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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열풍 진단

요즘 대세라는 ‘메타버스’,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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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 오피스로 출근하고 가상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
⊙ ‘Z세대의 놀이터’ 찾은 정치인들, 아바타로 친근감 높여
⊙ 메타버스는 ‘오래된 미래’일 뿐… ‘회의론’도 솔솔
사진=셔터스톡
  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일본 오사카의 한 전통 료칸(여관) 앞. 아무도 없는 거리가 쓸쓸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심심해졌다. 프랑스 파리로 이동했다. 에펠탑 인근 간이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탔다. 그때, 멀리 ‘크리스찬 루부탱’(프랑스 명품 구두 브랜드)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구두 몇 켤레를 신어 봤다. 그러다 보니 의상이 받쳐주지 않았다. ‘구찌에서 신상품이 나왔다던데….’ 10초 만에 이탈리아 피렌체로 넘어갔다. 구찌 본점에 입장. 스웨터와 코트를 입다 보니 어느덧 새벽 2시. 허언증에 걸렸냐고? ‘제페토(ZEPETO)’에서는 가능한 얘기다.
 
 
  메타버스 속 또 다른 세계
 
‘제페토’ 내 마련된 민주당 대선 주자 이낙연 전 대표의 유세장. 뒷모습은 기자의 아바타.
  가공 또는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라는 의미의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메타버스’는 쉽게 말해 ICT 기술이 구현한 ‘가상세계’다. 제페토는 메타버스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2018년 선보인 플랫폼이다. 앱을 깔고 나만의 ‘아바타’를 생성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아바타는 현실 속 생김새와 비슷하게 만들 수도, 전혀 다른 캐릭터로 꾸밀 수도 있다. 전자(前者)의 경우 ‘셀카’를 찍으면 비슷한 얼굴의 아바타가 자동으로 탄생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거리도 많다. 제대로 단장하려면 ‘현질’(현금을 주고 온라인 아이템을 사는 것)을 해야 한다. 이름까지 지어주면 준비 끝이다.
 
  ‘제페토 월드’에 입장하면 가상공간 속 다양한 세계를 뜻하는 ‘맵’에 접속할 수 있다. 공항이나 파티룸, 벚꽃 거리, 교실 등 제페토에서 자체 생성한 맵뿐만 아니라 가입자들이 직접 만들어둔 비공식 맵도 무수히 많다.
 

  흥미롭지만 어쩐지 생경한 이 공간에는 익숙한 얼굴도 많다. 우선 여야 대선 주자들이다. 이낙연·정세균·박용진·김두관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원희룡 국민의힘 후보 등이 제페토를 지지자와 소통하는 채널로 택했다. 아바타로 이들을 만나니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인기 크리에이터 맵’으로 등재됐던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이낙연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6월 22일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라는 맵을 만들었다. 누적 방문자 수는 2만명을 넘었다. 가상 유세장에 들어가면 그의 얼굴이 크게 새겨진 전광판과 ‘958일 역대 최장 총리’ 등 이력을 써놓은 입간판이 있다. 지난 7월 4일, 이 맵에 들어섰을 때 중앙무대에는 10명의 아바타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댄스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대화창에는 10대들의 신조어와 수많은 ‘키읔’(웃음소리)이 가득했다. 왁자지껄했다.
 
