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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적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 그리고 前生 이야기

글 : 김영남  在美 프리랜서·前 조갑제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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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네덜란드 연구진 “心停止 환자의 10~20%가 臨死체험을 한다”
⊙ 臨死체험자들의 공통점 “나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 샤론 스톤 “하늘 위로 날아 빛으로 된 터널을 지났다”
⊙ “나의 前生은 이오시마에서 죽은 전투기 조종사였다”는 아기!
⊙ “神은 우리에게 영혼을 주시고 영혼은 평생 살아남는다”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잘 알려진 미국 여배우 샤론 스톤(63)은 2021년 3월 말 《두 번 사는 것의 기쁨(The Beauty of Living Twice)》이라는 자서전(自敍傳)을 냈다. 2001년 9·11테러 얼마 후 뇌출혈(腦出血)로 죽을 뻔했던 위기에서 살아난 경험을 계기로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그는 책 출간 당시 미국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2001년에 임사체험(臨死體驗·Near-death experience)을 했다고 주장했다. 임사체험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다 되살아난 체험을 의미한다. 샤론 스톤의 설명이다.
 
  “병원에 가기 며칠 전부터 뇌출혈이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의식을 잃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로 옮겨졌다. 이후 매우 조용한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확인했다. 어느 누구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의사 한 명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너무 조용했기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후 이 의사는 뇌출혈 증세가 있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신경외과 전문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환자 이송용 침상으로 옮겨졌는데 갑자기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하늘 위로 날아가 빛으로 된 긴 터널을 매우 빠르게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터널 맨 위의 구멍으로 내가 가까이 지내며 신경 써줬던, 이제는 죽고 없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이들은 나를 구멍으로 내려다보며 ‘다 괜찮아(fine), 멋진 일이야(wonderful)’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 내가 너희와 함께하게 되는 거구나, 알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가슴 부위를 세게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가 심장박동을 되살리기 위해 충격을 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응급실 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의식을 찾은 내게 의사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나는 소변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실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내가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매우 이상하면서도(strange) 매우 아름다운(beautiful) 경험이었다.”
 
 
  30년 전에 죽은 할머니 나타나
 
2021년 3월 샤론 스톤이 쓴 자서전 《두 번 사는 것의 기쁨》.
  샤론 스톤의 자서전을 읽어보니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다. 당시 의료진은 뇌출혈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출혈이 되는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을 못 하고 계속 비몽사몽(非夢似夢)과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샤론 스톤의 이야기다.
 
  “더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독자들이 자신과 본능을 믿기를 바라며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하루는 밤에 눈을 떴는데 30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 ‘레라’가 내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아름다웠다. 할머니는 항상 ‘겔랑(Guerlain)’의 ‘샬리마(Shalimar)’ 향수를 사용하고는 했는데 할머니로부터 좋은 향기가 났다. 할머니는 가장 아끼는 옷과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멋져 보였다.
 
  할머니는 내게 ‘너한테 정확히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지금 알아내려고 하고 있단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을 움직이면 안 돼, 알았지?’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샤론 스톤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 목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얼마 후 또 한 차례의 혈관 촬영 검사가 진행됐고 오른쪽 추골동맥 쪽에서 피가 흘러 뇌와 척추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뇌출혈 발생 9일째가 돼서야 정확한 원인을 찾아낸 것이다. 목을 심하게 움직였다면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수 있다고 한다. 샤론 스톤은 그의 책에서 “생존 확률이 1%가 되지 않았으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회고하며 ‘두 번 사는 것의 기쁨’을 느낀 순간들을 소개했다.
 
 
  삶 후의 삶
 

  임사체험이라는 표현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레이먼드 무디라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다. 그는 1975년 《삶 후의 삶(Life after life)》이라는 책을 통해 임사체험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임사체험을 다음 열한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1. 체험 내용의 표현이 불가능하다.
  2. 죽음의 선고를 듣는다.
  3.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다.
  4. 이상한 소리가 난다.
  5.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
  6. ‌체외이탈(體外離脫·Out-of body experience)을 경험한다.
  7. 누군가와 만난다.
  8. 빛과 만난다.
  9. 지난 삶을 돌아본다.
  10.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만난다.
  11. 살아서 돌아온다.
 
  앞서 소개한 샤론 스톤의 이야기에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빛, 터널, 체외이탈, 누군가와의 만남,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다 등.
 
