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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70대 부부의 코로나19 투병기

‘설마, 나는 아니겠지’가 아니라, ‘바로 나일 수 있다’

글 :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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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AZ) 1차 맞은 상태에서 60~70대 지인들과 칼국숫집에서 막걸리 마신 후 코로나19 걸려
⊙ 입원 후 폐의 염증 수치가 정상인의 25배까지 올라가… 의사, “만일의 경우 대비해야”
⊙ 12일 만에 퇴원했지만, 이번에는 자가 격리 중이던 아내가 입원했다가 16일 만에 퇴원

장상인
1950년생. 동국대 행정학과 졸업,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인하대 대학원 언론정보학 박사과정 수료 / 대우건설 기획부장·홍보부장·마케팅담당 상무·문화홍보실장·이사, 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이사, 경희대 언론학부 겸임교수 역임. 現 JSI파트너스 대표이사, 《부동산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요양병원에서 119 구급차량에 의해 격리병원으로 이송되는 코로나19 확진 환자.(기사 본문과는 관계 없음) 사진=조선DB
  “어제 코로나19 검사받으셨죠?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거주지 보건소에서 준비물과 입원절차 등을 자세하게 안내할 것입니다. 밖에 나가지 마시고, 집에서 대기하셔야 합니다.”
 
  6월 23일 09:05. 전날 검사를 받은 관악구보건소 선별진료소로부터 온 전화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필자는 이날 발표된 신규 확진자 645명에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는 “괜찮아”를 좋아합니다.
  “아는 사이인데 모여도 괜찮아” “우리끼린 마스크 벗어도 괜찮아” “먹으면서 말도 못 해?”〉
 

  지하철이나 빌딩 입구에 붙어 있는 포스터 내용이다. 하지만 무심코 지나칠 뿐이었다. 코로나19가 좋아하는 ‘괜찮아’는 바로 나였고, 건설사 J사장(65)이었으며, S회장(70)이었다. 지난 6월 17일 셋이 서울 동작구에 있는 칼국숫집에서 막걸리를 마신 것이 코로나19 감염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19 백신(아스트라제네카·AZ)을 1차 접종한 상태였다.
 
  코로나19 검사 전까지 특별한 증세는 없었다. 오른쪽 종아리 근육통이 신호였다고 할까. 그리고 필자가 평생을 안고 살아온 편두통이 찾아왔다. 코로나19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몸살감기약을 처방받아서 복용했다. 어쩌면 그날 바로 보건소로 달려갔어야 옳았다. 인생을 살면서 뒤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털끝 하나도 숨길 수 없었다
 
  필자가 보건소 전화를 받고서 ‘멘붕’에 빠져 있는 순간,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쳤다. 가장 우선적인 것이 필자의 동선(動線)과 만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묻는 전화였다. 음식점 장소와 상호는 기본이고 식사 메뉴, 영수증 금액과 지불 시각, 동반자 등에 대해서 꼼꼼하게 물었다. ‘영수증을 사진 찍어서 전송해달라’고 했고, ‘자주 사용하는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달라’고도 했다. 잠시 후 역학(疫學)조사 ‘고지문’이 메시지로 왔다.
 
  〈귀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따라 코로나19 역학 조사대상임을 알려드립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9조)에 처할 수 있습니다.〉
 
  고지문은 엄격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물론 음식점이 소속돼 있는 관할 구청과 보건소에서 앞을 다투어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 종일 업무를 전폐하고 곳곳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답변해야 했다. 대답이 미심쩍으면 CCTV(폐쇄회로)를 캡처해서 ‘이분들과 만나셨죠?’라고 묻기도 했다. 털끝 하나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6월 17일 함께 식사한 건설사 J사장이 6월 21일 확진 판정을 받고서 입원했다. 다음 날에는 필자가 검사를 받았고, 동석한 S회장도 검사를 받아 양성 판정이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J사장의 직원이 양성, 필자의 아내가 음성, S회장의 부인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 외 같이 식사를 했거나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서 2주간 자가 격리로 마무리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세 사람 중 누가 먼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옮겼을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이러스가 침투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 총질할 수는 없는 일. 운명으로 돌리고 더는 거론하지 않았다.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편두통은 타이레놀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체온은 측정하지 않아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열이 높았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6월 24일이 밝았다. 거주지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14시30분쯤 집 앞으로 앰뷸런스를 보내겠습니다. 5분 전쯤 내려와서 기다리세요.”
 
