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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중국 교과서에 실린 ‘6·25전쟁’ 왜곡

“미국이 한반도 내정 간섭을 위해 出兵했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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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을 한국 內戰으로 표현
⊙ 미국 침략자들의 정의에 타격을 준 사건
⊙ 중국 인민공화국의 국제 위상이 높아졌다며 자화자찬
  미중(美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 차례 무역전쟁으로 거세게 맞붙은 양국은 코로나19(우한폐렴) 팬데믹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일각에서는 미중 간 ‘신(新) 냉전 시대’가 왔다고 본다. 중국은 양국의 냉랭해진 관계를 미국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지난 5월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미국의 일부 정치 세력이 중미 관계를 이른바 ‘신냉전’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이런 위험한 방법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양국 국민이 다년간 쌓은 협력 성과를 망칠 뿐 아니라 미국 자신의 발전을 해친다”며 “충돌과 대항 대신 상호 존중의 ‘윈‐윈(Win-Win)’ 정신으로 미국과 안정적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중국은 주권(主權)과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반드시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은 중국의 제스처일 뿐, 그 속내는 이 모든 긴장은 미국 때문에 생겼으며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갈등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다.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6·25
 
  중국이 사실을 정반대로 해석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자국(自國)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월간조선》이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으로부터 제공받은 《보통고등학교 표준 역사 교과서, 중국근현대사》와 《중국근현대사 개요》를 분석했다.
 
  중국의 고등학생들 학습 교재인 《보통고등학교 표준 역사 교과서, 중국근현대사》는 과정교재연구소가 집필했고, 인민교육출판사가 출간했다. 교과서는 ‘6·25전쟁’(128페이지)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
 
  1950년 6월, 조선 내전(內戰)이 폭발했다. 미국은 조선 내정 간섭을 위해 출병했다. 미국군 위주로 구성된 소위 연합국군(聯合國軍)은 38선을 넘어 전쟁의 불길을 중국 압록강변까지 태워왔다. 미국의 전투기는 중국 영토를 침입하여 중국 동북 국경 지역에 폭탄을 투하했고, (미국) 군함은 타이완 해협으로 왔다. 미국의 침략 활동은 중국의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것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지칭)은 중국 정부에 출병(出兵) 원조를 요청해왔다. 미국의 원조에 대항하기 위해 또 우리의 국가와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1950년 10월, 펑더화이(彭德怀) 중국 사령관이 조선을 넘어 조선 주민과 함께 미국 침략자들에게 공동으로 저항했다.
 
  미국은 감히 중국이 출병, 참전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연합국군의 맥아더 총사령관은 2주 내에 전쟁을 끝내고 미국에서 성탄절을 보내기 원했다. 하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 들어오고, 적군에게 예상치 못한 타격을 주었다.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군은 함께 전쟁하여 미국군을 38선 부근까지 몰아 돌려보냈다. 이후 중조군민(중국·북한 군인과 민간인)과 미군은 전쟁 겨루기를 반복했다.
 
  중국인민지원군들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졌고 항미원조 전쟁 중에 눈물과 노래로 기릴 만한 영웅들이 많이 솟아 나왔다. ‘죽음을 불사하고 사수하는 것을 명령으로 받드는 ‘강치롄(鋼七連)’ 연대는 자신의 몸으로 적군 기관총구를 막아냈다. 또 이들은 군율(軍律)을 엄격히 지켰는데 자신이 불에 탈지언정 적에게 목표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 예다.
 
  중조군민의 용감한 전투로 인해서 1953년 7월 미국은 어쩔 수 없이 휴전협정에 사인했고, 중국인민지원군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항미 전쟁의 승리는 미국의 군대가 가진 ‘미국 불패(不敗)’라는 승리의 신화를 깬 것과 더불어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위상을 높여준 사건이며, 중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 혁명을 부흥시키는 데, 안전한 발판을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침략을 미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내전’이라는 해석
 
미국 육군 ROTC 후보생 10명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2012년 5월 30일 오전 궂은비 속에서도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용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들 중 니콜라스 커스포스(Nicholas Cutsforth), 애런 펠링(Aaron Felling), 이반 윌리엄 글라스(Evan William Glass) 등 3명은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손자다.
  중국이 바라보는 큰 맥락은 “6·25전쟁은 한국에서 일어난 내전인데 미국이 이에 간섭하고자 전쟁에 개입했고, 중국은 북한이 도와달라고 요청해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첫 제목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문구까지 중국의 미국에 대한 반감, 한국 역사에 대한 왜곡으로 점철돼 있다. ‘팩트 왜곡’과 ‘자의적(恣意的) 해석’이 눈에 띈다.
 
  중국 역사 교과서의 가장 큰 왜곡은 6·25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한 부분이다. 내전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서로 다른 계급 또는 계급동맹군 간의 무력 투쟁이다. 피지배 계급이 무장반란을 통해 정치권력을 탈취하는 등의 행동이다. 또 하나는 동일 계급 내의 두 분파 간에 일어나는 무력 투쟁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북한의 남한에 대한 침략전이었다.
 