  기자는 지금까지 미확인비행물체(UFO), 그리고 UFO 현상의 가장 고차원으로 분류되는 ‘외계인에 의한 납치’ 현상을 취재해왔다. 그러다 ‘우주에 우리밖에 없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이는 ‘인간의 의식(意識·consciousness)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레슬리 킨이라는 여성 기자를 알게 됐다. 그도 오랫동안 UFO 문제를 다뤘고 미국 국방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던 UFO 전담 부서의 실체를 폭로한 2017년 《뉴욕타임스》 특종기사 필진 중 한 명이었다. 킨 기자는 2017년, 임사체험을 하고 사후세계(死後世界) 및 전생(前生)을 기억, 혹은 경험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죽음으로부터 살아남다(Surviving Death)》를 썼다.
 
  레슬리 킨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을 취재한 뒤 이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믿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의 뇌와는 따로 기능한다는 이야기”라며 “인류가 풀지 못한 의문 중 하나는 의식이 인간의 몸이나 뇌가 죽은 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레슬리 킨 기자의 책에 소개된 임사체험 사례 중 대표적인 것들을 뽑았다.
 
 
  “의식이 빠져나와 천장에”
 
킴벌리 클라크 샤프. 사진=유튜브 캡처
  킴벌리 클라크 샤프는 의료사회복지사다. 그는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있는 하버뷰메디컬센터에서 약 10년간 근무했다. 1985년에는 시애틀의 프레드허치슨 암연구센터에서 사회복지과를 만들기도 했다. 이 연구센터는 골수(骨髓)이식을 세계 최초로 시행한 곳이다.
 
  1977년 4월 마리아라는 중년 여성이 이 병원으로 이송돼왔다. 멕시코 출신 이민자인 그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시애틀을 방문했다가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의식을 찾은 이후 마리아는 샤프와 주기적으로 만나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화를 나눴다. 마리아는 영어가, 샤프는 스페인어가 서툴렀지만 두 언어를 섞어가며 나름의 소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원해 있던 마리아에게 얼마 후 또 한 차례 심장마비가 왔다. 샤프를 비롯한 의료진은 그녀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공기가 폐로 통할 수 있도록 하는 큰 튜브가 그녀 목에 삽입됐다. 마리아의 옆에는 심전도 측정기가 설치돼 심장박동 움직임을 측정했다. 그러다 얼마 후 이 측정기 모니터 그래프가 일자(一字)로 바뀌었다.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임상적(臨床的)으로 사망한 상태를 의미했다.
 
  의료진은 마리아의 몸에 부착된 제세동기(除細動器·심장 부위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기기)를 작동시켰고 다행히 맥박이 돌아왔다. 마리아는 몇 시간 후부터는 혼자서 호흡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번 심장마비를 겪은 환자는 이런 증상이 반복될 것을 걱정해 정신적으로 불안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샤프는 마리아가 안정을 되찾자마자 그의 병실로 향했다. 걱정이 가득할 것 같던 마리아는 샤프를 보고서는 오히려 손을 흔들며 가까이 오라고 했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천장을 가리키며 자신이 “몸에서 빠져나와 저 위에 올라갔었다”고 했다. 위에서 자신의 호흡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마리아는 샤프에게 당시 병실에 누가 있었는지, 누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었는지,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어떤 기기들이 본인 주변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마리아는 제세동기에서 넓은 하얀색 종이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며 한 사람이 이를 치우기 위해 자신의 침대 밑을 향해 차버렸다고 했다.
 
  샤프는 마리아가 떠올린 기억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우선 마리아가 묘사한 병실 안의 모습이 실제 상황과 일치했다고 했다. 샤프는 ‘청력(聽力)’이 죽기 전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당시 대화 내용을 기억할 수는 있다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세동기에서 나온 종이가 걸리적거려 침대 밑으로 차버린 행동을 얘기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선 마리아 같은 일반인은 제세동기에서 이런 종이가 나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TV에서도 잘 소개되지 않는 내용이라고 했다. 마리아는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침대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도 없었다.
 
 
  테니스화
 
  마리아는 샤프에게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자신(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왔을 때 병원 밖으로 이동했는데 3~4층 높이에서 병실 창문 밖에 설치된 난간에 테니스화 한 짝이 올려져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짙은 청색의 남성용 테니스화였고 새끼발가락 쪽에 벗겨진 자국이 있다고 했다. 하얀색 신발 끈은 발뒤꿈치 쪽에 넣어져 있었다고 했다. 마리아는 누군가가 이 신발을 꼭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샤프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으로 신발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 큰 병원 건물에서 언제 신발을 찾나’ 하면서 밖으로 나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한 바퀴 걸어봤지만 건물 바로 밑에서 걸어서인지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건너서 한 바퀴를 더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찻길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샤프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뒤 3층으로 향했다. 건물 동쪽 편 병실들부터 무작위로 하나씩 들어가 봤다. 그 뒤 서쪽 편 병실들로 갔다. 한데 한 병실 창문 외부 난간에 테니스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샤프는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신발은 마리아가 묘사한 그대로였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병원 관계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리아의 심폐소생 과정에 참여했던 의료진은 임사체험 이야기를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임상적으로 사망했었다는 것을 이들은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2주 후 퇴원하면서 샤프에게 테니스화를 선물했다. 샤프는 이를 간직해왔으나 이사를 하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샤프는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의 인지능력, 자각(自覺),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시공간(時空間) 밖에서도 존재할지 모른다”고 했다.
 
