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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계화, 代案은 없는가 9

‘세계시민’으로 다시 서기

글 :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글 :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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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玄鎭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자원봉사의 활성화는 바람직한 세계시민 양성의 첫걸음이다. 사진은 2007년 태안유조선 사고 당시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
  남미 현장에서 바라본 세계시민의식의 현주소
 
  지난 7월 말 남미의 상파울루대학교(USP)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UBA)를 교류·연구협력 논의와 세계사회학회 참석을 위해 열흘 일정으로 방문했다.
 
  정열과 삼바의 고장, 상파울루는 1000m 고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리가 머문 호텔 주변은 흡사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언덕 위에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는 가게들을 따라 걸어가는 여성들은, 가을 날씨이지만 겨울 분위기를 한껏 내고 싶어 두툼한 겨울 코트와 부츠로 무장하고 바삐 움직였다. 분명 브라질의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실 브라질은 1인당 국민소득 1만717달러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올림픽 동시 개최라는 빅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를 한껏 품고 있다. 대서양 해저 석유에너지 개발을 통한 석유 수출국, 사탕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에너지 생산 등 에너지 위기에 대해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 역시 그 성장 안에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는 홈리스(homeless), 인종에 따른 사회적 차별 및 빈부격차, 하수처리와 같은 도시기반 시설의 미비, 수도 브라질리아 개발에서 드러난 나이브한 계획모델의 한계, 도시와 지역의 경제격차 등과 같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상파울루대학은 최근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한국학 교수를 채용하고 한국학(언어, 문화를 넘어선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 전공학생도 모집하면서 한국과의 교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례로 근래에 상파울루대 학생들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공부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한국학생 중에 브라질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생소한 포르투갈어와 지리적인 거리가 큰 장애물이 되어 젊은 학생들이 브라질로 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
 
 
  우울한 부에노스아이레스
 
  8월 1~4일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열린 세계사회학회의 주제는 ‘사회정의와 민주(social justice and democratization)’로 개최국가의 역설적 모습을 대변하는 제목이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오월광장이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겨울 날씨 속에 내리는 부슬비가 사람들을 잔뜩 움츠리게 하였고, 만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우울한 도시 분위기는 2001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되는 인플레이션과 불안정한 정치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데서부터 아르헨티나의 불신사회를 경험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택시를 타지 않을 경우 예상치 못한 추가운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경제시스템에서 외국제품을 구입하기 위한 미국 달러의 가치는 높아졌으며, 그 결과 달러환전(cambio)을 요구하는 모습을 도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귀국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겪은 출입국심사 과정은 현지의 치안상태, 범죄관련 인신매매(human-trafficking)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무려 1시간이 넘는 이중삼중의 출입국 심사과정으로 인해 출발 직전에 가까스로 탑승하는 서스펜스를 경험하고 말았다.
 
  이를 반영하듯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열린 세계사회학회의 주요 세션에서는 다수의 남미 학자들이 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저항, 지구정의를 위한 전지구적 연대활동, 그리고 고통 받는 원주민들의 인권현실을 고발하는 매우 공감이 되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부패 관료와 포퓰리즘 정치로 신음하는 아르헨티나
 
활기찬 브라질과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로 사회 전체가 가라앉아 있었다.
  학회 참석 후 잠시 짬을 내어 시내 곳곳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거리의 화려한 건물은 과거 경제대국의 면모와 유럽 이주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했다. 분명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는 별칭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화려한 건물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여기저기 드리워져 있었다.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노란색 축구경기장은 빈민촌에 위치해 있었고, 그곳을 따라 흘러가는 강은 가장 오염된 강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월광장 앞에서 과거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던 어머니들의 저항 모습을 상상하며 광장 여기저기를 거닐었다. ‘오월광장어머니회’는 1994년 6월, 지구 반대편의 한국을 방문하여 민주화 운동 중에 비슷한 아픔을 겪은 가족과의 만남을 가졌고, 인권단체들과의 강한 연대감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화를 달성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아르헨티나는 아직도 부정부패로 물든 관료와 포퓰리즘적 정치에 신음하고 있다.
 
