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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작성 대외비 ‘위안부 할머니 관련 문건’

“박근혜의 性노예 발언에 극도의 스트레스받은 아베, 먼저 위안부 합의 제안”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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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해외 정상들에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 우리 소녀를 끌고 가 성노예로 삼았다”고
그들의 만행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 朴, 취임 초 위안부 할머니 전수조사 지시
⊙ 다수 할머니 ‘2세 생계 걱정’에 ‘정부 지원·보상’ 등 실질적 도움 내심 원해
⊙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 우리 소녀를 끌고 가 성노예로 삼았다”(2014년 메르켈과의 비공개 대화 中)
⊙ 영국 여왕 등에게도 비슷한 이야기… 해외 정상들 아베에게 “정말이냐”며 한마디씩
⊙ 일본 우파 발끈하는 합의에도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비판
⊙ 이념 편향 시민단체 관계자 다녀간 뒤 위안부 합의에 부정적인 할머니들 늘어
⊙ 윤미향 민주당 의원에게 위안부 협상 내용에 대해 들었다는 할머니들 전무
⊙ 윤 의원이 멀쩡하다고 주장하는 길원옥 할머니 치매 초기 증상으로 말이 어눌, 주장에 일관성 없어(문건 내용 中)
⊙ 할머니들 세상 떠나고 있는데, ‘문재인표 위안부 해법’은 여전히 없어
  지난해 5월 25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자,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대표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정대협’은 2015년 ‘정의연’으로 확대 개편됐다.
 
  이 할머니는 수차례 울먹였다.
 
  “난 30년 재주넘고 돈은 그들이 받아먹었다.”
 

  평생 셀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렸을 이 할머니였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슬픔을 표시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13년 전인 2007년 2월 15일. 이 할머니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한 서린 목소리를 내며 울었다.
 
 
  美 하원 종군위안부 청문회 방청한 박근혜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가 연 일본군 성노예(종군위안부)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 할머니는 “16세 나이에 위안부로 대만으로 끌려갔다. 강제 성(性)추행은 물론 온갖 폭행과 고문에 시달렸다. 일본군들은 개돼지보다도 더 추악했고, 한국말을 하면 폭행당하기 일쑤였다”며 감정에 북받친 눈물을 쏟으며 증언한 것이다.
 
  청문회에는 이 할머니 외에도 고(故)김군자 할머니와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청문회장에는 방미 중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있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청문회 뒤 마련된 별도 저녁 만찬 자리에도 참석해 두 할머니의 노고를 위로, 격려했다. 6개월 후인 2007년 8월 1일 미국 하원은 ‘일본군 성노예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평생 마음과 몸에 응어리를 지니고 계셨던 분들의 한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겠지만 조금의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서 위안부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의지가 상당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의 꿈은 잠시 미뤄졌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취임 초 위안부 할머니 전원 의견 수렴 지시
 
  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논의가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는 ‘일본 국가 책임’을 고수하다 성과 없이 협상이 무산됐다. 2013년 2월 25일 박 전 대통령은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다. 취임 초 박 전 대통령은 정부 기관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방식의 문제 해결을 원하는지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해당 정부 기관이 몇 달에 걸쳐 대외비 문건을 만들어 보고했다. 《월간조선》은 이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 따르면 위안부 할머니들은 거주 형태(시설 집단 거주·개별 거주), 개개인이 처한 여건(경제력·2세 여부) 등에 따라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했지만, 대개 ‘고령에 따른 개인별 진료비 부담 증가·2세 생계 걱정’ 등으로 ‘정부 지원·보상’ 등 실질적 도움을 내심 희망했다.
 
  문건은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두 만나 인터뷰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결심했다. 할머니들을 위해 자신의 임기 중에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기로 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이야기다.
 
  “할머님들이 고령이다 보니, 돌아가셨다는 보고를 자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박 대통령은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받게 해드리고 싶어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세계 정상들에게 일본의 성노예 문제의 실상을 알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나라 소녀들을 ‘성노예’로 전락시키고도 후안무치한 뻔뻔함을 보이는 일본의 본모습에 대해 가감 없이 전달한 것이다.
 
