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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새롭게 재편되는 미국과 일본의 共生

일본 군사대국화의 배후는 미국이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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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오스프레이 전투기 구입 등 통해 美에 적극적으로 다가서
⊙ 일본 자위대, 오바마의 국방예산 절감으로 생기는 亞太지역 미 해·공군 공백 메울 것
⊙ 日을 앞세워 경쟁자를 견제하는 것이 20세기 초 이래 美의 亞太전략

劉敏鎬
⊙ 5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요시다 시게루 전 일본 총리(왼쪽)와 아베 신조 현 총리(오른쪽). 미국에서는 아베를 ‘제2의 요시다’로 보고 있다.
  먼저 영화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자. <47 로닌(Ronin)>이라는 영화다. 3부작 영화 <매트릭스(Matrix)>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오래간만에 등장하는 액션영화다. 오는 11월 전(全) 세계에 선보이는데, 8월 초부터 광고에 들어간 상태이다.
 
  ‘로닌’이란 말은 일본말 낭인(浪人)에서 온 말이다. 1895년 경복궁에서 벌어진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主犯)으로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낭인’이 바로 로닌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대입재수생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지만, 원래 의미는 19세기 막부(幕府) 말기에 등장한 사무라이 실업자를 일컫는 말이다.
 
  <47 로닌>의 원작(原作)은 <추신구라(忠臣蔵)>라는 작품이다. 18세기 초 47명의 사무라이가 주군(主君)의 복수를 한 후 전원 할복(割腹)한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일본인 모두가 사랑하는 비극(悲劇)이다. <추신구라>는 가장 인기 있는 가부키(歌舞伎) 작품이며, 영화나 TV드라마로도 수없이 되풀이되어 만들어졌다. <추신구라>에서는 개개인의 캐릭터보다 47명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이름만이 눈에 띈다. 조직을 우선하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미(美) 의식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21세기의 일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춘향의 일편단심(一片丹心)과 이몽룡의 입신출세(立身出世) 스토리를 담은 《춘향전》이 한국인의 가치관과 꿈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보여준다면, <추신구라>는 일본식 가치의 결정판이다. 때문에 일본을 연구하는 이들은 <추신구라>를 ‘일본학(Japanology)의 바이블’이라고 평한다.
 
 
  일본 軍國主義의 상징 <추신구라>
 
일본의 고전 <추신구라>를 원작으로 한 영화 <47 로닌>.
  <47 로닌> 상영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추신구라>의 스토리와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이 영화를 만들어 개봉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47 로닌>, 즉 <추신구라>는 1931년 만주침략 이후, 1945년 8월 15일 패전(敗戰) 마지막 날까지, 일본 군국주의(軍國主義)가 숭배한 일본혼(日本の魂)의 정수(精髓)에 해당한다. <추신구라>는 전쟁 당시 국민영화, 국민가부키, 국민소설, 국민교과서로 만들어진 프로파간다의 핵(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주군이 에도 쇼군(將軍)의 연회 도중 누명을 쓰고 할복을 명(命) 받는다. 그에게 속했던 사무라이들도 한순간에 쫓겨나 낭인으로 전락한다. 47명의 사무라이는 주군을 불명예스럽게 죽게 만든 원수를 처단하기로 결의한다. 2년 동안 기회를 엿보던 이들은 눈 내리는 겨울밤, 원수를 살해하고 그 머리를 주군의 무덤에 바친다. 이들은 그동안의 경위를 주군에게 보고한 뒤, 모두 무덤 앞에서 할복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지, 쇼군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한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는 패전할 경우 <추신구라>의 로닌 47명이 그러했듯이, 불명예에 빠진 일본 국민 1억명 모두가 할복해야 할 것이라고 독촉했다. <추신구라>는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집단세뇌를 위한 최고의 재료였다.
 
