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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한강공원에서 사망한 의대생 손정민씨 어머니

손정민, 21살 아름다웠던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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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이가 아팠다면 내 눈, 장기, 아니 온몸 다 줬을 것… 살릴 기회도 없이 떠나 마음 아파”

“대체 대학생 둘이 다섯 시간 만나 술을 먹었을 뿐인데 어쩌면 이렇게 의혹이 많고 다양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정민씨 아버지)


⊙ 같이 술 마신 친구 A씨의 어머니와 정민 어머니는 사건 전 주에도 만나… “새벽에 무슨 일 생기면 당연히, 백 번도 더 전화할 수 있는 관계”
⊙ 실종 후 사고·납치 가능성에 백방으로 찾아다닌 부모, 그러나 사건의 열쇠는 바로 정민씨 옆에 있었다
⊙ 현장에 있었으면서 ‘기억 없다’며 꼭꼭 숨은 A씨, 그의 집안과 변호인의 정체는?
⊙ 정민씨, 친구 많고 친구들에게 베풀 줄 아는 성격… 양가에서 사랑 듬뿍 받아
⊙ 정민씨 아버지 “사망 원인 끝까지 밝혀낼 것… 실족사 추정으로 내사 종결되는 일만은 절대 막겠다”
손정민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승강장 인근에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 남편 잃은 아내는 과부라는 단어가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는 동서양을 통틀어 없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슬픔을 나타낼 단어가 없어서라고 한다. 하물며 사망 원인조차 모른 채 자식의 사고를 당한 부모 심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난 4월 30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중앙대 의대 본과 1학년 손정민(만21세)씨의 부모에게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와 함께 있다가 사망했는데, 그 친구와 가족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느껴지면 어떨까. 사건 당시 정민씨와 함께 있던 학과 동기 A씨는 사망 당일 정민씨가 ‘심상치 않은’ 상태일 때도 정민씨 부모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민씨 부모 입장에서는 친구 A씨 측이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는커녕 초기부터 변호사를 선임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등의 태도도 석연치 않아 보인다. A씨와 그 가족의 행보는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정민씨 아버지는 정민씨 실종 나흘째인 4월 28일부터 블로그와 전단 등을 통해 사건 진행 상황을 주변에 알렸고, 정민씨 사망 후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들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목격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A씨가 사고·사망 시점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고, 네티즌 사이에서는 수많은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또 정민씨와 A씨의 관계, A씨 집안 등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했다.
 
 
  수많은 의혹
 
  아무래도 정민씨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A씨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난 5월 13일 반포 모처에서 어머니(49)를 만날 수 있었다. 언론 대응을 도맡고 있는 아버지 손현(51)씨도 동행했다. 인터뷰는 2시간 이상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대학생의 부모라기엔 동안(童顔)이었는데, 얼굴이 많이 상하고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먼저 아버지 손현씨에게 질문했다.
 
  ― 정민씨 죽음에 대해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아버님이 적극적으로 언론 대응을 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처음에 말을 아낀 것은 우선 정민이가 살아 있다면 찾는 게 우선이다 보니 그랬죠. 또 (같이 있던) 친구가 의심스럽긴 해도 정민이가 돌아온다면 친구를 의심해서 좋을 일이 없고, 확실한 근거 없이 의심할 수가 없어 의혹은 미뤄놓고 일단 정민이를 찾는 데 집중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만에 하나 0.1%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서 의혹을 다 시원하게 얘기할 수는 없고요.”
 
  ―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요. 어떤 내용입니까.
 
  “지금 수사상황이나 제가 생각하는 의혹 대부분은 제 블로그나 언론 인터뷰로 공개하고 있는데, 탄원서는 공개하지 않았어요. 탄원서 내용을 공개하면 상대 측에서 하나하나 변명거리를 찾아 준비할 게 뻔해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A씨가 왜 수사에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고 보십니까.
 
  “고의적이든 아니든 왜 그랬을까 수없이 고민을 했어요. 앞날이 창창한 아이가 설마 고의로 그랬을까? 아니면 사고였지만 고의로 수습하지 않았거나 방치한 건 아닐까?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는 걸까? 사실 이런 건 다 제 상상이죠. 하지만 A가 자신의 신발을 버렸고, 휴대폰을 바로 바꿨고, 피의자도 아닌데 변호사를 선임한 건 사실이잖아요.”
 