  2014년 3월 26일(현지 시각) 박 전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 전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이야기해 유명해진 그 회담이다. 당시 언론에는 ‘통일’과 관련한 이야기가 주로 보도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 우리나라 소녀를 끌고 가 성노예로 삼았다”
 
2014년 3월 26일 독일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베를린 연방 총리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비공개 회동에서 박 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 관련 노골적으로 일본의 뻔뻔함을 비판했다고 한다.
  공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독일은 철저한 과거사 인정과 반성을 통해 역내 주변국들의 신뢰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독일 통일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EU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음을 높이 평가한다.”
 
  ○메르켈 총리 “과거 잘못을 저지른 독일이 다른 나라에 무엇이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유럽 통합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사를 청산했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서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앞을 바라보며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공식 회담 전 가진 비공개 면담에서는 메르켈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일본의 뻔뻔함을 비판했다고 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우리나라 소녀들을 끌고 가 성노예로 삼았다.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이 당연함에도 뻔뻔하게 모른 척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말을 들은 메르켈 총리는 깜짝 놀라며 이런 뉘앙스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박 전 대통령은 ‘성노예’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할머니들의 마음속 상처를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위안부’라는 말에는 당시 일본 정부나 일본 군대의 강제성을 감추거나 완화하기 위한 속셈이 들어 있었다. 물론 ‘성노예(sexual slave)’ 앞에 ‘강요된(enforced)’을 덧붙였다. 2012년 7월 미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모든 문서에 ‘위안부(慰安婦)’를 영어로 번역한 ‘comfort women’이란 용어를 쓰지 말고 ‘강제적인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쓰라고 지시했다.
 
  ‘위안(慰安)’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행위이며, 위안을 주는 이의 마음에 자발적인 뜻이 있어야 한다. ‘위안부’라고 불렸던 이 땅의 피해 할머니들은 그 자발성을 결단코 부인하고 고통을 증언했으며, 일본의 사과와 피해 보상을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일본군을 조금도 위로해줄 의사가 없는 여성들을 끌어다 위안소에 몰아넣고 겁박해서 쥐어짠 ‘강요된 위안’이 일본이 말하는 ‘위안’의 참모습이다.
 
 
  2015년 아베 면전서 위안부 비판 쏟아낸 메르켈
 
  한·독 정상회담 1년쯤 뒤인 2015년 3월 9일 방일한 메르켈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3월 10일 오전 11시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일본 민주당 대표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의원과 마주 앉은 메르켈 총리는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던 중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중요한데, 그러려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할 때도 “화해의 전제는 반성”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일본의 반응은 당혹감과 불쾌감으로 요약됐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소상히 쓴 일본 언론은 《아사히》 《마이니치》 등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요미우리》 ‘NHK’ 등 대부분의 언론은 안 쓰거나 “과거사도 언급했다”고 스치듯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뿐만이 아니라 해외 정상들, 특히 영국 여왕 등 여성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강제적인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쓰며 일본과 아베 전 총리를 비판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들이 말한 바로는 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은 외국 정상들은 아베 총리에게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일본이 잘못했으니, 한국과 위안부 합의를 하라는 식의 압박도 넣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아베 전 총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아베 전 총리는 앞에서는 대범하게 보이려 했지만, 뒤로는 외교라인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성노예 발언 자제를 압박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익 성향이 역대 일본 정권 중에서 가장 강한 아베와 위안부 문제의 끝을 보겠다는 전략을 밀어붙인 것이다. 2013년 취임한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11월이 돼서야 처음으로 아베 전 총리를 만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원래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며 “일본 측에서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자고 물밑 접촉을 제안해 비밀회담을 가졌고, 협상 타결이 임박해 만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과 연계, 한·일 관계 전반이 경색됐다. 이는 한·미·일 3각 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선택 범위를 좁히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먼저 위안부 협상 요청해온 日
 
2015년 10월 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대외적 성노예 발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아베 전 총리는 결단을 내렸다. 일본 측에서 먼저 협상을 요청해온 것이다. 일본이 먼저 위안부 협상을 제안한 것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전략이 통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주(駐)일본대사와 국가정보원장이던 이병기씨에게 극비로 일본 측과 접촉하라고 지시했다. 박근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당시를 이병기 전 원장이 국정원장 취임 이후인 2014년 말에서 2015년 초로 기억했다.
 
