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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이슈

대만 건국 100년에 치르는 총통선거

國共 통일의 마잉주냐, 대만 독립의 차이잉원이냐

글 : 허영섭  월간조선 객원기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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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의 관계 놓고 대만판 보수·진보 대결 구도
⊙ 내년 1월 선거 앞두고 대만의 정체성 논쟁 치열
⊙ 총통선거 결과 따라 대만의 국제적 위상도 달라질 듯

許英燮
⊙ 57세. 서울대 지리학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업.
⊙ 《경향신문》 국제부장·논설위원, 《뉴스메이커》 주간, 방송통신심의위 방송광고분과특별위원장
    역임.
⊙ 저서: 《대만 어디에 있는가》 《일제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이회창평전》 등.
마잉주 총통이 10월 10일 건국 100주년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대만이 건국 100년을 맞이했다. 1911년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이듬해 1월 1일 난징(南京)에서 쑨원(孫文)을 임시 총통으로 추대하고 중화민국의 출범을 선포한 때로부터 어느덧 한 세기가 훌쩍 지나간 것이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대만 국민들로서는 감회가 벅찰 수밖에 없다. 시련을 견뎌낸 뿌듯한 자부심일 수도 있고, 심술궂은 역사에 대한 회한일 수도 있다.
 
  대만의 요즘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앞날에 대한 기대감과 활력으로 넘쳐나고 있으면서도 과거 역사의 쓰라린 기억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대륙의 영토를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 내주고 타이완 섬으로 옮겨가 60여 년간 웅크리고 지내온 처지부터가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엄연한 승전국으로서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지만 끝내 유엔에서도 축출되고 말았다. 지금도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은 여전히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상황이 이미 고착화되어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또한 대만의 한계이기도 하다. 중국과의 양안(兩岸) 관계에 있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제한을 받고 있는 데다 수시로 군사적인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미사일을 겨냥하고 있다는 자체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중국은 올 들어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첫 번째 항공모함을 진수시켰으며 우주정거장 발사에도 성공함으로써 대만을 군사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 남중국해의 분쟁 해역을 놓고서도 주변국들과 패권주의적 충돌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잉주, 건국 100년 자신감 피력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
  대만 내부에서 은근한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조바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대만의 앞날이 기대하는 만큼 반드시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난관은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내부의 마찰과 갈등이다. 그것은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중국과의 양안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기도 하다. 굴곡의 역사가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대만은 발전의 활력을 유지함으로써 나름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건국 100년을 기념하는 이번 쌍십절(10월 10일) 연설에서 강조한 얘기도 바로 그것이었다. “과거 북벌(北伐)과 대일(對日) 항쟁, 국공내전을 거치며 자신의목숨을 희생한 이름없는 영웅들이야말로 번영의 기초를 마련해 준 주역들”이라며 그들의 희생정신 위에 대만이 지금처럼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음을 그는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월 14일로 예정된 제13대 총통선거는 양안 간의 관계에 있어 대만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의 투표가 대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의 쟁점 자체가 그러하다.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중국과의 협력 카드를 앞세워 연임을 노리는 반면 제1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대만의 자주적인 입장을 강조하며 선거에 임하고 있다.
 
  이번 총통선거를 계기로 중국과의 교류가 더욱 가속화되느냐, 아니면 제동이 걸리느냐 판가름난다는 얘기다. 그것은 더 나아가 대만의 독립 움직임과도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국민당을 주축으로 하는 국공통합의 판란(汎藍) 진영과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주축 판리(汎綠) 진영의 대결구도가 불가피한 이유다. 국민당과 민진당을 각각 상징하는 푸른색과 녹색이 이렇듯 통일과 독립의 상징 색깔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판란(汎藍)·판리(汎綠) 진영의 대결구도
 
  판란과 판리 세력은 대만 정계의 여야 구도를 구분하는 것은 물론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 지역적으로는 북부와 남부를 경계짓고 있다. 한편으로는 빈부 격차를 드러내기도 한다. 원래부터 대만에 터를 잡고 살아온 본성인(本省人)이냐, 아니면 1949년의 양안 분단에 즈음하여 이주해 온 외성인(外省人)이냐의 차이와도 대체로 일치한다.
 
