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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광주 헬기 사격설’의 출발점 ‘전일빌딩 탄흔’의 법정 검증 내막

“헬기에 탄 군인이 밤중에 창을 열고 M16을 쐈다”는 주장이 도전받다!

글 : 이지영  조갑제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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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는 광주 전일빌딩. 10층 외벽에 탄흔이 있다.(사진에서와 같은 형태의 헬기 사격이 있었던 것은 아님.)
  신문 지면의 낯익은 이름이 시선을 붙들었다. ‘이건리(李建莉)’.
 
  물증도 없이 국군을 학살범으로 단정했던 ‘5·18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이하 국방부 특조위)’ 위원장. 그의 이름이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신임 공수처장 후보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의 위원회는 과거 여러 차례 국가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찾지도 못했고, 헬기 사격을 했다는 사람도 총탄에 맞은 사람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비약적 논리 구조로 ‘5·18 당시 국군의 야만적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엄청난 결론을 도출했다. 2018년 2월 국방부 특조위 활동을 마친 그는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이제 다시 초대(初代) 공수처장 후보로 등장한 것이다.
 
  이건리의 국방부 특조위는 2017년 9월 11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특조위가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며 증거로 내세운 것은 세 가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 ▲헬기 사격의 정황 ▲무장 장착 상태로 출동했다는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
 

  이 중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22년 만에 부활한 헬기 사격설의 도화선이 됐다. 광주도시공사가 경매에 나온 전일빌딩을 매입한 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던 중 빌딩 내외에서 탄흔으로 의심되는 흔적이 발견됐고, 광주광역시는 2016년 8월 24일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다. 2017년 1월 12일 국과수가 회신한 감정 결과에는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내 탄흔은 호버링 상태(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있던 헬기의 기총소사로 인한 탄흔”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1988년 국회 광주특위 때 제기되었다가 1995년 서울지검과 국방부검찰부의 합동수사로 소멸됐던 ‘5·18 당시 계엄군의 헬리콥터가 시민을 향해 사격을 했다’는 설(說)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광주를 방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전일빌딩에 대한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국방부 특조위 조사 결과의 주요 근거가 되었으며, 광주지검이 헬기 사격을 부인한 전직 대통령을 사자(死者)명예훼손죄로 기소하는 명분이 됐다.
 
  전두환(全斗煥) 전(前) 대통령은,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해 조비오 신부와 5·18 희생자, 그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018년 5월 기소됐다. 재판은 17차례의 공판, 40여 명의 증인을 불러내며 2년 5개월 동안 첨예하게 진행됐고, 지난 10월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求刑)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는 11월 30일에 내려진다.
 
 
  국과수 감정 결과의 신뢰성 문제
 
전일빌딩 기둥과 천장, 천장 슬레이트(거울 속) 탄흔.
  언론은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를 아무런 비판 없이 사실로 받아들였다. 단정적으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됐다. 국방부 특조위는 전일빌딩을 한 차례 둘러보긴 했지만 탄흔을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다. ‘탄종(彈種)과 사격 각도 거리 관련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감정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은 기록으로 남겨 차후 국가기관에서 조사토록 조치’하고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그대로 차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감정 결과가 ‘허위’라면?
 
  전일빌딩에 대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처음으로 증거조사를 실시해 검증됐다. 재판부는 ‘법안전감정서’를 작성한 국과수 감정관 김동환 총기안전실장에게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내 탄흔의 위치와 형태, 생성 방향, 도탄(跳彈)의 흔적 등에 관한 상세한 감정을 명령하여 2020년 2월 17일 결과를 보고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2020년 6월 1일 감정인을 법정에 소환해 증인신문을 실시했다.
 
  증인신문에서 국과수 감정관은 헬기 사격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한 객관적·논리적 설명을 요구받았는데 “자신이 쏴봐서 안다”고 답했다.
 
