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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개딸의 사회심리학

이재명은 ‘대안적 아버지’, 개딸은 ‘유사가족’

글 :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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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0세대 여성들의 과도한 정치화는 ‘빈둥지증후군’ 여성들의 낮은 자존감과 정체성 위기의 탈출구
⊙ 대학 시절 ‘광장의 추억’… 善惡 이분법적 사고, 개혁·진보·민주화·민족 등 추상적 개념에 과몰입
⊙ 자기들에게 굴복하는 민주당 정치인들 보며 지배·통제의 쾌락 느껴
⊙ 이재명은 사회적 자아정체성과 자기효능감을 확인하는 통로
⊙ 김건희 여사는 ‘권력 가진 가부장적 아버지인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들이 열망하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해 질투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모든전쟁:인지전, 정보전, 사이버전, 그리고 미래전쟁에 대한 전략 이야기》 저술
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도로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처리 결과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흔한 오해 중의 하나. ‘사람이 뭔가를 극단적으로 믿으면 극단적 폭력행동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IS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간 김군처럼 이슬람 지하디스트 극단주의에 심취되면 테러전투원이 된다고 생각한다. 리퍼트 전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의 경우도 배타적 민족주의와 극단적 반미주의와 같은 개인의 신념 때문에 폭력적으로 행동했다고 사람들은 추정한다.
 
 
  극단적 폭력의 원인은 복합적
 
지난해 6월 7일 국회 담벼락에 즐비하게 서 있는 이재명 의원 국회 입성 축하 화환. 사진=유민우
  다른 한편에서 사람들은 모든 극단적 폭력행동의 원인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조현병’ 등과 같은 독특한 정신병리적 특성들의 탓으로 돌린다. 2016년 오패산 터널 인근에서 사제총기로 경찰을 살해한 성병대의 경우는 조현병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걸로 설명됐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을 칼로 찔러 살해한 김성민 역시 조현병이 원인이라고 세간에 알려졌다.
 
  최근 국내 정치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개딸’ 현상 역시 유사하게 인식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극단적 반윤(反尹) 정서 또는 과도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팬덤이 온라인에서의 문자폭탄이나 오프라인에서의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에게 어떤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은 하나의 요인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폭력적 극단행동은 한 개인이 인생경로를 따라 획득하거나 경험하게 되는 성격적, 심리적 특성, 다양한 긴장(strain)·스트레스 요인들, 사회적 관계의 경험들이 상호작용하고, 퇴적되고, 숙성된 산물이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성격적·심리적 취약성들을 갖는다. 병적인 나르시시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믿는 과대망상증, 과도한 소명의식, 병적인 우울증이 그 예다. 개인적 욕망의 좌절, 자존감의 과도한 상처, 소외와 차별, 피해와 학대의 경험, 기회박탈 등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긴장, 스트레스 요인들이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정, 학교, 직장, 공동체 등으로부터의 단절과 배제는 사회유대(social bonding) 약화의 사례들이다. 사람들은 약화된 사회적 관계를 대체하는 대안적 공동체와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는 사회학습(social learning)의 과정이다. 그것이 종교적 또는 정치적 테러리즘이건, 종북주사파이건, 환경 또는 동물복지 등과 관련된 과도한 열정이건, 젠더와 관련된 격렬한 의사표시이건 이 같은 여러 요인 간의 상호작용이 숙성된 결과물이다. 이른바 ‘개딸’ 현상도 그렇다.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양한 요인이 김기종의 인생경로를 따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반미주의와 과도한 민족자주통일운동의 겉 포장지 내면에는 개인의 좌절된 자존감과 출세에 대한 욕망, 자기열등감, 성공한(속칭 출세한) 전직 운동권 동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초기 성년기에 형성되는 가치관
 
