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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중국의 엘리트는 어떻게 선발되는가

중국 미래지도자의 産室, 中央黨校

글 : 황효순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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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국가지도자, 당교 교장 겸임하며 차세대 인재들과 자연스런 교류
⊙ 교수 600명, 학기(4개월)마다 1600명 교육
⊙ 후진타오의 和諧사회, 베이징정신 등 시대이념의 생산 역할도
⊙ 공청당 교육기관인 團校와 유기적으로 연결, 체계적으로 인재양성

황효순
⊙ 47세. 한양대 사학과 졸업. 한양대 문학박사 (중국경제사).
    美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경제학 박사 (지역개발 전공).
⊙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연구실장 역임. 현 한양대 중국경제통상전공 교수,
    (사)중국지역개발연구원장, 북경대학교 협력기관 대외국제교육문화센터 이사장.
2012년 중앙당교 입학식 모습.
  1992년 8월 24일 이상옥(李相玉) 외교부장관과 첸지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중(韓中)수교가 이뤄진 후 한국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 개인사업자들이 대륙 진출에 거는 기대와 희망은 최고조에 달했다. 약 150년 전 영국의 외교사절들이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한 ‘모호한 허락’을 받은 즉시 영국 의회는 물론 맨체스터 공업지대의 많은 기업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24시간 3교대로 만들어 내는 영국 제품들이 중국대륙에 도착하는 즉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갈 것이라는 중국에 대한 무지(無知)가 결국 아편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한중수교 당시 중국을 이미 경험한 전문가와 학자들은 양국의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1992년 한중수교는 ‘최초의 대등한 외교관계 수립’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다시 ‘조공(朝貢) 관계’에 놓이지 않도록 중국에 대한 이해를 위해 힘써야 하며, 중국을 제대로 공부하는 인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중수교 20주년을 맞는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성과는 진전이 있었는가? 여전히 중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도대체 왜 우리를 무시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국 방송들은 중국의 실상과 중국의 실체를 규명하기보다는 약 2000년 전 한(漢)나라 시대의 농기구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농촌 다큐멘터리나, 자유민주주의적 정신에 위배되는 어처구니없는 부패와 권력남용, 선진문화 사회와는 거리가 먼 엽기적인 사건 등 자극적인 보도에만 여념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중국사람들의 지적처럼 중국의 낙후된 모습이나 전(前)근대적인 행태들을 보며 자위(自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의실에선 “교수님, 정말 중국의 화장실에는 문이 없나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의 중국 이해가 화장실 문화에 국한될 정도로 보잘것없구나’ 하는 생각에 중국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 자괴감마저 든다.
 
 
  중국인들의 ‘펑유(朋友)’
 
  이제라도 중국의 정치제도, 중앙·지방 관계, 대외인식, 경제정책, 법률, 세법 등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지역별로 다양한 특색을 지니고 있는 곳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시작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중국의 전 영역을 통제하고, 운용하는 중국공산당과 엘리트 간부군(群)에 대한 이해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마오이즘으로 통칭되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공산당의 혁명적 전사들이 어떻게 육성되고, 어떻게 선발되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중국을 이해하는 관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인 역시 우리와 동일한 문화권에서 유사한 사유(思惟)체계를 가진, ‘학습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쉽게 판단하는 일이 많다.
 
  중국의 엘리트 관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한두 번의 식사자리나 술자리를 거치고 난 후 쉽게 ‘펑유(朋友·친구)’를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정서와 달리, 중국인들의 ‘펑유’가 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김경일 교수는 “《논어(論語)》의 첫 구절에서 말하는 ‘먼 곳에서 찾아와 기쁨을 주는 벗’이 갑골문의 해석에 의하면 ‘혈족(血族)의 재물관리 집사’였다”고 해석한다(김경일 저,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 바다출판사, 2012). 우리를 먼 곳에서 돈보따리를 들고 오는 사람쯤으로 여기면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펑유’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야릇한 미소를 띠고 있는 중국 엘리트들에 대한 이해 없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마오이즘의 전위대 共靑團
 
  중국공산당의 엘리트 육성은 현재 정치적으로 그 입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정치집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집단은 바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배출한 공산주의청년단(이하 공청단)과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태자당(太子黨)’이다.
 