  공식 외교라인을 통해 위안부 협상을 할 경우, 일본이 자국 내 극우 여론만을 앞세운 ‘대외 여론전’을 펼칠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이 전 원장은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비밀리에 위안부 합의에 들어갔다. 비밀 협상은 엎어지고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내용은 절대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는 서울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을 추진하기로 정하면서 ▲일본 정부가 이를 위해 10억 엔(약 100억원)을 기부하고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를 발표했다.
 
  1991년 8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하면서 불거진 한·일 관계 최대 난제(難題)가 24년 만에 타결된 것이다.
 
  일본 총리가 공식으로 사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재단 출연금이 나온 것도 최초였다. 일본의 국가 예산에서 10억 엔을 받은 것은 일본의 간접적 국가 책임 인정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국가 책임이 전혀 없다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일본이 국가 예산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일본은 이 내용을 끝까지 거부했었다.
 
 
  日, “한국, 정권 바뀌면 또 딴소리할 것”
 
  마지막 도장을 찍을 때 일본 측은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또 딴소리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노무현 정권 때 1965년 양국이 맺은 청구권 협정을 검증했다며 “위안부 배상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국내에서 “정의를 실현했다”며 박수를 받았지만 바뀐 건 없었다는 지적이다.
 
  우리 측은 “그럴 일 없다”는 식으로 일축하며 일본이 거부했던 이 내용을 합의문에 넣었다. 우리 역대 정부의 위안부 협상 목표를 상당수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협상 내용 발표 후 일본의 우파 내에서는 “(자신들이) 너무 양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산토 아키코(山東昭子) 참의원 의장은 《산케이신문》에 “미국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한 언급이 없어 (불만이) 뼈에 꽂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자민당 소속의 하라다 요시아키(原田義昭) 전 환경상은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베 전 총리 소셜미디어에는 ‘국민 의사와 동떨어진 결정’ ‘종지부가 아니라 패배 역사의 시작’ ‘실망’ 등 비난 글이 쇄도했다.
 
  일본 내 반응을 보며 박 전 대통령은 나름 선전(善戰)한 협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여론이 안 좋았다. 평가가 엇갈린 것이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판 자제’ 등에 합의해준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 사항인 ‘10억 엔(약 97억원) 규모의 지원금’에 대해 “정부가 10억 엔에 우리 혼(魂)을 팔아넘긴 것이다. 10억 엔에 할머니들을 팔아넘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끌었던 정대협은 “이번 합의는 국민의 바람을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고 했다.
 
 
  확실한 여론 알아보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 전수조사 실시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한·일 양국이 한 발씩 양보하는 합의로 두 나라 관계를 정상화하는 쪽으로 물길을 돌려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기관별로 상이했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합의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위안부 할머 니들의 의견이 담긴 문건을 보면 박근혜 정부는 당시 위안부 할머니 51명 중 42명의 입장을 파악했다. 9명은 본인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42명 중 16명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반대했다. 9명이 중립, 2명이 찬성했다. 나머지 할머니들은 치매 등으로 정확한 의사를 파악하지 못했다. 16명 중 상당수가 이념 편향 ‘시민단체’ 관계자가 다녀간 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문건에 적혀 있는 관련 내용이다.
 

  <김○○ 할머니 최초 합의 소식을 접했을 당시에는 정부의 합의 내용을 수용한다고 밝히는 등 우호적인 태도였으나, 최근 들어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과 사전에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일부 아쉬움을 표현. 이에 대해 자치단체 관계자 등은, 평소 왕래가 잦은 이념 편향 단체 ‘○○○시민모임’ 이○○ 대표가 합의 발표 이후 물밑 접촉 등을 통해 왜곡된 정보 등을 제공했을 것으로 추측.
 
  김○○ 할머니 합의 발표 초기에는 ‘불만이 있어도, 나라에서 한 일을 어찌하겠느냐’는 발언 외에는 뚜렷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으나, 이념 편향 단체인 ‘○○○시민모임’의 이○○ 대표가 할머니를 방문한 이후, ‘아직 집회를 하는 할머니들의 의견도 반영했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전언.
 
  이○○ 할머니 일각에서는 합의 직후, 이념 편향 단체에서 할머니들에게 간식거리와 생필품 등을 전달했는데, 접촉 과정에서 합의 내용을 다소 왜곡 전달했을 가능성도 거론.
 