  주민등록증에서 본적(籍貫)란을 삭제함으로써 외성인과 본성인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려는 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민 간의 갈등이 뿌리깊은 사회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인들 내부적으로 본성인을 ‘참마(蕃薯)’로, 외성인을 ‘토란(芋仔)’으로 구분하고 있을 정도다. 요즘은 본성인과 외성인을 아울러 ‘땅콩(落花生)’으로 부르기도 하고 ‘신 대만인(New Taiwanese)’이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지만 그렇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서로의 국가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현격하다는 얘기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주로 외성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민당은 앞으로 국공합작을 통한 평화통일 방식으로 대륙의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본성인들 중심의 민진당은 실효적 지배가 미치는 지역만을 대상으로 삼아서라도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륙과의 역사적 인연에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는 중화민국을 건국한 쑨원을 국부(國父)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아예 ‘대만 공화국’이나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바꾸자는 의견도 대두되어 왔다.
 
  마잉주가 후난성(湖南省)에 뿌리를 둔 홍콩 주룽(九龍) 반도 출신의 외성인이며, 차이잉원이 대만 남부의 핑둥현(屛東縣)에서 태어난 본성인이라는 사실은 더 비교할 것도 없다. 둘 다 국립대만대학교 법학과 출신이면서 마잉주는 뉴욕대와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차이잉원은 미국 코넬대학과 영국 런던정경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도 비교가 된다. 특히 차이잉원은 대만 총통선거에 도전하는 첫 번째 여성 후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중도우파를 지향하는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주석이 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선거는 3파전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에서는 마잉주가 약간 앞서고 있으나 아직 결말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이번 총통 선거일에는 입법위원(국회의원) 총선거도 동시에 실시될 예정이어서 대만 정국은 이미 선거체제로 돌입한 모습이다. 더욱이 10월에 들면서 선거일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건국 100년을 맞이하고 기념하는 의미에 못지않게 오히려 선거의 향방에 국민들의 관심이 더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에는 입법위원 선거가 1월에 치러졌고 총통선거는 3월에 실시됐지만, 이번에는 선거비용을 절감한다는 취지에서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잉주 총통은 ‘현직 프리미엄’을 살리면서 국가 정책과 공약을 연결지어 최대한 선거운동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10개년 발전계획’이 하나의 사례다. 활기찬 경제, 정의로운 사회, 깨끗한 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들의 경제적 복지와 사회적 공평성을 더욱 높이겠다는 정책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이념보다는 실용주의 정신을 앞세워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그가 총통으로 취임한 2008년 이래 지난 3년간의 실행 노선도 바로 그것이었다.
 
 
  마잉주,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인가
 
리덩후이 전 총통이 국민당 출신이면서도 민진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가 본성인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마잉주 후보가 내세우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역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 문제다. 내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할 경우 양안 평화협정의 체결을 추진하거나 그가 직접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이 측근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작 본인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의 의중이 어느 정도 포함된 방안임은 물론이다. 현재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통해 양안 간 경제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평화협정이 곧바로 양안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 징검다리를 놓는 포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마잉주 정부가 표방하는 ‘통일하지 않고(不統), 독립하지 않고(不獨),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不武)’는 현상유지 위주의 ‘3불 정책’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의 중국 방문 방안에 대해서는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공산당에 의해 타이완으로 밀려난 이후 대만 총통이 대륙을 방문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논란을 제기한다.
 
  오히려 대만 국민들이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지속될 경우 대만이 결국 중국에 의해 흡수통일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안교류 확대 방안이 마잉주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더 나아가 양안 간의 경제협력으로 대만의 성장률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개인들에 있어서는 경제지표와 체감경기가 상당한 괴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 후보가 양안관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중국이 현재 대만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적인 혜택을 베풀고 있는 자체가 양안 통일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집권 국민당이 중국이 파놓은 함정에 점차 깊이 빠져들고 있다고 그녀는 공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과의 무역, 금융 및 관광교류에 대해 전반적인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게 차이잉원 진영의 기본 인식이다.
 
 
  민진당, 실용주의 선회
 
  따라서 민진당이 내년에 집권한다면 ECFA의 주요 내용에 대해 부분적으로 재검토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진당은 ECFA의 입법원 통과 과정에서 국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극렬하게 반대해 왔으나 이미 협정이 발효되어 정상궤도에 오른 이상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차이잉원 후보도 민진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ECFA 존폐에 대한 국민투표를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언명하고 있다. 민진당도 대만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민진당은 지금껏 견지해 왔던 대만의 독립 방안에 대해서도 한결 누그러진 듯한 입장이다. 과거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시절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본 틀에 반발함으로써 중국과 심각한 군사적 긴장관계를 초래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현재로선 독립을 외치기보다는 현상유지에 더 초점을 맞추려는 분위기다. 위기상황을 우려하는 국내 여론과 국제관계로 인해 급진적인 독립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모습이다. 중국이 최근 민진당에 대해서도 거리감을 좁히고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런 때문일 것이다.
 
