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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포커스

개혁·개방 추진하는 미얀마

세인 대통령, “수치가 대통령 되는 것 받아들일 것”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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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의 고르바초프’ 세인 대통령이 개혁 주도
⊙ 정치범 석방, 언론 검열 폐지, 군부 강경파 숙청, 변동환율제 도입 등 추진
⊙ 군부와 의회 등에 포진한 소장파 장교들, 개혁·개방 지지
⊙ 독재자 탄 슈웨, 개인의 안전 담보 받는 대가로 개혁·개방 묵인
2010년 3월 미얀마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미얀마 군 장성들. 현재 미얀마의 개혁·개방은 군부의 양해 아래 군 온건파 출신인 테인 세인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북한과 함께 전(全) 세계에서 독재국가로 가장 악명 높은 미얀마가 민주화와 개혁·개방 조치를 적극 추진하면서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변신하고 있다.
 
  미얀마는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군부(軍部)가 통치해 온 국가였다. 미얀마에서 제대로 된 민주정권이 통치한 기간은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군부는 친위쿠데타와 권력승계 등을 통해 정권을 장악해 왔다. 때문에 미얀마의 현대사는 한마디로 말해 군부통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무려 반세기 동안 독재체제를 유지해 온 미얀마가 최근 들어 잇따른 개혁·개방 조치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고 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 50년에 걸친 미얀마 군사독재정권의 문을 연 네윈.
  고대(古代)부터 왕정(王政)국가였던 미얀마는 1885년부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 오다 1948년 독립,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미얀마는 건국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들처럼 사회 혼란과 관리들의 부정부패, 경제난, 소수민족의 반란과 내전(內戰)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 와중에 1962년 3월 2일 군(軍)최고사령관과 참모총장, 국방장관을 지낸 우 네윈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켰다. 혁명평의회 의장에 취임한 네윈은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적 정신 가치를 접목시킨 이른바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식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네윈은 1974년 형식적으로 민정(民政)이양을 하면서 군복을 벗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네윈은 1981년 건강악화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유로 우 산유에게 대통령직을 이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창당한 사회주의계획당의 당의장직을 보유하면서 계속 실권(實權)을 장악해 왔다.
 
 
  탄 슈웨의 독재
 
1992년 친위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탄 슈웨 장군.
  하지만 버마식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실패와 군부독재 등에 따른 국민적 불만으로 1988년 3월부터 수개월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군대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충돌로 4000여 명이 사망하자, 네윈은 같은 해 7월 사회주의계획당의 당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영국에 머물던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 산 장군의 딸인 아웅 산 수치 여사는 1988년 4월 모친의 간병을 위해 귀국했다가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민주화운동이 성공하는 듯했지만 같은 해 9월 네윈의 막후 조종으로 소 마웅 국방장관 겸 군 총사령관이 주도한 친위쿠데타가 발생해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라는 군정(軍政)이 다시 등장했다.
 
  모든 국가권력을 장악한 SLORC는 1989년 6월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 연방(Union of Myanmar)’으로 변경했다. SLORC는 수치 여사를 가택 연금하는 등 민주화운동 세력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 여사의 민족민주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1990년 5월 총선에서 전체 485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하지만 SLORC는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이양을 거부했다. 이후 소 마웅 SLORC 의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모든 공직을 사임하고, 1992년 4월 탄 슈웨 국방장관이 SLORC 의장직을 승계했다. 당시 탄 슈웨는 일종의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탄 슈웨는 1997년 11월 SLORC를 해체하고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를 출범시키면서 군부독재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탄 슈웨는 2007년 9월 승려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反)정부 민주화 시위를 강력하게 탄압했다.
 
  탄 슈웨를 비롯해 군부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과 제재 조치가 갈수록 강화되자 자신들의 영구집권을 위해 2008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권력의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군정은 2010년 10월에는 신헌법의 규정에 따라 국명을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바꾸었으며, 같은 해 11월 7일 총선을 실시했다.
 
 
  세인 대통령의 등장
 
  수치 여사의 민족민주동맹이 거부한 이 총선에서 군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당선됐다. 미얀마 의회는 지난해 2월 테인 세인 총리 겸 집권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당수를 민선(民選)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군정은 같은 해 3월 권력을 민정에 이양하고, SPDC를 공식 해체했고, 탄 슈웨는 은퇴했다.
 
