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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르웨이 테러 이후의 유럽과 이슬람

공범자는 없었지만, 수많은 공감자는 있다

글 : 박성조  現 베를린자유대 종신 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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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이주민들은 철두철미한 이슬람교 신자이며, 폐쇄적인 가족공동체 속에서 살아왔고, 유럽에서의 생활도 그들의 관습·가치관·행동에서 큰 변화가 없다. 사는 지역이 유럽이지 거의 모든 것이 본국의 생활과 똑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대부분의 유럽국가에는 극우, 반(反) 이슬람정당이 존재
⊙ EU는 물론이고 대부분 유럽국가는 장기적인 이슬람 통합정책이 없어
⊙ 유럽경제의 호황 시 노동력의 부족을 이주민에 의해 조달… EU인구 현재 4억5000만명에서
    2300년에는 5900만명 추정
⊙ EU의 인구 감소율을 감안하면 2059년 4명 중 한 명이 터키출신 이슬람교도
⊙ 한국은 현재 15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활동중… 이주민 정책이 없어

朴聖祚
⊙ 75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베를린대·파리대 정치학·경제학 수학,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독일 보훔대 사회과학분야 교수자격 획득(1973).
⊙ 서울대 초빙교수, 독일 루르대 동양학부 학장, 베를린자유대 정치학과 교수 역임.
    현 베를린자유대 종신 정교수(정치·경제학), 세종대 석좌교수.
노르웨이 최악의 연쇄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왼쪽).
  유럽의 모범국에서 왜 이러한 참사가 일어났을까. 사회보장제도, 안전, 교육문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는, 부유한 이 나라에서 예기치 않은 ‘참사’는 표면적으로 안정된 복지의 지상천국에 뿌리 깊은 ‘사회갈등’이 은닉돼 있음을 적나라(赤裸裸)하게 표출시켰다. 이웃나라 스웨덴의 유명한 탐정소설가 망켈은 “사회복지의 지상천국인 스웨덴에서도 이러한 ‘사회갈등의 폭탄’이 잠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노르웨이는 ‘이주민 통합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소수민의 문제만이 아직 존재한다’고 여겨 왔다. 그렇다고, 불과 전체 인구의 3% 남짓한 이주민들의 종교, 가치관, 민주시민 의식이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간단히 말해 ‘복지국가를 통해 소수민족을 포용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노르웨이의 정치활동 역시 여느 유럽국가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는 극우(極右), 반(反) 이슬람정당이 존재한다. 벨기에의 FN, 덴마크의 DF, 독일의 NPD, 프랑스의 MNR, 영국의 BNP 등은 반 이슬람주의를 정강으로 하고 있다. 그중 독일의 극우보수당 NPD는 베를린에서 현재 치러지는 선거에서도 공공연히 이슬람계 이주민과 유대인들을 거세게 비난하며 독일로부터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2009년 선거에서 22.9%를 획득한 노르웨이의 진보당은 ‘진보’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보수정당’으로서 ‘극우 보수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 총기를 난사해 76명을 살해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Anders Behring Breivik)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당원이었다. 그는 입당하면서 오늘의 ‘참사’를 준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진보당 당수인 십 옌센 (Siv Jensen)은 “이번의 참사는 병든 일개인의 소행”이라고 무마하지만, 전 국민의 슬픔마저 위로할 수는 없었다.
 
하콘 노르웨이 왕세자(손에 장미꽃을 든 이)가 7월 26일 수도 오슬로의 세계 이슬람 선교 사원을 찾아 이슬람 지도자들과 함께 대화하고 종교 간 화합을 다짐했다. 하콘 왕세자는 전날 연쇄 테러 희생자 추모 대회에서 “관용과 자유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 급속도로 이슬람화하고 있다
 
  유럽에서, 3% 미만인 이주민의 통합을 위해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괜한 호들갑이라고 여겨 온 게 사실이다.
 
