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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秘話

CIA의 비밀전쟁

“백 번도 넘게 빈라덴을 죽일 수 있었다”

글 : 주성민  군사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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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라덴을 죽일 계획을 수십 가지나 세웠지만 위에선 퇴짜만 놓았다. 빌어먹을, 당시엔 10센트짜리
    총알 몇 개면 충분했다”(CIA 준군사조직 요원들)
⊙ CIA는 테러범 심문이 필요할 때는 요르단으로, 고문이 필요하면 이집트로 보내

주성민
⊙ 53세. 군사전문 저널리스트.
◎ 저서: 《소총수와 디지털 솔저》 《지중해의 문어 구이》.
버지니아 주 랭글리에 위치한 CIA본부.
  원격으로 조종되는 무인공격기 프레데터가 아프리카 지부티의 미군 기지를 이륙했다.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날아간 공격기는 목표물인 4륜구동 SUV를 카메라로 포착했다. 카메라의 영상은 미 본토 네바다 주 크리치 공군기지(Creech AFB)로 실시간 전송되었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파일럿이 보고했다.
 
  “차량 번호판이 확인되었다!”
 
  SUV에는 알카에다 간부 ‘카에드 살림 모하레티’가 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자 중앙정보국(CIA) 담당관은 공격을 지시했다. 무인공격기는 미 공군 11, 15 정찰대가 운용하고 있으나 모든 작전의 통제는 CIA가 관할하고 있다.
 
  CIA는 예멘 정보기관과 협력해 수개월 전부터 모하레티를 추적해 왔다. 그는 전 세계의 통신을 도청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에 대항해 수시로 전화기와 번호를 바꾸고 암호도 바꾸어 가며 CIA의 추적을 피해 왔으나 꼬리가 밟혔다. 강력한 레이저 유도 미사일이 탑재된 무인기는 고공에서 선회하며 목표물을 공격할 준비에 들어갔다.
 
  2002년 11월 3일, 예멘 마리브의 혼잡한 도심을 벗어난 차량이 사막지대로 접어들자 파일럿은 컴퓨터와 연결된 조종간의 발사버튼을 눌렀다. 입력된 목표를 향해 자동추적을 시작한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은 고속으로 날아가 SUV를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대기 중이던 예멘 정보기관 요원들은 헬리콥터로 현장에 도착해 불탄 시신을 병원으로 공수했고, CIA 작전팀은 확인된 모하레티의 시신에서 5대의 휴대전화기를 발견했다. 그는 2000년 10월 예멘에서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콜(USS Cole)을 폭탄 테러해 17명의 병사를 죽인 주범이며, 대통령 부시가 ‘반드시 제거하라’고 CIA에 명령한 주요 수배자였다.
 
  이날 작전은 CIA가 아프리카에서 무인기로 시도한 최초의 사살작전이었다. 미 공군의 공격용 무인기는 MQ-1 프레데터(Predator)와 개량형인 MQ-9 리퍼(Reaper)가 주력이다. 프레데터는 적외선 감지장치와 카메라, 레이더를 장착한 정찰기로 개발되었으나, 미사일을 탑재해 공격기로 운용되고 있다.
 
  지부티의 미군기지 ‘캠프 르모니에’는 프랑스 외인부대의 전초기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미군 연합합동기동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수행 중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지부티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지부티에서 항공기로 바다 건너 10분이면 예멘이고, 주위의 수단, 소말리아, 케냐 등 알카에다 근거지들이 지척에 있다. 지부티 주변국들은 대부분 통제가 안되는 나라들이라 테러리스트들은 이런 지역에 꾀어들기 마련이다.
 
  중부사령부 소속 합동기동부대는 500명이 넘는 테러리스트의 명단을 확보해 그들 뒤를 쫓고 있다. 기동부대 특수부대원들과 CIA 준군사요원들은 2009년 9월 소말리아에서 작전을 벌여 알카에다 간부인 살레 나브한을 사살했다.
 
  그는 2002년 케냐 몸바사에서 270명을 태우고 이륙하던 이스라엘 항공기에 미사일을 발사해 폭파를 시도했던 사건의 주범이다. 알카에다 조직원이 발사한 2발의 미사일은 모두 빗나가 승객들은 다행히 무사했다.
 
 
  숙적관계였던 빈라덴과 카퍼 블랙
 
빈라덴과 숙적이었던 카퍼 블랙.
  지난 5월 미 해군 네이비실 대원들에게 사살당한 빈라덴을 CIA가 처음 안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에 대항해 무장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이 아프가니스탄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시기였다.
 