 
  “황홀한 體外이탈 순간”
 
팸 레이놀즈. 사진=유튜브 캡처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팸 레이놀즈라는 여성은 1991년 35세의 나이로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는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배로우 신경과학연구소의 로버트 스펫즐러 신경외과 과장으로부터 수술을 받기로 했다. 성공 가능성은 적었으나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기에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레이놀즈의 수술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심장박동이 멈추는 등 임상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다가 되살아난 사례였다.
 
  의료진은 수술에 앞서 레이놀즈가 눈을 뜨지 못하도록 테이프를 붙였고 귀에는 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스피커 형태의 물체를 집어넣었다. 이 스피커에서는 딸깍거리는 소리가 계속 크게 나왔다. 즉 레이놀즈가 무엇을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레이놀즈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첫 기억은 의사의 어깨 위에 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의사는 큰 소리를 내는 기기(器機)를 손에 쥐고 있었다. 뇌를 절개하는 용도의 톱 같았는데 생김새는 연필에 가까웠다. 구멍을 뚫는 드릴 소리가 크게 났고 전동칫솔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밖으로 나가는 기분은 황홀했다. 내 몸무게가 500파운드(227kg)가 됐던 건 아니지만 그 정도 무게에서 갑자기 살이 다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고통이나 두려움도 사라졌다. 남겨질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나는 (수술실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계속 수술대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더 이상 저기 누워 있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 황홀했다. 내가 내 몸이 아닌 몸 밖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레이놀즈는 수술실에 있던 한 여성이 자신의 동맥이 너무 좁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잘못 건드리게 될까 걱정돼 이 여성과 소통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레이놀즈는 얼마 후 다른 존재가 수술실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빛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후 빛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미 세상을 뜬)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할머니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일부는 아는 사람들이고 일부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레이놀즈는 이 생명체들이 모두 빛으로 감싸져 있었다고 했다.
 
 
  “빛은 神이 숨쉬는 것”
 
  레이놀즈는 할머니에게 “이 빛이 신(神)인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크게 웃더니 “아니란다 아가야, 빛은 신이 아니야. 신이 숨을 쉴 때 생기는 게 빛이란다”라고 했다고 한다.
 
  레이놀즈는 그곳에서 39세의 나이로 일찍 숨진 삼촌을 보게 됐다고 했다. 삼촌은 목소리가 아닌 표정으로 레이놀즈와 소통했는데, 인간이 사는 세상의 소통보다 훨씬 더 명확했다고 했다. 레이놀즈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레이놀즈는 얼마 후 자신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삼촌이 직접 배웅을 해줬다고 했다. 삼촌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을 생각해봐, 그립지 않겠니? 네 아이들이 그립지 않겠니?”라며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과 똑같단다 아가야, 뛰어내려”라고 했다고 한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몸이 첫 번째로 시행된 제세동기의 충격으로 튀어 오르는 것이 내려다보였다고 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몸 같아서 되돌아가기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들어가게 되면 고통이 느껴질 것 같았다고 했다. 삼촌은 망설이는 레이놀즈의 몸을 밀어버렸고 제세동기가 두 번째 충격을 가하는 동시에 몸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다. 그러자 제세동기 모니터에 보이는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다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무언가 불편했다고 했다. 몸으로 돌아오는 것은 “얼음물로 된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 같았다”고 했다.
 
  레이놀즈는 수술 다음 날 스펫즐러 신경외과 과장과 수술 중 경험한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스펫즐러는 수술기록을 찾아본 뒤 제세동기가 두 차례 작동된 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스펫즐러는 레이놀즈가 들었다는 ‘동맥이 좁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당시 수술에 참여했던 심혈관 전문 의사였다고 했다. 스펫즐러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의 경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뇌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 뇌에 피가 흘러야 신경들이 작동할 수 있는 영양소를 공급받는다. 팸 레이놀즈가 임상적으로 사망한 상태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이놀즈의 뇌전도(腦電圖) 측정기 역시 어떤 활동도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팸이 떠올린 기억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임상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
 
