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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정현의 ‘저 높은 중국, 낮은 중국’ ⑨

중국 내륙 최고 부자 쭝칭허우를 만나다

글 : 김정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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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와하하그룹, 중국판 토종 콜라로 코카콜라·펩시 견제
⊙ 삼성 이건희 회장보다 재산 많은 쭝칭허우 와하하 회장, 인스턴트 커피 즐겨 마셔
⊙ “세금 제대로 내는데 기부가 왜 필요한가”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쭝칭허우 회장(왼쪽). 대륙 전역에서 판매 중인 ‘순정수 와하하’(오른쪽).
  세계적 경제잡지 《포브스(FORBES)》 선정 2010년, 2012년, 2013년 중국 본토 최고의 부호.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84세), 인도 타타그룹 라탄(75세) 회장에 뒤이은 아시아 3위의 부자. 보유 주식 가치 820억 위안(약15조원). 추정 몸값 116억 달러(약12조원)…. 항저우와하하그룹(杭州娃哈哈集團)의 동사장(董社長) 겸 총경리(總經理·한국으로 치면 회장)인 쭝칭허우(宗慶後)의 얘기다.
 
  그를 만나 ‘중국 최고 부자들’의 일면을 엿보고 싶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지 3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인터뷰 날짜는 연락이 온 날의 바로 다음 날.
 
 
  중국 최고 음료기업의 본사는 허름한 6층 건물
 
  쭝 회장은 1945년 10월생으로 67세다. 저장(浙江)성 항저우 출신이다. 중학교는 1963년에 졸업했는데 대학 재학기간은 1981년부터 1988년까지다. 그의 이력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조부(祖父)가 만주군벌 장쭤린(張作霖)의 재정부장을 지냈다는 것과 부친이 국민당 정부에서 일했다는 사실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세월 비어 있는 학업, 농촌과 공장을 전전했던 고단한 청년시절의 까닭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초고속열차가 막 개통된 항저우 동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기사는 항저우와하하그룹 본사 위치를 모른단다. 아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몰라도 ‘와하하’는 중국 인민이라면 어린 아이까지 모두가 알 터이다. ‘와하하’라는 상표가 붙은 정수한 물부터 광천수, 각종 차(茶), 음료수 등중국 최대 식품음료회사 와하하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인민의 친구이고 일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냥 ‘와하하’도 아니고 ‘항저우와하하’인데 말이다. 택시기사가 다른 도시에서 흘러 들어온 초보자인가 했는데 그도 아니었다. 회사 측의 전화통화 안내로 어렵게 본사를 찾아가서야 그 까닭을 알았다.
 
  항저우 구시가지 허름한 동네, 바로 코앞에는 오래된 고가도로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곳의 낡은 6층짜리 건물이 수십조 원 기업 가치를 지닌 항저우와하하그룹의 본사였다. 마중 나온 대외연락판공실 부주임 산치닝(單啓寧)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섭씨 38〜39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에어컨 없는 복도는 찜통이다. 접견대기실에도 십 년은 된 듯한 중국산 에어컨이 덜덜거린다. 내놓은 음료수는 뜨뜻미지근한 와하하 물 한 병. 시중 판매가격으로 1〜2위안(약 185〜370원)짜리다.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해 커피 한 잔을 부탁하자 독일산 다비도프(Davidoff) 상표의 인스턴트 커피를 병째 들고 와 동사장만 마시는 커피인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절약이 부(富)의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기다리고 있으려니 쭝 회장은 비행기 연착으로 30분 정도 늦어진단다. 전용비행기는 없는지 물었더니 자동차도 10년을 넘게 타다가 올해 신형으로 바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쭝칭허우가 사는 집을 물어봤다. 아무리 절약이 몸에 배었더라도 사는 집만은 번듯한 저택이리라 상상하며. 그러나 부인이 와하하에 재직하는 동안엔 직원숙소용 아파트에 살았고, 4년 전 그녀가 퇴직하고서야 인근에 비슷한 규모의 일반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는 이야기에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마침내 그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자 집무실로 안내한다. 대략 100m² 남짓의 공간이 조금 넓기는 하다. 하지만 책상과 낡은 천 소파 세트, 텔레비전 한 대, 회의용 테이블과 벽면을 채운 책장이 집기의 전부다. 별도의 장식품이라고는 조금 큰 크기의 어항 하나가 고작이다.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을 목표로 사업 시작
 
쭝칭허우 회장의 집무실. 쭝 회장은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재산이 많은 부호다.
  —항공 체증이 점점 심해질 텐데 전용비행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구입할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어린 시절에 고생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부유한 집안이었다고 하는데 내 나이 4살 때 해방이 되고 나서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항저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사오싱(紹興), 저우산(舟山)시 등지에서 농사와 염전 일을 했습니다. 문화대혁명에 따른 일종의 하방(下放)이었고, 어머니가 학교 선생님을 하셨어요.”
 
