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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흔들리는 한국 ‘학문의 진실성’

부정논문으로 승진한 교수 비호하는 지방 국립대

글 :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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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국립대 某 교수, 日 유학 시절 일본 정부 자금으로 진행된 공동연구의 데이터를 혼자 연구해서 산출한 것처럼 출처 표시 없이 사용
⊙ 대법원, 승진심사에서 부정논문 제출했다면 승진은 무효, 僞計에 의한 업무방해죄 성립
⊙ 전국 대학 연구부정행위 의혹사건, 2015년 41건에서 2019년 243건으로 증가
2019년 9월 4일 임현택(왼쪽)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을 철회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진실’이란 뭘까.
 
  사전에 따르면 ‘거짓 없는 사실’, 또는 ‘참된 이치’라는 뜻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진실을 발굴, 눈덩이처럼 굴려 가며 문명을 이뤘다.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은 ‘학문의 진실성(Integrity in scholarship)’을 사회 발전의 기초 가치로 여긴다. 진실이 왜곡되면, 정의도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진실을 캐는 전문가가 교수고, 그들이 몸담은 곳이 대학이다. 대학은, 한 나라 최고 지성들의 집합소로 두뇌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한 지방 국립대에서 학문의 진실성을 의심받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9년 3월 K대 연구윤리위원회는 김 모 교수의 논문 4편을 ‘표절 및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 또는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로 판정, K대에 통보했다.
 

  A 교수는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정부 자금으로 진행된 공동연구의 데이터를 귀국 후 K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혼자 연구해서 산출한 것처럼 출처 표시 없이 사용했다. 공동연구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소유 기관의 허가와 함께 과제수행기관 및 과제명, 연구기간, 총괄책임자 등 출처를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A 교수는 허가도 받지 않고 출처 표시도 하지 않음으로써 일본 대학 소유 데이터를 K대에서 단독 연구해서 얻은 것처럼 속인 것이다.
 
  학문에서 ‘진실’이 아닌 ‘진실성’을 따지는 것은, 대체로 일부만 부정이 깃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A 교수 논문은 통째로 문제여서 부정 정도가 심각한 편이었다. A 교수는 허가도 받았고, 출처 표시가 없는 것은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대학들은 허가 사실을 부인했고, K대 연구윤리위는 고의적 행위로 판단했다.
 
 
  부정논문들로 재임용·승진
 
  문제는 A 교수가 부정논문 4편 중 3편을 2014년 5월 조교수 재임용심사에서, 4편 모두를 2018년 5월 부교수 승진심사에서 실적으로 제출한 점이다.
 
  하지만 K대는 A 교수에 대해 임용·승진취소 처분을 하지 않았다. 부정논문의 징계사유 시효(時效)가 지난데다 부정논문들을 제외해도 최저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학교 측 해명은 억지 논리였다. 부정논문을 인사심사에서 제출한 것은 임용시스템을 교란한 기망(欺罔)행위여서 원천 무효(無效)다. 따라서 이런 행위는 시효와 상관없이 임용취소처분 대상이다. 이와 함께 형사처분해야 할 범죄다. 학생 입시였다면 당연히 입학 취소됐을 터였다.
 
