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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政街

보비 진달과 공화·민주당의 次世代 走者들

글 : 윤정호  美 예일大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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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수성가한 인도계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로 정치·의료·교육개혁 성공해 주목 받아
⊙ 폴 라이언(부통령 후보), 마르코 루비오(상원의원), 랜드 폴(상원의원) 등이 공화당의 ‘40代 旗手’
⊙ 민주당에서는 줄리언-조아퀸 카스트로 형제, 코리 부커(뉴어크시장), 조지프 케네디 3세 등이
    차세대 주자로 성장 중
  “아메리카, 아메리카!”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로 막을 내린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 이채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미트 롬니 대통령 후보와 그의 러닝메이트인 폴 라이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대회장을 떠나지 않았다. 당원들과 ‘아메리카 더 뷰티풀(America the Beautiful)’을 합창했다. 더욱 이채로웠던 것은 당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는 것. 대회가 개막될 때만 하더라도 불안감으로 가득하던 이들의 표정이 변한 이유는 네 가지다.
 
  우선 태풍피해가 없었다. 전당대회를 준비하던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초대형 태풍 아이작(Isaac)이 대회가 열릴 플로리다주(州) 템파로 접근 중이라는 것이었다. 위원장 린스 프리버스(Reince Priebus)는 화급히 대회일정을 조정했다. 대회 첫날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나머지 일정도 미정으로 남겨 놓았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태풍은 루이지애나로 비켜 가 행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깜짝 연설도 한몫을 했다. 연설 자체는 성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없었다. 즉석연설이다 보니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도 흠이었다. 그 결과 롬니의 연설은 프라임타임이 훨씬 지난 시간에 시작됐다.
 
  하지만 당원들은 클린트 이스트우스의 연설에 환호했다. 리버럴의 아성(牙城)이라고 믿었던 할리우드에 아카데미상 3회 수상에 빛나는 우군(友軍)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롬니가 수준급의 후보 수락연설을 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중연설 실력이 형편없었던 롬니지만, 전당대회에서는 예상 밖의 솜씨를 보였다. 일용직 노동자로 출발해서 주지사를 역임한 아버지와 온갖 역경 속에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어머니의 로멘스 등 공개를 꺼리던 가족사를 공개했다. 자신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기업인이 아니라 ‘인간미 넘치는 공복(公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원들이 행복감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올해 대선의 승패(勝敗)와 관계없이 ‘공화당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전당대회는 차세대(次世代) 리더들의 향연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연단에 서서 걸출한 능력을 뽐냈다.
 
 
  24세 때 州 보건부장관 지낸 보비 진달의 영화같은 인생
 
  하지만 이날 공화당 차세대 주자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았던 한 사람은 연설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가장 주목을 받았다. 그는 바로 주민들과 함께 태풍에 맞서기 위해 연설을 포기한 루이지애나 주지사 보비 진달이었다. 진달의 인생역정은 한 편의 영화 같다.
 
  1971년 6월 10일, 진달은 미국 유학을 온 인도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달의 어린 삶은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부모는 진달에게 ‘물질’보다 소중한 ‘가치’를 주었다. 극단적인 빈곤을 경험하며 자란 그들은 근면과 자조(自助)의 정신을 가르쳤다. 진달은 가르침에 충실했다. 잰더 크리켓(Xander Cricket)이 저술한 진달 전기가 묘사하고 있듯이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또래들이 루이지애나주립대 경기장에서 미식축구 관람을 즐길 때 그는 구내매점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진달은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브라운대에 입학한 그는 생물학과 행정학을 동시 전공하며 3년 만에, 평균 학점(GPA) 4.0의 탁월한 성적으로 학사모를 썼다. 대학 졸업 뒤에는 미국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ship)에 선발됐다. 그는 옥스퍼드대의 뉴칼리지(New College)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매킨지 앤드 컴퍼니사(社)에 입사(入社),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1995년 진달은 24세의 나이에 루이지애나 예산의 40%를 주무르는 주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 and Hospitals) 장관이 됐다. 이 파격 인사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진달은 성과로 논란을 잠재웠다. 그는 빈곤층과 노령층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확충했다. 예방접종률을 높이는 등 아동에 대한 의료혜택을 늘렸다. 채무의 늪에 빠져 있던 주 의료보험제도가 2억2000만 달러에 달하는 흑자(黑字)를 기록하게 했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만성적인 부정 의료수가 청구 행위를 근절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州지사 再選 당시 지지율 66%
 