  <추신구라>에 따르면 상륙한 미군을 죽이고 자신도 할복하는 것이 일본인의 의무이자 미덕(美德)이 된다. 때문에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검열단은 <추신구라>를 ‘절대금지’ 작품으로 지정했다. 패전 마지막 날까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사무라이 스토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추신구라>의 復權
 
  <추신구라>가 다시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부터이다. 한국전쟁은 일본인에게 경제부흥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미국이 공산주의에 맞서는 데 원군(援軍)이 된 일본은 <추신구라>를 복권(復權)시키는 데도 성공한다.
 
  3개월 뒤 개봉하는 영화 <47 로닌>은, 패전 직후 <추신구라>를 금지당했던 일본의 ‘슬픈 기억’을 치유하는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프로파간다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추신구라>가 미국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47 로닌>의 광고를 보면,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배우가 일본인이다.
 
  만일 <추신구라>를 일본이 제작해 세계에 배포한다면, 그 반발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할리우드는 다르다. 흥미로운 영화로서 전 세계 모두가 즐기는 작품이 될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GHQ로부터 당한 치욕을 극복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패전 이후 금기(禁忌)가 됐던 전전(戰前)의 일본식 미덕과 가치가 일본열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패전하던 마지막까지 통용되던 일본의 ‘구(舊)시대 가치의 부활’은 할리우드발(發)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지각(地殼)변동 그 자체가, 구시대 가치의 부활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또 일본이 나서서 각본·감독·주인공 3역을 맡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 상황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한 사람이 앞장서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아베는 무대에서 하이라이트를 받는 배우일 뿐이다. 각본과 감독은 따로 있다. 바로 미국이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동북아 구도 개편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반일(反日)감정 때문이겠지만, 최근 한국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미일(美日)관계를 주축으로 한 국제질서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거의 없다. 감정을 앞세우면 아주 간단하고 상식적인 부분들조차 놓치게 된다.
 
 
  이임하는 駐日 美대사, 사이버·우주안보 강조
 
  지난 8월 8일 이임식에서 주일(駐日) 미국대사 존 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헌법해석이나 헌법개정은 일본이 결정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결정이 내려질 경우, 미국은 일본과 협력해서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식으로 풀어나가고 싶다.… 미일 양국은 사이버안보나 우주안보와 같은 21세기판 안보상황에 공동대처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위협에 맞서) 미일동맹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사이버안보와 우주안보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IT를 통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바늘과 실 같은 관계이다. 전 세계 모든 안보전문가가 동의하겠지만, 이와 관련해 미국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 6월 7일 캘리포니아에서 이틀간 열린 미중(美中)정상회담의 핵심은 사이버안보 문제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사이버 도둑질을 당장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결국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강화하자는 것이 루스 대사의 발언요지이다.
 
  루스 대사의 후임은 존 F.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장녀인 캐롤라인 케네디다. 외교에는 문외한이지만, 미국 민주당의 상징적 존재인 그녀가 주일대사로 부임하는 것은 미국이 그만큼 일본을 중히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상식일 경우, 오히려 이를 간과(看過)하기 쉽다. 매일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일본을 통해 중국을 잡으려는 워싱턴의 전술전략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 보여주는 아시아권(圈)에서의 변화된 모습을 대할 때는 그 같은 상식을 쉽게 잊어버린다.
 
  한국·중국에 대한 일본의 강경대응은 결코 양자(兩者) 간의 관계만을 변수(變數)로 한 것이 아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얘기지만,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한중 두 나라를 상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편을 드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답은 간단하다. 이 문제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상관없는 척하는 것이 미국의 방침이다. 필요한 친구가 다른 곳에 가서 폭행사건에 연루됐다고 할 때 모르는 척, 아무런 관계가 없는 척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진짜 친구라면 그런 이중적(二重的)인 자세를 취할 리가 없다’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국제질서는 유교적 가치관이 아닌 이해득실(利害得失)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가 지배한다. 미국이 일본에 같은 동맹국인 한국과 가깝게 지내라고 충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럴듯한 이유를 댈 경우, 미국은 더 이상 일본을 다그칠 수가 없다.
 