  아내 때문에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사실 불안했다. 필자는 여행을 가는 사람처럼 캐리어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같은 캐리어 가방인데도 여행 갈 때와는 달리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 잘 안 쓰던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아내와의 작별 인사는 거리 두기를 하면서 손을 흔드는 것이 전부였다. 마음이 아팠다.
 
  ‘이별의 아픔은 심장에 총을 맞는 것 같고, 칼에 찔리는 것처럼 아리고, 쓰리고, 고통스럽다’는 말이 있다. 코로나19로 치료받으러 병원으로 실려 가는 필자. 2주간 혼자서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아내. 이 모든 것은 필자가 자초한 일이 아닌가. 아내가 음성인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앰뷸런스가 미리 와서 경고등을 켜고 아파트 옆 은행 앞에서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양천구에 있는 S병원이었다. 경고등을 켜고 숨 가쁘게 곡예사처럼 차선을 넘나들던 앰뷸런스를 많이 봤으나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앰뷸런스는 필자를 태우고서 어느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가더니 젊은 여성 한 사람을 더 태웠다.
 
  30여 분의 주행 끝에 S병원에 도착했다. 우주인 같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캐리어 가방을 안고서 바이오백에 누웠다. TV에서 보던 공포의 모습 그대로였다. 바이오백의 작은 공간에 고립됐다. 산소 공급되는 소리가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순간, 열이 많이 올라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체온 39.7℃, 당뇨 수치는 200 넘어
 
입원 후 필자 팔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이 꽂혔다. 사진=장상인 제공
  바이오백에서 나오자 4인 병실에 2명의 환자가 있었다. 의료진의 지시로 지정된 침대에 앉았다. 간호사가 입원 중 유의사항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체온과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의 측정은 07시, 11시, 17시, 20시30분, 하루 네 차례. 07시와 17시에는 환자가 직접 측정해서 간호사실에 연락하도록 했다.
 
  왼쪽 팔목에 바코드가 새겨진 비닐 팔찌가 채워졌다. 생년월일과 이름, 고유번호가 부여됐다. 잠시 후 X선(X-Ray) 촬영을 했다. 필자가 X선 촬영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기계가 필자를 찾아왔다. 다른 간호사가 혈액 채취를 하러 왔다. 노란 고무줄로 팔의 윗부분을 묶고 주먹을 쥐도록 했다. 혈관을 찾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필자의 숨쉬기, 즉 산소포화도(oxygen saturation)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간호사는 침대 뒤편에 부착된 산소통에서 가느다란 선을 뽑아 내 두 콧구멍에 끼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와 연결했다. 고무로 된 골무 같은 것을 왼손 검지에 끼웠다. 산소포화도는 정상 수치인 경계선(95) 고갯길에서 허덕였다.
 
  오후 5시. 체온을 측정했다. 39.7℃였다. 혈압은 127/71로 정상이었으나 맥박은 98이었다. 체온이 올라서 숨이 가빠진 모양이었다. 체온만 높은 것이 아니었다. 당뇨 수치가 200을 넘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필자의 팔은 순식간에 복잡한 입체도로의 축소판이 되었다. 오른쪽 팔에 주삿바늘들이 얼키설키 자리를 잡았고, 이를 고정시키려는 반창고가 가로, 세로, X표로 붙여졌다. 천장 밑까지 닿은 키 큰 수액걸이 링거폴대는 어떠한가. 생명주머니 같은 주사액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서 낙숫물 같은 작은 물방울을 필자의 체내로 밀어넣기 위해서 애를 썼다.
 
 
  ‘베클루리주’ 투여
 
  병원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6월 25일을 맞았다. 체온이 40.0℃로 올라갔다. 온몸이 불덩이였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면서 목이 탔다.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 아니 물병을 아예 손에 들고 있었다. 간호사가 아이스팩 2개를 가지고 왔다. 아이스팩을 양 옆구리에 끼고서 누웠다.
 
  의사 선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날 검사한 결과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폐의 염증 수치가 엄청 높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보다 25배입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보호자분에게 알려야겠습니다.”
 
  “안 됩니다, 선생님! 보호자도 자가 격리 중이라서 걱정만 끼칠 따름입니다.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경과를 보면서 조치하겠습니다.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가족분의 연락처를 하나 더 말씀해주세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할 수 있었다. 불안했다. 이어서 간호사가 치료제를 들고 왔다.
 
  “지금부터 베클루리주(Veklury inj.)가 투입됩니다. 이 자료를 천천히 읽어보세요!”
 
