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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특집

5·18과 386세대와 前近代性

5·18은 386세대 의식을 사로잡은 정치적 르상티망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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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 자신보다 강한 자가 누리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증오심·복수심을 ‘르상티망’이라고 규정
⊙ 5·18에 대한 르상티망, 좌파 이념과 결합… ‘한풀이의 정치’로 이어져
⊙ 문재인·386은 ‘진보’ 독점하지만 退行的·僞善的… 대외적으로는 親中 행각과 연결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지난해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치고 난 후 5·18희생자 묘역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한(恨)’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어(漢字語)인 만큼 그 권역인 한·중·일(韓·中·日)에서라면 뜻이 비교적 쉽게 통할 법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다. 같은 한자권이라도 이해되는 바와 쓰임새가 조금씩은 다르다. 뉘앙스도 그렇지만 특히 쓰임새에서 차이가 꽤 있다. 중국・일본 등에서 한(恨)은 거의 전적으로 사적(私的) 관계 영역에서의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恨)은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한국에서는 이미 사적 관계의 영역보다는 정치적 영역에서 더 많이 눈에 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한때는 그저 정서적 감성의 단어였다. 많이 쓰였다. 옛 가요들을 보면 “한 많은…”이라는 제목과 가사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신세대들이 이제 일상어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예스럽게 느껴지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대 변화와 함께 감성이 변했다. “한국인에게는 특유의 한(恨)의 정서가 있다”고 말하지만 신세대의 감성은 다르다. 쿨(cool)함을 멋으로 여긴다. 그런 입장에선 ‘한’이라는 단어는 좀 끈적거린다.
 
  하지만 정치 영역으로 오면 다르다. 우리나라 정치가 그만큼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간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한풀이의 정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한국에는 ‘한(恨)의 정치학’이 있다.
 
  이렇게 곡절(曲折)이 복잡하니 한(恨)을 다른 나라 말로 온전히 옮기기가 쉽지 않겠다. 같은 한자권에서도 핀트가 일치하지 않으니 멀리 벗어나 서구로 가면 더욱이 그럴 법하다. 어떻든 정서적 단어다. 그런 만큼 역사적으로 형성된 언어문화의 차이가 큰 서구에서 비슷한 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겨진다.
 
 
  ‘르상티망’과 ‘앙가주망’
 
프리드리히 니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어의 한(恨)과 유사한 함의(含意)의 단어가 서구어에서 눈에 띈다. ‘르상티망(Ressentiment)’으로 프랑스어다. 영어의 ‘리젠트먼트(resentment)’와 어원은 같지만 쓰임새는 다르다. ‘분함・억울함’이라는 뜻에서는 같지만 르상티망은 단순한 정서적 표현이 아니라 철학과 심리학의 개념적 용어다. 물론 한(恨)이라는 단어는 그 같은 고급 용어의 반열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개념사의 경과를 보면 유사한 함의의 곡절이 포착된다.
 
  르상티망을 철학 용어로 최초 사용한 인물은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1813~1855)다. 이후 독일의 니체(Nietzsche・1844~1900)가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1887)에서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니체는 노예도덕에는 자신보다 강한 자가 누리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증오심·복수심(르상티망)에서 비롯되는 가치 전도(顚倒)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선망하면서도 시기하여 ‘부(富)는 악(惡), 가난은 선(善)’이라는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게 르상티망에 의한 가치 전도다.
 
  현대에 들어 실존주의(實存主義)가 프랑스의 사르트르(Sartre· 1905~1980)를 필두로 하여 세계적 유행을 탔다. 그러면서 르상티망의 정치적 함의도 커졌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강요된 억압하에서 거짓된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않는 것을 ‘나쁜 믿음(Bad faith, Mauvaise foi)’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앙가주망(Engagement)’, 즉 적극적 사회 참여라는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앙가주망으로 르상티망을 극복하자는 얘기다.
 