  레이놀즈가 봤다고 한 수술 도구는 ‘미다스 렉스 드릴(Midas Rex Drill)’이라는 기기로 뇌수술에 자주 사용되는 얇고 긴 전동드릴이다. 스펫즐러는 “누군가 내게 이 기기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전동칫솔같이 생겼다고 말할 것 같다”고 했다. 스펫즐러는 레이놀즈가 수술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 기기를 본 뒤 수술 중에 봤다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모든 기기는 보이지 않게 덮여 있었다고 했다. 환자가 완전히 마취에 빠지고 나서야 기기들을 꺼내 소독한 뒤 수술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장님
 
  이런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보기에 앞서 흥미로운 사례 몇 개를 추가로 소개한다. 이는 공교롭게도 처음에 소개한 마리아라는 여성이 임사체험을 한 시애틀의 하버뷰메디컬센터에서 1973년에 발생한 사건이다.
 
  비키 노라턱이라는 여성은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지역에서 1950년에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未熟兒)로 시신경(視神經)이 손상돼 실명(失明) 상태로 태어났다. 빛이나 그림자, 검은색 색깔도 볼 수 없는 정도였다.
 
  1973년 2월 2일, 23세였던 노라턱은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을 뻔했다. 두개골이 골절되고 뇌진탕 증세가 생겼으며 목과 등, 다리를 다쳤다.
 
  노라턱은 사고 직후 하버뷰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그는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침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악몽 같기도 했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살려내려고 하는 의사들이 보였다고 했다. 자신의 머리카락과 머리에 있는 핏자국이 보였다고 했다. 머리카락 일부가 짧게 잘린 것도 보였다고 했다. 자신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있는 결혼반지와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있는 아버지의 결혼반지가 보였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보며 ‘내가 진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천장에서 의사들이 내 몸을 살려내려는 것을 지켜봤다. 한 의사가 ‘살려낼 수 없어, 살려낼 수 없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살려낼 수가 없어’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이 의사는 그런 뒤 ‘피가 왼쪽 고막으로 흘러들어가 청력도 잃게 될 것 같아, 정말 안됐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말하는 게 내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옆에 있던 한 여성 의사는 ‘살아나더라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내 몸으로 날아 들어가 이 여성 의사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그녀를 만지려고 오른손을 뻗었는데 그녀의 몸을 그냥 관통해버렸다.”
 
  노라턱의 심장은 약 4분간 정지했고 임상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다. 당시 의료진은 그가 떠올린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했다. 다만 그가 ‘봤다’고 한 이야기들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코네티컷대학교의 심리학 명예교수 케네스 링은 체외이탈을 경험했다는 사람들 가운데 실명한 사람이 무언가를 ‘봤다’고 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고 한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몇 년 전 권위 있는 의학전문저널인 《란셋(Lancet)》에 한 임사체험 사례가 소개된 적이 있다. 44세의 남성 환자는 심장마비로 길가에서 의식을 잃은 뒤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 환자는 혼수상태였고 심장 역시 멈춰 있었다. 당시 한 간호사는 기관 내 삽관을 위해 환자의 틀니를 제거했다. 심폐소생 절차는 9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결국엔 맥박이 돌아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당시 간호사의 증언이다.
 
  “이 환자를 다시 만난 건 그가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한 주 뒤였다. 그에게 처방약을 전달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 내 틀니가 어디 갔는지 아는 간호사네?’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당신 맞지? 내가 병원에 왔을 때 내 입에서 틀니를 빼서 카트 위에 올려놨잖아. 카트에는 여러 병이 올려져 있었고 카트에 있는 서랍 같은 걸 열고 틀니 집어넣었지?’라고 했다. 이 남성은 혼수상태였고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는데 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는 자신이 누워 있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당시 그가 있던 방의 상태를 자세하게 떠올려냈다. 그는 우리가 심폐소생술을 중단해 죽게 될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우리 모두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아직 살아 있으니 계속 심폐소생술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는 4주 뒤 건강한 몸이 돼 퇴원했다.”
 
 
  ‘인간의 10~20%가 臨死체험을 한다’
 
핌 반 로멜 박사. 사진=로멜 개인 홈페이지
  핌 반 로멜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심장병 전문의다. 그는 1986년부터 심장마비 이후 임사체험을 했다는 환자들의 사례를 연구했다. 2007년에는 《무제한의 의식: 임사체험에 대한 과학적 접근(Endless Consciousness: A Scientific Approach to the Near-Death Experienc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1988년 그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두 명의 심리학자와 함께 임사체험 경험자들에 대한 심층 연구를 진행했다. 네덜란드에 있는 10개 병원의 환자 중 심장마비 이후 살아난 사람들 344명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이 된 환자들은 모두 임상적으로 사망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었다. 임상적 사망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의식을 잃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맥박이나 혈압도 측정되지 않으며 몸이나 뇌가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상태다. 이런 환자의 경우는 5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이 진행되지 않으면 뇌에 되돌릴 수 없는 충격이 가해져 결국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
 
