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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경남 밀양·경북 울진·강원도 고성의 산불 재난 현장

“타버린 봄, 잔인한 수묵화, 풀벌레는 어디로…”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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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밀양에서 만난 산불… 도깨비불처럼 곳곳에 불씨 퍼뜨려
⊙ “인자(이제) 버섯 다 파이지(나쁘지)”(밀양에서 만난 어르신)
⊙ 경북 울진原電 앞까지 번진 아찔한 불길… 울진에 原電 8기 가동
⊙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후 최대 재난”(김재준 울진 부군수)
⊙ 강원도 고성 생태연구지에서 자연복원 vs. 인공조림 연구 中
⊙ “내가 오래 살아서 그래요, 오래 살아서 이런 꼴을 보니더”(98세 김분남 할머니)
⊙ 조류는 19년, 숲[林分]은 30년, 야생동물은 35년, 토양은 100년의 긴 시간 필요
5월 31일 오전 9시25분께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산 13-31 일원에서 산불이 발생해 헬기가 불을 끄고 있다. 산림 당국은 헬기 32대와 산불진화대원 1552명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경남 밀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무언가 눈에 들어온다. 한소끔 연기가 대낮에, 산 중턱에서 피어나고 있다. 주변은 초록인데 어떻게 저 산 가운데 불이 붙었을까. 도깨비불의 장난일까. 인두로 생살을 지지는 듯한 연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미 뒤편 산은 꺼멓게 타 검갈색을 띠고 있다. 다급하게 헬리콥터가 날며 물을 쏟아붓고 다시 돌아간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쉴 새 없는 공중전. 연기는 계속, 산에서 솟구친다. 불길은 바싹 마른 초목을 향해, 윤흥길의 소설 〈산불〉(2000)처럼, ‘와삭와삭 먹어 치우려는 듯’ 탐욕을 드러내 보인다.
 
  불타는 밀양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털썩 내려앉는 것 같다. 게다가 헬기는 계속 요란하게 산을 맴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최초 발화지인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 화산마을로 향하니 길목마다 경찰들이 서 있다. 주민의 접근을 막으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산 아래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모내기를 덜 끝낸 논이 눈에 많이 띈다. 층계논이 아닌 평지논. 물을 대고 모내기가 한창이다. 한쪽은 아우성, 다른 한쪽은 고즈넉한 전원(田園)풍경. 아이러니한 두 장면!
 
  양쪽을 번갈아 본다. 한쪽은 햇볕이 뜨겁고 한쪽은 불길로 뜨겁다. 그 속에 누군가는 농사짓고 누군가는 불을 끄고 있다. 누군가는 밀짚모자를 쓰고 누군가는 마스크에 방독면을 쓰고 있다. 또 누군가는 중간에 서서 양쪽으로 고개를 두리번….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검게 타들어가는 저 산, 저 말없는 산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도 인가로 불길이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가에 지천인 노란 금계국(金鷄菊)을 지나, 고춧대 밭이랑을 지나 마을로 접어든다. 멀리 보이는 산이 제법 웅장하다.
 
 
  “작년에도 저쪽 맞은편 산에 불이 났어요”
 
밀양 부북면의 한 마을 인근 산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불씨가 바람을 타고 옮겨 붙었다.
  마을 어르신과 만났다. 귀가 어둡다며 괜히 미안해한다. 기자가 오히려 미안하다.
 
  “주민 수? 그런 걸 왜 물어? 칠십여덟 가구가 될라나? 100명이 안 돼.
 
  불이 났다기에 피했는데 불이 집을 삼키진 않았어요. (손으로 가리키며) 막 저(기)까지 내려왔어. 큰불은 꺼졌는데 잔불 끈다고 또 사람들이 몰려오고…. 화재 원인? 잘 몰라요. 작년에는 저쪽 맞은편 산에서 불이 났어요. 저기, 저기 바위 밑에.
 
  응, 그래, 저기. 다른 나무들은 초록인데 저쪽 나무들만 단풍 든 것처럼 보이지요?”
 
  ― 그렇네요.
 
  “저기 버섯 따러(캐러) 사람들이 많이 갔어요. 여기서(이 마을에서) 버섯이 많이 나옵니다.”
 
  ― 지난번에 크게 불이 난 경북 울진도 송이가 많다던데….
 
  “인자(이제) 버섯 다 파이지(나쁘지).”
 
  산 아래에 한우 농가가 있다. 길바닥에 소똥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이유를 알겠다. 소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아니 그 전부터 울고 있었다. 소가 울자 개가 짖는다. 멀리서 경운기 소리, 그 사이로 헬기 소리가 계속 들린다. 소리가 미쳐 있다. 미쳐 날뛰고 있다.
 
  산속으로 점점 걸어 들어간다. 산길의 폭이 제법 넓다. 이게 임도(林道)인지 아니면 이번에 산불을 끄면서 낸 길인지 알 수 없다.
 
 
  어찌할까 이 산을…
 
  산길의 흙이 바짝 말라 있다. 손으로 만지니 부서질 정도다. 산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계속 헬기 소리가 들린다. 그 틈으로 새들이 노래하고 아니, 울고 있다.
 
  산 중턱 곳곳에 봉분이 있다. 봉분의 잔디 떼가 검게 타버렸다. 참혹하다. 주변 나무 밑동도 검게 그을려 있다. 이 나무는 죽은 것일까? 불탄 나무 둥치를 만져보니 아직 따스하다. 어떤 나무는 이미 숯이 되어 있다.
 

  산을 오를수록 헬기 소리 더 요란하다. 산 바닥의 솔가지와 나뭇잎이 다 타면서 땅의 민낯이 그대로 보인다. 군데군데 구멍이 많다. 두더지나 뱀, 쥐의 소굴이다. 그 안을 들여다본다. 사체(死體)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론가 바삐 도망쳤겠지.
 