  군정이 민정으로 바뀌었지만 국제사회는 세인 대통령을 군부의 ‘꼭두각시’라고 생각해 왔다. 세인 대통령은 철권통치를 해 온 탄 슈웨 밑에서 2007년 10월부터 총리를 지낸 군부의 제4인자였다. 2010년 총선에서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의원에 당선됐던 세인이 대통령을 맡은 것도 군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총선 이후 무려 3차례에 걸쳐 15년간 가택 연금을 당하다 2010년 11월 13일 풀려난 수치 여사는 세인 대통령은 물론 군부의 민주화 개혁 의지에 상당한 의구심을 표시해 왔다.
 
  수치 여사의 의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수치 여사는“민주주의의 겉치장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군부가 개혁에 얼마나 협조할지 여부가 앞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세인 대통령은 1968년 엘리트 군사학교인 국방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한 후 첫 부임지에서 대대장이던 탄 슈웨 장군과 인연을 맺은 후 승승장구했다. 특히 세인 대통령은 철저하게 탄 슈웨에게 충성을 다해 ‘심복’이란 말을 들어 왔다. 세인 대통령은 1945년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에서 자동차로 8시간 거리인 가난한 농촌 마을 키욘쿠에서 태어났다. 승려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짐을 날라 주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했지만 상당한 인격자이자 지식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탄 슈웨 장군의 후견 속에 군에서 양곤 사령관, 삼각주 지역 사령관 등을 거치며 고속 성장했다. 그는 1988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 때 도피하던 운동가들을 체포하고도 다른 군 장교들처럼 잔인하게 처벌하지 않고 지방 경찰에 넘겨 주거나 풀어 주는 등 군부의 학정(虐政)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예산이 전체 예산의 23.6%
 
지난 5월 2일 개원한 국회에서 아웅 산 수치 여사가 선서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가고 있다. 뒤에서 현역 군인 의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후 국방부와 SPDC에서 요직을 거친 그는 2004년 당시 권력서열 3위이자 총리인 킨 윤 장군의 친위쿠데타가 실패하면서 대대적인 숙청과정에 권력서열 4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킨 윤 장군은 SPDC 제1서기와 국가정보국장을 지낸 온건파였다.
 
  킨 윤 장군의 후임으로 강경파인 소윈 장군이 총리직을 맡았지만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소윈 전 총리는 1988년 민주화 시위를 가장 잔악하게 진압했고, 2003년 수치 여사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던 강경파였다.
 
  탄 슈웨의 지명으로 후임 총리가 된 세인은 군정의 ‘얼굴마담’으로서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 왔다. 군정 이후를 대비하던 탄 슈웨 등 군부 지도자들도 부패라든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과 인권유린 등과는 무관했던 세인을 민정의 대통령으로 낙점했다. 특히 그가 대통령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군정 체제와 군부 지도자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권력기반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얀마 군은 육·해·공 3군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통합군 체제이다. 총 병력은 45만5000명이다. 육군의 병력은 43만명이고, 14개 지역사령부, 10개 경보병사단, 10개 기갑단, 10개 야포단이 있다. 탱크 800대, 장갑차 324대, 야포 270문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해군 병력은 1만6000명이고, 5개 해군지역사령부가 있다. 프리깃함 8척, 소형 연안경비정 등 함정 150척을 보유하고 있다. 공군 병력은 9000명이고, 10개 비행기지가 있다. MIG-29 전투기 32대, F-7 전투기 58대, A-5 지상군 지원전투기 36대 등 항공기 280대, 헬기 70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군은 그동안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최빈국인 미얀마의 지난해 국방예산은 전체 예산의 23.6%나 된다. 특히 군 장성들은 각종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권을 챙겨 왔고, 부정부패를 통해 부(富)를 축적해 왔다.
 
  반면 미얀마 국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전체 5세 이하의 영아 중 3분의 1이 영양실조 상태이다. 미얀마 국민들은 과거에는 군 지도자들에 대해 상당한 존경을 보여 왔지만 현재는 엄청난 반감을 보이고 있다. 군정 시절에는 내각 모든 직책을 대령 이상의 고위 장교들이 차지했다. 특히 이들이 주요 직책을 맡으려면 뇌물이나 인맥 등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었다. 때문에 군부는 미얀마에서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25%는 현역군인
 
  미얀마 군부는 지금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갖고 있다. 현재 집권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 소속 의원들 대부분은 군부 출신이다. 이들은 상원의원 224명과 하원의원 440명으로 구성된 의회 전체 의석에서 8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전체 의원 중 25%는 현역 군인이다.
 
  국가 주요 기관의 핵심 요직도 모두 군부 출신인 데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군부에 넘겨야 한다. 대통령과 부통령 2명도 의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군 총사령관은 부통령의 대우를 받는다.
 