  안○○ 할머니 정대협 등이 자주 방문하는 가운데, 회담 이후 연말에 이념 편향 단체 등에서 ‘연말 위문’ 등을 내세워 방문한 사실이 있다는 전언.
 
  공○○ 할머니 이념 편향 인사들로 구성된 ‘○○○○’ 단체에서 할머니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금번 합의에 부정적 입장이라는 전언, 언론 등에서 할머니와 별도로 인터뷰하려 해도, ○○○○ 측에서 이를 통제하고 있어, 할머니의 입장 파악에 애로.>
 
 
  박근혜는 왜 직접 할머니에게 협조 구하지 않았나?
 
2015년 12월 29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신대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아온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서 한일 회담 결과를 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취재진에게 ‘일본 정부가 제기해온 소녀상 이전 요구’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복동,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
  이념 편향 시민단체가 전달하는 왜곡된 정보로 인해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피해 할머니들이 다수 발생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았음에도 왜 박 전 대통령은 피해자·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섬세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실제 박 전 대통령,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합의 전후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이들이 할머니들의 손을 붙잡고 “100% 만족하진 못하시겠지만, 현실적인 측면도 이해해달라”며 진정성 있게 협조를 구했다면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 박근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이야기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할머니 한 분 한 분을 찾아뵙고, 설명하려 했는데 본인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공개하기 싫어하는 할머니도 다수였다. 대통령이 찾아가면 공개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공개를 원하는 할머니 중에는, 이념 편향 단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분이 많았다. 대통령이 그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반대를 했을 것이다.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모습만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실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에는 자식들조차 모를 정도로 피해 사실을 숨긴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교부가 위안부 합의 전날 정대협 대표던 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합의 내용을 설명했다”며 “그런데 할머니들을 만나보니 합의 내용에 대해 미리 알고 계신 분들이 없었다”고 했다. 윤 의원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합의 내용을 알리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심이다.
 
  실제 문건에 따르면 46명의 할머니 중, 단 한 명도 합의 전 합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모두 언론 보도, 또는 이념 편향 시민단체의 설명 등을 통해 위안부 합의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이용수, 길원옥, 김복동, 이순덕 할머니 등 윤 의원이 운영한 정대협과 연관이 있는 할머니들도 윤 의원에게 위안부 합의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합의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1차장이었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윤미향 대표에게 사전 설명을 했다’는 외교부의 입장을 분명히 들은 바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외교부 당국자들도 언론에 익명 인터뷰로 ‘윤 당선자에게 사전에 합의 내용을 알렸다’ ‘윤 당선자의 반응이 괜찮았었다’고 증언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또한 “윤미향이 위안부 합의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윤 의원은 이에 대해 “합의 전날 외교부 연락은 받았지만, 핵심 내용은 빠진 채 들었다”고 했다. 이 문제는 외교부가 면담 기록을 공개하면 끝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면담 기록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2호에 따른 결정이라고 했다.
 
  해당 조항은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윤미향과 외교부 위안부 합의 관련 면담 문건 재판부에 공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성금 유용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9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스크를 쓴 채 질의하고 있다.
  외교부는 “면담 내용이 공개될 경우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비공개를 전제로 한 면담 내용이 공개되면 앞으로 다른 시민단체와 협의할 때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윤미향 면담’ 정보공개거부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장은 면담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하라고 했다. 제출일은 2021년 1월 22일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논의는 1990년 11월 설립된 정대협이 좌지우지해왔다. 1995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 시절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 발족했다. 정대협은 일본 ‘국회 입법’에 의한 ‘국가 배상’을 주장하며 수령 거절을 촉구했으나 정대협의 비타협적 노선에 대해 고 심미자 할머니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피해자들도 나왔다.
 
  문건을 분석하던 중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사기·횡령·배임 등 8가지 혐의로 기소된 윤 의원에게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이용해 9차례에 걸쳐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만들었다는 준사기(準詐欺) 혐의도 적용됐다.
 