  주장은 진심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요구는 필요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실체이다. 오래전 글쓴이가 참여했던 미국의 인질협상 훈련에서 누누이 강조됐던 점은 이 둘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려운 점은 종종 이 주장이나 요구를 표명하는 행위 주체조차도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진심이나 필요가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온·오프라인에서의 개딸들의 극단적 주장과 요구들은 그들 각자의 내면에 꽁꽁 감추어진 진심이나 필요와 다를 수 있다. ‘개딸 현상’ 또는 ‘개딸들의 사회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은 밖으로 드러나는 이들의 극단적 행동과 의사 표시로부터 이들의 진심과 필요를 분리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극의 시작은 대략 개딸들이 경험했던 20~30년 전의 첫 번째 ‘인스톨(install·설치)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면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도 인식론, 가치관, 세계관, 역사의식 등과 같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판단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기본적인 인식체계가 대략 초기 성년기(10대 후반, 20대 초반에서 늦어도 30대 초반 시기까지)에 인스톨되게 된다. 이 시기에 인간의 뇌가 집중적으로 리모델링된다. 그리고 이때 리모델링된 뇌는 이후 거의 변화가 없으며, 일생을 두고 인식과 의사결정, 문제해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초기 성년기에 형성된 한 개인의 가장 근본적인 인식론, 가치관, 세계관, 역사관 등은 거의 일생 동안 바뀌지 않고 지속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과거 정부 당국에서 이미 초기 성년기를 훌쩍 지난 신영복과 같은 극단적 사회주의자에게 사상전향서를 쓰게 하고 또 이를 근거로 석방한 것은 학자적 관점에서 볼 때는 의아한 일이다.
 
 
  개딸들의 대학 시절
 
  개딸들에 대한 최초의 프로그램 인스톨은 대략 그들의 대학 시절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물리적 또는 정서적으로 과거 대학가를 장악했던 주사파 운동권에 의해 하이재킹(highjacking·납치)되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맹폭을 당했다.
 
  이들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입학 이전부터 프로파간다 목적의 교양학습들을 받아야 했다. 이후 학생회나 동아리 등에 의해 길거리 시위나 농활 등의 여러 잡다한 정치적 행사들에 동원되었다.
 
  가족의 품을 떠나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신입생들에게 운동권 선배들과 학생회는 대안적 유사가족으로 그 가족의 빈자리를 메웠다. 마치 미국에 간 한국 유학생들의 다수가 대안적 공동체인 한인교회와 물리적·정서적으로 관계를 맺고 크리스천이 되는 것처럼, 새롭고 낯선 환경에 내던져진 신입생들은 운동권 학생회에 물리적·정서적으로 결박되어 좌파 극단주의로 개종하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인식론과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역사의식 등이 초기화되는 경험을 했다.
 
  과거 대학가의 일상은 이슬람 극단주의 프로파간다의 과정과 기법들, 그리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시에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개된 러시아의 정보심리전 공작 등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외부와의 정보 차단과 격리, 새로운 음모론적 정보와 대안적 가치의 제시, 설정된 적(敵)에 대한 악마화와 희화화(戱畵化),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의 심화, 흑백론적 세계관, 율동이나 노래, 이벤트 등을 통한 프로파간다 효과의 심화,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정서적 필요의 충족, 시위나 추모제, 또는 다른 공격행동 등을 통한 억압, 차별, 그리고 저항의식의 되새김질, 영웅과 롤모델의 설정과 상징화, 역사적 소명의식의 부여 등이다. 돌이켜보면 4050세대의 과거 대학 시절은 이와 같은 정밀한 기제들로 가득 차 있다.
 
 
  권위를 경멸하는 개딸들
 
2016년 5월 19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유리벽에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20대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 수천장이 붙어 있다. 이 여성은 17일 새벽 이곳에서 400m 떨어진 건물에 있는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성민에게 살해됐다. 사진=조선DB
  이 시기에 리모델링된 이들의 뇌는 이들을 음모론과 선동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권위를 경멸한다. 초기 성년기에 확립된 태도다. 정부, 사법체계, 학교당국, 기업의 경영진 등은 우스꽝스럽거나, 미련하거나, 부패하거나, 사악한 집단이라는 관념이다. 반면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그것이 비록 법률이나 절차를 위반하더라도 언제나 정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또한 ‘광장의 추억’을 갖고 있다. 시위는 평범한 개인이 법률을 위반하고, 공간을 지배하고, 열망을 표출하고, 연대와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다. 몸이 기억하는 이 시기의 추억 때문에 이들은 언제든 시위의 공간으로 끌려 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선(善)과 악(惡)의 이분법적 사고와 개혁, 진보, 민주화, 민족, 평화 등과 같은 추상적 개념에 대한 과몰입, 그리고 각성된 집단주의 등도 이들을 정치적 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들은 개인으로서의 자기이해에 대한 각성과 자기주도적인 가치판단 등을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들의 과거는 운동권 선배와 같은 권위를 가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제시된 가치와 판단에 따라 몰개인화된 채로 집단적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닌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이와 같은 취약성은 반정부-민주화 시위에 직접 참여했던 속칭 운동권 주류는 물론이고 취업 준비나 진학 또는 다른 여러 개인적 이유와 동기로 운동권과 관련이 없었던 4050세대에게도 집단기억으로 이들의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
 