손정민씨 실종·사망 사건 개요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손정민씨는 지난 4월 24일 밤 9시30분쯤 학과 동기 A씨의 연락을 받고 밤 10시45분쯤 집 근처 잠원성당 앞에서 만났다. 이들은 반포한강공원으로 가기 전 소주 2병과 청하 2병을 구매하고 잠수교 인근 반포수상택시승강장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밤 11시 14분과 33분 두 차례 편의점에서 충전케이블과 과자를 구매하고 25일 0시45분에 소주 1병과 막걸리 1병을 샀다. 또 새벽 1시10분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했다. 정민씨는 1시17분 친구와 동영상을 찍은 후 1시20분에는 어머니와 ‘지금 한강에서 A와 놀고 있다’는 내용의 카톡을 주고받았다. 1시30분경에는 편의점에서 소주 1병과, 막걸리 2병을 사고, 주문한 음식을 배달받았다. 이후 1시45~56분에 짧은 동영상을 몇 차례 찍었다.(술 구매량은 경찰 측으로부터 구두로 전달받은 사항)
 
  A씨는 새벽 3시37분에 자신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고, A씨는 이 통화에 대해 “정민이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자, 부모님이 빨리 깨워 보내고 너도 집에 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정민씨의 행적이 묘연한 상태에서 A씨는 4시30분 반포나들목을 지나 귀가했다가 오전 5시10분에 부모와 함께 다시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이후 20분 정도 정민씨를 찾아다녔다는 A씨 가족은 오전 5시29분 정민씨 부모에게 전화해 “정민이가 들어왔나,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강공원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던 정민씨 부모는 바로 정민씨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한편 폰의 위치를 추적하며 한강공원으로 왔다.
 
  그러나 A씨가 “정민이 휴대폰 제가 갖고 있어요”라며 정민씨 휴대폰을 건넸고 “그럼 네 전화는 정민이가 갖고 있겠구나” 하며 정민이 부모는 A씨 휴대폰으로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도 했다. A씨의 휴대폰은 계속 통화가 되지 않다 오전 7시께 전원이 꺼졌고,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정민씨 부모는 인근에 실종전단을 돌리고 현수막을 부착하며 정민씨를 찾았지만 결국 정민씨는 4월 30일 실종된 장소 근처 한강 수중에서 발견됐다. 민간구조사 차종욱씨가 구조견 오투와 함께 시신을 발견했다.
 
  서초경찰서는 함께 있던 A씨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으려 했으나 A씨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4월 27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최면조사를 시도했다. 그러나 조사 성과는 없었고, A씨가 당시 변호사를 대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A씨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졌다.
 
  A씨는 사건 당일 ‘정민이가 (술에 취해) 깨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서도 자신의 부모와만 통화하고 귀가했다가 부모와 다시 한강공원을 찾아서 공원을 20분가량 돌아보다 뒤늦게 정민씨 부모에게 연락을 한 점, 사라진 자신의 휴대폰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새 번호를 개통한 점, 정민씨의 장례식장에 며칠이 지나도록 조문을 오지 않은 점 등 석연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
 
  정민씨 부모는 A씨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심야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물을 싫어하는 정민씨가 왜 한강에 들어가게 됐는지 진상을 밝히고 범인이 있다면 잡아야 한다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상황에선 A씨가 참고인일 뿐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강제수사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는 5월 13일 정민씨의 사인이 ‘익사(溺死)추정’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한강(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정민씨 아버지는 “사인보다는 정민이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물에 들어가게 됐는지가 수사의 초점”이라며 “정황상 절대 실족사로 추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민씨와 친구 A씨, 두 아이도 어머니들도 친한 편이었다
 
지난 4월 25일 새벽 2시18분에 제보자가 찍은 사진. 오른쪽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정민씨, 왼쪽이 A씨다.(사진 1)
  이날(5월 13일) 오전 처음 언론에 공개된 목격자의 제보사진(사진 1)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목격자가 당일 새벽 2시18분에 찍었다는 사진인데 정민씨는 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쓰러져 있고, A씨는 그 옆에 쪼그려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사진을 하루 전날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정민씨 부모는 “그때 우리한테 전화만 했어도 정민이는 살 수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민씨 휴대폰은 잠금이 걸려 있지 않아 A씨가 마음만 먹으면 직접 정민씨 부모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고, 엄마들끼리 교류가 있어 A씨가 엄마에게 연락을 부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민씨와 A씨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민씨 어머니가 A씨 가족과의 친분 관계를 말했다.
 