  유럽 각 국가의 다문화주의,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이 EU의 지배적 이념으로 등장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많은 이가 극우 보수정당에서 자기들의 ‘이념적 고향’을 찾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의 이상(理想)을 믿는 많은 이는 이슬람교도들을 ‘적(敵)’이 아니고 ‘동반자’라 생각한다. 또 노르웨이 사회는 이러한 입장에서 ‘합의사회’(consensus society)로 여겼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사회적 대인관계의 특징인 스닐(Snill·정치적 표현은 아니지만 친절, 온순, 관용 등을 포함하는 표현)주의 속에는 복잡한 사회갈등이 잠재돼 있다. 브레이빅 역시 유럽인과 이슬람인을 구분해 왔다. 현재 유럽은 급속도로 이슬람화하고 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유럽인과 유럽문화의 구세주(救世主)라고 생각한 전형적인 극단적 이슬람주의자와 마찬가지 인물이다.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를 독일계 마르크스주의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다문화주의를 마르크스주의(Marxism)의 가면을 덮어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 불렀다. “좌파들의 집단과 정당, 혹은 지식인과 중산층들은 이슬람문화를 적대시 않고, 관용으로 수용하며, 이슬람교도들을 친절하게 대한다”고 단정한 것이다.
 
  브레이빅의 공범자(共犯者)는 없었지만, 그의 만행을 묵시적으로 찬양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독일에서 동독(東獨)의 호이어스베르다(Hoyeswerda·1991년 9월 20일 신나치주의자 수백 명이 호이어스베르다에 있는 외국인 주택을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습격한 사건-편집자 주)와 서독(西獨)의 졸링엔(Solingen·1993년 5월 29일 졸링엔에서 신나치의 공격으로 5명의 터키여성이 불타 죽은 사건-편집자 주)에서 있었던 외국인에 대한 처참한 행위는 단순한 범행이 아니었다. 브레이빅은 유럽의 극우 정당과 사회단체들에 반 이슬람 운동을 권장했다. 독일의 경우도 다른 유럽국가들의 극우보수주의의 성향에 큰 차이는 없다. ND 이외에도 DVU, die Republikaner, die Deutsche Liga f쮒 Volk und Heimat, die Pro-K쮤n, die Pro-NRW Bewegung 정당, 혹은 정당 유사 단체가 존재한다. 1964년 이래 극우정당은 연방의회에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이미 주의회(작센주 5.6%·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7.3%)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노르웨이 참사 이후 유럽 대부분의 극우세력과 마찬가지로 현재 대단히 난처한 입장이다.
 
