했다.
 
  홀은 또 “한을 지명한 것은 그에게 잠시 스쳐 지나가는 짧은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그의 미래를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한을 애리조나 구단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고픈 확고한 의지가 있으며 한과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조만간 이 일이 결실을 맺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은 꿈과 열정이 가져온 기적 같은 현실
 
코리 한이 자신의 입단 기자회견장에서 애리조나 구단 사장 데릭 홀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한은 지난 7월 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의 홈 구장인 체이스필드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 기자는 물론 애리조나 지역에 있는 다수의 언론사 취재진이 참가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애리조나 구단 사장 홀은 “한이 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에 찾아가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말로 운을 뗀 뒤 “당시 한에게 느꼈던,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과 훌륭한 인성에 반해 언젠가 그와 함께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더 일찍 한을 지명하고 싶었지만 프로에 한 번 지명된 선수는 3년이 지나야 재지명할 수 있는 조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해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홀은 이어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은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최고의 유망주를 뽑는다. 그래서 1차 지명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의 감동과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한은 비록 34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그를 뽑았을 때 느낀 감동은 1차 지명 선수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과 기쁨 그 이상이었다. 당시 나를 비롯한 우리 구단 직원들은 한을 지명한 후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으며 개중에는 눈물을 흘린 직원도 있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홀 옆에 앉은 한은 “나를 너무 띄워줘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문을 연 뒤 “부상을 당해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아무 연고도 없는 나를 찾아 준 홀 사장과 애리조나 구단 직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느꼈으며 존경심도 생겼다. 그리고 장애인이 된 나를 지명해 준 구단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는 애리조나 구단에 평생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었다”며 입단 소감을 밝혔다.
 
  한은 이어 “3~4세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후 항상 메이저리거가 되는 꿈을 키워 왔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돼 장차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런 와중에도 야구를 떠난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애리조나 구단의 지명은 마치 끊어진 꿈을 다시 이어 준 기적 같은 일이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은 현재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아직 1년 정도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홀은 “한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그 후 구단주 보좌관이나 스카우트 또는 프런트 직원 등 그가 우리 구단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한과 의견을 교환해 결정할 것”이라며 향후 그의 채용계획을 밝혔다.
 
  한 또한 “우선은 공부에 매진해 학위를 따는 일이 먼저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앞서 홀 사장이 언급한 것처럼 구단 내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직접 체험한 후 내 적성에 맞는,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꿈과 희망은 물론 감동마저 선사하는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한 애덤 그린버그.
  기자는 한에게 ‘장차 어떤 직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은 “선수였을 때는 내 포지션이었던 외야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야구를 못하게 된 지금은 외야뿐만 아니라 모든 포지션이 다 눈에 들어온다”며 “앞으로 모든 선수의 고충을 수렴하고 고려해 그들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는 사려 깊은 직원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코리 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단순히 야구만 하는 곳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야구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은 물론 진한 감동도 선사한다. 꿈과 희망도 심어 준다. 그들은 이런 것들이야말로 함께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야구의 가치이자 삶의 목표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의 경우 메이저리그 구단이 야구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면 반대로 팬들이 나서 한 선수의 꿈을 실현해 주기 위해 구단을 움직인 사례도 있다.
 
  지금껏 기자가 만나 본 대다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야구를 시작한 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던 날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그만큼 야구선수에게 빅리그 데뷔는 결코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행복했던 순간이 최악의 상황으로 변하는 데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은 이도 있다. ‘최단명 메이저리거’인 애덤 그린버그(32)가 그랬다.
 
  그린버그는 지난 2002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에서 시카고 컵스에 지명돼 프로에 진출했다. 힘든 마이너리그 외야수 시절을 이겨 낸 그는 3년 뒤인 2005년 7월 메이저리그로 콜업됐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그린버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컵스는 당시 8연패로 부진했고 침체된 팀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발 빠르고 출루율이 좋았던 나를 메이저리그로 불러 올렸다. 플로리다로 건너가 팀에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얼굴에 피어나던 환한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라고 당시 소감을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그린버그는 이틀 후인 2005년 7월 9일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9회초 대타로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들어섰다. 당시 상대투수는 발레리오 산토스.
 
 
  가장 행복한 순간에 死球가 불러온 불행
 
시카고 컵스 시절이었던 지난 2005년 7월 9일, 메이저리그 데뷔를 축하해 주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형제들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짓던 애덤 그린버그.
  “당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부모님과 형제들도 나의 메이저리그 데뷔를 축하해 주기 위해 야구장에 와 있었고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린버그는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그린버그가 최악의 순간으로 추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초. 상대투수 산토스가 던진 초구 148km의 직구가 그린버그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들었고 이를 피할 겨를도 없었다. 머리에 공을 맞고 쓰러진 그린버그는 다행히 의식은 있었으나 극심한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하며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당시만 해도 그것이 그린버그의 메이저리그 경력 전부가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린버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꿈꿔 왔던 메이저리그 타석에 들어섰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당시 속으로 ‘어서 던져 봐. 멋지게 안타를 쳐 줄 테니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구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을 때 내 머리 뒤통수가 마치 수박처럼 쪼개져 쩍 벌어진 줄 알았다. 그래서 순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너무 아팠고 내 생애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불행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기에 그 고통은 더 잔인했다.
 