  공청단의 모체(母體)는 1922년 조직된 중국사회주의청년단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전위(前衛)세력인 청년당원(14~24세)을 ‘건강한 사회주의 전위대’로 키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이후 공산당과의 구별이 없이 조직만을 유지해 오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혁명의 전위대’를 구성한다는 목적으로 1957년 공산주의청년단이라는 명칭으로 재조직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전면적인 사회주의 혁명과업을 진행했다. 봉건적 잔재들을 일소하는 첫 번째 사업으로 사회주의 사상교육 및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혁명과업 수행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철저한 무산(無産)계급’이었다. 최고의 계급성분(무산자, 제국주의의 피해자, 봉건제도의 피해자)을 자랑하던 초기의 간부들은 대부분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육체노동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의도대로 자신들의 상처로 인해 혁명사업을 충실히 이행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회주의 개혁이 완성된 이후 무지(無知)한 이들은 오히려 사회주의 혁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
 
  이때 중국공산당 중앙이 이러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동원한 세력이 바로 ‘지식청년(知靑)’들이었다. 초기 공청단 출신의 지청들은 전국 각지의 공산당 위원회에 파견되어 현지지도와 감독을 통해 초기 혁명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요소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또한 중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던 중국 근·현대 일련의 사건들, 대약진운동, 인민공사(人民公社)운동, 문화대혁명이 전개될 때에도 중국식 사회주의 세례를 받은 무조건적 마오의 열렬한 숭배자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자본주의를 향해 달려가는 당권파(黨權派·走資派)를 공격하라고 하면 그들의 사령부(중국공산당)를 포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노동이 필요한 지역에는 마오의 한마디 명령만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가 노동을 수행하는 혁명의 전위부대였다. 이들은 당에서 내려오는 각종 학습자료를 통해 노동교화와 사상학습을 진행하였고, 인민들의 저항이나 불만에 몸으로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오의 신봉자들이었다. 이들 중 대다수가 20세 전후 나이가 되면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전국 각지의 사회주의 혁명과업의 추진자로 기용되었다.
 
 
  共靑團의 교육기관-團校
 
  1977년 문화대혁명이 종식됐다. 혁명 이전에 공청단을 이끌었던 후야오방(胡耀邦)은 제도를 정비하면서 소년아동(8~13세)으로 ‘소년선봉대’를 조직한다. 이로써 공청단의 조직은 명실상부한 사회주의 사상교육의 산실로 재탄생된다.
 
  현재 공청단은 약 7700만명의 단원을 거느리고 167만개의 전국 단지부(團支部)를 운용하고 있다. 단원 가운데 간부군으로 양성되는 인원만 16만7000명에 달한다.
 
  우리는 공청단의 조직을 공부하면서 이들에게 사상교육 및 중국식 사회주의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중국청년정치학원(이하 단교·團校)을 주목해야 한다. 단교라는 이름의 공청단 간부양성 학교는 중국공산당 간부학교인 중국중앙당교와 교수진, 운영내용, 교과목, 행정체계 등 전반에 걸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공청단 산하 교육기관인 단교는 현재 43개의 성시(省市)급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다. 각 기관 및 학교에는 공청단 위원회 소속의 교육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 4월부터는 ‘중국공산당의 지도이념에 따라 당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조직활동을 강화하라’는 지침에 따라 현급(區), 향진(街道), 촌(社區), 즉 지방의 기초 행정단위까지 청년교육기관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일반적으로 ‘청년정치학원’이나 ‘청년관리간부학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공청단 소속 교육기관에서는 실무교육도 병행하고 있지만, 주된 교육과정(약 70%)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관, 중국공산당의 건립과정, 현 중국공산당의 학습지침 등이다.
 
  공청단 소속으로 각급 학교에 파견되어 당의 실천목표를 수행하는 교원을 ‘푸다오위안(輔導員)’ 교사라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학급 학교의 단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모두 단교에서 교육을 마친 단원으로 구성된다. 현재 전국에 약 260만명의 푸다오위안이 활동하고 있다. 푸다오위안은 소속된 조직의 사상지도는 물론 엘리트군에 대한 직접지도와 추천 등을 통해 상급 기관인 단교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추천을 받은 간부후보군은 조직, 지방단위의 간부학교, 중앙의 단교를 통해 관리후보군으로 육성된다.
 
