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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일본문화와 미국문화를 경험해 보니

글 : 김기훈  센트럴커네티컷주립대 경제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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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책임은 ‘차진 밥 문화’의 대표적 형태
⊙ 그림 감상 때도 동양인은 전체를, 서양인은 그림속의 개별적인 사물에 집중
⊙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歷史가 되는 시대가 올 수도

金祺勳
⊙ 78세. 센트럴커네티컷주립대 경제학교수.
⊙ 센트럴커네티컷주립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김기훈 장학금 설립자.
한국의 찹쌀밥(왼쪽)과 미국 ‘엉클 빈’ 브랜드의 메진 쌀(오른쪽). 각각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상징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미국에 이민 온 동양인을 ‘문화적 바나나’라고 한다. 겉은 노란색(동양적)인데 속은 흰색, 즉 백인들의 사고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남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문화적 코코넛’이라 불린다). 1957년, 25세때 미국으로 건너온 난 동양 젊은이들에게 부디 ‘삶은 달걀’이 되라고 권하고 있다. 겉이 흰색이라도 속에는 노른자, 즉 동양적인 것을 간직하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내가 50년 이상 산 미국의 문화와 한국·일본의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경험적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쌀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척도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Uncle Ben의 상표가 붙은 쌀과 같이 알이 길고, 요리해도 느슨하고 메진 밥을 좋아한다. 이것으론 초밥이나 주먹밥을 만들 수가 없다. 당연히 포크가 필요하다. 반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알이 짧고 밥을 지어도 끈기가 있는 차진 것을 선호한다. 가장 좋은 예가 찰밥이다.
 
  필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선호하는 쌀이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인은 동양인에 비해 키가 크며, 개성이 뚜렷하고 (이기주의와 구별되는) 개인주의가 으뜸이다. ‘알이 크고 메진 밥’의 성격이다. 반면 동양인은 키가 작고 획일적이며 집단적이다. 차진 밥이 되는 쌀의 특성 그대로다. 인쇄물을 보면 쉬 알 수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 출간한 책, 잡지, 신문 등은 품사의 구별이 없이 문장이 길고 단결이 되어 있다. 활자까지 찰밥처럼 붙어 있어 마치 도시락에 담긴 밥 같다. 우리나라 말만 띄어쓰기를 따르기 때문에 품사 사이가 떨어져 있을 뿐이다.
 
  필자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성격에 적합한 서양은 ‘메진 밥 문화’(fluffy rice culture), 동양은 전체를 중시하는 ‘차진 밥 문화’(sticky rice culture)라고 정의하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한국과 일본에서는 대형 교통사고가 나면 흔히 운수회사의 사장 또는 심각한 경우 교통부장관까지 사임한다. 연대책임이다. 전형적인 ‘차진 밥 문화’다. 필자가 일본에서 그런 예를 보았다. 큰 불상이 있는 가마쿠라에서 관광을 마치고 대형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초만원이었다. 바쁘게 드나들던 웨이터가 급히 지나가다가 접시를 떨어뜨렸다. 접시 깨지는 소리가 온 식당 안에 퍼졌다. 그때 다른 모든 종업원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손님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집단 사과와 함께 큰절을 했다. 미국에선 볼 수 없는 행동이다.
 
  ‘국화와 칼’의 저자인 베네딕트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두 가지 다른 점에서 관찰했다. 동양에서는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에 수치심이 강하다고 했고, 서양에서는 죄의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양인은 연대의식이 강해 비록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도 가족, 나아가 씨족 전체의 수치가 된다는 해석이다.
 
  앞서 언급한 동양의 집단성, 서양의 개성 존중성을 ‘나뭇잎’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동양은 ‘여름 잎 문화’다. ‘하늘’과 ‘잎’은 색깔이 다르지만 둘 다 푸른색이라고 하듯, 한글과 일본어는 영어의 green과 blue를 동일시한다. 심지어 일본말의 ‘아오모노(靑物)’는 채소의 총칭이다. 서양은 ‘가을 잎 문화’로 정의하는 것이 맞다. 단풍문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즉 개인주의가 강한 상황에서 가을에는 나뭇잎이 각각 적색·황색·갈색, 때로는 혼합색 등 다양성을 보여준다. ‘메진 밥 문화’ 그대로다.
 
 
  동양의 자기 낮춤, 서양의 자기 선전
 
  동양문화의 기본 틀은 유교다. 그것은 충효(忠孝), 사농공상(士農工商), 남존여비(男尊女卑),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으로 대표되는 수직적 문화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인다. 창의성과 개인의 주장은 격려를 받지 못했다.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옮겨지는 질서와 제도는 급기야 학문에까지 영향을 미쳐 연역법이 확립되었다.
 