  대법원은 비슷한 사안(대법원 2009도4772)에 대해 “부정논문을 부교수 승진심사 서류에 포함하여 제출한 사안에서 당해 논문을 제외한 다른 논문만으로도 부교수 승진요건을 월등히 충족하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승진임용심사의 적정성이나 공정성을 해칠 위험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위계(僞計)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또 이 판례에서 “교원으로서 인격과 품위에 관해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하는 승진임용심사의 특성상 승진대상자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승진 무효’까지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의 요지는, 승진심사에서 부정논문을 제출했다면 아무리 점수가 높아도 승진은 무효이고, 오히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교원소청심사위도 임용취소 관련 결정문(2009-111 임용취소처분 취소 청구)에서,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교원 신분은 엄격히 보장되지만, 임용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으면 별도 규정이 없어도 공익 우선과 신뢰 상실 등 때문에 임용취소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대학 측이 무리하게 A 교수를 옹호했지만, 부정판정 9개월 후인 2019년 12월 A 교수는 또 한 편의 논문이 부정판정을 받는다. 이 논문도 조교수 재임용 실적으로 제출된 것이어서 앞선 부정논문들을 포함하면 A 교수는 기준선에 미달, 재임용 탈락이었다. 이를 보면 A 교수는 조교수 재임용심사를 앞두고 실적이 모자라자 의도적으로 부정논문 4편을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한편 관련 학회는 부정판정 18개월 후인 지난해 8월 A 교수 부정논문 5편을 모두 게재 철회했다. 이에 따라 A 교수가 인사심사에 제출한 부정논문들은 무효가 됐다. A 교수의 재임용·승진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대학의 부정논문 교수 감싸기
 
  하지만 K대는 이번에도 A 교수의 수호천사로 나섰다. A 교수의 부정논문들은 징계사유 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문제조차 삼지 않았다. 다만 부정논문들로 우수학술업적 장려금을 받은 점만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지난해 8월 경징계와 함께 장려금 180만원 반납 처분을 내렸다. 학교 측은 A 교수 사안을 ‘계약과 법률 위반’이 아닌 ‘연구윤리 위반’으로 호도함으로써, 소멸시효가 아닌 징계사유 시효를 적용해 사법처리를 회피한 것이다. 하지만 A 교수는 이마저 부당하다며 교원소청위원회에 제소, 지난해 11월 징계취소 결정을 받아 결국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K대 담당자들은 2019년 3월 논문부정 판정 즉시, 논문들이 인사심사 때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3개월 후 같은 해 6월 “A 교수 부정논문들이 조교수 재임용과 부교수 승진 과정에서 제출됐다”고 적시(摘示)한 제보를 접수했다.
 
  그럼에도 대학 측이 적법한 처리를 미루자 제보자는 국민신문고와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에도 같은 내용의 제보를 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민신문고는 대학 감독관청인 교육부에 제보 내용을 통고, 사안을 처리하도록 공을 떠넘겼다.
 
  그러나 교육부도 “교육공무원임용령에 따라 교육공무원에 대한 임용권은 대학총장에게 일임돼 있다”며 개입을 회피했다. 감사원도 대학에서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개입을 미루다 지난해 12월 직원을 K대에 파견, 조사했으나 대학 측 설명만 듣고 철수했다.
 
  대학 측의 불법 눈감기와 감시기관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A 교수는 부정 발각 후 3년째인 2021학년도에도 아무 일 없는 듯 강의하고 있다.
 
 
  “K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
 
2018년 8월 31일 숙명여고 정문 앞에서 교무부장의 시험지 유출 규탄 집회를 하는 학부모들. 교무부장의 딸들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사진=조선DB
  A 교수 사건 전후 유사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됐다. 숙명여고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들은 시험부정이 확인되자 성적 재(再)산정을 통한 0점 처리와 함께 퇴학 처분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 모씨에 대해서도 부산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취소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조 모씨의 경우 아직 대법원 판결이 안 나왔다는 이유라도 있지만, A 교수 부정논문 판정은 이미 끝난 사안이어서 학교 측 명분도 없었다.
 
  지난 1월에는 7급과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공무원들이 과거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성희롱성 글이나 장애인 비하 글을 쓴 행위가 공무원 품위 손상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임용 취소됐다.
 
  A 교수 사안은 이에 비하면 훨씬 중대한 문제였지만 대학 측은 유사 사건들의 처리 방식에 대해 모른 척으로 일관했다. K대는 지난해 10월 신임 총장이 취임했다. 그러나 대학의 전현직 집행부는 A 교수에 대한 처벌만은 피하려 했다.
 
