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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

일본에 선보일 중국 문화재들

아시아권 처음으로 중국 문화의 眞髓를 보다!

글 : 허영섭  월간조선 객원기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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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전경. 세계 5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고궁박물원은 1965년에 완공되었다. 소장된 70만 점의 유물이 7000년 역사를 지닌 중화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중화(中華) 문화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타이완 국립고궁박물원의 국보급 보물들이 모처럼 해외 나들이를 한다. 일본 전시회 일정이 확정된 것이다. 일본이 198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해 왔던 고궁박물원 유물의 전시 계획이 30년 만에 드디어 빛을 본 셈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해당 유물의 소유권을 둘러싼 중국 정부와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인해 타이완은 고궁박물원의 해외 전시회를 가급적 기피하는 실정이다.
 
  현재 타이완과 일본 양국 사이에 잠정 확정된 일본 전시 일정은 2014년 6월부터 11월까지로 되어 있다. 도쿄(東京)와 후쿠오카(福岡) 등 두 곳의 국립박물관에서다. 그동안 교토(京都)와 나라(奈良) 등에서도 순회 전시를 한다는 논의를 진행했지만 일단 계획에서 제외된 상태다. 그 대신 2016년에 다시 전시회를 유치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일본의 미술품 애호가들은 2년 뒤의 전시회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취옥백채(翠玉白菜)와 육형석(肉形石) 등을 구경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은 어떤 주제로, 어떠한 유물들이 전시될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취옥백채는 비취의 은은한 바탕 색깔을 살려 배추 모양으로 정교하게 다듬어낸 작품이며, 육형석은 동파육과 흡사한 모습을 띠고 있는데 양쪽 다 고궁박물원이 자랑하는 소장품이다.
 
 
  세계 5大 박물관의 하나
 
취옥백채(翠玉白菜). 비취를 깎아 배추 모양으로 만든 청나라 당시의 작품으로 고궁박물원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치와 메뚜기도 조각되어 있다. 다른 유물들은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 전시되고 있지만 이 유물은 항상 전시된다.
  고궁박물원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5대 박물관으로 꼽히고 있을 만큼 그 명성을 자랑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7000년 역사에 걸쳐 두루마리 문서와 서예 작품, 도자기, 청동기 등을 포함해 70만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티베트와 만주족, 몽골족의 문헌에 있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연간 350만명이 관람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200만명은 외국인 관람객이다.
 
  일본 전시회 일정은 앞으로 2년이나 남아 있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추진작업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궁박물원 소장품들이 하나같이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므로 운송과 보관 및 전시 과정에서 최대한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데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돌발적인 변수를 충분히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궁박물원 소장품은 원래 중국 송나라 때부터 원, 명,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조의 궁정유물을 계승한 것으로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배할 당시 타이완으로 퇴각하면서 가져간 것이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정부를 수립한 1949년 이래 고궁박물원 유물에 대해 줄곧 소유권을 주장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에도 똑같은 이름의 고궁박물원이 있다. 고궁(故宮)이라는 명칭 자체가 자금성의 다른 이름이다.
 
  타이베이(臺北)에 보관되어 있는 소장품들에 대해서는 마땅히 손을 쓸 방안이 없다 하더라도 일단 타이완으로부터 해외로 나오는 유물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중국 측의 강력한 의사 표시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타이완이 고궁박물원 유물의 해외전시에 극도의 신경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전시회가 열릴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중국은 정식으로 외교가 수립되어 있는 반면 타이완은 민간 차원의 대표부 관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본 원칙 때문이다. 중국이 타이완보다 외교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멀찌감치 계획된 일본 전시회에 각국의 문화재 관계자들과 미술품 애호가들은 물론 외교가의 관심이 벌써부터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일본, 法까지 만들며 유물 전시회 유치
 