  탄흔이라고 판정한 근거에 대해서도 “전일빌딩 내 흔적이 원뿔형 또는 원추형 함몰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탄흔도 그와 같은 함몰 형태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탄흔이라고 판정하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한편으로는 “콘크리트 벽이나 테라조 바닥에 못을 박는 등 뾰족한 물체로 충격을 가할 경우에도 탄흔과 흡사한 흔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함몰 흔적을 모두 탄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증언도 했다.
 
  그는 ‘같은 조건의 물체에 사격을 실시해서 그 흔적을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흔적과 비교해본 적’이 없고,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흔적을 탄흔도감과 비교해본 적’도 없으며, ‘실제로 탄흔으로 밝혀진 흔적의 그림이나 사진을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흔적’과 비교해본 적도 없다. ‘전일빌딩 흔적에서 화약 성분을 검출하는 등 화학적 조사’를 실시해본 적이 없으며, ‘탄흔의 생성일자를 감정’한 적이 없고, 전일빌딩 탄흔이 5·18 당시 생겼다고 판단할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 비추어” 탄흔이라고 판정했다고 증언한다. 국과수에서 객관적·실험적 조사는 실시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감정서엔 “M16 또는 M60”, 재판정에선 “알 수 없다”
 
전일빌딩 10층 천장의 탄흔분포도.
  우선 국방부 특조위의 조사결과보고서를 살펴보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일빌딩 내부에 남아 있는 탄흔의 직경과 방사형으로 펼쳐진 탄착군의 모양을 기초로 총기의 종류를 판단해볼 때 5.56mm 실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일 가능성이 높고, 7.62mm 탄을 사용하는 M60 기관총일 가능성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위 총기의 종류를 기초로 헬기의 종류와 사격방법도 함께 판단하면서, 500MD에 장착된 M134 미니건에 의한 사격 가능성은 배제하고, UH-1H의 마운트에 장착된 M60에 의한 사격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에서 명확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UH-1H에 탑승한 승무원 또는 공수부대원이 슬라이딩도어를 개방하거나 창문을 개방한 상태에서 개인화기인 M16으로 사격을 하는 경우에도 전일빌딩 내부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은 탄흔 발생이 가능하다. 결국 전일빌딩에 남겨진 탄흔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는 UH-1H 헬기가 호버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UH-1H에 탑승한 승무원 또는 공수부대원이 M16으로 전일빌딩에 사격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국과수 감정인은 재판부에 제출한 추가 감정서에서도 전일빌딩 10층 방송실의 탄흔은 “M16 소총의 가능성을 우선 추정”하고, “M134 미니건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만, “M60 기관총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M60 기관총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 이유는 ‘10층 방송실 탄흔의 분포가 방사형이고 M60 기관총은 거치형 총기이므로 방사형 탄흔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전일빌딩 10층 바닥의 탄흔분포도.
  그런데 재판부의 직접신문에서는 ‘결론적으로 무기의 종류는 알 수 없다’는 상반된 대답을 내놓는다.
 
  〈재판장: 그러니까 M16 소총의 가능성을 전제로 분석을 했더니 결국은 총기의 종류와 탄환의 종류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 증인의 감정 의견인가요?
 
  국과수 감정인: 맞습니다.〉
 
  이는 국방부 특조위가 M16에 의한 사격이라고 결론지은 것과도 상반된다.
 
 
  보이지 않는 방사형 탄흔
 
전일빌딩 10층 기둥의 탄흔분포도.
  국과수 감정인은 전두환 재판 증인신문에서 전일빌딩의 탄흔이 헬기 사격에 의한 것이라고 판정한 근거를 이렇게 말했다.
 
  〈변호인: 증인이 헬기 사격 가능성의 이유를 뭐라고 설명하셨냐면, 이 부분입니다. “전일빌딩 전면에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헬기 가능성을 추정한다.” 이렇게 밝혔는데요. 아까 탄흔도 이게 모양과 크기로 봐선 어떤 총기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고 그렇게 말씀을 하였다면 그러면 이 전일빌딩 전면에 10층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헬기 사격 가능성을 추정한 유일한 이유인가요.
 