  앙가주망이란 용어가 일전 한국에서 간만에 입에 오르내린 일이 있었다. 그 말썽 많은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 입을 통해서였다. 그는 갖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결국 사직을 했다. 그런데 이후의 처신이 놀라웠다. 사직한 뒤 곧바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복직한 것이다. ‘폴리페서’[polifessor·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를 합친 말] 행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부 언론이 나를 폴리페서라고 공격하며 서울대 휴직과 복직을 문제 삼기에 답한다.…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이다.”
 
  사르트르가 살아 있다면 자신의 간판 용어가 이런 식으로 쓰이는 걸 어찌 여겼을지 모르겠다. 귤이 탱자가 된 듯하다. 게다가 뜬금없다. 앙가주망은 한때 사르트르 덕분에 세계적으로 회자되기는 했지만 이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말하자면 철 지난 용어다. 그런데 거기서 바로 한국 3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의 정치의식 내면이 드러난다. 시대착오다.
 
  1980년대, 사르트르의 앙가주망론(論)의 번안(飜案)이었던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1978) 같은 책이 널리 읽혔다. 의식이 거기에 머물러 있다. 조국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 전반이 그러하다. 멈춰 있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앙가주망은 르상티망이라는 한(恨)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5·18이라는 르상티망
 
1989년 10월 3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광주학살원흉 처벌’ 요구 시위를 벌이는 5·18 관련단체 회원들. 1980년 광주의 기억은 ‘정치적 르상티망’이 되어 386세대의 의식을 지배했다. 사진=조선DB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서거한 뒤 이른바 ‘서울의 봄’이라는 정치적 진통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그 진통은 광주(光州)가 무력(武力)으로 진압되면서 끝을 맺었다. 진압한 쪽 입장에선 질서 회복이었다. 하지만 진압당한 입장에선 좌절이었다. 좌절은 한(恨)이 된다. 정치적 르상티망이다. 5·18로 ‘한(恨)의 정치’가 잉태된 것이다.
 
  386세대라면 운동권이 아니었다 해도 갖고 있는 전체적인 세대적 기억이 있다. ‘1980년 광주’에 대한 인식이다. 그 인식은 얼마 뒤부터 대학에 들어온 386세대의 정치적 사고(思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무고한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다 공수부대에 의해 살해까지 당했다는 얘기 앞에 딴소리를 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운동권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든 그것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해야 마땅한 사태였다.
 
  그렇게 386세대의 뇌리를 사로잡은 5·18이라는 르상티망은 정치적 이념과 의식을 규정하는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5·18로 상징되는 저항적 민중봉기는 논란의 여지 없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그 좌절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의식이 굳어져갔다.
 
  386 운동권들에겐 그런 인식은 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5·18은 이제 우리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저항적 행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했다. 거슬러 올라 반(反)유신 투쟁, 4·19, 3·1운동으로 대표되는 일제(日帝)에 대한 저항, 더 거슬러 올라 동학란(東學亂)에서 이어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저항적 민중 행동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이 인식은 확산돼가던 좌익 이념과 결합했다. 그러면서 바로 그것이 ‘진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런데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한풀이의 정치’였다. 르상티망에 기반한 앙가주망은 본질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가 명성을 날리는 동안 그의 앙가주망은 미화(美化)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낭만적 미화였다. 역사에서의 진보는 낭만과는 별개 문제다. 낭만적 정서에 젖은 ‘행동을 위한 행동’은 오히려 퇴행(退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民亂과 근대적 각성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당연히 여기는 이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많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것은 피보다는 돈, 즉 경제적 성장이다. 민중적 저항 행동에 대한 과도한 낭만적 미화는 그 같은 역사의 실제 진보 과정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근대 성장과 그에 따른 정치적 성숙 과정에는 유혈(流血)의 진통이 동반되기 일쑤다. 하지만 그것은 한 단면이다. 정치적 측면에서의 근대적 성숙도 산업 성장과 경제적 발전이 없으면 결코 이룩되지 못한다.
 
  이것은 사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도 그렇다. 하부구조의 성장이 있어야 상부구조의 발전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는 그에 따른 계급투쟁으로 정치 발전이 이룩된다고 했다. 하지만 계급투쟁의 과도한 강조는 사실 의도된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a)다.
 
