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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 前 교수의 치열한 법정 투쟁

인세가 ‘뒷돈’?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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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전 교수 측 공판 자료로 본 기업인과 학자, 그리고 돈이 얽힌 사건
⊙ 實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N사의 업무 범위, 부정한 청탁인지가 핵심 쟁점
⊙ 김명호 교수는 인세로 받은 돈 32억원에 대한 세금 11억원을 낸 상태였다
⊙ “N사가 출판·인쇄 등 全 과정 도맡아… (N사의) 인세 지급 정당”
⊙ 재판부가 판시한 ‘부정한 청탁’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들
⊙ 김명호 “추징금 안 내는 사람 많지만, 다 낼 것… 이미 절반 납부”
  지난 2월 흥미로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4년여간 받은 인세 32억원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代價)라며 그 인세만큼 추징금을 물린 사건이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며 사건 당사자가 ‘뒷돈을 챙겼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 보도만 보면 마치 피고가 부당한 돈을 받아 챙긴 듯 보인다.
 
  이 판결로 ‘피고인’ 신분에서 ‘파렴치범’으로 몰렸다고 항변하는 이는 김명호(金明壕·72)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다. 김명호 교수는 《중국인 이야기(전 7권)》의 저자로,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외에도 중국 관련 각종 서적을 저술해와 중국 역사 및 중국학의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김명호 전 교수는 지인(知人)이 운영하는 출판 및 인쇄업체 N사(대표 신○○)로부터 32억5600여만원의 돈을 수수한 혐의로 배임수재,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위반(특가법 위반) 횡령, 배임증재(增財)가 적용됐다.
 
  지난 2월 13일 대법원(주심 이동원 대법관)은 김 전 교수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32억5652만원을 명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어느 사건이 그러하듯 이 역시 재판 내내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한쪽은 받은 돈을 ‘인세’로, 다른 한쪽은 ‘뒷돈’이라 주장하며 극명하게 엇갈렸다. 동시에 재벌과 학자, 그리고 돈이 얽힌 사건이란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公益 목적으로 발간한 역사 서적들
 
김명호 전 교수가 집필해 ‘이중근’ 이름으로 출간한 ‘역사서적’들. 사진=수사기록 캡처
  2012년 ㈜부영의 고문으로 위촉된 김명호 전 교수는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과 뜻이 맞아 6·25전쟁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 그가 저술에 관여한 책은 2013년 8월 출간된 《6·25전쟁 1129일》이다. 이 책은 6·25전쟁을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한 1049쪽짜리 대형 ‘양장본’이다. 책 표지에는 ‘편저 이중근, 주간 김명호, 펴낸곳 우정문고’로 적혀 있다. ‘이중근’은 부영그룹의 회장이며 ‘우정문고’는 부영그룹이 설립한 출판 법인이다.
 
  이로부터 1년3개월 뒤인 2014년 《6·25전쟁 1129일》 ‘요약본’을 내게 된다. 이중근 회장이 김 전 교수에게 ‘양장본 《6·25전쟁 1129일》이 부피가 너무 커 일반인들이 소장하고 읽기 불편하니 요약본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김명호 전 교수는 ‘양장본’과 ‘요약본’ 외에도 《Korean War 1129(영문판)》 《광복 1775일(3권)》 《미명 36년 12,768일(5권)》 《여명 135년 48,701일(5권)》 《우정체로 쓴 조선개국 385년(10권)》 등을 발간하면서 원고를 생산했다.(이하 이 서적들을 ‘역사서적’이라고 한다.)
 
  이 역사서적 모두 ‘양장본’과 마찬가지로 ‘편저 이중근, 주간 김명호, 펴낸곳 우정문고’로 발간됐다. 이런 식으로 김 전 교수가 만든 역사서적은 총 30권, 1만6427페이지로 총 발간 부수는 약 1000만 부에 달한다. 이중근 회장은 이 역사서적 전량을 도서관과 공공기관 등에 무료로 기증했다.
 