 
  중앙黨校
 
중국 엘리트의 산실 중앙당교. 6동(棟)의 건물 가운데 핵심 간부들인 특수반이 교육받는 곳이다.
  단교가 사회주의 전위대, 중국공산당의 후비대(後備隊)로 지칭되는 중국청년들의 사상교육과 공산당 예비군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조직이라고 한다면, 당교(黨校)는 명실상부한 중국간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 하이딩취(海淀區)에 위치한 중국중앙당교(이하 중앙당교)는 연구원을 포함한 교수진 약 600명이 학기별(4개월 과정) 단기과정을 통해 약 1600명의 간부학생을 지도하는 공산당 간부양성 교육기관이다.
 
  지금은 표면상으로 간부, 석박사 과정, 경제관련 졸업자, 기업간부 등을 입학시켜, 실무교육 및 사상교육을 시키는 교육기구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조직 및 교육과정, 교수진 등이 비교적 대외에 공개되어 있으며,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구체적인 운영 및 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당교에는 중국공산당 선전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고급간부과정(장관반, 청장급반, 현서기반)이 설치되어 있고, 인민해방군학교와 연계된 장군반, 공청단 단교와 연결되어 있는 ‘청년간부반’, 그리고 국가혁명원로의 자녀들을 관리하는 ‘특별영도자반’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특별반의 교수진 및 교과활동, 대외활동, 평가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당교의 교과 역시 마르크스레닌주의 기본사상,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사상,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기본사상 교육이 주요 교육내용이다. 일반과목으로는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및 기타(환경, 교육, 문화) 분야 현안을 국내외의 저명한 전문가들을 객원(客員)으로 초빙해 강의하고 있다.
 
 
  선전부·조직부에서 관리
 
  중앙당교가 중국공산당 중앙의 간부군을 육성하고 선발하는 교육기관이라면, 2700여개의 중국공산당 지방위원회 당교는 지방간부 육성을 위한 산실(産室)이다. 당교 역시 중국공산당의 통치력 강화를 위해 기층(基層)조직까지 교육과정을 설치하여 운영한다는 방침하에 지속적으로 지방당교를 건설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지방당교는 공산당 선전부 및 조직부와 이중적 관계를 맺고 있다. 당교의 교수진이나 교안(敎案)의 작성과 중점학습 내용은 선전부에서 관리한다. 당교의 입학생이나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들의 의견이나 보고서 관리는 조직부에서 맡고 있다. 지방당교에서 주목을 받을 만한 당간부 후보를 중앙당교에 입학시켜 공부시키는 업무도 당중앙 조직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의 간부 육성·선발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당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청년관리 후보군의 교육을 위한 단교와 당교를 통일된 기구에서 통일된 정책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이 교육기관을 통해 육성, 선발, 재교육될 중국공산당 간부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들 관리와 함께 중국공산당을 이끌 특수한 정치그룹, 즉 혁명원로의 자제들로 구성된 ‘태자당’의 관리후보군도 특수부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태자당’의 경우, 당중앙의 조직부에서 전 성장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모든 교육과정(학교선택과 교학활동 전반)을 관리하며, 당교의 특수부서를 통해 재교육시키고 있다.
 
  단교나 당교를 통해 육성된 일반간부와, 역시 같은 기관의 한 부서를 통해 관리되는 특별간부 후보생들은 모두 당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사상과 활동을 검증받는 절차를 밟는다.
 
  당교의 고급간부 과정은 특별한 시험을 통해 평가되지 않고, 당이 정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물론 실무교육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 정도를 역시 같은 방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법이나 국가기구보다 상위에 위치하면서 당의 통제권을 사수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사람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당의 결정과 방침에 얼마나 부합되는가를 평가받으면서 배제되기도 하고 선발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적 진로’의 바로미터
 
2009년 열린 중앙당교 교육세미나 모습. 청소년에 대한 사상교육에 대해 논하는 이 자리에서 필자는 한국의 국민윤리 교육에 대해 발표했다.
  베이징(北京)의 중앙단교(중국청년정치학원)나 중앙당교(중국중앙당교)에 입학하는 것은 한 개인이 중국의 당과 정부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는 증표(證票)이다. 특히 당중앙의 선전부와 조직부에서 관리하는 특수과정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 진로’(중국공산당원들은 이렇게 표현한다)가 얼마나 뻗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 때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당과 당의 최고지도자들이 지향하는 목표에 자신을 접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중국공산당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철저한 당 기층조직의 건설’이라는 사상학습과 혁명의 전통을 잇기 위한 정책들, 그리고 중국식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원리들에 대한 철저한 학습들이 매우 강도 있게 교육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의 학습정도는 사회주의 이념교육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 현안들에 대해서도 매우 철저한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간부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누구라도 단순 실무교육이 아닌 과목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이는 향후 상급 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미 관리로 재직 중인 당간부들은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정기적으로 자신의 사상과 정책에 대한 평가, 그리고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 일명 바오선(報身) 활동이라고 하는 이러한 자아(自我)활동 보고는 혁명 시기 옌안(延安) 정부에서 당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요구했던 ‘자아비판’ 보고와 성격이 같다.
 
