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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사건의 內幕

여자 팀추월, 왕따도 없었고 ‘콜’도 없었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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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중 빠르다는 신호 안 한 노선영에게 박지우, “언니, 왜 콜 안 했어?”
⊙ 평창 동계올림픽 후 김보름은 정신과 병동 입원, 백철기 감독은 빙상계 은퇴
⊙ 문체부 감사 결과 ‘왕따 주장 사실 아니다’
⊙ 김보름, 노선영 상대로 2억원 손해배상 소송 제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 중 코치진이 숫자표로 랩타임을 보여주는 모습. 사진=조선DB
  3분이다. 2명의 선수와 1명의 감독, 그들의 인생을 바꿔버린 시간 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팀추월(팀 퍼슈트·Team Pursuit) 경기가 열렸다. 선수 3명은 ‘왕따 논란’에 휩쌓였다. 김보름·박지우 선수(이하 선수 생략)가 경기 중 노선영을 따돌리고 자기들만 피니시 라인으로 달려나갔다는 얘기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름은 인터넷에서 말 그대로 집중 포화를 당했다. 안민석·유시민·최민희 등 정치권 인사들도 ‘왕따 논란’에 말을 보태고 나섰다. 은메달을 땄지만 후원도 끊겼다. 올림픽이 끝난 후 광고 계약은커녕 종합병원 정신과 병동에 입원을 했다. 거짓말했다고 비난을 받은 백철기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감독은 얼음판을 완전히 떠나버렸다. 노선영은 노선영대로 “개명까지 고민했다”며 힘들었다고 말한다. 평창올림픽 후 두 선수는 다시 마주 섰다. 법정에서다. 김보름은 지난해 11월 노선영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날 3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대표팀·빙상 관계자들에게 듣고 재구성했다. 2018년 2월 19일의 평창으로 돌아가보자.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이 열리는 날이었다.
 
 
  여자 팀추월, 4강을 목표로
 
  팀추월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중 유일한 단체종목이다. 각각 3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400m 트랙을 반으로 나눠 출발점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경기다. 남자 선수는 8바퀴(3200m), 여자 선수는 6바퀴(2400m)를 돈다. 각 팀 선수들은 다같이 출발한다. 각 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선수의 기록이 팀 기록이 된다.
 
  ‘팀추월’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다. 두 팀의 실력 차이가 클 경우 한 팀이 다른 팀을 따라잡을 수 있다. 꼬리잡기식으로 말이다. 실제 추월이 이뤄지면 기록과 관계 없이 추월한 팀이 승리한다.
 
  경기를 앞둔 워밍업 시간, 스케이트 타는 위치를 두고 감독과 선수들 간에 이야기가 오갔다. 구간별 주자들 위치는 경기 진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경기 중 선수들은 시속 48~50km로 링크를 달린다. 이때 맨 앞에서 달리는 선수, 즉 탱커는 공기저항을 그대로 맞는다. 뒤에 바싹 붙어서 가는 선수들은 앞 선수와 움직임만 잘 맞추면 공기저항을 최소한으로 맞으면서 탈 수 있다. 슬립스트림(Slipstream) 효과다. 이때 30%가량 체력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성적이 좋은 팀 경기를 보면 3명이 발을 딱딱 맞춰 타는 걸 볼 수 있다. 마치 일렬로 군무(群舞)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저항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큰 맨 앞자리를 세 선수가 번갈아가면서 맡는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3명의 선수가 각각 두 바퀴씩 1번 자리에서 타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지막 두 바퀴를 앞두곤 첫 번째 주자 못지 않게 세 번째 주자도 중요하다. 앞 선수들과 떨어지지 않고 함께 붙어서 들어가줘야 된다. 세 번째 주자의 기록이 팀 기록이기 때문이다.
 
  애초 평창올림픽 팀추월 여자 대표팀에겐 2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동안 해온대로 하느냐, 4강 진입을 목표로 도전을 해보느냐. 평창올림픽은 3명이 처음으로 함께 치러본 경기가 아니다. 이들은 2016년부터 두 시즌을 이미 함께해왔다. 여덟 차례의 국제대회를 함께 치렀다.
 