  ― 정민씨와 친구 A씨가 늦은 밤에 단둘이 술을 마실 정도로 많이 친한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의대 동기 일곱명 그룹이 있는데, 아이들끼리 해외여행도 몇 번 같이 가고 친한 편이었어요.”
 
  ― 정민씨와 친구 B씨가 그날 A씨의 연락에 대해 ‘처음 있는 일’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나’라고 했다는데요.
 
  “A가 본과 들어가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여자친구도 있다 보니 밤에 친구들과 술 마시러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 거 같아요.”
 
  ― 언제부터 친하게 되었나요.
 
  “2019년 대학 입학하면서부터죠.”
 
  ― 그렇다면 A씨 어머니도 그 그룹의 어머니이고, 잘 아시는 거죠.
 
  “2019년 3월에 처음 만났고요. 일곱명 어머니 중에서도 성향이 좀 맞는 셋이 자주 교류했어요.”
 
  ― 그 셋 중에 A씨 어머니는 없었고요.
 
  “아뇨. 셋 중의 한명이에요. 사건 전 주에도 만났어요.”
 
  ― 또 다른 한 분은 그날 정민이가 카톡했던 친구(B씨)의 어머니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그분은 장례식장과 장지까지 같이 지켜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친구 B도 매일 장례식장을 지키고 제보자 찾는 일 등 많이 도와줬고요.”
 
 
  “(새벽) 3시 반이든 4시 반이든 제게 전화를 했어야…”
 
  ― 어머님이 A씨도 잘 아시겠군요.
 
  “네.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 적도 있고, 작년 말 생일파티를 집에서 했는데 그때도 왔고요. 집도 멀지 않고 자주 만나는 친구였어요.”
 
  ― 그날 편의점이나 배달음식 등 정민씨가 거의 계산을 했는데요.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친구들 밥 사주는 거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날도 쿠팡이츠 삼겹살집 결제 문자가 제 폰으로 왔기에 ‘삼겹살 맛있게 먹어~’라고 카톡을 보낸 거고요. 우리는 특별히 잘 사는 건 아니어도 아이가 하나라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습니다. 그리고 경찰조사에 의하면 A도 2회 술구매한 건이 있더군요. 당일 쓴 금액으로 따지면 정민이가 4만원정도, A가 13000원정도 나눠냈더군요.”
 
  ― 정민씨가 A씨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정민이가 두루두루 잘 지내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친구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진 않았어요. 제가 A와 많은 대화를 할 사이는 아니고 A에 대해서는 그 엄마한테 들은 얘기가 더 많지요.”
 
  ― 그렇다면 꽤 친한 사이인데, 그 어머니는 왜 그 새벽에 정민씨를 찾으러 한강까지 가면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가장 놀라고 이해할 수 없는게 바로 그겁니다. (A엄마와)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데 늦은 밤이라고 전화 못 할 사이가 아니니까요. 3시반에 아이 전화를 받았으면 저에게 전화를 백 번은 하고도 남을 사이에요. 너무 이상하죠. 그것도 실종 후 그 부부가 우리와 만났을 때는 (새벽) 3시 37분에 A가 전화했단 얘기를 숨겼어요. 그때 연락만 해 줬어도 정민이가 살 수 있었을 거에요.”
 
  ― A씨 가족이 정민씨 어머니에게 연락을 한 건 두 시간 후였죠.
 
  “4시 반에 A가 귀가한 후에 자기들이 뛰어갈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라면 저한테 전화를 하면서 나오는 게 정상이죠. 자기들끼리 와서 20~30분 동안 뭘 했을까요. 그 후에 우리한테 전화했다는 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 A가 자취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A의 집이 한강에서 멉니까.
 