 
  킨텍스의 중국국기 사건
 
  2008년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C) 대회에 공청단 소년선봉대(소선대) 소속 학생과 관계자 약 150명이 참여한 적이 있다. 소선대 외국인 고문인 필자는 이 행사의 단장으로 참여한 공청단 소선대 부주임을 비롯한 간부들과 대회 전 일정을 함께했다.
 
  대회 당일 개막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소선대 일부 학생들이 대회운영위원회와 자신들의 단장에게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두 가지 요구를 내세우면서, 관철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은 대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중국은 하나의 국가 원칙을 표방하고 있는데 왜 국기게양대에 대만국기가 걸려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국기게양대에 걸려 있는 중국국기가 너무 낡고 색이 바랬다는 것이었다.
 
  국기게양대에 대만국기가 걸려 있었던 것은 킨텍스에 대만 무역대표부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국기게양대의 국기들은 상시 게양하도록 되어 있어 교체주기가 되면 일률적으로 교체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설명했지만, 소선대 부주임은 학생들의 항의에 명확한 답을 못하고 주최 측에 이 문제에 대해 양보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결국 중국대사관에서 제공한 새 국기와, 대만 무역대표부의 양해에 의해 대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이들 학생은 어느새 목에 붉은 머플러(소년선봉대의 상징인 붉은 마후라는 ‘선혈의 붉은 피’를 상징하는 혁명성을 띠고 있다)를 하고 있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중국의 간부교사들로부터 “국기사건을 주도한 것은 난퉁(南通)시 소년선봉대 간부학생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2009년 천년고도(古都) 시안(西安)의 한 사범대학교에서 개교기념일을 기하여 교내 축제가 한창이었다. 이때 표현예술(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펼치던 일본인 유학생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모두 마치지 못하고 성난 중국 동급생들에 의해 무대에서 끌려 내려왔다. 일본학생들의 중국 폄하적 대사와 선정적인 옷차림이 문제가 되었다.
 
  나중에 ‘중국 폄하’라는 부분은 중국인들의 주관적 해석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이 일본학생들은 선정적인 옷차림을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았다. 일본학생들의 옷차림은 당시 중국사회를 흔들기 시작한 한류(韓流) 가수들의 옷차림과 비교할 때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당시 인터넷에 올린 중국학생들의 표현)이었다. 비보이나 중국학생들의 표현예술과 비교할 때도 퇴학까지 결정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와 같이 ‘교내 정풍(整風)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단체가 바로 공청단 시안사범대학교 학생위원회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주도한 저우(周)모 학생은 이 일을 계기로 학생위원회 제1서기가 됐다가 이듬해 바로 중앙당교에 입학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두 사건은 아직 학생에 불과하지만 중국공산당의 미래간부들이 자신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10년 黨校 개방 행사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중앙당교 교장을 겸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89주년을 며칠 앞둔 2010년 6월 30일,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중국 중앙당교가 내외신 기자들에게 개방되었다.
 
  당시 취재를 위해 참석한 기자들에게 당교의 개방배경 및 향후 발전방향, 시설 등을 소개하던 당교 부교장은 “당교가 그동안 수행해 온 업무의 성격, 참여하는 관리와 간부들의 자유로운 학습분위기 조성 및 편의를 위해 다소 폐쇄적인 기관으로 인식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우리 공산당은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향후 당교의 대외개방은 더욱 확대 추진될 것이며, 이를 위해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교의 몇몇 시설을 안내하였고, 이를 통해 우리는 당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개방된 중국당교의 소식과 당교의 교수진·교안, 당교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급들에 대한 정보는 이 행사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중앙당교는 왜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놓고 그런 행사를 가졌을까?
 