  거리에 붙어 있는 수많은 정치구호와 벽보는 과거 20년 전 한국의 민주화 운동 모습 그대로였다. 한 가지 아쉬운 소식은 최근 오월광장어머니회도 불투명한 자금운영으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울림을 내기 위해서는 구호에 의존한 운동정치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대안에 기초한 공감과 타협정치가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아래로부터의 정의에 대한 요구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신에 정당들이 표만을 의식한 위로부터의 포퓰리즘적 복지정책들이 경쟁하는 형국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경제성장, 민주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협에 대한 대응과정 등에서 한국사회에 과거·현재·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지역이다. 이제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지역에 대한 관심, 열정적 연구, 그리고 호혜적 협력을 모색하는 다양한 채널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이다. 만약 한국 시민사회가 지리적인 거리나 언어장벽을 핑계로 남미 지역과의 연계활동을 간과한다면 세계시민의식 제고에 대한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동시에 시민사회는 정부나 기업에 항상 뒤처지고 말 것이다.
 
  실례로 지난 6월 중순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유엔환경회의’에 대해 시민사회의 관심과 참여는 10년 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정상회의(WSSD)보다, 더 나아가 20년전 리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보다 훨씬 더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전지구적 이슈에 대한 정보는 어느 때보다 빠르고 쉽게, 그리고 충분히 얻을 수 있어 국제행사에 대한 정보욕구는 쉽게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시민의식 제고에 가장 필요한 공감, 헌신, 연대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현장체험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제한적인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지난 6월 중순에 개최된 리우+20에 대한 시민사회의 활동을 성찰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리우+20회의는 ‘그들이 원하는 미래’
 
  지난 6월 중순 브라질 리우에서는 지속가능개발회의가 개최되었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The Future We Want)>라는 공식문서를 결과물로 내놓았지만 우리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번 리우+20 회의는 지난 2년간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정부 간 협상을 마무리하는 유엔회의였다. 양적으로 볼 때 5만명에 달하는 참가자, 120여개 국가의 정상(미국, 영국 정상은 참석하지 않음)들과 유엔기구의 최고 책임자들이 참석한 최대의 국제 이벤트였다. 그러나 회의 내용을 면면이 살펴볼 때 그것은 ‘속빈 강정’ 같은 함량미달의 국제회의라는 것이 곧 드러나고 만다.
 
  이런 이유에서 시민사회는 이번 리우+20회의를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미래(The Future They Want)’라고 비판한다.
 
  20년 전 리우 회의에서 보여주었던 시민사회의 관심과 열정이 정부나 기업과 비교할 때 크게 시들었음을 참여규모나 준비과정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주제의 참신성이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국 시민사회의 국제연대 역량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민사회 스스로 새로운 정치기회 구조의 변화에 자기혁신을 통한 대응보다는 아직도 과거 운동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동안 유엔이라는 국제정책결정 공간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한 결과 반복되는 기후변화협상의 실패과정을 목도하면서 유엔에 대해 크게 실망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국제정치 맥락을 너무나도 단순하게 혹은 순진하게 바라보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국제정치는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 충돌과 조정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결과물을 내놓는 지난한 과정이다. 시민사회가 기대하는 것처럼 국제정치의 의사결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대한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그것이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혹자는 기후변화관련 협상회의를 단일 종목의 월드컵이라고 부르는 반면에 리우+20 회의는 전 종목이 참여하는 올림픽과 같다고 비유한다. 즉 종목별로 보는가 아니면 전체 종목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내리는가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결과를 단기 혹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그 평가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경제쪽으로 무게 중심 이동
 
  혹자는 유엔회의 무용론에 빠져 리우+20회의도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낫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에 빠지기보다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리우+20회의의 목적과 성과에 대한 평가를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리우+20의 목적은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확인하고 과거 지속가능발전 관련 국제적 합의사항 이행을 평가하며 새로운 글로벌 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주요 의제는 ‘빈곤퇴치와 지속가능발전 맥락의 녹색경제’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제도적 틀’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 중에 시민사회가 주목한 부분과 각각에 대한 평가는 아래와 같다.
 
  첫째, 녹색경제 개념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녹색경제는 지속가능발전 달성을 위한 주요 수단 중 하나로 엄격한 규칙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정책적 선택의 하나를 의미한다.
 