  “자취 아니고 서래마을 아파트에 가족이 같이 살고 있어요. 우리 집은 한강, 그것도 A가 왔다 갔다 한 반포나들목 바로 옆이고요.”
 
  ― 사건 이후 A씨 가족과 연락은 되나요.
 
  “실종 후 사흘째 되던 날까지도 그쪽을 의심하진 않았어요. A의 엄마에게 아이들 놀던 장소를 지도에서 표시해 줄 수 있느냐, 통신사를 통해 A의 휴대폰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느냐, 그 정도의 연락을 했어요. 26일 A와 그 부모를 만나 사건 당일 얘기를 들었고, 27일 오전 현장을 보고 싶다 했더니 아이 없이 부부가 나왔고, 오후에는 최면수사를 위해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그날(25일) 새벽 3시37분에 A가 부모와 통화한 사실을 알게 돼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29일 최면수사에 변호사를 대동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의구심은 확신이 되어 더 이상 연락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장례 4일째 되던 날 새벽 1시30분에 A가 작은아버지를 대동하고 무례하게 장례식장을 방문했고, 다음날 A의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지만 답하지 않았습니다.”
 
 
  A씨 변호인의 정체는
 
  이쯤에서 세간에 불거진, ‘A씨 측에 권력기관 등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는 의혹의 실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손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과 A씨의 변호사 때문에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음)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A씨 측과 경찰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사연을 물었다.
 
  ― ‘피꺼솟’한 이유는요.
 
  “먼저 경찰 얘긴데요. 제가 경찰에 ‘경찰 수사 결과를 믿을 테니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고, 경찰 측은 ‘그러겠다’고 했어요. 전담 형사들은 저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고요. 그런데 그날 언론에 경찰이 ‘손씨의 사망과 A씨의 행동을 직접 연관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한테는 분명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하고선 언론에는 왜 그렇게 얘기를 합니까. 보도를 보면 기자가 경찰 고위직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결국 경찰의 속내는 이런 거였나, 내 앞에선 말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하고 나를 갖고 논 거였나, 이래서 화가 난 거죠.”
 

  ― 변호사 관련 건은요.
 
  “A의 변호사가 어느 회사 소속인지 알고 있고 그 모회사가 어딘지도 알고 있는데 경찰이 저런 식으로 나오니까요.(편집자 주: A변호인의 법무법인측은 정민씨 아버지가 언급한 법무법인과 상호 무관하다고 알려왔다) 나는 그저 내 아들이 왜 물에 들어가서 죽었는지를 밝히려는 것뿐인데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인가, 그래서 경찰이 저러고 있는 건가 해서 울분이 터진 겁니다.”
 
  A씨 집안에 대해서는 정민씨 어머니가 더 잘 알 것 같아 어머니에게 물었다.
 
  ― 그쪽 집안이 권력기관과 관계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맞습니까.
 
  “그런 얘기는 못 들었어요. 그냥 그 변호인이 A의 아버지, 작은아버지와 친분이 있어서 사건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아는 그 집은 그저 아버지가 의사이고 아들이 의대생인, 보통의 의사 집안입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고요. 더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새벽 2시18분 ‘투샷’의 충격
 
손정민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어머니는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5월 13일 공개된 A씨와 정민씨의 사진(사진 1)은 그동안 잠잠했던 중앙대 의대생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 친구들을 통해 “중립을 지키려던 아이들도 그 사진 이후 상당수가 흔들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잖아요. 애들끼리 해결이 안 되면 우리 집이 바로 옆인데, 저한테 전화했으면 될 일을… 그 옆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나요.”
 
  ― 그런데 언론에서는 오히려 ‘A씨가 정민씨를 깨우려 했다’는 제목이 나왔죠.
 
  “딱 한 차례 깨우려 했다고… 근데 그게 여기서 중요한가요. 목격자 분 얘기를 들어보니 성추행하는 줄 알았대요. 정민이가 대자로 바닥에 누워 있고 A가 누워 있는 아이 위에 엎드려 올라타 야구점퍼(과 점퍼)를 덮고 있더라는 거죠. 점퍼를 입은 게 아니라, 그렇게 올라타서 왼쪽을 뒤적뒤적하더래요. 그래서 쳐다보다가 ‘남자들이네? 민망하게…’ 하면서 사진도 찍고 그랬다고 했어요.”
 