  구체적으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정부와 대기업, 권위, 자신들의 윗세대가 뭔가 부패했거나 사악하다는 믿음, 무언가 세상을 새로운 가치로 바꾸고 변혁해야 한다는 과도한 열망,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강박증, 세상은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음모로 가득 차 있다는 의심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오늘날 개딸들의 과도한 정치화는 이때 형성된 초기 사회화의 ‘지연된 발현’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들은 때늦은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대한 반동
 
  다른 한편으로 개딸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낳은 예상치 못했던 괴물일지 모른다. 왜 개딸에 4050 여성들의 참여가 특히 두드러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은 개인으로서의 자아정체성과 자존감, 사회적 인정과 성취에 대한 열망이 박탈되어왔다. 개딸 현상은 그로 인해 한국 사회가 받아 든 청구서다.
 
  대체로 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정도의 욕구를 갖고 이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욕구들은 다양하다. 생존과 안전이라는 기본적 욕구와 부(富)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존감, 인정, 애정, 지위, 또는 지배·통제 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에서 갖게 되는 욕망들이 있다. 이 밖에도 정의, 공평, 평등, 애국심, 선악, 옳고·그름 등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 관련된 욕구도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욕구들은 대체로 뒤섞여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개혁, 공정과 정의, 독재에 대한 저항, 부패척결, 민족, 통일, 반일 등의 추상적인 가치실현의 욕구는 밖으로 드러나며 명시적으로 주장된다. 반면에 개인의 물질적 부와 성욕, 자기보호의 욕구 등과 같은 생물학적 욕구나 지위·자존감, 과대망상증의 충족, 지배·통제 욕구 실현, 나르시시즘의 충족을 통한 쾌락 등의 사회적 욕구 등을 실현하려는 동기는 내면에 감추어져 있다. 이와 같은 숨은 동기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규범적·가치적 욕구들을 통해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
 
  개딸들의 명시적 주장들인 개혁과 진보, 검찰독재에 대한 저항 등의 뒷면에는 이들의 감추어진 사회적 욕망들이 잠복되어 있다. 이 잠재된 사회적 욕구들은 개딸의 사회심리적 동력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개딸들은 대학까지 이어지는 정규교육 과정에서 또래 남학생들과 동일한 정도의 사회적 성취와 자기존중감을 누렸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마주친 사회는 그들이 교육받았던 것과는 달리 매우 적대적인 가부장적 환경이었다.
 
  최근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이 여성에 부여하는 경제적 기회의 수준은 여전히 세계 190개국 가운데 65위에 그친다. 개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던 20~30년 전에는 상황이 더 열악했을 것이다. 대체로 그들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 또는 직장 생활 초기에 경력이 단절되었고 결혼과 육아로 이어지면서 가정에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또는 그저 아줌마로 살아야 했다. 물론 몇몇은 계속 직장 생활을 이어갔지만 이들 역시도 경력과 임금, 그리고 직장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문화적 장벽을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 교육받은 또래 여성들의 자기효능감은 박탈되었다.
 
 
  개딸이라는 유사가족
 
2008년 5월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주변에서 안티 MB 침묵 촛불집회에 학생과 시민 등 많은 시민이 모여 광우병 소 수입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가정으로 돌아간 누군가의 아내와 누군가의 엄마들은 남편의 뒷바라지와 아이들의 양육, 교육에 전력을 쏟았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익명적 존재가 되었고 개인적 자존감과 인정의 욕구, 출세와 지배·통제에 대한 욕구들은 남편과 아이의 성공에 대한 헌신을 통한 대리만족으로 대체되었다. 이들이 이른바 ‘입시’ ‘사교육 열풍’의 주도 세력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자녀들이 대학 입학과 취업 등으로 가정으로부터 떠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4050 여성들은 어느 순간 사회적인 경력을 쌓아가는 남편과 자신의 품을 떠나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자신은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됐을 것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경력과 인생을 살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허탈감과 열등감, 자아상실감 등을 어느 순간 경험하게 됐을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자녀들이 떠나면서 빈 둥지에 사실상 가족과 단절된 채 홀로 남은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되는 현실에 마주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꿈 많고 능력 있고, 여대생으로 자존감도 높았던 과거의 자신과 그저 익명의 아줌마들 중 하나가 된 스스로를 대비하게 됐을 것이다.
 