육형석(肉形石). 동파육의 모양을 낸 조각품이다. 돼지고기 껍질 부분의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되고 있다. 역시 고궁박물원이 자랑하는 유물이다.
  이번에 도출된 잠정 계획은 그나마도 일본의 정치인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타이베이를 드나들며 공을 들인 끝에 얻어낸 성과다. 올해 들어서만도 지난 2월 시마타니 히로유키(島谷弘幸) 도쿄국립박물관 부관장이 타이완을 방문해 사전 협의를 가졌으며, 3월에는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회장을 비롯한 의회친선협회 소속 의원들이 마잉주(馬英九) 총통을 예방해 이에 대한 언질을 받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결정은 지난 8월 제니야 마사미(錢谷眞美) 도쿄국립박물관 관장을 비롯한 일본 대표단이 타이베이를 방문해 고궁박물원의 저우궁신(周功) 원장과 회동한 자리에서 이뤄졌다. 정통관료 출신인 제니야 관장은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토표기 문제로 한국과 마찰을 빚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문부과학성의 초중등교육국장을 거쳐 사무차관까지 지낸 뒤 자민당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당시이던 2009년 도쿄박물관장에 임명되어 지금껏 재임하고 있다.
 
  고궁박물원의 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이 보였던 가장 중요한 노력은 역시 ‘해외 미술품 공개촉진법’을 제정한 것이었다. 지난해 3월 일본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외국의 미술품이 일본에서 전시되는 동안 제3국에 의해 압류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법적으로 반환을 보장하고 있다.
 
  외국인 소유 유물이 제3국에서 불법으로 취득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제문화교류를 위해 문부과학상이 지정하는 것은 차압을 금지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고궁박물원 전시를 유치하려고 타이완의 허락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한 조치의 반대급부로 과거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해외에서 강탈한 미술품에 대해 상대국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약속받으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법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일본 전시회 계획은 결코 이뤄질 수가 없었다. 만약 중국이 소유권을 내세운다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1970년대부터 중국이 국제무대에 본격 등장하게 되면서 타이완이 각국과의 외교관계 단절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까지 주재국에서 타이완의 소유로 등재되어 있던 국가 재산에 대해서는 모두 중국의 관할로 넘겨줘야 했다.
 
  1992년 타이완이 한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되면서 서울 명동에 위치한 대사관을 중국에 넘겼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원래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의 주둔지로서 타이완이 이전받았다가 한중 수교가 이뤄짐에 따라 그대로 중국 측에 소유권을 넘기게 됐던 것이다. 프랑스(1964년)나 일본(1972년)과의 단교 당시 파리와 도쿄에 주재하던 대사관의 처리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1979년 단교를 앞두고 타이완의 교민 단체에 미리 대사관의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도록 묵인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日­타이완 기숙사 재판
 
  타이완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무려 40년간이나 끌어온 기숙사 건물 소유권 재판이 패소로 마무리된 쓰라린 상처가 남아 있다. 교토 시내에 위치했던 유학생 시설인 광화료(光華寮)로 인한 소송은 일본 사법 사상 최장기로 기록된 사건이기도 하다. 연건평 600여 평의 5층 건물인 이 광화료는 타이완 정부의 소유였으나 1967년 당시 기숙사에 입주해 있던 유학생 8명이 문화혁명이 시작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자 이들에 대해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당시는 타이완이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끊어지기 전이어서 그나마 애로사항이 덜했으나 도중에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건은 복잡한 양상으로 변해갔다. 교토지법과 오사카고법을 오가며 희비가 엇갈리던 이 소송은 2007년 대법원의 상고심에서 끝내 타이완의 패소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1972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타이완의 대표권이 소멸됐으므로 그동안 타이완을 원고로 진행돼 온 모든 소송절차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에 비교하면 고궁박물원의 유물은 대륙에서 궤짝째 운반해 왔다는 점에서 항변의 여지가 더욱 좁혀진다. 중국 대륙에 대한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이 시작되면서 1936년 베이징으로부터 피란을 떠난 유물은 난징(南京)과 쓰촨(四川), 충칭(重慶), 청두(成都)를 거쳤다가 다시 인민해방군과의 국공합작이 결렬되면서 1948년 해군 함정에 실려 타이완으로 운반되었다. 이때 옮겨진 유물의 궤짝이 모두 2972개에 이른다. 현재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가운데 대략 65만 점의 유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물 한 점과 군인 한 명의 목숨 바꿔”
 
