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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 ‘삼성 新경영’(1993~1996)(4)

“각 社에 내 생일날 선물 가져오지 말고 그 날짜 맞춰서 양로원 탁아소 도와 주라고 지시해”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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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에 사회공헌 기틀 마련한 이건희, “이익의 10%는 소외계층 도와라” 직접 지시
⊙ “일반 서민들한테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계속 연구를 하라고.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에도 자문 구해서 연구해 봐”
⊙ “달동네 사회 청소년 문제 해소할 방법 연구해서 방안 마련해. 애들이 잘못되면 미래가 없다고”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후 국내 최초 민간구조단 설립
⊙ 하도급 업체 등 중소기업 자금 지원, 중소기업 연수원 지어주기 등 지시
  《월간조선》은 2020년 10월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 40여 개를 단독입수해 그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이 육성 테이프는 이건희 회장이 1988년 그룹 회장 취임 후 삼성의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판단하에 ‘신(新)경영’을 선언, 비서실에 직접 지시를 내렸던 1993~1996년의 업무지시 녹음테이프다.
 
  이 회장은 자신의 지시 내용을 모두 녹음하도록 하고, 지시를 실천하는 데 오차가 없도록 당부했다. 《월간조선》은 앞서 세 차례에 걸쳐 이 회장의 경영관(觀)과 인간관, 범삼성가(家)의 비사(秘史) 등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 호에는 이 회장이 1990년대에 어떻게 사회공헌이라는 개념을 기업에 도입했는지 소개한다.
 
 
  “이익의 10%를 사회 소외계층 돕는 데 써라”
 
  이건희 회장은 “기업은 이익을 내고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요즘 교수에 경제학 박사라는 사람들이 기업이 이익을 내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단 말이야. 이거는 망조야 망조. 나라 망할 소리지. 기업이 이익을 안 내고 어떻게 해? 이익을 철저하게 내서, 최대로 이익을 내고 종업원, 투자자 주주들에게 최대 이익을 주고 인류에 공헌하고, 그리고 남은 돈은 재분배해야 돼. 문화사업도 하고, 가난한 사람, 달동네를 도와주고.”
 

  삼성은 이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9년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해 어린이집을 짓고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불우청소년 돕기 등 어린이·청소년 관련 사회공헌 사업을 해왔다. 이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신경영을 진행하던 1995년부터는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화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한다.
 
  “일반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계속 연구를 해.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에 자문도 구하고.”
 
  “사회 소외계층 돕는 데 이익의 10%를 쓰라”는 지시도 내린다. 그룹 회장의 이런 지시에 삼성은 적극적인 사회공헌 사업 확대에 나서게 된다.
 
  “삼성이 벌어들인 이익을 우리가 좀 더 가져간다고 이 나라가 나아지나? 벌어들인 만큼 사회에 베풀어야 되는 거야.”
 
 
  서민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탁아소와 양로원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삼성은 1989년부터 전국에 삼성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신경영 당시 50대 초반이던 이건희 회장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50대들이 광복 전후에 태어나 6·25와 4·19, 5·16 등을 겪으며 제대로 된 교육 및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다.
 
  “지금 40대에서 50대 초반은 희생의 세대야. 어릴 때는 생선 꼬랑지 먹고 자라고. 취업해보니 자식한테 돈은 다 가고… 60년대까지는 굶어 죽는 사람 있었잖아. 내 자식은 굶어 죽어도 대학 보낸다는 부성애, 모성애 이런 게 지금 나라 만든 거지.”
 
  다음 세대는 어렵게 사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이 회장은 삼성이 고도성장을 하는 가운데 이익을 재분배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의 최소 생계는 삼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업무지시 중에 ‘달동네’라는 단어도 여러 번 등장한다.
 
  구체적인 지시도 한다.
 
  “각 사(社)가 내 생일에 기념선물 가져오잖아? 그거 가져오지 말고 그 날짜 맞춰서 주변 양로원, 탁아소 도와주라고 해. 날짜를 정하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좋잖아.”
 
  이 회장은 달동네, 탁아소, 양로원에 대한 지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가족의 중요성도 강조했는데, 대가족 내에서 자란 그의 성장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대가 같이 살면서 애들이 할머니·할아버지 사랑받고 크면 파렴치범이 나오겠어? 고도성장기에 혼자 목걸이열쇠 걸고 다니는 애들, 부모나 할아버지·할머니 사랑 못 받고 자란 애들이 어떻게 되겠냐고. 부모는 일하러 가고 할머니·할아버지가 보살펴주면 애들이 잘 돼. 그런 면에서 정부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3대가 같이 살면 좋은 점이 많은데 혜택을 줘야지. 집 크다고 차 2대 있다고, 세금 많이 내라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노인들이 소일거리 할 게 없는 건 문제야. 애들 봐주고 하면서 같이 공존하면 좋잖아. 탁아소랑 양로원 가까운데 지어서 같이 운영하라고.”
 