  계속 산을 탄다. 무릎이 저리다. 여기저기 흩어진 발자국들. 불을 끄기 위해 주민과 소방대원, 군인들이 다급하게 올라갔을 상황을 머릿속으로 더듬어 본다. 그들의 땀방울을 생각하고, 그들의 다급한 마음도 헤아려본다. 아직 늦봄인데 이곳 풍경은 한겨울 휑한 산속이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불에 그을린 나무를 본다. 불타지 않은 나무도 간혹 있지만 이미 잎은 바짝 오그라들었다. 문득 바위가 무너질 듯 위태롭다. 지반이 약해져서 굴러 떨어지지나 않을까. 다시 벼락같은 헬기 소리가 생각을 방해한다. 어찌할까 이 산을….
 
 
  나비의 날갯짓
 
밀양 부북면 뒷산에서 군인들이 산불 진화 작업 중이다.
  나비 한 마리가 난다. 날갯짓에 힘이 없다. 불길 속에서도 용케 살았구나.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산속을 날고 있구나. 나비야, 생명의 힘을 보여다오.
 
  헬기가 기자의 머리 위에 떠 있다. 물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땅까지, 흙까지 젖지는 않는 것 같다. 공중에서 증발한 것일까. 나뭇잎이, 가지가 중간에서 물을 마셔버린 걸까.
 
  누군가 들고 왔을 생수병이, 푸른 이끼가 조금 남아 있는 바위 위에 놓여 있다. 곡사포 모양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불과 싸운 어느 소방대원이 두고 갔을까. 생수병에 물이 3분의 1가량 남아 있다.
 
  방공호(防空壕)가 여기저기 보인다. 아마 이 산은 한때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장이었으리라. 부러진 생솔 가지에 눈길이 간다. 혹여 넘어지면서 나뭇가지를 붙잡다가 부러뜨린 것일까. 아니면 저 생솔가지를 꺾어 잔불을 끄려 했을까. 가지 끝에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다.
 
  산속에서 잔불 정리하는 군인들을 만났다. 불길의 긴 꼬리를 토막 내는 전사(戰士)들? 줄 지어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 모두 10명. 마스크 쓴 이들은 지쳤는지 아무 말이 없다. 기자를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 수인사를 한다. 몇몇은 붉은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는데 가방엔 ‘산불조심’이라 적혀 있다. 가만히 보니 가방이 아니라 소방용 물통이다. 물통은 호스와 연결되어 있다. 한 군인이 분무기 같은 것을 펌핑하니 물이 뿜어져 나온다. 연신 불탄 곳을 향해 무언가를 뿌린다. 다른 군인은 낙엽 청소용 갈퀴를 들고 있다.
 
 
  밀양구치소 뒷산에서 나는 연기
 
  산불 현장을 둘러보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산불은 벌건 대낮에 일어난다. 또 불이 차례로 숲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강한 바람이 불씨를 여기저기 날려 보낸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윤흥길의 〈산불〉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도깨비불은 ‘시골 공동묘지 같은 데서 한밤중에 숨바꼭질하듯 또는 덧게비 장난치듯 파르댕댕한 빛깔로 여기저기 출몰하는 귀기 서린 인광(燐光)’이다. 지금 강한 바람이 부는 밀양은 ‘맵찬 꽃샘바람’을 타고 도깨비 불씨가 고약한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산불 현장에서 서늘한 귀기(鬼氣)를 느끼진 못했다.
 
  산세가 너무 가파르고, 헬기 소리가 너무 요란해 뒤돌아선다. 어쩌면 거센 불길과 마주할지 모르겠다. 터벅터벅 산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이르니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몰려오고 있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잔불 끄러 간다”고 말한다. 그들 등 뒤를 향해 폴더폰 인사를 건넨다.
 
  승용차로 밀양구치소 인근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구치소 바로 인근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한소끔 연기가….
 
  구치소 앞으로 다가가 산을 찍으니 교정(矯正)직원이 나와 제지한다.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안 됩니다.”
 
  ― 지나가다가 연기 나는 것을 보고 왔어요. 걱정돼서….
 
  “잔불이 다 정리됐는데 또다시 불길이 번졌어요. 사람들이 현장에 올라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안심시키듯 살짝 웃더니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연기가 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기 시작했어요. 헬기가 와서 물을 쏟아부었어요.”
 
  구치소 바로 뒷산에서 산불이 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구치소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을까. 구치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숲이, 아니 산이 단풍 든 것처럼 보인다. 모두 벌겋게 타버린 참혹한 얼굴. 새들이 저공비행한다.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린다. 무언가 비현실적이다.
 
  H요양병원 앞을 지나는데 지척의 산에서 연기가 난다. 그 위쪽 나무는 초록이 아닌 갈색, 검은색. 서 있는 숯이다. 아직 환자들은 대피하지 않고 있다.
 
  마을에 주차된 차들도 그대로. 119 소방차들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멀리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연기가 더 커지고 있다. 연기가 점점 마을로 내려온다. 10여 분 뒤 연기가 줄어든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기자가 소방 당국자에게 전화를 거니 이런 말을 한다.
 
  “헬기 42대와 인력 1500여 명을 동원해 진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5월 31일 ‘산불 3단계’ 발령이 났을 때 밀양구치소 재소자들을 대구 달성군 하빈면 대구교도소로 이송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서울에 가서 알아보니 옮긴 재소자 수는 모두 391명이란다.
 
 
  地獄圖를 보듯 참혹한 불길의 잔해
 
경북 울진 북면 ‘도화동산’에서 바라본 울진 한울원전. 불이 강풍을 타고 원전 앞까지 번졌다. 나무가 단풍 든 것처럼 보이지만 불탄 모습이다.
  지난 3월 4일부터 13일까지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 동해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은 213시간43분 만에 진화돼 국내 역대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다. 산림청 공식 집계로 산림 2만523ha가 불에 탔다. 피해 지역 넓이는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기자는 울진으로 향했다. 울진은 1만4140ha가 불타 가장 피해가 컸다. 공공시설과 민간시설 3998곳이 산불 피해를 입었다. 피해 금액은 1776억700만원. 복구액으로 3027억5300만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울진은 이미 지난 3월 6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울진에서 가장 피해가 큰 곳은 북면이다. 모두 128가구에서 이재민(罹災民)이 발생해 현재 임시조립주택 188개 동(棟)에서 살고 있다. 죽변면은 27가구, 울진읍은 25가구가 피해를 입고 각각 임시주택 29개 동과 26개 동에서 살고 있다. 쓰러진 초가일망정 내 집이 편한 법이다.
 