  2007년 시진핑(習近平)이 중앙당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중앙당교 교장을 지낸 후진타오처럼 이후 중국을 이끌 최고지도자로 지명되었다. 하지만 최고지도자로 지명된 초기만 해도 후진타오의 직계인 리커창(李克强)이 여전히 건재해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의 권력승계는 확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론(衆論)이었다.
 
  그러나 상하이방(上海幇)의 영수(領袖)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그의 심복인 쩡칭홍(曾慶紅)의 후광을 입은 시진핑은 당교 교장이 된 후 당중앙 조직부와 선전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후계자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2010년 6월 당교 개방 행사는 시진핑의 권력승계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완성되었던 시점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중앙서기처와 선전부, 당 기율심사위원회의 핵심 부처 인사가 당교 개방 1개월 전에 마무리되었고, 새로 임명된 중간간부층의 관리들은 시진핑이 교장으로 있던 당교의 일부 연구원과 특수학급인 청장반(靑壯班) 출신들로 채워졌다.
 
 
  외국 기업들, 黨校와 교류 강화
 
삼성과 중앙당교 간 협력10주년 기념행사.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중앙당교와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의 최고 엘리트 양성을 위한 중앙당교의 교육은 두 개의 기둥, 즉 도(道)와 술(術)의 교육으로 표현된다. 시진핑은 2007년 당교 교장으로 취임한 후 중국식 사회주의와 혁명 전통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상학습, 즉 도의 교육을 중시해 왔다. 시진핑이 교장을 맡은 직후 당교 내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국의 전통적 지혜를 탐구하는 ‘국학(國學)’을 주요 교과목으로 지정하고, 《논어》 《한비자(韓非子)》 《노자(老子)》 등의 고전(古典)강좌를 대폭 늘렸다는 점이다.
 
  공식석상에서 진행하는 시진핑의 주요 발언들은 예외 없이 중국고전의 문장을 동원하며 당교의 공식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에 게재하는 글들 거의 대부분이 중국고전의 해석을 적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상학습과 도덕 재무장을 중심으로 하는 교과과정, 당의 학습적 기능 강화, 개방을 통한 대외교류의 확대 등 당교의 변화와 당교의 개방을 통한 중국공산당의 투명성 제고라는 두 개의 목표가 인적 네트워크의 완성, 차세대 중국 주요 관리들의 안배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다.
 
  당교 개방 이후 예상했던 바와 같이 중국에서 안정된 활동을 원하는 세계의 주요 국가기관과 기업들이 당교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求愛)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교가 중국을 이끌 주요 고위관리들의 양성기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들과의 좋은 관계를 통해 향후 중국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정치지도자들도 당교를 방문하여 학교 관계자와의 교류의지를 표명했고, 삼성은 당교 졸업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현장학습을 시키고 있다. SK도 당교의 우수 학생들에게 조건 없는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동북아를 주요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몇몇 연구기관들은 당교와의 학술교류 활동을 추진 중이다.
 
  당교 교장을 지낸 쩡칭홍 전 국가부주석은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세계 각국과 기업들은 중국의 관리양성 기관인 당교와의 협력을 중시하고, 적극적인 교류의 의지를 보일 것”이라면서 “당교가 이를 잘 활용하면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세계와의 교류 및 그들의 선진 정보·기술들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말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앙당교는 1명의 상임부교장과 4명의 부교장이 잠시도 쉴 새 없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몰려오는 손님들을 접대하고 그들의 러브콜을 받는 것으로 대부분의 일정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정부기구와 기업들이 일반학생, 일반 교육과정, 지방당교의 학생·관리들과의 일상적인 교류협력 관계를 가질 뿐 실질적으로 향후 중국을 이끌어갈 고위간부들의 특수학급과는 여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그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변동기에는 《韓非子》 강조
 
  중국공산당의 선전부와 조직부에서 주관하는 특수반의 교과목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생들로부터 발표되는 글들을 보면 상당한 부분의 고전강좌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주제의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중앙당교가 발표하는 이들의 글들은 지방당교로 연결되어(교육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주제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이 이루어질 정도로 고전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관리(管理)후보군과 영도(領導)후보군들에게 교육시키는 고전은 무엇일까?
 