  간호사가 준 자료를 천천히 읽어 보자 베클루리주는 성분이 렘데시비르(Remdesivir)인 COVID-19 치료에 사용되는 항바이러스제로, 뉴클레오시드 리보핵산(ribonucleic acid·RNA) 억제제였다.
 
  〈귀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의 치료를 위해 베클루리주(렘데시비르)라는 약물을 투여받고 있습니다. 이 정보에는 귀하가 투여받았거나 투여받을 수 있는 이 약 투여의 위험과 효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렇게 코로나19와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의료진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운명의 신(神)이 필자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일까. 입원 후 닷새쯤 지나자 열이 내리고 편두통도 사라졌다. 그리고 밥맛도 좋아졌다. 반성과 후회를 많이 했고, 책을 읽는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항생제 투여는 계속 진행됐다. 간(肝) 수치 상승을 우려해서 이에 대한 약도 제공됐다. 이렇게 2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퇴원
 
  7월 5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30분이었다. 장마의 영향으로 여명(黎明)은 먼 곳에 있는 듯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어제 의사 선생이 ‘5일 오전에 검사 한 번 더 받아보고 당일 퇴원할 수도 있다’는 말에 희망을 걸었다.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필자의 유일한 즐거움. 낮 시간이 되자 아침보다는 날씨가 좋아졌다. 구름 사이로 햇볕이 쏟아졌다. 그날 오후 4시 의사 선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폐의 염증 수치가 1 이하인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잘 견디셨습니다. 체온도 정상이고요. 내일 오전 중으로 퇴원하시도록 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치료하는 의료진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의사 선생과의 대화는 덕담으로 끝났다. 먼저 가족 채팅방에 소식을 올렸다. 모두 좋아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어서 간호사가 내일 퇴원하는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병실을 나가기 직전 샤워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쓰다 남은 물품은 아깝다고 챙기지 말고 모두 버리고 가라’고 했다. 노트북이나 휴대폰, 전기면도기 등은 소독 티슈로 잘 닦으라고 했다.
 
  체온 36.4℃, 혈압 106/74, 맥박 84, 산소포화도 98/85로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필자는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 캐리어 여행 가방을 끌고 2주 만에 병원을 나섰다. 선글라스만 끼면 누가 봐도 막 여행을 떠날 사람 같았다. 가방을 끌고 일단 거리를 걸었다. 휴대폰을 꺼내서 ‘셀카’를 찍어 가족 채팅방에 올렸다.
 
  ‘환영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행 가시는 분위기네요.’
 
  대로변이 아닌 약간 외진 골목이라서 택시가 오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작은 공원 입구에 앉았다. 비둘기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두리번두리번하고 있었다.
 
  20여 분쯤 기다렸더니 택시가 왔다. 운전사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였다. 30여 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병원의 지침대로 입었던 옷은 모두 단독 빨래. 세탁기에 집어넣고 가방과 노트북 등은 ‘스타일러’에 넣어서 소독했다. 아내는 아직도 자가 격리 중이라 멀리 따로 앉아서 식사했다. 식사 후 병원에서 준 ‘퇴원 안내문’을 읽었다. 안내문은 코로나19의 행동수칙이었다. 7일분 정도의 약도 있었다.
 
  그토록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와 저녁 식사도 따로 했다. 아내의 자가 격리가 아직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TV 볼 때도 마스크를 쓴 채로 멀리 거리 두기를 했다. 그동안 쌓인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대화를 하지 못했다. 퇴원한 날도 이렇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입원
 
  7월 8일. 자가 격리를 마친 아내의 검사 결과는 ‘양성’도 ‘음성’도 아니었다.
 
  “검사 결과가 이상합니다. 양성도 음성도 아닙니다. 내일 오전 중 다시 보건소로 오시죠.”
 
  보건소를 다녀온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사모님!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입원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된 것이다.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냉기류로 바뀌었다. 나는 승리자가 아니라 다시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가 간헐적으로 마른기침을 했다. 내가 약국에 가서 간단한 약을 사 왔다. 보건소에서 수시로 점검을 했다. ‘기침을 약간 한다’ ‘약을 사서 먹으니 괜찮다’ ‘체온은 36.4도다’. 보건소에서는 이것저것 자주 물어왔다. 2주간 ‘집콕’만 했으니 역학조사 대상은 아니었다.
 
  7월 9일. 출근 시간 훨씬 전인데도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와 필자의 제안으로 병원은 필자가 치료를 받은 S병원으로 결론이 났다. 병실 구조에 대해 아내에게 설명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 했다.
 