  —심정이 어땠나요.
 
  “농촌 생활을 15년쯤 했는데 그냥 천직이라 생각하며 순응했습니다.”
 
  —그래도 꿈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머릿속에서야 각종 꿈들이 섞여 있었지요. 그렇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인고의 시간이었겠습니다. 어떻게 견뎌냈습니까.
 
  “유일한 위안이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었지요.”
 
  —그래도 가장 즐겨 읽던 책이 있다면.
 
  “역사책이었습니다. 역사 이야기에는 많은 교훈이 들어 있으니까요.”
 
  —중국 역사에서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요.
 
  “시대마다 훌륭한 인물이 있으니 특별히 누구를 꼽을 수는 없지요.”
 
  신중하다. 역사 속 한 인물에 대한 존경심은 그의 정치·사상적 성향의 표출이 될 수도 있으니 그에 따른 해석을 경계하는 것이라면 조심스러움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뷰 전 대외담당자로부터 에둘러 말하거나 화려한 수사는 피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었다. 번지르르한 말재주는 없거나 싫어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직문직답은 오해의 여지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서른이 넘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더군요.
 
  “1978년, 어머니께서 교사직을 퇴직하며 항저우로 돌아왔어요. 내가 가장이 된 것이니 고향이자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했지요. 광명전기회사의 영업직을 시작으로 승리전기 등의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영업직이었는데 요즘과는 다른, 삼륜차로 밤늦도록 물건을 배달하는 일까지 했지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와하하영양식품공장이라는 상호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42세의 나이였으니 각오가 남달랐겠습니다.
 
  “항상 홍콩의 리카싱을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사업을 한다면 반드시 항저우의 리카싱이 되겠다, 그가 20년에 이룬 걸 나는 15년 내에 이루겠다, 하고 말입니다.”
 
  —왜 하필 리카싱인가요.
 
  “그가 중국인 최고의 부자니까요.”
 
 
  하루 담배 두어 갑이 지출의 전부
 
  —당신에게 부, 즉 돈은 어떤 의미입니까.
 
  “일종의 가치죠. 인생에서 가치를 평가받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부의 길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소유한 부가 생활에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하루에 개인적인 지출은 얼마나 되나요.
 
  “내 일상의 대부분이 회사 일을 보는 것이기에 공적인 것을 제외하면 하루에 담배 두어 갑 사는 게 내가 쓰는 돈 전부일 겁니다. 아내도 줄곧 회사에서 일을 했고, 딸도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 달리 돈을 쓸 곳은 없어요.”
 
  인터뷰 중에도 연신 담배를 꺼내 무는 그는 거의 체인 스모커 수준이다. 애용한다는 담배는 독일산 다비도프였다.
 
  —담배가 건강에 지장을 줄 것 같은데요.
 
  “하루에 두어 갑 넘게 피우는 때가 많지만 특별히 술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별 문제는 없어요.”
 
  —특별히 건강을 챙기는 비결이 있나요.
 
  “제때 식사하는 것 외에는 종합비타민을 잊지 않고 챙겨 먹는 정도지요.”
 
  다시 한 번 그를 살펴봤다. 소매를 걷어 올려 반팔이 된 노타이 와이셔츠는 구깃구깃하고, 검은색 바지는 무릎이 튀어나왔다. 반백의 머리카락은 자른 그대로 푸석하고,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굳게 다문 입술 외에는 그저 수수한 이웃의 아저씨다. 마주한 그의 앞에 놓인 것도 큼지막한 찻잔에 담긴 항저우 룽징(龍井)차와 재떨이, 그러고 보니 라이터도 1회용이다. 내친김에 하나 더 물어봤다.
 
  —특별히 아끼는 애장품은 있나요.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없네요.”
 
  —그럼 삶에서 뭐가 가장 재미있나요.
 