  지난 1월 K대는 A 교수 문제에 대해 잠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언론들이 K대의 부당한 처리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교원임용계약은 고용계약에 해당하므로 무효 또는 취소 사유가 있으면 시효와 상관없이 취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견디지 못한 K대는 A 교수 문제에 대해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국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A 교수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상당수 교수들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A 교수가 잘못은 했지만 처벌은 지나친 처사라는 것이다. 심지어, “논문에 대해서는 누구도 떳떳하지 못할 것”이라며 “잘못했다가 다 죽는다”고까지 말했다. 결국 대학 본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는 불법 교수라도 신분만은 지켜주려는 일부 교수의 집단이기주의의 반영인 셈이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전직 관료는 “K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대학의 자율 원칙에 따라 연구평가와 상벌이 대학에 맡겨진 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분석했다.
 
 
  가수 홍진영도 퇴출됐는데…
 
  최근 우리나라 대학들의 연구부정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대학 연구윤리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국 대학 연구부정행위 의혹사건은 243건으로, 2018년 110건보다 2배 이상 늘었고, 2015년 41건, 2016년 92건, 2017년 58건 등과 비교해도 급증 추세다. 의혹사건이 급증 추세인 것은 신고 건수가 증가한데다 대학교수와 미성년자 논문 공저 문제에 대한 부정판정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러난 수치만으로 우리나라 연구부정 실태를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특유의 온정주의 때문에 부정을 알고도 구태여 지적하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부정판정·감시시스템도 부실하여 연구자가 마음먹은 부정은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가수 홍진영이나 인기강사 설민석 등 유명인들의 부정논문 사건이 주의를 끌었지만, 전문 학자들의 연구부정도, 못지않게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학문의 진실성이 흔들리면서 우리는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정부가 쏟아붓고 있는 연구개발(R&D) 자금의 효율성 문제다. 물론 대다수 연구자는 선량하다. 하지만 대학가에서 연구개발 자금은 눈먼 돈이라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진짜 그렇다면 우리는 뿌리 썩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0년도 우리나라 R&D 예산은 24조2000억원으로 전체 512조3000억원의 4.7%를 차지한다. 이 금액은 국방 예산 50조20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23조7000억원, SOC 23조2000억원, 농림·수산·식품 21조5000억원보다 많다.
 
  GDP 대비 정부의 연구개발예산 비중도 2018년도의 경우 우리나라는 1.04%로 독일 0.94%, 핀란드 0.83%, 미국 0.70% 등을 앞질러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웅용, 김주일 연구원의 〈2020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 70쪽)
 
  이처럼 자금이 투입되고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돈다. 진실로 위장한 거짓이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대학이 야만의 전당이 돼버렸다”
 
  K대는 불법 교수를 비호, 대학 경쟁력의 근간인 교수 임용시스템의 공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연구윤리 전문 변호사들은, 당장 A 교수를 임용취소하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사직당국에 고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죄는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기한이 한 달가량 남았다. 이와 함께 손해배상청구 및 부당이득금반환 소송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3년째 지속된 학습권 침해에 따른 학생들의 피해는 그대로 남는다.
 
  K대의 교수처벌 회피는 형법 122조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다. 전현직 총장과 담당자들은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
 
  학문의 진실성은 맑은 호수처럼 유지돼야 한다. 언제고 오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연구윤리확보시스템은 부정 방지에는 거의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대학의 자율 속에서도 학문의 진실성을 지키려면 부실한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더 정교한 기준 설정과 강화된 처벌 규정, 대학 차원의 실천 대책들도 필요하다. 물론 대학 자체 해결이 안 될 경우, 외부 감시시스템의 개입도 불가피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A 교수나 대학 측은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K대의 한 교수는 “교수나 학교 측 모두 진실을 짓밟고 법과 윤리를 어겼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며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 아닌 야만의 전당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연구부정 교수는 학계에서 발을 못 붙이게 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도 살고 나라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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