  국가의 주요 정책은 국방안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방안보위원회는 대통령, 부통령, 하원의장, 군 총사령관, 군 부총사령관, 국방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 등 총 11인으로 구성된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회 의원 전원의 75%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군부가 사실상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애초 민정의 초대 대통령에는 당시 서열 3위였던 투라 우 쉐 만 군 총사령관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하원의장이 됐다. 쉐 만은 야전군 출신으로 강경파라는 말을 들어 왔다. 탄 슈웨가 쉐 만을 대통령으로 낙점하지 않은 이유는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민정의 얼굴인 대통령에 온건파가 낫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군부가 세인 대통령을 충분히 조종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탄 슈웨와 군부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해 ‘예스 맨’으로도 불렸던 세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군부독재 체제를 청산하고 개혁·개방에 앞장서면서 ‘미얀마의 고르바초프’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세인 대통령이 추진해 온 민주화 조치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범 석방이다. 민정이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석방된 정치범들은 무려 700여 명에 달한다. 세인 대통령은 지난 9월 17일에도 정치범 84명(승려 24명)을 포함해 재소자 514명을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했다. 아직도 정치범 수백 명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가 정치범 석방 조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민주화 의지가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변동환율제 도입
 
  언론에 대한 검열도 철폐했다. 미얀마 정부는 8월 20일 자로 신문과 잡지 등 모든 출판물에 대한 사전검열 제도를 폐지했다. 미얀마 언론들은 그동안 기사가 신문에 실릴 수 있는지 없는지 심사를 받기 위해 신문 발행 전 기사를 검열당국에 제출해야만 했다. 언론인에 대한 전화도청과 투옥은 일상 다반사였다. 심지어 언론들은 사회불안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수치 여사의 사진도 게재할 수 없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노동조합 결성과 노동자들의 파업 허용,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 허용 등 군정 치하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수치 여사가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수감자의 정당활동을 금지한 정당등록법도 개정됐다. 이에 따라 민족민주동맹은 공식적으로 정당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적인 선거도 실시됐다. 지난 4월 1일 하원의원 37명과 상원의원 6명, 지방의회의원 2명을 선출하는 보궐선거에서 민족민주동맹이 후보를 낸 44개 선거구 중 40곳에서 승리했다. 사상 처음으로 국제선거감시단이 파견된 가운데 치러진 당시 보궐선거에서 수치 여사가 당선돼 하원의원이 됐다. 수치 여사는 지난 8월 8일 하원에 신설된 법치·평화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경제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개혁조치들이 잇달아 단행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난 4월 1일부터 37년간 유지해 온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도입한 관리변동환율제이다. 이 제도는 통화가치를 고정하지 않고 외환시장의 수급상태에 따라 변동되도록 하는 것으로, 환율안정을 위해 정부가 부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미얀마는 1975년부터 자국 통화 차트(kyat)를 달러당 6.4차트로 고정했지만, 실제로는 암시장에서 달러당 800차트 안팎에 거래됐다.
 
  관리변동환율제는 세인 대통령이 단행한 최대의 경제개혁 조치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암시장이 군부가 돈을 유용하고 착복하는 주요 통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부는 천연가스를 수출한 뒤 공식장부에는 달러당 6.4차트로 계산한 것처럼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암시장에서 현시세로 교환해 그 차액을 착복하거나 무기구입 등에 전용해 왔다.
 
  세인 대통령의 개혁조치는 앞으로 군부 실세들의 자금줄을 끊는 동시에 미얀마 경제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얀마 정부는 해외송금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대폭 유치하고 있으며, 외국인에 대한 사유 토지의 장기임대도 허가했다. 이와 함께 미얀마 정부는 장기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5개년계획을 마련했다.
 
 
  사이클론 나르기스에 충격
 
총리 시절의 테인 세인 현 대통령. 탄 슈웨의 심복이던 그는 대통령이 된 지금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부의 대리인에 불과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세인 대통령이 ‘통 큰’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첫째, 세인 대통령은 물론 군부 지도부가 아랍의 시민혁명으로 독재정권들이 붕괴된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폐쇄적인 독재체제를 유지할 경우, 정권유지조차 힘들 것이란 위기감을 느끼고 과감하게 개혁조치에 나섰다는 것이다. 세인 대통령은 미얀마 군부와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란 말을 들어 왔다.
 