  반 로멜의 연구 결과 344명 중 82%인 282명은 심장마비에 의한 무의식 상태에서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18%인 62명은 임사체험을 했다고 했다. 임사체험자 중 66%인 41명은 평범한 기억을 떠올려냈고 34%인 21명은 보다 초자연적인 기억을 떠올려냈다.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50%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했고 56%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25%는 ‘체외이탈’을, 31%는 ‘터널과 같은 곳을 지나갔다’고 했다. 23%는 ‘빛과 소통했다’고 했다.
 
 
  臨死체험, 심리학·생리학적으로 설명할 방법 없어
 
  반 로멜 연구팀은 임사체험을 했다는 집단과 심장마비 이후 되살아났지만 기억이 없다는 통제집단을 나눠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통제집단과 다른 점들이 확인됐다. 연구 결과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통제집단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인들의 임사체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일종의 서운함도 느끼고 있었다.
 
  반 로멜 연구팀은 똑같은 심장마비를 겪었는데 왜 누구는 임사체험을 하고 누구는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했다. 심장마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됐는지, 이들에게 어떤 약물이 사용됐는지,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등에 따른 차이인지를 조사했으나 그렇다는 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임상적인 환경은 물론, 종교나 교육 수준, 성별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했다. 반 로멜은 “심장마비 상황에서 생긴 생리학·심리학·약학 요소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며 “만약 생리학적인 요소가 원인이었다면 임상적으로 사망했던 환자 대다수가 임사체험을 했어야 하지만 18%만 이를 체험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엄청난 미스터리다”라고 했다.
 
  반 로멜 연구팀은 이런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란셋(Lancet)》에 게재했다. 전 세계 유력 언론이 이를 소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논문 발표 이후 공격도 받았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산부인과 의사이자 ‘돌팔이 의사 퇴치 협회’ 대표를 맡고 있는 렌켄스가 대표적인 비판론자였다. 그는 임사체험은 “성격 장애, 만성피로증후군, 섬유근육통, 그리고 ‘외계인 납치 신드롬’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정 종교 종파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 로멜 박사와 비슷한 연구 결과는 계속해서 나왔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브루스 그레이슨 박사는 2003년 임사체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116명의 환자를 조사한 결과 15.5%가 임사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심리학, 혹은 생리학적으로 임사체험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臨死체험 기억, 실제 기억보다 구체적
 
샘 파니아 박사. 사진=뉴욕대 의대 홈페이지
  2014년 미국 뉴욕대학교 의대의 샘 파니아 박사는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4년에 걸쳐 2060명의 환자들을 연구했다. 이들은 모두 심장마비를 겪은 뒤 살아난 사람들이었다. 영국과 미국, 오스트리아에 있는 15개 병원의 환자들을 조사했다. 여러 단계의 조사와 심층 면접이 진행됐다. 이들 중 긴 조사 과정을 모두 끝마친 사람은 101명이었다. 101명에 대한 연구 결과, 9명이 임사체험을 경험했다고 했다.
 
  파니아 박사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 중 왜 10%에서 20%만이 임사체험을 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의 가설(假說)을 내놨는데 환자 뇌의 손상, 혹은 충격 정도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임상적으로 사망한 상황이 되면 뇌에 손상이 생기고 이때 생긴 부기(浮氣)나 충격으로 인해 기억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죽었다 살아난 ‘직후’에 만난 사람일수록 기억이 또렷했다고 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임사체험을 했으나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벨기에 리에주대학교의 과학자 7명은 임사체험 경험이 상상으로 떠올린 기억이 아닌가를 연구했다. 이들은 “임사체험 기억이 실제 일어난 기억이나 혼수상태의 기억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이를 상상에 기반한 착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탈리아 파도바대학교 소속 9명의 과학자들은 2014년 임사체험 경험자들의 뇌파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임사체험 기억과 과거 실제로 일어난 기억, 그리고 상상한 일들을 떠올려낼 때 나오는 뇌파의 차이를 분석했다. 이들은 “임사체험 기억을 떠올려낼 때의 뇌파 움직임과 상상한 일을 떠올려낼 때의 움직임이 달랐다”며 “뇌신경 측면으로 봤을 때 임사체험 기억을, 상상한 기억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임사체험의 기억이 의식을 갖고 있던 특정 순간에 생긴 실제 기억으로 뇌에 저장돼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일어난 기억 수준으로 구체적이었으며 당시의 감정 등이 자세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과학은 새로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
 
  네덜란드의 반 로멜 박사는 만약 임사체험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무언가를 인식하는 데 있어 뇌나 눈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의식이라는 것 자체로서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통상에선 의식이 경험한 것을 뇌를 통해 입력하는데, 특별한 상황이 되면 의식이 몸의 뇌 안에 있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다고 했다.
 
