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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代案은 없는가 10

‘윤리적 소비자’로 다시 서기

글 :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글 :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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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玄鎭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한 에티오피아 소년이 공정무역 계약을 맺고 재배한 커피콩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경제 현장 엿보기
 
  대안(代案)세계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올해의 화두(話頭)는 단연 협동조합이다. 유엔은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정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협동조합은 경제발전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조언자”라고 강조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新)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전(全) 지구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도 가히 유행병처럼 협동조합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금년 12월 협동조합법 시행에 앞서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과 관련한 다채로운 행사(포럼, 심포지엄, 박람회, 캠프 등)를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협동조합법 시행을 앞두고 제도 및 조직 정비도 급속히 진행하고 있다.
 
  올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협동조합기본법’은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지난 2007년에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나 실천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한국의 사회적 기업 정책에 대해 “양적(量的) 성장과 질적(質的) 지체, 민간의 정부 의존성 강화와 민간 네트워크의 부실, 더 나아가 한국형 사회적 기업 모델 부재(不在) 상황”일 것이라고 평한다.
 
 
  8월, 伊 협동조합을 방문했더니
 
이탈리아 볼로냐의 운송협동조합인 CFP 관계자들과 함께한 필자 공석기 서울대 연구교수(오른쪽 끝).
  한국에서의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의 활성화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필자들은 지난 8월 ‘협동조합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와 협동조합 연구 및 전통이 강한 트렌토(Trento)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 관계자들을 섭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8월 휴가철인 것도 문제였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탈리아 방문에 앞서 전문가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na)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협동조합과 조합 연맹들은 쇄도하는 한국인들의 인터뷰 및 방문 요청을 처음에는 반가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이런 요청이 부담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인터뷰 불가(不可)라는 답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방문한 정부·지자체, 기업, 시민단체, 언론·방송매체, 학자의 수가 수백 명은 족히 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막연한 탐방 수준을 넘어 주제를 가지고 구체적인 현장을 방문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체화(體化)된 조합 활동을 배우는 주제 프로그램, 예컨대 이탈리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슬로 푸드(Slow Food) 협동조합 프로그램’과 같은 현장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 현지의 반응이었다.
 
  우리도 10여 개의 협동조합 방문을 요청했지만 인터뷰가 성사된 곳은 볼로냐 지역 운송협동조합인 CFP(Cooperativa Facchini Portabagagli)와 자매조합인 청과물운송조합 COFAMO(Cooperativa Facchini Mercato Ortofrutticolo) 둘뿐이었다.
 
  다행히도 이 조합은 볼로냐 시 외곽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이사한 터라 우리가 첫 한국 방문객이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조합 건물 자체에 이미 사회적 가치가 스며 있다는 사실이다. 친(親)환경 자재를 사용했으며, 태양광(太陽光)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사무실 옆에 위치한 화물운송 작업장은 자연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쾌적한 작업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조합 스태프의 면면을 보면 행정·회계·인사·후생복지 등의 사무직 업무 대부분을 4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정치적 이슈에 거리 둬
 
  지오반니(Giovanni) 부회장은 “주먹구구식으로 조합 회계를 다루었던 것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었던 중요한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인 1표 민주적 원칙에 따라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열심히 일하는 소수(少數)가 적당히 일하는 다수(多數)의 조합원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합원 간의 불신(不信)이 존재했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그는 “볼로냐 운송조합은 끊임없는 내부 조직변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함과 동시에 엄격한 조합원 가입요건, 전문 스태프 고용(이것은 이탈리아 협동조합법에서 최근에 강제한 조건이기도 함) 등을 통해 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으며, 특히 아직까지는 점증하는 외부 경쟁기업들의 압박을 잘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결정 과정 참여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그는 “운송조합이 소속된 상위 연맹 단체인 레가쿠프 연맹(Legacoop Bologna)이 정치적으로 압력 및 로비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조합 간 네트워크 협의체와 소속단체의 역할 분업이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어 자신들은 특별한 이슈가 아닌 이상 정치적 활동이나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멀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지오반니 부회장은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도전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과 후속세대의 양성 및 연대(連帶)활동 강화를 꼽았다. 지오반니 부회장에 의하면, 지금까지 이탈리아 북부 특히 볼로냐 지역의 운송사업 부문에서는 운송조합이 다양한 사업개발과 지역 조합과의 연대활동을 통해 그렇게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있으나 점차 초국적(超國籍) 기업들이 이 지역의 사업권 입찰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CFP 스스로 내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고, 대형 은행·보험사들이 서류운송 업무를 CFP에 일임하고 있지만 이것이 초국적 경쟁업체에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협동조합의 고민
 