 
  오바마의 육군 중심론
 
  미일동맹을 통한 협조는 사이버안보·우주안보에 국한(局限)하지 않는다. 지난 7월 31일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실린, 장문(長文)의 미 국방부발(發) 기사를 보자. ‘전쟁 금고를 둘러싼 부처 간 싸움(Military Branches Fight over War Chest)’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예산삭감 논의에 들어간 국방부 각 부처의 현황과 입장에 관한 기사다. 국방부 개혁의 해결사로 나선 헤이글 장관의 지시 아래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어떤 분야의 예산삭감에 나서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각 부처 간의 예산비율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공군과 해군의 예산규모가 육군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던 것이 9·11테러 이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육군의 예산이 해·공군 예산을 훨씬 넘어선다. 한번 굳어진 예산구조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모든 부서가 다 예산삭감에 돌입하겠지만, 공군과 해군의 예산규모가 육군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바마가 육군중시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중동에서 활동하는 육군이 한국과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활동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공군·해군·해병대가 아니라, 육군을 주력으로 한 아시아 방어망 구축 전략이란 의미이다. 한국에서 별로 들어보지 못한 신개념의 군사전략이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육군을 중시하는 오바마 발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육군은 실업을 없애주는 중요한 노동력 중심의 군대이다. 비싼 비행기와 선박이 필요한 해·공군과 달리 육군의 무기는 노동력, 개개 군인에게 예산이 할당된다. 해군·공군이 백인 중심, 육군이 흑인 중심이라는 인종적 구성도 오바마가 육군을 중시하는 배경이다. 실업자 수를 줄이고, 흑인에게 더 큰 혜택을 주자는 것이 오바마의 육군우대론의 속내이다.
 
  국방부 예산삭감 논의는 일본의 위상을 강화시키고, 미국이 일본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미 공군과 해군은 예산삭감이 이뤄지면서 과거에 비해 위상이 두드러지게 약화됐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이 주도하는 태평양전선의 핵심은 공군·해군·해병대이다. 오바마는 육군으로 이를 커버하겠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빈틈이 생기는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일본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고, 기꺼이 맡겠다고 자임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오스프레이 정치학
 
일본이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는 미국의 수직이착륙기 V-22 오스프레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초고속 헬리콥터형 전투기 오스프레이(Osprey: V-22)는 잦은 사고 때문에 오키나와(沖縄) 주민들이 기지배치를 반대했지만, 지난해 7월 마침내 반입이 결정됐다. 현재까지 12기가 일본에 들어왔다. 전부 36기를 일본 내 기지에 배치할 예정이다. 오스프레이는 활주로가 필요 없다. 특수장비와 함께 최고 50명이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다. 최고시속이 555km에 달하기 때문에 오키나와에서 중국과 분쟁 중인 센카쿠(尖閣) 열도까지 날아가는 데 1시간도 안 걸린다. 암초로 가득한 독도(獨島)와 같은 섬에서도 작전이 가능하다. 한 대에 무려 6000만 달러에 달하지만, 자위대는 미일군사체계 일원화(一元化)를 명분으로 오스프레이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자세는 펜타곤 장성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국방예산삭감 때문에 오스프레이 개발계획이 크게 축소될 예정이었지만, 일본이 구매 의사를 밝힌 덕분에 이 계획이 소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베의 친구는 오바마만이 아니다. 일본을 활용해 자신의 철밥통을 지키려는 ‘펜타곤 내 군사관료들’도 중요한 파트너이다. 오바마의 육군 중시 전략으로 인해 생긴 미 해·공군의 빈틈을 확실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보강해 나가겠다는 일본의 결의를 오스프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워싱턴은 아베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을 규정하는 기본지침서에 해당된다. 중국, 나아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대응과 방침은 워싱턴의 흐름과 맞물려 돌아간다. 일본이 막 나가는 듯 보이지만, 워싱턴에 반하는 정책은 상상할 수 없다. 틈만 나면 부르짖는 ‘미일동맹’이란 말은 대등한 관계 속에서의 군사동맹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결코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미일 간의 수직적(垂直的)인 질서를 기초로 한 동맹이라는 의미이다. 미일동맹이라는 말은 일본에 대해 ‘제멋대로 혼자 나가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반중(反中)전선은 일본이 채택한 21세기 신군사전략의 핵심이다. 센카쿠를 통해 중일 간의 긴장이 더해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작은 섬 하나가 핵심일 수는 없다. 중일(中日) 충돌의 뒤에는 센카쿠를 넘어선, 아시아와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미국의 외교군사 신전략이 있다.
 