  한편 국민의힘 대권주자 원희룡 전 제주지사 유세장은 비교적 차분한 느낌이었다. 벚꽃이 만개한 고궁을 콘셉트로 한 유세장 하늘엔 ‘업글희룡’이란 문구가 떠 있었다. 원 전 지사는 지난 7월 25일 이곳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Z세대 놀이터’로 몰리는 기업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유세 당시 ‘모여봐요 동물의 숲’ 안에서 선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진=그렉 밀러 트위터
  메타버스를 활용한 선거 유세. 미국에서는 진작 있은 일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는 ‘포켓몬고(Go)’를 활용했다. 지난해 조 바이든은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선거 유세를 펼쳤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저서 《메타버스》에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채널과 공간으로 신문, TV토론 프로그램, 공원, 시장 등을 주로 활용해왔다”면서 “그런데 젊은 세대일수록 신문, TV 등과 같은 전통 미디어를 소비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들은 공원, 시장보다 메타버스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정치인들의 소통 방식이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초 기준 제페토의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는 무려 2억8000만 건이다. 이 중 80% 이상이 10대다. ‘Z세대의 놀이터’라고 불리는 이유다. Z세대를 공략하는 데 이만큼 좋은 공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블랙핑크, 잇지(ITZY) 등 한류 스타들은 이곳을 선점한 지 오래다. 팬사인회를 하고 콘서트도 연다. 지난해 9월 제페토에서 열린 블랙핑크의 가상 팬사인회에는 전 세계에서 무려 460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방문했다. 지난 2월 설 연휴 기간 진행한 잇지의 팬미팅에는 68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해 멤버의 아바타와 함께 한강을 누볐다.
 
  ‘현실 기업’들도 속속 제페토 속으로 진출했다. 현대차는 맵 속 드라이빙 존에서 N시리즈를 시승할 수 있도록 했다. 디즈니는 ‘비치타운’이라는 맵에서 영화의 예고편을 틀어 신작을 홍보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제페토 내 ‘구찌 빌라’를 세워 제품을 입어보고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밖에 나이키·퓨마·DKNY·크리스찬 루부탱,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KT위즈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숍이 입점했다.
 
 
  ‘가상 오피스’로 출근하는 사람들
 
(주)직방은 오프라인 사무실을 아예 없애고 자체 개발한 메타버스 오피스인 메타폴리스로 영구 이사했다. 사진은 메타폴리스 전경. 제공=(주)직방
  본사를 아예 가상공간으로 이전한 기업도 있다. ㈜직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잠정적 결정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 본사 사무공간을 없애고 영구적으로 메타버스 속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6월 ㈜직방은 메타버스 사무실 ‘메타폴리스’를 개발했다. 7월부터 직원 약 270명 모두가 이곳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전 9시, 노트북만 열면 출근 완료다. 이진영 ㈜직방 매니저의 말이다.
 
  “출퇴근 러시아워가 없으니 하루 1~2시간을 버는 셈이죠. 자연히 업무 효율도 높아졌어요. 종전 같으면 생각도 못 했을 제주 ‘한 달 살기’도 가능하고요, 지방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이사를 계획하는 직원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둔 직원은 육아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좋아하고요.”
 
메타폴리스에서 근무 중인 (주)직방 직원들. 제공=(주)직방
  선뜻 감이 안 올 텐데, 흔히 사용하는 화상 회의 ‘줌(zoom)’과는 다른 방식이다. 화면 속 실재 같은 ‘공간’이 있다. 지정된 책상에 아바타를 앉히면 근무가 시작된다. 이 매니저는 “줌처럼 잠깐 모였다 흩어지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개념”이라면서 “다른 층으로 가려면 승강기도 타고, 옆에 누가 지나가면 인사와 대화도 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기존 사무공간에서처럼 일한다”고 했다. 이 매니저는 “직원들 모두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퇴근하는 맛이 없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메타폴리스는 30층짜리 고층건물이다. 직방은 4층에 있다. 나머지 공간은 다른 기업에 임대하기로 했다. 첫 입주자는 민주당이다. 총 7개 층을 빌렸다. 이 중 1층은 중앙당사, 나머지는 대선 경선 후보들을 위한 캠프 사무실로 쓰기로 했다. 지난 8월 20일 입주식도 진행했다. 국민의힘 또한 입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전언이다.
 
  완전히 메타버스 속으로 들어간 사례는 ㈜직방이 유일하지만 메타버스를 사원교육, 채용설명회, 회의 등에 활용하는 기업은 흔히 볼 수 있다.
 
 
  ‘이생망’ 2030들… 메타버스에서는 땅 부자
 
  가상 오피스 임대. 놀라기는 이르다. 일각에서는 아예 가상 부동산을 사고 팔며 시세 차익을 올리기도 한다. 호주 출신 개발자인 세인 아이작이 만든 ‘어스(earth)2’를 통해서다. 대표적인 가상 부동산 매매 플랫폼이다. 어스2는 ‘제 2의 지구’라는 뜻이다. 구글맵을 기반으로 현실세계를 복제했다. 이곳에서는 ‘타일’을 통해 가상 부동산을 소유한다. 1타일의 크기는 10㎡(3.025평)다.
 