이탈리아 트렌토에 있는 생활협동조합의 대형마트는 협동조합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예다.
  더 큰 문제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협동조합과의 관계 맺기를 하는 후속세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오반니 부회장은 아버지가 조합원이었고, 조합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고, 조합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생활필수품을 구매하고, 조합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고, 조합에서 운영하는 커피숍과 서점을 다니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나는 협동조합 속에서 살아온 인생이기에 협동조합을 넘어선 삶을 상상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자녀세대는 어느 정도나 조합에 깊이 결합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화 과정을 통해 지역을 넘어선 생활권의 형성, 지역을 넘어선 경제활동, 그리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선 사업 경쟁이 강화되면서 지역의 젊은 세대가 조합 가입을 어느 정도나 선호할지가 현재 볼로냐 지역의 조합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한 가장 큰 도전과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경우,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사업체가 매우 많고, 협동조합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후속세대를 동원하는 새로운 혁신과 전략이 개발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많다.
 
  인터뷰 말미에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경험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켜서 필요한 지역과의 국제연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지오반니 부회장은 “개인적으로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영어공부를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그것도 북부 지역에 한정되어 연대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어를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필요성이 확산되고 이러한 경험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많은 지역 및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물론 바로 국제연대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사회적 경제 혹은 협동조합 경험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 과제라는 ‘의식의 확산’(raising consciousness)이 조합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U협동조합연구센터 등 위치
 
  볼로냐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트렌토였다. 트렌토는 이탈리아 북부 산간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운동과 가톨릭 전통이 강한 지역이어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협동조합연구센터(European Research Institute on Cooperative and Social Enterprises), OECD의 지역경제 활성화 및 고용증진을 위한 프로그램 센터(OECD LEED)가 이곳에 있을 정도로 트렌토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책연구의 본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난 엠마 클라렌스(Emma Clarence) 박사는 “사회적 경제의 핵심 문제는 돈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며, 그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지역 주민의 욕구와 참여”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작은 시골 도시에 사회적 경제 관련 국제연구 조직이 자리 잡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트렌토의 오랜 사회적 협동조합 전통과 풍부한 사업 경험, 그리고 건물 제공을 비롯한 트렌토 지방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꼽았다.
 
  대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마트 크기의 생활협동조합 마트가 트렌토 시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협동조합의 조직 운영과 사업규모를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도 어려서부터 이러한 협동조합의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면,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은 물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 상호부조(扶助), 지역공동체의 중요성, 상호신뢰, 윤리적 소비,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 지역 농산물 가격 보장을 통한 농민·농업·농촌공동체 유지 등에 대한 중요성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의 책임 있는 활동에서 찾고자 한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그리고 윤리적 소비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활동과 경향이 있는 것처럼 소비에서도 사회적 의미에 무게를 두고 소비하는 행위가 있다. ‘윤리적 소비’가 그것이다. ‘윤리적 소비’의 중요 특징은 소비의 기준을 가격(價格)보다는 가치(價値)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약계층이 생산한 상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구매하거나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지역 유기농가(有機農家)의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이타적(利他的)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소비활동이다. 소비자들은 개인의 만족보다는 지역공동체를 생각하며, 이러한 소비활동을 통해서 삶의 행복감을 늘릴 수 있다.
 