  역설적으로 이는 사정 당국의 의심을 샀다. 2018년 초 검찰이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이 건 역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국내 출판 현실상 ‘믿기 어려운 천문학적 수량’의 책을 대량으로 발간·배포하며 소요된 출판 및 인쇄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N사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N사가 이 출판물들의 편집·인쇄 전 과정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N사 대표 신모(70)씨도 이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평소 알고 있던 N사를 부영그룹 측에 소개한 것을 ‘부정한 청탁’으로 본 것이다. 즉 N사가 김 전 교수에게 지급한 인세를 부영그룹이 발간하는 각종 역사서적이 자사(自社)를 통해 계속 출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가로 본 것이다.
 
 
  사건의 핵심 쟁점 요약
 
  사건의 핵심 쟁점은 ▲김명호 전 교수가 출간에 관여한 역사서적들의 실(實)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여부 ▲N사의 업무 범위(출판 업무까지인지 인쇄 업무만인지) ▲부정한 청탁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저작권자와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이중근 회장으로 본 반면, 2심 재판부는 김명호 전 교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N사의 업무범위에 대해 1심 재판부는 N사를 인쇄업체로 봤다. 2심은 이 부분에 대해 판단을 유보했다. 통상 인세는 출판사가 저자에게 지급한다. 1심 재판부는 N사가 출판사가 아닌 인쇄업체이고, 실제 저자가 이중근 회장이므로 김 전 교수에게 인세를 지급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부정한 청탁이라는 근거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앞서 언급했듯 인쇄업체인 N사가 김명호 전 교수에게 인세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인쇄업체가 김 전 교수에게 인세를 지급한 게 출판사가 지급하는 통상의 경우와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2심 재판부도 N사의 인세 지급을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인세가 청탁의 대가였다고 한다면, 인세를 지급한 N사와 인세를 받은 김명호 전 교수, 그리고 부영그룹 간의 3자(者) 관계를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다. 지금부터 각 쟁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중근 회장이 어떻게 방대한 원고 작성하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 김명호가 이 사건 역사서적의 편찬에 관여하면서 많은 공헌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이 사건 역사서적의 저작권자는 이중근이고, 피고인 김명호가 저작권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김 전 교수 측 법률 대리인은 ‘항소이유서’에서 “역사서적은 모두 피고인 김명호가 창작한 것이므로 피고인 김명호가 저작권자로 그 지위를 갖는다”고 못박았다.
 
  김 전 교수 측은 그 근거로 김명호 전 교수의 역사와 관련한 전문성을 강조했다. 김 전 교수가 1999년 6월 25일 《조선일보》와 ‘6·25전쟁 미공개 사진전’을 가진 것을 비롯해 《중앙일보》 일요판 〈중앙 SUNDAY〉에 중국 현대사와 북중(北中) 관계에 대해 총 568회 기고해온 점, 《한겨레신문》과 ‘북한과 중국의 교류 69년’을 주제로 26회에 걸쳐 연재한 걸 강조한 것이다. 이 밖에 베스트셀러 《중국인 이야기》의 작가라는 사실도 인용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반박했다.
 
  〈6·25전쟁 등에 관하여 전문적인 연구를 한 적이 없고,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 작동법조차 모르는 이중근 회장이 어떻게 위와 같은 방대한 원고(저작물)를 집필하고 수정하였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분량과 완성도를 가진 책자에 관하여 관련 분야를 전공한 일도 없고 기업 경영으로 바쁜 이중근 회장이 그 원고를 작성하거나 작성과정에 실질적으로(유의미하게) 관여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
 
 
  ‘실제 저작물을 작성한 사람이 저작자’
 
