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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日本경제

16년 전 고베대지진과 동일본대지진의 차이

대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고베대지진의 1.8배인 약 70조엔 추산

글 : 염동호  경제학 박사·일본 호세이대학 겸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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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의 경제적 추정손실액이 나왔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복구계획도, 직접 손실액이 20조엔에 달하는 복구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도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 21.5조엔 투입된 고베대지진 당시 복구비로 GDP를 2.3%나 끌어올렸지만…
⊙ 국내외 환경변화 외에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3중고 겪어
⊙ 복구기업 지원회사 등 공익자본주의의 실천적 사례로 볼 만한 기업문화 생성도

廉東浩
⊙ 46세. 경희대 졸업.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저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괴짜 경영학》.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가 어리석으면 민초가 고생을 했다. 일본이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
 
  내각 지지율 16%, 집권여당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13.6%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고 있다. 내각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과거라면 내각의 총퇴진을 의미했다. 이처럼 급락하는 내각 지지율을 배경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간 총리는 성과 없는 정책을 남발하며 국난극복을 강조한다. 장관들은 자신들의 임명권자인 총리가 사임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며 공공연히 퇴진을 논한다.
 
  총리의 기자회견장에 항상 자리를 지켜 왔던 관방장관이 배석하지 않고, 각료끼리도 서로 의견이 달라 콩가루 내각이라는 지탄이 나온다. 레임덕은 벌써 오래 전에 시작되었건만 벌거벗은 왕은 총리의 의자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형국이다.
 
  민의정치가 최고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해 온 일본 국민들이지만 현재 펼쳐지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에는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의원내각제의 조정기능도, 여론조사에 좌우되었던 민의정치도 기능하지 않는 정치권에 국민들은 등을 돌린 지 이미 오래다.
 
  동일본대지진의 경제적 추정손실액이 나왔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복구계획도, 직접손실액이 20조 엔에 달하는 복구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도 아직 논의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러다 보니 후쿠시마(福島) 원전대책은 물론 복구대책도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여당 민주당과 내각은 각종 명목의 재해관련 대책팀과 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은 팀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선원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형국이다.
 
  문제는 당장 복구에 필요한 재원은 추경예산으로 충당하겠지만, 복구를 위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시산에 따르면 건물과 사회기반설비 등 직접적 손실만 약 16조~25조 엔에 달한다. 여기에 물류, 생산설비, 고용 등 간접적 손실이 약 40조~50조 엔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총 경제적 손실은 약 70조 엔에 달할 것이라는 시산이다. 이는 16년전 고베(神戶)대지진 당시 약 40조 엔의 약 1.8배에 달하는 규모다. 참고로 고베대지진의 경제적 손실은 약 40조 엔이었다. 이 가운데 직접손실 10조~13조 엔, 간접손실 약 30조 엔이었다.
 
 
  무능한 지도자
 
  1995년 당시에는 거액의 예산배분을 통해 도로와 주택 등이 새로 건설되고 기타 사회기반설비도 재정비되었다. 당시 총사업비는 21.5조 엔으로 GDP를 2.3%나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금융·경제적인 영향과 파급효과를 추산하고 있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러한 당시의 경험에서 단기적으로 일본경제가 침체하지만 경제활동이 급격히 확대돼 과세기반이 개선되고 GDP가 개선된다는 시나리오를 내놓은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당시와 유사한 점은 지진이 안정된 후 희생자를 정리하고 피해 가구 등 상황을 파악해 통계를 냈다는 것뿐이다. 그 외의 상황은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 및 경제상황이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베대지진과 동일본대지진의 규모 등 특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국내외 정치환경, 세 번째는 국내 경제환경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995년 고베대지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이번에는 지진만이 아니라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3중고를 겪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고베대지진의 2배 이상이다. 또한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일본 공업생산의 40%가 집중돼 있는 도쿄에까지 영향을 미쳐 수요와 공급 면에서 일본 전체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급제약이다. 도산 건수도 2배를 넘고 있지만 고베대지진 때는 서플라이 체인이 3개월을 기점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혼란이 지속되고 있고 대기업을 비롯해 생산거점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 권역에 들어 있는 반도체 파인세라믹스를 생산해 온 대기업 TOTO 파인세라믹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사실상 철수를 결정했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과거에 없던 공급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전력의 공급능력을 사고 전으로 돌려놓기까지는 1~2년으로는 불가능하며 기약할 수 없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로 인해 잠재적 GDP 성장률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 번째는 일본 국내의 정치사회적 상황변화다. 인구구조 면에서 16년 전에 비해 고령화가 더욱 진행되었고 국가재정이 크게 약화되었다. 당시는 정치권도 변혁기에 있었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간 정권은 야당은 물론 집권당인 민주당에서조차 퇴진압력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간 총리가 직접 임명한 각료들조차도 총리에 반기를 들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등 사분오열 상태다. 또한 당시처럼 강력한 당수나, 힘을 규합할 수 있는 정치력을 지닌 정치가도 없다.
 