  둘째, 제도적 틀의 핵심은 유엔경제사회문화협의기구를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을 검토 및 논의와 권고를 위한 중요기구로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며,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을 위한 10개년 계획을 채택하는 것이다.
 
  넷째,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행수단으로서 재정, 기술, 능력제고, 무역의 중요성, 공약등록 등을 논의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회의 결과물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구적 복합위기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체계적인 진단이 부족했고, 대안제시 없는 당위적 차원의 추상적 주장만이 반복됐다. ‘녹색성장’ 프레임의 부상은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경제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제도적 틀 분야의 최대 관심사였던 ‘지속가능발전이사회’ 신설은 실패했지만 유엔환경계획(UNEP)의 전문기구로서의 강화를 인정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지난 3월 리우+20 한국민간위원회 기자회견. 리우+20에 대한 관심은 20년 전 리우회의 때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지구정의
 
  이처럼 리우+20는 지구시민사회가 염원했던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1992 리우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경제·사회·환경의 축을 균형적으로 통합하는 진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비전과 구체적 행동계획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를 노정했다.
 
  이것이 지구시민사회에 던져주는 과제는 무엇일까? 지구시민사회는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관철해야 할 가치와 원칙, 규범, 방향성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될 경우 제도의 제한된 프레임에 발목이 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최근에 지구시민사회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구정의’라는 마스터 프레임은 다양한 운동부문과 지역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구정의 프레임 안에 녹아 있는 핵심가치는 우선 형평성(equity)의 문제이다. 이 형평성은 세대, 그리고 인간과 자연 관계로 확장되며, 이를 위해 다른 종류의 경제, 배움과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 윤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요청된다.
 
  다음으로 지역주의(localism)의 문제이다. 경제체제의 지역화, 거버넌스의 탈중앙화,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새로운 질서가 되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전지구적 흐름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지속가능한 소비나 생산, 지역 생태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며 이것이 오늘날의 복합위기를 극복하는 철학적 기초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시민 활성화의 문제이다. 초국적 사회운동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을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운동을 견인할 수 있는 세계시민의 존재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어려서부터 전지구적 관점의 지역 내 정의와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경험적으로 체득하여 궁극적으로 윤리적 경제와 소비활동을 견인할 수 있는 가치관을 뼛속 깊이까지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마감을 준비하는 세계시민의 과제
 
  인류재앙을 상징하는 총체적 난국이 밀려오고 있다. 오늘의 세계가 ‘복합 위험(complex risk)’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자원위기―유가폭등, 식량파동, 물, 유전자원, 산림, 어족 및 야생자원, 비옥한 토양 등―, 그리고 미국 월가의 붕괴, 전 세계적 경기침체, 고용 없는 성장과 같은 거대한 위기적 상황들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한 나라의 경계를 넘어선 환경위기, 자원위기, 경제위기가 점점 더 강하고, 빠르고, 크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여파가 끝나지 않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 주요국가의 재정위기는 향후 세계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동안 세계화를 지배해 온 논리는 신자유주의이다. 위로부터의 세계화를 주도한 신자유주의는 민영화, 자유화, 그리고 탈규제라는 3대 정책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핵심으로 본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이 신자유주의는 정부는 개입을 줄이고 시장기제에 맡겨야 하며, 이를 위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발전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근간은 자유무역과 해외투자 원칙이다. 물론 부의 편재와 권력의 집중과 같은 분배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이는 경제발전을 통해 차후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입장은 점차 그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 복합위기로 인한 장기비상시대, 그리고 불의(injustice)가 확대되고 있는 반면, 개별국가의 규제 및 정책개입 능력은 제한되었고, 매스미디어는 초국적 자본가계급(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의 강력한 로비활동에 의해 종속되는 상황에서 지구적 차원의 민주주의 달성은 요원해지고 있다. 지구민주주의의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구민주주의 달성은 바로 지구시민사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큰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공신화에 매료된 채, 한국사회는 복지, 인권, 환경, 안전, 참여, 상생 등을 아우르는 ‘정의’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현실을 돌아볼 때, 기후변화, 에너지고갈, 식량위기에 대한 체감 수치는 아주 낮으며, 다른 나라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 국토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 국책 개발사업이 정권에 무관하게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단 말인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한국사회의 복합위기에 대한 대안 찾기라는 목표 아래 우리 현실을 종합적이고도 거시적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이다. 이것은 결코 일국적 사고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전지구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한국 시민사회에서 복합적 위기에 대한 문명전환을 위한 모색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생태사회적 발전(eco-social development)’을 지향하는 시도는 대안사회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분배와 관리를 담당하는 국가, 교환과 효율을 지향하는 시장의 실패가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호혜와 협동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대안모색 운동은 국가통치의 수동적 대상에서 벗어나고, 시장주의재편을 극복하며, 지역을 중심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창조적 실험을 통해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또한 최근에 정부, 학계 및 시민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부상도 중요하다. 사회적 경제와 지역중심의 호혜적·순환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실험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협동조합기본법의 통과와 더불어 시행령이 만들어지면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결합될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이 마련된 것도 이러한 운동적 실험을 가능케 하는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이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사회 활동가가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에 대안 경제모델을 발굴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구체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세계시민은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 체험이 필수
 
