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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계화, 代案은 없는가 8

移住 시대의 소수자 인권… 다문화 담론을 넘어 이주 인권으로 틀 짜기

글 :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글 :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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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玄鎭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2008년 8월 17일 이주노동자들이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강제추방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주의 시대
 
  사회 전 분야의 전 지구화 현상이 강화되면서 이주의 흐름도 규모, 범위, 속도(scale, scope, speed)의 측면에서 급격히 변해 더 이상 개별 국가나 지역이 다룰 수 없는 지구공동체의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다.
 
  WTO 중심의 세계무역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개방화, 자유화, 민영화-를 통해 국경의 담을 허물었고, 동시에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구, 자원, 상품, 자본, 지식, 문화의 이동은 속도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빨라졌다. 이주(migration)는 과거 정치, 경제, 군사적 사건과 결부된 특정 집단들이 부득이하게 진행한 일회적이거나 주변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동하는 일상적이고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역과 금융은 물론 문화, 지식, 정보, 환경, 그리고 테러에 이르는 다양한 초국적 흐름 속에서 인간의 이주 역시 전 지구화 과정을 추동하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상화된 형태를 이룸으로써 이른바 ‘이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제이주자의 추이는 이주시대로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965년 전 세계적으로 7500만명(세계 인구의 23%)에 이르던 국제이주자 수가 1975년 8400만명(21%), 1985년 1억500만명(22%) 수준으로 그 절대수치가 꾸준히 증가했으나 그 비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이 1990년대 들어 초국적 이주자가 급증하면서 2000년에는 세계 인구의 28%(1억7500만명), 2005년에는 전체 인구의 30%인 1억9500만명으로 그 수가 크게 늘었다. 2010년 현재 국제이주자 수는 2억1400만명으로 안정화되어 가는 추세를 보인다.
 
  주지하듯이 이주민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으로 전체 인구의 40%가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청년과 아동들의 이주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교육과 가족의 재결합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 이주현황을 주요 항목으로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제 이주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전 지구적 이주 구조의 변화 맥락 속에서 지역 외부로 이민을 내보내던 송출국의 지위를 가졌던 아시아의 위상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아시아 사람들의 이주 목적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향에서 가지지 못하는 경제적 기회를 찾아서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국적 이동이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1960~70년대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로 떠난 사람들, 1970년대 중동의 오일머니를 벌기 위해 중동 건설현장으로 간 노동자들이 그 예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쉽게 확인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정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노동력 수출 차원에서 자국민들을 세계 각지로 내보냈고 그들이 보내온 송금에 국가재정이 크게 의존하였다. 베트남도 개혁·개방 이후, 아시아의 노동력 저장고 역할을 자임하면서 이주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국제적 이주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송출국과 수입국 모두 이주자에 대한 보호나 지원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중개자 혹은 기업들의 이익만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결국 이주자들은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보호책도 없이 착취와 차별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말았다.
 
  이주자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미등록 이주자들의 인권문제이다. 수입국의 제한된 노동정책, 빈곤과 실업문제, 민간 중개업체의 비행, 범죄 집단의 개입, 이주에 동반되는 높은 비용, 까다로운 이주절차 등으로 미등록 이주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미등록 이주자는 현재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베트남, 중국 등지의 이주자들은 러시아, 한국, 일본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 국가에서 일본, 한국으로 이주하는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남아시아의 네팔, 방글라데시인은 미등록 상태에서 인도를 거쳐 중동이나 유럽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으로의 이주민 135만 시대
 
  이주민 135만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의 이주 상황은 어떠한가?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이주자 그리고 난민/새터민/유학생 등을 중심으로 그 추이를 살펴보자.
 