  일본은 태평양에서 새로운 세력이 부상(浮上)할 때 서방 열강의 이익을 대변하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미국은 서방 열강의 대표주자이다. 근현대 이후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 태평양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그런 역할을 망각하고 너무 멀리 나가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제0차 세계대전’
 
러일전쟁 당시 여순공격을 준비 중인 일본군.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영미를 대신해 러시아와 전쟁을 치렀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 근현대사는 전부 미국과 얽혀 있다.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이 일본에 나타난 후 미일통상조약이 체결된다. 이후 일본은 빠른 속도로 근대국가로 발전했다. 조선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중국, 나아가 태평양, 뒤이어 하와이 진주만까지 나아갔다.
 
  일본이 조선을 넘어서 아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된 가장 큰 계기는 1904~1905년 러일전쟁이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17만명의 러시아대군과 발틱함대를 격파한 ‘기적의 전쟁’이다. 일부 역사가는 러일전쟁을 제0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른다. 러일전쟁이야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앞서는 ‘근대식 총력전(總力戰)’이라는 의미다.
 
  러일전쟁을 ‘제0차 세계대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전쟁의 뒤에 열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이 근대국가로 나아가던 19세기 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아시아 팽창 정책을 국시(國是)로 정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통해 부동항(不凍港) 개발에 나섰다. 1880년부터 시작된 시베리아철도 건설은 21년 만인 1901년 대륙횡단에 성공했다. 개설과 동시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러시아군을 극동으로 실어나르는 혈관이 됐다. 러시아는 몰락 직전인 청(淸)으로부터 여순항(旅順港)을 조차(租借)받아 조선과의 국경선 바로 위까지 철도로 연결했다. 이것이 1903년 완공된 동청(東淸)철도이다. 러시아는 여순항으로 이어지는 동청철도 보호를 명분으로 만주 전체를 사실상 장악했다.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중국 전체가 혼란 속에 들어가자, 러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만주 곳곳에 군대를 배치했다. 블라디보스토크항을 통해 태평양 무역을 독점할 계획도 세웠다.
 
  이처럼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조선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 러일전쟁 직전의 상황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군의 무력(武力)공격을 자국(自國)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했다. 긴장이 더해가던 상황에서 1904년 2월 8일, 일본해군이 여순항 러시아함대를 기습공격했다. 이후 일본은 1년7개월 만에 조선과 만주에 있던 러시아군을 전부 몰아냈다.
 
 
  19세기 말 러시아는 오늘의 중국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하는 미국 군함. 일본이 태평양에서 미국의 대리인이라는 ‘본분’을 잊으면서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열강들은 외교전을 통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입장을 표명했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막 근대화에 성공한 독일과 바로 옆의 프랑스는 러시아를 지지했다.
 
  19세기 말 러시아는 21세기 중국의 위상과 비슷했다. 태평양의 새로운 패권국(覇權國)으로 떠오르던 신흥강대국이 당시의 러시아이다.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에서의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견제했다. 미국도 적극적인 중남미(中南美) 개입을 통해 식민지 정책을 본격화하던 시기이다. 유럽과 미국이 태평양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던 시기에 러시아가 치고 나갔던 것이다. 독일·프랑스는 러시아의 팽창을 원치는 않았지만, 영국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니콜라이 2세를 지지했다.
 