  그는 현존하는 의학 기술, 즉 뇌파 측정기기 및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scan) 등을 통해 뇌의 혈류를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혈류의 움직임만으로는 특정인의 의식이 무엇을 생산하고 받아들이는지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이유에서 의식과 인간의 인식(認識)이라는 것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고 했다.
 
  그는 의식이라는 것을 TV에 비유하기도 했다. TV는 전자파를 이미지와 소리로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TV가 필요한데 TV의 전원이 꺼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는 뇌가 멈춘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TV는 꺼졌지만 TV에 저장된 기억과 정보는 인간의 의식이 계속 머물러 있듯 남아 있다고 했다. 연결 상태가 끊긴 것일 뿐이라고 했다. 반 로멜 박사의 설명은 이어진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한 반박 불가능한 과학적 증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몸통이 없어도 의식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의식하는 존재다. 과학은 열린 마음을 갖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과학은 새로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 돼야지 과거의 개념만을 고수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물질론적인 세계관은 의식이 죽음을 뛰어넘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문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저쪽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잠깐의 죽음을 경험해서인지 실제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2021년 4월 세상을 뜬 일본 ‘탐사보도의 거장(巨匠)’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2015년 《죽음은 두렵지 않다》라는 책을 냈다. 그는 상하(上下) 두 권으로 구성된 《임사체험》이라는 책을 과거에 쓴 적이 있다. 2015년 75세에 쓴 책에서, “내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건 TV 프로그램 제작차 취재를 하면서 임사체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과 가까워진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이 평생 탐구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에 대한 답은 나이에 따라 상당히, 또는 미묘히 변해간다. 이것은 내가 일흔다섯 살이 되는 시점에 얻은 해답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임사체험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건 너무도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며 ‘초월적 존재’와 만나는 신비체험이다”라고 했다. 그는 “인간은 죽음의 순간 정서, 의욕, 기억에 관여하는 대뇌변연계(大腦邊緣系)의 작용에 따라 백주몽(白晝夢)을 꾸는 것 같은 상태가 되면서 충만한 행복감에 빠져들게 되는데, 바로 이때 신비체험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소개한 임사체험 경험자 레이놀즈 씨는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사체험을 한 후 나는 죽음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 누군가를 잃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내 죽음의 차례가 온다면 나는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 사람들이 부럽다. 이들이 가는 곳은 너무나도 황홀한 곳이다.”
 
  20세기 최고의 발명가로 꼽히는 토머스 에디슨은 죽기 직전 혼수상태였다가 갑자기 눈을 떠 위를 올려다보곤 “저쪽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1년에 숨진 애플사(社)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가족들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오 와우(wow), 오 와우, 오 와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이 무엇을 봤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前生을 기억하는 두 살배기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제임스 휴스턴(왼쪽)과 그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제임스 레닝거. 사진=유튜브 캡처
  앞서 언급했듯 심정지(心停止) 상태였던 사람들의 10%에서 20%가 일정 시간 동안 임사체험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뇌와 심장이 멈춰도 의식, 혹은 영혼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영혼은 과연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찾았다. 아마 일반적인 임사체험보다 한 차원 위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라파예트에 거주하는 미국 백인 중산층 가족인 브루스 레닝거와 그의 부인 안드레아가 겪은 이야기다. 이들은 아들 제임스가 두 살쯤 됐을 무렵인 2000년 초부터 아들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들이 악몽(惡夢)을 계속 꾸고 꿈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데 두 살짜리 아이가 어디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악몽이라며 아이를 달랬을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부모가 직접 나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추적해나가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 부모는 아들의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나간 이야기를 엮어 《영혼 생존자-제2차 세계대전 전투기 조종사의 환생(Soul Survivor-The Reincarnation Of A World War II Fighter Pilot)》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에 책을 냈다.
 