  무엇보다 울진엔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원전(原電) 턱밑까지 불길이 번졌었다. 죽기 살기로 불과 싸웠으리라. 동해안은 대형 산불의 위험이 전국에서 가장 크다. 겨울부터 봄까지 다른 지역보다 습도가 낮고, 바람은 강하다. 이곳의 지난해 겨울 강수량은 평년(1991~2020년) 겨울철 강수량(89mm)의 14.7%인 13.3mm. 갈수기보다 더 심하다.
 
  기자는 눈동자에 실핏줄이 터져 있는 김재준(金在俊) 울진 부군수의 안내로 울진의 명소인 ‘도화동산’에 올랐다.
 
  울진과 삼척의 경계인 이곳에서 불탄 현장을 목도한다. 도화동산은 더 이상 환상적인 배롱나무가 가득한 일몰 명소가 아니다. 지옥도(地獄圖)를 보듯 참혹한 불길의 잔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6월인데도 단풍나무처럼 색이 바랜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2000년 4월에도 原電 앞까지 불길 번져
 
  그러나 저 거대한 자연은 화마(火魔)보다, 화마의 날 선 불길보다 더 무섭다. 불이 꺼진 지 2개월여가 지난 현재, 군데군데 초록의 싹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다.
 
  도화동산에 이런 기념비가 서 있다.
 
  〈23,794ha의 피해를 입은 사상 최대의 동해안 산불이 2000년 4월 12일 강원도에서 울진군으로 넘어오자 민관군이 합심하여 22시간 만인 4월 13일 11시에 진화하고 산불 피해지인 이곳에 도화동산을 조성하다. 2002년 1월 12일 울진군수.〉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00년 4월의 강원도 고성 산불이 이곳 울진까지 쳐들어왔나 보다. 이곳에서 멀리 원전(울진 북면 부구리 소재)이 보인다. 봉분 같은,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하다. 만약 이곳을 지키지 못했더라면 불길이 원전을 덮쳤으리라. 막무가내로 화마와 뒹굴었을 그날, 그때의 참상을 떠올리니 흥분되고 마음이 뜨거워진다. 김재준 부군수의 말이다.
 
  “지금 울진에 모두 6기의 원전이 있죠. 앞으로 들어설 원전까지 더하면 10기가 있다고 해야겠지요?”
 
  울진 원전이란 명칭은 지금은 안 쓴다. 한울 원전이라 부른다. 2022년 기준으로 북면 덕천리의 신한울 1·2호기는 공사가 끝나 시험 가동에 들어간 상태다. 신한울 3·4호기는 2025년 착공 예정이다.
 
 
  “산불도 進化한다”
 
경북 울진군 김재준 부군수가 북면 일대에 번진 산불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재준 부군수가 “최초 발화지(發火地)가 어디냐 하면…”이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직선거리로 한 8km 됩니다. 울진 북면 두천리라고, 저기서 원전까지 초속 25m 이상 바람이 불어가지고…. 불이 난 첫날(3월 4일)엔 바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었는데 원전 턱밑까지 다 탔어요.
 
  둘째 날은 다시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불어서 울진 시가지를 위협하더니 셋째 날은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었어요. 울진의 자랑인 금강송 군락지(금강송면 소광리 소재)가 거기 있잖아. 그리고 그다음 날에 서쪽에서 또 동쪽으로 불고, 또 도깨비불처럼 다음엔….”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불이 동쪽에서 났다가 북쪽으로 향하더니 다시 남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이동하며 골고루 울진 곳곳을 싹 다 태워버린 것이다. 허탈한 표정의 김 부군수의 말.
 
  “우리 직원들에게 말했는데, ‘산불도 유전적(遺傳的)으로 똑똑하게 진화(進化)한다’고.”
 
  ― 종횡무진이네요.
 
  “그래요, 종횡무진, 종횡무진….”
 
  이 대목에서 말을 잇지 못한다.
 
  “(손으로 가리키며) 원전 저 끝에 있는 게 죽변항입니다. 딱 돌출돼 있잖아. 튀어나온 곳을 곶(串)이라고 해요. 저기가 용추곶입니다.”
 
  ― 그렇군요.
 
  “반대로 파여 있으면 만(灣)이라고 불러요. 남인순 선생이 ‘포구의 인사’에서 ‘죽변만’이라고 노래했잖아요.”
 
  김재준 부군수는 흥이 많은 이가 분명했다. 유튜브를 통해 남인수 작사, 김다인 작곡의 ‘포구의 인사’를 틀어준다. 노랫말을 음미하니 기가 막히다. 소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포구의 인사란 우는 게 인사려나. 죽변만 떠나가는 팔십 마일 물길에 비 젖는 뱃머리야. 비 젖는 뱃머리야. 어데로 가려느냐. 아~.
  학없는 학포(鶴浦)란 어이한 곡절이냐. 그리운 그 사람을 학에다 비겼는가. 비 젖는 뱃머리야. 비 젖는 뱃머리야. 어데로 가려느냐 아~. (3절 생략)〉

 
  학포는 어디일까. 검색해 보니, 울릉도 서면에 있다. 울진 죽변~울릉 학포 사이에 애절한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감상에 빠져 있는데 김 부군수가 이야기를 덧붙인다.
 