  7080세대가 ‘부루마블’로 땅 부자가 됐다면 MZ세대는 이곳에서 땅을 산다. 직장인 이은성(32)씨는 지난 3월 결혼한 무주택자다. 그는 “앞으로도 언제 집 한 채 살 수 있을지 막막하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나도 부동산 부자다. 서울 압구정동과 미국 맨해튼에 집이 한 채씩 있다”면서 “주변에 ‘메타버스에서라도 강남 아파트를 매매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좌절에서 벗어나자’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지난 6월 어스2에서 가상 토지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미국(타일 수 60만 개)에 이어 한국(56만 개)이 2위다. 한국인들이 보유한 타일을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630만 달러(약 70억원)다. 부동산 투자 강국답다.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느냐고? 가능하다. 주식처럼 시세가 오르기도 한다. 서비스 초창기인 2020년 말 타일 가격은 개당 0.1달러(약 114원)로 균일했다. 지금은 천차만별이다. 지난 6월 3일 기준 강남 일대는 개당 3만257원에 거래되고 있다. 7개월 만에 무려 약 2만6000% 상승한 셈이다. 이씨는 “가상 부동산이지만 현실에서처럼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라면서 “뉴욕 맨해튼과 서울 강남은 이곳에서도 노른자위”라고 했다. 백악관, 타지마할, 다이아몬드 광산 등 인기 지역은 선점된 지 오래다. 이용자들은 월드컵 개최 예정지, 천연자원 매립지 등 지역을 탐구하며 마치 저평가 주를 찾듯 세계 곳곳을 누빈다.
 
  다른 유저에게 타일을 되팔면 이익을 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따금씩 ‘어스2 땅 팝니다’ 같은 글이 올라온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지만, 문제는 환금성(換金性)이다. 아직까지 낮은 편이다. 실체가 불분명한 자산이라는 점에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만일 어스2 측에서 사이트를 폐쇄하면 돈을 그대로 날릴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이씨는 “초창기 비트코인 또한 환금성이 낮았다”면서 “현재 MZ세대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과 메타버스 기술이 접목되면 향후 가치는 어마어마해질 것”이라면서 기대감을 보였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
 
  현실은 무주택자지만 가상의 나는 땅 부자. 메타버스 속 또 다른 나. 전문가들은 Z세대가 메타버스에 몰입하는 요인으로 ‘멀티 페르소나’를 꼽는다.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자아(ID)를 만드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 메타버스는 더욱 다양한 나를 보여줄 장(場)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본캐’(본래의 캐릭터)는 내성적이지만, ‘부캐’(부수의 캐릭터)는 도발적인 성격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용완 강릉원주대 교수는 한국인터넷진흥원 보고서에서 “디지털·다매체 시대의 가속화로 페르소나가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면서 “메타버스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자신의 원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100% 자유도”라고 분석했다.
 
  ‘진짜 나’는 집에 두고, 아바타가 대신 살아가는 삶. 더 이상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다. 이는 자연히 철학적 문제로 옮아간다. 철학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구모(47)씨는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생물학적 사망 후에 말이야, 의식을 기술머신에 주입해서 메타버스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죽음’이라는 게 없어지는 거지. 두 번째 죽음 뒤에 세 번째 삶이 메타버스 속에서 시작되니까. 의식의 영생(永生)이랄까….”
 
  현실 속 삶도 벅찬데, 메타버스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내 페르소나의 의식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한데 흘려들을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이 같은 주제는 영화, 문학 등에서 꾸준히 다뤄진다. 영화 〈얼터드 카본〉이나 〈레디 플레이어 원〉이 대표적이다.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애초에 소설에서 나왔다. 1992년 미국의 작가 닐 스티븐슨이 쓴 공상과학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아바타가 활동하는 인터넷 기반의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뮐라크르’(현실을 대체하는 모사된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임에도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의미한다. 김상균 교수는 《메타버스》에서 “메타버스에 과학·공학적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면서 “인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이 결여된다면 메타버스는 그저 신기술의 전시일 뿐”이라고 했다. 메타버스와 인문학과의 결합. 이는 다른 말로 메타버스의 확장성에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의 상상은 대부분 현실이 돼왔다.
 