  지금의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은 1965년에 완공되어 쑨원(孫文)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개관했다. 쑨원의 호칭을 따서 ‘중산(中山) 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통 3개월마다 한 번씩 전시품들을 교체하고 있는데, 한번에 1만5000점 정도가 전시되므로 70만 점의 소장품을 전부 돌아가며 전시하려면 최소한 10년도 더 걸리게 된다. 타이완의 애호가들이라고 해서 방대한 소장품을 전부 다 구경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타이완 정부가 최근 근처의 토지를 수용해 전시 공간을 대폭 늘리는 ‘대고궁(大故宮)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은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중국 역사의 진수를 보여준다. 역대 중국 황실에서 수집한 유물 가운데서도 국보급으로 분류할 만한 최고의 유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타이완으로 황급히 옮기는 과정에서 유물 한 점과 군인 한 명의 목숨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전해질 만큼 희생도 적지 않았다.
 
  물론 타이완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고궁박물원의 유물을 약탈 문화재라고 판단하기엔 정치적으로 미묘한 부분이 없지 않다. 타이완은 타이완 나름 국부(國父)로 숭상받는 쑨원의 삼민주의를 계승한 중화민족의 정통 정부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공내전에서 패퇴했을망정 1911년 신해혁명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국제적인 비중이 열세인 탓에 단지 목소리를 낮추고 있을 뿐이다.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옮겨간 이후 고궁박물원이 자체 계획에 의해 구입하거나 별도로 기증을 받은 유물이라고 해서 중국 정부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세계적 디자이너인 프랑스의 입생 로랑이 보유했던 쥐와 토끼의 청동상이 크리스티 경매에 부쳐졌을 때 중국 정부가 발끈하고 나섰던 분위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원래 중국에서 불법적으로 약탈해 간 것인 만큼 경매를 중단하고 당장 반환해 달라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었다.
 
 
  중국, 타이완의 해외유물 전시에 소송 등 강력 대처
 
연꽃 모양 옥잔(玉荷葉杯). 연잎 모양의 옥잔으로 잎 둘레가 주름져 있으며, 바깥에는 두 줄의 음각 선으로 세밀하게 잎맥을 그려 놓았다. 연꽃 형태를 띠고 있는 자단(紫檀) 나무 받침대도 옥잔의 풍모를 더해준다. 10세기 무렵 송나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들 청동상은 당초 청나라의 호화 궁전이던 베이징의 원명원(圓明園)에 있던 12지신상의 일부였다. 그러나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침공으로 원명원이 철저히 파괴되면서 12지신상도 함께 약탈당해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크리스티 경매 계획이 발표되자 중국 변호사 80여 명이 유물 반환소송에 나섰고 중국 유학생들이 경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중국의 입장은 단호했다.
 
  결국 이 두 개의 청동상은 입찰이 무산된 끝에 타이완 고궁박물원에 기증을 놓고 논의가 오갔으나 고궁박물원 측이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타이완 내부에서 다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고궁박물원 저우공신 원장은 이에 대해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약탈당한 문화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국제적 윤리”라며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정치권에서는 중국의 반환 압력을 우려해 기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던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자체적인 조사에 따르면 아편전쟁이 일어난 1840년 무렵부터 제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해외로 밀반출되거나 강탈된 유물이 줄잡아 1000만 점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일본, 미국 등 세계 40여 개 국가의 200여 개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유물이 160만 점에 이르며, 개인이 소장한 것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는 추산이다. 런던의 대영박물관만 해도 2만3000여 점의 중국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초 일본의 침략을 모면하기 위해 피란에 나섰던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유물이 모두 1만9557개 궤짝 분량이었고, 이 가운데 20% 남짓한 2972개 궤짝만 타이완으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나머지 유물은 대부분 해외로 밀반출됐거나 유실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민간에 전해내려오는 유물들도 1966년부터 10년간 진행된 문화혁명 기간 중에 상당히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의 분단 이래 타이완 고궁박물원의 해외 전시가 뜸했던 것도 소유권 다툼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외 전시가 이뤄졌던 나라는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물론 전시가 이뤄진 이들 국가에서는 약탈 유물에 대해서도 보호 규정이 확실하게 마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타이완,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미국에서만 전시회
 