  “그저 일하는 거죠. 취미도 일이니 내게는 휴일이 없어요.”
 
  망설임 없는 대답에 워커홀릭이라는 그에 대한 평가가 실감된다.
 
  —사업은 다니던 직장에서의 일과는 다른 식품업입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오랫동안 농사일을 했으니 식품에 관심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집집마다 배달하는 장사였습니다. 첫해에 10만 위안쯤을 벌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식품의 위생부분 때문에 탈이 나는 일이 많았어요. 또 대부분의 아이들은 편식으로 영양불균형이 심했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영양과 성장에 도움이 될 상품을 개발하고자 저장의대 교수를 중심으로 연구진을 구성했어요. 자금도 빠듯했지만 어쨌거나 연구진은 일류였고, 중의학 원리에 따라 개발한 것이 아동 영양 음료였습니다.”
 
  —성공했나요.
 
  “국가과학기술 2등상을 받았으니 기술적으로도 인정받은 것이고, 출시한 첫해에 500만 위안쯤의 매출을 올렸어요. 이듬해에는 2700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고요.”
 
  —사람의 웃음소리인 ‘와하하’라는 상표개발은 아주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본래 ‘와하하’는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 소수민족 동요인데 브랜드 공모로 개발했습니다. 그 와하하를 줄곧 키워 온 게 내 성공의 가장 첫 번째 요인일 겁니다.”
 
 
  중국판 봉이 김선달
 
2012년 10월에 발간된 중국판 《포브스》 표지. 내륙 최고 부자로 선정된 쭝 회장의 얼굴이 보인다.
  대중의 입에 착 달라붙는 브랜드 개발은 그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줬다. 출시하는 제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국영기업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통조림 공장을 2000여 명의 종업원까지 안고 인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우려와 질시의 시선이 많았지만 과즙우유를 개발해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렸다. 불과 3개월 만에 적자기업이 흑자로 돌아섰다. 전혀 기발하지 않아 보이는 평범한 아이디어의 성공이기도 했다. 1996년, 그는 다시 평범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순정수 ‘와하하’의 출시였다. 순정수는 광천수도 아닌 말 그대로 정수한 물, 즉 깨끗한 물이다. 봉이 김선달 같은 발상이지만 전통적으로 깨끗한 물에 목말라했던 중국인들에게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그 순정수 와하하는 현재도 중국 전역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애용하는 음료수이다.
 
  —순정수 생산은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요.
 
  “개혁개방이 되며 무분별한 개발이 시작되었지요. 자연환경의 파괴는 필연이었습니다. 게다가 노후화한 수도관 등으로 마음 놓고 마실 물이 점점 적어졌습니다. 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지만 도시화하고 생활이 바빠지면서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니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깨끗한 물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천수는 비싼 데다가 성분에 따라 논란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생각해 냈지요.”
 
  어떤 경제학자는 와하하 순정수의 출현을 그의 상업제국 건설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음료와 식품사업에만 전념했다. 한때 중국인 한 사람에게 상품 하나씩을 팔아 1원씩만 남겨도 13억을 번다는 순진한 꿈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어찌 보면 와하하의 성공은 그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가장 평범한 성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에 그치는 것과 성과를 거두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그의 성공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바로 조밀한 유통망이다.
 
  와하하는 현재 중국 29개 성, 시, 자치구에 66개의 생산기지와 170여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들 자회사가 약 6000개에 이르는 1차 대리점에 상품을 공급한다. 1차 대리점의 상품은 다시 4만여 개에 이르는 2차 대리점을 통해 전국 100만 소매상으로 공급되는 구조이다. 그렇다고 그저 넓은 공급망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대리점으로부터 받은 보증금은 은행 금리보다 높은 이율로 계산해 제품 값 정산에 반영한다. 연말에는 수익금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나눠 준다. 대리점으로서는 가장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와하하 제품 영업에 우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최고급 백화점에서 산골 오지 작은 구멍가게까지 와하하 전 제품이 퍼져 있는 비결이다.
 
 
  신공장 건설 위해 중국땅 절반을 돌아다녀
 
  —기업가로서 당신의 제일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윤의 창출입니다. 기업이나 기업가에게 이윤 창출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와하하의 경영 이익은 어느 정도인가요.
 
