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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초등학교 교사의 영화 〈건국전쟁〉 관람기

‘교육자’였지만 교육 현장에서 철저하게 지워진 이승만

글 : 강윤민(필명)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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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한인여학원·한인기독학원 등 설립하고 ‘교육자’ 자처
⊙ 건국 후 국가 예산의 1/5를 교육에 투자, 박정희는 1/5를 경부고속도로에 투자
⊙ 여성 교육에 힘쓰고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확보했지만 양성평등 교육, 독도 교육에서 이승만 언급 안 해
사진=김덕영
  글을 쓰는 이 시점에 영화 〈건국전쟁〉 관객수가 110만 명을 넘어섰다. 오락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많은 관객이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이하 이승만)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건국전쟁〉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넘어 하나의 사건에 가깝다. 이승만이 아직 대중에게 논란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에 관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엄혹한 1940년대 전시(戰時) 체제하에서 일본제국주의의 눈을 피해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전하는 이승만의 단파 방송을 몰래 청취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온한 일’일 정도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교육자 이승만’
 
1954년 10월 인하공대 개교식 때 학교를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는 이승만 대통령(가운데). 인하대는 이승만이 세웠던 하와이의 학교 부지를 매각한 대금과 하와이 교민들의 성금으로 세운 학교다. 사진=인하대 총동창회
  필자는 30대 초의 초등학교 교사다. 그래서인지 〈건국전쟁〉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교육자 이승만’에 대한 것이었다. 해방 뒤 이승만이 사용했던 여권을 보면 직업란에 교육자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교권(敎權)이 땅에 떨어지고, 인격적 성숙을 돕고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의 가치가 크게 의심받고 있는 현 세태에서 자신을 ‘교육자’로 정의하는 외교 독립운동가, 대(大)정치가, 건국자의 모습은 큰 감동이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교육자의 자존감과 존엄을 다시 느꼈다. 때로 미미하게도 느껴지는 선생님, 교사가 어떤 큰 실천과 기적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여자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치기 위해 한인여학원을 설립했다. 물론 조선에서는 아직 여자들에 대한 학문과 지식을 가르친다는 것이 낯설던 때였다. 이승만의 신망이 워낙 높았기에 이승만이 세운 여학교에서 남학생들도 이승만 박사에게 배울 기회를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교가 한인기독학원이다.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과 관계있는 하와이의 여러 현장을 누비며 이승만이 어떤 일들을 이루었는지 담담하게 전한다. 이렇게 하와이에서 배우고 실력을 익힌 학생들은 이후 미국 사회의 책임 있는 중산(中産) 시민과 독립운동가로 자라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돕고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힘썼다.
 

  하와이 전체에서 미국인 박사도 드문 시절이었다. 조지워싱턴대 학부,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를 거쳐 자신의 국제정치학 논문을 대학 출판부에서 정식 출판할 정도였던 이승만이 하와이 사회와 한인 사회에서 입지가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18년 하와이대학 종합대 승격 운동이 벌어질 때 서명한 하와이 지역유지 483명 중 이승만은 유일한 박사 학위 소지자였다. 그는 하와이에서 주지사를 빼고 유일하게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딸 제시 윌슨의 청첩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이승만의 경부고속도로’
 
  1910년대 조선인들에게 그는 미국 땅의 조선인 영웅이고 챔피언이었다. 그가 3·1운동 이후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났던 8개 임시정부에서 정부 수반이나 외교 대표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3·1운동이 이승만의 외교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고, 임시정부는 그의 외교 독립운동에서 핵심 플랫폼이었다. 이런 점에서 일제 시대 내내 이승만의 활동은 좌충우돌 방황하던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비교할 때도 큰 일관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말과 글의 가치와 힘을 아는 독립운동가였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그는 국가 예산의 5분의 1을 교육에 쏟아부었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국가 예산의 5분의 1을 경부고속도로를 짓는 데 썼던 것처럼, 이승만은 배우지 못했으나 배우는 것이 소원인 백성들에게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돈을 썼다. 학교 교실에서 올망졸망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이승만의 경부고속도로’였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나라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변변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대부분인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승만은 국가가 기본적인 기능도 하지 못하던 취약 국가 시절의 대한민국을 이끌면서도 없는 형편에 돈을 쥐어짜 가난한 이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렇게 해서 배운 이들이 있었기에 북한이 전기(電氣)를 끊어버리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대한민국이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박정희의 과감한 경제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 영화에서는 이를 ‘박정희의 기관차가 이승만의 레일 위를 힘차게 달렸다’고 요약한다.
 