  러일전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의 입장이다. 25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러일전쟁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결정했다. 그는 일본에 러시아를 격퇴할 것을 요청하면서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1902년 일본은 반러시아 전선을 구축한 영국과 군사동맹을 맺는다. 일본은 영일(英日)동맹과 루스벨트의 확고한 지지의사를 바탕으로 전쟁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일본수뇌부는 미국이야말로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영국이 아프리카 식민지 문제로 난관에 봉착한 상태에서 일본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남북전쟁 종료와 함께 태평양국가로 급부상했다. 영일동맹과 더불어, 미국의 든든한 외교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여순항 기습공격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일본을 지지했을까? 좁게 보면 러시아로부터 만주 내 미국의 이권(利權)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다른 해석이 나온다. 태평양에서의 신흥패권국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대(對) 아시아 정책이 가장 큰 이유였다. 러시아의 팽창은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태평양에서 다른 누구의 패권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루스벨트 이후 정착된 미국의 대(對) 아시아 정책의 기본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을 통해 러시아의 패권을 막아낸 인물이다.
 
  ‘제0차 세계대전’, 즉 러일전쟁은 일본이 미국을 대리해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실천한 분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러일전쟁 종식의 해결사로 나선 인물도 루스벨트다. 그는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일본의 이권을 보장했다. 이후 그는 러일 간 종전(終戰)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탔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태평양에서 미국의 대리인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면서 발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20세기 초부터 이어진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그는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차지하면서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자 인내심을 잃었다. 일본에 대한 석유공급선을 끊고 미일통상조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태평양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美日안보조약
 
  한국전쟁 이후 심화된 냉전(冷戰)시기 동안, 일본은 20세기 초처럼 태평양에서 미국의 해결사로 복귀했다. 5차례 수상을 지낸, 전후(戰後) 일본 복구의 대명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수상이 미국의 파트너였다. 그는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동시에 체결했다. 두 조약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의 해결사’라는 일본의 위상을 부활시켜 준 기념비적 조약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은 GHQ 통치하에 있던 패전국 일본을 독립국가로 만들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국 모두가 참가해 일본을 독립국으로 보장했다. 승전국이 아닌 한국과 중국(중공)은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참가하지 못했다.
 
  평화헌법에 따라 군대 보유를 포기했던 일본은 독립과 동시에 미일안보조약을 맺는 한편, 자위대라는 어정쩡한 조직을 통해 군사대국으로 부활했다. 자위대의 전력(戰力)은 세계 4위 정도로 평가된다. 제한된 병력과 개전(開戰)준칙, 작전범위 등의 제한으로 인해 약한 군대처럼 보이지만, 자위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군(强軍)이다.
 
  미일안보조약은 반공(反共)전선의 방패라는 점과 함께,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래 정착된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의 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조약은 태평양에서 미국에 대적(對敵)할 패권국을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1904년 러시아와 1941년 일본처럼, 태평양에서 막 부상하기 시작한 소련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바로 미일안보조약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태평양의 섬 하나를 놓고 수천, 수만 명을 희생시켰던 적국이었지만 소련이 등장하면서 구원(舊怨)도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소련과 중국을 적으로 한 미국의 방어벽은 일본을 넘어서 한국으로 확장됐다.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재침(再侵)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유지해 온 대 아시아 정책의 근간을 유지하기 위한 제2의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배신감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일까?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을 보면, 러일전쟁 전의 러시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냉전 당시의 소련을 상대로 했던 워싱턴의 외교원칙이 떠오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더 이상’ 글로벌 경제적 파트너로서의 협력국가가 아니다. 태평양만이 아니라,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경제논리에 의해 그동안 자제했던 반중(反中)정서가, 중국경제 붕괴 조짐과 함께 미국 전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CIA요원 스노든의 홍콩 체류와 관련해 국방부와 국무부에서 터져 나온 반중 목소리는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의 발로다. 6월 중순 이뤄진 스노든의 홍콩 입국이 그 시작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스노든 망명은 미국의 국익(國益)을 손상하는 유사 이래 최대의 스캔들이다. 오바마는 스노든 망명을 허락한 러시아의 방침에 반발해 양국 정상회담을 취소해 버렸다.
 