  이들 부모는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카버나 항공 박물관을 찾아갔다가 처음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들 제임스는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F-10 전투기를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투기 안에 들어간 제임스는 자석에 끌리듯 전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어머니 안드레아는 집 근처 장난감 가게에서 플라스틱 비행기 장난감을 하나 아들에게 사줬다. 안드레아는 아들 제임스에게 장난감 비행기 밑에 폭탄도 달려 있다고 설명해줬다. 제임스는 잠깐 비행기를 쳐다보더니, “엄마, 그건 폭탄이 아니라 낙하 탱크(Drop Tank·기체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외부 장착 연료통)예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낙하 탱크가 뭔지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들 부모는 두 살짜리 아기가 ‘낙하 탱크’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나는 피격당했다”
 
  이 무렵부터 제임스는 매일같이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는 제임스가 방에 누워서 발버둥 치는 것을 봤다.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비행기가 불에 탄다, 탈출할 수가 없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 비행기의 앞부분을 계속 탁자에 부딪히게 해 앞에 있는 프로펠러 부분이 고장 나기도 했다.
 
  어느 날 이들 부모는 제임스가 자기 전 책을 읽어주다 ‘탈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제임스는 ‘나’라고 답했다. 그러곤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 아들아, 네 비행기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니?
 
  “불에 탔어요.”
 
  ― 왜 추락한 거니?
 
  “공격을 당했어요.”
 
  ― 누가 비행기에 쏜 거니?
 
  (제임스는 당연한 질문을 한다는 듯 부모를 쳐다봤다고 한다.)
 
  “일본인들이요.”〉
 
  제임스는 점점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떠올려냈다. 비행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던 사람의 이름은 자신과 같은 ‘제임스’라고 했다. 그러곤 자신이 타던 비행기의 기종이 ‘코세어(Corsair)’라고 했다. 이 비행기는 ‘배’에서 출격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배의 이름을 물어봤더니 ‘나토마(Natoma)’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배의 이름이 일본어 같다고 말하자 제임스는 미국 배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바보처럼 쳐다봤다고 한다.
 
 
  잭 라르센을 찾아서
 
  아버지는 이때부터 아들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조사를 시작했다.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아버지는 ‘전생’과 ‘환생’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과 다르기를 오히려 바랐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던 ‘나토마 베이(Natoma Bay)’라는 작은 항공모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코세어라고 불리는 전투기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것도 확인했다. 제임스를 데리고 갔던 박물관에는 코세어가 없었고 이를 어디에서 들었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제임스가 30개월쯤 됐을 때인 2000년 10월 ‘잭 라르센’이라는 이름의 제일 친한 조종사가 있었다고 했다. 이 무렵 브루스는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제임스의 할아버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놓은 이오시마(硫黃島) 전투 관련 책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임스는 이오시마 사진이 담긴 페이지를 보고 나서는 “아빠, 내 비행기가 공격을 당해 추락했을 때가 이때예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여기서’가 아닌 ‘이때’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브루스는 미국 참전용사 협회 등에 연락해 ‘라르센’ ‘라르손’ 등의 성을 가진 전사자(戰死者)나 생존자를 찾아 나섰다. 브루스는 ‘나토마 베이’ 항공모함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단체를 찾았다. 그는 당시 VC-81 부대에서 활동했던 조종사 레오 피야트와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잭 라르센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묻자 바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느 날 출격한 이후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브루스는 “당시 코세어라는 전투기가 작전에 사용됐느냐”고 물었다. 피야트는 “나토마 베이에서 코세어가 사용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브루스는 안도의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이었다고 했다. 코세어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잭 라르센이라는 인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내가 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니까…”
 
  2001년 봄 무렵부터 제임스는 자신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참혹한 비행기 추락사고 현장 그림이었다. 제임스는 갓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제임스 3’이라고 그림에 서명을 해놓곤 했다. 부모는 제임스가 곧 세 살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왜 3을 쓰느냐고 묻자, “내가 제임스 3세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2년 9월 아버지 브루스는 나토마 베이 참전용사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나토마 항공모함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역사학자 존 듀윗을 만났고 잭 라르센이라는 사람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듀윗은 그런 이름의 조종사가 있었다고 했다. 명단을 찾아보더니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브루스는 당시 나토마 베이에서 근무했던 전사자 21명의 명단을 구했다. 그러다 ‘제임스 휴스턴 주니어’라는 이름을 찾아냈다. 그는 이오시마 전투 당시인 1945년 3월 3일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정확한 전사(戰死) 원인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이오시마 전투 때 숨진 유일한 조종사가 그였다. 제임스 주니어가 2세라고 한다면 지금 그의 아들 제임스가 3세가 된다는 이야기가 됐다. 브루스는 진정 전생, 혹은 환생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코세어 비행기가 당시 전투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얼마 후 브루스와 부인 안드레아는 아칸소주 스프링데일에 살고 있는 잭 라르센을 찾아갔다. 그는 1945년 3월 3일 출동한 뒤 부대로 복귀하고 나서야 제임스 휴스턴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라르센은 이들 부부에게 당시 전투에서 사용하던 조종사 헬멧과 고글, 산소마스크를 가져가라고 했다. 제임스는 일종의 의식(儀式)을 치르듯 경건하게 헬멧을 머리에 쓰고는 그가 방 장롱에 만들어놓은 조종석 모양의 놀이장소로 가 놀았다고 한다.
 