  중앙당교의 교육과정과 시기별 발표논문 혹은 문장들을 분석해 보면, 정치권의 변동, 대규모 인사이동, 중국공산당의 중요시책을 발표해 국가의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한비자》와 관련된 글들을 많이 발표한다. 물론 이 시기 중국 중앙방송(CCTV)의 고전강좌에도 어김없이 한비자(韓非子)의 사상이 소개된다. 후진타오 정부가 구성된 2002년을 전후한 시기에 그랬으며, 2011년부터 진행된 제5세대 정부 구성 작업이 시작되면서 역시 한비자의 사상과 그의 저작에 대한 공개 혹은 비공개 교육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앙당교는 향후 중국의 국정과 실무를 운영해 갈 간부들을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조사하여 그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박난문체(駁難文體)의 문장들을 의무화하고 있다. 박난문체란 《한비자》의 난언(難言), 난설(難說) 편을 근거로 형성된 시책문으로,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현재의 상황을 서술하고, 이를 비판하고 논박하는 형태의 글이다.
 
  올림픽과 같이 대규모 행사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성숙한 행동과 근검, 절제하는 생활을 요구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논박의 글들을 통해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경전들을 소개하고, 생활지침으로 삼는다. 사회의 기초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유가학설을 정리한 ‘팔영팔치(八榮八恥·국가를 영예롭게 하는 8가지와 치욕스럽게 하는 8가지)를 만들어 낸 것도 박난문의 종합에서 유래한 것이다.
 
  최근과 같이 경제적인 압박과 빈부차이로 인한 갈등이 격화되면 조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화해사회(和諧社會)를 지향하고, 무위(無爲)와 개인의 희생, 자족(自足)을 강조하는 도가의 내용이 집중 강의된다.
 
 
  黨校, 사회주의 敎化운동 주도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설치된 베이징정신 구호판. 베이징정신도 중앙당교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중국은 최고 정치지도자들을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이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 분열과 혼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에 중앙당교는 ‘베이징시 고위영도반’ 학습과정을 통해 솔선수범하여 수도(首都)의 면모를 개선하자는 학습과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앙당교의 지침과 지도에 의한 ‘베이징정신’의 함양이다. 베이징의 대로(大路)부터 작은 골목까지, 대규모 공공시설에서 민간공장은 물론 모든 학교에 이르기까지 ‘애국(愛國), 창신(創新), 포용(包容), 후덕(厚德)’이라는 구호가 뒤덮고 있다. 통일된 중국을 지향하여 중화(中華)세계의 위상을 만방에 떨치자는 애국운동, 이후 국가의 자강(自彊)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창조적 과학부흥 운동, 사회의 분열과 차이를 양보를 통해 받아들이자는 포용, 그리고 지역적 경제적 차이로 인해 상대적 빈곤감을 갖고 있는 약자(弱者)들에 대한 배려가 강조된 후덕 등의 덕목은 자칫 정치적 경제적 격변으로 인해 중국의 정치적 안정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 고도의 사회주의 교화운동이다.
 
  이는 거의 대부분 중국의 고전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이론의 발표 역시 각급 공산당 당교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2007년 ‘제5세대 지도부를 위한 조직역량 교육강화활동’에서 제기된 역사교육에 관한 정비, 사회정화와 중국인의 품격 양성을 위한 유교(儒敎)교육의 강화 등이 중앙당교의 기관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사회개혁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당교 교장인 시진핑이다. 천안문광장의 인민대회당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던 역사박물관과 혁명박물관을 ‘국가박물관’으로 통합 재구성하고, 천안문광장에 공자상(孔子像)을 세우는 등(논란이 되자 국가박물관 구내로 이동)의 ‘전통문화 교육강화’를 실천하고 있는 것도 중앙당교가 주도한 것이다.
 
  고전과 전통의 사상과 문화를 계승하여 오늘날 자신들의 국가정체성과, 정치지도자들의 통치이념을 훈련받는 중국공산당의 당교시스템을 보면서, 국사(國史)교과서의 통일된 정합(整合)도 없고, 도무지 정치적 철학이나 통치이념의 실체도 파악할 수 없는 정치인들이 ‘자유’라는 책임이 전제된 고급한 가치를 빌미로 산만하고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는 우리의 현실을 이제는 한 번쯤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념과 정책의 産室 역할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추진한 경제특구 조성과 시장경제 체제 도입은 ‘특정지역이 먼저 부유해지고, 부유해진 지역이 기타 지역을 선도한다’는 소위 ‘선부론(先富論)’의 실천이었다.
 