  “어림짐작으로 이야기하자면 순수이익이 연간 100억 위안은 되니 사흘에 1억 위안(약 185억원) 정도는 버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이윤 창출을 위해 기업주이자 경영자인 당신은 어떤 일을 하나요.
 
  “나는 매년 3분의 2 이상의 시간을 일선에서 보냅니다. 공장의 생산을 감독하고 영업을 독려하면서 말입니다. 그동안 여러 신공장 건설지 물색을 위해 돌아다닌 곳이 중국의 절반은 될 겁니다. 또 항상 신제품 구상에 몰두하고요.”
 
  —경영철학이 있다면요.
 
  “신념과 고집입니다. 의지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회사와 소비자를 위해서, 나아가 중국 인민과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반드시 생산하고 성공하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중국을 장악하자 1998년 페이창(非常)이라는 상호로 토종 콜라를 출시했다. 물론 강점은 그의 넓은 유통망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도 30% 대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두 외국계 제품을 견제하는 것은 콜라 시장을 온전히 외국계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실일 것이다.
 
  —와하하 순정수의 광고모델이 10년째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예, 미국 국적의 타이완 가수 겸 배우 왕리훙(王力宏·37세)인데,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에 변함이 없으니 바꿔야 할 이유가 없지요.”
 
  —광고에 관한 생각도 독특합니다.
 
  “단순 소비재 광고는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유인할 수 있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문화성이나 예술성을 염두에 둬야 할 이유가 없지요.”
 
  —혹시 식음료와 같은 단순 소비재가 아닌 다른 상품이라면요.
 
  “그때는 다를 수 있겠지요. 상품에 따라서는 이미지 광고가 더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내 가치를 존중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골프도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일하는 자체가 운동인데 굳이 따로 운동을 찾아서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그런 운동이나 문화적 활동을 통해서 인간관계의 유지와 새로운 사업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차피 일을 하다가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런 만남에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게 되니 굳이 따로는….”
 
  —아주 가까운 친구는 있나요.
 
  “깊은 관계의 지기(知己)도 없지만 나쁜 친구도 없는 정도입니다.”
 
  —그럼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는 한참을 생각한 뒤 답을 했다.
 
  “가치죠, 내 가치를 존중받는 것.”
 
  깊은 사무침이 느껴지지만 더 잇지는 않았다.
 
  —가족은 어떤가요.
 
  “소중하죠. 그렇지만 아내는 몇 년 전까지 회사 일을 했고, 딸은 여전히 제 일을 하는 중이니 서로가 바빴고 바쁘죠.”
 
  —따님의 현재 경영능력은 마음에 드나요.
 
  “….”
 
  가족에 대한 질문은 삼가 달라는 사전 요구가 있었는데 역시 침묵이다.
 
  쭝칭허우를 비롯한 그들 가족은 매스컴을 멀리하기로 유명하다. 4년 전 퇴직한 부인 스유전(施幼珍)은 얼굴을 드러낸 바가 거의 없고, 1982년생인 딸 쭝푸리(宗馥莉)는 현재 와하하 일부 계열사 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음료 및 식품 소재와 아동복, 화장품, 신제품 관련 사업 등을 관장하는데 미래를 지향한 수업이고 경영인 셈이다. 그들 세 사람이 가진 와하하그룹 주식은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 그룹인데 주식시장에 상장하지는 않았더군요.
 
  “보유한 현금이 넉넉합니다. 외부자금을 끌어와야 할 필요가 없으니 상장할 이유가 없지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마 와하하그룹을 상장한다면 그의 보유 주식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어쩌면 리카싱의 자산 규모를 상회할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또한 기업가라면 누구나 더 넓은 시장과 영역으로의 확장을 꿈꿀 텐데, 소박한 것일까?
 
 
  세금 다 내는데 별도의 기부 필요 없어
 
  —미래 전략을 듣고 싶습니다.
 
  “5년 후, 10년 후 계획이라는 건 공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죠. 물론 그에 상응하는 기업도 있지만 그것은 정확한 예측이나 전략보다는 운이 따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과 내일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게 내 기본 방침입니다. 그렇다고 전략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큰 개념의 전략은 있어요.”
 
  —큰 개념의 전략이라면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우선은 기술투자입니다. 식음료뿐만 아니라 여러 생활용품에 대한 연구개발이죠. 우선은 친환경이어야 하겠지요. 이를테면 비오염 전자제품 같은 것 말입니다. 절전도 생각해야 할 거고요. 인터넷을 통한 유통사업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연구 중입니다. 바이오와 저탄소에너지 관련 사업다각화에 대한 연구와 구상도 있습니다.”
 
