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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소식

술·마약에 빠져 살다 미국 메이저리그 스타가 된 개티스 스토리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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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외야수비 훈련을 마친 에반 개티스. 그는 포수와 외야수를 겸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가 올 시즌 관중 800만 시대를 향해 순항 중이다. 많은 사람이 야구를 좋아하고 꾸준히 경기장을 찾는다는 증거다.
 
  이처럼 많은 이를 매료시킨 야구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 우선 야구와 인생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야구는 현존하는 단체 구기종목 중 유일하게 경기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저마다 태어난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마감하는 시간은 불분명한 것처럼 야구도 경기를 시작하는 시간만 정해져 있을 뿐 끝나는 시간은 제각각 다르다.
 
  야구는 또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매력이 있다.
 
  축구나 농구에서 큰 점수차를 뒤집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지도자였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처럼 야구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까지 그 결과를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큰 점수차로 패색이 짙던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벌어진 역전드라마는 감동 그 자체이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야구에 열광하게 만든다. 한편으론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는 효과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사에 영원한 꼴찌나 영원한 1등이 없는 것처럼 야구에도 수많은 반전이 존재한다. 언제나 스타일 것 같았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몰락하기도 하고 반대로 전혀 주목 받지 못하던 선수가 스타가 되는 일도 있다. 특히 무명선수가 빚어 낸 인생역전 스토리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야구팬들로 하여금 인생이란 경기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류현진 제치고 ‘이달의 신인’ 선수로 뽑힌 개티스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괴물투수’ 류현진(26·LA 다저스)은 지난 4월 한 달간 3승 1패 평균자책점 3.35의 빼어난 기록을 달성했다. 다저스가 속한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 선수로 선정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4월 한 달간 최고의 활약을 펼친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타자 에반 개티스(27)를 선정했다. 당시 그의 성적은 타율 0.250 6홈런 16타점으로 류현진의 성적을 압도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개티스에게는 류현진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인생역전 스토리’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 사무국 결정에 수긍하며 개티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류현진처럼 올해 메이저리그에 갓 데뷔한 개티스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술과 대마초에 의지해 살았다. 특별한 거주지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먹고살기 위해 스키장 잡부나 피자가게 배달 일을 했고 가장 최근에는 청소부로도 일했다. 이런 그가 최고의 선수들만 뛸 수 있다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한 달간 홈런을 무려 6개나 몰아치며 ‘이달의 신인’ 선수로 선정된 것이다.
 
  지난 5월 초, 미국 현지에서 기자와 만난 개티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돼 정말이지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처음 경험해 본 메이저리그는 밖에서 볼 때보다 경쟁이 더 심한 곳이지만 그것마저 즐길 정도로 행복하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아직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즐기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개티스에게 ‘이달의 신인’ 선수로 뽑힌 소감을 묻자 그는 “솔직히 그런 상이 있는지도 몰랐다. 상을 타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먼 길을 돌아온 탓인지 아직 빛보다는 그림자가 더 많아 보였다.
 
 
  불우했던 개티스, ‘야구와 술 그리고 대마초’
 
경기 전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에반 개티스.
  미국 텍사스주 출신인 개티스는 키 193cm에 몸무게 104kg의 거구로, 어려서부터 덩치도 크고 힘도 셌다. 미국의 여느 아이들처럼 6살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그는 좋은 코치 밑에서 야구를 배우기 위해 고등학교를 세 곳이나 옮겨 다닐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15살 때에는 미국청소년 국가대표 포수로 뽑힐 만큼 두각을 나타냈으며 텍사스 지역 최고 유망주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개티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06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어느 구단도 개티스를 지명하지 않은 것. 낙심한 개티스는 야구장학생으로 선발된 텍사스 A&M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개티스는 당시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 초에 가진 인터뷰에선 “4년제 대학 야구부에 진학할 경우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약물검사에 걸리고 싶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털어놨다. 개티스는 고교시절 이미 술과 대마초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개티스의 부모는 그가 12살 때 이혼했다. 어린 개티스에게 부모의 이혼은 큰 충격이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과 왜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집을 오가며 지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개티스에게 야구는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해 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아픔을 잊기 위해 야구에 집중할수록 그의 실력은 향상됐지만 한편으론 주위의 기대가 커 가는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커졌다. 개티스는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어리석게도 이를 스스로 치료하겠다는 생각에 술과 대마초의 힘을 빌린 것이다.
 