  미국 정부의 불만은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그칠 줄을 모른다.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감시프로그램을 폭로한 장소가 홍콩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홍콩은 100% 중국의 영향권에 있다. 스노든이 홍콩에 입국한 시기는 오바마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발 해킹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지 불과 사흘 뒤이다. 스노든은 중국의 불법 해킹 문제가 핵심의제가 될 미중전략경제회의 개최 2주 전까지 홍콩에 머물며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수집을 폭로했다. 사이버안보와 관련해 미국이 작심을 하고 중국을 수세(守勢)로 몰아넣으려던 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스노든이 홍콩에 나타난 배경과 더불어, 중국이 정보유출자인 그를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미국이 중국에 보여준 협조적인 자세에 반하는 입장을 취한 데 대해 극도로 불괘해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작년에 중국을 뒤흔들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때문이다. 보시라이 당시 충칭(重慶)시 서기의 오른팔이었던 왕리쥔(王立軍) 부시장이 충칭 주재 미국영사관으로 피신했을 때, 미국은 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사관 밖으로 내보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을 내란에 준하는 엄청난 권력투쟁으로 몰아넣을 뻔했던 사건을 진화(鎭火)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스노든의 홍콩 입국과 러시아로의 탈출을 방관한 것이다. 이는 보시라이 사건 당시 미국이 보여주었던 선의(善意)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 워싱턴의 입장이다. 러시아가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불만은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배신감은 지금까지 식을 줄 모른다. 시진핑이 오바마에게 요구한 미중 간의 대등한 관계에 관한 논의도 꼬리를 감춘 지 오래다.
 
 
  드라마 <지고서도 이긴다>
 
요시다 시게루를 다룬 일본 드라마 <지고서도 이긴다>. 일본의 ‘국민배우’ 와타나베 겐이 주연을 맡았다.
  아베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지난 7월, 워싱턴은 마침내 일본이 자신의 아시아 정책을 충실히 수행할 해결사 위치에 올랐다고 확신하게 됐다. 미국의회에서 대 아시아 외교정책을 다루는 한 스태프는 이렇게 말했다.
 
  “아베는 요시다 수상의 환생(還生)에 해당한다. 요시다는 패전한 일본의 독립을 회복하고, 미일관계의 초석(礎石)을 다진 전후 최초·최고의 친미(親美) 정치가이다. 미국이 아베를 ‘제2의 요시다’로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요시다의 재임기간까지는 못 가지만, 장기간 안정된 기반하에 수상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의원・참의원 모두 자민당이 석권하고, 경제도 활황세로 돌아서 있다. 미국의 요청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수행할 최고의 우방이 일본이고, 총사령관이 아베이다. 진주만 기습처럼 미국을 물지 않는 한, 아베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아베와 요시다는 연임(連任)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다시 수상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을 한번 지낸 후, 몇 년 뒤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전후 일본 수상 가운데 요시다와 아베뿐이다.
 
  아베는 2006년 9월 26일부터 정확히 366일간, 90대 수상으로 일했다. 이후 6년 만인 지난해 12월 26일 96대 수상으로 복귀했다. 요시다는 1946년 5월부터 367일간 45대 수상으로 일하다가 밀려났다. 너무 강한 캐릭터 때문에 GHQ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는 1948년 10월 수상에 복귀해, 48~51대 수상을 지냈다. 그의 총 재임기간은, 전후 일본정치가 가운데 2위에 해당되는 2716일에 이른다.
 
  요시다나 아베처럼 시차를 두고 수상에 복귀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시련을 통해 보다 성숙해진 불굴의 정치인’이라는 입지전적(立志傳的) 캐릭터가 형성된다. 작은 구멍가게라도 한번 경험해 볼 경우 자신만의 여러 가지 노하우가 생긴다. 이른바 실패를 통한 성공 스토리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자신의 미숙한 행동을 되돌아보면서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미묘한 시기에 등장한 드라마가 있다. 지난해 가을 NHK에서 방영한 5부작 역사물 <지고서도 이긴다(負けて、勝つ)>가 그것이다. ‘전후 일본을 새롭게 창조한 남자(戰後を創った男)’라는 부제(副題)를 단 이 드라마는 요시다 시게루를 다루고 있다. 요시다로 분한 주인공은 일본의 간판배우 와타나베 겐(渡邊謙)이다. 이 드라마는 요시다의 전후 GHQ와의 협상과정, 일본을 독립국으로 만들고 미일안보조약으로 나가는 과정 등을 세밀하게 연출했다.
 