 
  늘어난 공적 채무 규모
 
  네 번째는 국제시장의 환경변화다. 1995년에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호조로 보였다. 미국의 정보통신 기술혁명, EU의 정치·경제적 통합, 중국의 호경기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며 세계경제를 견인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은 어렵게 디폴트(Default) 위기를 면했지만 재정적자와 실업률이 높아 국가 신용등급마저 강등 위기에 있다. EU는 그리스 위기를 계기로 파급 조짐을 보이고 있는 재정위기라는 눈앞의 불을 끄기 위해 남의 나라 사정까지 보살필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가? 세계 최고의 외화준비,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살을 깎으면서까지 협조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러한 중국의 태도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는 선택가능한 정책수단의 변화다. 일본의 공적채무 규모는 95년 당시 GDP대비 85%였는데 지금은 205%로 2.5배나 늘어났다.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도 16년 전에는 AAA였지만 지금은 AA-로 크게 하락했다. 이러한 결과는 재정 면에서의 대응에 유연성이 떨어졌다는 의미이며 재정정책을 비롯해 일본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크게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 번째는 금융정책의 한계성이다. 실질금리가 이미 제로에 이른 상태이며 이러한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은 중앙은행 고유의 정책수단을 벗어나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형태로 유동성 확대에 진력하고 있지만 제로금리 상태에서 금융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복구국채든 적자국채든 어떤 형태로든 국채를 발행한다 해도 일본은행과 민간시장의 흡수 여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상태에서 복구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는데, 이와 더불어 복구를 위한 재원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중요해진다. 현재 혼란이 거듭되고 있지만 3가지 안이 주목을 모으고 있다. 첫 번째는 ‘복구채’와 ‘복구세’를 융합한 형태의 정부안이다. 복구채를 발행해 단기적으로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고 그 후 복구계획이 구체화된 후에 본격적으로 복구자금이 투입될 때 소비세 형식의 목적세로 복구세를 도입해 복구채를 상환해 가자는 안이다.
 
 
  복구세 도입
 
  두 번째는 복구채 대신 복구세를 도입하자는 안이다. 이 안은 재무성이 주장하는 것이다. 재무성이 복구채 발행에 소극적인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는 복구채 발행에 따른 재정악화 확대이고, 두 번째는 대규모 국채를 일본은행이 인수해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하지 못할 경우, 일본국채에 대한 평가가 하락해 장기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무성이 이처럼 적자국채 발행에 난색을 보이는 것은 선진국 가운데 최대 규모인 일본의 재정악화 때문이다. 일본의 2011년도 국채의존도(일반회계에서 차지하는 신규국채 비율)는 47.9%이다. 국채잔액도 GDP의 140%에 육박하는 600조 엔을 넘었다(지방공채까지 합하면 GDP의 174%).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성으로서는 아무리 대지진이 발생했다 해도 더이상의 재정악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세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외자산을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안이다. 이 안은 학계를 중심으로 일부 학자들이 제시하는 안으로, 적자국채나 세금을 통한 재원조달은 미래에 대한 부담이 되지만 대외자산 활용은 전체적으로 일본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대외자산은 2009년 말 현재 559조 엔이다.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은 266조 엔. 복구자금 16조~25조 엔을 모두 대외자산으로 조달해도 순자산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대외자산의 보유형태를 보면 직접투자가 68조 엔으로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반면 증권투자는 262조 엔(이 가운데 채권이 207조 엔)으로 47%이다. 50% 가까이를 유동성이 높은 형태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매각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조달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외화준비는 약 89조 엔이다. 일본이 외화준비를 급격히 확대한 시기는 2003년에서 2004년으로, 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35조 엔분의 달러를 구입하는 시장개입을 한 후 그대로 보유한 결과다. 각국이 외화준비를 보유하는 것은 고정환율제도하에서 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변동환율제하에서는 환율변동을 통해 국제수지를 조정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외화보유 목적에서 보면 일본의 경우 거액의 외화보유가 필요없다. 최근 각국이 외화보유에 관심을 두는 것은 투기자금의 공격이나 이동으로 인해 급격한 통화 약세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헤지펀드 등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과다보유분을 복구재원으로 활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 조업 재개 지원회사 등장
 
  이러한 안에 재무성은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미국에 대한 배려다. 1997년 당시 일본 당국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미국 국채를 팔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었다”는 발언을 했을 때 뉴욕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미국은 국채 매각에 민감해졌고 일본 국내에서도 미국 국채를 매각하자는 논의는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대외자산 활용론자들은 지금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세계 최대 외화보유국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며, 중국은 정부계 운용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일본만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외화준비는 순수한 정부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화를 구입하기 위한 자금은 단기국채로 조달되고 있는데 정부 측에서 보면 외화라는 자산과 단기국채라는 부채가 대립되는 개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외화자산을 처분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유하고 있을 경우 단기국채는 상환되지 않고 계속해서 롤오버(대환)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국채를 장기국채로 대체해도 일본 국내 금융시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다.
 