  고궁박물원의 프랑스 전시회는 1998년 ‘제국의 추억’이라는 주제로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 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이때는 모두 340여 점의 유물이 파리로 나들이를 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의 상당수가 이집트나 그리스, 중국, 페루 등으로부터 탈취해 왔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약탈 문화재에 대해 관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 뒤 2006년에도 파리 기메 박물관에서 ‘청나라 궁정의 장밋빛 세월’ 회화전이 열려 카스틸리오네의 그림들이 전시회에 대여되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인 카스틸리오네는 예수회 소속 선교사로서 청나라에 파견되어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 당시 궁중화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랑스닝(郞世寧)이라는 이름이 카스틸리오네가 중국에 체재하면서 사용한 이름이다.
 
  독일 베를린과 본에서 ‘천자(天子)의 보물’이라는 주제로 고궁박물원 전시회가 열린 것은 2003년의 일이다. 독일과 타이완 교환전의 일환으로 이뤄진 전시회였다. 그때 타이완 타이베이에서는 독일 박물관 소장품이 전시되었다. 그 뒤 2005년에는 뮌헨의 인류학 박물관에서 몽골 칭기즈칸의 시대를 조명하는 내용으로 고궁박물원 소장품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96년에 전시회가 열렸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요청에 따라 워싱턴과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4대 도시에서 순회전이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된 유물도 450여 점에 이르렀으니 대규모의 출동이었다. 물론 그보다 30여 년이나 앞선 1961년에도 미국에서 전시회가 열렸었다. 그때는 보스턴까지 포함한 5대 도시를 순회하며 1년간에 걸쳐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오스트리아 전시회는 2008년 빈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그보다 한 해 전 빈 박물관으로부터 바로크 시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물들을 대여받아 타이베이에서 열렸던 전시회의 교환전 성격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고궁박물원으로서는 2014년의 일본 전시회는 빈 전시회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해외 전시회인 셈이다.
 
  진품이 아닌 모조품을 동원해 해외 전시회를 연 경우도 없지 않았다. 1999년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중남미 7개국의 요청으로 과테말라, 파나마, 코스타리카 등을 순회하는 전시회가 열렸을 때가 그러했다. 중남미의 경우 사회적 여건이 불안정한 탓에 유물의 안전을 기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1935년 고궁박물원의 대표 작품들이 선별되어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중국예술 전시회에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아직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어서 외교적으로 별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1940년에도 소장품 가운데 청동기와 옥기, 서화, 태피스트리 등 모두 100점이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국립’ 표현 놓고도 신경전
 
조춘도(早春圖). 송나라 때 곽희(郭熙)가 비단폭에 그린 것으로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58.3 x 108.1cm 크기. 겨울 눈이 녹고 대지가 깨어나며 초목이 가지를 뻗는 활기찬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현재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 다방면으로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으나 문화유물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일방적인 교류에 그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유물은 계속해서 타이베이에 전시되고 있는데도 타이완 고궁박물원의 유물은 대륙 나들이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시를 위해 대륙으로 건너갈 경우 귀환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상하이(上海) 엑스포를 기념하여 상하이 박물관에서 ‘당·송·원 회화 진품전’이 열리도록 미리부터 계획되었고 타이완 고궁박물원에서도 유물을 전시회에 내놓으려고 사전 협의가 진행되었으나 전시 유물의 압류를 금지토록 하는 조건을 놓고 양쪽이 의견을 좁히지 못함으로써 고궁박물원의 참여는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만약 유물압류 규정을 해제하여 전례로 남는다면 다른 나라에 약탈된 유물을 반환받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중국 측이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이완 국립고궁박물원’이라는 명칭에서 ‘국립’이라는 표현도 마찰을 빚었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중국’인 만큼 베이징과 타이베이에 똑같은 이름의 국립박물관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었다. 결국 타이완은 한 점도 출품하지 않았다. 비슷한 무렵, 타이완 고궁박물원에서 열린 ‘남송(南宋) 회화전’에는 상하이 박물관과 저장성(浙江省) 박물관 등의 관련 유물이 상당수 전시됐다.
 