  김 전 교수 측 변호인은 또 ‘상고이유서’에서 김 전 교수가 갖는 ‘지위’에 대해 설명했다. 부영그룹 측이 발간한 각종 역사서적의 실 저작자가 왜 김 전 교수인지를 판례(判例)와 현행법을 들어 설명한 것이다. 변호인은 “원심판결이 인정한 바와 같이 이 사건은 이중근의 의뢰에 따라, 피고인 김명호가 이 사건 역사서적을 집필한 후, 이중근의 이름으로 출간한 것으로, 이른바 출판물의 ‘대작(代作)’이 이루어진 사안”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대작의 경우에도 ‘대작을 의뢰한 사람(저자로 표시된 사람)’이 저작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저작물을 작성한 사람이 저작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법률 대리인은 또 대법원(1996. 7. 30. 선고 95다29130 / 2012. 1. 27. 선고 2010다50250) 판례와 저작권법(제2조 제2호) 을 들어 실 저작권자가 김명호 전 교수임을 강조했다. 즉 역사서적을 ‘창작(創作)’한 자가 ‘저작자’에 해당하는데, 그 저작자가 ‘저작권’을 가지므로 김 전 교수를 저작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김 전 교수가 역사서적들의 실제 저작자라면, 이중근 회장이 관여한 부분은 뭘까. 김 전 교수 측 변호인에 따르면, ‘양장본’의 경우 이 회장이 본문에는 관여한 게 없다고 한다.
 
  김 전 교수가 작성한 본문과 머리말, 맺음말을 이중근 회장이 보고 한두 문장 수정한 게 다라고 한다. 2014년 ‘양장본’을 개정할 때에도 각국 국기(國旗)를 넣고, 부영의 로고를 넣은 게 전부라고 변호인 측은 설명했다.
 
  또 하나 의문이 남는다. 부영그룹이 ‘우정문고’라는 출판 법인을 설립했음에도 왜 굳이 N사를 통해 역사서적을 출판했는지다. 법원은 이에 대해 “피고인 김명호는 실질적으로 우정문고에 소속되어 우정문고의 업무인 이 사건 역사서적 편찬 업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인정된다”(항소심 판결문 5페이지)고 판시했다.
 
  이는 김명호 전 교수가 N사 신 대표와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기도 했지만, N사의 가격 조건이 다른 출판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았던 점이 한몫했다. 부영그룹의 직원 이○○은 1심 법정에 출석해 “N사와 다른 출판사에 인쇄 문의를 하였는데 (다른 곳이) N사보다 단가가 높았다”고 증언했다. 즉 여러 업체를 알아본 다음, N사와의 가격 조건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다.
 
 
  “우정문고, 책 출간으로 한 푼의 돈도 못 벌어”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우정문고는 해당 역사서적의 출간을 맡을 수 없었다. 우정문고는 이 사건의 역사서적 중 가장 먼저 제작된 《6·25전쟁 1129일》 ‘양장본’의 출판 및 인쇄 작업을 코앞에 둔 2013년 7월 29일 설립됐다(서적 출간은 8월). 그 시점에 ‘양장본’은 이미 N사가 제작 공정을 마쳐놓은 상태였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정문고가 역사서적의 출판을 맡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게 김 전 교수 측 입장이다.
 
  N사는 역사서적의 인쇄만 담당한 게 아니라, 실질적인 출판 전체 과정을 총괄했다. 김 전 교수 측은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 역사서적의 출판, 편집 작업을 N사가 담당했고, 출판 직전에 설립된 우정문고는 단순히 출판사 이름만을 표기하는 이른바 OEM(주문자 생산 표기방식) 방식으로 출판이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전 교수가 고문으로 있던) ㈜부영과 우정문고는 이 사건 역사서적의 출판을 위한 기획, 편집, 디자인, 인쇄, 제본 등에 일절 관여한 바가 없다”고 못박았다. 출판계에서 OEM 출판 방식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
 
  즉 역사서적의 출간은 모두 ‘출판사’이자 ‘인쇄업체’인 N사가 주관했다는 게 김 전 교수 측 입장이다. 그러므로 N사로부터 인세를 받은 것 역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이렇게 비판하기도 했다. ‘항소이유서’의 일부다.
 
