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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수교 20주년 - 민간 교류 현장을 가다

“중국인은 매사에 ‘飮水思源’ 정신으로 임해” (金漢圭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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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차 한중여성지도자포럼, 베이징·난징·양저우에서 열려
⊙ 루수민 중국인민외교학회 당서기, “북한과는 교류하지 않아”
⊙ “全人大 여성 비율 21.33% 불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의 8호동에서 열린 한중여성지도자포럼 주최 기념 만찬. 루수민 중국인민외교학회 당서기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국교(國交)를 맺은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1992년 8월 24일 한중 양국은 수교를 발표했다. 전격적이었다. 한중 수교는 ‘한국·타이완 단교’를 의미하기도 했다. 1992년 8월 24일 오후 4시 우리나라와 타이완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기자는 당시 타이완 대사관 깃대에서 타이완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내리며 통곡하던 텔레비전 속 타이완 대사관 직원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타이완은 한국전쟁 당시 UN 상임이사국으로서 UN군의 한반도 파병에 찬성표를 던져준 우리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었다.
 
 
  ‘經熱政冷’
 
  이렇게 시작한 한중 관계가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2008년 5월,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와 함께 한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한중 관계가 한 차원 격상됐다.
 
  중국은 우리의 제1무역상대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중 관계는 수교 20년을 마냥 축하할 만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최근 연평도 사태 발생 시 중국의 태도나 탈북자 북송 문제, 이어도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중국의 마찰에서 알 수 있듯 한중 관계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경제는 뜨겁지만, 정치는 냉랭하다(經熱政冷)’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이다.
 
  중국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관시(關係·관계)’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을 상징하는 단어다. 관시는 대중국 교류에서 정부 간의 공식 관계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교류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간의 대화에서는 대화 상대가 자주 바뀐다. 뿐만 아니라 탈북자 북송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알 수 있듯 예상 못 한 변수도 자주 발생한다. 민간 교류는 그런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중국과 교류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단체로는 21세기 한중교류협회, 니어재단, 서울국제포럼 등이 있다.
 
  21세기 한중교류협회는 민간단체 설립을 중국 정부 측으로부터 요청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2000년 10월에 만들어진 단체다. 구체적으로는 주룽지 전 중국 총리의 한국 방문이 계기였다. 2000년 11월에는 중국에서는 제2외교부로 불리는 중국인민외교학회와 자매결연을 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총무처 장관을 지낸 김한규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설립 이후부터 해마다 양국의 언론·정치·경제 분야의 지도자급 인사들의 교류 행사를 열고 있다.
 
  니어재단은 동북아시아 관계 관련 전략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간단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제와 안보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펴고 있다.
 
  서울국제포럼은 이홍구 전 총리가 이사장을 맡은 단체로, 중국인민외교학회와 함께 2년마다 국제포럼을 개최한다. 이 밖에도 여러 단체가 민간외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인민외교학회
 
베이징 송경령기념관 내에 걸려 있는 송경령의 젊은 시절 사진. 송경령은 중국에서 명예주석으로 추대됐을 만큼 존경받는 여성 인물이다.
  21세기 한중교류협회(이하 21세기 협회)는 매년 중국과 함께 지도자포럼, 여성지도자포럼, 국방포럼, 언론인포럼 등을 연다. 각 포럼은 매해 한국과 중국에서 번갈아가며 열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4월 24일 중국인민외교학회와 함께 제9차 한중 여성지도자포럼을 개최했다. 중국의 베이징과 난징, 양저우에서 진행됐다. 작년에는 21세기 협회가 주체가 되어 서울에서 열었다.
 
  기자는 이번 한중 여성지도자포럼 전 일정에 동행했다. 민간 외교에서 ‘관시’의 역할과 그 양상을 직접 목격하고 싶었다.
 
  한국 측에서는 이배용(李培鎔)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과 김정자(金貞子)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장(전 여성가족부 정무차관), 김애실(金愛實) 한국외대 교수(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금숙(崔錦淑)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안인해(安仁海) 고려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김태현(金兌玄) 성신여대 교수(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장공자(張公子) 충북대 교수(전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윤정분(尹貞粉) 덕성여대 교수, 최원주 경기도의사회 부회장, 김미자(金美子) 한상 상무유한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중국 측에서는 주캐나다 중국대사를 지낸 루수민 중국인민외교학회 당서기 등 중국인민외교학회 측 인사와 멍샤오쓰(孟曉駟) 중화전국부녀연합회(전부련) 부주석, 머우훙(牟虹) 전국 부녀연합회 국제부 부부장 등이 함께 일정을 소화했다.
 