  둘째,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인 대통령이 “서방의 제재가 국민들의 삶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경제발전을 지연시키고 있다”면서 조속한 제재해제를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세인 대통령은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폐허가 된 고향을 직접 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총리로서 재해대책위원장이었던 세인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고향을 찾았는데, 무너진 집들과 수많은 시체가 물에 불어 강에 둥둥 떠다니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더 이상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세인 대통령은 미얀마가 경제발전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제재조치가 해제돼야 하기 때문에 민주화 조치를 통해 서방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1인당 GDP 1197달러
 
  셋째, 2014년 아세안 의장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 경제발전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전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얀마는 과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영토는 프랑스와 영국을 합친 정도로 광활하다. 특히 농지가 600만ha로 넓은 데다(한국 100만ha) 3모작까지 할 수 있어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었다.
 
  천연가스를 비롯해 원유와 구리, 아연, 주석 등 각종 광물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2832억㎥이고, 원유 매장량은 32억 배럴이다. 또 국토의 80% 이상이 삼림으로 덮여 있는 미얀마는 중국, 인도에 이어 아시아 3위 산림자원 보유국이다. 고급 목재인 티크는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는 루비 생산국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전체 루비 생산량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의 루비는 ‘비둘기의 피(pigeon blood)’라고 불리며 세계 최고의 빛깔과 품질을 자랑한다.
 
  게다가 미얀마는 앞으로 10년 내 태국과 베트남에 이어 동남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저렴한 노동력은 각국의 군침을 돌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태국·베트남 등의 인건비 상승으로 생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미얀마에 공장을 지을 경우 상당한 비용절감이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얀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197달러로, 국민들은 대부분 하루 평균 2.25달러를 벌고 있다. 이는 동남아 국가들을 통틀어 최저 수준이다. IMF는 미얀마의 GDP를 500억 달러로 평가하고 있는데, 태국(3480억 달러)의 7분의 1 수준이다. 또 앞으로 국민들의 소득이 향상되면 유망한 소비시장이 될 수도 있다.
 
  미얀마는 지정학적으로도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인도와 중국, 베트남 사이에 있고, 서쪽으로는 인도양과 벵골만에 접해 있다. 때문에 서방 국가들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으로 가는 거점으로서 톡톡히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싱가포르처럼 중개무역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IMF는 지난 1월 26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는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미얀마 정부가 풍부한 자연자원과 노동력 등을 잘 활용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신개척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EIU는 올해 미얀마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개혁·개방 정책과 외국인 투자에 힘입어 5%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美, 단계적으로 對미얀마 제재 완화
 
  넷째, 반중(反中) 정서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얀마 정부는 그동안 중국과의 관계가 심화할수록 자국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해 왔다. 미얀마에선 “중국 사람들이 한꺼번에 침을 뱉으면 홍수가 난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미얀마 정부는 중국이 자국을 보호하고 지원해 준 대가로 천연자원을 싹쓸이하는 데 반감을 표시해 왔다.
 
  실제로 미얀마 정부는 지난해 9월 30일 중국 정부와 공동으로 이라와디강에 건설 중인 36억 달러 규모의 미트소네댐 공사를 중지시켰다. 댐이 건설될 경우 미얀마는 63개 마을의 주민 1만2000명이 수몰로 삶의 터전을 잃는 등 피해를 입지만, 중국은 댐에서 생산된 전기의 90%를 자국으로 가져가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미얀마의 천연가스, 광물, 목재 등에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 국가들은 세인 대통령의 민주화 조치와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제재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2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국 국무장관으로서는 56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6월 24년 만에 미얀마에 대사를 파견했다. 또 미국 기업의 직접투자 허용, 미얀마 정부 관계자와 의원들의 미국 방문 허용, 금융 부문 제한 완화,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사무소 개설 등의 카드를 차례로 꺼내 들었다. 그 이유는 미얀마 군부가 과연 세인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할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군부 강경파가 세인 대통령의 민주화 조치와 개혁·개방 정책에 반발해 쿠데타를 기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부 강경파 퇴진
 