  4050세대 여성들의 과도한 정치화는 이들 또래의 낮은 자존감과 정체성 위기의 탈출구이다.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또래들이 온라인의 맘카페와 오프라인의 모임에서 접촉하면서 남편, 자녀와 함께했던 기존의 가족공동체를 대체하는 유사가족 공동체를 경험한다. 정서의 공유와 인정 욕구의 충족은 이 같은 유사가족이 제공하는 정서적 만족감이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이들이 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렇게 형성된 유사가족이 정치화되는 데에는 앞서 언급한, 이들이 대학 시절에 경험했던 초기 사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의 추억과 노무현의 죽음, 효순이·미선이 사건, 광우병 사건, 세월호 사건, 탄핵 촛불시위 등으로 이어져온 광장의 강렬한 기억에도 영향을 받았다. 독재정부와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 민주화와 진보에 대한 헌신,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 등 과거에 잠복되어 있던 초기 성년기에 초기화된 기억을 데자뷔 시켜 현재로 소환해내었다. 그러니 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대학생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이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과 인정, 성취, 지배·통제의 욕구를 실현하고 있다. 그저 아줌마 가운데 하나였던 익명의 개인에서 사회변혁을 추동하고 부패하고 권위적이고 사악한 적을 상대로 정의의 전쟁을 수행하는 성스러운 전사(戰士)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힘 앞에 굴복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지배·통제의 쾌락을 맛본다. 이들은 서서히 권력에 중독되어가고 있다.
 
 
  개인보다 폭력적인 집단
 
  집단은 언제나 개인보다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 집단은 익명성을 제공한다. 자신의 이름과 직장, 경력, 거주지와 같은 개인을 식별하는 정보들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된다. 개딸이라는 집단적 이름 뒤에 개인은 철저히 익명으로 숨는다. 익명으로 처리될 때 개인은 심리적으로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이 된다. 이런 점에서 개딸의 폭력동학은 핵티비즘(hacktivism) 세력인 어나니머스(Anonymous)의 그것과 같다.
 
  둘째, 집단은 참여한 개인들을 정서적으로 결박시킨다. 개딸이라는 유사가족은 구성원들 서로 간의 인정과 지지, 그리고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강한 자매의식을 증폭시킨다. 이 같은 사회적 결속은 특정 개인이 집단 전체의 폭력적 극단행동의 대열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는다. 9·11테러 작전에 참여한 자살테러범들은 상당 기간 동안 그들끼리 집단생활을 했다. 이는 가담한 자살테러범들이 작전 수행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았다. 전투 현장의 병사들은 서로에 대한 동료애 때문에 목숨을 건 위험한 전투를 치른다.
 
  셋째, 집단은 구성원 간의 경쟁을 동력으로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개딸 구성원들 사이에서 인정과 지위에 대한 욕구는 개별 구성원들로 하여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이끈다. 더 주도적이고 더 극단적일수록 더 두드러지고 리더가 된다. 이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의 경쟁은 집단 전체를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이재명이란 대안적 아버지
 
3월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수박깨기 행사를 열고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조선DB
  개딸에게 이재명은 대안적 권위, 가부장적 아버지로 기능한다. 이재명은 이들에게 정서적 앵커링(anchoring·정박)의 대상이자 사회적 자아정체성과 자기효능감을 확인하는 통로이다. 즉 이재명의 성공이 자신들의 성공이 되고 이재명의 실패는 곧 자신들의 실패가 된다.
 
  4050세대 여성들은 흥미롭게도 전 생애에 걸쳐 가부장적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 있다. 이 가부장적 아버지는 이들의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의 원천이자 동력이었다. 이 아버지는 결혼 전에는 실제 자신의 친정아버지였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잘난 아들이었다.
 
  이제 중년이 되어 빈둥지증후군을 경험하며 새로운 자아정체성과 자기효능감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들에게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나 사회적 저명인사 또는 아이돌은 적절한 대안적 아버지가 되고 있다. 때때로 이는 임영웅이 되고, 조국이 되며, 문재인이 된다. 이재명은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대안적 아버지의 하나다. 이 때문에 이재명의 운명은 팬덤을 형성한 개딸들에게는 곧 자신들의 운명이 된다.
 
  개딸들의 이재명 사랑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경멸과 질투, 미움과 연동되어 있다. 이 둘은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개딸들의 자기열등감과 자아정체성 위기라는 같은 뿌리의 다른 가지이다.
 