  〈아마도 원심은 ‘부정한 청탁’의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배임수재를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출판사도 아닌 단지 인쇄업체에 불과한 N사가 저작권자도 아닌 사람(김명호-기자 주)에게 거액을 주었으니 부정한 청탁의 대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이와 같은 무리한 사실인정을 한 것은 아닌지 추측합니다.〉
 
  N사 신 대표의 ‘상고이유서’도 우정문고와 김명호 전 교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상고이유서’에 “우정문고는 김명호가 이중근을 편저자로 우대하면서 기왕이면 이중근의 호(號)를 딴 ‘우정’이라는 이름의 우정문고 명의로 책을 발간하자는 취지에서 명목상 설립된 업체일 뿐 전혀 실체가 없다”고 적었다. 이어 “우정문고에는 소속 직원이 전혀 없었고 단지 부영주택 직원들이 사실상 이 사건 역사서적의 배송 등을 담당하였을 뿐이며 당연히 ‘주간’이라는 직책 내지 직위 역시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의 논리대로 우정문고에서 책이 출간됐다면, 우정문고는 김명호 전 교수가 저술한 역사서적을 통해 최소한의 출판 수입이 발생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김 전 교수 측 법률 대리인은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에서 대외적으로 출판사로 표시된 우정문고는 책 출간으로 한 푼의 돈을 번 것이 없다”며 오히려 400억원가량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이 돈은 역사서적 1000만 부를 제작하는 데 소요된 비용으로, 그 돈을 우정문고(이중근)가 N사에 지급한 것이다. 즉 N사가 역사서적의 출판 전(全) 과정을 담당한 출판사이자 인쇄업체이므로, 역사서적의 ‘저작자’인 김 전 교수가 출판사인 N사로부터 인세를 받은 건 적법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중근 회장은 왜 ‘편저자’로 표기됐나?
 
  이 지점에서도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중근 회장은 왜 ‘양장본’ 표지에 ‘편저자’로 들어간 것일까. 법원이 이 회장을 실 저작자로 본 이유도 표지에 이같이 기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명호 전 교수 측 ‘항소이유서’에 따르면, 당초 이 회장은 ‘양장본’ 출판 및 인쇄를 앞두고 김 전 교수에게 ‘이중근과 김명호 공저(共著)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김 전 교수는 기업인과 역사서를 공동 저작했다고 표시하는 것은 학자로서 본인의 위신에 어울리지 않고 외부에 상업적으로 비칠까 봐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김 전 교수는 본인을 ‘주간’이라고 넣고, 이 회장은 ‘편저자’로 기재한 것이라고 ‘상고이유서’는 밝히고 있다.
 
 
  ‘부정한 청탁’이라면서 ‘양장본’ 인세는 1년여간 미지급
 
  ‘부정한 청탁’에 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면, 부정한 청탁을 한 주체는 N사다. N사가 김명호 전 교수를 통해 부영그룹에 김 전 교수가 발간하는 역사서적의 출간을 계속 맡을 수 있도록 청탁했다는 것이다. 김 전 교수 측은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우선 3자 간의 금전 거래 내역을 살펴보자. 다음 페이지 〈표〉를 보면, 김명호 전 교수는 《6·25전쟁 1129일》(2013년 8월 29일~2014년 8월 6일) ‘양장본’ 출판 및 인쇄(총 7쇄)에 따른 인세는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N사의 경영 사정 때문이었다.
 
  김 전 교수와 신 대표에 따르면, 당초 양장본에 대해서도 저자인 김 전 교수에게 10%의 인세를 주기로 약정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N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양장본의 경우 책의 부피와 분량이 너무 커 출판과 인쇄 작업에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 인세를 지급할 정도의 수입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신 대표와 절친한 친구 사이인 김 전 교수는 그와 같은 사정을 양해해 인세를 사양한 것이다. 김 전 대표가 N사로부터 인세를 받기 시작한 건 2014년 11월, 《6·25전쟁 1129일》 ‘요약본’을 발간하면서부터다.
 
  즉 N사는 1년여간 김 전 교수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부영그룹에 N사를 소개해준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부정한 청탁’이라는 재판부의 판단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김 전 교수 측 ‘항소이유서’의 한 대목이다.
 