  덩의 경제개발 정책 중 하나인 이 정책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가져왔지만, 지역 간 불균형, 빈부(貧富)격차 심화, 특정기업·분야에 대한 특혜시비, 공산당 고위간부의 부패 등 부작용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 결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상당 부분 무너졌다. 이는 입당(入黨)거부나 탈당(脫黨) 등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느끼는 중부와 서부 지역, 소수민족 지역 등에서는 정부기구,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을 이끌고 있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후진타오 정부는 집권 하반기가 시작되는 2007년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 건설’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통한 ‘균부론(均富論)’을 제시했다. 특히 당원이나 정부기구 관리들의 도덕적 타락, 이에 따른 인민들의 저항과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국가를 영화롭게 하는 8가지와 수치스럽게 하는 8가지 (八榮八恥)’라는 도덕 재무장 운동을 수행하면서 어떠한 가치를 희생해서라도 국가에 대한 애국적 영광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운동을 전개한다.
 
  또한 자기희생과 타인에 대한 배려, 국가에 대한 충성, 마오쩌둥 시절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졌던 인민해방군 전사(戰士) 레이펑(雷鋒)의 정신 함양, 그리고 앞에서 말한 ‘베이징정신’의 발표는 모두 당교의 연구진과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중국 관리들의 합작품이다.
 
  이뿐 아니라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며 여러 차례 토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형성된 지침들은 당교 교장이자 중앙서기처 제1서기인 시진핑을 거쳐 중앙정치국에 상정되고, 이 내용은 다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협의와 승인을 받아 국가 최고 지도자인 후진타오에 의해 발표되는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중국공산당의 통치권을 침해받지 않는 가운데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들의 협조와 충성을 얻어 낼 수 있는 관리통제 시스템의 하나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스스로 검증하고 승인한 전략방안과 다른 입장을 취하는 관리는 자신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 인재 선발 시스템과 黨校
 
황제와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던 국자감의 벽옹(雍) 건물. 중앙당교는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 왕조 시대에 최고 통치자인 중국황제의 거주지였던 자금성(紫禁城)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청셴제(成賢街)라는 거리가 있다. 이 거리에는 중국 최고의 관리 후보군인 지방시험의 합격자와 추천 학생들이 최종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던 ‘국자감(國子監)’이 있다. 국자감 바로 옆에는 공자를 모시는 ‘공묘(孔廟)’가 있다.
 
  국자감에는 전국 각지에서 여러 차례 선발과정을 거쳐 실력이 검증된 관료 예비군들의 교육장이 있다. 특히 가운데 ‘벽옹(雍)’이라는 중심 건물은 황제가 수시로 내왕을 하면서 경전의 내용과 국가시책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던 장소이다.
 
  국자감을 방문할 때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이 채택하고 있는 고급관리 양성·선발 과정이 전통시대의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국자감의 ‘벽옹’을 보면서 중국 최고 지도자로 지명된 차기 지도자가 중앙당교 교장을 지내며 장차 당과 국가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후진타오나 시진핑 등의 경우에서 보듯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제도적으로 구축하고, 당의 주요 핵심기구인 선전부와 조직부의 운용시스템을 익힐 수 있는 곳이 바로 당교이다.
 
  시진핑은 금년 봄학기 개학식에 참석하여 “사람들은 불안감 때문에 한편으로는 사회(조직)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를 만든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향후 10년간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현재 중국의 상황을 ‘불안’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중국공산당이라는 거대한 사회조직을 강화해야 하며,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신념화한 ‘종교’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의미로 분석할 수 있다.
 
  공자의 학문적 전통을 수호하는 전통시대의 관료 예비군들은 매일 공자의 사당을 청소하고 예를 올리며, 국가의 질서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종교적 가르침으로 내면화시키고, 그리고 선대(先代) 진사합격자들의 명단을 새긴 비석을 바라보며 충성스런 신하가 누릴 무한한 특권과 영광을 그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당교에서 선택받은 최고 관료후보군은 향후 중국의 각급 기관에서 당과 최고 지도자에 대해 무한한 충성을 다짐할 것이다. 이런 전통이 여전히 차기 중국지도자와 관료후보군 사이에 존재하기에, 당교의 교장은 자신과 함께 중국을 이끌어갈 관리후보들에게 당당하게 종교화한 중국식 사회주의의 공고화를 다짐하는 선언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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