  이런 증언이 알려지면서 A씨가 정민씨 휴대폰을 찾아서 없애려고 하는 등 어떤 사건에 대한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그때 엄마(저)한테 연락해서 정민이 데려가라고 할 수 있었잖아요. 저한테 전화 안 하고 휴대폰으로 뭘 검색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새벽) 3시 반에 자기 부모한테 전화했는데, 그동안 한 시간이 넘게 정민이를 그 찬 바닥에 내버려둔 거 아니에요.”
 
  이 말을 하며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아버지 역시 이 사진을 보고 분노를 터뜨렸다.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음식 배달 받은 지 삼사십 분 만에 훅 가서 저 정도로 쓰러진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아무리 술을 들이부어도 흡수되는 시간이 있는데 그렇게 빨리 쓰러지지 못해요. 그러니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죠. 또 술 마시고 축 늘어진 모습으로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저 사진으로 볼 때 2시18분 이후부터는 A가 술을 안 먹은 게 확실하단 얘기죠. 그런데 왜 A는 (새벽) 4시가 넘는 시간까지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까. 그리고 자기 주장대로 토했다면 상태가 더 좋지 않았겠어요? 친구들 말로는 A는 청하와 막걸리만 먹는다는데… 스물한 살이 고작 청하(13도)와 막걸리(6도) 먹고, 토하기도 했는데, 몇 시간이 완전히 기억이 안 난다?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왜 안 하는 거죠?”
 
 
  친구를 좋아했던 정민씨
 
정민씨(맨 오른쪽)가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사진 2)
  부모는 정민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만 알면 된다고 했다. 그들은 정민씨가 절대로 물에 스스로 들어갔을 리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까지 한강에서 일어난 음주 실족사는 대부분 술김에 수영을 하러 들어가든지, 장난 삼아 강물에 발을 담그는 과정, 또는 물가에서 싸우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조력자가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 목격자가 생각보다 많고, 사건 2주가 지나서야 하루에 한명씩 목격자가 새로 나오기도 하고… 근데 결정적인 건 없고 상황이 복잡합니다.
 
  “일단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확실한 것만 봅시다. (새벽) 2시18분에 사진처럼 쓰러진 상태잖아요. 두 시간 이내에 정민이가 물에 들어갔다는 건데, 만취상태라면 저 상태였다가 다시 술이 깨서 일어나서 물가까지 걸어간다? 어제 잠수사 분이 현장 확인을 했는데, 그쪽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서 25m는 걸어 들어가야 완전히 잠긴다는 겁니다. 또 걸어 들어가는 길이 뻘이어서 두세 번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거기서 빠져 익사를 한다 해도 수심이 얕아서 떠내려가진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식적으로 누군가 같이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진에 저런 상태의 성인 남자를 한강까지 어떻게 끌고 갔는지, 조력자가 있다는 의심도 들고요.”
 
  이때 정민씨 어머니가 휴대폰에 담긴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사진 2) 정민씨가 친구 여러 명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맨발이지만 정민씨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발에 모래나 물이 닿는걸 싫어했어요. 물놀이할 때도 제가 옆에서 수건을 들고 있다 놀이 끝나면 바로 발을 닦아줘야 할 정도였죠. 제대로 수영복을 갖춰 입고 수영장에서 노는 상황이 아니면 물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 아이가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니요.”
 
  ― 일각에서는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의대 동기들이 너무 잠잠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학교나 과에서 함구령 내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동기들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실종 당시 ‘에타’(에브리타임·대학생 전용 앱)에 전단도 게시해주고, 댓글에 목격자가 나오면 연락도 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왔어요. 20명정도의 과동기들은 매일 장례식장에 와서 정민이에게 인사를 하고, 정민이 학교생활을 이야기해주며 저를 보살폈습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조문을 왔었고, 중대의대에서만도 40여명의 친구들이 장지까지 함께 해주어 너무 감사했죠. 학교에서도 함구령 같은 건 없었어요. 근거 없는 얘기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 정도였어요. 사건 당일에 대해 아는것도 없을뿐더러, 둘다 과 동기이다 보니 조심스런 아이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요. 이번일로 동기들이 괜한 오해를 받거나 욕을 먹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정민씨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요.
 