  “걱정하지 말고 잘 치료받고 와!”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드세요!”
 
  상황은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 2주 전과 똑같았다. 30분쯤 후에 보건소 직원이 집으로 와서 집안 전체를 소독했다.
 
  ‘경험자로부터 교육을 잘 받아서 모범 환자로 안착을 했어요.’
 
  오후에 아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생각보다 밝은 상태인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치료 잘 받길!’
 
  ‘방금 X레이 찍고 갔어요.’
 
  ‘열과 기침은?’
 
  ‘열은 36.6도. 기침은 가끔 나와요.’
 
  체온 36.6℃? 필자의 경우 온갖 고통을 감내하고서 얻어낸 수치 아닌가. 열이 오르지 않은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병실에 있는 ‘네 개의 침대가 모두 찼다’고 했다. 남자들과는 달리 TV도 보고 가끔 대화도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겠지만.
 
  코로나19는 이렇게 고약한 병이다. 한 사람이 걸리면 주변이 모두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 손실인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어설픈 홀로서기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온종일 청소에 매달리면서 깨달았다. ‘가정주부들이 집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밥을 먹는 것도 그랬다. 평소 외부 약속이 많고, 집에 있을 때는 아내가 차려주는 대로 먹기만 했는데, 직접 챙겨 먹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가까운 마트에 갔다. ‘햇반’을 사기 위해서다. 발아현미, 오곡, 잡곡 등 종류가 다양했다. 종류별로 골라서 한 보따리 샀다. ‘2+1’이라서 양(量)이 많았다. 설거지와 쓰레기 버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쓰레기 버릴 때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아줌마에게 꾸중을 많이 들었다.
 
  “아저씨! 플라스틱은 여기에 넣고, 비닐은 이쪽이에요. 페트병은 저쪽이고요.”
 
  세상사 쉬운 일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페트병도 투명과 유색 병의 들어갈 자리가 달랐다. 아줌마는 배시시 웃으면서 필자를 ‘완전 초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홀로서기는 필자에게 있어서 또 다른 도전이기도 했다. 쓰레기도 종량제 봉투에 넣는 것은 그래도 쉬웠으나,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는 일은 고난도였다. 그래도 주삿바늘을 꼽고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행복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귀가
 
필자와 아내. 장 대표가 퇴원하자 이번에는 아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사진=장상인 제공
  ‘혼밥’과 ‘출근’, ‘기다림’과 ‘폭염’ 속에서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7월 24일. 오전 6시20분 기온은 29℃였다. 최고 기온이 37℃로 예보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다. 아내와 2주 만의 만남, 아니 거의 한 달 만에 이뤄지는 실질적인 대면 만남이어서다.
 
  오전 7시25분.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굿모닝! 드디어 살아나갑니다. 12시 전에 집에 갈 것 같아요.’
 
  ‘환영합니다.’
 
  수박이라도 사려고 아파트 1층에 있는 마트에 갔더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도서관에 가서 추가로 책을 빌리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다녀왔는데도 땀으로 속옷이 흠뻑 젖었다. 선풍기 바람으론 도움이 되지 않아서 에어컨을 켰다. 강아지가 먼저 에어컨 앞에 자리 잡았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띵똥!”
 
  오전 11시50분. 아내가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간 지 16일 만의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반가웠다. 파란 마스크를 벗자 얼굴이 그대로였다. 체중계에 올라서더니 ‘체중이 그대로네!’ 하면서 내려왔다. 입원 전과 입원 후가 똑같았다.
 
  “체온, 혈압, 체중… 모든 것이 그대로네요. 그런데도 16일이나 병원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유가 있겠지. 천천히 이야기하고 점심이나 합시다.”
 
  “그래요.”
 
  한 달 만에 거리 두기를 하지 않고 마주 앉아서 하는 식사였다.
 
  “건강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우리 건강합시다.”
 
  코로나19로 인해 6월 23일부터 시작된 ‘고통’과 ‘생이별’의 시간은 한 달 만인 7월 24일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집 근처 공원에는 ‘하늘정원에 있던 꽃을 누군가가 훔쳐 왔다’는 능소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모처럼 벤치에 앉아서 마스크를 벗고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교환했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졌다.
 