  “지난 3월 불이 났을 때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려와 울진에서 대책회의를 했었어요. 그때 삼척시장님이 오셔서 ‘울진에서 불을 내놓고서 원전 사수(死守)한답시고 삼척으로 헬기를 한 대도 안 보내 (삼척을) 다 태웠다’고…. 일리가 있는 말씀이거든.”
 
  ― 설마….
 
  “우스갯소리로 직원들에게 그랬어요.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때 (삼척이) 우리한테 불을 넘겨줬잖아. 이번에 빚 갚은 것 아니냐’고요. 하하하.”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후 최대 재난
 
  그러더니 이내 진지해진다.
 
  “저기가 북면 ‘고포마을’인데 시어미 고(姑), 갯마을 포(浦)를 써요. 1968년 10월 31일부터 사흘 동안 무장공비 120명이 고포로 넘어왔어요. 그해 1·21사태 때 김신조(金新朝)의 청와대 습격이 실패하자 이쪽으로 다시 보낸 거지요.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후 최대 재난이 지난 3월 울진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입니다.”
 
  이 대목에서 비장해진다.
 
  “그때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불이 번졌는데 저기 보세요. 불이 막 건너뛰었지요? 다 탄 게 아니고 도깨비불처럼 불이 여기저기로 건너뛰었잖아요.”
 
  ― 불이 휩쓸었다기보다 동시다발로 불씨가 튀었네요.
 
  “그만큼 바람이 심했다는 얘기지.”
 
  ― 지금 눈에 보이는 건 다 탄 거지요?
 
  “다 타서 새까맣잖아요.”
 
  ― 저쪽 철탑이 보이는데 저기도….
 
  “저 멀리 보이는 게 낙동정맥(洛東正脈)이죠. 태백에서 시작해 부산 몰운대까지 (태백)산맥이 이어졌는데 이번 산불이 그쪽으론 가지 못했고 그 아래 운봉산까지 탔단 말이에요.
 
  울진군 전체의 85%가 산림입니다. 경북에서 산림 면적이 제일 넓은 데가 울진 아입니꺼?(아닙니까).”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전화 인터뷰
  “초대형 헬기 도입하고, 특수 鎭火隊 꾸리겠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헬기를 타고 산불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경북도 제공
  취재 도중 이철우(李喆雨) 경상북도지사에게 전화가 왔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진에서 초대형 산불이 나자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이 지사는 당시 경북도 간부들을 향해 “산불 피해 복구가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비상근무하라”고 지시했었다. 무리를 해서일까. 산불이 나고 며칠 뒤인 3월 11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 먼저 도지사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김 기자가 많이 도와줘서 덕분에 됐습니다.”
 
  ― 저는 한 게 없습니다. (웃음) 울진 산불 현장에 왔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요.
 
  “맞아요. 산불은 발생 초기 진화가 매우 중요해요. 현재 헬기 상태로는 초기 진화가 어렵습니다. 경북도는 산림면적이 133만ha로 전국 산림(629만ha)의 21.2%를 차지하고 있어요.
 
  초대형 헬기로 1만ℓ의 물을 한 번에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해요.”
 
  산불 진화 헬기 상당수가 담수량이 적다. 그나마 8000ℓ를 담을 수 있는 헬기는 국내 6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지사의 말이다.
 
  “우리가 이번에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발 빠르게 움직여서 재난안전특별교부세 250억원을 확보했어요. 산불 진화용 초대형 헬기를 도입하면 한 번에 1만ℓ, 초속 22m의 악조건에서도 비행하며 진화 작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지사는 또 ‘산불 특수 진화대’를 꾸리겠다고 말했다. 적진[산불]의 중앙을 타격하는 특수부대를 창설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야간 진화입니다. 밤에는 헬기가 뜨기 어렵거든요. 고도로 훈련된 분들이 밤에도 불을 끌 수 있어야 하는데 특수 진화대는 산림청만 보유하고 있거든요.”
 
  최근 10년간 경북도에서 발생한 산불은 800여 건에 이른다.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80여 건씩 발생한다.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매달 6~7건씩 산불이 나는 셈이다.
 
  “초대형 헬기와 특수 진화대를 꾸리면 산불을 조기 진화할 수 있을 겁니다. 차제에 정부 측에 ‘산림 대전환 정책’을 주문하고 싶어요. 이미 인수위 측에 전달했는데 나무를 꼭 심어야 할 곳엔 심되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해 산불 피해 지역에다 리조트나 골프장, 산림휴양지 등을 조성해 동해안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원전 주변엔 아예 나무를 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울진 산불처럼 돌풍이 원전 쪽을 향하는 아찔한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너네 부모님이 난민생활 한다고 생각하라”
 
  우리는 말없이 도화동산을 내려와 늦은 점심을 위해 죽변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식당 앞으로 ‘죽변수협 제빙 냉동공장’이 보인다. 그 공장 곁에 어선이 정박해 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배의 집어등이 술병 같다. 다음은 식당에서 김재준 부군수와 나눈 문답.
 
  ― 불이 나고 대통령, 대선(大選) 후보까지 찾아왔었죠?
 
  “다 오셨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왔지만 당선이 되고 또 오셨어요.”
 
  ― 지금 이재민들은 임시가옥에서 지내고 있지요?
 
  “181가구 188명이 그곳에서 살고 있어요.”
 
  ― 임시가옥은 몇 평?
 
  “한 7평쯤 되겠네요.”
 
  ― 생활시설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까지 다 해줬어요. 좁아서 그렇지 사는 데 불편은 없겠지만… 그래도 불편하겠지요. 마을 어귀에다 함께 모셨어요. 뚝 떨어져 있으면 외롭거든….”
 
  ― 임시가옥 지을 때 고생 많았다고 하대요.
 
  “설치가 늦어져 화가 많이 났어요. 주민들을 처음엔 울진군민체육센터로 모셨다가 여관으로, 다시 군청으로 모셨는데 몇 분이 코로나19에 걸리셨어요.
 
  간부회의 할 때 직원들에게 고함을 쳤죠. ‘너네 부모님이 난민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라’고요. 그런데 임시가옥 200개를 주문했는데 (배달이) 늦어지더군요.”
 