  —그동안은 식음료가 주 사업이었는데 최근 아동복, 화장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가고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그의 딸 쭝푸리는 유일한 자녀이기도 하지만 신규 사업 대부분을 관장하고 있으니 후계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녀는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푸리자선기금’을 설립해 빈곤한 대학생과 초등학생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모금된 기금의 규모는 96만 위안(약 1억8000만원)으로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중국 내륙 최고의 부자이니 자선 요청도 많겠습니다.
 
  “내 부는 투기를 하거나 부정의 개입 없이 음료수 한병 한병을 팔아 모은 돈입니다. 나라에서 내라는 세금도 다 냈습니다. 그런데 왜 별도의 기부를 또 해야 합니까. 또한 나는 기본적으로 자선이나 기부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기업가는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최고의 사회적 환원이고 기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의 임직원이 6만여 명입니다. 그 가족을 포함하면 20만명이 넘는 사람의 생계와 희망을 책임지는 것이죠. 그러니 기업의 성공적 운영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는 것이기에 저의 관심은 오직 회사의 안정과 지속, 그리고 성장입니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동지께서도 인민이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을 최고의 목표와 가치로 여겼습니다. 우리 와하하는 중국 인민이 안전하고 영양 있는 먹거리를 값싸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왔습니다. 또한 정직하게 세금을 내 국가재정에 기여하고요.”
 
  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더구나 중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당당함이고 독특한 철학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에도 일리는 있지만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렇지만 공공에 대한 인색으로 개인의 영화만을 추구한다면 비난할 수 있겠지만 쭝칭허우에게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문득 그룹 본사 사옥이 생각났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
 
  —그룹 규모에 비해서 본사 사옥은 지나칠 정도로 검소한 것 같습니다.
 
  “생산직원들이 근무하는 공장은 모두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별 필요도 없이 커다란 사옥이나 짓는 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동산개발도 나름 수익성이 높은 사업일 텐데요.
 
  “부동산개발 사업에는 여러 특혜가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건 내 철학과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의 당당함의 배경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기업은 사람일 텐데, 사람 경영은 어떻게 하나요.
 
  “내가 휴일이 없으니 직원들도 고달픈 면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인정과 의리를 중시합니다. 우리 직원들 모두가 집과 자동차,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각각이 직원이고 사장인 셈입니다. 덩샤오핑 선생께서도 일부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된 뒤 다른 사람들을 끌어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중국 인민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 회사의 지속과 성장을 위해서 수시로 젊은 피를 수혈합니다.”
 
  —요즘 중국 상황을 보면 기업은 물론 정부에까지 지나치게 젊은 층 우선의 경향을 보이는데 경륜의 지혜도 필요한 게 아닐까요.
 
  “발전 중인 국가에서는 선진적인 지식과 마인드가 필요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두고 사람들은 쉽게 전형적인 중국 부자라고 평가한다. 외양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그저 부만 축적하는 전형 말이다. 그러나 쭝칭허우를 돈만 그러모으는 부자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기업경영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지향하는 가치, 탈법이나 특혜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기껏 소비재로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으로 폄훼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식음료 사업은 순간적인 아이디어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 그칠 수 없는, 지속되어야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조업이다. 그의 제품이 그저 반짝 아이디어였거나 문제가 있었다면 결코 그처럼 지속적인 성장으로 최고의 부를 일궈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뚝심과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넓은 대륙을 아우르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철옹성의 유통망을 구축했다. 그는 이제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으로 더욱 큰 유통 제국을 건설할 계획이다. 세계적 유명 상품을 자신의 유통망을 통해 전국에 공급하는 신규 사업도 시작했다. 8월 말, 2박3일 일정으로 한국 방문 계획을 세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를 평가하며 주목해야 할 것은 ‘항저우와하하’라는 기업 이름이다. 자신의 고향, 자신이 꿈을 키우고 일군 터전인 ‘항저우’를 기어이 놓지 않고 있다. 말로만 인정과 의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지켜 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충고가 있다면요.
 
  “창의와 혁신, 인내심입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더욱 앞선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혁신이 있어야 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성공의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을 소홀히 보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장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는 몸소 실천한 사람이기에 더욱 새겨듣게 된다.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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