  “실종 당시 저희 부부는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어 뿌렸고, 정민이 친구들 10여명이 매일 전국 각 대학 게시판(에브리타임)과 각종 커뮤니티, SNS에 실종 전단을 게시하고 목격자를 찾아주었어요. 10명 모두 유치원, 초중고, 대학, 재수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이 정말 자기일처럼 밤낮으로 게시하고 댓글 검색하고 목격자 연락처까지 찾아 저에게 전해주었어요. 이를 통해 실제로 유의미한 목격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요. 2시 18분 사진 목격자도 이 친구들이 찾아줬습니다. 정말 제일 크고 강하게 영향을 준 아이들의 노력이고 이것때문에 (정민아버지)블로그도 같이 이슈화된 걸로 생각해요.”
 
  ― 유치원부터 대학, 재수시절까지면 서로 모르는 사이였겠네요.
 
  “그렇죠. 제가 한명씩 부탁하기가 어려워 단톡방에 초대하고 부탁했더니, 서로 소개도 하고 상황보고도 하고 문구나 컨텐츠 상의도 하더군요. 순식간에 엄청나게 파급력이 강했습니다. 너무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 정민씨 노트북, 휴대폰, 소셜미디어(SNS)는 다 봤습니까.
 
  “거의 봤는데 사건과 관련된 유의미한 건 별로 없었어요.”
 
  ― 그날 편의점이나 배달 음식 등 정민씨가 모두 계산을 했는데요.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친구들 밥 사주는 거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날도 쿠팡이츠 삼겹살집 결제 문자가 제 폰으로 왔기에 ‘삼겹살 맛있게 먹어~’라고 카톡을 보낸 거고요. 우리는 특별히 잘사는 건 아니어도 아이가 하나라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습니다.”
 
  ― A씨 휴대폰만 찾아도 상당 부분 의문이 풀릴 텐데요. 지금도 수색 중이라고요.
 
  “한강에 버리거나 잃어버렸을 거라 생각지 않아요. 사진 보면 그렇게 야무지게 자기 짐 다 싸고 갈 준비를 한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잃어버렸을까요? 3시 반에 아빠한테 전화도 했는데요.”
 
 
  사랑받고 자란 정민씨
 
손정민씨 아버지 블로그의 손정민씨와 아버지 사진.
  ― 정민씨는 어떤 아들이었습니까.
 
  “속을 전혀 안 썩이는 착한 아이였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해주는 대로 잘 먹고, 딱히 사달라는 것도 없었고. 고등학교 때 대치동으로 이사 갔다가 대학 보내고 다시 돌아왔어요. 우리에겐 외아들이고 양가에서 사랑도 엄청나게 받아서 사랑받은 티가 나는 아이였죠. 외가에선 첫아이라고 사랑받고, 친가에선 막내여서 귀여움을 독차지했어요.”
 
  ― 재수를 해서 의대를 갔다고요.
 
  “현역 때 의대는 실패하고 카이스트에 합격해 한 달 정도 다녔죠. 근데 의대를 포기하기 힘들다 해서 나왔고, 다시 공부했어요.”
 
  ― 공부만 열심히 하다 아까운 나이에 사고를 당했네요.
 
  “그러니까요. 중·고등학교 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만 하고…. 이제 목표를 이뤘으니 앞으로 행복하게 살 날만 남았는데….”
 
  ― A씨가 정민씨 실종 후에 ‘정민이가 요즘 힘들어한다’고 했다면서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자살이나 가출로 몰고가려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정민이 카톡 보면 전혀 그런 거 없었고요. 몇주간의 힘든 해부학 실습과정을 마치고 월요일에도 좋아하는 친구들 만난다는 약속이 있었고, 그 후에도 쭉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어요.”
 