2008년 2월 취임선서를 하는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 그는 투표자의 54%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진달은 그 뒤로 탄탄대로를 질주했다. 1999년에는 주내(州內) 8개 공립 고등교육기관을 총괄하는 루이지애나 대학시스템(University of Louisiana System)의 총장(President)이 됐다. 2001년에는 연방정부의 보건복지부 차관보에 임명됐다. 1998년 노령층 대상 의료보험제도의 개혁을 위해 꾸려진 여야(與野) 공동위원회(National Bipartisan Commission on the Future of Medicare)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경력이 평가된 것이다.
 
  하지만 진달은 전문관료로 남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정치인의 길로 나선 것이다. 그는 2003년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캐서린 블랑코(Kathleen Blanco)에게 무릎을 꿇었다.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는 미국 남부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달리 든든한 고정 지지층이 없는 아시아계(系)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듯했다.
 
  그러나 진달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듬해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 사상 두 번째 인도계 의원이 됐다. 2년 뒤에는 재선(再選)에 성공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방만한 재정정책을 비판하는 등 ‘할 말은 하는’ 그의 의정(議政) 활동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07년, 드디어 진달은 꿈을 이뤘다. 불과 37세의 나이에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당선된 것이다.
 
  2007년 10월 20일 거행된 주지사 선거에서 진달은 투표 참여 유권자 중 54%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패리시(Parish)’라고 불리는 루이지애나 고유의 행정단위 64개 중 60개에서 승리를 거뒀다. 백인 유권자 10명 중 6명은 진달을 선택했다. 이로써 그는 루이지애나 사상 최연소(最年少) 주지사이자 미국 사상 첫 번째 인도계 주지사로 역사에 남게 됐다.
 
  4년 뒤인 2011년 진달은 연임(連任)에 성공했다. 득표율은 66%에 달했다. 그해 10월 5일 현재 63%에 달하는 진달의 높은 지지도 때문에 민주당이 선거를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다. 5년도 안되는 재임기간에 진달은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부정부패 척결
 
  처음 주지사로 출마하면서 진달은 ‘새로운 루이지애나(New Louisiana)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의 으뜸 공약은 정치개혁이었다. 루이지애나 정계에 만연했던 비리와 구태(舊態)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좌절감을 담아 내려 한 것이다.
 
  진달은 취임 즉시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우호적인 의원들과 힘을 합쳐 연이어 개혁입법을 통과시켰다. HB56 법안을 통해 주 역사상 처음으로 감사원(Office of Inspector General)을 설립했다. 낭비와 비효율, 그리고 부정과 부패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다.
 
  SB8 법안을 통해서는 공무원에 대한 접대 한도를 설정했다. 외부인이 공무원에게 식음료를 접대할 경우 비용은 50달러를 넘지 못하게 못 박았다. SB1법안으로 공무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주정부 발주(發注) 사업에 참여해서 부정한 이득을 보는 것을 막았다. HB1법안을 통과시켜 전국에서 가장 엄격한 공무원재산공개제도를 실시했다. 그의 이러한 시책은 공공청렴센터(The Center for Public Integrity) 등 공공 분야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와 연구기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보비 진달은 주지사의 권한을 이용해서 주의원들의 세비(歲費) 인상을 막았다. 2008년 6월 진달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봉착했다. 주의원들이 기습적으로 세비를 300%나 인상했던 것이다. 진달은 이를 묵과했다. 주정부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서는 주의회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판(誤判)이었다. 주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더타임스-피카윤(The Times-Picayne) 》 등 지역 신문에는 ‘진달에게 실망했다’는 투고가 쇄도했다. 그러자 진달은 입장을 바꿔 주의회의 세비인상안을 거부했다. 주민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태풍·原油유출 사고시 위기관리 능력 발휘
 