  중국인민외교학회(이하 외교학회)는 중국 외교부 산하기관으로 외교부와 연관된 민간 차원의 대외교류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의 100여 개 국가와 교류 중이다. 1949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됐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외교학회의 명예회장을 맡아 외교학회의 대외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외교학회는 설립 초기에는 비수교 국가와의 교류나 수교국의 전직 국가원수·장관 등 전직 고위관리와 저명인사와의 인적 교류를 전담했다. 민간 차원에서 중국 정부의 대외 창구 역할을 해온 셈이다.
 
  특히 중국과 미국 사이 공식적인 교류가 없던 냉전시대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 부시 전 대통령, 키신저 전 국무장관, 영국의 대처 전 수상 등을 초청해 중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현재는 수교·비수교 국가와의 인적 교류 외에 해외 유사기관과의 교류 활동도 하고 있다. 각종 포럼과 세미나,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학술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루수민 당서기는 “중국인민외교학회는 중국 외교부의 정책이 잘 시행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라고 했다. “북한과는 민간단체 차원의 교류를 하고 있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중국 인민대표회의 여성 비율 21.33%
 
김정자 서울여성가족재단 이사장과 중화민국장쑤성위원회의 왕영원 선전부장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당위원회 선전부장은 차관급이다.
  4월 24일 한중 여성지도자포럼 참석자들이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황싱련 외교학회 부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면서 작년과 재작년, 지난 포럼에서 만났던 인연 등을 언급하며 환담을 했다. 인연을 상당히 중시한다는 중국인의 습성을 엿볼 수 있었다.
 
  양국의 여성 교육 정책에 대한 간담회를 위해 방문한 중화여자대학교에서는 류멍(劉夢) 부총장 및 교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화여대는 중국의 여성 간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처음에는 기술학원으로 출발해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규모가 상당히 큰 대학이다. 특이한 점은 여자대학이지만 남학생도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다. 아나운서과 학생의 약 10%가 남학생이다. 중국에는 3개의 여대가 있는데 재학생 중 남학생 비율이 30~40%라고 한다.
 
  류 부총장은 한국에서 여성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관심이 많았다. 한국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이 한국 여성의 권리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화여대는 현재도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한중 양국의 참석자들은 향후에도 구체적인 정책 사례 등을 토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날 저녁 일정은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의 만찬이었다. 댜오위타이는 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찾았을 때 사용하는 국빈관이다. 금나라 때 장종황제(章宗皇帝·1190~1208)가 이곳에서 낚시를 즐겨 한 데서 댜오위타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이름처럼 댜오위타이 곳곳에는 크고 작은 연못과 꽃, 나무가 아름답게 조성돼 있었다. 여러 나라의 국빈이 동시다발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라 그런지 댜오위타이 경내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건물의 안팎도 아름다웠다. 건물 곳곳에는 중국의 국보 1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장쑤성에서 열린 한중여성지도자 간담회. 중국 측 참석자는 전국부녀연합회 장쑤성 지부의 간부들이다.
  중국인은 ‘8’자를 매우 좋아한다. 8자의 중국 발음인 ‘바’가 ‘돈을 번다’는 표현을 쓸 때 쓰는 한자인 발(發) 자와 발음이 비슷해서다. 한중 여성지도자포럼 참석자들이 식사를 한 곳도 댜오위타이 ‘8호동’이었다. 8호동은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용했던 건물이기도 하다고 중국 측 관계자는 귀띔했다. 건물뿐 아니라 음식에도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먹었던 식사 메뉴를 당시 사용했던 식기에 담아 내왔다.
 