  김광동 박사의 얘기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시각은 한 민족이 해방되지 않은 다른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으로 보는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이유는 아직 해방되지 못한 남한을 해방하고자 전쟁을 했다는 것, 곧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겁니다. 고로 전쟁이 침략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따라 강탈된 상태에 있는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남침이 불가피했으며, 6·25전쟁을 ‘정의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시각입니다. 북한의 침략 전쟁을 미화시키고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 내전이라고 규정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부적절하게 보는 것입니까.
 
  “내전은 제3자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어떤 국가의 침략에 의해 보편가치, 자유, 민주, 인권이 다른 국가에 의해 유린당할 때 다른 국가가 그 나라를 지원하거나 도울 수 있는 것이 유엔(UN) 헌장입니다. 그런데 6·25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하면, 유엔군이든 미국, 제3의 국가가 참전한 것은 내전 국가에 간섭한 것이 됩니다. 그 국가가 치르는 전쟁에 제3자가 개입한 것으로, 따라서 그 제3자의 침략 행위로 여깁니다. 북한의 남한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고,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 등 유엔군의 참전을 침략 행위로 보는 것입니다.”
 
 
  노무현·강정구·이재정·문재인은 같은 선상에서 6·25 바라봐
 
  6·25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좌파 시각은 2000년 중반부터 논란거리였다.
 
  고(故) 노무현(盧武鉉) 전(前) 대통령은 지난 2006년에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 자리에서 “우리가 옛날에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왔는데 대통령이 돼서 보니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6·25전쟁 전문가들은 이 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주로 북한과 일부 좌파 성향 학자의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청와대는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음 달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6·25를 ‘전면적 내전’이라고 표현했다.
 
  좌파들의 수위는 이즈음 더욱 높아졌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2005년 신문 기고문에서 “6·25전쟁은 내전이나 통일 전쟁이며, 전쟁 주범은 미국과 주한미군”이라고 표현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6·25를 남침, 북침 중 하나로 규정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한술 더 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나는 전쟁 중에 피란처에서 태어났다.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6·25전쟁’이 내전인지, 북한의 침략전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료를 통해 사실로 입증된 상태다. 전통주의 시각에서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공격적, 팽창주의적인 대외 정책과 김일성의 대남(對南) 적화 야욕이 불러일으킨 북한의 침략전이다. 흐루쇼프 회고록은 이를 자세히 뒷받침한다. 회고록에는 “김일성이 도발한 전쟁이며, 스탈린도 김일성이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의 김일성과 박헌영은 1949년 3월 두 차례 모스크바를 방문해 ‘미군이 개입하기 3일 전에 남한을 점령할 수 있고, 남한 내에서 인민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스탈린을 설득했고, 중국공산당으로부터 5만명의 조선의용군을 지원받은 것으로 적시돼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의 첫 문장에 버젓이 ‘조선 내전’이라고 적시한 것이다. 또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해 스스로 수정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6·25전쟁을 재평가하며 ‘내전’이라고 규정했는데, 중국 교과서가 이와 같은 시각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엔군’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어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중국 교과서에서 6·25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함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를 간섭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국가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7함대가 타이완해협으로 온 것은 중국의 안전을 위협한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중국 교과서에는 6·25전쟁 참전국을 ‘미국군 위주로 구성된 연합국군’이라고 칭한다.
 
  중국 교과서는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이라고 스스로 표현)이 6·25전쟁에 계획적으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도움을 청해 한반도로 출정했다”고 기술했다. 북한이 중국에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으면 자신들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의 얘기다.
 
  “1950년에 북한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중공군 3, 4사단 등 3개 이상의 사단이 이미 조직돼 있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세계 공산주의 확장 논리에 따라 1949년부터 전쟁을 준비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김일성은 빨치산 정찰 부대 출신으로 전차부대, 야크기, 사단 등 전투부대를 지휘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상 김일성이 아니라 중국이 주도한 전쟁으로 봐야 합니다. 한반도 점령의 주력 부대는 중공군이었습니다. 1945년을 전후해 파시즘적 전체주의가 패배한 이후에 공산주의적 전체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했습니다. 6·25전쟁은 북한의 침략 전쟁이면서, 공산주의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대한 제국주의적 확장 전쟁인데 이를 교과서에서 왜곡하고 있습니다.”
 
  중국 교과서에서 기술한 ‘미국이 내전에 간섭하고자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드러난 유엔군과 중공군의 개입 시점만 봐도 허위라는 것이 명백하다. 김일성이 전쟁을 계획하고, 스탈린이 승인했으며, 마오쩌둥이 지원키로 한 것이 전쟁 이전이었던 반면, 미군 등 유엔군의 개입은 전쟁 발발 이후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회원국에 대한민국 원조를 권고한 것은 1950년 6월 27일이었고,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벌인 것은 1950년 9월 15일이었다. 김광동 박사는 “유엔군 참전이 확정되자마자 중국 전역에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부대 이동이 시작됐다. 미군 참전 이전부터 참전이 결정돼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용 교재에는 역사 왜곡과 함께 자화자찬 가득
 
  중국 대학생 인문교육용으로 사용하는 《중국근현대사 개요》(2018)의 내용도 비슷하다. 부제가 ‘마르크스 이론 연구와 건설공정 중점교재’라고 된 이 책은 고등교육출판사에서 펴냈다.
 