  먼저 이주노동자의 경우, 2011년 4월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135만4414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불법체류 외국인은 16만8545명으로 전체 외국인 중 12%를 차지하고 있다. 국적별 이주자 수를 살펴보면, 중국(66만7488명·한국계 44만7601명), 미국(13만3576명), 베트남(11만1495명), 일본(5만2787명), 필리핀(4만9071명) 순으로 나타난다. 이 중 불법체류자는 중국(7만3222명·한국계 2만1437명), 베트남(1만6296명), 태국(1만2657명), 몽골(1만751명) 순이다. 등록된 외국인들의 거주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과 경기 수도권에 60%(57만7357명/96만201명)가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의 경우 그 수가 2011년 4월 현재, 14만3646명에 이른다. 물론 여성이 86.7%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이민자의 국적은 중국(46.5%), 베트남(25.1%), 일본(7.4%), 필리핀(5.4%) 순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혼인 귀화자는 5만2259명에 머물고 있다. 이들의 거주 지역은 경기(3만8492명), 서울(3만2020명), 경남(9096명), 인천(8105명), 충남(7250명) 순으로 결혼이주자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 주민 자녀는 전체 이주민의 11.9%인 15만1154명이며, 이는 10년 사이에 23.9%가 증가한 수치이고, 이 중 대부분이 초등학생 이하(86.8%) 어린 자녀들이다. 물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와 동반 및 중도입국 아동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이다.
 
  셋째, 이주민 중에 난민, 북한이탈주민(새터민)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은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이지만 한국 사회의 사회통합 정도를 측정할 때 중요한 항목이다.
 
  한국의 난민현황은 2011년 4월 현재, 총 신청자 3156명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243명, 인도적 체류는 131명, 불인정은 1643명, 신청 철회는 586명, 그리고 심사대기자는 523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새터민’으로 불리는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는 2011년 1월 현재, 2만539명으로 집계되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외국 유학생은 현재 8만8670명으로 나타났다.
 
  20년도 채 이르지 않은 이주민의 유입 경험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3% 수준까지 증가한 이주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과연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소수자 인권의 측면에서 보다 성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이주자는 이중, 삼중의 차별과 침해를 겪고 있다
 
  이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이주자의 인권현황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어떠한가?
 
  대표적인 초국적 인권운동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이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이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는가에 대해 2007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실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앰네스티가 제출한 보고서 각각의 제목은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와 “일회용 노동자-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이다.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앰네스티는 한국의 이주자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처우를 받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일회용 취급을 받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더불어 시급한 개선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였다.
 
 
  한국, ‘이주노동자 국제협약’ 未가입
 
  요즘 지방의 중소도시를 방문할 때 우리가 쉽게 마주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지역 노인과 외국인 노동자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다양한 생산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8년차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까지 유엔 7대 국제인권협약 중의 하나인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 및 비준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국제법 및 국내법의 부조화(mismatch) 상황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실시된 불법체류자 강제단속 과정에서 단속을 피하려다 이주노동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2011년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인 파업에 대해 정부는 이주노조 집행부를 대상으로 표적수사를 진행했고, 핵심 파업노동자를 구속하였다. 이는 분명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국제인권 규범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특히, 이주여성의 경우는 남성들보다 이중, 삼중의 차별과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결혼중개업자의 관심이 이주여성이 올바른 결혼을 통해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결혼매매의 대상으로 이주여성을 상품화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물론 국제결혼을 한 한국 남성의 결혼의 고귀한 정신을 망각한 채 인종, 피부색을 이유로 배우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반인권적 태도도 심각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제는 단순한 가족유지 혹은 한국사회 동화에 초점을 맞춘 국제결혼 방식에서 벗어나 동등한 권리를 소유한 인간으로서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소위 ‘인권 프레임’에 기초한 제도 및 정책개발이 절실하다.
 