  세 번째는 재정규율에 대한 우려다. 경상지출에 외화준비를 사용하면 재정건전화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화사용론자들은 용도를 1회에 한하고 지출을 소비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스톡으로 남기면 된다고 주장한다. 즉 경상지출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채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사회자본의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처럼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좀처럼 구체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아 장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속한 조업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재건자금이다.
 
 
  뮤직 시큐리티
 
  이러한 기업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는 기업들이 주목을 모으고 있다. 먼저 펀드를 모집해 중소기업의 조업재개를 지원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주식회사 ‘뮤직 시큐리티’다. 뮤직 시큐리티는 중소기업 재건을 자금 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1년 ‘보다 자유로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무명의 아티스트를 지원하기 위해 ‘음악펀드’를 모집·운영하는 회사로 창업한 뮤직 시큐리티는 10년간 음악을 비롯한 18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51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총 115개 펀드를 모집, 운영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뮤직 시큐리티는 마이크로 파이낸싱으로 자립을 통한 빈곤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출자금과 기부금이 조합된 펀드
 
캔빵을 만드는 회사 ‘빵 아키모토’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들에게 소량의 물로도 먹을 수 있는 캔빵을 대량 공급했다. 사진은 ‘빵 아키모토’가 만드는 캔빵 제품들(위)과 ‘빵 아키모토’ 매장(아래).
  이 회사가 중소기업 재건사업에 뛰어든 것은 3월 지진발생 이후 현지 NPO 관계자가 중소기업 재건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없겠는가를 고민하던 중이어서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출자를 원하는 기업이 홈페이지에 재건계획 등을 게재하고 설명회를 여는 등 홍보활동을 하며 자금을 공모한다. 이 사이트를 보고 응원하고 싶은 기업이 있으면 누구나 회원가입을 통해 출자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펀드의 최대 특징은 출자금과 기부금이 조합된 형태라는 것이다. 펀드는 한 계좌당 1만 엔인데, 그중 5000엔은 기부금이고 남은 5000엔이 출자금이다. 이 점이 다른 펀드와 다른 부분이다. 50%를 기부금으로 함으로써 피해지역 기업들의 재건에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물론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배당을 받을 수 있고 투자자로서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현재 응모한 기업 가운데 펀드모집 심사를 통과한 기업은 11개사. 모집 개시 후 3개월이 지난 현재 출자자는 7500명을 넘었다. 대부분의 기업이 한 달이 되지 않아 목표금액인 1000만엔을 모집했다.
 
  ‘뮤직 시큐리티’가 펀드의 형태로 현지 기업을 지원했다면, 주식회사 ‘빵 아키모토’는 자사의 특성을 100% 활용하는 방법으로 현지 이재민들의 허기진 배를 달랬다. 도치기현에 본사를 둔 ‘빵 아키모토’는 자사의 독자적인 기술을 살린 부식하지 않는 ‘캔빵’을 지진 발생 직후부터 현지에 무상으로 공급해 왔다.
 
  ‘빵 아키모토’의 캔빵은 통조림처럼 캔에 빵을 넣는 독자적인 기술이 채용된 것으로, 재난시 보존식이나 비상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키나와현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 기지에도 납품되고 있으며, NASA가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무균 우주식으로 인정한 빵이기도 하다.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도 3년간 부식하지 않고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로 만들어졌다.
 
  지진 발생 직후인 3월에는 물도 부족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때 소량의 물로도 먹을 수 있었던 빵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일본 국민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은 지진 발생 후 아키모토 사장의 선택이다. 빵 아키모토 자체도 지진으로 인해 60%밖에 조업을 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지진이 발생하자 전국에서 비상식으로 캔빵 주문이 쇄도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키모토 사장은 재고를 모두 현지로 보내기로 했다.
 
  “경영상태가 그리 넉넉한 상황이 아니어서 매출도 중요했지만 가스도 물도 없는 상황에서 굶주리고 있을 이재민들이 이 빵을 더 기다리고 있을 것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 후 비상 생산체제에 돌입했고, 비상체제로 생산한 빵들은 모두 주 1회 직원들과 함께 현지로 직접 가서 나눠 주고 있다. 그 비용은 대부분 매출액 가운데 회사를 유지할 경비만 남긴 나머지로 충당하고 있다.
 
  4세대 자본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공익자본주의의 실천적 사례로 눈여겨볼 만한 기업문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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