  개티스는 모친의 권유를 받아들여 치료를 받기로 했다. 텍사스에서 30일 동안 약물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한 그는 애리조나로 건너가 그곳에서 3개월간 추가치료를 받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치료가 끝나갈 무렵 개티스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2년제 대학(Seminole State College) 야구부 코치의 부름을 받아 의욕적으로 필드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의욕이 너무 앞선 탓인지 시즌 중반 무릎부상을 당하자 심한 회의감을 느낀 채 또 다시 유니폼을 벗어 던졌다.
 
  개티스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충분히 프로에 지명될 만한 실력이 됐다고 믿었기에 당시에 받은 충격이 컸다. 어렵게 마음을 잡고 2년제 대학에 진학해 다시 야구를 했지만 그곳에서 무릎부상을 당하자 정말이지 더 이상 야구가 하기 싫었다. 야구에 대한 열정도, 야구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잃었고 심지어는 심한 자살충동마저 느꼈다”며 암울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야구를 포기하고 방랑자가 된 개티스
 
  이후 개티스는 야구를 완전히 내려놓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야구를 포기하고 맨 처음 시작한 일은 대리주차였다. 이내 고향인 텍사스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개티스는 누나가 있는 콜로라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피자가게 배달원, 스키장 잡부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하지만 이도 여의치 않자 7개월 만에 다시 텍사스로 돌아와 이번에는 건물 청소부, 골프장 잡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야구를 포기하고 개티스가 한 일들은 하도 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야구를 떠나면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심령술사를 만나기도 했다. 이때 개티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개티스의 재능을 아까워한 그의 이복동생이었다.
 
  개티스는 이복동생의 권유로 2009년 가을 텍사스 주립대의 지방 캠퍼스(UTPB) 야구부 유니폼을 입었다. 야구부 코치 또한 개티스의 고교시절 재능을 기억하며 그에게 곧바로 주전자리를 내주었다. 약 3년간의 방랑생활을 뒤로한 채 필드로 복귀했지만 개티스의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그는 그해 대학리그에서 타율 0.403 11홈런을 기록했다. 그러자 그의 현 소속팀인 애틀랜타는 2010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3라운드에서 개티스를 지명했다. 고교졸업 후 4년 만에 먼 길을 돌아 프로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개티스의 성공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사실 구단은 20라운드 이후에 지명하는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단 뽑아 두는 것이다. 계약금이 적어 큰 돈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개티스는 기자와 만나 먼 길을 돌아 다시 야구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방황의 시간이 길었다. 한동안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에 빠지기도 했고, 그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름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가운데 결국 야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다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먼 길을 돌아 프로에 입단한 개티스, 새 희망을 품다!
 
  프로에 진출한 개티스는 입단 첫해에 마이너리그 최하위 레벨인 루키리그에서 출발했다.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는 나무 방망이를 사용해서인지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1년 루키리그보다 한 단계 위인 싱글 A에서 시즌을 맞이한 개티스는 그해 타율 0.322 22홈런을 기록하며 나무 방망이에 적응했다. 리그 타격왕도 그의 몫이었다. 타격은 좋았지만 그에게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방랑생활로 인해 불어난 그의 몸무게였다. 지금이야 104kg으로 그의 키에 걸맞은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 그의 몸무게는 122kg이었다. 경기 내 무릎을 꿇고 앉아 투수의 공을 받아야 하는 포수의 특성상 과체중은 무릎부상의 주원인이 된다. 아울러 투수가 잘못 던진 공을 재빨리 막아내기 위해서는 민첩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티스는 시즌이 끝나자 오프시즌 동안 살을 빼라는 코치의 조언을 듣고 이를 실천했다. 무려 18kg을 감량하자 기존의 좋은 타격에 수비력까지 갖추게 되어 지난해에는 더블 A까지 승격했다. 성적도 타율 0.305 18홈런으로 더 좋아졌다.
 