 
  少數者 인권에 대해 이중잣대
 
  제도·정책 변화와 더불어 소수자에 대한 국민의 인권의식 및 태도 변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소수자를 불쌍한 사람들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소수자의 개념은 소수(少數)라는 뜻에서 구성원의 수가 적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인구는 다수(75%)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정치, 경제적 위상은 낮으며 소수 백인으로부터 심각한 차별을 받았었다. 소수자임을 결정하는 잣대는 수의 적고 많음이 아니라 편견과 차별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소수자들은 종종 인종과 피부에 따라 구별되고, 권력관계에서 약자에 위치하며, 그 결과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로 차별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들 안에 소수자로서의 집단의식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편견과 차별을 감수하고 있는 한국의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국민인권의식 실태조사 2011’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권리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식은 여전히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과 장애인처럼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에 대해서는 비교적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외국인 노동자 및 그 가족의 권리에 대해서는 찬반 비율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 가족의 자유로운 국내 입국 허용에 대해서는 찬성(47.7%)과 반대(49.6%)가 비슷하게 나타났다. 또한 난민 신청 절차의 간소화 및 적극 지원에 대해서는 찬성(33.2%)보다는 반대(62.1%)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45.5%)과 반대(52.3%)로 비교적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담론은 2006년 이후 정부가 다문화주의를 공식 정책기조로 선언함으로써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개선보다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다문화 담론이 지배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런 견지에서 한국의 다문화 담론의 명암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문화 담론의 명암, 그 위선을 벗어버리자
 
  사실 다문화주의의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사단법인 ‘국경없는마을’은 다문화주의를 “상이한 국적, 체류자격, 인종, 문화적 배경, 성, 연령, 계층적 귀속감 등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향유하고, 각각의 특수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다원주의적인 사회, 문화, 제도, 정서적 인프라를 만들어가기 위한 집단적 노력”으로, 매우 이상적 차원으로 그리고 있다.
 
  대표적 다문화 학자인 킴리카(Kymlicka)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와 지지가 선결된 조건에서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의 ‘차이의 정치’(politics of difference)에 대한 제도적 보장”으로 다문화주의를 비교적 좁게 정의하였다.
 
  김남국 박사는 다문화주의를 “상호존중, 합리적 대화, 정치적 권리라는 세 가지 요건의 실현을 통해 시도되는 민주주의 심화 프로젝트”라고 특징지으면서 민주주의 구현의 맥락에서 소수자의 인권과 주체화라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런 다문화 담론을 토대로 한국의 다문화 의식은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多문화는 껍데기”
 
2012년 6월 12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다문화가정 모국방문 후원사업 참가자들이 출국 전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근 수행된 다문화 관련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은 다문화에 대해 여전히 추상적 차원에서만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한 조사에서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인가’라는 질문에 무려 40%가 부정적으로 응답한 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다문화에 대한 아주 추상적인 답변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동일 응답자가 유사 질문에서 이주민에 대해서 매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주민은 ‘불쌍한 사람, 일방적인 수혜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이 강하게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주의와는 배치되는 태도가 자주 발견된다. 우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문화는 우리의 본질과 충돌하지 않은 채 그저 주변에만 머물면 된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문화 사회가 지향하는 혼용, 상호침투, 공생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다시 말해 “머리로는 다문화를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타문화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추방과 차별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다문화에 대한 이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주민·다문화 지원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대다수의 활동가가 “한국의 다문화는 껍데기만 다문화”라고 비판할 정도이다. 그 비판의 핵심은 바로 한국의 다문화 정책 혹은 사회통합 정책은 ‘동화주의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주자에 대한 차별이 강하게 존재하며,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정부 주도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이주민의 목소리를 정책들에 녹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주자·다문화 운동
 
2008년 2월 11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회원들은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주기를 맞아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부 주도의 다문화주의를 낳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이주자·다문화 운동의 발전과정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의 이주자 및 다문화 운동은 크게 네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990~93년까지 ‘운동의 태동기’다. 이 시기에는 1992년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담소와 쉼터가 개설되었으며, 그 활동은 이주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 활동에 머물렀다.
 
  둘째, 1994~2000년까지 ‘운동의 발전기’다. 이 시기에는 이주자 지원 활동이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4년 이주노동자 13명이 경실련 강당에서 농성을 한 것이 촉발점이 되어 이것이 1995년에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로 이어졌다. 이 단체는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면서 고용허가제와 귀환 프로그램을 대안으로 제안하였다.
 
  셋째, ‘운동의 분화기’인 2000~2003년까지다. 2001년에 ‘이주노조’가 드디어 결성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종교, 시민사회단체가 긴밀하게 연대하였다. 또한 2000년에는 ‘이주여성인권연대’가 설립되었고, 2004년에는 ‘이주노동자인권연대’로 이주노동운동이 지속적으로 분화하였다.
 