  감정인: 탄흔의 생성 형태도 포함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고요. 패턴을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변호인: 아까 증인은 탄흔의 모양을 봐서는 어떤 총기인지 모른다고 답변하지 않았나요.
 
  감정인: 그런데 그렇게 방사형으로 쏠 수 있는 총이 어떤 게 있겠습니까?
 
  변호인: 그러면 두 가지네요? 헬기 사격의 가능성을 추정한 게 바닥에 탄흔이 존재한다는 것, 하향 탄흔이 존재한다는 것 하나, 두 번째는 그 탄흔의 형태가 방사형의 형태라는 것 둘, 그 두 가지가 헬기 사격의 근거인가요.
 
  감정인: 그렇습니다. 다른 것도 더 이야기가 될 수가 있겠지만 우선 그런 것들이 헬기 사격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요.〉
 
  감정인이 내세운 ‘방사형 탄흔’은 UH-1H의 마운트에 장착된 M60으로 사격했다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이다. 방사형이란 중앙의 한 점에서 사방으로 바큇살처럼 뻗어나간 모양을 말하는데 전일빌딩 10층 방송실의 바닥, 기둥, 천장 탄흔의 분포는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감정인은 10층 방송실에는 하향 76도에서 상향 70도 사이의, 다양한 각도의 탄흔이 존재하는데 헬기가 호버링 상태에서 상하로 이동하면서 사격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방사형은 하나의 중심에서 부채꼴을 이루는 모양이기 때문에 중심이 없으면 방사형이 이루어질 수 없다. 감정인은 중심이 상하로 이동하였다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인의 주장 자체에서도 방사형은 생성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UH-1H 조종사
  “도어건 장착 훈련, 해본 적조차 없다”

 
5·18 당시 육군의 UH-1H 헬기에는 기관총을 거치하는 마운트가 장착되지 않았다고 당시 육군 항공단 관계자들은 증언한다.
  국방부 특조위가 국과수 감정인의 감정서에 근거해 지목한 전일빌딩 헬기 사격설의 헬기 기종은 UH-1H이다. UH-1H는 수송용 헬기로 병력이나 물자를 실어나르는 용도이기 때문에 자체 무장이 없다. 총기 공격에 대비한 아무런 장치가 없고 따라서 소총 사격에도 피격될 정도로 취약하다. 실제로 1980년 5월 21일 광주시내를 정찰하던 UH-1H가 시위대의 총격을 받는 일이 있었고, 이후 UH-1H의 광주시내 저공비행이 금지됐다.
 
  UH-1H가 병력을 전투 지역 안으로 수송할 경우 헬기 출입문에 M60 기관총을 거치한 적도 있지만, 500MD 같은 공격용 헬기의 등장 후에는 자체 무장 대신 공격용 헬기의 지원을 받는 방법으로 운영 방법이 변경되었다. 500MD는 한국에 1976년 최초 도입되었고,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무장헬기인 AH-1J, 500MD와 함께 운용되었으므로 UH-1H가 마운트에 총기를 거치할 이유가 없었다.
 
  UH-1H를 운용하는 61항공단장 손승렬 대령이 진술한 “도어건을 장착한 훈련을 해본 적조차 없었다. 도어건을 장착할 경우 헬기 출입문을 닫을 수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UH-1H가 무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103항공대 이정부 중령이 1980년 5월 21일 광주비행장에서 촬영한 사진과 광주 출동 항공부대 지휘관 및 조종사들의 과거 진술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나 있다.
 