  애틀랜타의 마이너리그 포수 코치인 조 브리든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티스의 공격력은 크게 나무랄 게 없었다. 문제는 수비력이었다. 살을 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개티스는 내 충고를 받아들였고 살을 뺀 것이 민첩성을 향상시켜 수비력도 좋아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개티스가 이처럼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자 애틀랜타 구단은 그를 올 초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합류시켰다. 개티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을 상대로 타율 0.368 6홈런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놀라운 결과였다. 운도 따랐다. 애틀랜타의 주전포수 맥켄이 어깨수술로 인해 개막 첫달 결장이 불가피해진 데다 외야수 헤이워드마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 때문에 포수와 외야수 겸업이 가능한 개티스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 25인 명단에 포함됐다.
 
 
  데뷔전서 쏘아 올린 홈런, 메이저리그 신데렐라가 되다
 
경기 전 밀려드는 팬들의 사인공세에 친절히 응해 주는 에반 개티스.
  2013년 4월 3일, 이날은 개티스가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날이다. 상대투수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Cy Young)상’까지 거머쥐었던 로이 할러데이. 상대적으로 개티스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 경기 두 번째 타석에서 개티스가 할러데이를 상대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게다가 이 경기를 중계하던 방송사는 당시 좌측 외야석에 앉아 있던 개티스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홈런이 터진 것이다. 각본 없는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개티스는 “부모님이 지켜보는 데서 홈런을 쳐 기분이 더 좋았고 특히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홈런을 쳐 부모님이 나보다 더 많이 기뻐하셨고 감격스러워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 부모님과 그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지난날 방황했던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 등 인생 전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일반적으로 야구선수들은 자신이 프로에 첫 데뷔했을 때 사용했던 공이나 야구용품 등을 기념으로 소중히 보관한다. 홈런볼도 예외는 아니다. 개티스 또한 자신이 쏘아 올린 메이저리그 첫 홈런볼을 잡은 관중으로부터 그 공을 돌려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상이 좁다”는 말로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날 나의 메이저리그 첫 홈런볼을 잡은 관중이 내가 예전에 진학하려고 했던 텍사스 A&M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지 않은가? 세상이 좁기도 하고…. 그 학생이 홈런볼을 나에게 돌려준다고 해서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했지만 정중히 사양하며 나와 악수만 하면 충분하다고 해 정말 고마웠다. 그런 고마운 팬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티스는 4월 한 달간 ‘이달의 신인’ 선수로 뽑힐 만큼 주전포수 맥켄과 외야수 헤이워드의 공백을 잘 메우며 공수양면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다. 개티스의 활약에 힘입은 애틀랜타는 시즌 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셔널리그 동부조 1위를 달리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월초 팀에 복귀한 주전포수 맥켄을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 “당신이 없는 사이에 개티스가 ‘이달의 신인’으로 뽑힐 만큼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당신의 자리를 잘 메웠는데 혹시 그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맥켄은 웃으며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경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언제든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빈자리를 잘 메워 준 개티스가 자랑스럽다”며 후배의 선전을 대견스러워했다.
 