 
  체중 5kg 줄어
 
  “고생 많이 하셨죠? 후유증이 심하다고 하던데 어떠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필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필자의 경우 특별한 후유증은 없었다. 단지 체중이 5kg이나 줄어서 약간의 어지럼증이나 피로감이 느껴졌다. 2주간의 항생제(抗生劑) 투여로 간 수치 상승에 대한 검사는 조만간 해야 하는 필수적 과제이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것은 전파력이다. 우려했던 1일 2000명대 쇼크가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
 
  ‘방역 모범국’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에서도 하루 확진자가 6200명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인구 비율로 보면 엄청난 수이다. 정답은 누구도 낼 수 없는 상황. 코로나19는 확진자 발생이나 백신 접종자 등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기존 방역정책을 순발력 있게 전환시켜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델타 변이’가 국민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백신 도입이 늦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러다가 ‘의료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극 수용해야 한다.
 
  물론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라야 한다. 불필요한 만남이나 이동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당분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혼연일체되지 않고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참견’
 
  확진자에 대한 편견도 갖지 말아야 한다. 확진자는 죄인이 아니라, 우리 부모형제이고 이웃이며, 바로 나 자신이니까.
 
  “누구 있잖아. 이번에 확진 판정을 받고 2주간 병원에 있었다네.”
 
  “만나자고 연락이 왔기에 다음으로 미뤘어요.”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도 감지할 수 있는 실제상황이 있었다. 커피숍에서 만난 사람이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테이블 모서리에 앉으며 거리 두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끔 만나는 L회장의 말이다.
 
  “고생 많이 하셨죠? 이제 완벽한 면역력이 생겨서 마스크 쓰지 않아도 되시겠네요? 체중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 딱 보기 좋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사장의 말도 정감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큰 고통을 받으셨군요. 앞으로 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큰 활력소가 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할 때는 틈새가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이유에서든 그 균형이 무너져 버리고 마음에 틈새가 생깁니다. 마음속은 칠흑 같은 어둠이 되어갑니다.〉
 
  3000명이 넘는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서 위로한 일본 의사 히노 오키오(樋野興夫)의 《위대한 참견》(김윤희 譯)의 한 대목이다. 그는 ‘환자에게 어떤 말을 선물할까?’ 고심하다가 그 사람에게 맞는 언어를 고른다.
 
  “내일 세상을 떠나도 오늘 꽃에 물을 주세요.”
 
  “아프다고 해서 환자는 아닙니다.”
 
  “대부분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되는 일들입니다.”
 
  책 제목처럼 의사의 말 한마디는 ‘위대한 참견’이 아닌가.
 
  “인간은 완성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얻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는 시인 괴테의 말처럼 고통 속에서 영글어가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1947년에 《페스트》를 썼다. 그의 나이 겨우 34세였다. 카뮈가 소설에서 묘사한 상황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소설은 도시의 심각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짚었다.
 
  〈‘페스트’로 인해서 온 도시가 고립상태로 돌입했다.… 도시의 문(門)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서 그냥 견딜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감정이 처음 몇 주일째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의 감정이 되었고, 공포와 더불어 그 오랜 격리 기간의 중요한 고통거리가 되었다.〉
 
  카뮈는 페스트가 진정되고, 도시에서 축제가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썼다.
 
  〈‘페스트균(菌)’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몇십 년 동안 가구나 속옷들 사이에서 잠자코 있을 수가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 흰 종이 같은 것들 틈에서 꾸준히 살아남아서,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소설은 인간들의 우매함을 깨우치기에 충분했다. 인간들은 항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나가면 금방 잊어버리려는 습성이 있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삶
 
필자가 코로나19를 극복한 후 펴낸 《나는 코로나를 이렇게 극복했다》.
  “야호!”
 
  우리는 코로나19가 소멸되면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환호할 것이다.
 
  그러나 더 강한 바이러스(virus)가 공격해온다면 속수무책일 수가 있다. 자만하지 말고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가 아니라, ‘바로 나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바이러스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고혈압과 당뇨는 코로나19 치료에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필자는 결국 극복해냈다. 솔직히 어떻게 해서 이겨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 비타민C와 홍삼 등을 챙겨 먹어 면역력을 길러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여튼 코로나19는 내게 소리 없이 다가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버렸다.
 
  아내와 함께 한 달 가까이 고생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신체적 병 치료를 넘어서 정신적 건강을 얻었다. 코로나19 확진에 의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가족과 건강의 소중함과, 사람들에게 민폐(民弊)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삶의 추구였다. 그 과정을 기록한 수기 《나는 코로나를 이렇게 극복했다》에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를 막는 백신은 철저한 마스크 착용과 ‘만남’과 ‘이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소멸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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