 
  고궁박물원 찾는 한국인 年 10만명
 
  중국 당국은 2009년에도 타이완에서 열린 ‘옹정 황제와 그의 시대’ 특별전에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소장품 37점을 대여했으며, 그 뒤 2011년 3월부터 9월까지 타이베이에서 진행된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전시회 때도 저장성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그림을 대여해 주었다. 부춘산거도는 원나라 시대의 화가 황공망(黃公望)이 그린 그림으로, 불에 타서 둘로 나뉘어 한쪽은 저장성에, 다른 한쪽은 타이베이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때의 전시회는 양안관계 화합의 상징으로 마련된 것이었지만, 타이완의 입장에서는 섣불리 유물을 대륙 전시회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타이완은 그러면서도 여건만 갖춰진다면 고궁박물원의 해외 전시회를 가급적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위치가 상당히 고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궁박물원 전시회를 통해서나마 외국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고궁박물원이 일본 전시회 계획에 대해 “마잉주 총통의 외교정책의 한 부분”이라고 밝힌 데서도 그러한 배경을 살펴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의 고궁박물원 전시회는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미술 애호가들도 고궁박물원의 유물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기 때문이다.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고궁박물원을 찾는 한국 관람객이 연간 10만명 안팎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답변을 먼저 말한다면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전시회가 이뤄지려면 일본에서처럼 약탈 문화재에 대한 관련 법규가 먼저 정비돼야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러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가 국민정서적으로 설득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구한말부터 광복 직후까지 외국의 간섭을 받으며 격동기를 보내면서 해외로 약탈당한 문화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의 유명 미술품이나 유물에 대한 전시회를 국내에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강제로 빼앗긴 문화재를 찾아들이는 게 우선순위에서 앞설 수밖에 없다. 외국의 약탈 문화재에 대해 용인한다면 우리가 빼앗긴 문화재에 대해서도 권리를 포기한다는 논리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현재 우리의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의 국제교류협력 촉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국내로 반입하려 하거나 이미 반입된 외국문화재가 해당 반출국으로부터 불법반출된 것으로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문화재를 유치할 수 있다”(제20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외국문화재의 반출국으로부터 대한민국에 반입된 외국문화재가 자국에서 불법반출된 것임을 증명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반환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해당 문화재가 반출국에 반환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제20조 5항)고 규정한다.
 
 
  한국 전시, 관련법 개정 전에는 쉽지 않을 듯
 
  이런 규정에 의한다면 타이완으로서는 고궁박물원 유물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규정을 고쳐야만 고궁박물원의 전시회 유치가 성사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이 규정을 고치기 위해 일부에서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아직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타이완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고궁박물원의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의중을 내비치고 있다. 더욱이 2년 뒤에 일본 전시회가 성사되는 만큼 그 기회를 이용해 서울에서도 전시회가 개최될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한 분위기다. 그렇게 된다면 준비에 따른 별도의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데다 정치적으로 생색도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궁박물원 전시회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내년까지는 문화재보호법 규정이 개정돼야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타이완 고궁박물원의 일본 전시회 계획은 국제무대에서 타이완과 중국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다시금 확인시켜 줄 뿐만 아니라 해외에 강제로 분산된 우리 문화재 환수정책에 있어서도 새로운 인식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2년 뒤 도쿄에서 전시회가 열리기까지 적지 않은 변수들이 불거질 가능성도 전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고궁박물원의 소장품들이 중화 문화의 진수라는 평가에 있어서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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