  빈라덴은 밀매된 중국산 AK 소총과 자금으로 무자헤딘을 지원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엄청난 재산가였으나, 포획한 전차로 소련군 포로를 깔아 죽일 만큼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CIA는 그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가장 위험한 존재란 사실은 알지 못했다.
 
  10년간의 긴 전쟁에 병력과 물자만 소모하던 소련의 붉은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1989년 철수하자 빈라덴은 총구를 미국으로 돌렸다. 2년 후 중동에서 걸프전이 시작되자 그는 전 세계 무슬림을 향해 ‘미국인을 죽여야 한다’고 선동했고, 수단에서 국제적 테러 네트워크 알카에다를 조직해 캠프를 만들고 훈련시켰다.
 
  빈라덴을 위험인물로 지목해 감시한 사람은 CIA 수단지국장 카퍼 블랙이었다. 그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30여 년 간 첩보활동을 해 온 베테랑 요원이며, 전 세계적 1급 지명수배자였던 칼로스 재칼을 체포한 수배팀의 리더였다. 재칼은 국제적인 청부를 통해 일해 온 가장 악명 높은 프로페셔널 테러리스트였다.
 
  블랙은 빈라덴을 집요하게 추적했고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클린턴 행정부는 승인해 주지 않았다. 블랙과 그의 현장요원들은 빈라덴을 죽여 이란 대사관 안으로 던져 넣고 ‘대사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수단 기관에 신고해, 이란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도 세웠다. 그러나 빈라덴과 그의 간부들을 제거하는 그 어떤 작전도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소말리아에서 미군 18명이 전사하자 1993년 철수한 이후부터 미국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블랙은 빈라덴의 ‘살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빈라덴의 부하들은 블랙을 미행하며 여러 차례 죽일 기회를 노렸고, 때론 자동차 추격전을 벌였을 만큼 두 사람은 숙적 관계였다. 외교관으로 신분을 위장해 수단에서 1993년부터 2년간 지국장으로 있었던 블랙은 1999년 CIA의 심장인 대테러센터(CTC) 책임자가 되었다.
 
 
  100번도 넘게 빈라덴을 죽일 수 있었다
 
미 공군 무인공격기 ‘MQ-1 프레데터’.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근거지를 옮긴 빈라덴은 1998년 2월, “미국인을 죽이라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라”고 공개적으로 무슬림들에게 요구했다. 빈라덴의 지시에 따라 미국인을 목표로 한 첫 번째 테러가 6개월 후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8월 7일, 알카에다 동아프리카 지부 조직원들이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에 4분 간격으로 강력한 폭탄공격을 했다. 폭탄이 터진 케냐 나이로비 대사관에선 미국인 12명과 케냐인 230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고 CIA 대테러센터에는 비상이 걸렸다. 다음 날인 8일, 아프가니스탄의 CIA 비밀팀 요원들이 빈라덴을 찾아냈다. ‘파키스탄 국경 호스트 지역에 빈라덴이 있다.’
 
  백악관에서 안보담당 긴급회의가 소집되어 크루즈 미사일로 빈라덴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CIA 국장 조지 테닛과 클린턴 행정부의 안보담당팀은 증거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미루었다. 두 주일이나 시간을 끌던 작전은 8월 20일이 되어서야 승인되어 아라비아 해역의 미 해군 전함에서 미사일이 연속 발사되었다. 크루즈 미사일은 사전 입력된 지도와 실제 지형지물을 GPS로 대조해 오차를 수정해 가며 날아가 목표를 거의 정확하게 공격한다. 미사일은 목표지점을 타격했으나 빈라덴은 이미 그곳을 떠난 다음이라 죄 없는 현지 주민 20여 명만 목숨을 잃었다.
 
  나이로비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난 12월, CIA 파키스탄 지국장 게리 슈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날아온 1급 비밀전문을 받았다.
 
  ‘12월 20일, 빈라덴이 지역 유지의 집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전문을 보낸 사람은 비밀요원이었고 사실을 확인한 슈런은 즉시 버지니아 주 랭리의 CIA 본부로 긴급전문을 보냈다.
 
  ‘오늘 밤에 쳐야 한다.’
 
  해군 사관학교 출신인 슈런은 아프가니스탄 지역과 대테러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테닛 국장은 간단히 ‘기다리라’는 회신을 보내는 것으로 끝냈다. 그는 지난 8월의 폭격실패로 몸을 사렸고, 따라서 공격은 무산되었으며, 미국은 빈라덴을 제거할 기회를 또 놓치고 말았다.
 