 
  ‘이승만 지우기’
 
한 어린이용 역사책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비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란 어떻게 보면 그저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역사를 싫어하는 어린 학생들은 왜 지나간 이야기들을 따분하게 배워야 하는지 반문(反問)하기도 한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뚫어내는 데 필요한 교훈과 지혜를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체성(正體性)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세계관을 정립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유랑하면서도 역사 교육을 강조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바르게, 알차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교과서와 교육과정이 이승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역사 교육이 바르고 알차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에서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워졌는지도 다룬다.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알렉산더 해밀턴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왜 이승만이 활동했던 한국과 미국 땅에서 그에 대한 기념물과 흔적을 찾기가 그토록 힘든 것인지 안타까워한다. 이것이 영화 〈건국전쟁〉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일 것이다. 또 많은 사람이 〈건국전쟁〉을 보기 위해 몰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승만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인데, 왜 우리는 그동안 이에 대해 전혀 몰랐고, 왜 학교는 이승만에 대해 왜곡되고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반복해서 전달했던 것인지 물었다.
 
  혹자는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한다. 조너선 펜비의 《장제스(蔣介石) 평전》, 제프리 로버츠의 《스탈린의 전쟁》,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 알렉산더 판초프·스티븐 레빈의 《마오쩌둥(毛澤東) 평전》, 후카마치 히데오의 《쑨원(孫文) 평전》, 그리고 손세일의 《이승만과 김구》 등을 읽어보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대중의 피상적인 이미지와 그의 실제 행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대중의 편견과 오해를 넘어 사실에 기초해 역사적 이해를 높이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권장받아야 할 일이다.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시대의 요구가 바뀌고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면 역사적 평가는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 수정주의(修正主義)’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왜곡과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독려하는 역사 교육 본연의 일이다.
 
 
  좌파는 되고 이승만은 안 된다?
 
  영화 〈건국전쟁〉에선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이승만이란 ‘딱지’가 붙은 영화는 절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는 분노와 체념 어린 한탄이 나온다. 문재인 정권은 독립운동가·항일운동가라면, 그가 사회주의자였어도, 해방 후 공산주의 활동을 했어도, 북한 정권에 부역(附逆)했어도 인정받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또한 북한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 사람들이, 조선 말기부터 평생에 걸쳐 나라의 독립과 부강을 위해 힘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냈고,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키고 발전시킨 이승만은 절대 기념해서도 안 되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고 억지를 부린 셈이다.
 
  결국 이승만을 독립운동가·애국자로 기념하려는 이들은 이승만의 배재학당 은사이자 독립협회 활동 후원자, 독립운동 시기의 조력자(助力者)였던 서재필(徐載弼·1864~1951년)을 기념하는 활동에 이승만을 깍두기처럼 끼워 넣어 조심스럽게 기념해야 했다.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회에서 ‘이승만의 날’을 발의했을 때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의 ‘시민단체’가 반발해 무산되었다는 영화 속 증언을 접하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승만은 하와이 한인들을 교육하고 이들의 힘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그런데도 일부 인사는 마치 이승만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매국노(賣國奴)라도 된다는 듯이 대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판매됐던 독립운동가 도시락 중 ‘이승만 도시락’이 당한 수모가 생각나 씁쓸했다.
 
 
  학교 교육에서의 이승만
 
  요즘 학교에서는 교과내용 외에도 법으로 정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교육이 있다. 양성평등 교육, 독도 교육, 통일·평화 교육, 인권 교육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양성평등 교육을 하면서도 이승만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승만이 하와이 시절부터 여학생들을 교육했고, 건국과 함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선각자임에도 말이다.
 
  독도에 대한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실효적(實效的) 지배를 확고히 한 분이 이승만 그분이었지만, ‘신라장군 이사부’는 가르쳐도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가르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일제 식민 지배, 태평양 전쟁, 6·25 전쟁 등 100년에 가까운 한반도의 전란(戰亂)을 종식하고 확실한 평화를 가져온 이승만과 한미동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인권 교육을 할 때에도, 공산주의 체제의 폭력성이나, 억지로 공산군에 끌려갔다가 북으로 송환되기를 거부하다가 이승만 덕분에 자유를 얻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새 삶을 살게 된 반공포로의 이야기는 가르치지 않는다.
 
  6학년 1학기 〈사회〉 과목에는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단원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이승만은 배울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독재자’로서만 등장한다. 구십 평생에 걸쳐 이승만이 벌였던 외로운 싸움 덕분에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는 데도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 왜곡되고 잊힌 것은 이승만뿐이 아니다. 박정희와 대한민국이 이룩한 값진 성취들도 마찬가지다. 학교 교육이 대중의 오해를 확대 재생산하고 대중의 편견에 철저히 복무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 교육 과정과 교과서를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건국전쟁〉의 개봉과 흥행 성공은 그래서 반갑다.⊙
 
[편집자 註]
  기고자는 경기도 교육청 소속의 초등학교 교사로, 이 글로 인해 교육 현장에서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실명을 밝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편집자는 초등학교 교사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쓰고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그 신분을 확인한 후 필명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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