  〈만일 피고인 김명호가 N사에서 인쇄를 선정되게 해준 대가로 돈을 받았다면 N사를 소개시켜준 계기가 된 이 사건 6·25 양장판(《6·25전쟁 1129일》 ‘양장본’)에 대해서 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는데 이에 대한 대가를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시된 〈표〉에는 N사가 역사서적 외에 부영그룹의 캘린더, 브로슈어 등의 제작을 맡아 그에 따른 대금을 받은 기록도 적혀 있다. 그 금액은 총 10억5000만원 상당이다. 법원의 판단대로 부정한 청탁의 대가라면, N사는 역사서적 외에 거래가 이뤄졌을 때 부영그룹을 소개시켜준 김 전 교수에게도 해당 건마다 돈을 지급했어야 하나 그런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인세가 많다고? “통상적인 지급률”
 
N사가 김명호 전 교수에게 인세를 지급함에 따라 신고한 세금 내역(원천징수영수증). N사는 내부 품의 및 결재 등 회사 내부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인세 32억원을 계좌이체로 김 전 교수에게 지급했고, 그에 따른 세금도 정상적으로 납부했다는 입장이다. 사진=수사기록 캡처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받은 인세(약 32억원)가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신 대표가 수익률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 김명호에게 무려 32억여원의 거액을 지급하였다는 점을 들어, 이 돈이 부정한 청탁에 대한 대가라고 판단했다. 김 전 교수 측은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오히려 부정한 청탁의 대가가 아니라 인세로 지급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사정”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교수 측이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 신○○은 ‘마진율이 5~6% 정도’라고 진술하였으므로, 피고인 김명호에게 지급한 금액은 N사의 마진보다 더 많은 금액입니다. 원심이 인정한 ‘부정한 청탁’의 내용은 ‘이 사건 역사서적에 관하여 N사를 인쇄업체로 선정・유지하여 달라’는 것인데, 그러한 거래를 유지함으로써 거래당사자인 N사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청탁의 대가로 지급한다는 것은 거래통념에 반합니다. ‘부정한 청탁의 대가’의 규모는 청탁을 하는 자가 청탁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익 규모를 감안하여 감수할 만한 수준의 금액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므로, 수익률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마진보다 많은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은 ‘부정한 청탁’의 속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 “N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꼬박꼬박 지급했다는 것은 부정한 청탁의 대가가 아니라 그러한 금액을 지급하여야 할 계약상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32억원이란 액수는 보기에는 많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김 전 교수 측은 통상적인 인세 지급률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교수는 도서 판매 매출의 10%를 인세로 받았다. ‘2017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6년을 기준으로 출판업체들은 평균 9.3%를 저작자에 대한 인세로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2017 출판산업 실태조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를 근거로 김 전 교수 측은 “(인세는) 이 사건 역사서적 매출의 정확히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며 “10%는 국내 출판업계의 통상적인 인세 지급률”이라고 했다.
 
  N사는 내부 품의 및 결재 등 회사 내부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인세 32억원을 계좌이체로 김 전 교수에게 지급했다. 김 전 교수는 인세 수입에 따라 2015년 5월 29일부터 2016년 8월 1일까지 10억원의 소득세와 1억원의 지방세를 납부했다. 김 전 교수 측은 “배임수재죄에서 주고받는 돈은 부정한 청탁과 관련된 것이므로 은밀한 방법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러한 사실에 비춰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 교수, 재산상의 손실 불가피
 
  김 전 교수 법률 대리인은 ‘상고이유서’에서 “피고인 김명호는 지난 수십 년간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또 저술가로서 활동하여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 되면서, 이제는 출판과 관련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거액을 받은 파렴치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왔습니다. 아울러 피고인 명의의 토지, 아파트, 자동차, 예금 등 각종 재산에 이 사건 추징금액에 해당되는 보전처분이 이루어져, 만일 이 판결이 확정되는 경우에는 피고인은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까지 입게 될 것임이 자명합니다.〉
 
  김 전 교수는 인세로 32억원을 받고, 그중에 11억원을 세금으로 납부해 실제로는 21억원 정도의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32억5000만원 상당의 추징금을 내야 해 재산상의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N사도 마찬가지다. N사는 이 사건에 휘말려 인쇄 제작에만 관여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
 
  김명호 전 교수는 어렵게 이루어진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중근 회장은 사회의 큰어른 같은 분이다. 우리 사회가 이 회장의 진면목은 못 보고 나쁜 면만 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해다. 나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오해를 만드는 데 보탠 것 같아서 송구스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내가 하겠다고 하는 일은 다 들어주신 분이다”면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내년 1월까지 추징금을 깔끔히 납부한 후에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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