  《뉴욕타임스》 기자인 팀 와이너는 국가안보와 비밀공작에 관한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테닛은 빈라덴의 제거를 원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의심이 더 컸고 용기보다 조심이 앞섰다. 미국은 빈라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일 능력이 있었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 주춤거리고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던 CIA 비밀팀은 1999년까지도 빈라덴의 행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했다. 요원들은 빈라덴을 감시하며 50m 거리까지 접근한 적도 있었고, 모든 동태는 슈런에게 보고되었다. 언제든 빈라덴을 잡을 준비를 갖추고 있던 슈런은 그 후에도 제거를 요구했으나 테닛 국장은 공격적인 일은 벌이지 않으려 했다. 한편 클린턴 대통령 역시도 정치적 결정 앞에서 뒷걸음치느라 끝내 빈라덴을 제거하지 않았다.
 
  뉴욕 맨해튼 중심을 ‘그라운드 제로’로 만든 9·11 테러 이후,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했던 CIA 준군사조직 요원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백 번도 넘게 빈라덴을 죽일 수 있었다. 죽일 계획을 수십 가지나 세웠지만 위에선 퇴짜만 놓았다. 빌어먹을! 당시엔 10센트짜리 총알 몇 개면 충분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간 CIA 작전팀
 
  CIA 비밀활동팀인 준군사조직은 두 부류가 있다. CIA와 계약을 맺고 청부인으로 일하는 그린배저(Green Badger)와 군에 전속된 특수부대원들이다. 복무 중 전속된 군인은 미 육군 대테러부대인 ‘델타’ 대원들이 대부분이다.
 
  CIA는 채용하기 전 신원을 조회해 모든 기록에 대한 뒷조사를 한다. 법적인 문제는 깨끗한지, 금전적인 문제는 없는지 상당 기간 조사해 결함이 없으면 CIA로 불러들여 계약한다. ‘세탁된 군인’으로 통하는 고용된 킬러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1급 비밀작전을 수행하지만 군의 이력서에는 절대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같은 팀인 그린배저는 실전 경험이 많은 특수부대 출신의 백전노장들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의 CIA 첫 작전팀은 소수의 특수활동국 요원들을 빼곤 대다수가 그린배저와 세탁된 군인들이었다.
 
  팀 리더인 작전관(Case Officer) 게리 슈런은 대테러센터 책임자 카퍼 블랙으로부터 빈라덴의 목을 드라이아이스를 채운 쿨러에 담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CIA 요원으로 30년째 일하던 슈런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체포가 아니라 죽은 시체를 요구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과거 소련군 점령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을 지원하는 일을 했던 슈런은 그곳 군벌들을 알고 있었으며 지역의 언어에 유창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간 작전팀은 100달러짜리 뭉치로 가져간 300만 달러를 지역의 군벌과 민간지도자들에게 풀면서 빈라덴과 그의 일당들을 추적했다. CIA 본부는 작전팀이 요구하는 것은 현금이든 물자든 즉각 수송기로 날려 보내 공중투하해 주었다.
 
  요원들은 민간지도자들에게 정보를 주면 필요한 것을 주겠다고 제의했고, 현지인들은 식량이든 약이든 가축사료든 요구한 것은 다음날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자료에는 2001년 10월부터 12월까지 두 달 사이에만 41개 지점에 108회 공중투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CIA는 민간지도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했으나 그들의 충성심은 언제든 변절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거듭된 제국들의 침략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속임수가 판을 치는 곳이고, 돈 때문에 양다리를 걸치는 군벌들의 이중성에 CIA는 전쟁 초기 7000만 달러를 풀었으나 빈라덴을 잡는 일에는 실패했다.
 
  CIA는 6개의 작전팀을 추가 배치해 빈라덴 사살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가 은신한 힌두쿠시 산맥으로 이어진 토라보라 산악지역은 길도 없으며 오래전 알렉산더 대왕이 1개 사단을 잃었던 험악한 곳이다. 빈라덴이 건설한 토라보라의 동굴 요새는 소련군의 공중폭격에도 별 피해가 없었고, 미국도 폭격기로 폭탄을 쏟아 부었으나 끄떡없었다.
 
  미 공군 B-52가 토라보라를 폭격하는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본 《뉴욕타임스》의 팀 와이너는 이렇게 보도했다. ‘12월 5일, 폭탄이 바위로 된 산악의 요새를 두들길 때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유도식 정밀무기가 아닌 재래식 폭탄으로 빈라덴을 잡겠다는 시도는 허망했다. 토라보라를 파괴하려면 아마도 전술 핵무기를 써야 했을 것이다.’
 
  공중폭격에는 한계가 있었고 빈라덴과 대결하려면 지하 수백 미터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그 지역은 너무나 넓고 험악해 CIA는 임무를 수행하기 힘들었다. 슈런의 작전팀은 빈라덴을 구경도 못해 보고 상당수 알카에다 간부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초기 작전을 마감했다.
 