  “제가 79년 1월에 61비행단에 단장으로 부임하였는데 그 이후 제가 80년 6월 초순 전역할 때까지 한 번도 도어건을 장착하여 사격하는 훈련이나 실제 상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교리상 무장헬기가 발전된 이후로는 수송용 헬기인 휴이(UH-1H)에 도어건을 장착하여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필요시에는 무장헬기의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61항공단장 손승렬 대령)
 
  “UH-1H는 동체는 기관총을 부착하지 않고 출입문이 있는 부분에 마운트라는 부품에 M60 기관총(도어건)을 부착하여 사수가 사격을 할 수 있는데, 당시 제가 직접 본 바에 따르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관총으로 무장하는 것을 본 일은 없습니다.”(506항공대대장 김동근 중령)
 
  “당시 제가 광주에 내려갔을 때 본 바로는 휴이는 일절 기관총으로 무장한 사실이 없습니다. 5월 21일 당시 광주비행장에 있던 UH-1H의 전경을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사진에도 M60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필요하시다면 그로부터 사진을 입수하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31항공단장 방영제 대령)
 
  “UH-1H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체가 아니라 출입문 위에 있는 위치에 마운트라는 부품에 M60 기관총(도어건)을 부착하여 사수가 사격을 할 수 있는데 휴이를 처음 보낼 때는 광주에서 사격이 있지도 않았으며 병력 기동을 위해 보낸 것이기 때문에 일절 기관총으로 무장한 사실이 없었고, 그 후에 무장헬기를 내려보낸 사실이 있지만 휴이는 무장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시사저널》 95년 4월20일자를 보면 광주시내에서 비행 중인 휴이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을 보더라도 휴이가 도어건을 장착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됩니다(도어건은 출입문 양쪽으로 다 장착을 하는 것임).”(1항공여단장 송진원 준장)
 
 
  헬기 조종사 “사격 위해 문 열면 추락 가능성… 창문 개폐 불가”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내부.
  국방부 특조위의 결론대로라면 UH-1H 헬기에 M16을 가진 군인이 타고 슬라이딩도어 또는 창문을 연 상태에서 쏴야 하는데, 이 역시 조종사들은 극구 부정한다. 또 다른 과거 증언을 살펴보자.
 
  〈문(검사): 결론적으로 광주에서 휴이(UH-1H)에 의한 공중 사격이 일절 없었다는 말인가요?
 
  답: 그렇습니다. 사격을 위해 문을 열면 불균형한 풍압 때문에 헬기가 균형을 상실할 우려가 있고 병력이 추락 가능성이 있어 조종사들이 결코 그와 같은 행동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어건에 의한 사격도 실제로는 거의 착륙하는 순간과 같이 극히 속도를 감속한 이후에나 하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휴이의 경우 위험요소가 많아 착륙 시와 같은 극단적인 저속 상태가 아닌 정상 비행 중에는 헬기 문을 열지를 않습니다.
 
  문: 휴이의 창문은 개폐가 가능한 것인가요?
 
  답: 추락과 같은 비상시에는 창문 유리가 떨어지도록 되어 있지만 일반 창문처럼 여닫을 수 없도록 고정되어 있습니다.(61항공단장 손승렬 대령)〉
 
  창문을 열 수도 없게 되어 있는데 비행 중에 군인이 창문을 열고 쏘았다니!
 
  국방부 특조위에서 조사받던 조종사는 격노했다.
 
  “내가 조종사인데, 내가 비행기 몰고 다니는데 내 뒤에서 앉아 있는 놈들이 내 명령 없이 총 쏘게, 당신이 조종사라면 그걸 놔두겠어? 내가 비행기 몰고 가는데 내 명령 없이 뒤에서 졸병 새끼가 총 쏜다고? 그건 내려서 내가 쏴버리지. 그건 누가 말을 만들어도 비슷하게 만들어야지.”(506항공대대 작전과장 최민익 소령)
 
  법정에서 헬기 탑승 M16 사격설은 힘을 잃었다.
 