 
  중장년층은 상관없는 이야기?
 
코카콜라는 지난 2014년 메타버스 기술을 통해 싱가포르에 눈[雪]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민소매를 입은 싱가포르 소녀가 눈을 맞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차가운 기술인 것만 같은 메타버스는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한 기반이 된다. 2014년, 코카콜라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선보였다. 눈[雪] 맞는 것을 상상만 했던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눈을 선물해준 것. 우체통처럼 생긴 빨간 기계를 통해서다. 코카콜라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나누세요(Share a white christmas)’라고 써 있는 이 기계를 핀란드 산타마을과 싱가포르 래플스시티에 각각 설치했다. 핀란드에 있는 기계에는 삽과 눈을 퍼 담는 투입구가, 싱가포르에 있는 기계에는 인공 제설기가 달려 있었다. 핀란드 사람이 눈을 담으면 싱가포르에서 눈이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기계에 설치된 화면으로 서로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이들은 눈을 주고받으며 웃고 눈싸움도 했다. 메타버스 기술이 온정을 전한 셈이다.
 
  “메타…빠스? 그게 뭔데? 새로 나온 광역버스야?”
 
  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박모(52)씨의 질문이다. 누구보다 느리게 살고 싶어 시계도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그가 “음식점에 배치된 자동 주문대(키오스크)만 봐도 심장이 떨리는데 메타버스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했다.
 
  중장년층과 메타버스의 심적 거리감은 크다. 기성세대와는 상관없는 얘기일까. 이들이 직접 ‘제페토’를 이용하는 일은 잘 없겠지만, 모르는 사이 메타버스 서비스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은 있다. 향수(鄕愁)를 채워주고 건강도 관리해줄 수 있어서다.
 
  지난 연말. 음악채널 엠넷에 가수 김현식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살아생전 찍은 영상을 재방송한 게 아니다. 그가 부른 것은 가수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였다. 사망하고 무려 4년 뒤에 나온 노래. 메타버스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생 부른 적 없던 노래는 물론, 다시 볼 수 없는 몸짓과 표정까지 고스란히 구현됐다. 팬들은 눈물을 훔치며 콘서트를 시청했다. 제작 업체 측은 추억의 가수가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넘어 향후 실시간 대화까지 가능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중장년층에게 무엇보다 도움 되는 메타버스 분야는 헬스케어다.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뇌파와 시선 분석을 통한 치매 진단부터, 가상공간에서 치매 예방 훈련 프로그램과 재활 치료까지 도우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IT기업 룩시드랩스는 가상현실 기기를 이용해 노년층의 치매 위험 정도를 파악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KT에서는 두뇌 개발 및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체험 공간 서비스인 ‘리얼큐브’도 선보였다. 지역 내 시니어플라자와 노인복지관, 치매안심센터 등에서 체험이 가능하다.
 