  다음 날인 25일에는 이번 포럼의 주요 일정인 여성지도자간담회가 열렸다. 전국 부녀연합회 측 참석자와 함께 한중 양국의 여성 정책, 여성 인권 현황 등에 대해 소개했다. 전국부녀연합회는 중국 공산당의 하부 조직으로 중국 전국의 각 민족, 각 계급의 여성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중국 공산당·중국 정부가 전국의 여성과 소통하는 공식적인 창구인 셈이다. 1949년 3월에 설립됐다. 중국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전국부녀연합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 간부는 각 자치구나 중국의 주요 기관으로 영전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여성 고위공직자 양성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 주로 활동하는 단체지만 외국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직원이 많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중 여성지도자간담회에 참석한 전부련 측 인사 중 2명이 이화여대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었다.
 
  머우훙 전부련 국제부 부부장은 간담회에서 중국 여성의 사회 진출 현황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머우 부부장의 말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한국의 국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1.33%밖에 안 됩니다. UN이 권고하는 30%와는 아직도 큰 차이가 있어요. 단순히 경제 활동에 여성이 얼마만큼 참여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부련은 여성의 실질적인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중국 여성 정책 ‘개인 능력 함양 중시’
 
최치원기념관 내에 있는 최치원 동상.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송경령(宋慶齡) 기념관’ 방문이었다. 송경령은 손문(孫文)의 부인이다. 가장 존경받는 중국의 역사 여성 가운데 한 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명예주석’ 칭호를 받기도 했다.
 
  송경령은 세 자매의 둘째인데 이들 자매를 두고 중국에서는 “첫째는 돈을 사랑하고, 셋째는 권력을 사랑했다. 그리고 둘째는 조국을 사랑했다”라는 표현을 쓴다. 대부호 공상희와 결혼한 첫째 송애령, 장개석과 결혼한 셋째 송미령, 그리고 손문과 결혼한 둘째 송경령의 생애를 압축한 표현이다. 송경령 기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아꼈던 그의 정신을 기리는 취지에서 구호 활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펴고 있다고 탕원성(唐聞生) 송경령 기념회 부주석은 설명했다.
 
  탕 부주석의 설명에서 송경령에 대한 중국인의 변함없는 존경과 애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 사회가 국정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분열되지 않고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송경령 같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인 26일 난징(南京)시로 이동했다. 난징시는 장쑤성(江蘇省)에 속해 있다. 장쑤성은 우리나라의 경기도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기도 하다. 난징에서는 장쑤성 부녀연합회와 함께 한중 여성지도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여성 정책의 근본적인 기조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 토의가 진행됐다. 중국은 개인의 능력 함양을 더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여성 정책을 입안하는 데 반해, 한국은 공적 지원을 중시하는 ‘분배주의적 관점’에서 여성 정책을 편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양측 참석자는 각 기조의 장단점과 영향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장쑤성의 양저우(揚州)시. 양저우는 한국과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 도시다. 당나라에 유학 간 대학자 최치원(崔致遠)이 과거에 급제한 후 5년간 벼슬을 지낸 곳이기도 하고, ‘해상왕’ 장보고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최치원은 양저우에서 《계원필경》 등의 작품을 저술했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양저우를 방문했다. 1991년 김일성은 장쩌민 전 주석과 함께 양저우를 방문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11년 5월 특별열차를 탄 김정일이 양저우를 찾았다. 그래서인지 장쑤성에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도시인 양저우의 시 공무원 중에는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연수를 받은 공무원도 있다고 했다.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나가는 면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려는 중국 지방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중국에 知韓派 많이 생기도록 해야”
 
  김일성이 양저우에서 이용한 호텔이 바로 ‘시원호텔’이다. 한중 여성지도자포럼 참석자들도 시원호텔에서 묵었다. 중국 측 관계자는 “김일성이 시원호텔에서 일주일간 묵을 당시 특수 제작한 침대를 북한에서 공수해 왔다”고 귀띔했다. 김일성의 목 뒤에 있던 혹 때문이었다고 한다.
 
  양저우를 처음 방문하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이 둘러보는 장소가 있다. 바로 ‘최치원 기념관’이다. 2007년 10월에 세워졌다. 최치원은 한국인으로서는 아마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일 것이다. 지금도 최치원은 중국에서 당ㆍ송 시대 100대 문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최치원 기념관은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한중 교류가 오래전부터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장소이기도 한 셈이다. 최치원 기념관 방문으로 양저우에서의 공식 일정이 끝났다.
 
  장쑤성 방문 일정에는 외교학회의 루수민 당서기가 동행했다. 루 서기는 외교학회 차기 부회장으로 취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루 서기에게 ‘이번 포럼 같은 민간 교류가 한중 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지’ 물었다. 루 서기의 답이다.
 