  ― 어디에서 만드는데요?
 
  “행안부가 지정한 업체가 4곳인데, 다 수도권에 있어요. 우리 직원들을 아예 업체로 보냈어요. 다른 지자체로 빼앗기면 안 되니까.”
 
 
  “생수·라면보다 현금을”
 
지난 3월 5일 오후 경북 울진에서 산불이 지속되면서 명도1리에서 바라본 울진 상공이 검은 연기로 가득한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 직원들을 네 군데 다 보냈어요?
 
  “그렇죠. 다 상주시켰습니다.”
 
  ― 그렇다고 업체에 상주시키다니….
 
  “안 그러면 다른 지자체에 뺏길까 봐. 오죽하면 갔겠어요? 약속된 날짜에 안 오는 거예요.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어서 보낸 겁니다. 심지어 싱크대 같은 설비가 덜 된 컨테이너라도 갖다 놓으라고 했어요. 싱크대는 울진에서 설치해도 되니까….
 
  오죽했으면 제가 북한식 ‘5호 담당제’를 뒀을까요? 마을마다 일일이 책임자를 붙였으니까요(두었으니까요).”
 
  ― 불탄 집은 다 철거됐나요?
 
  “네, 철거예산은 국비(國費), 지방비 섞어서 지원되는데 국비가 한 80%고 많은 곳은 100% 지원이 됐습니다.”
 
  ― 당시 울진에 서울 손님들이 많이 와서, 보는 눈이 많아 고생이 많았겠다 싶네요.
 
  “엄청 내려왔죠. 거의 매일 오시다시피 했으니까요. 성금 가지고 오신 분, 물자 가지고 오신 분, 하여튼 여러 각지에서 오시는데, 너무 어수선하고 그러니까 물자 말고….”
 
  ― 어떻게?
 
  “생수나 라면 이런 것 그만 가지고 오시고, 가능하면 현금으로 보내달라 말하고 싶은데…. 근데 오시는 분들도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사진도 찍어야 되잖아요.
 
  우리 직원들이 현장 수습해야지, 구호물자 배분해야지, 물자 접수해야지, 손님 안내해야지, 그리고 오시는 분들 그냥 보내면 안 되잖아요. 식사라도 대접해 보내야지. 그러니까 손이 모자라는 거야. 오시지 말라는 소리는 못 하고….”
 
 
  “선박 사고가 엄청 나요”
 
  잠시 숨을 돌리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만만한 사람들은 돈만 송금하게 했는데, 미안해서 울진 특산품(特産品)을 별도로 보내드려야 해요. 안 그러면 섭섭해하시니까.”
 
  ―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전국 로터리클럽, 각종 단체, 독지가, 향우회, 그리고 전국적으로 직렬별로 연관되는 공무원 조직, 예를 들어 간호·복지·토목·산림 같은 행정 동우회 등에서 왔습니다. 정말 경향 각지에서요.”
 
  ― 고맙네요.
 
  “고맙지요. 안 오셨으면 더 섭섭하지요.”
 
  ― 부군수께서는 울진에 오신 지가…?
 
  “한 1년6개월 됐죠.”
 
  ― 그사이에 이런 산불은 처음이었어요?
 
  “지난해는 전국적으로 비가 다 왔어요. 산불은 없었지만 (울진은) 재난 사고가 많아요.
 
  해안선 길이가, 그러니까 강원도 삼척 접경지에서 영덕 후포까지 약 97km예요. 제일 길죠. 선박 사고가 엄청 나요. 지난해 10월, 독도에서 70km쯤 떨어진 곳에 홍게 어장이 있어요. 울진 후포항에서 출항한 제11일진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어요.
 
  보름 동안 후포 수협에서 밤낮없이 대책본부를 운영했는데 제가 대책본부장을 맡았어요. 초속 10~22m의 강풍과 5m의 파도 격랑이 몰아치는 망망대해를 마주 보며 사고 수습해야지, 선원 가족들 위로해야지, 밤낮으로 우시는데 일단 밥이라도 드시게 해야지….”
 
 
  襄杆之風, 襄江之風
 
  ― 울진에 바람 잘 날이 없네요.
 
  “산불이 안 나면 해양 선박 사고가 나고, 그다음에 수시로 실족 사고, 낚시꾼 안전사고, 선박 화재 사고… 끊임이 없어요.”
 
  다시 산불 이야기로 돌아간다.
 
  “올해는 유독 가뭄이 심하고 특히 강풍이 불잖아요.
 
  그날(3월 4일)도 초속이 작게는 5m 이상, 심한 곳은 25m까지 돌풍이 불었으니까. 동해는 봄에 양간지풍(襄杆之風), 양강지풍(襄江之風)이 부는데….”
 
  ― 네?
 
  “강원도 영동지방의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혹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서 풍속이 매우 빠른 바람이 붑니다. 높새바람이라고 하고, 푄(föhn) 현상이라고 해요.”
 
  동해에서 불어와 태백산맥을 넘으며 고온 건조해지는 바람을 높새바람이라고 한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동해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불어온다.
 
  “보통 봄철 3월에서 한 4월 중순까지만 돌풍이 몰아치고 5월부터는 조금 덜해요. 근데 올해는 유독 5~6월이 됐는데 지금도 바람이…, 오늘 아침에도 초속 20m 이상의 바람이 불었어요.”
 
  ―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나요?
 
  “제가 봤을 때는 기상이변이지요. 지금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봅니다. 제 고향이 울진 죽변입니다. 이곳 기후를 잘 아는데 6월이 돼도 이런 돌풍이 분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라니까요.”
 

  ― 울진이 고향이라고요? 공직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보내라는 도지사의 뜻이….
 
  “모르겠어요. 산불 끄라고 보내신 것 같아요.”
 
  ― 하하하.
 
  “제가 경북도 산림환경연구원장을 했거든요. 산을 좋아해 평생 산을 타고 다녔으니까요.”
 