  〈1950년 6월, 조선 전쟁이 폭발했다. 미국은 남조선에 무장 원조를 해줄 것을 선포했고, 그와 동시에 해군 7함대에 타이완해협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미국은 (중국의) 타이완으로의 어떤 진격도 저지했다. 이것은 공공연히 중국 내정에 간섭한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군대를 끌고 압록강변까지 포격하면서 도달했을 때, 미국의 원조에 대항하기 위해 결책을 발의했다. 펑더화이 중국 정치위원 겸 인민군 사령관이 1950년 10월에 조선을 넘어 전쟁했다. 미국 침략군은 38선 부근까지 후퇴했다. 그와 동시에 중국 내에서는 열렬한 항미원조운동이 발발했다. 나라를 위하고, 집을 지키자는 항미운동이었다.
 
  그 후 중조(중국과 조선)는 아주 고생스런 전투와 투쟁 담판을 거쳤고 마침내 1953년 7월, 미국 대표가 휴전협정 사인을 하도록 압박했다. 클라크 미국 장군은 회고록에서 비탄해하며 “나는 부끄러운 명성을 얻었고, 승리를 하지 못하고 휴전협정에 사인을 하게 된 사령관이다”고 글을 남겼다.
 
  항미원조전쟁은 미국 침략자들의 정의에 타격을 준 사건이었고, 신(新)중국의 국위와 인민군대의 군위를 격상시킨 전쟁이었다. 또 약자가 강자에게 승리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례가 됐다. 중국 장군들은 상대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준비해 죽음을 불사하는 전쟁을 했고, 양건쓰(楊根思), 황지광(黃繼光), 쥐사오윈(聚少云) 등 30만명의 영웅과 6000개가 넘는 공신집체(功臣集體)가 나왔다.
 
  이 전쟁의 승리는 조선을 지원해줬던 것뿐 아니라, 중국 국가의 안전을 보위한 것이고, 더불어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한 사건이었다. 또 이 승리는 힘있게 미국 군대의 불패 신화를 무너뜨린 것이었다. 서양 침략자들은 몇백 년 동안 동방 해안에서 몇 번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국가를 침략했는데, 그런 시대가 더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남겼다.
 
  마오쩌둥은 “우리는 그들(침략자)과 33개월 동안 전쟁을 했고, 미국의 제국주의는 더는 겁낼 상대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일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대단한 경험을 얻은 것이다.
 
  중국 인민들의 이 승리로 인해 민족 자신감과 자부심이 증대됐고, 일부 제국주의에 대해 공포심과 몽상을 가졌던 사람들은 깊은 교훈을 얻고 자각했다. 전 세계가 중국을 괄목상대하고, 신중국의 국제 위상이 재고됐다.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는 가볍게 중국을 침범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제 건설과 사회 혁명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환경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지원한다는 ‘항미원조’
 
중국의 고등학생 학습 교재인 《보통고등학교 표준 역사 교과서, 중국근현대사》에 실린 지도. 중공군 참전 이후의 그림만 삽입해 설명했다.
  중국의 대학생용 교재에 적시한 6·25전쟁 내용 또한 고등학생용(用) 교과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교과서에는 중공군이 전쟁에서 얼마나 위상을 드높였는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는지에 대한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이 많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이 교과서는 미국이 휴전협정에 서명하게 된 계기는 중공군이 용감하게 전투를 벌여서 미국을 압박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마오쩌둥의 말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는 더는 겁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에 얻은 교훈”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과거에 약했던 중공군이 세계 최강국 미국에 대항해 싸운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역사책 제목인 ‘항미원조’라는 단어에서부터 알 수 있다.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북한)을 지원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6·25에 참전하며 내세운 ‘항미원조 보가위국(抗抗援朝 保家衛國)’이라는 구호를 버젓이 영화에도 사용한 적이 있다.
 
  2016년에 개봉한 〈마이워: 아적전쟁(我的戰爭)〉은 6·25전쟁을 왜곡해 비판을 받은 전쟁 영화다. 영화는 “1950년 6월 25일 조선반도에서 내전이 일어난다. 안보리를 조종해 ‘유엔군’을 구성한 미군이 참전했다. 미국은 조선내전에 개입하는 동시에 타이완해협에 7함대를 보내 중국 통일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공개되고 중국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영화에 나오는 노인들이 ‘한국이 친숙하다. 십수 년 전에 우리는 인공기를 들고 한국에 왔었으며, 그 당시에는 서울이 아닌 한성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없지만, 역겨운 영화 홍보 영상”이라고 보도했다. 영화는 특유의 픽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십분 이해한다고 쳐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를 왜곡한 것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미국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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