  서양인은 어디까지나 자기 주장을 앞세운다. 선전도 중요하다. 동양의 학자들이 책을 내면 “천학비재(淺學非才)가 감히…”라고 쓴다. 이것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미국인은 “어째서 무식한 사람이 책을 내나”라고 질문한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야 말로 진정한 실체다”라고 했다. 18세기 후반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방임주의를 효시로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 등에 영향을 받아 개성과 개인의 존중 및 자유가 으뜸이 되어 유럽과 미국의 현대사가 정립됐다. 학자들은 1800년을 ‘개인 시대의 시초’로 삼는다. 다시 말하면, 서양에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의 분석으로 시작하여 일반적인 명제나 법칙을 도출하는 귀납법을 따른다.
 
  동양과 서양에서 늘 사용하는 주소가 대조적이다. 큰 것(나라)에서 작은 것(집 번지)으로 옮기는 동양적 사고방식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1번지”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서양은 이와 반대로 “1 Main Street, Northwest, Washington DC, USA”다. 날짜도 동양은 연, 월, 일인데 서양은 일, 월, 연이다. 미국은 어쩌다가 월, 일, 연이 되어 버렸다.
 
  군대의 소속 표시 역시 같다. 동양은 군단→사단→연대→대대→중대→소대 순이고 미국은 정반대로 소대에서 군단으로 끝난다. 미국의 군대 계급도 귀납법을 반영한다. 하사관의 시작은 Private로 하여 장교의 가장 상위가 되면 General로 올라간다. 특별 또는 구체적인 개체로부터 일반적인 사고방식의 결론을 끄집어내는 피라미드식이다.
 

 
  동양인은 그림도 전체적인 구도를 중시
 
  일리노이대학의 데니스 파크 심리학교수는 같은 그림을 보아도 동양인과 서양인의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동양사람은 여러가지 사물이 포함된 그림을 ‘전체적인’ 것으로 보며, 서양사람은 그림 속에 있는 각종 물건, 사람, 동물 등에 집중하여 감상한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연역법에 익숙한 동양 학생들이 미국에 유학와서 학기논문이나 학위논문을 쓸때 구체적인 분석과 실증을 강조하는 귀납법 학술체제 아래서 곤욕을 치른 경험이 한두 번은 있으리라. 영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는 얘기 또한 실감했을 것이다. 정관사(the)만 하더라도 “쓰면 지도교수가 지우고, 안 쓰면 집어넣는다”는 말이 한때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런가 하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미국인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보자. 12:12로 되어 있으면 ‘열두 시 십이 분’이지 ‘열두 시 열두 분’이 아니다. 왜 이럴까. 영어에는 명사에 s를 붙이면 복수가 된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명사에는 물론 왜 부사에도 ‘들’을 붙이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사람들’이나 ‘책들’은 알겠는데, “잘들 잤니”, “어서들 오십시오”는 뭔가.
 
  영어는 몸에 걸치는 ‘겉치레’의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그저 put on이면 되는데 한글과 일본말에는 (모자를)쓰다, (장갑을)끼다, (옷을)입다, (구두를)신다, (넥타이를)매다 등으로 다양하다. 반대로는 ‘벗다’가 다 통용되지만 ‘(넥타이를)풀다’만 예외다. ‘오르다’는 단어는 스무 가지, ‘지르다’는 열세 가지나 되는 정의에는 손을 들 수밖에 없다.
 
  혼인관계가 성립되면 ‘in-law’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글은 그러나 장인, 장모, 사위, 며느리, 올케, 시누이 등등 개인마다 호칭이 다르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한글 세대는 이해 못할 어휘가 많다. 한자어 때문이다.
 
 
  21세기엔 동서양 문화의 종합이 대세
 
일본을 강제 개국시킨 미국 페리 함대의 모습. 이후 일본은 문명개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어떤가. 헤겔의 변증법처럼 동양문화도 이제 정립(定立)→반정립→종합의 3단계를 거쳐 서양문화와 종합이 됐다.
 
  일본은 1868년 서양문화를 도입하면서 메이지(明治)유신을 했다. 잠시 개국 후의 변화를 보자.
 