  사실 미안한 얘기지만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함께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메달권에 들어간 적이 없다. 당장 올림픽 시즌(2017~2018년)의 성적을 보자. 캐나다 캘거리 월드컵대회에선 7위, 네덜란드 헤렌빈 월드컵대회에선 5위였다. 강릉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역시 5위였다.
 
  성적이 왜 이럴까. 일단 한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층이 얇다. 장거리의 경우 남자는 이승훈, 여자는 김보름에 의존했다. 팀추월은 단체전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실력이 엇비슷하게 좋고 팀워크가 잘 맞아야 성적이 잘 나온다. 팀의 호흡이 깨지거나 선수들 사이 기량 차이가 크면 아무래도 경기 운영이 힘들 수밖에 없다.
 
 
  목표는 2분59초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 중 김보름·박지우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세 선수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김보름이 부상에서 회복했다. 노선영의 경기력도 올라온 듯했다. 2월 12일에 열린 여자 1500m 경기에서 자신의 올림픽 최고 기록(14위)을 올렸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은 홈경기였다.
 
  ‘해볼 만하겠다!’ 대표팀은 도전을 택했다. ‘4강 진입이 목표다’.
 
  하필 3강도 아니고, 4강을 택한 건 이유가 있다. 그 전엔 전 경기 토너먼트 방식이었다. 경기 기록과 상관 없이 상대팀이 먼저 피니시 라인을 밟으면 경기 종료다. 그러던 것이 평창부터 바뀌었다. 준준결승에서 경기 기록으로 4개 나라를 뽑고 이 4개 나라가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본선에 오른 팀끼리는 토너먼트로 겨룬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준준결승에선 상대 팀이 피니시 라인에 먼저 들어가든지 말든지 죽기살기로 기록 단축을 해놔야 한단 말이다.
 
  한국팀이 4강에 들려면 2분59초에 진입해야 했다. 참가팀 전력을 분석한 결과였다. 2분59초를 위해 대표팀은 두 가지 결정을 내린다.
 
  첫째, 김보름이 혼자 레이스의 절반을 맨 앞에서 이끌기로 했다. 팀의 ‘에이스’란 이유에서였다. 백철기 감독의 말이다.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김보름 선수에게 세 바퀴를 선두에서 탈 것을 제안했다.” 특히 가장 힘들다는 마지막 두 바퀴를 김보름이 맡기로 했다.
 
  둘째, 마지막 두 구간에서 노선영이 3번에 서기로 했다. 노선영이 2번에 서는 경우, 3번에 서는 경우를 가정해 두 가지 경우로 사전 리허설을 했다. 경기 전날 박지우가 백 감독에게 경기 계획을 전해왔다. 노선영이 마지막 바퀴에서 세 번째 주자로 탄다는 말이었다. “언니들이랑 얘기가 된 거야?” 백 감독이 되물었다. 박지우는 팀의 막내였다. 노선영과 김보름 두 선수 모두와 사이가 좋았다.
 
  다음 날인 경기 당일 백 감독은 다시 선수들의 의사를 확인했다.
 
  “어떻게 하기로 했니?”
 
  노선영은 자신이 3번으로 타겠다고 말했다. 팀에서 자신이 3번을 타기 원하는 것 같아 그렇게 답했다고 후에 설명했다. 경기 전날이나 당일에 순서나 작전을 바꾸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한다. 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얘기다.
 
  노선영이 마지막 구간에서 3번을 타는 게 과연 맞는 작전이었을까. 노선영의 올라온 컨디션을 대표팀은 믿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올림픽 이전 두 번의 국제대회에서 같은 방식(노선영이 마지막 구간에 3번 자리에서 타는 방식)으로 이미 경기를 치러보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경기 후 노선영은 ‘자신이 3번에서 탄 건 평창이 처음’이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아’ 소리로 선수들끼리 신호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가 시작되면 코치진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경기장 한쪽에 있는 코치석 내에만 머물러야 한다. 숫자판으로 랩타임을 알려주는 정도다. 그걸 보면서 선수는 자신이 목표했던 것보다 빠른지 느린지 판단한다. 코치진이 소리를 지르거나 수신호를 해서 빠르다 늦다 알려줄 순 있겠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경기 자체가 3분 내외에 결판이 나버리니 말이다.
 