  천수이볜 총통이 2005년 독립 추진 움직임을 강행하자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해 대만의 독립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대만이 독립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무력을 불사한다는 근거는 그때 마련한 것이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도 실시했다. 그 직전의 리덩후이(李登輝)와 천수이볜 총통 시절을 거치며 대만 독립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던 핵심 브레인이 바로 차이잉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모두 본성인인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특히 리덩후이는 국민당 소속으로 총통을 지냈으면서도 국민당과 완전히 결별하고 민진당 편을 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차이잉원을 지원하고 있다. 오히려 마잉주에 대해서는 자신의 총통 시절 법무부장(장관)으로 기용한 인연이 있으면서도 “마잉주의 집권 이래 대만이 주권을 상실하고 있다”며 직설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지금처럼 등을 지고 갈라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대(對)중국 정책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본성인과 외성인, 그리고 판리와 판란의 인식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의 천윈린(陳雲林) 회장(오른쪽)과 대만 해협교류기금회의 장빙쿤(江丙坤) 이사장이 2008년 6월 12일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 석상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本省人과 外省人의 갈등
 
  국민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풀려나 다시 중화민국의 통치하에 편입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대대로 살아온 본성인은 자신들을 대만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들은 권력을 틀어쥐고 오히려 이들을 홀대하고 착취했다. 1947년 2만8000여 명의 주민이 무차별로 학살당한 ‘2·28사태’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결과다. 그 무렵 추산 인구 650만명 안팎의 본성인이 대륙에서 피신해 온 200만명의 외성인들에 의해 사정없이 따돌림을 받았던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대체로 본성인 출신이라는 사실도 거기에 기인한다. 재야 진영의 구심점이던 쉬신량(許信良)을 비롯해 황신제(黃信介), 캉닝샹(康寧祥), 장쥔홍(張俊宏), 뤼슈렌(呂秀蓮), 야오자원(姚嘉文), 린이슝(林義雄), 시밍더(施明德) 등의 재야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대만 민주화의 새벽을 알렸던 1979년의 ‘메이리다오(美麗島) 시위’를 주도한 것도 이들이었다. 1986년에는 이들을 주축으로 대만 최초의 야당인 민진당이 창당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본다면, 민진당이 강령으로 대만의 독립을 내걸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차이잉원의 ‘대만 컨센서스’
 
  차이잉원의 양안 정책도 1970년대 이래 지속되어 내려온 본성인들의 정체성 인식과 무관할 수 없다. 중국이 대만을 자신의 영토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만의 주권과 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해서도 “대만의 미래는 대만 국민들이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이른바 ‘대만 공식(共識·Taiwan consensus)’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었다. 대만이 엄연히 독립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양안협상의 기본 원칙이던 ‘92 공식(1992 consensus)’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정립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양안관계에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해석과 명칭은 대만과 중국 각자에 맡긴다는 ‘일중각표(一中各表·One China, Different Interpretation)’ 원칙을 끌어낸 것이 바로 ‘92 공식’이다. 리덩후이 총통 시절이던 1992년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와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海協會)가 나서서 합의한 원칙이다. 대만과 중국 서로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 타협을 해야 하는 필요성에 따라 민간기구인 해기회와 해협회를 구성하고 이들을 협상창구로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진당은 해기회와 해협회의 협상에 못마땅한 기색을 비쳐 왔다. 그것이 이번에 ‘대만 공식’으로 표출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도 대만의 선거전에 한몫을 거들고 있다. 국민당이 다시 집권하게 되면 중국과의 적대상태를 공식적으로 종료하며 상호 군사신뢰체제 구축으로까지 양안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샤오완창(蕭萬長) 부총통의 언급이 위키리크스로부터 흘러나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이 대만을 겨냥한 미사일을 철수한다면 미국으로부터 더 이상 무기를 들여오지 않겠다”는 마잉주 총통의 언급도 폭로되었다.
 