  윤 의원과 마포 쉼터 소장 손모(사망)씨는 2017년 11월 길 할머니 계좌로 전달된 여성인권상금 1억원 중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했다. 이후 이들은 2020년 1월까지 8차례에 걸쳐 2920만원을 길 할머니가 정의연 등에 또다시 기부·증여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직접 돈을 인출한 이는 길 할머니나 그 가족이 아니었다. 손씨와 직원들이 ‘2017년 5000만원’은 길 할머니 계좌에서 자기앞수표로 인출해 정의기억재단 계좌에 입금했고 나머지도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계좌로 옮겼다는 것이다.
 
  치매 상태인 길 할머니에게는 양자인 황모 목사 등 후견인으로 세울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윤 의원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윤 의원은 “할머니의 정신적・육체적 주체성을 무시한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욕보인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윤 의원은 “인권운동가로서 할머니의 당당하고 멋진 삶이 검찰에 의해 ‘치매’로 부정당했다”며 “벗들과 함께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싶어 (동영상을) 올린다”는 글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다가 일부 삭제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과 마포 쉼터 소장 손씨는 이미 2014년부터 길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알고 있었고, 병원에 데려가 진단까지 받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길 할머니는 2014년 7월 병원에서 받은 치매선별검사에서 ‘확정적 치매’로 판단되는 19점을 받았다. 이후 2016년 7월에는 ‘사회생활 판단력 손상’에 해당하는 중증도 치매 판단을 받았다. 2018년 7월 다시 받은 치매선별검사에서는 17점을 받았고, 이는 ‘경제활동 의사 결정 불가’라는 의미다. 심신 장애 상태였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이런 검찰의 주장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월간조선》이 확보한 2016년 1월 만들어진 문건으로는 길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다음은 길 할머니 관련 문건에 나온 내용이다.
 
  <○수요집회·평화나비 등 집회에 적극 참가하면서 정부보다는 이념 편향 인사·단체들의 말을 신뢰하는 경향
 
  ○치매 초기 증상으로 말이 어눌하고, 주장에 일관성이 없으며, 가끔씩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는 전언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는 편, 일본의 배상을 원하지만, 배상금으로 개별 보상보다 전쟁범죄 피해자들에게 기부·환원을 요구>
 
  길 할머니는 당시에도 치매를 앓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치매 초기 증상으로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고 증언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1월 인터뷰 당시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인 만큼 2년 6개월 후인 2018년 7월 다시 받은 치매선별검사에서 사실상 ‘경제활동 의사 결정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부금 가져간 거 돌려달라”
 
  길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15일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개수작TV’ 영상을 통해 정의연에 낸 기부금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서 길 할머니는 며느리인 조모씨와 대화하면서 기부금에 대해 언급하며 “자손이 있는 노인네인데 저희(정의연) 맘대로 이렇게 어디다 기부하고 어디다 쓰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며느리 조씨가 “지금 법원에서 재판할 건데, 어머니 기부금 가져간 거 다시 돌려주세요, 소송하려고 하거든요”라고 하자, 길 할머니는 “그래야 한다”고 했다.
 
  조씨는 “이 영상은 올해(2020년) 8월 말이나 9월 초쯤에 찍은 것”이라며 “어머님께서 정신이 맑으실 때 대화한 내용”이라고 12월 16일 연합뉴스를 통해 말했다. 그는 이어 “어머님이 정의연에 기부한 7920만원을 돌려받고 싶으시다는 의사를 밝히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30명을 기록한 2020년 12월 13일 윤 의원은 지인들과 와인 모임을 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사진에는 ‘길 할머니 생신을 할머니 빈자리 가슴에 새기며 우리끼리 만나 축하하고 건강 기원. 꿈 이야기들 나누며 식사’란 설명을 붙였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생신을 길 할머니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 축하했다는 얘기다. 사진이 논란이 되자 윤 의원은 길 할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나눈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국민이 고통을 호소하는 이 시기에 국회의원이 ‘노(NO) 마스크’로 지인들과 와인을 즐긴 사진을 공개한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생일 주인공 없는 생일 축하 자리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생일 당사자가 없는 생일 파티가 보통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일은 아니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길 할머니의 며느리 조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이가 없다”고 했다. 그는 “어머님 생신 앞두고 정의연에서는 축하 연락이 왔으나 윤 의원 본인이나 보좌진 등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며 “더는 그 부분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文 대통령 취임 후 ‘박근혜표’ 위안부 해법 폐기
 
2018년 1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문병했다. 김 할머니는 2019년 1월 28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으로 할머니 34명과 유족들이 약 44억원을 받아 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박근혜표’ 위안부 해법을 폐기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를 ‘외교 적폐 1순위’로 낙인찍고, 외교부 내 장관 직속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아베 총리의 사과,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 엔 출연’을 골자로 하는 전(前) 정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위안부 TF는 2017년 12월 27일,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28일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를 검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골자는 내용상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이는 등 일본 쪽에 일방적으로 기운 합의였다는 것이었다.
 