  “이번 포럼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세요. 한국 측 참석자만 봐도 여성 정책을 포함한 정책의 최일선에서 정책을 다루거나 정책을 다뤘던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중국에 대해, 또 중국의 정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만큼 한국에는 중국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겁니다. 이것은 중국 측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만남이 한 번, 두 번 거듭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지식이 쌓이면서 크게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두터워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다.”
 
  장공자 충북대 교수는 대중 관계가 좋아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장 교수는 타이완에서 유학을 하고 중국정치를 연구해 왔다. 장 교수의 말이다.
 
  “중국과 친구가 되려면 1~2년 갖고는 안 됩니다. 장기간 꾸준히 노력해야 해요. 또 중국에 ‘지한파’가 많이 생기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를 지속해야 합니다. 중국이 어쨌든 현재는 우리나라보다 여러 면에서 국력이 세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 쪽에서 중국을 많이 연구하고 공을 들여야 해요. 국제 정치에서 많이 주장하는 ‘다극(多極)안보체제’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주장입니다.”
 
  베이징과 난징에서 만난 중국 측 인사들은 하나같이 만날 때마다 지난 인연을 강조했다. 과거를 중시하고 그 위에 현재와 미래를 쌓으려는 중국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동북공정과 이어도 문제, 탈북자 북송 문제 등 단기적으로는 해결의 끝이 안 보이는 현안이 산적한 한중 관계에서 민간 차원 교류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金漢圭 21세기 한중교류협회 인터뷰
 
  “중국인과 관시 형성에 10년은 걸려”
 
   김한규 회장은 한중 민간 외교의 산증인이다. 중국인민외교학회를 세운 주룽지 전 총리에서부터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까지 중국의 많은 고위 관료와 친분을 유지해 왔다. 김 회장은 ‘관시(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1세기 한중교류협회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양국의 민간 차원 교류와 우호 증진의 최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민간 차원에서 중국 측과 진행하고 있어요. 중국 측 파트너는 민간단체라도 정부 기관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중국 정부와 대화를 나누는 격입니다. 국익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21세기 한중교류협회가 대신하면서 정부 간 외교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지금까지 중국과 교류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들면 무엇이 있습니까.
 
  “2008년에 우리나라와 중국이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게 21세기 한중교류협회가 일정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실은 한국 정부가 맺었죠. 우리 협회가 분위기 조성 등에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아직 밝히기 곤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예가 많기 때문에 소개하긴 어렵지만 여러 보람 있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대중 교류에 힘쓰면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낸다고요.
 
  “중국과 국교를 맺기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중 외교의 이면에서 일어났던 ‘비하인드 스토리’와 제가 겪은 대중 외교의 역사 등을 담아 8월에 낼 예정입니다.”
 
  ―대중국 외교의 특성이라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중국은 ‘관시’를 중시합니다. 중국에서 많이 언급되는 표현으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며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이죠. 쉽게 말해 우물물을 마시면서 우물을 판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말입니다. 중국과 교류를 해보면 중국인의 음수사원 정신을 여러 측면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중국은 ‘신의와 의리’를 존중하는 나라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양국 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민간의 각 분야에서 장기간의 교류를 통해 신의와 의리를 쌓아나가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만난 여러 중국 지도자 중에 가장 인상적인 지도자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주룽지 전 총리입니다. 주 전 총리는 중국이 한창 경제 개발을 추진하던 시절, 경제 담당 부총리로서 중국 경제 발전의 기초를 만든 사람입니다. 중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인 셈입니다.”
 
  ―한국의 대중국 외교의 과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 중국을 학문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관시를 통해, 즉 마음과 마음을 통하면서 중국을 진짜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상대편이 어떤 사람인가 알려면 상대의 심리도 잘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중국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중국과의 관계에 정말 정통한 사람이 드문 게 한중 관계의 문제 중 하납니다. 관시가 형성되려면 최소한 10년은 걸려요. 중국과 진정 마음을 터놓으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 간 외교관계와 교류에는 정부 차원과 민간 차원이 있는데 중국과의 교류에서는 민간 차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중국과 장기간의 관시를 통해 신의를 쌓고 마음으로 중국을 알아나가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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