  제임스는 세 살 생일 때 군인 인형인 지아이조(G.I Joe) 두 개를 선물 받았다. 제임스는 이들의 이름을 ‘빌리’와 ‘레옹’으로 지었다. 밤새 이 인형들을 갖고 전쟁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빌리는 갈색머리 인형이었고 레옹은 금발머리였다. 제임스는 얼마 후 크리스마스 때 또 하나의 군인 인형을 선물 받았는데 이름을 ‘월터’라고 지었다. 월터 인형의 머리카락은 빨간색이었다.
 
  부모는 주변에 월터나 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왜 아이가 이름을 이렇게 지었나 궁금해졌다. 브루스는 제임스에게 이들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느냐고 물었다. 제임스는 “내가 천국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이니까”라고 말했다.
 
 
  퍼즐이 맞춰지다
 
  브루스는 서재로 가 나토마 베이 소속 군인 중 전사한 사람들의 명단을 찾아봤다. 빌리 필러, 레옹 코너, 월터 데블린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이들 모두 제임스 휴스턴과 같은 부대였다. 이들은 모두 제임스 휴스턴이 실종되기 전에 숨진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 먼저 가 있었을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브루스는 이들 세 명의 전사자 가족을 찾아 연락을 했다. 머리카락 색깔이 모두 이름이 붙은 인형의 머리색과 일치했다.
 
  브루스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인구 통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제임스 휴스턴에게 두 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숨졌고 ‘앤’이라는 이름의 여자 형제 한 명만 살아 있었다.
 
  브루스와 안드레아는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던 당시 84세의 앤에게 전화를 걸었다. 브루스는 나토마 베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앤은 제임스의 사진을 몇 장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앤이 보내온 사진 중 한 장이 브루스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제임스가 코세어 전투기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머리가 삐쭉 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휴스턴의 복무기록을 보니 그는 나토마 베이에서 근무하기 전 코세어 전투기 비행 훈련을 받았다. 당시 해군이 보유한 최고의 전투기였고 코세어를 조종한 조종사들은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브루스는 이후 제임스 휴스턴이 조종하던 전투기가 공격을 받고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증언까지 확인했다. 비로소 아들 제임스가 하는 이야기들의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이었다.
 
 
  영혼불멸
 
  브루스 가족은 얼마 후 제임스 휴스턴의 여자 형제인 앤을 만나게 됐다. 죽은 제임스가 앤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앤의 나이는 24세였다. 아기 제임스는 앤을 처음 보고는 그를 계속 관찰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제임스는 앤을 향해 ‘애니(註·애칭)’라고 불렀다고 한다. 앤은 “(남자 형제였던) 제임스 말고 내게 ‘애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2006년 제임스는 8세가 됐을 때 일본 후지TV 방송의 초청을 받아 그의 비행기가 추락했던 장소에 가보게 됐다. 당시 일본 방송은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가 추락한 곳은 이오시마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치치시마(父島)라는 섬이었다.
 
  제임스는 당시 치치시마에 있는 절벽을 내려다보며 “제임스 휴스턴이 비행하다 죽은 곳이 이곳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은 작은 낚싯배를 타고 휴스턴의 전투기가 추락한 곳으로 향했다. 평범한 8세 아이처럼 신나 보이던 제임스는 그가 추락했던 장소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진지해졌다고 한다. 브루스는 나토마 베이 소속으로 전사한 21명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고 제임스는 바다를 향해 꽃을 던졌다고 한다. 제임스는 이로부터 약 15분간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배에 타고 있던 어른들은 모두 어린아이가 그렇게 슬프게 애도하는 것을 보고 숙연해졌다고 한다.
 
  제임스는 이후부터 조금씩 전생(前生)의 기억을 잊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레슬리 킨 기자는 제임스가 18세가 됐을 때인 2016년 무렵 그를 만났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해군에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제임스의 아버지 브루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신앙이 깊어졌다고 했다.
 
  “제임스의 경험은 나의 (기독교적인) 믿음과 사실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신(神)은 우리에게 영혼을 주시고 영혼은 평생 살아남는다. 제임스 사례의 경우는 영혼이 귀환한 경우이고, 나의 노력이 증거를 찾아냈다. 나의 결론은 신은 우리에게 영생(永生)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다. 제임스의 경험은 영생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연(試演)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임스 휴스턴의 영혼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왜냐고? 나는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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