  또 ▲피해자 단체 설득 ▲제3국에 소녀상 등과 같은 피해자 관련 상(像)·비(碑) 설치 문제 ▲성노예 표현 등을 둘러싸고 비(非)공개된 한·일 간 합의가 있었다고 했다.
 
  일본 측은 “정대협 등 각종 (피해자) 단체가 (합의에) 불만을 표명할 경우에 한국 정부도 이에 동조하지 않고 설득해주기 바란다”고 요구했고, 한국 측은 “관련 단체 등의 이견 표명이 있을 경우 한국 정부로서는 설득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고 한다.
 
  또 일본 측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이전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계획을 알려달라” “제3국에 위안부 관련 상(像)·비(碑)의 설치는 부적절하다”고 한 데 대해선 각각 “관련 단체와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 “제3국 석비·상 설치는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 없이 향후 한·일 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는 것이 TF 측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일본 측이 협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요구하자, 한국 측은 “이 문제에 관한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한다”고 했다고 한다. 위안부 TF는 “일본 측의 희망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며 “일본 측이 이들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면합의 아니다”
 
  이날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병세 전 장관은 위안부 TF 발표 직후 ‘이면합의’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 “비공개 부분은 합의의 핵심이 아닌 부수적 내용으로 새로운 합의라기보다는 공개된 합의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 전 장관은 취재진에게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TF가 비공개 내용이라고 한 부분은 대외적으로 공개한 내용과 다른 내용을 별도로 합의하는 ‘이면합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전 장관은 2015년 12월 당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양국 합의를 공동 발표했던 당사자다.
 
  특히 윤 전 장관은 “소녀상 문제에 관한 이면합의는 없었다”면서 “공동기자회견 내용에 포함시켜 대외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합의 이후 국회나 언론 등 다양한 계기에 설명했다. 외교협상 결과를 모두 대외 공개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 대외 비공개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외교부 민간 TF 보고서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의 복합성과 합의의 본질적 핵심적 측면보다는 절차적 감성적 요소에 중점을 둠으로써 합의를 전체로서 균형 있게 평가하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다”며 “당시 합의는 일본 정부가 그간 제시했던 어떠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보다 진전된 내용”이라고 했다.
 