  그러니 많은 경우의 수가 사전에 약속되어 있어야 한다. 리허설을 해보는 이유다. 선수들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약속한 신호가 있다. 바로 ‘콜’이다.
 
  뒤 선수는 자신이 처져서 사이가 벌어질 것 같으면 앞 선수에게 콜을 한다. 엉덩이에 살짝 손을 대거나 소리를 내는 식이다. 그러면 앞 선수는 가속을 조절한다. 소리를 낸다는 게 ‘내가 좀 느린 것 같으니 속도를 늦춰주겠니’ 하는 식으로 문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김보름·박지우·노선영은 경기 때마다 ‘아’ 하는 식의 외마디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기로 했다.
 
 
  마지막 구간에서 간격 벌어져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박지우가 첫 한 바퀴를 이끌었다. 두 번째 바퀴는 노선영, 세 번째 바퀴는 김보름이 제일 앞에서 이끌었다. 어느덧 마지막 두 바퀴. 기록을 결정할 중요한 구간이었다. 노선영이 3번으로 가고 김보름이 1번 주자로 올라왔다. 커브 구간을 돈 직후인 2분12초쯤, 노선영의 스텝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면서 무게중심이 양옆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의 두 명과 동작이 현저히 달라졌다. 그렇게 되면 앞 사람이 바람을 막아주는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힘들어진다.
 
  앞의 두명과 점점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에게 들어보니, 이런 상황에서 사이가 벌어지면 따라잡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앞에 공기저항을 막아주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혼자 저항을 맞으며 가야 해서다.
 

  그때쯤 두 번째 주자던 박지우가 김보름의 엉덩이에 손을 대는 게 보인다. 속도를 올려주기 위해서다.
 
  단체전에서 자신의 속도가 남으면 앞 사람을 살짝 밀어서 추진력을 더해줄 수 있다. 선수들에게 들어보면 이게 쉬운 게 아니라고 한다. 미는 쪽도, 앞의 밀리는 쪽도 힘들단 얘기다. 호흡도 잘 맞아야 한다. 코너 구간에선 잘못 밀면 넘어질 수 있다.
 
 
  “노선영 처지리라 예상 못 했다”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김보름, 박지우와 노선영과의 사이는 더 벌어졌다. 당시 백철기 감독은 노선영이 뒤로 처지는 걸 봤다. 소리를 지르고 수신호를 보냈다. ‘떨어졌으니까 천천히 해!’
 
  그런데 그게 선수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홈경기고 올림픽이다 보니 관중이 평소보다 많았다. 관중의 함성에 선수들도 다른 대회에서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다고 한다. 백 감독의 말이다.
 
  “사실 노선영이 그렇게 처지리라고 생각 못 했다. 느린지 빠른지 선수들끼리 사인을 주고받는 게 다 연습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이 오리라곤 생각 못 했다.”
 
  네덜란드팀이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고 잠시 후 한국 선수들도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영상을 분석해보면 3분0초0 혹은 그 직전에 김보름과 박지우가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노선영은 3분3초76. 한국팀은 예선 7위를 기록했다.
 
  4강에 들려면 3분 안에 진입해야 한다는 대표팀의 예상은 정확했다. 예선 4위 미국의 기록은 2분59초75였다. 한국팀이 기록한 3분3초라는 기록은 이전 기록과 비교해보면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이들이 함께 달린 아홉 번의 경기 중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이다. 여기까지가 경기 내용이다.
 
 
  노선영 믹스드존 인터뷰 거부
 
김보름·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61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사진=청와대 사이트 캡처
  노선영을 제외한 김보름, 박지우는 경기 직후 인터뷰를 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각국 언론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다. 각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로서 암묵적인 의무나 마찬가지다. 부상을 당했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을 거치며 취재진과 만난다. 올림픽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경기 내용과 자신의 감상을 설명해준다.
 
  경기장 형태 자체가 선수가 링크를 벗어나려면 믹스드존을 통과해야 하게끔 되어 있다. 선수가 통과하는 길의 펜스 옆으로 각국 취재진이 죽 늘어서서 선수를 기다리는 식이다.
 