  그러더니 책을 꺼낸다. 지난 3월에 출간된 《한국유산기: 바람의 산 구름의 산》이다. 그는 이미 시집을 펴낸 시인이자, 산행기를 여러 권 써낸 여행작가다. 책 프롤로그에 적힌 이 문장이 눈에 띈다.
 
  〈등산의 즐거움은 산의 정기에서 비롯된다. 그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심신의 치유와 본성까지 정화시킨다. 그래서 ‘산은 약과 같아 몸을 가볍게 한다(名山如藥可輕身)’고 했다. 한국 유산기(遊山記) 《그리운 산 나그네길》 《흘러온 산 숨 쉬는 산》에 이어 세 번째 책을 펴낸 이유다. (하략)〉(7쪽)
 
  그의 말이다.
 
  “고향 부군수를 하면서 나무를 보호하고, 산도 보호해야 하고, 원전도 보호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고향이 여기니까 혹시나 인명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그것 때문에 노심초사였어요.
 
  3월 4일부터 닷새 동안 전국에서 소방대원과 의용소방대원 등 5000여 명과 소방차와 소방헬기 등 370여 대가 투입돼 사투(死鬪)를 벌였어요. 인명 사고가 없는 것, 정말 불행 중 다행이지요. 안 그래요?”
 
 
  “어디서 왔는지 참나무들이 날아와…”
 
1997년 산불이 났을 당시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봉수대 일원(사진 위)과 2015년 모습(아래).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이전 숲의 모습으로 80%가량 복원됐다고 한다. 사진=산림과학원 제공
  ― 산불이 난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복원하면 좋을까요?
 
  “국유지(國有地) 포함해서 지자체가 소유한 공유지(公有地)는 자연복원을 해도 돼요.”
 
  그가 말하는 자연복원은 인공조림(人工造林)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연 스스로 치유하도록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히 가장 생태(生態)를 배려하는 것이 자연복원입니다. 놔두면 저절로 꽃피고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되는 겁니다. 벌레나 곤충도 살고 나비, 다람쥐, 뱀도 다시 찾아와 생태계를 형성한다는 얘기입니다. 인위적으로 복원하면 생태계 균형이 깨져버립니다.”
 
  ― 그렇게 말하면 산림청분들이 싫어할 것 같은데요?
 
  “싫어하겠지요. 싫어하지만 할 수 없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물론 일부 지역에 한해 인공조림도 해야 합니다. 산사태 우려 지역은 사방(砂防)사업을 해야지요. 이번에 피해가 큰 송이농가는 그분들이 희망하는 나무(소나무)를 심어줘야 합니다. 또 나무 중에 불에 잘 견디는 참나무 계열도 많이 심어야 해요.
 
  불탄 지역에 한해 산악 레포츠 공원을 만들어 산악자전거, 행글라이더,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게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좋지요.
 
  그래도 자연복원이 제일 좋아요. 새카맣게 다 타도 한 5~10년 지나면 어디서 왔는지 참나무들이 날아와 불탄 숲을 다 덮어버린다고. 정말이라니까.”
 
 
  “급히 들고 나온 손가방 하나가 전부”
 
울진 북면 신화리의 임시 가옥 모습. 주민들은 새집에 들어갈 꿈을 꾸지만 현실은 막막하다.
  가뭄대책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김재준 부군수와 헤어지고, 곧장 울진 북면 신화리로 차를 몰았다. 울진군 건설과 김성원 농업개발팀장이 동행했다.
 
  도깨비불이 번지던 그날 상황을 얘기하던 그는 “밤새 북면 소곡리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고 말한다. 컴컴한 밤, 불길이 폭죽처럼 사방으로 번지던 도로를 떠올리니 오싹하다.
 
  신화리에 도착해 이장인 전호동(51)씨와 만나 불타버린 집터 주변을 함께 거닐어본다. 주변 초목은 잿빛이다. 아흔여덟인 그의 어머니 김분남 할머니는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벌렁벌렁하다”고 말한다. 전 이장의 말이다.
 
  “신화리 28가구 중 22가구의 집이 불탔어요. 주민은 43명 정도입니다. 그때 뒷산에 불붙은 모습을 보고 주민들 대피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못 가게 막더라고요. 불이 다….”
 
  ― 중요한 물건은 챙겼어요?
 
  “하나도 못 챙겼죠. 불이 갑자기 오다 보니까, 다 그냥….”
 
  ― 주민들 모두 비슷한 입장이었겠네요.
 
  “네, 급히 들고 나온 손가방 하나가 전부지요.”
 
  ― 임시가옥엔 언제 입주한 겁니까?
 
  “비교적 빨리 했어요. 3월 29일쯤인가? 공무원들이 직접 오셔서 빨리 진행시켰거든요.”
 
  ― 사는 데 불편함은?
 
  “좀 답답하죠. 집이 좁다 보니까.”
 
  이번에는 김 할머니의 말이다.
 
  ― 많이 놀라셨겠어요.
 
  “놀라고 말고요. 아들이 집 울(타리) 너머로 들어가지 말라 그랬니더. (집) 앞에서 불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오래 살아서 그래요, 오래 살아서 이런 꼴을 보니더.”
 
  ― 오래 사셔야지요.
 
  “마당에 있던 장독대는 안 탔니더. 샘(우물)이 없었다면 다 불탔을 낀데.”
 
  ― 그렇네요.
 
  전씨 일가는 감자, 고추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잘 복구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전씨의 바람이다.
 
  “정부에서 15평 기준으로 평당 600만원씩 해서 한 가구당 9000만원 정도를 지원했는데 새로 집을 지으려면 그 돈으로는 부족해요. 집 짓는 규모에 따라 정부가 더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강원도 고성의 생태연구지에서
 
고성군 죽왕면 야촌리 생태연구지. 왼쪽이 자연복원지이고 오른쪽은 인공조림지다. 자연복원지는 참나무류의 나무들이, 인공조림지는 소나무가 자랐다.
  기자는 강원도 고성으로 차를 몰았다. 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강원석 박사와 박기형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1996년 강원도 고성에서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하는 3762ha의 숲이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런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2000년 다시 불이 나 여의도 면적의 82배에 해당하는 2만3794ha의 울창한 숲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해안 산불은 당시 ‘단군 이래’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되었다.
 