  겉으로는 대만의 방위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국가 안보를 놓고 중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 후보는 “국민당 정권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만의 주권을 포기하려 한다”며 “마잉주가 연임되면 대만을 중국에 팔아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결국 대만 총통선거의 공방전이 전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좌표 문제를 놓고 벌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살펴본다면, 바로 이처럼 밀접한 중국과의 관계에 힘입어 현재 대만 사회가 과거에 비해 드문 발전과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양안 간에 ECFA가 발효되면서 대만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10.3%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나타냄으로써 20여 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자체가 중국과의 활발한 교역을 바탕으로 이뤄진 성과였으며, 이러한 추세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상수도 건설과 지하수 개발을 위해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개발협회로부터 도입한 차관의 마지막 상환분을 청산함으로써 ‘대외채무 제로 국가’ 리스트에 새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요즘 들어 그리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적자로 국가부도의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체성 논쟁과 양안 정책
 
2008년 7월 4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만으로 가는 중국 항공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다.
  이처럼 대만의 경제적 발전은 전적으로 양안 간의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양안 간에는 항공노선과 여객선 노선이 개방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개인 자유관광도 허용되고 있다. 2008년에 20만명에 불과하던 중국의 대만 여행객이 지난해 160만명으로 대폭 늘어났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대학들은 이번 가을 학기부터 대륙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식으로 유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대만해협에는 양안 간의 점증하는 통신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해저 통신 케이블도 추가로 가설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마찰을 빚게 된다면 지금의 성장 기조가 일거에 무너지고 국가 안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만 기업들이 대륙에 투자한 규모가 2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대륙에 상주하는 대만 기업인들이 200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생산공장이 없는 대만의 발전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민진당이 원칙적으로 ECFA에 반대하면서도 완전히 철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체성 논쟁은 이러한 양안 교류에 잠재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민진당이 집권할 경우 정체성 논쟁은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대만독립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0년 대만 정치사에서 정권교체에 처음으로 성공한 천수이볜이 선거운동 때보다 오히려 취임 이후에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차이잉원 후보는 “대만이 주권 독립국가란 사실은 나의 신앙”이라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대만의 독립이 대만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관철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로선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력의 고삐를 얼마나 늦추느냐에 따라 대만의 대외적 위치가 정해지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마잉주나 차이잉원, 그리고 쑹추위 어느 누가 집권하더라도 양안정책은 분명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대만의 독립추진 움직임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설 경우 중국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놓고 있다.
 
 
  현상유지 만족할 수밖에
 
  따라서 이로 인한 무력사태의 긴장관계가 벌어진다면 중국으로서도 그다지 이롭지 않겠지만 대만으로서는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양안관계에서 물밑으로 대만을 지원하는 미국으로서도 그런 사태는 원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대만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본성인들이라고 해서 위기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독립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 스스로 대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지금의 현상유지로나마 만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실은, 국민당이 중국과 교류협력으로 방침을 돌린 것도 그렇게 오랜 일은 아니다. 장징궈(蔣經國) 총통 당시이던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됨으로써 본토 출신들의 대륙 방문이 허용되었고 뒤이어 리덩후이가 총통에 오르면서 중국의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상호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지금처럼 양안교류가 봇물로 터진 것은 마잉주가 총통에 당선되면서부터다. 그 사이에 천수이볜이 집권했을 때라고 해서 양안의 경제관계가 두절됐던 것도 아니다.
 
 
  中의 통일공세 거세질 것
 
  그렇게 본다면, 국민당으로서도 현실적인 장벽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대만의 헌법상으로 신해혁명 당시의 대륙 전역이 대만의 국토로 규정되어 있으면서도 이미 ‘본토수복(本土收復)’이니, ‘대륙광복(大陸光復)’이니 하는 구호는 사라져버렸다. 그보다는 오히려 타이완 본섬과 펑후(澎湖)제도, 진먼다오(金門島) 및 마쭈다오(馬祖島) 등 실효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영토를 어떻게 지켜나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중국이 대만에 대해 마지막 선택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대만이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중국이 당장은 우호적인 양안관계 유지에 협조하겠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양안 통일’이라는 협상 카드를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받은 홍콩, 마카오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통합 실험을 10년 이상이나 해왔으며, 대만에 대해서도 이 같은 통일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에 예정대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으로 중국의 권력승계가 이뤄진다면 대만에 대한 통일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다가오는 내년의 총통선거는 대만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리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과거 100년의 역사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대만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대만 국민들로서는 제한된 여건에서나마 최선의 활로를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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