보비 진달 주지사는 태풍 구스타프가 발생한 2008년 8월, 주방위군을 동원해 주민들을 피난시키는 등 적극 대처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당시 주방위군 공군부대를 시찰하는 진달 주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보비 진달은 위기관리에 빼어난 능력을 보였다. 루이지애나주는 멕시코만(灣)과 접해 있어 크고 작은 재해에 시달려 왔다. 2007년에는 태풍 카트리나로 인해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해수면(海水面)보다 낮은 저(低)지대에 위치한 뉴올리언스시(市)의 제방이 붕괴되면서 157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8년 8월, 루이지애나 주민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중남미(中南美) 국가들을 강타한 태풍 구스타프가 루이지애나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카트리나의 악몽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됐다.
 
  진달은 태풍상륙 5일 전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00만 달러의 긴급예산을 투입, 발전기를 구입해서 병원 및 요양원 등에 지원했다. 단전(斷電)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와 함께 200만명의 주민을 단시간 내에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이를 위해서 3000명의 주방위군 병력을 동원했다. 빈곤층과 노약자들을 위해서는 버스와 기차를 차출했고 1만명이 넘는 입원 환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는 텍사스 등 미국 전역으로부터 주방위군 공군(Air National Guard) 소속 수송기를 집결시켰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피작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수됐다.
 
  2010년 4월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BP 원유(原油)유출 사고 시에도 진달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사고로 인해 490만 배럴의 원유가 바다로 흘러 들어갔지만 연방정부는 신속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진달이 자서전 《리더십과 위기(Leadership and Crisis)》에서 밝혔듯이 연방정부는 법규와 규제 등을 들어 사태수습을 오히려 가로막았다.
 
  진달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그는 방제(防除)활동을 진두 지휘했다. 원유유입을 막기 위해 모래 둔덕을 쌓았다. 둔덕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찬반 양론이 갈린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보비 진달은 양극화(兩極化) 문제 완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취임 후 3년6개월 동안 4만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에 힘입어 루이지애나주의 실업률은 2012년 7월 현재 전국 평균보다 낮은 7.6%에 머물고 있다.
 
  진달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공(公)교육의 질적(質的) 혁신에 나섰다. 그는 “교육기회의 결여가 빈곤의 주원인”이라는 연구결과에 착안, 23만명의 학생이 학력미달 상태에 처해 있는 등 참담한 교육현실을 개선하려 했다.
 
  이를 위해 진달은 미국에서 가장 강도 높은 교원평가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교사들은 자동으로 정년(停年)을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아울러 교사 파면절차를 간소화했다. 정교사가 되어 정년을 보장받았다고 하더라도 수시로 행해지는 능력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경우 옷을 벗게 됐다.
 
  당연히 개혁은 큰 저항에 직면했다. 교사들은 진달을 ‘주민소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진달은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양질(良質)의 교육 없이는 빈부(貧富)격차 해소는 불가능하고 양질의 교사 없는 양질의 교육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이와 함께 진달은 빈곤층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제공했다. 과거 서민 자녀들은 질 높은 교육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경제사정으로 인해 공립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절반에 가까운 공립학교들은 학교평가에서 낙제등급인 D 또는 F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달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했다. 그는 교육관료의 간섭 없이 학교를 운영해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하고 있는 ‘차터 스쿨(Charter School)’의 수를 크게 늘렸다. 동시에 낙제등급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이를 위해 8500만 달러의 전학장학금을 지급했다.
 
 
  의료개혁
 
  진달은 의료제도도 개선했다. 루이지애나는 18세기에 이 지역에 정착한 가톨릭 성직자들이 포교와 봉사활동으로 시작했던 무상(無償)진료 문화에 젖어 있었다. 때문에 루이지애나주의 의료제도는 비(非)효율성으로 악명(惡名) 높았다. 주민들은 중병(重病)이 아니어도 응급실을 찾았다. 질병에 대한 예방을 소홀히 하고 치료를 받은 뒤 사후(事後)관리도 게을리했다. 그리고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이 때문에 주정부가 관련 예산을 아무리 늘려도 치솟는 의료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의료혜택을 못 받는 이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진달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정책실험을 감행했다.
 