  맥켄의 복귀로 5월 달부터 개티스가 포수로 선발 출전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타나 외야수 혹은 맥켄의 교체선수로 출전하며 여전히 팀 승리에 기여했다. 개티스는 기자에게 “나는 포수가 훨씬 더 편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위치라 좋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신인이기 때문에 포지션에 연연하기보다는 어느 위치든 경기에 많이 나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어느 포지션에 배치되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 팀 승리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최저연봉과 친구들의 우정
 
  이런 불규칙한 출전방식에도 불구하고 개티스는 5월 한 달간 타율 0.317 6홈런 16타점을 기록하며 4월에 이어 5월에도 ‘이달의 신인’ 선수로 선정됐다. 개티스는 특히 경기 막판에 팀이 꼭 필요로 할 때 안타 혹은 홈런을 쳐 애틀랜타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개티스는 7회 이후 동점 또는 역전을 바라보는 절박한 상황에서의 타율이 무려 0.462로 찬스에 무척 강하다. 팬들이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괴물투수’ 류현진도 5월 한 달간 3승 1패 평균자책점 2.38이란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지만 개티스에 밀려 두 달 연속 수상에 실패했다. 일부 한국 야구팬들이 개티스를 싫어하는 이유이다.
 
  미국 언론은 개티스가 이처럼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에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애틀랜타 구단주가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틀랜타의 주전 포수 맥켄의 올 시즌 연봉은 무려 1200만 달러. 한화로 약 137억원이다.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그를 잡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개티스라는 특급 유망주의 등장으로 향후 맥켄과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됐다. 재계약이 힘들면 개티스를 주전포수로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개티스는 현재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인 49만 달러(한화 약 5억6000만원)를 받는다.
 
  개티스의 최저연봉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도 있다. 개티스가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자 그의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 4명이 개티스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들은 경기 후 오랜만에 회포를 풀 겸 인근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 먹성이 좋은 개티스는 그날 저녁식사로 소고기 스테이크 2개, 튀긴 닭 스테이크 2개, 구운 달걀 4개, 으깬 감자튀김 4조각, 토스트 빵 8조각을 먹었다. 개티스가 식사 후 계산을 하려고 하자 필립스라는 친구가 나서 식대를 지불한 후 개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티스, 넌 아직 메이저리그 최저임금만 받잖아. 분야는 다르지만 나는 최저임금보다는 더 많이 받아.”
 
  27살 늦깎이 신인 개티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이처럼 맹활약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해냈다. 적잖은 나이와 체력소모가 큰 포수라는 특성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또 신인선수가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해야 하는데 개티스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 힘들게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만큼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아는 개티스는 분명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선수라는 게 미국 현지 언론의 중론이다.
 
 
  메이저리그 ‘샛별’이 된 개티스, 희망을 전파하다!
 
  개티스는 이제 대마초를 완전히 끊었고 가끔 맥주만 마신다고 했다. 더 이상 약물치료나 정신과 치료도 받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던 우울증과 자살충동은 시간이란 먼지에 덮여 세월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류현진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신성(新星)’이 되어 2013년 메이저리그 신인왕 자리를 놓고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개티스의 팀 동료들 또한 이런 개티스를 응원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개티스의 팀 동료인 크리스 존슨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티스를 보고 있으면 어디에서 왔는가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결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개티스의 유니폼은 애틀랜타 지역은 물론 미 전역에서 야구팬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인기상품 중 하나가 되었고,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말이다. 기자가 개티스에게 ‘과거 자신처럼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프로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쉽게 올라왔다고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상대한 역경과 흘린 땀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나처럼 현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나 두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절대 그것에 굴복하거나 연연해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 싸워 나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성장기에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아이들에게 제가 하나의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는 우울증에 빠진 아이들이나 자살하는 10대 청소년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이 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탈출구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바로 그 증거이니까요.”
 
  야구경기가 그렇듯 우리네 인생 또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개티스의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의 명성을 자신의 인생경기 9회말까지 이어 가 완전한 승리를 챙길지 아니면 또 다른 역경을 만나 역전을 허용하고 몰락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개티스가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인생역전 스토리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귀감이 된 것만은 극명하다. 올해 성공적으로 시즌을 끝내면 한국 팬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더 인터뷰하자는 기자의 제안에 밝은 미소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에반 개티스는 이제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메이저리그를 빛내는 또 다른 스타가 되었다.그 별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빛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많은 야구팬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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