 
  판지시르의 사자, 마수드
 
‘판지시르의 사자’라고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 지도자 마수드.
  미군 중장에 해당되는 고급간부인 작전관 슈런은 아프가니스탄의 전설적 전사 아마드 샤 마수드(Ahmed Shah Massoud)와 친분이 있는 CIA 요원이었다. 마수드는 1만5000명의 북부동맹군을 이끌며 1980년대 소련과의 항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저항세력의 지도자였다. 소련군 사령관들은 “그가 살아있는 한 아프가니스탄 점령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군사전략가였다.
 
  소련군은 마수드의 게릴라부대가 있는 판지시르 계곡에 최정예 병력을 동원했으나 9번 공격해 9번 모두 실패했다. 이때부터 종군기자들은 그를 판지시르의 사자(The Lion of Panjshir)라고 불렀다. 마수드를 따라 최전선에서 종군한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스트 레자 데가티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굉장히 지적이며 정직하고 인류애가 가득한 사람이며, 역사가 기억할 만한 인물이다.”
 
  이란 출신 데가티는 소련군에 저항하는 게릴라부대의 항쟁을 세계에 알린 베테랑 종군기자다. 마수드는 전사였으나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온건파였고, 그의 말 한마디에 저항군들은 목숨을 기꺼이 걸고 ‘마수드’를 외치며 적진으로 돌격해 갔다. 2년간 접촉 끝에 마수드를 인터뷰하며 탈레반과의 전투현장을 취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팀은 그의 강력한 영향력에 놀라워했다. “한 사람에게서 저만큼의 긴장감과 유머와 따뜻함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마수드는 대학생 시절 공산주의 정권이 집권하자 저항운동을 시작했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 5개 사단을 몰아내려고 10년을 싸웠다. 소련이 퇴각하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며 공포로 떨게 만들었다. 탈레반에 반대한 마수드는 “비극적인 내전을 끝내고 국민들의 희생을 막으려면 저항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평화와 정의를 이루기 위해 그들과 싸웠다.
 
  탈레반은 포고령을 선포해 여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7만여 명의 여학생들을 학교에서 쫓아냈다. 손목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탈레반은 여자들을 죽도록 폭행하며 학대했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교육받은 여자들은 살아갈 방법이 없어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다. 탈레반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함락시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85%에 이르는 여자들의 문맹률을 낮추려고 학교를 세워 교육시키려 애쓰던 마수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취재팀의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자도 교육받고 직업을 가져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바꿀 만한 지도자였으나, 9·11 테러 2일 전 모로코 기자로 위장한 2명의 알카에다 자살폭탄 테러범이 카메라에 숨긴 강력폭탄을 터뜨려 사망했다. 그가 암살되자 북부동맹군은 널리 존경받던 강력한 중심인물을 잃고 말았다. 마수드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에는 무능한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가 들어서 부패에 빠져 있고, 미군이 10년을 주둔했지만 아직도 상황은 안정과 거리가 멀다.
 
 
  CIA 우즈베키스탄 고문센터
 
  CIA 준군사조직은 특수활동국의 지휘를 받으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10년 간 ‘고가치 표적’들을 제거해 왔다.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작전을 주도하는 CIA는 작전을 극비에 부쳐 왔고 국방부도 이들의 활동을 부인하고 있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부대다.
 
  요원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다리 달린 총’이라 부른다. 총이 하는 일은 타깃을 찾아 죽이는 일이지만, 이런 저런 간섭 따위는 안 받는 데다 급료도 최소 연간 10만 달러 이상이라 그들은 별 불만이 없다. 세계 각지에서 테러리스트를 추적해 온 그린배저 요원들은 테러 용의자를 납치해 심문하는 일도 해 왔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 부시는 조지 테닛이 권한의 확대를 요구하자 1급 기밀명령서에 서명해 9월 17일 CIA로 보냈다. ‘비밀 팀을 구성해, 필요하다면 외교적 관례나 국제법을 무시하고, 체포하거나 죽이기 위한 작전을 실시해도 좋다.’
 
  전 세계에서 테러범을 체포하고 심문하라는 명령서에 따라 CIA는 세계적인 구금시설을 운영해 왔다. CIA 심문센터는 인권의식이 약해 정당한 법적 절차와는 거리가 먼 국가에 설치했고, 테러용의자에게 강압적인 심문이 필요할 경우 심문 강도에 따라 보낼 곳을 결정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2005년 12월 이렇게 보도했다.
 