  노선영은 팀추월에 참가하며 믹스드존 인터뷰에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았다. 믹스드존을 지나쳐 가는 노선영을 당시 취재기자들이 만류하며 인터뷰에 응할 것을 요청했다. 노선영은 그냥 지나가버렸다.
 
  김보름과 박지우의 인터뷰는 논란이 됐다. 박지우의 답변 일부다.
 
  “저희가 기록 욕심이 있다 보니, 최고의 성적을 보여주기 위해 보름 언니 밀어주는 데 집중했다. 사실 (노선영) 언니가 떨어질 것도 생각해서 기록을 좀 늦추는 거로 하고 언니를 밀어야 하나 아니면 기록 단축을 해야 하나 했는데, 저희가 올림픽이다 보니까 그래도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어서 이 방법을 택했다.”
 
  이 말을 다시 옮기면, 지금껏 여자팀이 이뤄본 적 없는 2분59초라는 기록을 한번 이뤄보자 도전했단 얘기다. 기록을 늦추면 사이좋은 7등이나 8등이 거의 확실시되는데 4강을 향해 달려봤단 거다.
 
  사실 많은 이가 인터뷰한 김보름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인터뷰하면서 비웃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경기 내용보다는 김보름의 표정을 기억한다. 순간의 표정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던 건 아닐까. 경기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올라왔다.
 
  〈오늘 여자 단체전 팀추월에서 김보름, 박지우 선수는 팀전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영달에 눈이 멀어 같은 동료인 노선영 선수를 버리고 본인들만 앞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성이 결여된 자들이 한 국가의 올림픽 대표 선수라는 것은 명백한 국가 망신입니다. 오늘 사건을 계기로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그리고 올림픽 등 국제 대회 출전 정지를 청원합니다.〉
 
  이런 청원에 61만4127명이 서명했다. 그렇다면 김보름, 박지우와 노선영은 왜 떨어져서 타게 됐을까. 경기 직후 로커룸에서 박지우가 노선영에게 물었다고 한다. “언니, 왜 콜 안 했어?” 거리가 멀어지기 전 노선영은 아무런 콜도 하지 않았다. 뒤처질 것 같으면 ‘(김보름·박지우의 속도가) 빠르다’고 콜을 하기로 사전에 약속한 터였다.
 
  노선영이 콜을 안 한 게 그 경기가 처음이라고 김보름은 말했다. ‘왜 콜을 안 했냐’는 질문에 노선영은 뭐라 답했을까. 빙상 관계자에 따르면 ‘콜을 해봤자 안 될 것 같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본인에게 확인하고자 노선영 측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정리하자면 노선영은 하기로 약속한 콜을 하지 않았고, 이런 사실이 당시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변수가 된 방송중계 해설
 
  정작 경기장에 있던 이들은 잘 몰랐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경기 해설이다. KBS와 MBC의 경기 해설과 평가는 대동소이했다.
 
  〈KBS 이강석 해설위원: 노선영 선수 참아줘야 돼요. 끌고 나서 뒤로 가면 좀 힘들거든요? 노선영 선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 나머지 선수가 좀 더 끌어줘서 체력을 더 안배하는 식으로 전략을 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MBC 문준 해설위원: 노선영 선수 끝까지 붙어야 돼요. 노선영 선수 끝까지 자신 있게 레이스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SBS는 어땠을까. 경기시간 2분36초부터 해설 부분이다.
 
  〈제갈성렬: 김보름 선수 기다려야 됩니다!
 
  배성재: 선수들이 처졌는데요. 노선영 선수가 뒤로 많이….
 
  제갈성렬: 저렇게 가면 안 됩니다! 뒤에 선수들도 같이 조율을 하면서 호흡이 돼서 가야 되는데 이미 노선영 선수가 떨어져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배성재: 팀추월 종목에서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세 명의 사이가 크게 벌어지는 장면이 나왔는데, 두 명의 선수는 붙은 채로 그리고 노선영 선수가 뒤에 멀찌감치 남은 채로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경기 직후)
 
  배성재: 여자 팀추월 종목이 상당히 좀 아쉬움을 남겼는데요. 1조로 나왔는데 중반 이후에 노선영 선수가 많이 처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선수가 먼저 도착하는, 팀추월에서 최악의 모습이 연출되고 말았습니다.
 