  이들이 김건희 여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김 여사가 스스로의 역량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가부장적 아버지인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들이 열망하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김건희에 대한 질투
 
  이재명 대표의 성공은 곧 자신의 성공이지만 김건희 여사의 성공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부당하게 획득한 부도덕의 결과물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질투와 시기심을 정당화하고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질투의 대상에 대한 경멸과 증오, 그리고 미움은 부정한 투기가 아니라 정당한 정치개혁투쟁이 된다. 따라서 그들에겐 이재명의 대장동과 백현동, 대북송금은 사실이 아닌 검찰의 정치탄압이 되어야만 하고 김건희의 주가조작과 줄리, 천공은 사실이어야만 한다.
 
  이 수준에서는 사실관계 확인과 논리적 설득, 팩트체크 등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이는 신앙의 영역이다.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뇌 작용에 대한 새로운 신경과학 연구의 결과들 중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다. 인간의 뇌가 사실과 논리에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는 음모론 등에 기반한 특정 내러티브 속 이야기에 스스로를 몰입, 공감, 동화시키게 되면 ‘내러티브 트랜스포테이션(narrative transportation)’이라는 작용이 일어나 해당 내러티브에 스스로를 인지적으로 몰입(immersion)시키게 되는데, 이 과정이 완료되면 인간의 뇌는 더 이상 합리적인 설득이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논쟁적 주장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는 결과다. 예를 들어 개딸들에게 천공에 관한 내러티브에 대한 몰입이 일단 발생하면 그들에게는 사실논쟁이나 증거 제시, 심지어는 재판부의 판결마저도 더 이상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민주당, 전략적 이익 위해 개딸 이용
 
  개딸의 폭력은 관계적이다. 이는 전형적인 여성의 폭력발현 양식이다. 관계적 폭력의 예로는 ‘따돌림’이 있다. 남성의 폭력은 폭력 피해 대상에 대한 약탈과 학대, 그리고 권력이나 부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한 전술적 특성을 띠는 약탈적 폭력인 데 반해, 여성의 폭력은 집단 내 구성원과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와의 관계성에서 구현된다.
 
  이스라엘의 학자 아넷 버코(Berko)와 엘리자베스 유발(Yuval)은 25명의 자살폭탄테러 참여자들을 연구했는데, 여기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점을 밝혀냈다. 미국의 청소년 갱단의 폭력행위에 대한 연구에서도 성별에 따른 폭력발현의 차별성이 흔히 발견된다. 개딸의 폭력은 이와 같은 관계형 폭력의 성격을 가진다.
 
  개딸의 폭력은 또한 반응적이다. 반응적 폭력성은 여성형 폭력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들은 피해와 학대의 선행적 경험을 동력으로 한다. 개딸은 과거에 자신을 향했던 가부장적 차별과 배제, 학대에 복수를 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한국 사회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개딸들을 사주하고 조종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이재명은 관계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개딸들을 사주하고 동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전술적 목적을 달성하는 전형적인 약탈적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개딸 현상의 사회심리학은 이처럼 다면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비뚤어진 팬덤에 기반한 정치·사회적 폭력적 극단주의는 한국 사회와 문화의 비뚤어진 자화상이다. 이재명 대표 처벌과 그의 정치적 사망이 개딸 현상의 끝은 아닐 것이다. 조국이 정치적으로 사망한 이후에 이들이 이재명을 대체재(代替財)로 삼았던 것처럼 이재명이 정치적 생명력을 다하면 또 다른 대체재를 찾아 나설 것이다. 개딸의 폭력적 극단주의는 반작용으로 또 다른 비뚤어진 폭력적 극단주의를 낳을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면서 서로 상호증식 작용을 해나갈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이슬람 극단주의와 극우 극단주의는 서로를 키웠다. 학문적으로 이러한 관계를 소위 ‘사악한 폭력의 사이클(cycle of wicked violence)’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악한 폭력의 사이클이 완성되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 하나 이재명의 처벌과 개딸에 대한 경멸과 비난이 문제해결의 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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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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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큰이    (2023-03-23) 찬성 : 1   반대 : 0
나이 먹고도 좌파나 개딸에 속하고, 청담동 술판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평소 남의 말 잘 믿고 사기 잘 당할 거 같은 비논리적 사람들이 아닐까나? 약간 안돼 보인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이들 중 일부는 공부 안했던, 지금 40대 초반인 이해찬 세대이기도 하다.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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