 
  ‘옛날의 유럽’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
 
  영국의 파키스탄화(化), 프랑스의 알제리화, 독일의 터키화 및 아랍화와 같은 선동적인 구호의 공통분모는 ‘이슬람화(islamization)’이다. 이런 시각에는 유럽의 3대 강국 내 소수민족의 인구가 가까운 장래에 다수(多數)가 될 것이라는 인구증가설이 깔려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럽인의 저조한 출산율과 고령화, 여기다 노동력의 급감에 따른 노동력의 유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발터 래커(Walter Lacquer)는 1965년부터 1994년까지 런던의 현대사연구소(Institute of Contemporary History) 소장을 역임한 역사학, 정치학자이다. 래커는 지난 2007년 5월 <유럽의 최후의 날(The last Days of Europe)>이라는 논문을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誌)에 발표하면서 ‘유럽 내 이슬람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지만, 유럽이 폼페이의 재떨이 속으로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옛날의 유럽’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언젠가는 유치원, 초·중등학교의 교실 내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이주민의 자식으로 채워질지 모른다. 이 추세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래커는 “이처럼 유럽이 변하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알지 못하고 있으며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현재 EU 인구는 4억5000만명이다. 그러나 2300년에는 5900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한다. 유럽의 절반 이상 국가들은 각각 현재 인구의 5% 정도만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고령화 속도는 더욱 심각하다. 2050년의 평균연령을 보면 독일은 44.9세, 영국은 43.4세, 러시아는 45.3세다. 바꿔 말하면, 유럽이 어느 정도의 경제활동을 계속 유지하려면 노동력의 유입이 전제조건이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 노동력의 유입은 유럽대륙의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유럽경제가 호황기 때, 노동력의 부족을 이주민에 의해 조달했다. 특히 독일이 그러했다.(한국의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를 떠올려 보라!) 현재 독일의 정확한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알 수 없지만 5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중 이슬람계의 외국인들이 400만명을 능가한다. 이미 독일경제는 이주민 노동력이 없으면 기능하기 힘들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그러하다. 고급인력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0년 당시 슈뢰더 독일 수상은 이른바 ‘녹색카드(green card)제’를 도입해 IT 전문가들을 유치했다. 현재 약 4만명의 고급인력이 녹색카드에 의해 독일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EU도 최근 들어 청색카드(blue card)제도를 도입해 외국의 고급인력을 유치하는 실정이다. 그뿐 아니다. 독일기업들에서 전문기능공, 숙련공의 부족은 심각한 처지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노동력 부족을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오늘날의 유럽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10년 11월 독일 토마스 데 메지에르 내무부 장관이 테러 공격에 대한 위험이 높다고 발표한 가운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기차역에서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메지에르 장관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부터 새로운 테러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유러비안(Eurabian)’이란 용어를 쓴다. 이는 아랍인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치욕적인’ 유럽 출신 피고용인을 뜻한다. 지금은 과장된 표현으로 느끼지만 200~30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이슬람 공포증(islamphobie)’이란 표현을 ‘테러 공포증(terrophobie)’과 동일시하는 것도 과장이다. 발터 래커는 부연하기를 “이슬람교를 세계적 종교의 하나로 인정한다면 이러한 선동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래커는 “결국 유럽에서 문제되는 것은 이슬람교도들의 통합”이라고 분석한다. 이주민 이슬람들의 출신지는 대부분 농촌지역이며 빈곤지역이다. 근대화(서양화)의 영향이 전혀 없었던 곳에서 출생해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두철미한 이슬람교 신자들이다. 폐쇄적인 가족공동체 속에서 살아왔고, 유럽에서의 생활도 그들의 관습·가치관·행동에서 큰 변화가 없다. 사는 지역이 유럽이지 거의 모든 것이 본국의 생활과 똑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각국은 통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결과는 좋지 않다. 정치인들의 문제의식의 깊이는 일천하며, 통합문제를 이주민들의 일방적인 ‘적응’, ‘순응’ 정도로 이해한다. 대부분의 이주민은 유럽 나라들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데, 대개가 자기네들끼리 거주하고 있어 현지어를 습득할 필요성조차 못 느끼고 살아간다. 젊은이들은 현지의 ‘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수용하지 않고 이슬람교 및 족벌의 수장을 선호한다. 만약 소수인 이들이 향후 학교에서 다수가 되면 학교의 교과내용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현재로선 아무런 대책이 없다.
 
  래커는 결론을 맺는다.
 
  ‘오늘날의 유럽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라친의 베스트셀러 《독일은 없어진다》
 
노르웨이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및 수석부총리 칼 아이리크 쉐에트-페더슨. 2011년 7월 24일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슬로 성당에 도착했다.
  ‘문명 간의 갈등’으로 유명한 헌팅턴(Huntington)의 후계자가 독일에서 나타났다. 베스트셀러 《독일은 없어진다(Europa schafft sich ab)》를 쓴 자라친(Sarrazin)이다. 그는 독일 사민당당원으로 베를린 주 정부의 재무상을 지냈고, 그 이후 독일중앙은행의 이사로서 활약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사다. 그는 독일에서 진행 중인 기독교와 유대교의 민주주의, 개인주의와 이슬람의 반민주주의, 폐쇄주의 간의 갈등을 말하면서 독일에서 이슬람 통합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지난 3월 출판되기 전부터 이 책은 독일에서 국수주의의 상징으로 인정됐으며, 단시간 내 100만 권 이상 팔려 나갔다. 많은 독일인은 자기들이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적나라하게 대변했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이미 이슬람문화와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결과 없는 토론만 반복하고 있었다. 더욱이나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가 EU 회원국이 되는 것을 기민당, 기사당은 못마땅하게 여겨 왔다. 사민당, 녹색당 등을 중심으로 한 좌파들은 독일사회가 ‘다문화사회(multikulti)’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기민당·기사당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은 독일문화가 ‘지배적인 문화(leitkultur)’가 돼야 한다는 점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메르켈 수상의 견해는 무얼까.
 