  워낙 피해 규모가 커서 어떻게 복원하느냐를 두고 국내 학자들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국내 처음으로 고성과 삼척 지역에 장기(長期) 생태연구지가 생겨났다. 이후 20여 년간 10여 개 분야에 걸쳐 산림연구를 해오고 있다.
 
  기자는 고성군 죽왕면 야촌리 농업인건강관리실 앞에서 강 박사와 박 박사를 만났다. 그러고 박 박사가 운전하는 SUV를 타고 고성의 생태연구지로 향했다.
 
  아침 숲길이 고즈넉하다. 어떤 향기가 느껴졌다면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겠다. 한참을 달려 산길 가운데 차를 세운다.
 
  왼쪽은 자연복원지. 산불이 나고 손을 안 댄 곳이다. 참나무가 가득하다. 오른쪽은 인공조림지로 소나무 숲이다. 중간에 서서 이쪽과 저쪽을 모두 둘러보며 산길을 걷는다.
 
  자연복원지는 참나무 계열의 나무가 확실히 많다. 강 박사는 “산불 이후 스스로 숲을 이루며 어떤 나무들이 자라는지 모니터하고 있다”며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이외에도 졸참나무를 비롯하여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등이 자라고 있고 왕미꾸리광이 같은 초본식물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산불 후 20년 경과해야 80% 수준 회복”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장기 생태연구지에서 만난 강원석 박사(오른쪽)와 박기형 박사.
  반면 인공조림지는 대개 소나무다. 나무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생육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단다. 강 박사의 말이다.
 
  “나무는 산불 후 20년이 경과해야 산불 이전의 80% 수준으로 회복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산불 이전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약 3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얼핏 보면 거의 회복된 걸로 보이는데요?
 
  “정상적인 숲으로 보이지만, 아직 회복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 동물들은요?
 
  “산불 영향을 받은 숲 생태계가 산불 이전 수준까지 되돌아가기 위해선 어류의 경우 산불 발생 3년, 수서 무척추동물(곤충, 벌레, 잠자리, 나비 등)은 9년, 개미류는 13~14년이 필요하다고 해요.”
 
  ― 토양은 어떨까요?
 
  이번에는 박기형 박사의 말이다.
 
  “산불이 나면 토양을 덮고 있던 유기물질 낙엽층이 모두 타버리게 됩니다. 보세요. (기자에게 그림 자료를 보여주며) 산불이 난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토양의 낙엽층이 2~3cm 정도밖에 안 됩니다. 토양의 ‘밥’이 사라진 겁니다.
 
  토양의 회복에는 100여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연구도 있어요. 오랜 기간에 걸친 나무와 풀의 생장과 순환, 토양 동물과 미생물의 활동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강 박사가 쓴 논문 〈우리나라 산불피해지 변화와 복원 기술 20년〉에 따르면, 조류는 19년, 숲은 30년, 야생동물은 35년, 토양은 100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 그러면 유기물을 인공적으로 좀 뿌려주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예산과 관계가 돼 있어요. 돈과….
 
  낙엽층 두께를 한 1cm만 높이려 해도 아마 덤프트럭 몇십 대가 와서 (퇴비를) 뿌려도 힘들 겁니다.”
 
  ―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막 질문하는 겁니다.(웃음)
 
  “물론 산불 피해지에서 어차피 (불탄) 나무들을 베어내니까 그걸 ‘우드 칩’으로 활용해 산에 다시 뿌리는 식의 영양 공급도 고려할 수 있어요.”
 
  ― 우드 칩으로요?
 
  다시 강 박사의 말이다.
 
  “네, 그 우드 칩을 숯처럼 만들어 토양 보습제로 사용하려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원 순환적인 측면에서 활용을 하고, 특히 토양 쪽으로 생육에 도움을 주는 연구지요.”
 
  우리는 계속 숲길을 걷는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 강 박사와 박 박사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녹음한다. 야외 소풍을 온 것 같다. 기분 탓일까.
 
  강 박사에 따르면 산림생태계는 분류군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식생(植生·식물의 집단) 복원 측면에서 보면, 산불 이후 자연복원지에서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영역을 달리해 형성되는 것이 관찰된다. 예컨대 산정부와 능선부는 소나무가, 비탈면과 계곡부는 참나무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참나무 숲의 경우 많은 수의 맹아지(萌芽枝·나무에서 새로 돋은 가지)가 발생해 관목(작은 키 나무)의 형태로 자라고 있다.
 
 
  “자연복원과 인공복원을 적절하게…”
 
  강 박사의 말이다.
 
  “산불피해지 복원은 자연복원과 인공복원을 적정한 비율로 조절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죠. 피해가 적거나 급경사 지역은 그대로 두는 자연복원지로 조성하고 송이 등 임산물이 많이 생산되거나 자연회복력이 약한 곳은 나무를 심는 인공복원이 필요합니다.”
 
  ― 생태론자들은 인공복원보다는 자연복원력을 강조합니다.
 
  “인공조림 복구는 산불로 사라진 지표면을 빨리 피복(被覆)시켜 숲이 성숙한 후 회복지 산림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지요. 양질의 목재를 공급하는 산림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또 산지재해 방지림, 도시와 생활권 주변의 다양한 휴양 기능까지 고려하는 산림복원이면 더 좋지요. 복원 목표나 산림 경영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철저하게 목표를 세워 나무를 심어야 해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박 박사의 말이다.
 