  이 회장은 “달동네 청소년 문제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라”고도 당부한다.
 
  “애들이 잘못되면 미래가 없다고. 삼성이 우리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 살 수 있게는 해줘야 돼.”
 
  “달동네에서 자라는 애들 방치되기가 쉽잖아. 거기 부모들은 하루하루 살기 위해서 일하러 나가고 애 혼자 남으면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가정교육 못 받고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높지. 이게 우리 사회의 큰 위험이야. 그래서 탁아소를 달동네에 많이 지으라는 거야.”
 
  이 회장의 시도때도 없는 탁아소와 양로원 언급은 주변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사장단 회의에서도 탁아소와 양로원을 언급해 사장단에서는 “바빠 죽겠는데 무슨…”이라는 불평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국내 의료문화와 장례식장 문화를 바꾸기 위해 삼성의료원(현 삼성서울병원)에 수많은 지시를 내렸다. 삼성서울병원을 빠져나오는 이건희 회장 운구차.
  이건희 회장의 사회공헌 목적은 소외 이웃을 돕는 것은 물론, 후진적인 우리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생각은 삼성 각 계열사에 적용됐다. 호텔신라는 친절과 서비스 정신을, 삼성의료원은 환자에 대한 서비스를, 삼성건설은 근로자의 안전 최우선 정신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특히 삼성의료원은 이 회장의 지시로 국내 장례식장 문화를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례식장 가봤어? 꽃이고 음식이고 바가지 씌우고. 주변의 거지들은 다 몰려들어서 어수선한 분위기 만들고. 슬픈 유족들 더 슬프게 만든다고. 삼성의료원이 그런 문화를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장례식장이 깨끗하고 엄숙한 곳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삼성이 만드는 거야.”
 
  이런 지시를 내린 지 2개월 만에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 회장은 지시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대로하고 감사팀을 호출한다.
 
  “관리 책임자가 누구야? 꽃값하고 업체 단가 다 확인하고 처리해. 제대로 안 하면 잘린다는 걸 보여줘야 돼.”
 
  이후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은 ‘줄을 서는’ 장례식장으로 입소문이 났고, 대형 병원들이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의 사례를 모방하면서 국내 장례식장 문화가 바뀌게 됐다.
 

  이 회장은 장례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공원묘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삼성생명 직원들 해외 공원묘지 시찰하고 배워 오라고 해. 우리나라는 묘지 분위기가 무겁고 침울하잖아. 해외 공원묘지 보면 꽃도 수두룩하게 피어 있고 아이들이 와서 뛰어놀고 그렇지. 우리나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돼. 그걸 삼성이 해. 시찰하고 조사하고 추진해 봐.”
 
  다만 삼성의 공원묘지 조성사업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얻지 못했다.
 
  이 밖에도 이 회장은 여러 곳의 계열사에 “문화를 바꾸라”며 직접 지시를 내렸다. 호텔신라에는 “호텔 내에 직원 서비스센터를 만들고 친절교육을 시켜라” “직원이 개인적으로 팁을 받지 말라”고 했고, 안양컨트리클럽(CC)에는 공정한 부킹과 친절서비스를 주문했다.
 
  “우리나라에 없는 사례를 삼성이 만들어. 우리가 잘 되면 경쟁사들도 다 따라오게 돼 있어.”
 
  우리 사회의 문화와 민심에 신경을 많이 썼던 그는 민심을 통해 계열사들을 평가하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현장에 안 가도 어느 회사가 잘하고 안 하는지 현장 안 가도 다 알아. 나한테 부탁이 들어오는 회사는 잘하는 회사야. 삼성 장례식장 부탁하고, 안양CC 부킹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회사가 잘하고 있다는 거거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안전에 큰 관심
 
국내 유일의 민간구조단체 삼성전자 3119구조단이 지난 2012년 9월 경기 수원 서호에서 보트를 이용해 부유물 수거 등 청결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대기업에 확산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삼성중공업과 삼성건설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노발대발하며 책임자를 인사 조치하라고 했고, “내가 그만두겠다”고 격노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 회장은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 건설회사가 해외에서 건설을 할 때는 사고가 안 나는데 왜 국내에선 자꾸 사고가 나는 거야?”
 