  진달은 입원환자 대상 거주치료 프로그램(In-patient Residential Treatment Program) 등 주정부가 운영하는 의료시설들을 민영화(民營化)했다. 의료교육기관과 병원 간의 협력관계를 확대해서 중복투자를 막았다. 아울러 무료진료소 대신 소득에 따라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는 의료기관들을 늘렸다. 의료예산의 폭증을 막는 한편 진료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소액(少額)이라도 지불할 경우에 그렇지 않을 때보다 환자들이 진료에 충실히 임한다는 연구에 착안한 것이다.
 
  진달은 빈곤층을 위해서는 ‘루이지애나 헬스 퍼스트(Louisiana Health First)’라는 이름의 의료보험제도 실험을 실시했다. 의료서비스 운영 노하우가 많은 전문경영회사(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들이 주정부가 설정한 가이드라인 내에서 정부관료들을 대신해 의료보험을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이를 통해 진달은 의료재정을 개선하는 한편 보다 나은 의료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절감된 예산은 어린이와 빈곤층을 중심으로 의료보험 신규 가입자 수를 늘리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진달은 첫 임기동안 자폐증 아동들에게 의료보험제도를 확대하고 서민가정 자녀들에게 무료진료를 해 주는 아동건강보험제도(Louisiana 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 수혜자를 1만1000명 늘렸다.
 
 
  ‘공화당의 미래’
 
  이러한 업적들에 힘입어 진달은 ‘공화당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그를 표지 모델로 소개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여러 차례 진달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 전 하원의장은 보수 주간지 《휴먼이벤츠(Human Events) 》 기고문에서 그를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주지사”라고 극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달의 앞날을 장담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공화당의 미래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달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실험들이 성공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각종 개혁들 외에도 진달은 많은 정책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주지사가 된 후 지금까지 증세(增稅)를 하지 않으면서도 재정건전성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지켜 오고 있다. 그는 감세(減稅)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 올해 6월에는 공무원연금(年金)제도에 대한 파격적인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은퇴연령을 높이고 연금부담금을 높이는 한편 연금운영에 시장원리를 일부 도입했다.
 
  진달의 정치적 장래는 이러한 조치들이 루이지애나 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진달은 공화당 내 거물 정치인들의 견제를 버텨 내야 한다. 공화당에는 차기 대선 출마를 준비하는 대형 정치인이 많다. 인디애나 주지사 미치 대니얼스(Mitch Daniels), 전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Jeb Bush), 버지니아 주지사 밥 맥도넬(Bob MacDonnell), 그리고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Rick Perry) 등은 2016년 대권도전이 유력시된다. 진달이 대선후보가 되려면 이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인맥과 조직, 그리고 정치자금의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공화당의 40代 주자들
 
공화당의 ‘40대 기수들’. 왼쪽부터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랜드 폴 상원의원.
  보비 진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또래 정치인들 사이의 경쟁이다. 공화당에는 진달 외에도 빼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춘 40대(代) 정치인이 많다. 어려서부터 보수주의에 눈뜬 이들은 대부분 20대에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눈부신 업적을 쌓아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나야말로 보수(保守)진영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전당대회 기간 주목을 받은 공화당 차세대 주자로는 진달 외에도 폴 라이언(Paul Ryan) 부통령 후보,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의원, 그리고 랜드 폴(Rand Paul) 상원의원을 들 수 있다.
 