  또 “외교협상의 성격상 피해 당사자 모든 분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면서 “그러나 위안부 합의의 본질적 핵심 성과에 근본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며, 대다수 분이 재단 사업에 참여한 것처럼 앞으로 사업이 진전되고 한·일 관계가 개선돼나가면서 보완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복잡한 고난도 외교협상 결과와 과정을 우리 스스로의 규정과 절차, 국제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외교부 70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민간 TF라는 형식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면서 “앞으로 우리 외교 수행 방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우리 외교관들의 고난도 외교 수행 의지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위안부 해답 못 내놓은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 엔으로 설치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 엔으로 설치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이제 관심은 ‘문재인표’ 위안부 해법이다. 현 여권은 “10억 엔에 할머니들을 팔아넘겼다” “일본의 더러운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전(前) 정부를 비난해왔다. 그러나 자신들은 어떻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법적 책임 인정을 받아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심지어 일본엔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이 “정권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국가 간의 약속은 약속”이라며 “(한국 정부는) 책임을 갖고 (합의 내용을) 이행하여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에 절대 반대 의사를 표시한 아베 전 총리를 만나지 않았다. 미국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는 아는 척을 하는 둥 마는 둥 할 정도로 철저히 무시했다.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협상을 폐기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영전하는 동안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 2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 남아 계신 분들의 평균 나이가 93세가 넘었다. 당장 몇 달 후를 장담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은 이런 걸 우려해서 위안부 합의에 사활을 건 것인데 그걸 할머니들을 10억 엔에 팔아넘겼다고 비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박근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가 한 위안부 합의를 적폐 취급하며 깎아내렸으나 정작 자신들은 지금껏 위안부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며 “할머니들은 무엇을 얻었나.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9년 6월 28일 G20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오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서 각국 정상 내외와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사카성은 1583~1589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축한 성이 원형이다. 히데요시는 이곳을 본거지로 일본을 통일한 뒤 성이 완공된 3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임진왜란으로 큰 고통을 받았던 피해국 정상이 이를 배경으로 한 촬영에 응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9년 11월 4일 오전(현지시각)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 전 환담을 하고 있다. 이 사진과 관련해 일본 측에서는 “정의용 실장이 무단으로 사진촬영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청와대 제공
  같은 해 11월 4일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가 10여 분간 환담한 것을 두고 일본 측에서 “정의용 실장이 무단으로 사진촬영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1월 8일 《산케이신문》은 1면 머리기사를 통해 “두 정상의 면담 당시 사진은 한국 측이 일본 측에 (양해 없이) 무단으로 촬영해 공개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정상 간 대화를 안팎으로 내보이려고 해, 일본 정부가 용의주도한 한국 측에 기습을 당해 한국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정상 간의 접촉부터 사진촬영, 언론 공개까지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한국이 기습했다”고 주장했다. 아베 전 총리와 동행했던 한 관계자는 “총리는 대기실에 있던 10명의 정상과 순서대로 악수했고, 마지막이 문 대통령이었다”고 이 신문에 전했다. 마지막에 있던 문 대통령이 대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는 굴욕외교식의 비판 댓글이 다수 달렸다. 석 달 전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한 문 대통령이 아베 전 총리에게 대화를 걸어 겨우 10분 이야기한 것을 홍보하기 위해 몰래 사진을 찍은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린 행위였다는 지적이다. 강성 친문 성향 네티즌들은 일본 입장에서 쓴 기사라며 기분이 좋지 않다는 황당한 비난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죽창가’를 외치며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친일’이라 외치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지적이다.
 
 
  이병기와 가까운 스가, 文의 “특히 반갑다”는 인사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에 대해서는 마치 대일 항쟁이라도 하는 양 ‘죽창가’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반일(反日)을 선동해온 문재인 정부가 최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갑자기 국정원장, 여당 의원들이 잇따라 일본으로 달려가 “평화 올림픽이 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코로나19에 지친 전 세계인을 위로하는 도쿄올림픽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너도나도 도쿄올림픽을 추켜세운다. 극성 친문들이 보면 완전한 ‘토착 왜구’다. ‘죽창 부대’가 갑자기 ‘토착 왜구’가 된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정은과 바이든을 올림픽 때 도쿄로 불러 남·북·미·일 정상 회동 이벤트를 벌인다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같은 꿈이다. 이것이 되려면 일본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일까. 문 대통령은 2020년 11월 14일 화상으로 개최된 ‘아세안+3(한·중·일)’ 화상 정상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례적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존경하는 의장님, 각국 정상 여러분. 특히 일본의 스가 총리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다자 정상외교 무대에서 처음으로 스가 총리와 함께한 것을 계기 삼아 그를 특별히 지목해 인사하며,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한 개선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이날 인사말에서 한국 등 특정 국가를 언급하진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우호적 분위기였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모르고 있는지, 모른 척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가 총리는 2017년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됐을 때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2020년 9월 21일 온라인매체 ‘겐다이비즈니스’ 기고에서 “스가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실현에 힘쓴 주일본대사를 지낸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친분이 있었다”며 “이 전 원장 체포 당시 스가 총리가 ‘한・일 관계를 위해 애쓴 친구를 교도소에 보낸 문재인 정권에 강한 분노를 느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 발언을 소개했다.
 
  스가 총리는 지난 1월 8일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스가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 관저 기자회견에서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타국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주권(主權) 면제’에 의해 이번 소송은 각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이 꿈꾸는 도쿄올림픽 때 남·북·미·일 정상 회동 이벤트는 성사가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다.
 
  외교에서는 분쟁 당사국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협상이 불가능하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 ‘불가능한 최선’과 ‘가능한 차선’ 중에서 ‘가능한 차선’을 선택했다. 이런 합의를 적폐로 몬 문재인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만 얻으려면 일본과 전쟁을 해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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