  이때 아버지가 “죄송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웃으며 돌아올 거라고 할 때 이상했다”며 “정민이가 힘들어한다느니 어이없는 소리를 한 건 지금도 화가 난다”고 했다. 정민씨 아버지의 얘기다.
 
  “자기가 집에 있던 애를 밤에 불러냈고, 사라진 지 이틀이 됐어요. 미안해하고 힘들어해야 되는데, 그런 모습이 없었어요. 그래도 ‘그날 두 시간 동안 너의 행동이 기억이 안 난다니 최대한 기억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최면조사 때 ‘잘 부탁한다’고 했지요. 근데 애가 논조를 흐리면서 ‘정민이가 힘들어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힘들어하더라’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는 걸 보고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얘기를 왜 거기서 하냐고요. 가출 가능성, 자살 가능성 그런 걸로 유도하려고 한 거 아니에요. 다만 아내가 엄마들끼리도 잘 안다고 하니 의심을 안 하려고 했던 거죠.”
 
 
  실종 후 모든 가능성 열어놔
 
손정민씨 실종 당시 부모가 정민씨를 찾기 위해 한강에 게시한 현수막. 부모는 전단도 2000여 장을 제작해 뿌렸다.
  ― 실종 당일은 어땠나요.
 
  “정민이는 점심 때 후배 밥 사준다고 센트럴시티(고속터미널)에 갔다 왔고, 오후엔 집에 와서 저녁은 저랑 같이 먹었어요. 정민이 아빠는 그다음에 들어왔고, 각자 방에서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밤 10시 좀 넘어서 정민이가 ‘○○랑 한강에서 놀다 올게요’ 하며 나갔죠.”
 
  ― 세간에 알려진 대로 시험 때였습니까.
 
  “보통 1~2주 간격으로 시험이 있는데 4월 시험이 다 끝났고, 다음 시험까지는 9일 정도 남아 있었어요. 또 6주간 하는 해부학 실습이 있었는데 그것도 끝나서 여유가 있는 상태였어요.”
 
  ― 그래도 늦은 시간이라 걱정이 됐겠군요.
 
  “많이 늦을 땐 거의 제가 먼저 카톡을 보내요. 새벽 2시 넘으면 제가 연락을 하고 ‘술 조금만 먹어’ 하면 정민이가 바로 답을 하고 더 안 먹고 들어오고 그랬는데, 그날은 1시 반 넘어 정민이랑 카톡을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음을 놓아버린 거죠. 후회가 되고, 안 그랬으면 2시 이후에 연락을 제가 했을 거고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
 
  이때 어머니는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실종 사실을 알고 난 후 전단은 부모가 직접 만들었다. 전단을 부착하는 일은 부모의 동네 친구들이 맡았다. 친구들이 전단을 가져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일일이 붙였다. 정민씨 친구들도 어머니에게 연락해 전단을 가져가 뿌렸다. 아는 사람이 없는 아파트에는 손씨의 회사 후배들이 나섰다. 2000여 장의 전단이 서초구 전역에 붙었다. 또 10여명의 정민씨 친구들에게 매일 전국 각 대학 게시판(에브리타임)과 20~30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볼만한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 실종 전단을 게시하고 목격자를 찾아봐달라 부탁했다. 이를 통해 실제로 유의미한 목격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한강공원 출입구인 반포나들목 CCTV에 정민씨 모습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민씨 부모는 한강에 빠졌을 가능성, 공원 어딘가에서 정신을 잃고 있을 가능성, 납치 가능성 등을 열어두고 백방으로 뛰었다. 경찰은 성인 남성의 실종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원 수풀 사이에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샅샅이 뒤졌고, 어머니는 납치됐다면 차에 실어 이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찰에 그날 한강공원을 출입한 차량을 조사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실종 당시 기사 댓글에 장기매매와 인신매매 얘기가 많아 댓글에 언급된 서울 모처의 파출소까지 갔다 왔다.
 
  ― 납치나 장기매매라면 찾기가 쉽지 않겠지요.
 