  물론 시민의 대부분은 윤리적 소비를 선택하지 않는다. 공적(公的)이고 사회적인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대부분은 개인의 이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겹치는 경우, 즉 친환경 유기농산물 구매와 같은 경우에는 ‘윤리적 소비’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일정 정도의 소득수준을 넘게 되면 저가(低價)의 식품보다는 보다 안전한 식품구매를 추구하게 된다. 특히 소비를 주도하는 주부들은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시하면서 안전한 먹을 권리를 점차 소비의 최우선 조건으로 삼게 된다. 기업들도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윤리적 소비시장을 겨냥한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전하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윤리적 소비’를 주도하는 협동조합
 
  ‘윤리적 소비’를 주도하는 것은 협동조합이다. 일정 지역공간 안에서 윤리적 소비, 친환경적 소비 혹은 ‘착한 소비’를 지속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인 것이다. 만약 협동조합이 조합원만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것 역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합원을 넘어선 비(非)조합원까지 혜택을 줄 수 있으며, 그것이 사회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협동조합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단순히 조합원의 결의나 교육 혹은 홍보활동에만 의존한다면 이는 한계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본래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이기에 교육과 합의만으로는 사람들의 소비를 유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협동조합원들이 과연 어떤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그 변화무쌍한 트렌드를 꾸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7년 한 조사에서도 한국 주부들의 관심사 우선순위는 교육, 주거, 그리고 식품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과연 어떻게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포함한 ‘윤리적 소비’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 패턴을 관통하는 ‘윤리적 소비’ 기준은 바로 인간과 노동을 고려하는 것, 식품의 안전을 고려하는 것, 그리고 농업과 환경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준하에서 과연 이 소비가 윤리적인가 아닌가를 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여기서 사회적 협동조합의 선구자인 이탈리아의 ‘윤리적 소비’를 견인하는 가치지향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사회적 협동조합의 핵심가치는 시장(market)이 순(順)기능적으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신뢰, 호혜주의, 공평, 민주주의 등의 가치가 필수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는 협동조합이 결코 자본주의 기업의 적대자가 아니라 시장 안에서 다른 기업과 동등한 조건으로서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서 기능 한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가 자유 대(對) 정의, 효율성 대 공정성, 사익 대 연대, 독립 대 소속감 등의 관계를 이분법적, 적대적 관계로만 이해한다면, 사회적 협동조합이 주도하는 ‘윤리적 소비’ 활동은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소비가 생산에 종속되었지만, 이제는 소비가 생산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소비자는 자기가 구매하고자 하는 재화(財貨)의 특성과 생산과정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이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소비자 주권’(consumer rights)이다. ‘소비자 주권 시대’에는 소비자들도 그에 걸맞게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 기업만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제는 소비자인 시민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구매 권력(consuming power)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의 성공이유도 단순히 경제적 활동, 자기 혁신의 측면만 보기보다는 이러한 가치의 변화, 소비자의 의식변화 맥락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시민소비자가 주권자가 되어 각자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심각하게 의식하면 할수록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협동조합의 미래를 결정지을 핵심 자원인 것이다.
 
 
  ‘윤리적 소비’의 주역은 40대 주부와 중상층
 
  세계적 경제불황과 이로 인한 고(高)물가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소비’ 시장은 틈새시장으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윤리적 혹은 착한 소비를 견인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 조사에 따르면 ‘윤리적 소비’의 주역은 40대의 주부이며, 교육 및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상(中上)계층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윤리적 소비’, 즉 추가비용(premium)을 지불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고 소비행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윤리적 소비’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윤리적 소비’에서 단연코 우세한 것은 먹을거리이다. 그중에서도 음식과 음료에 대한 착한 소비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 물품의 대부분은 유기농으로 만든 식품들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윤리적 소비자는 기업에도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다. 영국의 생활협동조합은행협회의 <2008 윤리적 소비보고서 (Ethical Consumerism Report 2008)>에 따르면, 지난 10년(1999~2008)간 윤리적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가 약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전체의 윤리적 시장은 1999년에는 135억 파운드였던 것이 2008년에는 360억 파운드로 증가했다. 특히 공정무역 제품은 지난 10년간 3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리적 소비 구매량은 2008년 가족 평균 735파운드로 1999년의 241파운드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음식 및 음료, 친환경 여행 및 운송 그리고 녹색가정 친환경 에너지 소비 등에서 비약적인 지출 증가를 보였다.
 
 
  아름다운가게, 3년 만에 9배 매출 증가
 
  한국에서도 비록 규모는 작지만 긍정적인 신호를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정(公正)무역을 시작한 ‘아름다운가게’의 매출 규모를 보면 최근 들어 비약적인 증가세(200~300%)를 보이고 있다. 2007년 3억2000만원에서 2010년에는 29억7500만원으로 3년 만에 거의 9배나 증가하였다.
 