  역사는 계급투쟁, 다시 말해 민중적 저항은 경제적 성장이라는 하부구조의 발전 없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든 민란(民亂)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그게 곧바로 진보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근대적 성장과 관련해선 특히 더 그러했다. 유럽의 농민반란 역사나 중국의 농민반란도 마찬가지였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亂)과 의화단(義和團)의 난은 청말(淸末) 중국의 대표적 민란이었다. 그러나 그런 민중봉기가 그대로 근대적 각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고대(古代)에도 농민반란은 있었지만 그것이 근대적 진보를 가져온 것은 당연히 아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문화혁명의 소동은 중공 인민의 근대적 각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동학도 그러했다. 동학 봉기 그 자체로는 곧바로 근대적 각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동학에서 근대적 각성이 자라난 것은 오히려 그것이 완전히 좌절된 뒤 여러 차례의 굴곡을 겪은 뒤였다. 3·1운동 주축의 하나였던 천도교(天道敎)는 모든 면에서 각성된 근대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천도교는 동학 이래 간단치 않은 역사적 굴곡을 거쳐야 했다.
 
 
  민중의 神話
 
  민중 운운, 역사 주역 운운이 언젠가부터 군림하는 신화(神話)가 되어버렸다. 지식분자들은 대중행동을 그렇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콤플렉스다. 그리고 동시에 위선(僞善)이기도 하다. 조선의 양반들은 “백성을 하늘같이”라 하면서도 결코 백성을 그렇게 존중한 적은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근대적이거나 진보적인 게 아니다. 그렇듯 민중천하지대본(民衆天下之大本)이라 한다 해서 곧 진보적인 건 아니다. 근대성을 합리성의 확대와 이성적(理性的) 힘의 존중으로 본다면 대중행동의 폭발을 그대로 근대성이라 할 수는 없다.
 
  지금 문재인(文在寅) 정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은 ‘진보’라는 용어를 자신의 전매특허처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이들은 근대적 진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퇴행적 이념과 의식에 젖어 있다. 그러면서 위선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들이 빚어낸 후과(後果)를 몸서리치게 겪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말한 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다. 희대의 역대급 정권을 맞은 업보(業報)다.
 
 
  중국 본색
 
  그런데 우리는 지금 나라 안뿐만이 아니라 나라 밖과 관련해서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맛보고 있다. 우한폐렴(코로나19) 사태다. 무엇보다도 중국(중공) 때문이지만 한국 자체로 보면 이 또한 문재인 정권 탓이 결정적이다.
 
  한국은 중국 외에 가장 먼저 우한폐렴 창궐 사태를 맞는 나라 중 하나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감염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망자도 폭증했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중국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라고 운운하며 수백만 장의 마스크를 헌납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한국은 마스크 품귀 사태를 맞고 급기야 줄을 서서 마스크 제한 구매를 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엽기적 행태가 시진핑(習近平) 방한(訪韓)에 대한 오매불망의 기대 때문이었음은 비밀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친중(親中) 행각은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일찍부터 그랬다. 친중 노선도 이들의 퇴행적 이념과 무관치 않다. 문재인 정권이 대놓고 친중 태도를 보여온 것은 그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안으로는 한풀이 정치를 낳은 퇴행적 이념이, 밖으로는 중국이라는 존재에 대한 착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우한폐렴 사태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재앙이다. 후진국만이 아니라 선진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때문임은 새삼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서구(西歐)는 한동안 중국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 처음 유럽에서 우한폐렴이 급속히 퍼져간 이탈리아는 확실히 그랬다. 중국 관광객이 늘 붐볐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적극 동참했다. 그만큼 경계심이 없었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유럽 국가 대개가 그랬다.
 