  “경찰은 물론 회사직원분들까지 오셔서 5일 동안 한강을 이 잡듯이 뒤져도 아이가 나오지 않았어요. 답답한 마음에 5일째 되는 저녁에는 기사 댓글에 언급된 서울 모처의 파출소를 다녀왔습니다. 혹시 사람을 납치하는 조직이 있느냐, 누구라도 연결할 수 있느냐, 안 되면 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라도 들어갈 수 있느냐 하고 매달렸는데 성과는 없었어요.”
 
 
  “용서할 수 없다”
 
  정민씨 부모는 인터뷰 내내 침착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마무리 단계에 기자가 ‘A씨가 진심으로 사죄하면 용서하겠느냐’고 묻자 표정이 바뀌며 단호하게 말투가 바뀌었다.
 
  ― A가 이제라도 제대로 얘기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를 부검까지 해야 했어요. 용서할 수 없어요.” (어머니)
 
  “아들이 쓰러져 있는 그 사진을 보고 용서할 수 있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그들은 “(A가) 그날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해도 실수를 했다고 솔직히 얘기하면 끝날 수 있는 일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분노했다. 처음엔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진심으로 고의로 일을 저질렀거나, 사고를 고의로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얘기를 이어갔다.
 
  ― 이런 얘기가 불편하시겠지만 ‘방구석 코난’(앉아서 머릿속으로 추리하는 사람들) 운운 하는 얘기가 나오죠.
 
  “자기들이 떳떳하면 사람들이 왜 그런 얘기를 하겠어요? 그렇게 만든 게 누굽니까?”
 
  ― 앞으로의 계획은요.
 
  “실족사 추정으로 내사 종결되는 것은 끝까지 막을 겁니다. 실족사했을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근거가 있어야지 추정만으로는 인정할 수 없어요. 계속 제보자와 목격자, 증거를 찾아내고 쉽사리 내사 종결이 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 대학생 둘이 다섯 시간 만나 술을 먹었을 뿐인데 어쩌면 이렇게 의혹이 많고 다양할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최대한 피의자 전환하고 제대로 수사해서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고, 그게 안 되면 다음 단계로 가야죠.”
 
  ― 다음 단계란.
 
  “다각도로 검토 중입니다.”
 
  ― A씨 측에서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는데요.
 
  “쇼(show)하는 거 아니겠어요. 오히려 신변보호 신청을 하면 이민이나 도망은 못 가겠네요.”
 
  심신이 지친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 몸과 바꿀 수 있는 아이”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한다.
 
  “이걸 (진상규명) 하면서도 순간순간 맥이 빠질 때가 있어요. 해봤자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아이가 집 앞으로 돌아와 준 이유가 있을 테니 최선을 다하려고요. 끝까지 할 수 있는 거 다 할 거고요. 장례를 치렀지만 정민이 방은 그대로 있어요. 정민이가 계속 있다고 생각하고 영원히 그대로 놔둘 거예요. 우리 밥 먹을 때 정민이 몫도 같이 차리고 ‘정민아 밥 먹어’ 하고 불러요. 정민이가 좋아하던 유튜브 방송 틀어주고요. 제가 외출할 땐 ‘정민아 엄마 다녀올게,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어’ 하고, 돌아와선 ‘정민아, 엄마 왔어’ 하고요. 우리에겐 정민이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진상을 밝히자는 목적이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고 난 후엔 뭘로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정민이가 아팠다면 제가 눈이든 장기든 다 줬을 텐데, 통째로 내 몸하고 바꿔도 되는데, 우리는 살 만큼 살았는데, 아이는 그럴 기회도 안 주고 떠나버렸어요.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놓고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다, 이제 뭔가 좀 알고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왔는데 고생만 하다 간 것 같아서 아이가 너무 아까워요. 살아만 있었으면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우리도 다 해줄 수 있었는데….”
 
  정민씨 부모는 “아들을 잃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배경,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다양한 추정을 내놓았다. 모두 일리가 있거나 충분히 사실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아직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추정인 만큼 지면에는 소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렇게까지 괴로운 상상을 많이 해야 하는 부모의 처절한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정민씨 부모는 인터뷰하는 동안 최대한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지만 정민씨가 어떤 아이였는지, 왜 물에 들어가야만 했는지 등을 이야기할 때는 종종 눈물을 터뜨렸다. 그들 부부와 정민씨가 한 점 억울함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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