민주화 물결 속에서 군부의 기득권 유지를 다짐하고 있는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은 “군은 국가의 생명과도 같은 헌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군부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흘라잉 총사령관처럼 군부 강경파는 수치 여사가 정권을 잡을 경우, 자칫하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저질러 온 각종 범죄행위 때문에 처벌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은퇴한 탄 슈웨는 세인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불렸던 탄 슈웨는 올해 79세이지만 아직도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일각에선 수도 네피도에 특별히 건설된 주택 단지에 거주하고 있는 탄 슈웨 장군이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세인 대통령의 민주화 조치를 묵인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강경파인 틴 아웅 민트 우 부통령이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온 뒤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직서를 제출했다. 우 부통령은 탄 슈웨 은퇴 이후 군부 강경파의 지도자 역할을 해 왔다. 우 부통령의 ‘숙청’은 탄 슈웨의 묵인이나 허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하원은 지난 7월 15일 우 부통령의 후임으로 군부가 지명한 온건파이자 해군사령관인 니안 툰 중장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원의석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는 부통령 2명 중 1명을 지명할 권리를 갖고 있다. 부통령에 육군 출신이 아닌 해군 출신을 선출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툰 신임 부통령은 2008년부터 미얀마 해군을 통할 지휘해 왔지만, 군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다.
 
 
  少壯派 장교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심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지난 9월 27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다짐했다.
  세인 대통령은 또 지난 8월 27일 개각을 단행, 강경파로 분류되는 장관 9명과 차관 15명을 경질했다. 세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최대 규모의 개각에서 주목되는 점은 검열폐지에 반대해 온 우 키아우 산 정보부 장관을 한직으로 좌천시킨 것이다. 산 전 정보부 장관은 탄 슈웨의 측근 인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후임 정보부 장관으로는 수치 여사가 가택 연금돼 있을 때 군정과 수치 여사와의 연락을 담당했던 아웅 치 전 노동부 장관을 임명했다.
 
  세인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 인물 4명을 대통령실에 배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들 4명 중에는 소수민족 반군과의 휴전 유지 협상에 주요한 역할을 한 아웅 민 철도부 장관과 경제개혁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소에 테인 전 산업부 장관이 포함됐다. 코 코 흘라잉 대통령 수석보좌관은 “개각의 목적은 테크노크라트들을 기용함으로써 앞으로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인 대통령이 강경파 장관들을 대거 경질한 것은 군부와 의회에 민주화를 지지하는 개혁파가 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군부에는 국방사관학교 출신 소장파 장교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군부 지도자들의 권력독식과 부정부패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이들은 군부가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며,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통해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의회에도 대위에서 대령까지 소장파 장교들로 구성된 의원들이 있다. 이들도 역시 세인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세인 대통령, “권위주의 통치는 끝났다”
 
  세인 대통령은 앞으로도 민주화 조치와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임을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세인 대통령은 9월 2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민주화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면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미얀마 대통령의 방미는 46년 만에 처음이다. 세인 대통령은 또 “미얀마는 50년간의 권위주의 통치를 끝냈다”면서 “미얀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화에 기여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수치 여사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수치 여사를 한 번도 높이 평가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연설에서처럼 ‘노벨평화상 수상자’란 말을 한 적도 없었다.
 
  세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사상 처음으로 미얀마 국영 TV를 통해 국내에 생방송됐다. 세인 대통령의 연설은 군부 강경파의 반발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세인 대통령은 9월 29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치 여사가 투표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경우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2015년으로 예정된 선거에서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하든 그들의 의사는 존중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2015년 끝나는 자신의 임기 이후 대통령이 되려는 쉐 만 하원의장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쉐 만 하원의장은 군부 강경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얀마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릴지 여부는 아직까지 단언할 수 없다. 만약 2015년 총선에서 수치 여사와 민족민주동맹이 압승한다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 수도 있는 군부 강경파가 어떤 일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 특히 개헌을 통해 군인들이 의회에 자동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세인 대통령의 건강도 변수다. 세인 대통령은 심장병 때문에 최근 싱가포르에서 페이스메이커(인공 심박조율기)를 새로 달았다. 개혁의지가 확고한 세인 대통령이 쓰러진다면 군부 강경파가 다시 득세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얀마의 정세는 향후 1~2년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朴正熙’ 모르는 사람 없어
 
  미얀마의 정세와 관련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세인 대통령과 미얀마 정부가 한국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얀마는 식민지배와 군부독재라는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다. 미얀마의 군 출신 장관과 관료들 중에는 ‘박정희(朴正熙)’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군복을 벗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는 이들의 입장에선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롤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미얀마의 변신은 또 북한에도 상당한 충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얀마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부응해 무기거래 등을 해 온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얀마는 그동안 정치·군사적으로 돈독한 관계를 맺어 왔다. 북한과 미얀마의 군부 지도자들은 빈번하게 교류해 왔다. 특히 북한은 미얀마 군부의 젊은 장교들이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놀라고 있다. 미얀마가 군부 개혁파의 주도로 변신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북한의 군부도 마음만 먹는다면 미얀마처럼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세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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