  <구미 각국과의 무역교통이 활발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생활양식도 차츰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군인이나 공무원은 전통적 의복을 벗고 양복으로 바꿨다. 서양풍의 이발을 하였고, 도시에는 붉은벽돌의 양옥도 볼수 있게 되었으며, 거기에는 램프나 가스등이 빛나고 시내에는 마차가 달렸다. 1872년에는 종래의 음력을 대신하여 태양력이 채용되었다. 1876년에는 무사족의 특권으로 인정되었던 대도(帶刀)를 금지하는 폐도령을 내렸다.(井上光貞, 日本史, 東京, 學生社, 1965, p293)>
 
  한국역사의 권위자인 이병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쇄국 조선은 이리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동시에 외국의 신문화를 수입하기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고종 18년 신사(辛巳·1881)라는 해는 조선개화운동 사상에 있어서 특서할 만한 해라 할 수 있다.(李丙燾, 新修韓國史大觀, 1973, p479)>
 
  한미조약(1882)에 이어 같은 해에 독일, 1884년에는 영국·이탈리아·러시아 등과 조약을 맺었다. 우리나라는 한미우호조약을 체결한지 2년 후인 1884년에 미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와서 기독교의 전통과 연역법에 익숙한 우리 국민에게 귀납법 문화를 접목했다. 지금도 서양적인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양(洋)으로 표현한다. 양복, 양악, 양식, 양옥, 양담배 등.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아리랑·도라지·흥타령 등 우리의 전통민요는 5음계로 되어 있고 반음이 없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으로 연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소개한 서양음악에서 비로소 7음계를 알게 되었고, 끝내는 12음계까지 도입됐다. 이밖에도 새로운 교과목인 영어, 수학, 지리, 생물, 의학, 과학 등과 함께 한글로 된 성경을 가르쳤다. 야구, 정구, 농구, 체육 등도 배울 수가 있었다. 새 학교제도를 따라 차별을 받아 오던 부녀자들에게도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 사실이 전통을 깨는 역할을 하였다. 민주주의, 인도주의, 평등주의도 배웠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이처럼 공존했다.
 

 
  한국·일본에선 올림픽 개최가 문화종합의 계기
 
  그런데 우연의 일치 같지만 일본과 한국 모두가 하계올림픽대회를 개최(일본 1964년, 한국 1988년)하고 나서 병존해 온 동서문화가 차츰 종합이 되었다.
 
  냉전구조가 무너지고 경제발전이 가져온 사회, 정치, 문화, 사고방식 등 다양한 변화에 따라서, 특히 동양의 젊은 세대는 급진적인 서구화 또는 현대화가 된 ‘종합(synthesis)’의 단계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 문화, 식생활, 옷과 주택 등 우리의 일상생활은 획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대학에서도 앞다투어 영어 강의를 하고 있다. 회화에서 쓰이는 용어와 노래, 아파트에 붙이는 이름은 이미 외국에 온 느낌이다. 바야흐로 동양의 연역법과 서양의 귀납법이 종합되어 사다리꼴이 되었다.
 
  수직적인 동양문화와 수평적인 서양문화가 조화를 이뤄 결합한 중간의 선이 상징하듯 동양문화도 이제는 수직적 사회에서 탈피하여 대각선 문화가 되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문화적 바나나’와 ‘삶은 달걀’이 조화를 이룬 상징이다. 파란색과 노란색이 합하여 초록색이 된 종합단계에 이르렀다.
 
  세계가 좁아져서 지구촌이라 불린다. 플레밍 박사가 연구한 페니실린이 전 인류의 병을 치료하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그 후 의학지식의 발달은 예방의학까지 가능하게 했다. 1957년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를 효시로 우주개발과 인공위성에 의거한 통신의 급변과 보급,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휴대전화와 유튜브, 블로그, iPad, iPhone, Facebook, GPS, DNA 등등. 다국적기업이 늘어남에 따른 국제적 협조와 문화가 합성되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새로운 제품이 계속 소개되고 있다. 현대, 삼성, LG 등은 이미 전세계에 잘 알려진 한국의 상표다.
 
  더하여, 우리의 연속극과 팝송이 전세계에 퍼져 한류(韓流)를 형성하면서 전세계의 문화와 종합되고 있다. 인적 교류는 물론 한국음식의 세계화, 한국상품의 수출 등은 우리가 외국문화의 수용과 소화에 이어 해외전파로 ‘종합’이 골고루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올림픽대회의 개최를 분수령으로 각각 1세기 동안의 Antithesis(반정립) 단계를 거쳐서 Synthesis(종합)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도 혼자 살 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 닮아 가고 있다. 이제 동서양의 차이라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아예 없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몇 세대 뒤에는 “동서양에 그런 차이가 있었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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