  이 시기에는 이주자의 노동허가와 미등록자의 합법화를 추구하였고 시민권 및 다문화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직접행동을 통해 정부를 강도 높게 압박하였다.
 
  마지막으로 2004년~현재까지의 시기로 소위 ‘운동의 제도화기’를 맞고 있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실시와 2006년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 선포라는 새로운 정치기회 구조를 마주하면서 이주 및 다문화 운동이 급격한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존에 종교 및 시민사회단체가 주도가 된 이주민 지원 활동이 민간영역에서 국가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운동이 아닌 사업의 형태로 그 주체가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정부 혹은 지자체가 주도하는 사업을 시민사회단체가 위탁받는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 의제도 시민권과 다문화라는 담론을 중심으로 논의되었지만 주요활동이 정부의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거나 정부 프로그램에 맞추어진 사업을 대행하는 것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주민 혹은 다문화 가정은 사업에서 쉽게 주변화되거나 대상화되는 문제를 노정하고 말았다. 이제 이주 및 다문화 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성격이 퇴색되고 결혼이주자 또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활동으로 제한되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정책을 그들의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순응하고 자신의 권리가 어느 정도 침해되는 것을 잘 인내하는 소위 ‘성실한 노동자’를 양산하는 정책으로 그 방향을 바꾸었다.
 
 
  온정주의 속 同化정책
 
  사실 숙련 노동자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기업과 고용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기존의 ‘단기순환원칙’을 수정하여 기업의 요청을 들어주면서도 순응적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기존의 3년만 허용했던 체류기간을 국적 취득 신청이 불가능한 시기, 즉 최대 4년10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하였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이 기간 동안 한번도 사업장을 옮기지 않은 ‘착하고 성실한’ 노동자라면, 한국을 떠나 다시 돌아올 경우 4년10개월간 체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시 말해 이주노동자의 인권보장은 최소화하고 한국 사회의 지배집단 혹은 기업이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하는 자들에게만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위 ‘온정주의적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인권, 지원, 서비스, 온정주의, 시혜 등의 개념이 정확한 이해 없이 무비판적으로 남용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도 이주자들이 한국인이 이미 구축해 놓은 가치나 문화 속으로 동화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주자들에 대한 ‘인권’과 ‘인정’의 정치는 사라지고 있다. 이것은 무늬만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고 그 본질은 단일한 가치에 기초한 매우 경직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주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풍부한 문화를 경험하여 새로운 문화적 발전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다문화주의에 대한 착각 혹은 위선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위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일까? 바로 인정의 정치, 차이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 위에서 공존의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인정의 정치학’이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곧 나를 인정하고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상대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는 고유의 문화를 강조하며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문화 간의 소통가능성과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문화 보편주의나 상대주의에서 벗어나 ‘인정의 정치학’, ‘차이의 정치학’을 구현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다문화 담론을 넘어선 보편적 인권 프레임을 학습하는 것이다.
 
 
  인권 프레임으로의 재사회화 필요
 
2012년 7월 4일 군포시 여성회관에서 열린 결혼이주민여성 말하기대회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가족들이 입에 볼펜을 물고 한국어 발음 연습을 하고 있다.
  인권 프레임으로의 재사회화 과정은 이주자들의 인권 현실을 올바로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주자 인권 현실을 노동권과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먼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그 침해 수준이 심각하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2010년 ‘이주인권연대’가 현지 실태조사를 통해 소개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유형은 아래와 같다.
 