  세계화 혹은 전지구화에 따른 지구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인권, 환경, 대안정책, 국제협력, 반(反)신자유주의, 여성, 농민 등의 부문과 지역의 경계를 수직 혹은 수평적으로 넘어선 다양한 연대활동과 수렴현상이 더욱 빈번해지고 강화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지구시민사회에 필요한 사람, 즉 국경을 넘어서 전지구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활동하는 세계시민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실천적 과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세계시민은 결코 한두 번의 실천적 경험이나 지식 차원의 학습만으로 쉽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시민의 이상형을 그린다면 아마도 미국 정치사회학자인 태로우가 제시한 ‘풀뿌리 세계시민(rooted cosmopolitan)’이 가장 근접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전문가이면서도 국제연대활동 메커니즘과 글로벌 프레임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역에 적용 및 응용할 수 있는 시민활동가이다.
 
  이러한 이상형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다양한 시민활동―학습, 자원봉사, 회원가입, 캠페인 참여―과 일국을 넘어서는 국제연대 활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전지구적인 프레임을 갖고 지역의 문제를 바라보기 어려우며, 지역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지구적 차원의 협력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한국 시민사회운동단체는 풀뿌리 세계시민 만들기 과제를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세계시민이 없으면 결코 운동의 전지구화 과제는 쉽게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준비된 세계시민이 다양한 영역으로 옮겨 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다.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지구정의라는 공공선을 추구하도록 되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시민사회가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실천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원봉사 체험의 시간은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통로(시간이자 공간)가 된다. 어려서부터 자원봉사활동 경험은 주어진 미션을 단순히 수행(acting)하는 것을 넘어 보다 능동적으로 공공선과 윤리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실천(doing)하는 습관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능동적 실천경험을 갖춘 자원봉사자는 사회적 공공선을 지향하는 다양한 시민사회 영역에 적극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구시민사회를 책임질 세계시민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국가, 학교, 기업, 국제기구 등이 자원봉사자를 지속적으로 동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장기적으로는 제도화해야 한다. 관 주도의 교육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하다.
 
 
  시민사회운동의 세대간 간극 이어야
 
  다음으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사회협동조합을 견인할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다.
 
  과거 강한 시민사회운동 역사를 이루어 온 한국시민사회는 이제 세대 간의 간극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신세대 활동가는 선배들의 헌신성을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동시에 기성세대는 과거 경험에 묶여 헌신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후속세대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 신세대도 나름의 현실 고민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혐오하는 것은 과거 선배들의 운동방식인 이념정치 혹은 비선정치와 같은 투명하지 못한 위계적 운영방식이다.
 
  이들의 간극을 잇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공감정치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기존의 운동정치를 넘어선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발굴하기 위한 운동의 혁신과 변화 노력이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협동조합 건설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사회에만 국한된 과정이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의 연대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구시민사회를 견인할 세계시민에 대한 비전을 견지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대 간의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연하면 세계시민으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국제연대의 전문화가 필요하며 그 핵심에는 세대 간 계승, 청년세대의 중요성, 이념에서 대안으로의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연대활동을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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