  ‘우한폐렴’이 어느 틈엔가 ‘코로나19’로 이름 분칠을 했지만, 그 본적(本籍)이 중국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우겼다. 미국이 진원지(震源地)라 했다. 혀를 찰 뻔뻔함이지만 ‘역시’ 중국다웠다. 하지만 중국의 이 같은 본색을 서구는 놓치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환상
 
중국을 예찬한 볼테르.
  서구인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거슬러 오르면 원(元)나라 시절 중국을 방문했다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의 《동방견문록》(1300년경)에 동경(憧憬)과 찬탄이 한껏 담겨 있다. 이후 명(明)나라 때 중국에 예수회 선교사로 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에 의해 전해진 중국에 대한 인상은 그런 동경을 더 키웠다. 17~18세기 서구에선 ‘중국애호(Sinophilie)’ 분위기가 넘쳐났다.
 
  그런 경향을 본격적으로 증폭·확산시킨 이들은 반기독교적인 계몽주의 사상가들이었다. 특히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대표적인 중국 문명 찬양자였다. 볼테르는 《철학사전》(1764)에서 중국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고결하고 훌륭한 나라라고 극찬했다. 앙시앵레짐(Ancien Régime·옛 제도)에 대한 불만을 중국을 빌려 표현한 것이지만, 어떻든 덕분에 중국에 대한 과장된 숭앙(崇仰)이 한동안 유럽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다.
 
  그 같은 인상은 서구가 근대적 성장을 하면서 한동안 희석되기는 했다. 헤겔(Hegel·1770~1831)에 이르면 중국은 더 이상 모범적 선진 문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에 서구가 우월적 입장에서 중국과 조우(遭遇)하게 되면서부터는 더욱이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에 인식 변화가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간행된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1880~1936)의 《서구의 몰락(Untergang des Abendlandes)》(1918~1922)은 제목 그대로 서구 문명과 서구 근대문명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 상실을 보여주고 있다. 슈펭글러에게는 서구 문명은 더 이상 절대적 보편 문명이 아니라 이집트, 인도, 중국 등을 비롯한 여러 고도문화 중 하나로 상대화되었다.
 
  때맞춰 발발한 러시아혁명(1917)은 그런 인식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러시아혁명 이후 좌익 이념이 확산돼가면서 이전의 서구 근대문명의 성취와 안정성에 대한 긍정적 자부심은 더욱 약화되었다.
 
 
  좌익적으로 되살아난 ‘중국심취’
 
  이어 중국에서 공산혁명이 이루어지자 서구 지식인들은 다시 한 번 중국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좌익이념에 대한 막연한 낭만적 동경은 이미 끊기 힘든 ‘지식인의 아편’이 돼 있었다. 그런데 이제 중국이 오랜 역사를 가진 위대한 고유 문명에 더해 공산주의라는 미래를 향한 대안(代案)의 면모까지 갖고 다가왔다. 좌경(左傾)에서 정신적 만족을 구하던 서구 지식분자들에게 공산중국(중공)은 또 하나의 정신적 ‘신천지(新天地)’였다.
 
  미국의 에드가 스노(Edgar Snow· 1905~1972)는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1937)로 마오쩌둥(毛澤東)을 찬양했다. 18세기의 ‘중국심취(Sinomanie)’ ‘중국애호(Sinophilie)’가 20세기에 좌경적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다시 나타난 좌경적 중국심취는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화(偶像化)된 열광으로까지 이어졌다.
 
  앙가주망을 외친 사르트르가 특히 그랬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드골(Charles de Gaulle·1890~1970)은 사르트르를 체포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20세기 볼테르와 같은 인물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한 응답이었다. 드골의 이 말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리한 포착이었다. 사르트르는 나쁜 의미에서도 ‘20세기판 볼테르’였다.
 
  볼테르의 앙시앵레짐에 대한 비판은 정당했지만 과도하게 증폭되면서 결과적으로 르상티망을 부추겨 공포정치를 예비하게 했다. 앙시앵레짐 비판을 위해서지만 과장된 중국 찬양도 오도(誤導)된 인식의 뿌리를 남기게 되었다. 사르트르도 그랬다. 그는 프랑스와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반감의 저항을 반복하면서 마오쩌둥과 문혁에 대해서는 찬양을 되풀이했다.
 