 
  “탄흔 생성 방향 알 수 없지만 창밖에서 쏜 것”
 
  국과수 감정인이 헬기 사격을 추정한 사실상 유일한 논거는 전일빌딩 10층 바닥 탄흔의 탄도다. ‘10층 바닥 탄흔은 하향(下向) 탄도에 의한 탄흔인데, 전일빌딩 주변에는 10층보다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에 헬기 사격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감정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감정서를 본다.
 
  〈원칙적으로는 ‘분화구상 탄환의 끝부분이 충격한 위치의 방향성’을 보고 탄흔의 생성 방향을 구분할 수 있으나, 전일빌딩 10층 바닥은 작은 돌멩이가 대리석에 붙어 있는 테라조로 시공되었는데 여기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돌멩이 모양에 따라 탄흔이 생기기 때문에 탄흔의 생성 방향을 판단할 수 없다.〉
 
  바닥의 하향 탄흔 생성은 총알이 건물 외부에서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왔을 경우와 10층 방송실 출입문에서 창문 쪽으로 발사했을 경우로 상정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인은 “탄도의 생성 방향을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출입문에서 창문 쪽으로 발생했을 경우는 배제하고 ‘창문 밖에서 실내로 들어온 탄흔’이라는 것을 전제로 논거를 세웠다.
 
  전두환 측 변호인은 반박했다.
 
  “감정인의 감정 결과에 의하면 전일빌딩 10층 바닥에는 91개의 탄흔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격은 창문과 출입문 둘 중의 한 곳에서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테라조 바닥의 함몰의 형태가 일정하지는 아니하다 하더라도 91개의 탄흔을 조사하면 적어도 둘 중의 하나, 즉 창문 방향인지 출입문 방향인지 여부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화구의 형태만으로는 방향성을 알 수 없다는 해명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변명입니다.”
 
  감정인은 또 창틀·바닥의 일직선 탄흔, 기둥·바닥의 일직선 탄흔이 창밖에서 들어온 흔적이라고 감정했다. 창틀과 기둥에 1차 탄흔을 생성하고 바닥에 2차 탄흔을 만들었다는 판단이다.
 
  변호인은 탄환이 바위나 대나무 등의 딱딱한 물체에 부딪쳐 탄도를 이탈하는 ‘도탄 현상’으로 감정인 논거의 오류를 지적했다.
 
  “도탄은 발사체의 속도, 재질, 표적 입사각도와 출동하는 물체의 재질 등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튕겨져 나갑니다. 탄환은 단단한 물체에 충격하여 도탄이 될 경우에는 입사각과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기 때문에 절대로 직진할 수는 없습니다. 창틀과 기둥은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단한 물체에 해당합니다.”
 
 
  헬기에선 불가능한 상향사격 탄도의 발견
 
전두환 변호인 측이 전일빌딩 10층 천장 위 슬레이트에 상향사격할 경우 빌딩과 사격 지점 간 이격 거리 측정을 위해 그린 도면.
  전일빌딩 10층 내부 기둥, 천장, 천장 위 슬레이트에서는 수십 개의 상향사격에 의한 탄흔도 발견됐다. 그중 창문에 가장 근접한 탄흔의 탄도는 수직에 가까운 것으로, 국과수 감정인은 재판부에 제출한 추가 감정서에서 70도의 상향탄도로 기록했다.
 
  전일빌딩 10층 천장에 상향사격을 하려면 헬기는 10층보다 낮게 날아야 한다.
 
  전두환 측 변호인은 “헬기 고도를 전일빌딩 5층 높이(13.4m)로 전제했을 때 70도의 상향사격이 가능한 사격 지점과 전일빌딩 간의 이격 거리를 측정하면 6.4m에 불과하다. UH-1H의 헬기 블레이드만 해도 10m가 넘기 때문에 이런 근접 비행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반론을 폈다. 오히려 이 상향탄흔의 존재가 헬기 사격이 없었음을 보여준 셈이다.
 