  메르켈 수상은 다문화주의가 독일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메르켈은 그 해결책으로 “독일문화의 지배하에 이슬람 이주민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는 이러한 발상이 국수주의적·제국주의적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자라친의 책은 독일의 현실을 말하면서 “독일 내의 탈(脫)독일화 현상이 현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독일의 정치·사회·문화·종교 등은 이러한 현상을 그냥 간과했다”는 것이다. “독일사회의 소수가 점차 다수가 됨과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IQ가 낮은 이주민의 사회로 전락하면서 독일사회는 일종의 ‘우인(愚人)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자라친은 우려한다. 마치 히틀러가 게르만족 이외의 민족을 열등민족이라 칭한 것을 상기시킨다. 이런 견해를 두고 여론조사를 했더니 독일 국민의 35%가 찬성, 38%는 반대했다. 긍·부정이 거의 동수로 표출된 것이다. 이는 독일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극우세력’, ‘통합주의 반대’가 잠재해 있는지 알게 한다.
 
  그래서 사민당은 이구동성으로 자라친의 당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독일 여론은 자라친이 독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한 사람으로서 독일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정정당당하게 발표했다고 지원하는 목소리도 자자했다.
 
  독일 내 터키출신 이주민은 약 14.8%에 이른다(EU는 12.8%). 인구학자들은 터키가 EU 국가에 가입될 경우, 2025년 터키 인구는 EU의 15.5%, 2020년에는 EU의 17.7%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거의 5명 중 한 명이 터키인인 셈이 된다. 그리고 EU의 인구감소율을 감안하면 2059년에는 22%에 이를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독일 사람들은 이슬람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장 현저한 사실은 정부 및 독일인들의 ‘무관심’ 때문에 사회과학적 연구가 너무 저조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슬람인들의 폐쇄주의 경향 탓에 독일인들과의 접촉이 없다. 독일가족, 동호회 외의 접촉도 거의 없다. 현재 독일에서 사는 약 400만명의 이슬람 신자는 출생 때부터 이슬람교 신자들이다.
 
  유럽국가의 이슬람교 신자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슬람 신자 중에서도 교리에 의해 보수, 극도의 보수가 있다.
 
  독일의 경우 살라피즘(Salafism·이슬람 수니파의 한 갈래로 초기 엄격한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편집자 주)을 중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슬람 신자 중에서 극우보수파이며, 독일 내의 그 수는 3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들의 목적은 국가, 사회, 개인생활을 완전히 변혁해 “독일을 이슬람 신국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교주(敎主)인 터키계 무하메드 치프트치(Muhamed Ciftci)는 “독일의 민주사회 질서를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독일 정보기관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두 명의 미국병사를 살해한 테러와 관계가 있다고 독일 정보기관은 보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슬람 신자의 통합정책이 없다
 
  EU는 물론이고 대부분 유럽국가는 장기적인 이슬람 통합정책이 없다. 다만 EU 차원에 알쏭달쏭한 ‘다양성 정책(diversity policy)’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다문화 정책’으로 한국에서 오해하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것은 이주민의 직업과 숙련도, 출신지 등의 다양성을 말한다.
 
  노르웨이 참사 이후 일부 유럽언론에서 자잘한 논평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또 EU 내에서 공동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는 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영국의 방화사건이나 유럽대륙(특히 독일)의 파급,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파탄에 따른 유로화의 생존문제에 관한 과열한 논쟁 속에는 이슬람 정책의 시급성을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이슬람 문제는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중동 전문가이자 경제학자인 전 베를린 자유대 슈바니츠(Wolfgang Schwanitz) 교수는 유럽의 미래를 네 가지의 시나리오로 말한다.
 