  제갈성렬: 이런 모습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선배로서 안타깝고, 앞으로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게끔 선수, 지도자들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보름이 기다려야 한다?
 
밴쿠버올림픽 여자 팀추월에서 독일팀 후미 선수가 뒤로 떨어져서 타는 모습(왼쪽). 2017~2018 월드컵 4차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 노르웨이팀 후미가 뒤로 떨어진 채 질주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이 해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다수 국민은 팀추월이라는 경기를 이날 처음 봤을 가능성이 높다.
 
  ‘팀추월 종목에서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장면’(배성재), ‘앞으로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게끔’(제갈성렬)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시청자는 김보름·박지우가 뭔가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김보름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거듭했기 때문에, SBS 중계를 본 시청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김보름이 기다리지 않아서,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장면이 나왔구나’.
 
  그런데 좀 의아하다. 선수들이 흩어져서 들어오는 일은 팀추월에서 자주 일어난다. 올림픽 경기에서만 찾아봐도 잦은 일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에서 독일팀 마지막 주자가 뒤처지다 못해 거의 엎어져서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다. 3, 4위 결정전에선 미국팀 세 번째 주자가 많이 뒤처져서 들어왔다. 막판에 흩어져서 들어오는 건, 보통 선수들 기량이 들쑥날쑥한 하위권 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상황에 따라 메달권 팀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처음 SBS 해설을 들었을 땐 배 아나운서와 제갈 위원이 너무 여러 종목을 해설해서 힘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팀추월이라는 종목의 규칙과 이전 시즌 경기를 미처 챙기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SBS는 올림픽 시즌 월드컵 경기를 중계했다. 올림픽 두 달 전에 월드컵 4차 대회가 열렸다.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 한국과 노르웨이 모두 선수들이 흩어져서 달렸다. 마지막 바퀴를 앞두고는 노르웨이의 세 번째 주자가 완전히 뒤처졌다. 해설은 어땠을까.
 
  〈캐스터: 아, 지금 노르웨이는 세 명의 선수가 많이 퍼져 있어요. 둘만 나가고 한 선수가 따라붙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설위원: 중간에 한 선수가 급속한 체력고갈의 형태를 보이면, 전체적인 틀이 깨지다 보면 좋은 랩타임을 탈 수 없는 거죠.〉
 
  이때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바로 배성재-제갈성렬이었다. 상당히 담담하게 해설한다. 제갈 위원은 ‘경기 중 한 선수가 체력이 고갈되면 기록이 안 좋아진다’고도 말했다. 정확히 같은 상황이 평창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일어났을 때는 ‘김보름 선수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두 달 전에 해설까지 한 경기와 비슷한 경기 내용을 보고 ‘팀추월에서 나와선 안 되는 최악의 장면’이라며 한탄하며 경악했다.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장면?
 
  제갈 위원은 3년 전 자신의 해설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까. 직접 물었다.
 
  ― 당시 SBS 중계에서 ‘최악의 장면’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장면’이란 말이 나왔다.
 
  “제가 한 말이 아니다.”
 
  ― 맞다. 그 말은 배성재 캐스터가 한 말이다. 제갈 위원은 ‘앞으로는 도저히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게끔 선수, 지도자들은 생각해야’라고 말했다.
 
  “KBS, MBC 해설도 똑같이 말했다.”
 
  ― SBS만 달랐다. 선수들이 흩어져서 들어오는 건, 올림픽에서 다른 팀에서도 일어난 일 아닌가.
 
  “더 이상 이 부분 갖고는….”
 
  ― 경기 중계를 할 때 기록을 보고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랩타임상으론 이때 기록이 이 선수들의 좋은 기록 아니었나. 해설에선 최악의 모습이라고 했다.
 
  “수월하게 같이 동반해서 들어가도록 작전을 짜야 했다는 얘기다.”
 
  ― 기록만 보면 작전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아닌가.
 