  국과수 감정인은 ‘고도를 내릴 수도 있지만 같은 고도에서 동체의 기울기를 조절하면 상향탄도를 만들 수 있다’는 논지로 증언했다. 하지만 평생 UH-1H 헬기를 조종했고, 월남전에 두 차례 참전하였으며, 육군항공여단장을 역임한 백성묵 장군의 증언은 다르다. UH-1H가 호버링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비스듬하게 기울게 되면 실속(失速)하여 추락한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헬기는 블레이드의 회전을 통해 공기를 아래로 내뿜어 양력을 얻어 비행한다. 그런데 헬기를 기울이면 이 양력이 소멸해 추락하게 된다. 따라서 국과수 감정인의 증언처럼 헬기 동체를 기울여 상향탄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상향사격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국방부 특조위는 상향탄흔에 대해서는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감정인의 증언에 따르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외벽에는 탄흔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이 10여 개, 실내에는 213개가 있다고 한다.
 
  5·18 때 203항공대장이었던 백성묵 장군은 “만약 UH-1H 헬기에 장착된 M60 기관총으로 10층 방송실을 향하여 사격하였다면 90%는 전일빌딩 외벽에 맞았을 것이고, 실내로 들어간 실탄은 10%가 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과수 감정 결과와 반대되는 증언을 했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에서도 5·18 당시 505부대 헬기 조종사인 이병욱 대위는 “(헬기 사격으로는 전일빌딩 탄흔 분포 같은) 그런 피탄 흔적은 나올 수가 없다. 이런 것은 시험을 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직접 사격을 해보고 피탄이 어떻게 흩어지는지를 보여줘야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기둥에 한 발이 맞을까 말까 하는 것이 정상이다. 힘들다. 10층 전체에 퍼지거나 7층에서 10층까지 전 지역에 피탄 흔적이 발견되어야 설명이 된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에 소수의견을 낸 최해필 장군(전 육군항공작전사령관)도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전일빌딩의 탄흔에 관해서도 높은 빌딩에 남아 있는 탄흔이라고 하는 이유만으로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라고 주장하기에는 그 탄흔의 밀집도가 아주 조밀하여 헬기 사격 시 발생한 탄흔이 그렇게 밀집될 수가 없기에 반드시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전일빌딩 외벽 전체가 아닌 10층 실내에서만 집중적으로 발견된 탄흔은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건데,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정밀 사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야음 속에서 야간 사격장비 없이 95% 명중률?
 
  국방부 특조위는 정황증거상 “계엄군의 상무충정작전에 참가한 UH-1H 헬기는 1980년 5월 27일 03시30분쯤 전일빌딩 옥상에 LMG(기관총)가 있다는 첩보에 따라 이를 무력화하고 같은 빌딩 내부에 있는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하여 M60 또는 M16 총기를 사용하여 전일빌딩을 향하여 사격을 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측 변호인은 허점을 찔렀다.
 
  “계엄군 특공조가 상무충정작전에 따라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에 진입한 것은 1980년 5월 27일 04시 정각이고, 특히 전일빌딩에 대한 작전은 같은 날 04시40분에 진입 완료로 작전을 종료하였습니다. 광주광역시의 1980년 5월 27일 일출시간은 05시21분이므로 계엄군 특공조가 도청이나 전일빌딩에 진입한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5·18 당시 UH-1H 헬기에는 야간 비행장치나 야간 사격장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컴컴한 어둠 속, 흔들리는 헬기에서 야간 사격장비의 도움도 없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을 향하여 사격해 10층 방송실 외벽에는 10여 개 남짓의 탄흔만 남기고 214발의 탄환을 실내로 명중시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국방부 특조위의 주장에 따르면 UH-1H는 전일빌딩 옥상의 기관총을 제거하기 위해 헬기 사격을 한 것이므로 옥상에서도 다수의 탄흔이 발견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방부 특조위가 신봉하는 국과수 감정인은 옥상에서는 탄흔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모래 위에 쌓은 ‘헬기 사격설’
 
  ‘용납할 수 없는 반(反)인륜적 범죄행위’ ‘대량살상’ ‘학살’ ‘소탕’…. 국방부 특조위가 국군이 국민을 향해 헬기 기총소사를 했다며 내뱉은 말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정말 있었나?
 