  반전(反戰) 평화주의자들은 요시다를 매국노, ‘미일군사동맹을 통해 일본 자위대를 미군 2중대로 전락시킨 대미추종 전쟁광(戰爭狂)’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NHK는 그런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시다의 실체와 위업을 객관적으로 그려나갔다.
 
  필자는 요시다로 분한 와타나베 겐의 모습을 보면서 ‘NHK가 단카이(團塊)세대를 전부 물갈이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미, 반전, 반핵(反核)을 주장하는 단카이가 있다면 제작 도중 중단될 만한 우(右) 성향이 강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은 NHK가 재(再)해석한 요시다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드라마 방영 두 달 후, 미일동맹관계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자민당의 아베가 수상으로 복귀했다.
 
  아베는 올해 8월 15일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전략이란 분석도 있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올림픽 유치건이 아니더라도 수상에 다시 오르면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반성하고 되돌아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스쿠니신사에 가서 참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베의 본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베는 다시 수상에 오르면서 대차대조표를 냉철하게 따지는 정치가로 변신했다. 괜히 미국을 자극하거나, 손해 볼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수상에 복귀한 아베의 마음일 것이다.
 
 
  아베를 통한 美日동맹 가속화
 
  앞서 살펴봤듯이, 미국이 아베를 ‘제2의 요시다’로 보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장기적이고도 안정된 재임기간과 ‘실패를 경험한 성숙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이 보기에 아베는 일본 극우(極右)의 대명사이겠지만, 미국이 보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해결사에 해당한다.
 
  미국 미디어에서 가끔씩 아베경계론이 흘러나오지만 대세(大勢)와는 무관하다. 레이건 정권 이후 미국 미디어와 행정부는 서로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닉슨이나 케네디 대통령 때처럼 ‘신문·방송=행정부의 나침반’이란 도식은 이제 옛 말이다. 미국 신문·방송이 아베를 어떻게 보든, ‘일본을 통한 태평양 질서의 유지’는 미국 행정부의 방침으로 굳어져 있다.
 
  일본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집단적 자위권(集團的自衛權)을 둘러싼 헌법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용어는 뭔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집단적 자위권이란 ‘미국이 무력공격 상태에 빠질 경우,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에 참가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독립 이전은 물론 지금까지 전쟁을 통해 성장해 온 나라이다. 어떤 식으로든 전 세계의 전쟁에 개입해 힘을 강화해 왔다. 국제경찰을 자처하기 때문이든, 미국의 패권을 넓히려는 의도에서든 상관없다. 미국이 전 세계 전쟁의 공통분모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일본도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에 공동참여하겠다’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의 핵심이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사실 미국이 요구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일본헌법 개정은 아베만의 생각이 아닌 미국의 염원이기도 하다.
 
 
  中日 사이에서 한국의 갈 길은?
 
  스노든 사건에서 보듯, 아무리 발버둥쳐도 미국이 자신의 의지대로 세계를 움직이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의 패권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일방적인 독주(獨走)는 막을 내렸다. 일본은 그 같은 상황 속에서 등장한 구원투수이다.
 
  앞으로 일본의 우향우(右向右) 노선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나갈 것이다. 근래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한국은 중국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방침을 굳힌 듯하다.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한국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국의 머리를 넘어서 중일 양국이 대화 국면에 들어설 경우, 한국은 어떤 입장에 처하게 될지 궁금하다. 한국은 왜 이 시점에 <추신구라>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베와의 역사문제만이 아니라, 발 빠르게 변해가는 미국의 태평양 정책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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