  첫째, 자유주의적 유로 이슬람주의(liberal Euroislamism)다. 민주적으로 이슬람교도들을 평화적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EU 회원국들이 원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으나 장기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소수파를 위한 ‘게토주의(Ghettoism)’다. 이미 유럽의 도시들에는 이러한 격리되고 폐쇄된 지역이 적지 않다. 이러한 지역을 유로비아(Eurabia), 또는 유로스탄(Eurostan)이라 부른다. 현재 런던, 파리,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등 이슬람인들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들이 번성하고 있다. 심각한 예가 베를린의 크로츠베르크다. 유감스럽게도 유럽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정책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소수를 한 지역에 몰아넣어 방치하는 졸렬한 격리정책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소수민족의 지역문화가 생기고, 한 도시 안에 ‘조그마한 이슬람 국가와 사회’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이 지역을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무정부 상태가 될지 모른다.
 
  셋째, 문명 간의 갈등이다. 소수민족을 반민주주의 세력으로 보고, 소수민족을 추방하거나 무력으로 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소수민족의 통합은 전연 고려될 수 없으며, 민주국가의 비민주적·비인도적 갈등만 부추길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넷째, 소위 말하는 ‘요새 유럽정책’이다. 지방마다 있을 수 있는 폐쇄적인 이슬람 정책이 뻗어 나가, 결국 광범한 폐쇄지역(예를 들어 남구, 북구, 중구 등)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합 유럽 안에 수개의 블록이 생긴다.
 
  슈바니츠 교수는 결론적으로 첫 번째의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대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독일 정부는 공개적으로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다섯째의 시나리오를 말한다, 그것은 이슬람제국의 내성적 변혁(안으로부터의 혁명)이다. 이집트 출신 언론인이자 정치학자인 하메드 압댈-사마드는 지난해 《이슬람 세계의 몰락》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출판했다. 그는 중동지역에서 퍼지는 인터넷 족인 젊은 세대의 역동성, 이슬람교의 개혁 회피, 왕족중심 이슬람 국가들의 독재(獨裁)와 치부(致富), 빈부격차의 심화 등 이유에서 이슬람 세계의 몰락을 예언했다. 그러고 보니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 이어 조만간 시리아도 민주화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하메드는 “이슬람 세계가 몰락하면 수많은 피난민이 유럽으로 밀려올 것이며, 그들은 자국에서의 종교적·정치적·경제적 갈등을 그냥 그대로 유럽으로 이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견해는 독일 출신 문화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가 쓴 《서구의 몰락》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아직 이슬람을 탈출하는 피난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아랍 젊은 세대의 민주화 운동이 유럽의 이슬람 통합과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즉,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는 유럽 내 이슬람계의 민주적 통합에 적지 않은 자극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더욱이 리비아 반란군의 승리는 나토의 도움도 있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즉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국가들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와 소통
 
  이슬람 통합정책은 한계비용적으로 추진해선 곤란하다. 정치인들의 기계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근시안적 접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회비용적인 입장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르웨이 옌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총리는 ‘참사’ 직후 한 연설에서 “우리나라는 과격한 테러리스트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강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도, 법, 조직을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통합정책은 ‘밑에서부터’ 시작한다. 위에서부터의 훈령, 법에 따라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절멸(絶滅)’하려는 일부 극단적 테러리스트의 마음을 돌려놓으려면, 모든 국민의 일상 속에서 소수자인 이슬람 신자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쌍방 간의 부단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슬람인의 시급한 과제는 유럽사회에서 살기를 결정한 이상 현지의 언어, 가치관, 생활관습을 습득할 적극적인 용의가 필요하다. 그들은 더욱 개방적인 교육의 혜택을 향유하려면, 2세들의 교육(유치원, 초등학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유럽인들은 18~19세기 낭만적인 이슬람 융합주의를 주장하며 일방적인 교도, 훈령을 삼가야 할 것이다. 소수 이주민과의 생활을 위한 사회적 소통도 필요하다.
 
  유럽의 통합과정을 단순히 기능주의적 입장에서의 통합을 강조해 왔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는 이슬람 신자들과의 융합이다. 새로운 통합이론과 정책이 절실하다.
 
  한국을 들여다보자. 이미 15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살고 있다. OECD회원국 중 가장 저조한 출산율, 가장 빠른 고령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노동력 부족의 심화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미래도 결코 밝지 않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있는가. 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Montesquieu Charles)가 ‘민주주의는 매일 실행되는 국민투표’라고 했다면, ‘통합정책은 쌍방간의 끊임없는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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