  5·18 당시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들은 30여 년 동안 일관되게 “무장한 채 출동했지만 한 번도 쏘지 않았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해왔다. 국방부 특조위는 이들의 증언이 무장헬기 출동을 시인한 것이라면서 “무장한 헬기가 출동했으므로 헬기 사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비약적 논리구조를 만들어냈다. 구름이 끼었으므로 반드시 비가 왔다는 식의 억지가 국가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구두로 헬기 사격을 지시하는 상관에게 “사격 못 한다”고 대들고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힐난을 들으면서도 정식 서면 명령서를 요구하며 끝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헬기 조종사들의 영웅적 행동은 ‘구두 명령’에만 방점이 찍혀 “명령이 있었으므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논리 왜곡에 희생됐다.
 
  국방부 특조위가 전일빌딩 헬기 사격의 근거로 삼았던 국과수 감정 결과는 바닥 탄흔의 방향이나, 과학적으로 바닥의 탄흔이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올 수 있는지 여부, 호버링하는 헬기에서 감정인이 추정하는 하향 또는 상향 탄도의 사격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전혀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 국과수 감정인은 재판장의 심문에 감정서와 상충하는 대답을 했고, 헬기 사격 결론을 도출할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제시할 수 없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탄흔을 감정했다고 강변했다.
 
  이런 허술한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국방부 특조위는 “(국군이) 대량 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를 했고 이는 “집단살해 내지 양민학살의 의미”를 갖는다고 단정했다. 헬기 기총소사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고, 단 한 개의 헬기 기관총 탄피도 제시되지 못했다. 과거 국가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는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뿐이다. 때문에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무너지면 22년 만에 극적으로 부활한 헬기 사격설의 망령도 소멸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감정서가 전두환 재판에서 긍정될 것인지, 부정될 것인지이다.
 
 
  ‘악의적 왜곡, 날조’는 누가 하고 있나?
 
2018년 2월 7일 헬기 사격설을 공식 발표한 이건리 5·18 특별조사위원장은 최근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조선DB
  2020년 10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 ‘5·18특별법’ 제정을 확정했다. 만장일치였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 왜곡, 날조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7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고 5·18 진상조사위 활동은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며 직원도 현재 50명에서 70명으로 늘린다’는 게 골자다. ‘5·18 진압에 가담한 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언제든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합동으로 5·18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헬기 사격설은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 결정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치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5·18 사건을 재수사했지만,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적 차원의 조사에서 수차례 부정된 헬기 사격설을 부실한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법안전감정서에 의존해 뒤집었다. ‘악의적 왜곡, 날조’는 누가 하고 있나?
 
  헬기 사격은 국방부 특조위 주장처럼 자위권 차원을 넘어 ‘국군에 의한 국민 학살’을 뜻한다. 국가 정체성과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국방부가 이런 중대한 사안을 객관적 증거도 없이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발표하고, 아무런 반론도 없이 국가적 사실로 인정되어가고 있다. 집권 여당은 더 나아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처벌하겠다고까지 나섰다. 거짓말을 비판하면 감옥에 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역사는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된다’는 걸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념전쟁은 독재 권력의 전조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적어도 역사 교육에서는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권력으로 밀어붙여 없었던 헬기 사격을 있었던 것으로 조작한다면, 한국은 전체주의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그런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하느님도 과거를 바꿀 수 없는데 법률 기술자들이 과거를 창조하는 재주를 부릴지 전두환 재판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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