  “선수들에게 한쪽으로 치우친 얘기가 될 수 있다. 말할 수 없다.”
 
  제갈 위원이 ‘김보름 선수 기다려야 한다’고 애타게 외친 시간은 2분36초. 남은 구간이 한 바퀴 반이 채 안 되는 상황이었다. 2분59초를 노리는 상황에서 한 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줄이고 기다리는 게 가능할까? 국가대표 출신으로 지금은 지도자를 하는 전직 국가대표 선수에게 물었다. 그의 말이다.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
 
  “내가 김보름, 박지우의 상황에 있었어도 어떻게 못 했을 것 같다. 만약 더 일찍 알게 됐다면 노선영을 2번으로 오게 해서 뒤에서 밀어주거나 앞에서 속도를 늦추는 등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볼 순 있겠지만… 한 바퀴, 한바퀴 반을 남긴 상황에선 노선영이 뒤떨어진 걸 설사 알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 같다. 그저 노선영이 힘을 내서 붙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만약 그 경기가 토너먼트 경기였다면 어차피 패배가 확정일 바엔 속도를 막판에 늦춰서 단결과 협동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세 선수가 조금만 더 최선을 다한다면 어쩌면 본선에 진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믿고 달려가보는 게 스포츠 정신에 맞는 선택 아니었을까.
 
  경기 바로 다음 날인 2월 20일 빙상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엔 김보름만 참석했다. 노선영은 ‘감기 기운이 있다’고 참석을 거부했다. 박지우는 같이 버스를 타고 회견장까지 오다가 ‘도저히 못 하겠다, 선영 언니 없이는 못 하겠다’ 하며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기자회견에 오지 않은 노선영과 박지우는 함께 스타벅스 카페에 가는 모습이 연합뉴스 기자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김보름과 백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감당하고 있던 시각이다.
 
  노선영은 기자회견 직후 SBS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한다. 백 감독의 설명을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SBS의 배성재 아나운서와 제갈성렬 해설위원은 경기 이틀 후인 2월 21일 중계에서 다시 한 번 여자 팀추월을 언급한다.
 
  〈배성재: 지금 온 나라가 여자 팀추월의 이해할 수 없는 막판 한 바퀴 때문에 그 이슈에 휩싸여 있습니다.
 
  제갈성렬: 정말 참담함을 금치 못 했습니다. 이런 사태를 통해서 선배들 빙상인 모두 다시 한 번 반성했으면 좋겠구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바로 세워지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보름, 은메달 따고 큰절
 
2018년 2월 25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김보름 선수가 여자 매스 스타트 은메달을 딴 후 관중석에 큰절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김보름은 매스 스타트(mass start)에서 은메달을 땄다. 종목 초대 은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경기 직후 환호 대신 눈물을 보였다. 빙판에서 큰절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보름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메달보다 값진 교훈을 함께 얻었을 김 선수에게 올림픽이 남다른 의미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보름이 얻어야 했던 메달보다 값진 교훈은 뭘까.
 
  그렇게 올림픽이 끝났다. 청와대 청원에 대한 답변으로 정부는 빙상연맹을 특정 감사하기로 했다.
 
  노선영은 그해 3월 8일 방송한 SBS TV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했다. 참신한 주장을 했다. “팀추월은 연맹이 버리는 경기였다.”
 
  상황을 냉정하게 보자. 노선영의 말대로 팀추월 경기를 버리려 했다면 팀추월에 매스 스타트 경기를 앞둔 김보름을 굳이 내보낼 필요가 없었다. 전력을 다해도 4강에 들지 말지 모를 경기보다는 매스 스타트 금메달에 집중하게 하는 게 연맹으로서는 훨씬 ‘가성비’가 좋았다. 버리는 경기가 아니었기에 김보름에게 세 바퀴 리드를 요구하며 2분59초의 모험을 택한 것 아닐까, 노선영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한 달 뒤인 2018년 4월 7일 방송된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는 빙상연맹을 다뤘다. 역시 노선영이 출연했다. “나만 몰랐던 어떤 작전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김보름이 의도적으로 가속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김보름은 노선영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에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김보름은 베이징으로 가기 전에 평창의 기억을 털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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