  우한폐렴의 발생・확산과 관련해 중공이 보인 일련의 행태는 서구적 가치 기준으로는 상식 밖이었다. 중국의 행태는 안팎 모두에서 한마디로 야만이었다. 두 개의 야만이 겹쳐 있는 야만이었다. 루쉰(魯迅·1881~1936)은 《아Q정전(阿Q正傳)》(1921)에서 중국 특유의 전근대적(前近代的) 야만성을 갈파했다. 하지만 중국은 제대로 된 근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서 그 야만성이 지양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중국은 그런 상태에서 공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성의 부재(不在)에 좌익적 야만이 겹치게 되었다. 서구는 그것을 보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 “코로나19는 ‘차이나 바이러스’”
 
  미국도 한동안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이 소련은 경계했지만 중국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중(美·中)수교를 한 키신저의 전략을 탁월한 선택으로 여겼다. 천안문 사태를 목도하면서도 경제가 성장하면 중국도 결국에는 선진성을 갖추게 될 것으로 여겼다. 영국의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1964~)이 제창한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미중 협력체제 개념이 미국에서도 유행했다.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트럼프는 우한폐렴 사태가 확산되자 코로나19를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일갈했다. 당연했다. 트럼프는 일찍이 등장 초부터 대중(對中) 압박을 공언하고 그렇게 해왔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차원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이상의 전략적 인식이 있었다. 2019년 미국 국무부 키론 스키너(Kiron Skinner) 정책기획국장은 한 안보포럼에서 “중국과의 패권(覇權)경쟁은 그동안 미국이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문명, 이념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차이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세계는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더 이상 세계 어디에서도 친중적 분위기는 찾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그런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뒤틀린 이념은 뒤틀린 시각을 낳고 판단 착오를 부른다. 내정(內政)에서도 그렇지만 대외정책에서도 그렇다. 문재인 정권의 행각은 그 두 가지가 별개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은 내정도 중요하지만 대외관계 문제는 그 이상의 사활적(死活的) 문제다. 문재인 정권의 행태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한국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인가? 적신호(赤信號)의 울림이 안팎 모두에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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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재원    (2020-06-10) 찬성 : 1   반대 : 0
더럽고 역겨운 조선일보와 역겨운 일베충 자발적 노예들... 광주학살을 부정하면서 지들이 무슨 자유민주주의를 논하고 정의를 외치나? 니들은 위안부마저 날조라고 하고있지 진리를 부정하면서 너희들의 그 역겹고도 가증스러운 새치혀가 가소로울뿐이다 천안함열사분들 안중근의사님 이분들은 진리다 만약 너희들에게 이것에 대해 부정하는 인간이 나온다면 너희들은 그들을 짖밟겠지... 그래 그렇다 천암함열사분들을 부정하는 인간들과 광주학살을 부정하는 인간들은 우리는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보수와 진보는 너희들같은 역겨운 종자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이미 광주학살을 모욕하고 짖밟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반민족 언론일뿐이다 더럽고 가증스러운 것들 광주사람들을 그렇게 학살하고 부마민주항쟁때 쓸어버리려고 했던 다카키를 찬양하고 이 더럽고 역겨운 지역주의와 보수적인 관료사회를 만들어낸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너희들이 참으로 역겹고 가증스럽구나 하루빨리 언론과 모욕죄가 개정되어 너희들이 처참히 응징당하고 다시는 너희들 같은 종자들이 발 붙일 수 없는 땅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기 때문이다
  백민현    (2020-05-11) 찬성 : 6   반대 : 2
다른건 모르겠고...적어도 이나라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나는 민주,민주화라면 몸서리가 쳐진다는것이다...소위 민주화를 했다는 애들은 무언가의 댓가를 바라고했다는것은 자명하다...5.18? 그 광주사태가 전두환노태우씨의 집권을 막기라도했나?그 군사정권에 빌붙어 김영삼은 꿈에도 그리던 대통령한자리 할수있었던거 아닌가?민자당에 빌붙지않았다면 김영삼은 청와대 구경도못했을거다 그 자랑스럽고 찬란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유공자들 이름석자 밝히는것조차 두려워 용기도없는자들은 민주를 입에담지도말라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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