  올해 42세의 폴 라이언은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정책통 의원이다. 그가 옹호하는 감세정책은 논란거리지만 의료보험제도 개혁안은 어스킨 볼스(Erskine Bowles)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진보성향 정치인과 학자들로부터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라이언은 ‘따뜻한 복지개혁론’을 역설했다. 그는 고령의 어머니를 소개하며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고령층뿐 아니라 젊은 층이 혜택을 계속 받게 하기 위해서는 복지 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르코 루비오의 올해 나이는 41세. 쿠바 난민 출신인 그는 짧은 의정활동 기간 굵직한 법안들을 발의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아울러 빼어난 연설능력을 과시해 왔다. 대회에서 롬니 소개 연설을 맡은 그는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입증했다. 그는 <누가복음> 12장 48절을 인용하며 미국인으로서의 자긍심, 미래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의 연설은 레이건의 연설문 작성 비서였던 페기 누넌(Peggy Noonan) 등 거물급 인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주목받은 줄리언 카스트로 샌안토니오 시장(왼쪽)과 그의 쌍둥이 동생인 조아퀸 카스트로 텍사스주 하원의원 후보. 두 사람은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로 부각됐다.
  2008년에 이어 올해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론 폴(Ron Paul) 하원의원의 아들인 랜드 폴은 공화당 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 분파(分派)를 이끌어 갈 인물이다. 공화당 내에서 자유지상주의 분파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대외(對外)정책과 관련해 고립주의(孤立主義)에 가까운 정책을 지지하는 등 당 주류(主流)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입장들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는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자유지상주의가 고학력 젊은 층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랜드 폴을 통해 청년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기반을 넓히려 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미래는 진달을 비롯한 이들 신세대 주자들 간의 경쟁과 협력 속에서 구현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샤를로트시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신성(新星)들이 등장했다. 미국 언론의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인물은 줄리언 카스트로(Julian Castro)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시장이다. 올해 38세인 그는 쌍둥이 동생인 조아퀸 카스트로(Joacquin Castro) 하원의원 후보와 함께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히스패닉계인 카스트로는 1994년 이래 공화당의 철옹성으로 변한 텍사스에서 공화당의 히스패닉계 정치인들에 맞서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대할 적임자로 손꼽힌다.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인 코리 부커 뉴어크 시장과 조지프 케네디 3세(오른쪽).
  한편 전당대회에서 당강령작성위원장을 맡은 코리 부커(Cory Booker) 뉴저지주 뉴어크 시장도 민주당의 기대주다. 2006년 37세의 나이에 시장이 된 그는 많은 이로부터 ‘재기불능’이라고 여겨졌던 뉴어크에 새 생명을 불어 넣었다. 지난 3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수상이 뉴어크를 직접 방문할 정도로 부커의 시정(市政)운영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아 왔다. 덕분에 스탠퍼드대와 옥스퍼드대, 그리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매사추세츠 주지사 듀발 패트릭(Patrick) 등과 함께 민주당의 대표적인 신세대 흑인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끝으로 전당대회에서 고(故)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기리는 연설을 한 조지프 케네디 3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32살인 그는 아직 중앙정치 무대에 데뷔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바니 프랭크(Barney Frank)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초선(初選) 의원이 되기 위해 도전 중이다. 하지만 이변(異變)이 없는 한 케네디는 민주당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재목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많은 미국인이 진한 애착을 느끼는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를 배출한 케네디 가문의 일원일 뿐 아니라 탁월한 두뇌와 두드러진 외모, 놀라운 대중 친화성을 지닌 타고난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의 미래’는 어디에?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차세대 정치인들이 활발하게 충원(充員)되는 미국의 정당정치의 모습은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르다.
 
  우리의 경우 보수주의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세대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 새누리당의 경우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正體性)마저 의심받고 있을 뿐 아니라, ‘박근혜 이후’를 책임질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의 40대 정치인들은 성장환경이 크게 달랐다. 우리나라 소장파(少壯派) 정치인들은 롤 모델이나 멘토가 없었다. 청년 보수정치 활동을 할 기회도 전무(全無)했다. 다양한 보수주의를 지적(知的)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 역시 극히 드물었다.
 
  민주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당장 자기 당에서 선출하는 후보보다 장외(場外)의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교수에게 더 큰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상황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40, 50대 정치인들이 민주당에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40대 주자들과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한국의 정당들도 지금부터라도 ‘한국의 진달’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뚜렷한 이념적 정체성과 능력을 가진 젊은 정치인들에서 계단을 밟아 가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2012년 미국 공화-민주 양당 전당대회가 우리 정치권에 던지는 화두(話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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