  “자연복원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산불 현장에 몇 번이나 와보셨는지…. 그분들은 여기 안 살잖아요. 기자님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여기 살아요. 근데 가꾸던 산에 불이 났어요. 그러면 그냥 두는 게 좋을까요? 본인 땅이 아니니까 쉽게 말씀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 다른 나라도 자연복원과 인공조림을 비교하는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나요?
 
  “무엇이 낫다고 주장할 수야 있지만 논문에선 수치화해야 하니까 쉽게 이론화하기 어려워요. 자칫 편향적으로 쓰면 공격을 받게 되니까요.”
 
 
  두더지와의 만남
 
  그때 길 한가운데로 두더지인지 쥐인지 동물이 나타나 길을 막는다. 가만히 지켜본다. 녀석이 태연히 느리게 걷는다. 왜 그런지 어깨가 처진 듯 힘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반갑다.
 
  ― 곤충이나 조류, 포유류 같은 동물은 산불 후 언제부터 확인할 수 있나요?
 
  강 박사의 말이다.
 
  “곤충이나 개미라든지, 토양의 어떤 미생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도 그렇고…. 일례로 개미 같은 곤충류는 14년 정도 지나면 종(種) 수나 개체 수라든지 이런 것들이 좀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완전히 회복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죠. 10마리 중에 8마리가 와도 완전히 회복됐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는 거의 다 회복됐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7년부터 2015년의 삼척 산불 피해지(산불 후 13년 차)의 봄·여름철 모니터링 결과, 26종 121개체의 조류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개체 수는 미피해지(57개 개체) 〉 자연복원지(38개) 〉 인공조림지(26개) 순이었다.
 
  ‘종(種) 다양성’ 지수도 자연복원지(1.96) 〉 미피해지(1.89) 〉 인공조림지(1.06) 순이었다.
 
  ― 해마다 놀라운 변화,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좀 나오나요?
 
  “급격한 변화는 없어요. 솔직히 10년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특별한 변화라기보다 최근 데이터를 보면 ‘종 다양성’이….”
 
  ― 종 다양성?
 
  “네, 종 다양성 측면을 주시하는데, 아무래도 자연복원지에서 종 다양성이 좋습니다. 생태적으로 산불 이후 초기에는 자연복원지에서 종 다양성이 훨씬 좋고요, 그러나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봤을 때는 양쪽에서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강 박사와 박 박사는 인공조림지와 자연복원지를 오가며 양쪽을 자세히 설명했다. 토양의 상태, 계곡부나 개활지(開豁地·앞이 막히지 않고 탁 트여 시원하게 열려 있는 땅), 사면(斜面·비탈)의 상층과 하층 등에 따라 종 다양성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 ‘종 다양성’ 지수가 높으면 반드시 좋은가요?
 
  “당연하죠. 종 다양성이 좋으면, 그래도 생태계가 안정됐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종들이 올라와줘야, 어느 정도 생태계가 좀 안정화됐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 그래도 세월이 더 흐르면 양쪽이 비슷해지겠지요?
 
  “그렇겠죠. 지금도 그런 과정에 있어요. 숲의 복원력이 30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비슷해졌다고 해서, ‘임지(林地) 생태적으로 가만히 나 둬야 한다’고 주장할 순 있어도, 인간이 산림을 이용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목재 가치를 충분히 활용해야 하니까요. 어떤 목표로 자연복원, 인공조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요?
 
  “똑같을 겁니다. 미국 와이오밍주(州) 일대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자연복원만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국립공원이라든지 자연보호구역은 자연복원이 우선시됩니다.”
 
 
  “전적으로 자연력에 맡기자는 주장은 위험”
 
  생태학자들은 복원의 힘을 자연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인류가 발전시켜온 조림학(造林學)이라는 분야를 외면할 수는 없다. “산림의 생태적 특성을 바탕으로 산림이 인간에게 주는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응용생태학”이 조림학이다.(마상규의 〈영동지방 산불 피해지 복구방안〉 참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산림청 관계자의 말이다.
 
  “생태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연에 맡기자’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적으로 자연력에 맡기자는 방임(放任) 주장은 위험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활엽수의 맹아력 때문에 소나무 산불 피해림은 활엽수림으로 빨리 천이(遷移)가 이뤄집니다. 활엽수의 생장력이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경제적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시간이 아깝지 않나요?
 
  특히 동해나 영동권 소나무림은 송이 생산의 최적지죠. 농가 소득을 무시할 수 없어요. 소나무 목재의 효용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숲의 주인은 모두 어디로 갔나?’
 
  강원도 고성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3곳의 서로 다른 현장이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메일을 열었더니 김재준 울진 부군수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자작시(自作詩)다. 읽어보니 뭉클하다. 그의 바람처럼 언제쯤 ‘잔인한 수묵화(水墨畵)’에서 숲이 다시 부활할까. 허락을 구해 시를 소개한다.
 
  까맣게 타버린 그들의 영혼 어디로 갔나?
  22년 3월 잔인한 수묵화에 그을음 냄새 난다
  강원과 경상도 접경
  울진삼척 무장공비 잔혹한 사건 후 54년
  신록의 계절을 먹칠한 수묵화
 
  열흘 동안 이승을 떠난
  고라니·산양·오소리·다람쥐·사슴·노루·개구리·애벌레….
  이름 있는 것들과 이름 없는 풀들과 작은 들꽃의 향기와
  수많은 산신령과 나무들
  불 먹은 그들은 어느 하늘에 떠돌고 있을까?
 
  타버린 봄, 초록과 새봄을 빼앗겨
  계절 건너 가을이 되었구나
  가뭄에 지친 소나무에 강풍이 달려들어 검댕이 만들었구나
  첨단과학 시대 인간들보다 영악해진 산불
  종횡무진·변화무쌍·신출귀몰….
 
  숲의 주인은 모두 어디로 갔나?
  까마귀 몇은 하늘 빙빙 돌다
  잿빛 그림을 물고 날아가는데
  그들은 언제 산이 되어 돌아오려나.
 
  -김재준의 ‘도화동산에서 수묵화를 바라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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