  대표적인 공정무역 상품인 커피 브랜드 ‘아름다운커피’는 초기에 네팔에서 생산한 ‘히말라야의 선물’에서 시작되어 페루산 커피 ‘안데스의 선물’, 그리고 우간다산 커피 ‘킬리만자로의 선물’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정무역 커피믹스까지 판매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기업 제품에 대한 ‘윤리적 소비’ 캠페인이 민(民)·관(官)·기업 협력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적 기업 제품을 올 추석 명절 기념품으로 특별 판매하는 사업을 기획하였다. 대부분의 제품이 유기농이고, 친환경적이고, 공정무역 제품이다. 그러나 이것이 관 주도의 강압적인 판촉행사로 이어질 경우, 사회적 기업의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외부 의존성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소비자의 자발적인 ‘착한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윤리적 소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향후 어떤 부문에 주목해야 할까?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비인간적인 교육 문제 해결, 고령화 및 핵가족 사회를 대비하는 사회서비스 개발,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유기농업 확대, 그리고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일자리 마련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그리고 원조의 뒤안길
 
  전 지구적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는 ‘윤리적 소비’와 공정무역의 향후과제는 무엇일까? 앞서 소개한 공정무역 커피 사례를 놓고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그리고 원조의 관계가 아무 장애물 없이 선(善)순환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다.
 
  저개발 국가의 빈곤 문제를 돕고자 원조를 하고, 그 일환으로 공정무역을 한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가 저개발 국가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빈곤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윤리적 소비자들은 우리가 현명하게 소비한다면 바다 너머 절대빈곤의 생산자를 도울 수 있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공정무역 커피를 열심히 구매한다.
 
 
  “원조는 허구다”
 
잠비아 출신의 여성경제학자 담비사 모요는 《죽은 원조》에서 실패로 돌아간 서구의 아프리카 원조를 비판했다.
  그런데 잠비아 출신의 여성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Dambisa Moyo)는 자신의 책 《죽은 원조(Dead Aid)》에서 “원조는 허구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들이 1970년대 이래 개발원조금으로 3000억 달러 이상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끝이 없어 보이는 부패와 질병, 빈곤, 원조 의존의 악순환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는데 그 핵심 원인이 바로 원조라는 것이다.
 
  그동안 아프리카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민족적, 제도적 요인들의 복합적인 작용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요인들은 충분조건이 아니며 아프리카 빈곤국들의 공통원인은 바로 국가원조와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원조는 하나의 문화상품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원조 없이 개발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개발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아프리카의 최대과제임을 주장한다.
 
  모기장 원조 사례를 들어보자. 아프리카의 치명적 질병인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염된다. 이를 극복하고자 아프리카 현지 모기장 제조업자들은 어렵게 생산량을 맞추어가며 조금씩 성장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말라리아 피해를 막기 위해 국제 원조 기구는 대량의 모기장을 수입하는 데 지원금을 할당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모기장 제조업자는 파산하고 말았다.
 
  일시적으로 말라리아 환자 수는 줄어들겠지만, 수입모기장은 5년 안에 찢어지고 망가질 것이다. 이를 대체할 지원금이 없다면 말라리아는 다시 창궐할 것이다. 이에 대처할 현지 모기장 제조업자가 사라지고 없으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원조의 미시(微視)와 거시(巨視) 차원의 역설적(逆說的) 상황이다. 일시적 효과를 노린 단기 개입적 해외원조는 아프리카 현지의 지속가능 발전 과정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현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마찬가지로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무조건적 소비가 반드시 그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올바른 접근이 필요하다. 원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 지구적 차원의 윤리적 소비가 과연 해당국가 및 지역에서 장기적이고도 지속가능한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지를 보고 추진해야 한다. 현지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우리의 생각과 방식대로 일방적으로 전개하는 윤리적 소비 혹은 공정무역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은 서구(西歐) 선진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 지구적 차원의 윤리적 소비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도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성찰적인 자세로 원조, 공정무역, 그리고 윤리적 소비의 관계를 올바로 진단하고 늘 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구시민으로서의 아름다운 거래행위가 그들에게는 독(毒)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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