  ‘용의자에게 관장제와 수면제를 투여한 후 기저귀를 채우고 운동복으로 갈아입힌다. 목적지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협력국가들이 운영하는 CIA 비밀수용소다. 이런 시설은 동유럽을 포함한 8개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CIA는 체포된 테러용의자를 14인승 걸프스트림 제트기와 보잉 737 항공기에 태워 폴란드, 시리아, 태국 등지의 시설로 강제 이송했다. 항공기들은 유령회사 소유였고, CIA와 계약된 민간 보안회사 ‘블랙워터’의 경량 수송기 CASA 212가 동원되기도 했다. 영국 BBC 방송의 프로듀서였으며 정보 관련 분야의 최고 저술가인 고든 토머스는 CIA가 임차해 이송에 사용한 항공기 기록을 밝혀 놓았다.
 
  ‘등록번호 N313의 보잉 737이 2005년 10월 한 달간 49회 비행하며 우즈베키스탄, 요르단, 이집트, 쿠바 관타나모 기지로 용의자를 이송했다.’
 
  CIA는 강도 높은 심문이 필요할 때는 요르단으로 보냈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문이 필요하면 이집트로 보냈다. 이집트에선 정보기관 고문기술자들이 용의자를 만신창이로 만들며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이따금 가장 강력한 고문이 필요한 경우 ‘주요 목적지’인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냈으며, 온갖 고문 방법이 다 동원되는 그곳에선 용의자가 살아 나오기 힘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CIA는 용의자를 현지 기관원들이 대신 심문하도록 해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했고, 때론 그곳에서 CIA 준군사조직의 훈련된 요원들이 용의자를 심문한 경우도 많았다. 보내진 용의자들은 변호사를 제공받지 못하는 건 물론, 그대로 사라지는 경우도 자주 있었으나, 가족들은 그들의 행방에 대해선 전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자신을 방어할 방법도 주지 않고 용의자를 고문하는 건 민주국가의 정보기관이 할 일은 아니었으며, 이런 사실에 환멸을 느낀 CIA 전직 간부 로버트 베어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적이 있다.
 
  ‘고문이 필요하면 이집트와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냈지만, 거의 돌아오지 못했다.’
 
 
  침략자들의 무덤이 된 아프가니스탄의 모래밭
 
침략자들의 무덤이 된 아프가니스탄의 모래밭. 미군병사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에서 무덤 옆을 지나고 있다.
  냉전(Cold War)이 종식된 이후 미국의 새로운 전쟁은 알카에다로 시작되었고, 테러리즘은 현실이 되었으며 테러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이 9·11을 통해 증명되었다. 정보기관이 정보력에서 실패하면 무고한 민간인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9월부터 CIA를 이끌게 될 미 육군 대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보가 없다면 군사작전은 재앙 속에 파묻히고 만다.”
 
  빈라덴은 죽었지만 알카에다는 여전히 미국의 안전에 위협적이며, 국제적 테러 네트워크에 대처하는 미국 방호의 주력은 CIA다. CIA의 전쟁은 그들을 저지해 패배시킬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승패는 CIA의 정보력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은 7월부터 철수가 시작될 예정이다. 미국은 7월의 첫 철군에 이어 2014년까지 10만명의 병력 전부를 철수시킬 계획이다. 소련군에 저항하던 무자헤딘은 유리한 지형에서만 공격해 치명타를 입히며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로 싸웠다. 이것은 베트남의 맹장 ‘보 구엔 지압’ 장군이 프랑스와 미국 두 강대국을 상대했던 전술이다. 그는 디엔비엔푸에서 55일간 전투를 벌여 프랑스 외인부대를 궤멸시킨 전략가다.
 
  미군은 과거 무자헤딘이 소련군을 상대로 했던 전술에 말려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간 피 흘려 왔다. 미군 전사자 1600여 명의 대다수는 비정규전인 게릴라전과 급조 폭발물에 사망했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전투에서 패한 게 아니라, 그들을 물러나게 만든 건 병력과 장비가 끝없이 소모되는 게릴라전쟁 때문이었다. 소련은 국가의 이미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나 10년간 빠져든 전쟁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각을 결정했다.
 
  소련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두 전쟁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소련을 물러나게 만든 건 값비싼 전쟁이었고, 미국 역시도 비싸고 인기 없는 데다 국민적 피로감이 극도에 이른 전쟁이 발을 빼도록 만들었다.
 
  19세기의 제국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했고,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의 야심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산되었으며, 21세기의 또 다른 제국 미국도 철군을 앞두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모래밭은 제국과 침략자들의 무덤이 된다는 사실이 역사의 반복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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