  이주노동자의 입국 비용은 평균 2635달러이다. 근무내용이 입국 전 계약서와 다른 경우가 60% 넘게 나타난다. 하루 평균 11시간 일하고, 월 116만원을 받는다. 계약서를 이해하고 입국한 이들은 30%에 불과하다. ‘정기적 건강검진’은 27%, ‘이해할 수 있는 안전교육’은 26.8%가 받고 있다. 산업재해를 당한 세 명 중 한 명은 본인이 치료비를 지불하고 있다. 차별적 대우를 경험한 사람은 응답자의 34%, 언어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응답자의 35.8%, 폭행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응답자의 10.5%가 있다고 답하였다. 이들의 주거상황을 보면 응답자의 60% 이상이 회사 내 방이나 가건물(회사가 비용을 부담함)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한국 이주과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브로커들에 대한 사기가 반복되고 있다. 한국어능력시험제도와 추첨방식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비용이 크며, 시험대행기관의 투명성 또한 부족하다. 영세사업장 근무나 일용직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 부재로 인한 보험 미가입과 산재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주자 자녀들과의 분리에 따른 가족해체 위험이 심각하며 자녀들의 일탈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의 전환과 같이 제도적 개선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이주민의 기본적 권리나 노동조건, 체류의 안정성, 심지어 인종차별과 같은 반인권적인 행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침해 실태를 살펴보자. 2008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주여성들은 결혼유입과정, 부부권력관계, 부부싸움, 가정폭력, 이혼, 시댁과의 갈등, 경제주도권 등에서 심각한 권리침해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들은 결혼 후 가부장제적 결혼생활로 인하여 생활비 및 가정경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의사를 전혀 개진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런 이유로 자녀양육 및 교육, 취업 및 이직 결정, 친정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에 대해 남편과 평등한 관계로 의견을 나눌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이 저항하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게 될 경우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가정폭력이 발생하게 된다. 조사자 중에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22%나 되며, 그중에 30%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참는다고 답하였다. 이처럼 경제적 종속성이 지속되면서 여기에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차이가 더해질 때 이주여성이 경험하는 인권침해는 몇 배로 증가하게 된다.
 
 
  이주자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지원해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권 프레임에 기초한 다문화 사회 정책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사회적 권리가 확보되지 않은 채 단순히 문화에만 초점을 맞춘 사회적응 프로그램이나 지원정책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소수자 권리를 주창하는 입장에서는 ‘다문화 사회’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다문화 정책이 문화에만 초점을 맞춘 채 그것을 지탱해 주는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다문화 정책과 슬로건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쉽다. 다양한 문화의 존중과 사회적 차별의 철폐가 함께 진행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는 소수자들이 자기 문화를 골방에서 누릴 수 있게 허가해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떳떳하게 자기 문화를 누릴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그들이 스스로 고유의 커뮤니티를 조직화할 수 있는 제도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문화 사회는 단순한 시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 학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인격적으로 평등한 주체들이 구성하는 다양성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 과정, 재사회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다문화 정책은 지나칠 정도로 ‘관 주도의 제도화’ 경로에 들어선 모습이다. 정부 주도의 제도화 흐름 속에서 이주 및 다문화 운동이 주도권을 상실하고 그 힘이 약화되고 있다.
 
  이것을 이겨낼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이주자 스스로 당당히 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조직하고,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주자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이방인이 아니며 가족이고 이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인권 프레임에 기초한 이주자 바라보기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주자들의 커뮤니티를 인정해야 하며 그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성장 및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정비를 해야 한다. 우리 방식대로, 우리 생각대로, 우리 관점대로 그들을 이끌고 가려는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주자 문화에 대한 이해가 先行되어야
 
  그동안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이주자 지원 활동은 이주자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해줌으로써 이주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서 객체화되는 문제를 야기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주민의 객체화 및 대상화의 예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 관련 행사들이 이주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과정에서 주체화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동원의 대상이 되거나 온정주의적 대상이 되는 일회성 행사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주자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국가별 이주자 커뮤니티가 계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정부의 다문화지원정책에 쉽게 타협되어 제도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다문화 사회의 도래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이주자 단체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이주자들에게 필요한 정보, 규범,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채워갈 수 있는 전문적인 콘텐츠와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이주 및 다문화 지원 단체들은 한국어 교육, 상담, 복지 서비스 등 거의 유사한 사업을 중첩적으로 진행하였다. 이제는 새로운 주제와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각 단체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주자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의 눈으로 그들을 보기 시작할 때 이주자들이 한국 사회에 공존하는 데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인권 프레임에 기초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이주의 문제를 바라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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