 
  증시 흔드는 키워드
 
  이쯤 되면 경계를 불문한 ‘붐(boom)’이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올해 증시를 흔드는 키워드로도 자리 잡았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미국의 게임 플랫폼 업체인 로블록스다. 지난 3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로블록스는 대표적인 메타버스 대장주로 거론된다. 지난 6월에는 테슬라를 밀어내고 순매수 1위 종목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로블록스의 상장으로 메타버스가 기지개를 켰다고도 분석한다. 실제로 구글 검색어 빈도를 알려주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메타버스’ 키워드는 로블록스가 상장한 지난 3월 기점으로 검색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글로벌 기업도 속속 메타버스 열풍에 올라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지난 7월 실적 발표 중 “메타버스가 회사의 다음 장(next chapter)이 될 것”이라며 “수년 내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니라 메타버스 기업으로 알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은 “미래에는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뒤를 잇는 가상공간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존 또한 메타버스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서버, 저장장치,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메타버스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인 홀로렌즈(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만들고 있다. 트위터의 메타버스 사업 진출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3대 IT기업인 텐센트 역시 메타버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올해 초부터 수십 쪽의 리포트를 앞다퉈 내며 메타버스 시장을 전망했다. 이들은 메타버스가 아직 초기 단계 수준인 만큼 어디에서 시너지를 낼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전 산업에 걸쳐 확장성이 크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실제로 금융, 의료, 교육, 유통, 문화, 관광 등 메타버스 키워드를 내세우지 않는 산업군을 찾기가 더 힘들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오는 2025년 메타버스 산업의 시장 규모가 지금의 6배인 2800억 달러(약 317조원)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PwC 역시 2019년 455억 달러 규모였던 관련 시장이 오는 2030년 1조5429억 달러(약 178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점쳤다.
 
 
  메타버스 붐, 경계의 목소리도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시장이 커지면 과제도 많아지는 법이다. 가상공간과 익명성이라는 메타버스의 특징은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맘카페’에는 자신의 딸아이가 제페토에서 한 아바타 유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메타버스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과 한계(2021)〉에서 “범죄에 대한 죄책감이 약해지면서 현실세계보다 더 악질적이고 교묘한 수법의 신종 범죄가 등장할 수 있다”면서 “제대로 된 규칙과 질서 마련이 과제”라고 했다.
 
  메타버스라는 시장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메타버스는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017년 유행한 포켓몬고에서 체험한 증강현실(AR), 인스타그램 같은 라이프로깅(Life Logging), 구글맵처럼 세상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한 거울세계(Mirror World)와 가상세계(Virtual World)까지. 따지고 보면 이미 예전부터 있던 기술을 한데 묶어놓은 이름일 뿐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여기저기서 대세라 외치는데 개념이 어딘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는, 그간 흩어져 있던 기술들을 모두 메타버스라는 영역으로 끌고 왔기 때문”이라면서 “기술에는 엄연한 분류체계가 있는데 그 경계를 허물어 넓혀놓고 마치 새로운 개념인 것처럼 포장해놓았다”고 했다. 각종 플랫폼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어스2는 수년 전 출시한 ‘프로젝트 엔트로피아’, 제페토는 ‘세컨드라이프’와 여러모로 닮았다.
 
  위 교수는 15년 전인 2006년 이미 가상세계에서 중앙대를 세워 한 학기 동안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2003년 린든랩이 출시한 플랫폼 ‘세컨드라이프’에서다. 요 근래 제페토가 주목받듯이 당시에도 현대차, 삼성, LG, IBM 등 대기업이 세컨드라이프 속으로 속속 진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실패한 모델이 됐다. 사람들은 가상세계보다 현실세계 속 관계망을 온라인 속으로 확장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위 교수는 “당시 가상세계 속에서 국가 간 분쟁이 일어날 경우, 누가 조정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까지 논의가 되는 등 가상세계, ‘그 다음 단계’를 위한 수많은 과제를 던졌다”면서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때의 축적물은 온데간데없고 다시금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다시 열풍이 분 걸까.
 
  “이유는 간단해요.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 붐을 가만히 살펴보면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뜨겁습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조용한 편이죠. 증권사와 투자자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메타버스 관련 주’를 엄청 띄우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같은 경우에는 특정 경제신문도 이에 야합한 모양이고요. 여기에 정부 또한 메타버스를 ‘화두’로 삼은 듯해 보이더군요. 내년 예산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는 거죠.”
 
  위 교수는 “메타버스는 결국 각 집단의 여러 이해관계가 모두 맞아떨어져 생긴 거품”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당장은 코로나19 상황에 의존해 메타버스 붐이 유지되고 있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적용될 만한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10여 년 전 세컨드라이프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라면서 “현재까지 개발된 메타버스의 범주에 속한 기술은 현실세계의 보완적 기능밖에 되지 않으며,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 가능하려면 과거에 똑같은 사례가 왜 실패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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