  어려서부터 메이저리거가 꿈이었던 그린버그는 하루빨리 메이저리그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사고 3주 후부터 재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재활준비가 다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필드에 나가 수비연습을 하는데 굴러오는 공을 잡으려 머리를 숙이면 사물이 두 개로 갈라져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게다가 머리를 숙일 때마다 심한 두통이 몇 시간씩 지속됐다.”
 
  자신의 신발끈 하나 스스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린버그는 결국 그해 시즌이 끝나고 시카고 컵스에서 방출됐다. 야구선수는 고사하고 일반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조차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그린버그는 수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한 끝에 사고 1년 6개월 후부터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그의 딱한 사연을 듣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구단은 캔자스시티 로열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린버그는 메이저리그로 복귀하지 못했다. 사고 후유증 때문에 몸쪽 공에 약한 모습을 보였고 기량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 후 그린버그는 LA(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신시내티 레즈,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했고 2009년부터는 독립리그에서 뛰며 선수생명을 이어 갔다.
 
  사고 후 7년의 시간이 흘러 그린버그는 30대가 됐지만 그는 어느 선수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적지 않은 나이도 문제지만 그 동안 결혼을 통해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정도 생겼기 때문이다. 독립리그에서 받는 연봉 1800만원으로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아내가 돈을 벌어야 했다.
 
 
  한 야구 팬이 시작한 캠페인, ‘기적’을 만들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린버그의 사연을 접한 한 야구팬이 웹사이트(oneatbat.com)를 개설해 그린버그에게 다시 한 번 더 메이저리그 타석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자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린버그처럼 공에 맞은 후 1루에 진루하지 못한 경우는 메이저리그 공식타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그린버그의 기록에는 메이저리그 타석 등장(1회)으로 기재됐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캠페인은 날이 갈수록 야구팬들의 관심과 성원을 받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언론의 관심도 이끌어내 그린버그는 지난해 가을 미 최대 스포츠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사연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방송에 출연한 뒤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그린버그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를 위해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청원운동을 벌여 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과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에 더더욱 내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린버그는 이어 “나는 대중의 감성에 호소해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을 찾는 것이고 그 팀에서 정당한 경쟁을 통해 실력이 입증되면 그때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송이 나간 후 그린버그를 위한 청원운동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캠페인은 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팬들의 관심과 진심은 결국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을 움직였다.
 
  그린버그는 지난해 9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마이애미 말린스와 계약했으며 10월 2일 뉴욕 메츠와의 홈경기에 출전할 것”이라는 낭보를 전해왔다. 사고로 메이저리그를 떠난 지 무려 7년 만의 일이다.
 
  그린버그와의 통화가 있고 이틀 후인 9월 28일, 마이애미 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그린버그와 10월 2일 하루만 유효한 1일용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구단은 또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린버그의 열정을 존중하며 그런 그에게 메이저리그 타석에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그린버그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받은 3000달러 전액을 마이애미 구단에 기부했고 그 돈은 재단을 통해 그린버그처럼 머리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됐다.
 
 
  7년 만에 복귀한 메이저리그, 하지만 단 33초…
 
  지난해 10월 2일, 그린버그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3-0으로 앞선 6회말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무려 7년이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선 메이저리그 타석이었다. 당시 그린버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3만여 관중은 그린버그가 타석에 서자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7년이란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가 타석에서 물러나는 데는 고작 3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상대 투수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R. A. 디키였다. 디키는 경기 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린버그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봐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메이저리그 타자와 똑같이 그린버그에게도 전력투구할 것이다”라고 밝혔고 실제로 그랬다.
 
  디키에게 삼구 삼진으로 물러난 그린버그는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경기 후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한 그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7년간의 고생은 모두 잊었다. 너무 기뻤다”며 소감을 전했다.
 
  ‘최단명 메이저리거’라는 오명과 함께 그동안 그린버그의 메이저리그 기록에는 무타석 1등장이라는 기록만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경력란에는 당당히 1타석이 기록됐다. 숱한 역경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린버그의 열정과 야구 팬들이 합심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올 초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구단과 계약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입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그린버그는 지난 3월 말 또 다시 팀에서 방출됐다. 그리고 현재 그는 독립리그에서 연봉 1800만원을 받으며 뛰고 있다.
 
  그린버그에게 물었다. “만약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에게 만약이란 없다. 나는 반드시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것이고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절대 두렵지 않다. 두려움은 나를 후퇴만 시킬 뿐이다.”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불구의 장애인이 됐지만 사랑하는 야구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은 코리 한은 메이저리그 구단 직원이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됐다. 그린버그 또한 사고로 메이저리그를 떠났지만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국 팬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고 다시 메이저리그 타석에 설 수 있었다.
 
  이 둘의 이야기를 취재하며 문득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지도자였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울러, 그린버그가 기자에게 들려준 “돈이 없으면 잠시 불편하지만 꿈이 없다면 영원히 가난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