  해외 선진국의 감리회사들은 원칙에 의거해 엄격하게 현장을 관리하는 반면 국내 감리회사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원칙보다는 편의성을 우선한다는 보고를 받고 이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내 건설 현장에도 미국이나 영국 감리회사 데리고 와. 거긴 기준대로 철저히 체크하잖아.”
 
  선진국 감리회사의 비용이 국내 회사에 비해 10~20배에 달하며 원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보고에 이 회장은 이렇게 야단쳤다.
 
  “사고가 안 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건설공사에 사고가 안 날 수가 없다는 그런 생각들이 문제인 거야. 의식을 고쳐. 안전관리 잘 하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고. 비용으로 극약처방에 나서면 다들 따라오잖아.”
 
이건희 회장은 국내 건설업계에 ‘안전 제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섰다. 1993년 병원 건설 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
  삼성이 수십 배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해외 감리회사를 데려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감리회사들도 체질 개선에 나섰고, 국내 건설사와 감리회사도 편의성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또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추진 중이던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큰 충격을 받고,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끊임없이 비서실과 계열사에 한다. 삼풍사고 당시 TV로 현장 중계를 지켜보던 이 회장은 “선진국에 비해 장비나 구조방법이나 인력이 너무 원시적이고 낙후돼 있다” “삼성이 국민의 안전을 지킬 필요가 있다”며 국내 최초로 민간구조단을 만든다.
 
  특히 삼풍사고 당시 서울시의 미흡한 대처와 후진적인 구조방법에 실망한 이 회장은 “소방차와 응급차를 구입해 구조를 도우라”고 지시한다. 소방차를 포함한 첨단 장비를 구입했고, 인원도 800여명에 달하는 규모였다. 삼성이 첨단 구조장비를 사들여오면서 소방대가 삼성 구조단의 장비를 대여해갈 정도였다. 이 구조단이 현재 S1(에스원) 소속인 ‘삼성 3119구조단’이다. 이후 3119구조단은 괌 KAL기 추락사고, 수해와 지진 등 각종 사고현장에서 구조활동에 나섰고, 국내 유일의 민간 긴급구조기관으로 인명과 재산보호를 통한 안전한 사회구현을 목표로 운영 중이다.
 
  삼풍사고는 이 회장의 안전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건설 계열사(삼성건설)를 보유한 그룹 총수 입장에서도 안전은 최우선이 돼야 할 문제였다. 이 회장은 언론을 통해 안전 문제를 여론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삼풍사고 나고 나서 변화가 되고 있나? 현장에서는 구태의연한 관행 그대로 되고 있는 거 아닌가? 삼성아파트 짓는 하도급업체에 주는 평당 가격이 과거와 마찬가지 아니냐고. 자재 단가와 질도 변화가 있어야 되는데 옛날 그대로 하고 있지 않은지 전부 체크해. 그리고 《중앙일보》나 《조선일보》에 자료 줘서 이런 걸 기사 쓰게 해줘야 돼.”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기업이 산다
 
  이 회장은 대기업이 잘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잘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익 중에 중소기업 기금 안정을 위해 쓰는 게 얼마나 되지? 지원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해. 중소기업 연수원은 우리가 지어주라고.”
 
  이때 삼성은 그룹 연수원 지은 팀을 동원해 하청업체 몇 곳의 연수원을 지어주기도 했다.
 
  또 늘 중소기업과 하위 직급 직원에 대해 “잘해줘야 되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룹 내 조사 결과 신경영에 대해 하위 직급 직원들의 이해와 공감도가 떨어진다는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은 “노동자의 불만이 최우선”이라며 비서실을 질타한다.
 
  “창업자가 독선적으로 하다 보면 터진다고. 근데 우리는 좌익이 들어와 있지 않은 이상 터질 수가 없어. 내 경영철학에 의하면 나올 수가 없단 말이야. 노동자의 불만을 120% 들어주라고 했는데 왜 불만이 나오냐고. 비서실에서 활동을 안 했단 얘기 아냐. 총력을 다해서 노사위원회를 설득을 시켜.”
 
  이 밖에도 이 회장은 “한 국가의 일류 회사는 국가가 할 일을 함께 해야 한다” “삼성이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삼성의 ‘사회공헌’은 단순한 소외계층 지원, 문화사업 지원이 아니라 대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후진적인 사회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뿌리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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